|
나이 50이 넘으면 조르바를 다시 읽어야 할 때,,라고 한다는데.
수긍이 되는 건지,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그리스인 조르바>는,
최근 우리나라 50대 중년 층이 가장 많이 구매한 소설책에 속한다고 한다.
젊은 시기, 돈과 명예를 위해 질주했지만 역사와 사회의리가 나의 외론 밤을 지켜주지
못하는 게 아닐까하고 퍼뜩 정신을 차리는 나이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서
화장을 고치며 주말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조르바가 필요할 때가 됐다.
아주 늦게 정신을 차린 나는 60을 넘기고 다시 읽는다.
평생 수박 겉핥기로 읽었던 니체를 다시 정리하다가 조르바를 다시 보게 됐다.
조르바의 작가 카잔차키스는 자기 인생에서 호메로스와 니체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하고 있다. 니체 하나만 가지고도 가위눌리는데 표지도 못 본 호메로스까지 언급해
주눅이 들만 하지만. 이 책은 너무 쉽고 읽기 편하다.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읽는 거에 비한다면 그런 셈이다.
비극의 탄생은 25장 500페이지쯤 내내 , 중언 부언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비유. 은유에
상징적인 말투에, 먼 말인지 삔또가 빗나가며 내내 헷깔리고/ 질문을 던지고 100페이지쯤
딴 소리하고 지나가다 답을 말하고, 혈압이 올라가고 분노 게이지가 폭발 할라그랄 때쯤
먼가 느낌이 왔다.
책에는 두 가지 인식의 전개가 있는데,
하나는 논리적인 인식으로 분석. 분류 입증을 통해 맞다 틀리다 옳다 그르다를 인식하게 하고,
또 하나는 감정적인 인식이 있다고하는데 이게 참 설명이 어렵다. 좋아하는 데는 별다른 이유가
없어서, 감정이 땡기는 거에 무슨 이유가 있으까 싶지만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속에서 느낌이
짜르르하고 뜨거워지는 상태, 이게 감성적인 인식으로 논리 인식의 철학과 구분해
감성인식을 예술인식 미학의 구조로 해석한다고 한다.
벽돌책 4권짜리 <레미제라블>을 고생고생 읽는 이유는 봉건제를 혁파하고 공화제가 옳다,
착하게 살자,는 메시지 한 줄 배울라고 읽는 거보담 가슴이 꿈틀대는 분노와 팡틴느에 대한 연민에
가슴이 뜨뜻해지는 체험을 위한 게 아닐지. 그러니까 읽다 보니 가슴이 막 울렁거리고 속이 좀 그랬다는
- 온도의 변화를 다루는 게 문학이 아닐까 싶기도하다.
이 책은 후자, 감성적인 인식에 촉이 뛰어난 인물의 생의 활력을 그렸다. 이념. 윤리. 돈을 추구하는
지식인 먹물형 인간의 반대편에 서서, 그들에게 침 뱉고 개기고 조롱하며 활기차게 세상을 살아가는
조르바가 주인공이다. 최종학력, 무학의 조르바가 세상을 직진으로 관통하며 던지는 해학과 관조
그 속의 따뜻함에 모두 동의할만하다.
애 낳아 기르고 집사고 어찌어찌 힘들게 살아오는 동안 지치고 기운 빠진 아저씨들이 매사에 핑계가
많아졌다. 침대에서는 변명이 많아지고 회식자리에서 수다를 잃어가고.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고치며
자꾸 늘어나는 잔주름이 신경 쓰일 때, 산행 중에 사진을 찍는데, 시커메진 얼굴을 손도 안 봐주고,
커다란 얼굴사진을 그냥 올린 작가가 너무도 얄미워서 댓글 달아주기도 싫어질 때.
그럴 땐 가끔 , 노래방에라도 들러서 눈을 반쯤 내리감고 이은하의 봄비라도 불러보자, 돈 말고도
세상에는 중요한 게 얼마든 지 있다고 믿었던 추억의 시간을 생각하며 현실과 추억 사이의 온도 차이가
가져오는 낙차 큰 충격에 핑계 대지 말고 노출돼 보는 거를, 올 한 해 주문해 본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1964년에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는데, 이 영상은 영화의 ost격인 조르바 댄스이다.
음악은 <기차는 8시에 떠나네>로 알려진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작곡해 그리스 문화의 랜드마크급이 됐다.
음악 초반에 띠딩~ 하고 끼어드는 현악기는 그리스 비잔틴 시대부터의 전통악기 부주키이다. 이 부주키가 인도하는
음악은 그리스 전통 음악인 <렘베티카>의 전형이기도 하다.
그리스 소설의 작가나 영화 음악의 작곡가 모두가 그리스 정치권에서 실제 장관을 역임한 거물급이다.
조르바의 작가 카잔 차키스는 40년대 중반 그리스 내각을 설계하고 장관을 역임했다, 영화음악 작곡가
테오도라키스도 마찬가지 입각과 구속을 반복한다. 그리스 문화의 소설과 음악은 그리스 정치를 이해하는
많은 이유,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조르바( 앤서니 퀸)와 나 ( 소설에서는 나로 나오는데 영화에선 이름이 있다)는 그리스 크레타 섬에서 갈탄광산
사업을 하러 왔는데, 내가 오는 중 피레우스 항구에서 오다가다 조르바를 만나서 같이 일을 한다.
조르바는 나를 그냥 두목이라고 부른다. 월급은 안 주지만 같이 일하는 직원인 셈이다.
오늘 갈탄광에 사고가 나고 사업이 쫄딱 망했다. 이제 둘은 곧 헤어지게 됐는데 마지막에 서로 쾌활하게 웃으며
조르바 댄스를 춘다. 세상이 암만 힘들고 어려워도 사는 열정과 명랑함을 잃지 않는 인간형이 조르바인 셈이다.
웃고 있지만 부주키가 끌고 가는 음악은 차분하고 애처롭다. 그런 분위기는 작품 전체에 일관되고, 당 시대 그리스
사회의 분위기이기도 하다
소설은 너무 간단한 스토리 라인을 가진다. 조르바의 대화에서 그 사람이 세계를 떠돌며 살아온 이야기를 내가 듣는
형식이다. 조르바는 젊었을 때 방물장수를 한 적이 있다. 그가 이 크레타 섬에서 머리빗 하나를 주면서 15번째
과부를 꼬시고 있는데 튀르키에와 독립전쟁이 일어났다. 아쉽게 15번째 여성을 두고 조르바는 전쟁에 참여해
혁혁한 공을 세운다. 듣고 있던 내가 "나라에 엄청난 공을 세우신 애국자시네요?"라고 대꾸하자 조르바는 화를 낸다.
독립 전쟁이라는 미명하에 자기가 한 잔혹한 학살이 너무 부끄럽다고. 그러니까 조르바는 민족이니 애국이니 이런
관념에서 자기 스스로를 해방시킨 자유인이다.
조르바는 살면서 한 번 공식적으로 결혼했는데, 동거는 천 번인가? 3천 번쯤인가 헷갈린다. 수탉이 장부 가지고
다니면서 알을 낳냐고? 그가 일갈한다. 요즘 MZ들이 읽으면 기절할 일이지만, 그는 여성을 독점적으로 소유하려
들지도 않고 젊은 여성이나 늙은 여성 모두에게 공손하고 경이로움을 느낀다.
그는 성적 관능과 삶의 에너지에 너무도 충실한 사람이며, 윤리와 도덕 종교에서는 자유로운 사람이다.
거물급 정치인이며 세계를 떠돌며 여행을 즐긴 작가인 나의 스텐스는 좀 거리를 둔다. 내가 좋아하는 젊은 과부에게
다가가는 나는 항상 버벅 거리고 결정 장애를 일으켜 조르바에게 핀잔을 듣는다. 여자를 외롭게 두는 건 천벌을 받을
일이라고.
작가는 조르바와 카사노바류의 인간과 다르다고 자꾸만 설명을 하려고 한다. 내가 가리키는 곳은 그게 아니다.
그리스에서는 지금 삶이 생지옥이 되었고, 우리는 그 고통 속에서 생의 에너지를 끌어올려 버티려 할 뿐이다.
그 시기 그리스엔 외부세력에 의한 쿠데타가 반복 됐고 수만 명이 내전으로 죽고 수십만 명이 정치범 수용소인
섬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긍정적으로 살아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게 아닌데 인생은 비극 그 자체이다.
나는 무엇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반복되는 혹독한 삶 속에서 , 얼어붙은 감수성을 극복하고 늘 명랑하게 살아가자.
실존과 관념의 반대편에서 도덕적이며 종교적 이념을 거부하고 삶의 본질에서 퍼올린 힘으로 살아간다.
나는 세상에 큰 집착이 없고 바라는 거도 없지만 항상 현재의 나에 만족하고 생활에 집중한다.
나는 본능 적인 관능에 관심이 많지만 그것은 순간에 쾌락이 아니고 순간의 삶에 집중하는 자세이다.
그의 모든 바람이 조르바에 투영돼 있는데, 삶의 스승 격인 조르바는 항상 세상을 향해 거침이 없다.
감성이 지배하는 그의 인생은 항상 활기찬 직진만이 있는 셈이다. 그들은 물질의 결핍도 아랑곳 않고,
관념과 이념도 소용없는 세상, 하느님도 없고 악마도 없는 오로지 자유로운 인간만이 있는 세상을 꿈꾸며
세상을 떠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아주 쉽고 편한 책이지만 작가는 아주 절묘하고 계획적으로 그리스인 이란 무엇인가? 를
기획한 듯하다.
1961년 비숫한 시기에 오픈한 그리스 영화 한 편,
일요일엔 참으세요( Never on Sunday) 란 영화에는 마치 여자 조르바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의 그리스인이 나온다.
이 영화의 주인공 일리아인데, 이 역을 연기한 가수이자 배우 <멜리나 메르쿠리> 도 역시 그리스 문화부 장관을 역임했다.
이영화 음악을 만든 <마노스 하지다키스>에 의해 그리스인의 뮤즈 <나나무스쿠리>가 탄생하기도 했다.
영화에서 일리아( 멜리나 메르쿠리는)는 피레우스 항구의 매춘부이다. 매춘부인데 피레우스 항구의 모든 사람들한테서
사랑과 존경을 받는 여성이다. 일리아는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손님을 특별 대우하지 않는다. 늘 공평하고 항구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춤추며 노래하고 즐겁게 지낸다. 일요일엔 절대로, 절대루 일을 하지 않고
자기 고객들(?)을 모두 데리고 오페라 공연을 보러 간다. 그리스의 매춘부 영화는 미국과 다르고 유럽과도 다르다.
일리나를 사랑 해서 상류사회의 교양을 가르치며 함께 결혼하자는 남자의 간섭을 걷어차버리고 피레우스의
대중들과 함께하는 여성이다.
그리스란 나라는 이미 3천여 년 전에 아테네가 마케도니아의 알렉 산더에 멸망하면서 사라졌다. 그런 그리스가 19세기~
20세기 초반에 나라라고 나타난 셈이다. 그리스 독립전쟁 당시 크레타 섬에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군함이 주둔하며
튀르키에와의 전쟁을 지원했다. 당시 아테네의 인구는 7천 명 정도로 튀르키에의 한 시골 항구에 불과했다.
지금 그리스는 이스라엘처럼 영국과 미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나타난 지극히 이념 양극화의 산물인 셈이다. 그들은 민족적인
문화나 사회 시스템이 부족했고 저들 문학과 음악의 문화 기획자들은 그리스적인 훌륭한 인간상이 필요했다.
튀르키에와의 전쟁 결과로, 튀르키에에 거주하던 동방정교 신앙의 150만 명이 그리스로 강제 추방돼 피레우스
항구와 북부 산악지대에 극빈 층 슬럼가를 형성했고 그들이 가져온 렘베티카 음악과 문화는 그리스의 대중 정서와 융합 됐다.
1963년 이념의 질곡 속에 신음하던 그리스에서 람브라키스 의장이 길거리 연설 도중 곤봉에 머리를 맞고 급사했다.
테러범들은 가미카제란 삼륜차를 타고 대낮에 길거리를 활보했다. 세계가 그리스를 주목했고 그리스의 문제는
전체 유럽의 위기로 인식 됐다. 그 위기 속에서 이념에서 벗어난 조르바형 인간이 관심을 끌었다. 인류의 이성이란 게
참말로 부실하고 허약해 보였다.
1872년에 프리드리히 니체가 약관 27살의 나이에 유럽의 모든 책을 두루 섭렵하고 자신의 첫 번째 책이자 유럽을 통섭한
독후감인 <비극의 탄생>을 썼다. 이 책이 조르바의 탄생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듯하다.
발간 당시 제목은 <음악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이었으나, 10여 년 후 신판을 출간하면서 제목을 <비극의 탄생, 혹은
그리스 문명과 염세주의>로 바꿨다. 바그너에게 바치는 서문도 삭제했다. 궁극적으로 독일 민족주의에 경도되는 바그너가
아니고 그리스의 비극형식인 전설 속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의 호메로스로부터 이성 만능주의에 빠진 유럽의 질병을
고칠 수 있다고 주문했다.
더 쓰면 혈압 올라갈 듯해서 무리하게 직역하자면,
3천 년 전 그리스의 공원과 목욕탕에 조각된 신과 영웅들은 갑빠가 튀어나오고 꼬추가 튼실한 관능형 인물이었다.
신이나 적어도 영웅 반열에 들라면 고추가 커서 자랑할만해야 했다. 그리스의 대표적인 신인 아폴론은 몸이 좋고
꼬추가 튼실해 그걸 본 뮤즈들이 실신을 했다고 한다. 신이지만 그는 20여 명의 인간과 뮤즈들에서 자식을 낳았고
가슴 빵빵한 여성상이 표적이었다. 공원에 전라체를 세우고 몸 좋은 게 자랑이 될 수 있었던 사회가 그리스 인 셈.
비교하건대 광화문에 꼬추 틈실한 이순신과 빵빵한 신사임당의 전라 동상을 세우고 살짝 침을 흘리는 미적 감각이라니
좀 오버됐다는 생각이 들지만. 니체는 소크라테스에 의해 말살되기 시작한 예술에 관능. 감성적 도취가 복원돼야 된다고
주장했다. 그 책 한 권으로 니체의 교수로서 지위는 마감됐고, 몇 년 뒤 쓴 짜라투스트라는 ... 아무도 출판을 해주지 않아
자비로 출판해야 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이 미학적 전투가 다시 재연돼 유럽에 회자 됐다.
60년대 장미의 전쟁
1957년에 알베르 카뮈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노벨상 수상에서 경합을 벌였다.
이방인의 뫼르소, 실존적 진실의 인간과 / 그리스 헬레니즘의 조르바형 자유인의 경합인 셈이 됐는데
카뮈가 한 표 차이로 노벨상을 수상 했다. 그렇지만 카잔차키스가 죽고 난 60년대에 세계는
니체와 그리스형 인간의 시대였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세계에 붐을 일으켰고, Never on Sunda로
독일에 이름을 알린 나나 무스끄리의 앨범은 한 해에 독일에서만 100만 장이 팔리는 전설을 만들었다.
이 시대는 인류가 소련의 전체주의와 미국 주도의 이념 전쟁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시기였다.
샤르트르. 카뮈. 보봐르. 피카소. 카잔차키스. 테오도라키스. 조지 오웰. 오스카와일드 이들의 공통점은
이들 전부가 빨갱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공산당과 사회주의 정당의 골수 당원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이 소련에 동조한 건 아니다. 소련이 체코와 헝가리를 침공하고 정치범 수용소의 참상이
알려지자 유럽의 빨갱이 중에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미국이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서 베트남을 폭격하고 남미와 그리스 아시아에 쿠데타가 빈발했다.
북한의 원산항에 몰래 침투한 프레블로호가 북한에 억류되자 베트남에 이어 한국에 미군이 항공모함을
급파했다. 전쟁이 임박하자 미국의 히피와 전 유럽의 대학생들이 들끓었다. 오월 장미의 전쟁으로 상징되는
68세대들의 싸움이 번져 나갔다. 일본의 적군파는 벤구리온 공항을 점령하고 그리스엔 50만이 넘는
사상범들이 섬으로 유배되고 서로를 살해하는 내전이 발발했다.
이런 시기에 조르바는 세계의 언어로 번역 됐고 세계를 휩쓴 시위 현장에 새로운 무기로, 피스 마크와
( Peace symbol ) 장미꽃이 등장하곤 했다. 각국은 조르바 댄스를 몰래 들여와 해방춤을 만들어 유포하곤 했는데.
이 시기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마르크스가 아니고, 막스에 니체를 섞어서, 자유와 조르바와 장미꽃으로
확산돼 갔다. 이런 게 니체가 말하는 그리스 비극의 역사에서의 반복인 셈일까.
일리아스에서 트로이 전쟁에 이긴 아가멤논이 바로 죽음을 당하 듯이 인류의 운명은 너무도 불확실하고
비극적이다. 가좌지구의 가나안 땅에서 어린아이들 수천 명이 도살을 당하는 오늘에도 주눅 들지 말고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으로 씩씩하게 살아보자는.
마지막 장면, 조르바에게 죽음이 다가왔다.
유언이 끝나자마자 조르바는 침대를 걷어붙이며 일어나 창가로 갔다.
조르바는 창틀을 거머쥔 채, 두 눈을 크게 뜨고 먼산을 바라보며 웃다가
말처럼 힝힝 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이렇게 창틀에 손톱을 박고 서 있는 동안
서서히 죽음이 그를 찾아왔다.
작자는 이 조르바의 임종을 마지막에 배치한다.
이불에 X칠 할 때까지 악착같이 살아보자는 메시지일까?
죽는 시간까지 세상을 직시하며 서서 죽어가는조르바의 임종 장면은 참 압권이다.
고상한 척 지도 모르는 거짓말 하고 다니다간 죽을 때 후회 할지 모른다.
이웃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서 무당. 법사들 허름한 책 읽으며 허비하지 말자는,
아직 죽기도 전에 미리 사람 기운 빼 놓고, 반쯤 죽이는 먹물들의 글은 참말로 위험하다.
평생 허둥지둥 궁핍하고 눈물 나게 살아왔는데, 이제와서 또 무슨 마음을 비우자는 말씀,
이제껏 짜도 안 나오는 궁핍 속에 살아왔는데 무슨 내려놓을 욕심이 있다고? 내려놓자고?
언제 이 헬 조선에서 나한테 욕심을 채울 만큼의 기회를 줬다고.
올해는 기운 빠지는 반성문. 명상문, 혼자 골뱅이 트는 깨달음의 시간 좀 줄이시고/
형편 되시는 대로, 맘이 꼴리는 대로 마지막 남은 생명의 시간을 즐겨 보시길.
|
첫댓글 키가 크고 몸이 가는 60대 노인 하나가 유리창을 코로 누른 채 찌르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그는 겨드랑이에다 다소 납작해진 보따리를 하나 끼고 있었다.
내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것은 냉소적이면서도 불길같이 섬뜩한 그의 강렬한 시선이었다. 어쨌든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그는 나를 가늠해 보는 것 같았다.자기가 찾아다니던 사람인지 아닌지 가늠해 보는 것 같았다.시선이 만나자 그 낯선 사람은 힘차게 팔을 뻗어 문을 열었다.그러고는 아주 빠른 걸음으로 탁자 사이를 지나 내 앞에 우뚝 섰다.
[여행하시오?] 그가 물었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어디로? 하느님의 섭리만 믿고 가시오?]
[크레타로 가는 길입니다. 왜 묻습니까?]
[날 데려가시겠소?]
나는 주의 깊게 그를 뜯어보았다. 움푹 들어간 뺨, 튼뜬 턱, 튀어나온 광대뼈, 잿빛 고수머리에다 눈동자가 밝고 예리했다.
[왜요? 함께 무슨 일을 할 수 있어서요?] 그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왜요!왜요!] 못마땅하다는 듯이 소리쳤다.그러고는 덧붙였다.[...<왜요>가 없으면 아무 짓도 못 하는 건가요?가령, 하고 싶어서 한다면 안 됩니까? 자, 날 데려가쇼.요리사라고나 할까요.당신이 들어 보지도 못한
수프,생각해 보지 못한 수프를 만들 줄 압니다.....]
조르바와 나가 처음 만나는 장면...
저는 삼십대에 처음 이책을 접했지만, 그 때는 이책을 읽다가 말았어요. 도덕적 관념이 맞지않아서 조르바가 순 ×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마지막으로 다시 읽은게 작년 1월 이었던 것 같아요.
오십대에 읽은 조르바는
남자는 조르바처럼 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선배님처럼 그리스라는 나라에 대한 배경지식이나 주변상황까지 꿰뚫어 비교하며 폭 넓게 이해하진 못해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감탄이 나옵니다.
금년 일월은 선배님의 독후로 대신하네요.
저는 12월 쯤 다시 읽어보기로...
조르바의 춤 넘 좋습니다.
그들이 폭망하고 추는 춤!
요즘 젊은 애들은 이 책을 극혐한다는데요.
여성들은 좀 거북한 책일까요?
김수영. 조정래도 요즘 애들이 시러라 한다고...
@아까 저는 요즘 어른인지라~~
김수영, 조정래도 좋아한답니다.
그들은 또 그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또 다른 문화가 있겠지요.
요즘 어른들이 이해하지 못 할뿐~~
삭제된 댓글 입니다.
요점 정리를 참 잘하셔요
문장별 채점에다가 앞으로 바람직한 글 쓰기 자세 그런 거 까지
선생님들은 참 꼼꼼하게 살피시니까.
즐겁게 읽어 주셔서 반갑습니다.
사는데 돈버는 일만 아니라면
어디나 낙원이 될 수 있다네요.
돈 꿔달라는 부탁 아니라면
쭈삣쭈삣 말 못할 게 없고 그러니 늘 즐겁게 직진하셔요 .
@초롱한 신입회원이시라
댓글 표현이 활달하고 막힘이 없어 참 좋네요.
고마워요.
오래 오래 싱싱한 활동 하셔야됩니다.
한 주 신나게 잘 나가 봅시다요,란 취지로 노래 선물.
https://youtu.be/ls3gevqqqD0
PLAY
일단 휘리릭~
스캔.
그 옛날 토플 시험 볼때
스킬중 하나가 리딩 컴프리헨션에서
첫 구절, 메인 아이디어, 그리고, 컨클루션.
짧은 시간에 그 모든것들을 수행 하고자 잔재주 부리며 그 긴~ 문장을 눈 크게 뜨고, 정신일도! 하여
대충 쓰윽~ 책장 넘기는 것인데,,
숨이 막히고, 오늘 오전 중요한일들
차후에 세가지 동영상과 함께 늘어지게
즐겨볼 참입니다.!
졸다 졸다
이제는 정말 한숨 자고
숨 막혔던 그 단어!
“그리스인 조르바”
제목에서
그만 불나방 처럼 날아 들었습니다.
멋진 Posting
감사드
리며..
세계사 이야기
종횡으로 막힘이 없으신 하나원님이 역시
압축 건너뛰기 댓글이 조르바와
그리스 로마까지 왔다 갔다 하시네요
댓글 감사하옵니다.
제가 응원하고 있으니
이번 한 주도 신나게 나가셔요
역사에는 왕과 전쟁에 관한 값싼 이야기들이
수도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모두 나의 한자락 추억보다 못합니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사건은 바로 나의 인생이고
나의 현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연에는 도덕이나 인습이 없습니다.
우리가 체면이나 인습, 제도, 관념, 이념에
억매이게 되면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날
기약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무식하고 무대뽀인 현자 조르바는 전통과
인습을 조롱하면서 철저하게 현제에 살면서
자신이 끊임없이 시험되고 훈련되고 인식 되면서
철저하게 소풍놀이를 즐겼던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즐겁고 재미나게
타고난 천성이나 성정을 억제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충실했던~
전통이나 인습, 관습, 유행, 여론에 맞추면서 나이들수록 점점 나약해지고
"시장 지향적"인간으로 전락해 가는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한 사람이 조르바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범생 기질이 다분한 제게 한동안 혼란을
초래했던 책이었습니다.
학창시절 조금은 일찍 접하고 세속적인
명분이 필요하면 다시 꺼내보곤 했던
제게 영향을 많이 주었던 책이기도 합니다.
죽는게 무서운게 아니라 늙어가는 것이
무섭다는 조르바 이야기에 공감하며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발악질 입니다.
죽으면 구더기 밥이고,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마지막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은 수풀 속 조그마한 점이라고 이야기하는
조르바는 카잔차키스의 인생관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치열하게 현제에 본성대로 살다가 침대 위가 아니라
창틀에 손톱을 박고 무지개강을 건너고
싶었던 작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고전 입니다.
"인생은 소유가 아니라 향유~"라는 소로우의 이야기와
어떤 면에서는 맥이 닿습니다.
아까님이 인생의 새로운 관점을 소개하셨다고 봅니다.
물론 이 책을 접했을~, 접할 사람들에게만
한정되겠지만~
잘 지내시죠.
ㅎㅎ 제 글보다 댓글이 더 풍부합니다.
공감의 깊이도 더하고요.
이 걸 읽다보니까,
조르바가 피레우스항구에서 얼렁뚱땅 같이가자고 강권을 하고는 근로 계약을 하자고해요
조건은 월급은 필요없고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알아야한다.
먼소리냐? 그러니까.
내가 산투르를 연주하고 춤추는사람이란 걸 인정하라는 건데.
음악을 모르면 인간이 아니라는 웅변으로 들리고
수긍이 되드라고요.
음악이 우리을 풍요롭고 자유롭게 하는 단서처럼
조르바가 결혼을 하기위해 모아논 돈을
다 털어가지고 산투르를 샀다는 대화를 읽고는
더 진도가 안나가드라고요
@월든 이게 그 산투르라는 현타악기인데
저는 한달을 들어봐도 무덤덤하니 그러네요.
예술의 세계에 들어 올 수 있는 사람은
키를 가지고 있어야 된다 .
그런 말이 수긍 돼서, 올 핸 피아노 학원이라도 다녀야 될지..
한주도 즐겁게 보내셔요
https://youtu.be/e4GtWMaRYx8
PLAY
@아까 제가 상상했던 산투르와 너무 달라 놀랐어요.
현악기로 아는데 계속 두드리며 연주하는 것도 물음표 였구요.
지식백과에 현타악이라 소개해서 이해가 되었답니다.
소리가 투박한 매력.
뒤로 가면서 맑은 소리도 들리는거 같고.
덕분에 산투르 ^^
@아까 무언가에 끌려서 자신의 하는 일에 본능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생명과 인생을 뒷전에 두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고호의 그림을 향한 집착은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동생 테오가 보내주는 적은 돈으로 근근히 생활하면서도
빵은 사지 못해도 물감은 꼭 사야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집착이 결국 시대의 패러다임을 이끈 의미있는 창작물들을 만들 수 있었겠지요.
창조를 숙명으로 안고 태어난 창작자들은 사회적 규범에 담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인습이나 관습에 억매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늘 자유로워야 하고, 하고 싶은 일은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특별한 사람들인
모양입니다
현실에 매몰되어 있으면서 창조적일 수는 없는 것이겠지요.
문명과 문화와 예술은 본능과는 배반적인 관계에 있다고 봅니다
영감이나 열망이 가슴으로 또는 머리에 떠올랐을때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건강이나 자신을 돌보는 일은 다음 순번이 됩니다
예술에는 자신을 파괴해서라도 얻고싶은 매력적인 뭔가가 있는 모양입니다.
카잔차키스의 천성을 조르바에 빙의 시켜 놓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월든 안전과 안정과 현상 유지가 중요한 범부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이겠지요.
창조적 삶이라는 것은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한 무모한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은퇴후 취미로만 즐기면서 좋은 소리를 내보기 위해
연구했던 스피커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최고의 스피커를 만들어 낼수만 있다면
많은 희생을 감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예술가들이나 작가들을 어느 정도는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렬하고 진정한 개성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은 종종 '극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극적인 상황들이 그 사람을 경이와 존경의 대상으로 만들어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높이 올라가버리면 아래에서 일어나는 재난을 피할 수는 있겠지만 늘 고독하겠지요.
카잔차키스의 바이오그래피는 여행을
많이 해서 기행문이 많다는
정도만 알고 있어서 그의 속사정은 잘 모르지만 진정한 자유와 인습의 굴레를
비웃었고 세속적인 욕망을 제어할 생각도 별로 없었으며,
그리고 주제의 빈곤을 예절과
형식으로 보완하려드는 범부들을 비웃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그도 늘 고독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월든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이 위대한 선조들을
가졌다는 사실도 잘 모르고 지냈는데 역사학자들이 위대한 조상님들의
업적을 알려주어 민족적 자긍심을 갖게
된 모양입니다.
제가 광개토대왕 비와 장수왕 무덤을 보게 되었을 때
우리 조상님들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슴이
터져나갈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되찾아 와야할 땅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국력과 외교가 중요한 시대에 한심한 작태를 봐야하는지~
삼천포로 왔습니다.
이해하여 주시길~
@눈솔 같은 동방정교 문화권이라도 러시아와
그리스에서 전통 악기가 조금씩 다른 거 같아요.
닥터지바고의 발랄 라이카하고 그리스의 부주키하고
현악기지만 다르드라고요.
산투르는 디오니소스 축제 때
술과 마약으로 광란의 파티를 하는 중에
시인이 나타나 시를 읊어야 되니깐, 부주키 하나론 수습이 안되는
상황이니까 ...
전 이 책을 그냥 재미있게 읽었네요..^^
메인글도 댓글들도 흥미있롭게 잘 읽었습니다.@@@
ㅎㅎ
6개월 있다가 읽어보시는분도 있네요
지각 댓글 반갑습니다
@아까 ㅋㅋ 전 지난 30년동안 책을 읽은 기억이 없어서요. 어렵지 않아서 유일하게 읽은 책이라..;;;
@보보 참 현명하셨습니다
증말 심심하면 한번 보는게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