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7 하나님이 정하신 원칙(2)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아버지시라 [롬 8:31-39]23.11.19 주일1부-3부설교
극히 예외적인 사건을 제외하고 우리 모두는 우리 부모님을 확실히 신뢰합니다.
정상적인 부모는 어떠한 경우에도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좋게 해주시려고 애쓰시는 좋으신 분들입니다.
저는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성장배경의 때는 삶의 환경이 극히 열악했습니다. 헐벗음과 굶주림 위에 내일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심신이 대단히 고달팠습니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하나님에 대한 깨달음이 대단히 미천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꾸짖으시고 심판하시는 두려우신 하나님이란 생각이 마음에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서서히 저의 가슴속에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참으로 좋게 해 주시는 아버지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와 같은 말씀이 저의 맘속에 힘있게 부딪혀 왔을 때 저의 가슴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가 형성되었습니다.
그것은 “아! 나의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아버지이시구나”하는 이 사실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으신 아버지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믿게 되자 마음속에 기쁨과 확신과 담력과 소망이 넘쳐났습니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어떠한 환경에서도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믿음이 만사를 긍정적으로 보게 되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을 허락하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원칙 두 번째 시간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가 섬기는 그분이 좋으신 아버지가 되심을 알아보겠습니다.
첫째로, 왜 하나님은 좋으신 아버지가 되십니까?
1)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영원히 대신 갚아 주시고 영원한 의로움을 주신 아버지가 되십니다.
좋으신 아버지가 아니시고는 이렇게 해 주실 리가 만무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죄’란 불법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합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을 어긴 죄인은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고 살아날 도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의 값이 사망이니까 죽는 길 이외에는 죄를 청산할 길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이후로는 지옥의 형벌만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 18장 4절에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고 말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5절에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죄를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시고 청산해 주셨으니 그 은혜가 백골난망이 아닙니까?
나를 대신해서 죽어 주셨다는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 가슴이 저미도록 감사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누가 나를 대신해서 죽어 주시겠습니까? 그것도 금생의 죽음뿐 아니라 영원한 죽음을 예수님이 대신해 주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9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우리를 죽이려고 하지 않고 우리를 살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살리려고 하기 때문에 독생자를 보내서 우리 대신 죽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동으로 말미암지 않고 어떤 공로를 세움으로 말미암지 않고 우리 고행을 통해서 말미암지 않고 오직 예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남녀 노유, 빈부귀천 할 것 없이 교육을 받은 사람이나 교육이 없는 사람이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동양인이나 서양인 할 것 없이 조건은 단지 하나밖에 없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예화]
여러분 마틴루터는 청년 때 친구와 함께 여행을 갔습니다. 그는 변호사, 법률학자가 되기 위해서 법률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소나기가 오고 천둥 번개가 치더니만 벼락이 때려서 앞서가던 친구가 즉사해 버렸습니다. 그럴 때 마틴루터는 그 자리에 꿇어 엎드려서 "오 하나님! 만일 저를 살려 주시면 저는 저의 평생을 바쳐서 사제가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난 다음에 그는 살아나고 그 이후에 자기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신학을 공부하고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속에 끝없는 죄책감으로 번뇌를 했습니다. 아무리 고행을 해도 마음속에 있는 죄책감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종교적인 의식을 행해도 죄인이란 인식에서 해방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성경을 읽다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고행으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을 얻는다는 이 진리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때 교황 레오 10세가 베드로 성당 증축자금을 위해 산 사람과 죽은 사람에게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그 면죄부를 돈 주고 사면 그만큼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도 면죄부만 사면 연옥에서 천당으로 올라온다고 그런 너무나 터무니없는 논리를 전개하고 면죄를 팔았습니다. 그는 거기에 대해서 의문하여 1517년 95개 조항을 발표하고 종교개혁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오직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총으로.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이 신앙생활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신약을 독일어로 번역해서 종교개혁을 한 것입니다. 마틴 루터가 깨달은 것은 오직 믿음으로 의로움과 영광을 얻고 천국 백성이 되고 영원천국의 소망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만일 우리보고 대가를 지불해서 용서를 받고 의로움을 얻고 천국을 값 주고 사라면 천국에 갈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구원의 문은 믿음을 통해서 활짝 열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않습니다. 수고하고 고생하고 고행한 대가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천국 길을 환하게 열어놓고 오직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값없이 구원을 거져 주시는 하나님이 좋은 하나님이 아니시고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아니했더라면 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려 몸을 찢고 피 흘리게 했습니까?
어떠한 의심을 사탄이 갖다 준다하더라도 우리는 십자가만 바라보면 우리 마음이 모든 의심에서 눈 녹듯이 녹아지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왜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지은 그 분이 모든 능력과 권세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그를 포기하고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나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대신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 모든 의심은 사라지고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확정되어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좋은 아버지인 것을 우리가 부정할 수 없습니다.
2)또한 하나님께서는 마귀를 멸하여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마귀는 언제나 우리 곁에 와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며 참소하고 우리에게 어둠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아담의 원죄와 우리들의 자범 죄로 인하여 마귀에게 팔려 종이 되어 하나님과 멀어지고 온갖 육신의 정욕의 포로가 되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며 우리 조상들이 살아왔고 우리도 그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16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보혈로 원죄를 청산해 버리시고 여러분이 스스로 지은 자 범죄를 다 갚아 버리셔서 마귀의 쇠사슬을 끊어 버리고 마귀의 정부와 군대를 무장 해제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마귀는 더 이상 우리를 종으로 잡을 수 있는 조건이 없습니다.
원죄와 자범 죄 때문에 그 죄악의 쇠사슬로 우리를 묶었는데 그 죄가 예수님의 보혈로 청산되어 버리고 다 용서되어 버렸으니 죄악의 쇠사슬이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만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묶을 수 있는 쇠사슬이 없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십자가에서 마귀의 불법을 책망하시고 그의 정사와 권세를 다 빼앗아 버렸습니다.
골로새서 2장 13절로 15절에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2)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는 승리를 만끽할 수 있게 주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본문31절-32절 말씀대로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이러한 처지에 있는데 어디 감히 마귀가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킬 수 있으며 우리를 또 참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제는 마귀를 이기고 내어 쫓을 수 있는 권세를 주님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 17절로 19절에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귀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능력보다 더 위대한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부모님은 연로하시면 몸이 약해서 능력은 우리보다 없습니다. 힘은 우리보다 없지만은 권세는 우리보다 계시므로 부모님이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옵니다. 힘이 없어서 우리가 부모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님은 부모로써의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아무리 육신이 연약해도 힘이 강한 모든 사람들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그에게 권세가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는 미약하고, 허약하고, 보잘것없다고 생각하지만 여러분은 마귀에 대해서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보혈의 능력과 말씀으로 무장해서 마귀가 한길로 오면 일곱 길로 내어 쫓을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힘을 가지고 협박을 해도 여러분은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동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가 있지 않습니까?
어린아이가 코끼리를 타고서 코끼리를 이리가라 저리가라 이끄는 것 보았지요?
힘으로 말하면 어린아이보다 엄청나게 큰 힘을 코끼리가 가지고 있으면 어린아이는 짐승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힘은 권세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이름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그 말씀 안에서 마귀를 내어쫓을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권세자인 것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동안에서 우리는 종살이하고 마귀가 우리에게 주인 노릇해서 우리를 짓밟고 우리를 고통 주었는데 이제는 우리를 짓밟고 고통을 주는 옛 우리의 주인인 그 마귀를 우리는 쫓아내고 그를 멸할 수 있는 권세를 갖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하지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런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겠습니까?
3)하나님께서는 또한 율법과 의식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여러분 인간이 살아 있을 동안에는 하나님과 인간관계의 법이 있고 인간과 인간관계의 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이 법의 거미줄 속에 얽혀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모든 법을 다 지키고 정의롭게 될 힘은 없습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법을 어기고 살기 때문에 법을 어기면 죄를 짖지 않아요. 이 율법을 어기고 죄를 짓고 살 수 있나요?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행위로 말하면 하나님과 인간관계의 법도 늘 어기고 인간과 인간관계의 법을 늘 어기고 있으니 늘 불법의 생활을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러므로 율법을 그 몸으로 완성하시고 철폐하시고 만 것입니다. 우리를 얽어매는 율법을 주님은 철폐해 버렸습니다. 십자가에서 그 율법을 다 완성하시고 주님께서 율법의 효력을 정지시켜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에게 새로운 법을 주셨는데 ‘믿음의 법’과 ‘성령의 법’으로 살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을 믿음으로 용서와 의로움을 얻고 성령을 주셔서 성령이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을 의지해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는 살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받고 성령으로 새롭게 변화 받아야 천국에 가게 만들어 주셨으니 이 어찌 하나님은 좋은 아버지가 아니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이 모든 일들을 생각할 때 하나님은 너무나 좋으신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둘째로, 환난과 고통 중에서도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사람들은 환난과 고통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은 과연 좋은 아버지이실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환난과 고통은 우리의 잘못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마귀의 공격으로도 다가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혹은 국제적인 국가적인 재난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환난과 고통을 우리 스스로가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환난과 고통을 당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도움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환난과 고통중에도 모 두다 나를 버리고 떠나도 주님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좋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비록 내가 잘못했고 못된 짓을 해서 환난과 고통에 빠졌으므로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다고 할지라도
내가 회개하고 주님께 나오면 그 환난과 고통의 골짜기 속에 주님은 찾아와서 함께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환란 당할 때 참된 친구이신 주님은 시편 23편 4절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누가 같이 가요? 부모, 형제, 처자라도 같이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곳에 나와 같이 계셔 주시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안위해 주시니 주님은 참 좋으신 하나님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1절로 15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여러분과 나는 예수님이 기르는 양입니다.
예수님이 "나는 삯군이 아니야 돈 받고 와서 일시로 돌봐주는 사람이 아니야. 나는 너의 주인이요, 너를 기르는 책임자이므로 나는 너희를 위해서 내 목숨을 버린다." 여러분 이러므로 고난을 당할 때에 친구가 참된 친구인데 극한 고난에도 주님은 목숨을 버리더라도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않고 함께 계시니 이 얼마나 좋은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고난과 고통을 주님께서 영광의 기회로 삼아 주시니 또한 감사하지요. 우리가 고난과 고통 당하는 것이 무익하고 손해가 나는 줄 생각하는데 실상은 고난과 고통의 터널을 통할 때 주님은 그를 통하여 우리 옛사람을 다 벗어버리고 새사람이 되게 하고 영광의 옷을 입게 하는 기회로 삼아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로 17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통은 그와 함께 영광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고통의 캄캄한 터널을 통과 할 때 우리 추하고 더러운 옛사람은 벗어 버리고 그 터널을 나올 때는 지극히 크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서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 없이 영광도 없습니다. 고통 없이 축복도 없습니다.
이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가 고난 당할 때 같이 하여서 고난이 오히려 영광으로 변화되게 만들어 주시니 얼마나 좋은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고난당할 때 좌절과 절망하지 말 것은 내가 참으면 이 고난의 옷을 벗어 버리고 내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영광의 사람으로 변화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용기와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영광과 축복을 향한 터널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고난의 터널을 지나기도 전에 좌절하고 절망해 버리는데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환난과 고통 중에 은혜를 실감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고난을 당할 때 절실하게 주님이 살아 계신 것을 체험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로 10절에 바울선생이 말씀하기를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내가 스스로 강할 때는 나를 의지하기 때문에 주님의 능력이 나와 함께 할 수 없지만 내가 약하게 되면 주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도 보면 건강하고 씩씩하고 잘난 자식은 부모를 의지하지 않지만 병든 자식은 끝까지 아버지, 어머니 부여잡고서 눈물로 매달립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연히 온 힘을 다해서 약하고 병든 자식을 위해서 전심전력 기울여 도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약한 자를 붙들어 주시고 능력을 주시기 때문에 내가 약할 때 주님을 의지해서 강하게 되는 체험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화]
문권숙 권사님은 전도하다가 당한 사고를 고침 받고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서울 신림동을 밭으로 삼고 19년 동안 전도하러 다녔습니다. 그리고 또 우리 한국 전국에 복음을 증거하기로 작정하고 선교회를 만들어서 외딴섬에 있는 교회를 위해 봉사팀들과 전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배를 타려다가 그만 바위에 미끄러져서 넘어지면서 머리를 바위에 콰~악하고 부딪혔습니다. 굉장히 큰 부상이었습니다. 순간 온몸이 마비가 되고 머리가 깨어지는 듯이 아팠습니다. 목포에서 제일 큰 병원으로 옮겨 X-ray를 촬영한 결과 머리를 부딪히면 목뼈중 4번과 6번이 튕겨져 나와 신경을 누르므로 전신마비가 올 것이라 했습니다.
영어로는 '패러플리지아(Paraplegia)'라고 해서 목만 살아있고 온 전신이 다 마비되는 이러한 병입니다.
의학적으로는 고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빨리 서울 큰 병원으로 들것에 들려 옮겨오면서 그는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주님 사업을 하다가 왔는데 왜 주님이 나를 지켜 주지 아니하시고 바위에 미끄러져 넘어지고 전신마비가 되게 했는가!" 원망스러운 마음이 생기고 두 번째는 "내가 주님 사업하다가 이렇게 했으니 주님께서 날 버리지 않고 꼭 고쳐 주실 것이다." 한편으로는 원망했지만 다른면으로는 주를 향한 긍정적인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살려 주십시오. 주님만 바라보고 살겠습니다."하고 서울까지 오는데 너무 아파서 정신이 몽롱해졌습니다. 온 팔다리가 마비가 되고 저렸습니다. 서울의 유명한 병원마다 찾아 다녀도 결과는 동일했습니다. 아무 치료 방법이 없다는 절망적인 의사의 말을 듣고 결국에는 전신마비 환자로써 여생을 보내겠다는 진단만 받은 것입니다. 치료 방법이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는 아에 응급실에서 퇴원하여 집으로 와서 이제 하나님만 유일한 치료와 희망이라고 믿고 벽에 머리를 대고 "저의 교만과 잘못을 용서해 주세요." 간절히 통회, 자복하고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마음속에 치료해 준다는 확신이 생겨났습니다.
그 확신을 가지고 눈물을 흘리며 주님께 애쓰고 힘써서 기도를 했는데 좋으신 하나님 반드시 치료해 주시옵소서하고 3시간쯤 기도하는데 갑자기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자 머리가 상쾌해 지고 말은 것입니다. 그렇게 아프고 고통스럽던 머리가 시원해지고 말은 것입니다. 그 뒤에 조금씩 두통이 있어도 "예수 이름으로 물러가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다. 저가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치 않는다. 나는 말씀에 서고 너희 거짓된 증상을 믿지 않는다." 그는 투쟁을 했습니다. 그러자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얼마있지 아니하여 그는 치료가 온몸에 오는 것을 느끼고 3개월 만에 이 척추도 다 고침받고 온몸이 깨끗이 나아 버리고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그는 고난 당한 것이 더 유익이라 고난 당하기 전에는 막연한 하나님을 믿었지만 고난 당하고 난 다음에는 살아 계셔서 지금도 기도를 응답하시고 우리와 함께 계셔서 고난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고 믿음이 옛날보다 훨씬 강해졌다고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고난 당할 때 우리가 기도하므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해주시기 때문에 좋으신 하나님 이신 것입니다.
셋째로, 그러면 우리가 좋으신 하나님을 모시고 있다면, 우리의 믿음의 자세는 어찌해야 할까요?
1)우리는 좋으신 아버지라는 것을 알았다면 ‘항상 소망을 버려서는 안되다’는 것입니다.
[예화]
여러분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물로 심판할 때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3층으로 방주를 만들고 난 다음 방주의 천장 꼭대기에서 45.6cm 창문을 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옆으로는 창문이 없어요. 40일 동안 물이 창일하여 넘쳐 날 때 노아는 물 한방울도 못 보았습니다. 왜, 꼭대기에서 45.6cm인 거기에 창문이 있었기 때문에 창문을 열면 하늘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홍수가 창열할 동안에도 노아는 홍수를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늘만 쳐다보게 한 것입니다.
홍수와 같은 고난을 당할 때 우리가 환경을 바라보면 두려워하고 놀라고 낙심하게 되지만 하늘만 쳐다보면 낙심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시험 당할 쯤에 또한 피할 길을 내서 너희로 능히 감당케 하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2)또한 좋으신 아버지가 계심을 믿고 우리는 ‘모여서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을 쉬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3절로 25절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서로 자꾸 모여서 말씀을 공부하고 읽고, 기도하며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믿음을 북돋워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공부와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새벽기도회는 얼마나 필요한지 모릅니다.
요한복음15장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셨으니 우리가 말씀을 공부하면서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깨달아지면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나님의 응답해 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생애 속에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찾아온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좋은 아버지인 것입니다. 마귀는 나쁜 마귀입니다. 나쁜 마귀는 좋은 것을 해 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십니다. 좋은 하나님이 나쁜 것을 줄 수가 없습니다.
좋은 부모가 자신을 희생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줍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9-11)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정하신 원칙 두 번째는 바로 “하나님은 좋으신 아버지”이시다 입니다.
가장 좋은 길로 가장 안전한 길로 인도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같이 찬양 –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결코 후회가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