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에서 밀양까지, 독립투사의 자취를 찾아서
박차정·김원봉 의사의 독립투쟁의 삶
김종태 씨는 장산 모정원과 강근호기념사업회 활동에 관심이 많은 대구 시민이다. 또한 그는 사단법인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와 그 유가족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그래서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신 분들을 기리다 보니 애국지사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김종태 씨는 1년에 두 번 정도 밀양의 박차정 의사 묘소를 찾는다고 한다. 갈 때마다 묘소 관리가 잘 안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박차정(朴次貞) 의사는 부산 동래 출신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박 의사는 15살부터 독립을 위해 나섰고 만주로 망명하여 김원봉 선생과 만나 결혼했다. 1939년 2월 중국 강서성 곤륜산 전투에 참가하여 부상을 당했으며, 부상의 후유증으로 1944년 5월 27일 3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광복 후 남편인 김원봉 선생이 귀국하면서 박차정 의사의 유골을 가져와 경상남도 밀양시에 있는 자신의 본가 뒷산에 안장하였다. 1995년 8월 15일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박차정 의사의 생가는 동래구 칠산동에 있다. 지난 5월 26일, 김종태 씨에게 박차정 의사 생가 방문을 제안했다. 생가는 오래된 외할머니집 같이 소박하였지만 정갈하였다. 실내에 들어가니 여러 안내문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우리는 내친김에 밀양에 있는 박차정 의사의 묘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밀양에 도착해 논밭을 지나니 박차정 의사 묘소 가는 길이라는 조그만 입간판이 있었다. 간판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가다 산길을 조금 오르니 큰 태극기가 세워져 있는 묘소가 보였다. 이를 본 김종태 씨는 이전에는 태극기가 없어 자신이 소형 태극기를 묘소 앞에 꽂아드렸다면서 감격해 했다. 묘소 주변에는 잔디를 입혀놨는데 모두 죽어 있었다. 학생들이 나무판자에 서투른 솜씨로 박차정 의사를 추모하는 글을 적어놓아 고맙고 기특했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평생을 조국 독립에 헌신한 박 의사에 대한 예우치고는 너무나도 초라해 보였다.
박 의사의 묘에 참배하고 우리는 작년에 개관한 의열기념관으로 갔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맞서 총과 폭탄으로 항거한 분들 중 밀양 출신들이 많았는데, 그중 의열단 단장이었던 김원봉 선생의 생가에 기념관을 만든 것이다. 기념관 앞에는 항일운동 테마거리를 조성하여 태극기와 여러 전시물들이 벽에 가득했다.
기념관을 들어서자 김원봉 선생이 단원들에게 훈시하는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2층에서 해설사가 의열단원들의 사진 중에서 유독 얼굴 사진이 없는 서상락(본명 서영윤) 애국지사를 설명하며, 그분은 폭탄을 주로 제조한 분이라 자신의 얼굴이 알려지면 가족과 동지들이 위험해질까 봐 집안의 사진을 다 태워 없앴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서상락 님은 작년 말과 올해 초에 ‘꽃의 내부’ 작품을 달맞이에 설치하기 위해 헌신한 이종주 씨의 외할아버님이셨다.
반나절 동안 동래와 밀양을 거쳐 부산에 돌아오니 밀양에 있는 박차정 의사의 초라한 무덤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린다. 넓고 큰 묘역은 아니라도 우리 후손들이 박 의사를 기억해 줄 수 있도록 할 수는 없을까? 이번 주말에는 모정원을 한 번 찾아가 봐야겠다.
동래구에 있는 박차정 의사 생가에서 김종태 씨(왼쪽)와 함께
밀양에 있는 박차정 의사의 묘소 (경남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 산 44-7)
지난해 개관한 밀양 의열기념관에서
지난해 개관한 밀양 의열기념관에서
/ 신병륜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