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다음 생을 받기 직전의 대광명의 상태, 그때를 잘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치 아버지와 우리가 평상시에 수행을 해서 익혀놓은 그 자성의 상태와 온 우주의 본래의 자성의 상태가 엄마와 아들이 만나서 서로 인식하듯이 그렇게 만나보는 그 순간, 그것을 법성 정광명 중음이라고 표현합니다.
그 다음 아까 말씀하신 외호흡이 끊어진 후 내호흡이 끊어지는 그 순간이 우리 의식이 다른 몸을 받아가게 되는 상태입니다.
네 번째 단계를 정광명이라고 표현합니다. 네 번째 정광명에 가기 전에 우리의 탐진치의 의식들이 사라지면서 ‘비어있음, 더 맑게 비어있음, 매우 비어있음, 본연의 비어있음’의 네 가지 공이 일어납니다.
첫 번째 비어있음이라고 하는 것은 정광명과 비슷하지만 정광명은 아닙니다. 네 번째 단계가 오롯이 정광명인데, 켄보님께서 중맥과 좌우맥을 얘기해 주셨습니다.
우리 몸에는 중맥이 이렇게 있고 좌맥 우맥이 이렇게 있는데 아버지의 정이 여기에 있고 어머니의 혈이 단전에 있습니다.
살아있을 때는 각자의 자리에 잘 있는데 죽을 때가 되면 각 경락을 잡고 있는 힘들이 사라지기 때문에 여기에 있던 아버지의 정이 밑으로 툭 떨어지고 밑에 있는 어머니의 혈을 잡고 있는 힘이 사라지기 때문에 위로 올라갑니다.
그 두 개가 내려오고 올라가서 만나지는 지점이 네 번째 정광명인데 정광명은 (손뼉을 치며) 딱 한 순간 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평상시에 우리의 본 모습, 정광명을 익혀놓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손뼉을 치며) 이 순간을 모르고 넘어갑니다. 그 순간을 알지 못하면 그 순간에 딱 들어가는 본연의 대어머니 광명을 노력해서 익힌 아들 광명이 만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수행이 많이 익어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해야 될 것은 우리의 본연의 본광명과 정광명, 우리의 본모습, 자성에 익어져 있어야 합니다. 어머니와 아들이 익어져 있듯이, 굉장히 친한 두 사람이 익어져 있듯이, 그렇게 익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현상이 일어날 때 무서운 현상만 일어납니다. 그렇게 아버지의 정과 어머니의 혈, 붉은색과 흰색이 이렇게 서로 쓱 내려와서 마주치는 순간에 자성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면 그 다음 순간 서로가 다시 또 지나갑니다.
지나가서 넘어가서 코로 빨간 물이 한 방울 나오고 밑으로 흰 물이 한 방울 나오면 완전히 죽은 것입니다.
내호흡이 끊어지면 우리의 의식은 우리 몸을 떠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우리의 근본인 공과 동시에 존재하는 소소영영함, 그것을 엄마가 아들을 생각하는 친숙함으로 익혀놓아야 합니다. 익혀놓지 않고는 그 짧은 순간을 캐치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이생에서 겪고 있는 수많은 고통과 무지를 벗어날 방법이 없습니다. 익히고 또 익혀야만 합니다.
그것이 그 한 순간에 우리의 본성을 확실히 알아서 다시는 윤회의 고통 속에 들어가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기어 다니는 벌레도 그 네 번째 광명이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마음 가진 모든 생명체에게 일어나는데 벌레는 수행을 안 했으니 당연히 모르고 일반적인 사람들도 모릅니다.
오롯이 그것만을 열심히 익혀놓은 사람, 수행자들은 그 순간에 자성을 확실히 알아서 대자유와 힘을 얻습니다. 그러니까 이생에 투자할 수 있는 유일한 가치는 우리의 근본 모습을 계속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지막 네 번째 순간을 인식하지 못하고 혈과 정이 다 나가버리고 나면 우리의 의식은 나가서 다른 몸을 받게 되는데, 다른 몸을 받을 때 업력으로 인해서 여러 가지 현상들이 일어납니다.
무서운 소리, 소음, 다양한 빛, 어두운 빛, 귀신 같은 느낌의 존재, 너무나 아름다운 것 등 여러 가지를 봅니다.
그런 외적인 현상들이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안다면 해탈할 수 있는데,
외적인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두려워하게 되면 그때부터 다시 고통과 윤회로 넘어가게 됩니다.
다시 다른 중음으로 넘어갈 때 의식은 우리가 가진 많은 구멍들을 통해서 나가게 됩니다.
우리의 의식이 나갈 때는 아홉 개의 문이 있습니다. 눈, 코, 입, 귀, 가슴, 정수리, 배꼽, 밑의 구멍 이렇게 아홉 구멍이 있는데 가슴으로 의식이 나가게 되면 욕계에 태어나게 되고, 배꼽으로 의식이 나가게 되면 색계에 태어나게 되고, 정수리로 의식이 나가게 되면 무색계에 태어나게 되고, 눈으로 의식이 나가면 인간계를 받고, 코로 의식이 나가면 인비인의 몸을 받게 되고, 귀로 의식이 나가게 되면 귀계에 태어나게 되고, 밑에 있는 구멍들로 의식이 나가게 되면 한 구멍은 지옥이나 축생, 다른 한 구멍은 아귀로 나가게 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른 구멍으로 나가면 안됩니다. 늘 수행하는 것이 ‘칸도 호법 신장님이시여, 스승님이시여, 제가 죽어서 의식이 나갈 때 다른 문은 다 막고 정수리 문으로만 나가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근본 스승께 계속 청원을 올려야 합니다. ‘다른 문은 다 막고 정수리 문으로만 나가게 해 주세요’ 라고 말입니다.
정수리 문은 머리카락과 이마 사이에 손을 대고 손바닥이 닿는 끝에 네 번째가 정수리라고 합니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만져보면 말랑말랑한 부분이 있는데 그곳이 정수리 문입니다. 그 정수리로 의식이 나가면 됩니다.
(지덕스님 : 정수리로 의식이 나가면 무색계로 가나요? 라고 물었더니 수행을 안 하면 무색계로 가게 되지만, 수행을 잘 한 사람은 그 문으로 나가면서 해탈의 길로 가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의식이 나가게 되면 중음의 몸을 그 때부터 얻게 되는 것인데 그럼 중음에서 얼마나 있게 될까요? 보통은 중음에서 있는 시간이 얼마라고 알고 있나요?
대중 : 일주일에서 49일이요.
천편일률적으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수행을 잘 하고 선업을 많이 쌓은, 오온이 정화가 잘 되신 분들은 오늘 죽고 나면 내일 다른 몸을 받아 갑니다. 그리고 아무리 오래 있어도 49일 이상은 있지 않는다고 기본적으로 얘기하는데 그것도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49일이라는 것이 확실하지 않다고 하는 것에 대해 부처님 경전에 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주겠습니다.
인도에 굉장히 힘이 좋고 뛰어난 왕이 있었고, 그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너무나 멋있고 국민들과 잘 화합하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원인에 의해서인지 그 아들이 죽었습니다. 너무나 잘 생기고 국민들하고 잘 어울리는 왕자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부모님, 부인 할 것 없이 온 국민들이 너무나 고통스럽게 울고 씻지도 못하면서 큰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그 나라에 수행을 잘한 신선 같은 분이 있었는데 ‘이 많은 국민들이 고통스러워하면서 애타게 그리워하는 왕자는 어디에 갔을까’ 하고 천상에 가서 찾아보아도 없고 지옥에 가서 찾아보아도 없고 어디를 찾아보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찾아보니 중음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3년을 중음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신선 같은 수행자가 중음에 가서 왕자님을 만나서 왜 아직도 안 가시고 이러고 계시는지 물었습니다.
왕자는 ‘어머니와 아버지 왕 온 국민이 저렇게 울어대는 소리 때문에 내 눈에서 흐르는 피눈물이 이 강을 만들고, 내 머리카락이 어두운 세계를 만들고 있으니 제발 가셔서 더 이상 필요 없는 고통을 만들지 말고 필요한 일을 해달라’ 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당신들이 나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아파하는 것은 나를 더 큰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으니 그러지 말고 나를 위해 불보살님께 공양을 올리고,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고, 경전을 읽고 그렇게 해달라’ 고 말했습니다. 그래야 왕자가 갈 수 있다고 하니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왕자는 삼십 삼 천에 태어나셨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아시는 분이나 가족이 돌아가셨다 해도 우는 것은 정말 도움이 안됩니다. 가슴 아프기는 하지만 울지 말고 그 대신 불보살님께 공양 올리고 경전을 독송하고 불쌍한 거지들 도와주고 아픈 사람들 도와주고 그렇게 하게 되면 정말로 돌아가신 분께 도움이 됩니다. 우는 것은 정말 도움이 안됩니다.
제가 아는 어떤 라마가 사는 마을에 어떤 여자 분이 돌아가셨는데 귀신이 되어서 그 스님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보니 얼굴도 피골이 상접했고 옷도 너무 남루하고 신발도 없고 손톱은 다 길어있는데 와서 하는 말이 자신의 가족한테 말해서 옷과 신발을 좀 달라고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가족에게 말을 전해 주었습니다. 티벳의 관습에서는 그 사람들에게 선근과 복을 지어주는 것이 돌에 ‘옴마니반메훔’을 새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옴마니반메훔'을 새겨준 그 사람에게 대가로 옷과 신발을 해 주었습니다.
중음에서는 깃털이 바람 따라 휙휙 날아다니듯이 우리 의식이 이 연, 저 연에 의해서 휙휙 움직이고 다닙니다. 스스로 머물고 싶어도 머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후에 이 여자 귀신이 그렇게 휙휙 날아다니다가 찰나에 그 스님한테 잘 받았다며 감사하다고 하며 간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음에서 내가 어떠한 인연들을 만날 수 있는지를 어디서 결정하는 것은 죽는 순간에 어떤 동기를 가지고 있는가, 내 마음이 어떤 상태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죽는 순간에 선업을 생각하고, 수행을 생각하고, 좋은 동기와 좋은 목적을 일으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이야기를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죽을 때 내 마음이 선업이나 수행으로 되어 있어야하며 탐진치라고 하는 에너지, 그러한 생각에 잡혀있으면 안되는 이유를 알려주는 이야기를 하나 해 주려고 합니다.
우리가 죽는 그 순간에 탐진치라는 에너지, 그러한 마음들과 같이 되어 있으면 죽자마자 지옥으로 가기 쉽습니다.
옛날에 인도에 비구 스님이 계셨는데 인도 비구 스님들은 발우를 들고 걸식을 다닙니다. 그 분한테 있는 발우는 새의 눈처럼 아름답고, 발우의 모든 특성을 다 갖추고 있는 참으로 아름다운 발우였습니다.
그 스님이 죽고 나서도 당신의 발우가 너무나 예쁘고 자랑스러워서 발우에 집착이 가 있었습니다. 그 비구 스님이 죽어서 몸을 태우려고 하는데 불이 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이 사람이 자기 발우에 관심이 가 있다고 생각해서 발우를 태우든지 없애든지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 발우를 가지러 갔습니다.
보통 인도에서는 나무 위에서 풀집을 짓고 살기도 하는데 그 집에 갔더니 죽은 사람의 의식이 뱀이 되어서 발우 속에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친구 스님이 와서 그 발우를 뒤집어도 뱀이 떨어지지 않고 젓가락으로 끄집어내도 뱀이 나오지 않고 뱀은 ‘이 사람이 내 발우를 가져가겠구나’ 하는 진심과 욕망 때문에 화가 나서 독과 불을 쏟아내었습니다.
그 순간에 불로 인해서 그 스님이 살았던 초가집이 타들어 가고 그 스님의 시신이 타들어 가고 동시에 그 스님이 지옥에 떨어져서 그 법이 불에 탔습니다. 이것을 티벳에서 ‘세 가지 불 이야기’ 라고 합니다. 세 가지의 불이 동시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죽을 때 욕망이나 진심, 이것이 얼마나 큰 고통을 만들어내는지를 알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부처님의 경전에 있는 것이고 우리가 만든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게 많은데 시간이 없습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는 이유는 학장으로서 어린 스님들을 많이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지덕스님 : 어린 스님들한테 이야기를 해 주면 신기해서 잘 듣고 이해를 잘 한다고 해요. 연세 많으신 분들은 별로 재미없을 것 같다고 하시네요)
대중 : 아니예요, 재밌어요.
제가 아르헨티나나 외국에 나가서 법문을 많이 해보지만 법문할 때 처음 5분, 10분은 잘 듣는데 시간이 갈수록 산만해집니다. 법을 들을 때는 졸고, 영화 같은 것을 볼 때는 눈이 반짝 반짝하고 빨려 들어가서 봅니다.
법문들을 때나 수행할 때나 기도할 때는 몸을 똑바로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좌, 우맥과 중맥이 바로 섭니다. 맥이 똑바로 서야 마음이 똑바로 서고 정신이 똑바로 듭니다. 우리가 콜라를 먹을 때 빨대가 굽어 있으면 콜라가 안 들어오고 펴져 있어야 콜라가 빨려 들어오는 것처럼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 있어야지 허리를 안세우고 굽히기 시작하면 자꾸 졸게 됩니다.
중맥이 중심에 있고 좌우맥이 이렇게 옆으로 있습니다. 좌우맥은 우리가 대상을 보고 ‘집’ 하고 그것을 ‘착’ 하는 의식, 집착이라는 의식입니다.
그렇게 몸을 구부리고 있으면 중맥으로 기가 들어가지 못하면서 집착의 의식이 강해지고 똑바로 펴고 있으면 에너지가 잘 흘러서 중맥으로 지혜, 공성의 에너지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호홉하는 모습을 보여주심)
그래서 제가 애기 스님들을 가르칠 때 일단 바로 앉으라고 얘기하지, 본존이 이렇고 좌우맥 관상을 어떻게 해야하고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일단 결가부좌해서 바로 앉으라고 합니다.
보통 사람이 죽을 때 똑바로 앉은 상태로 죽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수행을 많이 하신 분들은 그렇게 앉아서 죽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수행을 완성하십니다. 돌아가시고 나서도 수행을 더 완성하십니다. 다른 분들은 죽을 때 앉지 못하는데 늘 수행을 잘 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수행을 해야합니다.
인도에 ‘독덴’ 이라는 무문관 수행자들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이 따시종에 가 보면 많이 계신데 나이가 많으신 독덴들은 많이 돌아가셨지만 그 중에 ‘암잠’ 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무문관 수행자들 중에서도 설산의 사자 같은 분이셨습니다. 그분이 돌아가실 때 똑바로 앉아서 돌아가셨는데 제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그분이 돌아가시면서 정말 다양한 빛깔과 다양한 모양의 사리가 나오자 그분이 보살지의 8지 이상을 성취하신 분이라고 다들 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분들은 정말 평생 수행을 하셨습니다. 평생 대수인 마하무드라, 우리들의 근본 마음자리 그것을 드러내 밝히시고 거듭거듭 익히시고 또 익히셔서 어떤 상황에서도 그 상태에 가 있을 수 있도록 수행을 하셨는데, 우리는 한 두 시간 와서 말씀 조금 듣다가 집에 가서는 하루 종일 세상일하고 만 어울리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죽을 때 그것을 인식하겠습니까?
중음에 가면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두려움과 무서움 여러 가지 알 수 없는 것들, 거기서 보면 우리 자신 안에 있는 우리 자신의 문무백조가 드러나는데
그것을 자신의 모습으로 인식하지 않고 외적인 귀신이나 악마, 자신을 해치는 것으로 인식해서 그 두려움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나 환영들에 휩쓸리는 것이 매우 많습니다.
중음에 대해 자세히 얘기하려면 경전도 읽고 경전을 가지고 그 단계들을 설명하겠지만, 오늘은 밤도 늦었고 시간도 없어서 그만 해야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서울 캄따시링이라고 하는 곳에 켄보 최잉훈둡, 켄보 악왕상뽀가 계십니다. 그분들은 어릴 때부터 공부를 해서 많이 알고 계십니다. 저는 나이가 들고 별로 아는 게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분들한테 와서 많이 배우고 또 그런 분들을 여기 대원사에서 모시고 와서 자주 듣도록 하시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질문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대중 : 태국에 어떤 스님의 시신에서 2년 동안 머리카락이 있다고 하는데요, 그런 것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그런 경우는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수행력, 선정력과 같은 힘에 의해서 머리카락이 계속 있는 것입니다. 머리카락이 길기도 합니다. 꼭 사람의 몸이 아니더라도 밀라래빠의 불상에도 머리카락이 자라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불상이 말을 하는 경우도 있고 불상이 새들이 가지고 있는 정도의 온기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법과 신심, 선정력, 가피력의 힘입니다. 법과 수행력의 힘은 무한합니다. 아주 희유난득한 것입니다.
지덕스님 : 자 그러면 티벳말로 감사합니다는 ‘투체체’ 인데요, 같이 해 봅시다. 대중들 : 투체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