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화살도 날아 는 갔다.” 지리산 삼신峰(1,284m)에서
(경남 하동군 청암면, 화개면, 청암면, 산청군 시천면)
다음 불 로그:-kims1102@
늦은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기상예보가 발표 된 지 며칠이 지났지만 비다운 비는
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농촌에서는 모내기를 마쳐야 하고, 밭작물에 물을 줘야하지만, 식수(食水)도
부족하다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어느 고을에서는 “비를 내려주십사!” 하고 하늘에 기우제를 지낸 곳도 있었다.
지난 3주간 계곡산행을 했지만 시원스럽게 흐르는 계곡수를 한 번도 볼 수가
없었다.
전국의 댐은 수위가 부쩍 내려갔고 저수지는 매 말라 바닥이 들어나 보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염병 메르스(중동호흡기중증)는
그 기세가 다소 꺾였다고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시민들은 감염 병의 위험성을 잘 모르고,
환자접촉이나 병원방문 사실을 숨기고.
자가 격리 수칙을 어기는 등 무단이탈하기가 일수였다.
오늘 현재 확진환자 180명, 격리인원 2,642명 사망 29명으로 발표되었다.
빠른 메르스의 종식을 위해서 국민 모두가 내 일 같이 협조를 해야 할 것이다.
하지(夏至)가 지난지도 며칠이 되었다.
하지는 망종과 소서 사이에 있는 절기로 이때는 일 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
일 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의 길이가 길므로 북반구(北半球)의 지표면은
태양으로부터 가장 많은 열을 받는데,
이 열이 쌓여서 하지(夏至) 이후에는 기온이 상승하여 몹시 더워진다.
세시에서는 사슴의 뿔이 떨어지고, 매미가 울기 시작하며,
반하(半夏)의 알이 생긴다고 했다.
한국의 농사력에서는 모내기가 끝나는 시기이며 장마가 시작되는 때이기도 하다.
하지(夏至)에는 여름 기운이 온 세상에 뻗치는 계절이다.
입하(立夏)에 일어선 여름 기운이 하지(夏至)가 되면서 온 세상으로 뻗친다.
해가 가장 많이 비추니 여름 한가운데로 접어들고 어디선가 매미소리 은은하게
들리고,
밤꽃이 피고, 호박, 오이 넝쿨이 뻗어가고, 풋고추, 풋가지가 열리기 시작한다.
장마가 오기에 앞서 밭마다 김을 매고, 풀에 치이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곡식들은 하룻밤 자고 나면 쑥쑥 자라고,
비가 한 줄기 내리고 나면 어제 오늘이 확연히 다르다.
하지에는 호박꽃, 오이꽃, 메꽃이 피고지고 자귀나무에도 꽃이 피기 시작한다.
나는 언제나 대기와 함께 그대를 숨쉬고
나는 언제나 음료와 함께 그대를 마시고
나는 언제나 향기와 함께 그대에게 입 맞춘다
고귀한 줄기의 가지처럼 피어나는 그대
샘물처럼 신비롭고 단순한 그대
불꽃처럼 가녀리고 순수한 그대
아침처럼 화사하고 빛나는 그대
(게오르게 의 詩 “불꽃처럼 기다리고 순수한 그대” 3연)
어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내일 지리산 삼신봉산행이 걱정은 됐지만 가뭄이 해소된다니 마음은 편하다.
밤사이 비가 얼마나 내렸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아침에는 비구름만 잔뜩 끼어있었고 비는 내리지 않는다.
메르스와 날씨 때문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오늘도 28명의 남녀회원들이
산행버스의 자리를 메꾸어주었다.
말 바위시장에서 산행버스가 일찍 출발하는 바람에 버스를 놓친 한 여성회원이
택시를 타고와 홈플러스에서 승차를 했는데 “해뜰날”재무가 택시비를 지불해주었다.
고맙게도 “태청산”은 오늘도 백설기 떡을 푸짐하게 만들어와 회원들의 기분을 업
(up)시켜주었다.
오늘 우리가 산행 할 지리산 삼신峰(三神)은,
경남 하동군 청암면, 화개면, 청암면, 산청군 시천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삼신峰(1,284m)은 청학동에서 볼 때,
서쪽의 內삼신봉(1,354m)과 중앙의 삼신峰(1284m), 동쪽의 外삼신峰(1,288m)
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지리산 주능선의 전망대 구실을 하여,
악양으로 흘러내린 성제峰(일명: 형제봉) 능선과 멀리 탁 트인 남해의 전경을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는 곳이란다.
삼신峰정상에 오르면 북쪽으로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
을 잇는 지리산 주능선이 눈앞에 병풍처럼 펼쳐진다고 했다.
여기에 전남 광양시 백운산과 광양만,
섬진강 하구에서 이어지는 남해가 시계방향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고 한다.
內삼신峰에서 성제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중에서 청학동 계곡을 바라보는
능선에 마치 자물통처럼 생긴 쇠통바위가 있다는데,
청학동 사람들은 학동마을에 있는 열쇠처럼 생긴 바위로 이 쇠통바위를 열면
천지개벽과 함께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다 한다.
청학동은 전통시대에 이상향(理想鄕)의 원형(原型)이었으며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찬미했던 곳이란다.
오늘날에는 도인村과 삼성宮, 청학동 서당(書堂) 등이 있어 관광지화 되어있다.
기상청 일기예보에서는 “비는 오전 10시쯤”에 그친다는 예보였다.
남해고속도로를 달리는 산행버스 차창 밖으로는 지역에 따라 비가 그쳤다가,
오다가를 반복했지만 큰 비는 아니었다.
비를 머금은 우리에 산하는 짙푸른 숲과 윤기 자르르 흐르는 모습이 매혹적이다.
특히 지리산 산기슭으로 접어들면서 청학동계곡과 어우러지는 풍경은
“환상” 그 자체였으며 날씨도 좋아 비는 개이고 빗방울만 조금씩 떨어졌다.
오늘은 “똑” 소리 나는 최기사가 산행 1팀의 노고를 덜어준다며
삼성궁을 지나 산행기점을 높이 잡아주려다 길을 잘못 들어 세 번이나 산행버스를
되돌리며 겨우 들머리에 산행 1팀을 내려주고 삼성궁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오늘 산행코스는
청학동 -삼신峰 -內삼신봉 -송정 굴 -쇠통바위 -하동 독 바위 -상불재 -불일폭포
-쌍계사로 내려오는 코스다. (산행 1팀 코스)
산행은 오전 10시 40분부터 시작되었으며 하산시간을 오후 5시로 정했다.
산행기점인 청학동(靑鶴洞)은
경남 하동군 청암면(靑岩面) 묵계里에 있는 마을로 도인村(道人)이라고도 한다.
지리산 삼신峰(三神)의 동쪽 기슭 해발고도 800m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곳은 예로부터 천석(泉石)이 아름답고, 청학(靑鶴)이 서식하는 승경(勝景)의
하나로 꼽혀왔으며 주민 전체가 갱정유도(更定儒道)를 신봉한다.
일명 일심敎(一心)라고도 하는 신흥종교로 집단생활을 하는 이들의 가옥은
한국 전래의 초가집 형태를 띠고 있으며,
의(衣)생활도 전통적인 한복차림을 고수하고 미성년 남녀는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길게 땋아 늘어뜨리며, 성인 남자는 갓을 쓰고 도포(道袍)를 입는다.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마을 서당에 보내는 것도 특이하다.
마을 사람들은 농업 외에 약초, 산나물 채취와 양봉, 가축 사육 등으로 생계를
꾸려 나간다.
삼성궁주차장에서 산행 2팀(14명)이 내렸다.
삼성 궁(三聖宮)을 구경한다고 “쇠똥구리”와 한 회원이 산행 2팀 대열에서
떨어져나갔다.
삼성 궁은 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里에 있는 도장(道場)으로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성전이다.
청학동 도인村(촌)이 있는 골짜기 서쪽 능선 너머 해발 850m지점에 있으며
정식 이름은 “지리산청학선원 삼성宮”이다.
묵계출신 강 민주(한풀선사)가 1983년부터 33만㎡의 터에 고조선 시대의 소도
(蘇塗)를 복원하였다.
궁(宮)의 이름은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궁이라는 뜻으로 지어졌으며
도인村과 달리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한풀선사를 중심으로 수행자들이
선도(禪道)를 지키고 신선도를 수행하는 도장(道場)이다.
한풀선사와 수행자들이 이곳이 소도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쌓고 있는 솟대는
1,000개가 넘는다.
한반도와 만주를 상징하여 조성한 연못, 한낮에도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토굴,
전시관, 전통찻집 아사달, 천궁, 숙소 등이 여기저기 흩어져있고 맷돌, 절구통,
다듬잇돌 등으로 꾸며진 길과 담장과 함께 짜임새 있게 가꾸어져 있다.
산행 1팀(11명)은 코스대로 산행을 하였다.
짙은 물안개 때문에 병풍처럼 펼쳐진 지리산 주능선과 탁 트인 남해의 전경을
아쉽게 볼 수는 없었지만 아기자기한 능선 길을 따라 걸으면서 빗물 머금은
생기발랄한 숲과 푸른 나뭇잎들을 볼 수 있어 좋았고,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안개구름이 여러 형상을 만들며 변하는 모양도 좋았다.
기암절벽들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져 아름다음에 극치를 보여주었다.
비온 뒤끝이라 폭포에 물도 많아 불일폭포를 보는 것도 즐거웠다.
불일폭포(佛日瀑布)는,
경남 하동군 지리산 쌍계사 북동쪽 국립공원계곡에 있는 자연폭포로 높이가
60m에 이르는 폭포이다.
우리나라 폭포 중에서 비교적 큰 규모를 가진 곳으로 이곳은 지리산 10경(景)의
하나에 속한다.
전설에 의하면 폭포아래 용소에서 살았던 용이 하늘로 승천하면서 꼬리로 살짝
쳐서 청학峰(靑鶴)과 백학峰(白鶴)을 만들고 그 사이로 물이 흘러내려 폭포가
생기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쌍계사에서 4km 떨어진 폭포까지는 등산로가 잘 만들어져 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쌍계사(雙磎寺)에 도착했다,
경남 하동군 화개면(花開面)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사찰이다.
840년(신라, 문성왕 2년)에 진감선사(眞鑒禪師) 최 혜소가 개창하여
처음에 옥천사(玉泉寺)라고 부르다가 헌강왕(憲康王) 때 한 고을에 같은 이름의
절이 두 개가 있어 혼동을 일으켰으므로,
문전에 흐르는 쌍계에 연유하여 쌍계라는 호를 하사하고 학사(學士) 최치원으로
하여금 “쌍계석문(雙磎石門)”의 4자를 쓰게 하여 바위에 각자(刻字)하였다.
그 후 두 차례나 화재로 절이 소실되었으나 1632년(인조 10년)에 벽암(碧岩)을
비롯한 여러 승려들에 의하여 복구, 중수되었다.
경내에는 국보 제47호인 진감선사대공탑비(眞鑑禪師大空塔碑)를 비롯하여
보물 제380호의 쌍계사 부도(浮屠), 보물 제500호의 대웅전 등의 지정문화재가
있고,
이 밖에 5層석탑, 석등, 일주문(一柱門), 팔상전(八相殿), 명부전(冥府殿), 천왕문,
중국 승려 혜능(慧能)의 두상(頭像)을 봉안했다는 금당(金堂)에 있는 육조정상탑
(六祖頂相塔)과 나한전(羅漢殿), 금강문,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 등 많은
문화재가 있었다.
문제는 산행 2팀에서 발생했다.
상성궁주차장에서 조금 내려가니 우측으로 임도가 기분 좋게 나 있었다.
우리는 이 길이 산행 1팀과 연결되는 상불재로 가는 길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직각으로 틀어진 아주 딴 방향의 길이었다.
“무하”산행대장도, 길을 잘 아는 “파란하늘”도, “무등산”도 순간적으로 착각을
한 것이다.
이 사실을 인지(認知)하기는 점심을 먹고 앞서간 “군왕봉”과 통화하면서 알았다.
“군왕봉”의 이야기는 회문재에 도착해서 보니 쌍계사로 가는 이정표가 없다는
것이다.
“파란하늘”이 산행紙를 꺼내놓고 확인하더니 길을 잘못 든 것 같다는 것이다.
삼성宮에 들린 쇠똥구리에게 전화를 해 삼성宮에서 상불재 가는 길을 찾으라고
알려주고 우리에게 합류하지 말라고 했다.
일단은 회문재까지 가서 비상구를 찾아보자는 의견이었다.
회문재에 도착해서 “군왕봉”을 만나보니 이정표에 쌍계사는 없고 묵계와 악양
17km라고만 씌어있다.
도로는 시멘트포장길로 계속 내리막길이었다.
길 옆 표지판에 “이 도로는 임산물채취를 위해 개설된 임도이니 차량의 출입을
금한다.”라는 경고판이 있었다.
노폭도 넓은 시멘트포장도로라 차량출입이 가능했으며 이따금씩 차가 지나갔다.
길에는 이정표 하나 없는 꾸불꾸불하고 멀고 먼 길이었다.
절뚝절뚝 발바닥은 아프고 다리는 지쳐 힘이 들었다.
길에서 노인 한 사람을 만나 “쌍계사가 얼마나 남았냐.”고 물어보니 차가 없으면
못 간다고만 말 하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낮선 친구 만나면 / 우리들 문둥이 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문둥이 시인 한하운의 詩, “전라도 가는 길(소록도로 가는 길)” 일부)
얼마를 내려가도 길은 끝이 안 보이는데 왼 승합차 한 대가 갑자기 선다.
차안에는 나와 같은 산행 2팀이 타고 있었고 비좁은 자리를 억지로 만들었다.
알고 보니 귀농한지 얼마 안 된 차주가 산행 2팀의 처지를 보고 태워준 것이다.
차로 한 참을 내려갔더니 악양면사무소였다.
나는 여기서 끝이 난 줄 알았는데,
다시 군내버스를 타고(1인당 1,500원) 화개장터로 가서 기다리면
쌍계사로 내려오는 산행 1팀을 태우고 우리를 데리러 온다는 것이다.
나는 그제 서야 길에서 만난 노인의 말뜻을 알 수가 있었다.
“쇠똥구리”에게 연락을 해보니 삼성宮에서 길을 찾지 못해 화물차 주인에게
사정 얘기를 하고 화개장터로 온다는 것이다.
산행 2팀은 오늘 모두가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니 산행버스가 도착했다. 눈물 나게 반가웠다.
섬진강변 한적한 곳에서 하산酒를 했다.
오늘 하산酒는 홍어무침에 소주와 막걸리였다.
(2015년 6월 26일)
첫댓글 배태랑 산 님들께서 고생 많이 하신것같네요 .폭포가 장관이군요.가 보지 못해 아쉽습니다.
항상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길을 잘 못들어 고생하셨군요. 근데 사진은 언제부터 였어요!!!
산에서 길 잡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