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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문화는 그 활동에 따라 정적(靜的)인 것과 동적(動的)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이 둘이 만나 역동적인 문화를 만들어 낸다. 설명하자면 문학이나 회화(繪畵)는 정적이다. 문학은 책에, 회화는 화면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치 미술이나 음악, 그리고 무용은 동적이라 할 수 있다. 동력에 의하여 움직이는 활동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히 정지되어 있는 문학은 책에 담겨 있어 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그 내용은 동적인 역량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모든 문화는 역동성을 가지고 있으며, 역동성은 곧 문화의 힘이다.
1. 문학의 힘
소설가 이효석(李孝石, 1907~1942)이 1936년에 발표한 『모밀꽃 필 무렵(메밀꽃 필 무렵)』을 17세 때 읽어 보았다. 그 책을 통하여 내게 각인된 것은 평창은 메밀(모밀)의 산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제주도로 이사 와서 한참 후에야 나는 한국산 농산물 메밀의 거의 대부분(90%?)이 제주도에서 난다는 사실을 알았다. 제주도에는 메밀 방앗간이 없고, 제주도산 메밀을 강원도로 싣고 가 찧어서 전국에 퍼진다는 것이다. 강원도에서 도정을 했으면 강원도산인가?
제주도의 한 메밀국수 전문점 상호에는 봉평이라는 강원도 지명이 들어 있다. “가게 이름을 보니 여기 메밀은 강원도산 메밀인가요?”하고 물어보니 강원도산 메밀이란다. 강원도에서 왔으니 강원도산인가? 웃음이 나온다. 제주에서 팔리는 메밀 대다수도 제주도산일 것이다.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이 없었다면, 아니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가 제주도였다면 강원도가 메밀의 주산지(主産地)라는 허상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것은 방송작가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의 경우도 똑같다. 이은성의 이 소설은 조선에서 나온 동명 소설에까지 영향을 준다. 이은성의 오류를 북에서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동의보감』에서의 허구가 현실에서의 여러 축제를 남겼다. 이것이 문학의 힘이다.
『헤밍웨이 고택의 침실에서』, 플로리다주 키웨스트, 미국을 처음 방문하였을 1982년 마이애미시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갔다. 40년전 사진이라 해상력이 떨어진다. Ⓒ이양재. [사진 제공 – 이양재]
미국의 최남단 도시하는 플로리다주 키웨스트(Keywest)에 가면 미국의 세계적 대문호(大文豪)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1899년~1961년)가 한때 살던 고택(古宅)이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여기에서 썼다. 그 고택에는 헤밍웨이가 기르던 샴 고양이의 후손이 있다. 그 샴 고양이는 헤밍웨이가 기르던 샴 고양이의 후손이라는 것으로 하여 수년 전에 예약해야 분양받을 수가 있다. 이것이 문학가의 이름값이자 힘이다.
문학의 힘 가운데 가장 큰 문학의 힘은 ‘성경’과 ‘코란경’, 그리고 ‘불경’일 것이다. 이러한 종교의 경전도 많은 부분이 스토리텔링(Storytelling)에 의하여 기록한 것이고, 그것은 문학적 요소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사회에서 성경 다음으로 널리 읽힌 책은 존 번연(John Bunyan, 1628년~1688년)의 『천로역정』일 것이다. 이러한 책들은 인간 자체를 바꾸는 힘이 있다. 이는 곧 종교의, 신앙의 힘이기도 한 것이고, 그 근원은 문학에 있다.
2. 음악의 힘
우리 민족 음악의 가장 중요한 노래 ‘아리랑’은 남이든 북이든, 어느 나라 어느 체재에서든 우리 민족이 있는 곳에서는 불린다. 특히 조선의 최성환 작곡가가 1976년에 작곡한 ‘아리랑 환상곡(Arirang Fantasy)’이 한국이나 여러 나라의 교향악단에 의하여 공연된 바도 있다. 우리 민족의 ‘아리랑’ 선율을 좋아하는 외국인들도 상당수에 달한다. 그것이 음악의 힘이다.
세계인들은 말은 달라도 같은 음악 선율에 젖는다. 조선족 출신 정 모 씨는 하동정씨로 정인지의 자손이지만, 1964년 중국에서 태어나 당시 중국사회주의에서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부모는 언제부터인가 중국 삼자(三自)교회의 기독교인이었고, 그는 1980년대 중반부터 지방정부 소속의 어느 가무단 가수로 활동하였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막 시작하던 1980년대 후반에 헨델(George Frideric Handel, 1685년~1759년)이 작곡한 ‘할렐루야’를 배우라고 배정받았고, 그 노래를 공식 석상에서 부르기도 하였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중국을 방문한 일부 기독교인들은 그가 부르는 ‘할렐루야’ 노래를 듣고는 깜짝 놀랐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 그런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있다는 사실을 당시 한국 여행자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이것이 음악의 힘이다.
문학은 널리 퍼지고 읽히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면 제한적 요소가 있다. 그러나 노랫 가사는 그렇지 않다. 오페라나 판소리가 아닌 한 길게 불리지 않는다. 요즘 한류로 음악과 노래가 뜨는 이유는 짧은 시간에 흥겹게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노래는, 즉 대중음악은 전체 한류의 견인차(牽引車)이다. 그 힘은 막강(莫强)하다.
3. 미술의 힘
박수근(朴壽根, 1914년~1965년)은 1914년 2월 21일, 식민지 조선의 강원도 양구군 양구면 정림리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양구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강원도 인제군에서 독학으로 미술 공부를 하였다. 박수근은 회백색을 주로 하여 단조로우면서도 한국적 주제를 소박한 서민적 감각으로 충실하게 다루었다. 그는 현대미술사적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의 현대화가 중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평범한 우리의 서민상을 주제로 삼은 불세출의 화가이다. 오지(奧地) 의 오지에서 테어난 그는 김환기(金煥基, 1913~1974) 이중섭(李仲燮, 1916~1956)과 더불어 한국 최고의 유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많은 사람이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을 찾는다. 그곳에서 래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가 1503년부터 1506년경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유화 『모나리자(Gioconda, Monna Lisa, 가로 53cm 세로 77cm)』를 보기 위해서이다. 2018년 기준으로 볼 때 연간 루브르 박물관의 방문객 수는 약 1,000만 명에 육박한다. 이 중 대부분이 이 모나리자를 보러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한다. 프랑스 정부는 이러한 방문객 수를 참조하여 『모나리자』의 대략적인 경제 가치를 최소 한화 약 2조3,000억 원에서 최대 약 40조 원 내외라고 평가하였다.
『몽유도원도』 부분도, 안견, 1447년, 견본수묵담채, 크기는 세로 38.7㎝, 가로 106.5㎝,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 중앙도서관 소장. [사진 제공 – 이양재]
만약에 일본 천리대학에 소장되어 있는 현동자(玄洞子) 안견(安堅, 세종초~세조초)의 『몽유도원도』를 국내의 한 지자체에서 인수하여 미술관에 전시한다면 그 작품을 관람하러 오는 방문객들이 유발하는 경제 가치는 얼마나 될까? 연간 방문객이 최소 100만 명에 입장료가 1인당 1만 원이라면, 입장료 수익만도 100억 원이 있을 것이고, 방문객이 소비하는 파급 소비액은 입장료 수익을 훨씬 상회하여, 미술관 인근에 연간 최소 300억이상 최대 1,000억의 경제 수익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미술품은 곧 재화(財貨)이다.
4. 역동하는 ‘Three S’의 힘
“Three S”라고 말이 있다. Sports, Screen, Sex를 말한다.
첫 번째 S, 스포츠(Sports)는 가장 역동적인 문화이다. 그리고 스포츠의 세계적인 행사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유발하는 경제 가치는 회를 거듭할수록 급증하고 있다. 많은 스포츠 스타들은 걸어 다니는 기업과도 같다. 관람객이 스포츠 스타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그들을 통하여 경기에 참여하며 그들의 득점으로 대리 만족을 느끼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들은 국경이 없는 명성과 인기를 누리고 있다.
세계적인 축구단이나 야구단의 자산 가치와 운영을 위한 매년 투자액은 상당히 높다. 동시에 관람하거나 시청을 하는 대중을 위한 영향력은 상당히 크다. 한 회의 올림픽이나 월드컵은 짧은 기간에 『모나리자』 이상의 경제 가치를 창출해 낸다. 그러나 이 가치는 흘러가며 일회성으로 창출하는 가치이지 항구적으로 보존되는 가치가 아니다.
두 번째 S, 스크린(Screen)은 영화 예술을 말하며, 영화 예술은 최고의 종합 예술이다. 영화에는 스토리(문학)가 있고 음악이 있으며 영화 미술과 영상 미술이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무대예술과 같은 배우들의 연기나 동작(무용, 무술 등등)이 있다. 움직이는 화면은 실제의 세계나 가상의 세계를 보여주며, 시간과 공간을 넘어 종횡무진한다. 가능성 있는 이야기든 가능성 없는 공상의 이야기든 담아낸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영화 예술에 Porno는 배제된다.
세 번째 S, 성(性, Sex)의 문화는 일본이라던가 서구 등의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산업화하였다. 그러나 예술성이 없는 S, 즉 Porno는 문화 예술이라 할 수가 없다. 같은 행위 형상을 그린 그림도 고도의 예술성을 추구한 춘화(春畫)와 상업적 Porno 그림은 구분되어야 한다. 물론 Nude도 Porno와 구분된다. 아름다움의 추구와 성욕의 추구는 그 개념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Three S” 가운데 세 번째 S 문화의 청정국은 조선이다. 조선에는 Porno는커녕 Nude 그림도 없다.
5. 맺음말 ; 문화의 힘, 한류를 말아먹는 행동을 경계한다
우리 사회에 알게 모르게 한류(韓流)를 말아먹는 행동들이 있다.
경복궁이나 인사동에 나가 봐라. 국적 불명의 옷을 한복이라고 대여해 주며 그런 옷들을 버젓이 입고 다닌다. 대개가 중국에서 만든 국적 불명의 싸구려 옷이니, 한복을 흉내 낸 짝퉁 옷이 대부분이다. 그 짝퉁 한복을 입고 찍은 내국인과 외국인들의 사진이 인터넷을 도배한다. 이것은 한류를 왜곡하는 한국 내부에서의 현상이다. 이러한 일탈한 모습의 한복이 판치니, 한복의 원류가 중국이라는 엉터리 주장마저 나오는 것은 아닌가?
얼마 전부터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에 도립으로 중광미술관을 만든다는 말이 있었다. 기가 막히는 일이다. 중광(重光 高昌律, 1934~2002)은 미술가라기 보다는 그저 여기(餘技, 취미)로 미술을 흉내 낸 짝퉁 미술가이다. 누군가가 그를 제주가 낳은 세계적인 미술가로 착각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중광은 제주고씨라는 것으로 하여 제주 출신으로 인정받지, 그는 제주에서 태어났다기보다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1934년에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였던 1936년에 가족과 함께 당시 제주도 북제주군 조천읍 함덕으로 들어와 제주에서 자라며 당시 함덕국민학교를 다녔다. 즉 중광이 제주시 애월에서 태어났다는 주장은 낭설이다.
제주에 중광미술관이 필요하다면 이해 당사자가 사립으로 만들면 된다. 제주도 예산으로 도립 미술관으로 만들 것까지는 없다. 도립으로 특정 미술가를 기리는 미술관을 만든다면, 우선 그 미술가의 작품과 미술사적 위치, 미술계에 대한 공헌 등을 평가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중광의 작품은 그 실체가 들쭉날쭉하다. 그는 미술계에 아무런 공헌도 남긴 것이 없으며, 미술사적 평가도 없다. 제주에 도립중광미술관을 만들겠다는 전임 제주지사 원희룡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또 한 사실을 적시하자면 이유립과 황상기식의 뻥튀기 황당사관이나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일제의 식민사관은 한류를 말아먹으려는 현상과 직결되어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을 장악한 뉴라이트가 매우 염려스럽다. 이들 모두는 걸려져야 할 것들이다.
『남원양씨대족보』에 수록된 제주 지도(목판화) 앞면, 1695년, 목판본. 책 크기 : 24.6 × 38.0cm.
[사진 제공 – 이양재]
그런데 최근 제주도애서 “제주 칠성단이 제주 일곱 곳에 퍼져있었다”라는 황당한 주장이 ‘갑툭튀’하였다. 그러한 주장도 탐라국의 실체를 왜곡하는 행위이다. 구(舊) 제주 성안은 파는 곳마다 건물지가 나오게 되어 있다. 적당한 일곱 곳을 골라서 칠성의 유적이라 하면 역사적 진실은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분명 1695년 판 『남원양씨대족보』에 수록한 목판화 고지도에는 칠성단(七星壇)이 한 장소에 있다.
여러 황당한 현상들이 돌출하여 세계인들에게 인식된다면, 어렵게 퍼져나가는 한류는 급격히 식어들 것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상 최고 최대로 결집하는 문화 예술의 역량을 잘 보호하고 지켜나가야 한다. 역사와 문화의 왜곡은 안 된다. 아직 갈 길이 멀고 할 일이 많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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