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수필
내가 만난 장애인들
성인(聖人)이라 할 수 있는 친구 이야기다.
나보다 한 살 위인 옆 동네 형이 초교 1학년 같은 반이 되어 친구가 되었다. 세 살 때 주사 치료를 잘못한 결과로 우측 다리가 소아마비 되었다. 전국 곳곳의 병원과 민간요법을 찾아다녔으나 빚만 지고 차도가 없이 유아 시절을 보내고 포기했다. 등하교길에 우리 동네 아이들이나 형들이 “쩔룩발이 쩔룩베기”를 부르며 놀려댔다. 자전거를 배워 중고교를 마쳤고 이발을 배워 인천에서 이발소를 43년째 하고 있다.
자기를 놀렸던 동네 아이들과 형들보다 더 돈을 벌어 잘 살겠다는 일념으로 성실하게 노력하여, 중 1 때 부친이 위암으로 사망하자 자기를 고등학교까지 보내준 농사짓는 형한테 논도 몇 마지기 사주고 돈도 모았다. 아내가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임이 확인되자, 남편은 이발을 하고 아내는 면도와 머리감기를 해주어야 하는 일의 분담관계로 아이를 양육하기가 어려울텐데, 자기 입장보다 더 어려운 정신적 장애 여아를 입양하여 중학교까지 갖은 고생을 다해가며 완쾌시키고, 정상인으로 고교를 입학시켜 졸업시켰으며, 시집을 보내 잘 생긴 손자가 무럭무럭 자라 두 돌을 지났다. 성인(聖人)이란 어떤 사람일까? 이 친구 부부도 성인의 인격체가 아닐까?
15년 전쯤 다리에 적합한 의족을 맞추어 장착했는데, 이것이 효자 역할을 잘 해주어서 과거에 비해선 큰 불편함 없이 쩔룩쩔룩 거리며 이발을 해내고 있다. "이 의족이 없다면 내 인생은 이발사도 접고 패배자 장애인으로 여생을 보내게 될 것이다." 라며 무척 보배로워 한다. 그렇다. 이 친구는 겉보기에 소아마비 장애인이지만, 내면은 누구보다도 의지의 정상인인 것이다.
환자와 장애인 바라보기다.
중환자나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분들 중에는 장애인으로 불리는 사람보다 장애적인 면이 훨씬 많은 분들이 많다. 하지만 이들을 장애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단순히 “환자분” 또는 “어르신”으로 취급받는다. 병원에서 팔다리 한쪽씩이 없이 휠체어를 타는 사람은 그냥 환자지만, 이 분이 밖에서 휠체어 타고 활동한다면 분명코 환자분이 아닌 장애인으로 취급되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장애인 고등급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병폐를 보자.
장애인 편견과 혐오에 모든 장애인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데, 오히려 높은 장애인 등급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수입액의 증액과 직결되고 장애인 주차증을 받기 위해서다. 장애인 친인척 명의를 빌려 장애인 우대 차량을 할인받아 구입하는 사람들 또한 부지기수다. 투병하는 군인들도 높은 등급을 받아야 상이 군인 수당이 높기 때문에 변호사를 고용하여 성취하기도 한다. 이들에겐 사회적 편견인 장애인의 불편함이란 존재하지 않고, 의기양양하게 돈 많이 받는다고, 장애인 주차라인에 편하게 파킹한다고 뽐내며 산다. 어찌보면 장애인 편견에 따른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법과 사회 인식 전환에 힘써 애쓰는 사람들로 인해 얻어지는 혜택을, 이런 사람들은 룰루랄라 노래 부르면서 누리고 있다.
시각 장애인의 위험한 전철 하차를 방지하자.
서울 경기지역 등에서 전철을 타면서 어쩌다 한 번씩 시각 장애인을 만난다. 이분들이 내릴 때 안전문에 걸려 휘청 거리거나 때로는 넘어지는 것을 붙잡아 준 적이 있다. 전철의 문이 열리는 속도는 빠른데 플렛폼의 안전문 열리는 속도는 느린 탓에, 전철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맨 앞서서 지팡이로 더듬으며 전철문 가장자리에서 발을 내딛다가는, 플렛폼의 안전문에 발이 부딪쳐서 사고 위험을 초래한다. 다행히 중앙 쪽으로 나가거나 사람들 뒤따라 나갈 때는 안전문이 다 열려있어서 안전하다. 이를 본 뒤로 나는 가급적 노인석 쪽에 자리를 잡거나 서서 가다가 시각 장애인을 만나면, 그 분이 내릴 때 문 중앙쪽으로 또는 안전문의 개방 상태를 봐가며 안내한다. 시각장애인들에게 전철문과 안전문이 열리는 시간차가 있음을 인지시켜 준다면, 전철이 있는 도시에 가서 활동할 때 도움이 될 것이다.
장애인이기 전에, 환자라고 생각한다면 좀 나을 것 같다.
어느 날 전철을 타고 사당역에 내려 환승을 하기 위해 가는데, 50대 정도의 왜소한 남자가 무겁게 보이는 큰 박스를 앞에 놓고 의자에 앉아서 숨을 가쁘게 몰아쉰다. 10여 미터쯤 지나치면서 계속 힐끔힐끔 바라보다가, 뒤돌아서서 그분한테 가까이 다가가 “아저씨? 무거운 것 같은데 도와 드릴까요?” 했더니, 갑자기 화를 벌떡 내면서 일어나더니 내게 상욕을 해댄다. “내가 병신이라고 니가 동정하냐? 이 xx야?” 다리를 보니 한 쪽 다리가 소아마비다. 머리 숙여 죄송하다고 인사한 후 가는데 서너 걸음 뒤따라 오면서 고래고래 욕을 한다. 저만치 가다가 뒤돌아보니 혼자서 낑낑대며 플렛폼으로 짐을 이동한다. 그 분의 몸에서 풍겨내는 인상과 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이미 장애인 대하기 터득한 건지 모르지만 아무도 거들어 주지 않는다. 나는 '친절한 어투로 동의를 구한 건데 이럴 수도 있지 뭐.’ 했다. 친구들한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장애인이 도와달라고 할 때까지는 모른 척 하는 게 상책이라고 조언하니, 장애인 거들어 주기가 점점 멀어지는 생각이 밀려온다.
작년 7월 회사에서 일하다가 기계 절단기에 우측 손가락 엄지부터 중지까지 반절 이상 절단되어, 이전에 하던 여러가지를 못하는 큰 불편이 따르지만 장애인이나 병신이라고 전혀 생각을 않고, "이제부터는 이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새롭게 익혀 나가는 재미가 쏠쏠하겠어." 라며 자신의 손가락 미래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며 긍정적이다. 친구는 손가락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 자체가 병신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을 볼 때는, 펜 하나 쥐기 어려운 뇌성마비 송명희 시인이, 치료를 해주겠다며 나선 후원자에게 "주님이 만들어 놓으신 이대로 그냥 살겠어요. 난 이대로가 좋아요." 라며 거절한 그 마음이 겹쳐진다.
나도 심혈관 질환 계통의 중환자로 시술이 세번 째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언제 급사할지 모르는 심혈관 장애인이야.”라고 말하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는 그냥 몸에 큰 질환이 있는 나이고, 병원에 가면 환자로서 나일 뿐이다. 오히려 짧은 삶이 될 수도 있기에 대인관계에서 친절하게 하려 노력하고, 이미용 봉사와 근골격 치료 봉사에 적극적 자세로 살아 가고 있다.
나는 장애인이면서 장애인이 아니다.
그렇다. 세상 사 마음 먹기에 달린 것이다. 편견과 혐오가 깃든 시선과 언어들에 상처를 분명히 받겠지만, 마음으로 나는 환자일 뿐이다. 병원에 입원하면 의사와 간호사에게 치료를 감사하게 받듯이, 내가 동정을 받는다는 자격지심을 버리고, 도와주려는 사람을 고맙게 받아들이고 때로는 먼저 도움을 요청하자. 도움 요청을 거부한다고 해서 낙담하거나 자학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신분과 재력, 건강함과 건강치 못함을 떠나 겪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상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장애인 마저 수두룩 하지만 "나는 장애인이면서 장애인이 아니다."라는 자긍심으로, 화평하고 즐겁게 살아가도록 마음 다지자.
ㅇ. 시
<행운아>
천고의 시름
장애인 감투
우리 아들 딸 장애인
우리 엄마 아빠 장애인
괄시 혐오 배척
평생 받는구나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베개 삼아
대자로 누워 자봤지만
잠 깨어 거리 나가면
일장춘몽이어라
강자도 살아가기 힘든 세상
약자는 얼마나 힘들까?
함라산 넘어가는 저 석양
펼쳐진 노을의 승경
바라볼 수 있는 자
그나마 행운아다.
첫댓글 /바람
가을도 깊어가 이슬 맺힌 추국 그윽한데
화리가 마침내 모두들 행복하게 하노라!
달덩이보다 어여쁜 미인과 나란히 서서
꽃다발 한 아름 들고 미소 짓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