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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알바트로스
제60차 정기합평회
-2024. 5. 16 -
순서 | 제목 | 작가 | 합평 담당 |
1 | . 달빛은 알고 있다. | 이미란 | 김경 |
2 | . 골든타임 | 이숙희 | 김미숙 |
3 | . 골목풍경 | 이시언 | 김영희 |
4 | . 레인스틱 | 채정순 | 김정래 |
5 | . 웃음보따리 | 최선화 | 김정실 |
6 | . 지금 소확행 | 엄옥례 | 김현지 |
7 | . 명의(名醫) | 백금태 | 노아영 |
8 | . 향수(鄕愁) | 서소희 | 백금태 |
달빛 / 이미란
1.섣달 그믐달이 하늘 한 귀퉁이에 겨우 걸려있다.지난 망월望月의 넉넉하고 풍요로웠던 것도 이미 추억으로 보내고 쓸쓸하고 외롭게 내려다보면서 신세 한탄을 하고 있다. 바깥마당은 우울한 분위기다.
2. 집안에서는 윷놀이로 흥이 나서 시끌벅적하다. 내일이 설이라 서울 아이들,대구 아이들이 모두 모여 합숙하느라고 모처럼 집에 웃음소리가 창문 너머로 흘러간다.적막강산의 커튼을 걷고 사람 냄새가 난다. 안과 밖이 이렇게 상반될까.
3. 인간사가 어둠과 밝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안에는 새로운 한 해를 꿈꾸며 희망에 젖어 즐거운 웃음이 가득하다. 반면 한 치도 안 되는 거리의 창밖에는 동지섣달 북풍한설北風寒雪속에 팽개쳐진 한 많은 여인의 가련한 모습으로 그믐달이 가슴을 치고 있다.
4. 내일은 새로운 달력이 벽을 장식할 것이다. 새해 아침은 희망을 꿈꾸며 온 세상이 들떠있다. 오늘 같은 날의 하늘에는 다 살고 절망에 빠진 모습의 그믐달의 애절한 넋두리 보다는 희망을 나타내고 있는 초승달의 달뜬 재잘거림이 구색이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5. 굳이 그믐달을 걸어놓은 것은 하느님의 심술인지 숨겨진 다른 깊은 이유가 있을까. 세밑 치다꺼리 찌든 주부들의 한을 대신하나? 서방님을 먼저 하늘나라고 보내고 종갓집에서 홀로 남은 어떤 종부의 한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다. 나도향 시인은 그믐달을 평화롭게 잠들은 세상을 저주하며 홀로 머리를 풀어드리고 우는 청상의 모습으로 비교하기도 했다. 섣달 그믐달의 한풀이 하소연을 꼬집어 말하는 것 같다.
6. 그믐달은 괄시하는 인간에게 불행은 혼자 오지 않고 친구를 데리고 다닌다고 조롱한다. 자기는 아쉬운 대로 길은 찾아갈 수 있는 빛을 허용하지만 더한 어려움이 떡 버티고 있다며 의기양양하다. 짙은 어둠의 장막을 펼칠 삭朔이 란 용심꾸러기가 버티고 있다.
7. 내일 아침이면 세배를 올리고 덕담하고 희망을 키울 것이다.하지만 저녁 하늘에는 더 짙은 어둠이 계속되리라. 광명을 기대하고 그믐달을 얼러 곧추서려 보내보겠지만 암흑의 기간인 삭朔*이 떡 버티고 있으리라. 초사흗날쯤이나 되어야 비로소 마음을 가다듬고 서산에 초승달이 해죽이 웃으며 인심이나 쓰듯이 얼굴을 잠깐 내보일 것이다.
8. 그믐달에서 초승달로 가자면,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꿔야 하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삭朔이라는 어둠의 기간을 통과해야 한다. 사람도 어려움에 부닥치면 주위의 위로와 여러 가지의 도움과 본인이 많은 노력하고 인내하는 숙고의 기간이 있어야 어둠의 삶의 삭을 벗어 날 수 있다.
9. 자연현상이 우리 인간사와 똑같이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의 그믐달이 속삭이던 소리를 알아들어야 했다. 대책 없이 어려움에 부딪히면 요것만 참고 지나 저 모퉁이만 돌아가면 다른 길이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으며 힘들게 참고 견딘다. 달도 삭을 거처야 빛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처럼 인간들도 고통을 참아야 희망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0.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가 온 세상의 질서를 뒤흔들어 바꾸고 부수어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우리 공장은 반세기를 넘는 동안 D은행의 최상위급 대접을 받았는데 두 등급을 하향 조정한다는 연락이 왔다. D은행이 시중은행으로 바뀌면서 정리한 면도 있지만 매출이 바닥을 친 결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三高시대의 고유가, 고물가, 고금리라는 저승사자가 우리 남편을 더욱 무서운 공포에 떨게 하며 떡 버티고 있다. 저 달이 삭朔기간을 참고 기다리듯 노력하며 참고 기다려야 저 너머 모퉁이의 펼쳐진 밝은 길을 보리라.
11. 4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참고 견뎌왔건만 어수선한 나라 사정이나 캄캄한 경기의 앞날은 더 길고 더 힘든 기간을 요구하고 있다. 남편은 코로나 후유증인지 스트레스 때문인지 냄새를 맡지 못하며 맛의 감각을 모두 잃어버렸다. 음식맛도 모르고 먹고 살아온 시간이 4년이란 세월이다. 사람이 살면서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데 안타까운 일이다. 머리에 된서리를 맞고 구부리고 앉아 힘든 마음의 삭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 측은하다. 가슴에 하얀 바람이 분다.
12. 이제는 동녘 하늘에 초승달이 나타나 방긋 웃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 기대를 해보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다. 세계의 여러 곳에서 전쟁이 일어나 서로 국익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고 있다. 무역으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는 더욱 고충이 심하다.국내외적으로 각자의 복잡한 사정으로 단체 카르텔을 만들어 자기들의 이익을 고함쳐 요구하고 있으니 첩첩산중이다. 모든 상황이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저 남자의 어깨를 눌러 주저앉게 한다. 힘들어하는 저 마음의 삭을 빨리 끝내고 망월이 아니라도 좋다, 초승달의 작은 불빛이라도 비추게 했으면 좋겠다.
13. 곰이 인간이되기위해. 죽을 힘을 다해 기다린 길고 긴 시간이 100이었다. 우리 남편도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움 속에서 참고 기다린 삭의 시간이 100일이 아니고 4년이 넘어가고 있다. 가까운 날에 희망을 알리는 초승달의 속삭임이 남편의 어두운 마음속을 응원하여 지긋지긋한 삭을 벗어나길 기다려 본다.(12.6)
* 삭朔: 달의 위상이 달라지는 원리는 달이 스스로는 빛을 내지 않는 천체이기 때문에 태양 빛을 받는 달의 반구는 밝지만, 반대쪽 반구는 암흑 상태가 되며, 그와 같은 달을 지구에서 바라볼 때 밝은 반구 전체를 보게 되면 망, 암흑 상태인 반구 전체를 보면 삭이 되기 때문이다. 달 표면의 밝고 어두운 부분의 모양은 지구에서 본 달과 태양의 각도에 따라 결정된다.
골든타임 /이숙희
1. 부산에 사는 친구가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연락이 왔다. 고향에서 모임을 하고 헤어진 지 사흘째였다. 고혈압이나 다른 지병이라고는 전혀 없이 평소 부지런히 운동도 하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바닷가 쓰레기 줍기 봉사도 많이 해온 친구다.
2. 노래방을 운영하는 친구의 남편은, 코로나로 엄격했던 규제가, 마침 그날부터 완화되면서 새벽녘에야 귀가했다고 한다. 초저녁에 머리를 감다가 쓰러진 친구를 남편이 발견했을 때는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져 있더라는 것이다.
3. 몇 달이 흐른 후 면회가 가능하다는 소식을 듣고 재활 전문 요양병원으로 면회 갔다. 휠체어를 타고 나온 친구의 상황은 심각해 보였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나이에 무엇하나 손에 쥘 수도 없고, 땅을 딛고 설 수도 없는 현실이 그저 암담하기만 했다.
4. 친구와는 함께 여행을 많이 다녔었다. 그럼에도 딱히 위로의 말이 떠오르지 않아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여행을 가자고 위로하며 손가락을 걸었다.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한 채 그럭저럭 두 해가 지나갔다.
5. 어느 날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이제 많이 회복되어 혼자 대중교통도 탈 수 있고 일상생활도 가능하니 그동안 참석 못 했던 모임을 자신의 집에서 하겠다는 것이다.
6. 친구네 고층아파트 거실에 들어서니 광안대교가 보인다. 역광으로 친구의 모습은 실루엣이다. 울컥해진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껴안으며 ‘살아줘서 고맙다.’ 와 ‘와줘서 고맙다.’라며 뜨거운 마음을 주고받는다. 친구는 직접 김치를 담그고 밥을 해놓았다며 주방으로 나를 이끈다. 놀랍도록 많이 호전되긴 했지만, 절뚝절뚝 걸어가는 걸음걸이가 아직도 부자연스럽다.
7. 친구는 시도 때도 없이 엄습해오는 좌절과 체념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과와의 싸움을 얼마나 많이 했을까. 비록 의료계가 요구하는 골든타임은 놓쳤지만, 시간이 더 흐르면 치료가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인지한 친구는 지금이 생(生)에서 최고로 젊은 시간이라며 다부지게 마음먹고 재활치료를 했다는 것이다. 비록 편마비로 약간의 불편함이야 있겠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혼자 힘으로 일상생활을 소화해내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친구를 보면 지난해의 일이 떠오른다. 생각만으로도 아찔하고 절로 감사의 마음으로 두 손을 모으게 되는 일이다.
8. 제주도로 여행을 온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시월의 끝자락이어선지 차가운 바람이 유난히 많이 불었다. 집에 혼자 있는 남편이 걱정되어 전화했다. 점심을 먹었냐고 물었더니 건조한 목소리로 먹은 기억이 없다고 했다. 지금 어디냐고 물어도 어딘지 모르겠다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처음에는 혼자 두고 제주도에 온 것에 대한 심통을 부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통화가 길어질수록 남편이 점점 이상하게 느껴졌다. 하루전만해도 집 걱정은 하지말고 잘 다녀오라며 친절하게 공항까지 배웅했던 남편이 내가 제주도에 온 사실조차 전혀 기억을 못 하고 있었다.
9.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수긍하는 듯 하다가도 잠시뿐이었다. 남편이 기억하는 길이는 1분을 넘지 못했다. 했던 말만 자꾸 반복했다. 꼭 치매환자 증세와 비슷하였다. 생각이 그곳에 미치자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10. 남편과의 통화를 녹음하여 카톡으로 아들에게 보냈다. 한시도 지체하지말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도록 했다. 병원으로 가기위해 아들이 우리집에 도착하니 남편은 집 앞의 어두운 길을 왔다갔다하며 어쩔 줄 모르더라고 했다. 불 커진 집안에 들어서며 ‘엄마는 어디 갔냐?’며 한 시간 전에 나와 몇 번이나 통화한 사실도 기억 못 하며 마치 어린애 마냥 병원에 안가겠다고 생떼를 쓰더라는 것이다.
11. 이튿날 첫 비행기로 급히 들어와 대학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왜 내가 여기 있어?" 남편은 반복된 말만 할 뿐 그전의 상황은 전혀 기억 못 하고 있었다. MRI 촬영과 CT 촬영 후 갖은 검사를 하고서야 남편의 기억이 서서히 돌아왔다.
12. 남편의 잃어버린 기억 열일곱 시간. 그 시간을 빼앗아 가버린 병명은 ‘일과성 완전 기억 상실증’이다. 기억회로를 담당하는 뇌의 측두엽 부분에 이상이 생겨 일어나는 일시적 증상이라고 했다. 정확한 원인이야 알 수는 없지만, 뒷덜미로 스친 찬바람 탓이 아니었겠냐고 했다.
13. 주치의는 검사결과 뇌 속에 이상한 검은 점 하나가 발견되었다면서 며칠 동안 입원하여 좀 더 정밀검사를 하자고 했다. MRI와 CT 촬영을 몇 차례 더 하고는 기억 상실증으로 빨리 응급실로 왔기에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막 진행되려는 미세한 뇌경색이 발견되어 치료할 수 있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평소 고혈압약을 복용하는 남편에겐 또다시 그런 일이 있다면 지체없이 병원으로 달려와야 한다고 했다.
14. 지체없이 달려가야 하는 곳. 그것이 어디 병원뿐이겠는가. 얼마 전 소중하게 여겼던 분에게서 꽤 비싼 밥을 한 끼 잘 먹어 먹은 후, 조만간 대접하겠다는 인사를 해놓고는 이런저린 이유로 차일피일 마루다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 일이 있다. 그는 불의의 사고로 서둘러 생(生)의 마침표를 찍었지만 지키지 못한 그 약속으로 인해 나는 한동안 가슴앓이를 해야만 했다.
15. 누군가가 과거는 이미 부도난 수표이며 미래는 올지 못 올지도 모르는 약속어음이며 현재만이 내가 가진 소중한 현찰이라고 했다. 무슨 일이든 적절한 때가 있는 법이다. 그 때를 놓쳐 다시 되돌릴 수 없는 현실 앞에 많은 후회를 남기기도 한다.
!6.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시간이 얼마 남았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도 내게 주어진 시간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 시간을 맘껏 누리고 아낌없이 나누며 뜨겁게 사랑하며 살고 싶다. 지금이야말로 내 인생 최고의 시간, 골든타임이니까.
골목풍경/ 이시언
1. 자연 시간에 배운 개미집 단면도는 낯설지 않았다. 내가 사는 동네의 단면을 그려놓은 듯했다. 땅속에 구멍을 파서 집을 짓고 사는 개미들과 구불구불한 샛길 끄트머리에 주머니처럼 집을 달고사는 동네 사람들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2. 69번지도 개미집에 들어가는 것처럼 좁은 샛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개미 구멍같은 집에 달린 대문을 밀면 크고 작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방방이 세대를 이루는 가족들은 좁은 방에 모여 있었다. 단출한 가족은 단칸방에, 식구가 많은 가정은 작은 방이 딸린 큰방에 살았다. 몇 푼 더 가진 집주인들도 세던 이보다 크게 부유해 보이지 않았다.
3. 없이 사는 사람이 구름떼처럼 모여드는 달동네라 누울 수 있는 방이면 세가 날개 돋힌듯이 나갔다. 돈 받는 재미가 들린 집주인들은 한 뼘의 땅만 놀아도 방을 넣었다. 반장 집도 담벼락 곁에 날림 방을 달았다. 누가 봐도 앉을 자리가 아닌 곳에 들인 방은 애물단지였다. 하수 처리가 안 되어 궂은 날이면 세입자가 쏟은 허드렛물이 샛길로 흘러나와 골목이 질척했다.
4. 허구한 날 구정물이 튀어, 오가는 이들의 옷을 버리는 일이 많았던 반장 집 앞은 구설수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동네 사람들이 구정물을 골목으로 쏟지 말라고 반장에게 건의했지만 못들은 척했다. 반장의 싹수없는 행동이 못마땅했던 정자엄마는 반장을 갈구려고 별렀었다.
5. 어느 날 정자가 반장 집 앞을 무심히 걸어가다가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금방 갈아입은 옷이 엉망이 되자 정자는 동네가 떠나가듯이 큰소리로 울었다. 딸의 딱한 꼴에 성질이 난 정자 엄마가 급히 반장을 찾아갔다. 다짜고짜 반장집 문을 발로 차면서 방세 몇 푼 받아먹으니 배부르냐고 핏대를 세웠다.
6. 아무리 낯이 두껍다고 해도 이번만은 고개를 숙이리라 여겼던 정자엄마의 예상과 달리 반장은 뻣뻣한 목을 더 길게 뽑고는 눈을 내리깔았다. 되레 잘 보고 다니지 못한 정자의 칠칠피 못한 성격을 나무랐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큰소리치는 반장의 행동에 정자 엄마는 숨이 넘어갈 듯이 깔딱거리다가 황소처럼 달려들었다.낌새를 눈치챈 반장은 노련한 투우사처럼 정자엄마를 피했다. 질척한 흙바닥에 엎어져 나뒹군 정자엄마가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 좋은 구경을 만난 것처럼 사람들이 모여들자, 아주머니 몇분이 정자엄마를 일으켜 집으로 데려갔다.
7. 아이들은 싸우고 돌아서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이좋게 지냈으나 어른들은 그렇지 않았다. 사과를 받지 못한 정자 엄마는 반장은 물론 세입자까지 싸잡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그날의 분통을 하소연했다. 구설수에 오른 세입자는 까칠해진 아주머니들의 시선이 버티기 힘들었는지, 어느 날 말도 없이 골목에서 사라졌다.
8.골목 사람들은 추위만 가시면 담벼락 옆에 자리를 깔고 모였다. 노인들은 밤을 깎고 아주머니들은 홀치기를 했다. 얼마 안되는 푼돈이었지만 아주머니들은 부업으로 번 돈으로 함께 장을 보고 밥상을 차렸다. 어떤 날은 닭을 단체로 잡았는지, 샛길마다 닭비린내가 진동하여 채식을 하는 주인 할머니가 진저리를 쳤다.
9.살다 보면 닮는다는 말이 이 골목에 살면서 맞다 싶었다. 이사 오는 날은 이렇게 저렇게 다양한 생각도 하고 얼굴도 차림새도 구분되던 사람들이었는데,얼마 지나지 않아 헷갈릴 정도로 닮아갔다. 늙으나 젊으나 가꿔야 한다며 무허가 미용사를 불러 합동으로 머리 손질을 했다. 개인의 취향 같은 것은 애초에 무시하고 짧게 자른 머리칼을 뽀글뽀글 지졌다. 마치 우스꽝스러운 가발을 맞추어 쓴 것 같았다.더군다나 한창 유행하던 월남치마까지 맞춰 입고 샛길을 누비는 아주머니들의 뒷모습은 쌍둥이 같았다.
10.나는 골목 아이들과 잘 어울렸다. 개미구멍 속에서 사는 아이들에게서 끈적끈적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32색의 고급 크레파스를 책상 위에 펼쳐두고, 도화지를 물들였던 부반장의 콧대 높은 시선에, 굴종의 미소로 답하던 내가 아니어도 좋았다. 공주가 그려진 가방이 부러우면서도, 아닌 척 위장할 필요도 없었다. 허물없이 섞이는 골목의 공기가 공평하고 자유롭게 느껴졌다.
11. 마땅히 놀 곳이 없었던 아이들은 69번지 문 앞에서 많이 놀았다. 행인이 드문 막다른 골목이라 노는데 방해가 적었다. 이곳은 69번지 사람만 발을 들였다.간혹 큰길로 나가려던 장사꾼이 막다른 길인지 모르고 들어오기도 했다. 숨 막힐 정도로 좁은 골목에서 리어카를 돌리려면 애를 먹었다. 앞으로 갔다가 뒤로 물러나는 동작을 반복하면서 원을 그리듯이 돌려야 했다.
12. 샛길은 넓고 번듯하지 않아도 뭐라하는 사람도 없고, 온종일 서성여도 눈치 주는 이가 없었다. 우리는 갖가지 노래에 맞추어 고무줄놀이를 했다. 널을 뛰며 하늘 높이 오르고, 숨이 차도록 줄넘기도 했다. 그것도 지치면 앉아서 공기놀이를 하면서 숨을 돌렸다.
13. 머슴애들은 구슬치기와 주로 딱지치기를 했다. 장난이 심한 악동들은 계집애들의 고무줄을 끊어 가거나 공깃돌을 훔쳐 달아났다. 악동들의 심술궂은 장난에 화가 난 계집애들은 딱지나 구슬을 안 보이는 곳에 숨기는 앙큼한 음모를 꾸미기도 했다.
14.구불구불한 골목 위로 보이는 하늘에 저녁놀이 물들고 밥 냄새가 풍기면,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손을 털고 일어났다. 더 놀자며 붙드는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아이들은, 맛난 저녁을 먹을 생각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15.나는 맨 나중까지 골목에 남았다. 저녁 먹자고 부르는 엄마가 있었으면 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엄마는 어두워야 돌아왔다.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 갔다.꼬챙이로 흙바닥에 낙서를 했다. 엄마의 동그란 얼굴을 수도 없이 그렸다. 엄마가 몹시 보고 싶었다.
16.그때쯤 주인 할머니가 나타나곤 했다. 어린애가 왜 이러고 있나며 내등을 토닥였다. 할머니의 손은 늘 물기로 축축했다. 손을 잡을 때마다 내 손이 젖었다. 할머니는 엉덩이와 등을 털어 주셨다. 그리고 내가 손을 씻는 동안 수돗가에 서서 기다렸다.
17.할머니의 손을 잡고 마당을 지나 마루에 올라섰다.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침을 돌게 했다. 가라앉았던 허기가 체면도 없이 꼬르륵꼬르륵 소리를 냈다. 할머니 방에 차려진 밥상은 우울했던 내 마음을 따뜻이 데웠다. 할머니는 숟가락을 쥐어주며 어서 먹자고 하셨다. 반찬을 당겨주고 김치를 밥에 올려주는 친절에 나는 점점 길들여졌다. 할머니의 처진 눈매와 내 눈이 닮았다는 착각을 했다.
18. 밥을 다 먹은 후에도 나는 주인집에 머물러 있었다. 아무도 없는 빈방에 들어가 불을 밝히고 혼자 오도카니 앉아 있는 게 싫었다. 슬그머니 할머니 옆에 누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연속극을 들었다. 연속극이 끝날 무렵, 엄마의 목소리가 마당에서 들렸다. 엄마는 복숭아 몇 알을 주인집 마루에 올려 두고 나를 불렀다.개미구멍에 어둠이 차오르고 있었다.
레인스틱 / 채정순
보슬비가 창을 적신다. 방울져 흘려 내려 속속들이 파고든다. 초작초작 사르락 사르락 길고 길었던 가뭄을 적시는 단비다. 축 쳐진 살피 밭의 나무와 푸성귀가 연신 벙글거린다. 맨살로 맞으며 깨끗해진다고 집과 골목도 헤헤거린다. 세상이 촉촉해지니 내 오랜 가뭄도 점점 새파래진다.
수증기 만개가 한 개의 물방울이 된다 생각하니 이 비가 사람들의 한숨이 모여 된 것 같다. 창공에 삿대질하며 한숨을 들이 쉬고 내 쉬었다. 논바닥도 말라 쩍쩍 벌어지고 푸나무들 역시 열매는 쭈글쭈글하고 잎은 서걱거렸다. 비는 비릿하면서 싱그러운 냄새를 풍기며 계속 내린다. 맑고 가지런한 빗소리가 꼭 레인스틱을 닮았다.
레인스틱은 인디오의 전통악기다. 기둥선인장이 평생 기다림 끝에 거듭난 몸 울림 악기이자 주술적인 그릇이다. 제사장이 기우제를 드리면서 비의 신을 부르러 살며시 흔든다. 막대꼴을 침착하게 이쪽저쪽 천천히 기울이면 은은한 소리가 난다. 연주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이면 갈망으로 뭉쳐진 소리다. 한 생명의 생혼(生魂)과 각혼(覺魂)이 살아 있는 느낌도 든다.
기둥 선인장은 지구의 가장 건조한 안데스 사막에서 자란다. 밤에는 활강 바람으로 꽁꽁 얼고 낮에는 찌는 열기에 훈제가 된다. 높디높은 산맥이라 일교차도 견디기 힘 드는데 비 그늘 효과는 심한 갈증을 불러온다. 그러니 오롯이 서서 목을 길게 빼 하늘을 우러러 바라기를 한다. 물 한번을 벌컥벌컥 들이켜는 것, 온몸이 촉촉이 젖어 보는 것이 소원이다.
물을 찾아 촉수를 뻗는다. 뿌리를 땅속으로 파고들어 봐도 쓸모가 없다. 깊숙이 뻗어 내려 갈수록 감질감만 난다. 하릴없어 줄기를 굵게 내고 껍질을 왁스 층으로 둘러쌌다. 껍질의 방어벽으로 기공을 갖추었다. 또 잎 대신 가시를 만들어 혼신을 다해 에오라지 물을 품는다. 아르고인 양 남이 자는 한밤에 눈을 떠서 꼭 필요한 광합성만 한다.
동살이 희부옇게 틀 무렵, 안개가 모래 언덕을 마닐마닐 넘어온다. 안개가 사라지기 전에 몸에 붙어 있던 이슬을 한 방울이라도 더 얻기 위해 촉수를 곤두세운다. 허구한 날 따가운 햇볕을 받아내며 발을 돋우는 것은 이제나저제나 비 오기를 기다려서다. 하지만 하늘의 마음도 사막처럼 매 말랐다.
환한 낮에는 구름을 살핀다. 여러 구름이 모여들어 비묻기가 되기를, 어쩌다 매지구름을 보면 어서 몸 털기를 바란다. 스치는 바람결에도 줄기를 곤두세우며 조금이라도 물기가 묻어나길 비손 한다. 더는 낮 하늘이 비를 쏟아 붓지 않는 다는 걸 알면서 바랄 망(望)자를 가슴에서 떼놓지 못한다.
기둥선인장의 삶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갈망이다. 애타게 기다리지만 결국 가뭄을 견디지 못한다. 살아 있는 목숨의 기운은 물에서 온다. 흐르는 세월이 속절없이 힘을 가져가 버려 천년을 오로지 비만 기다리다 지쳐 쓰려진다. 허옇게 말라 코르디에라 한쪽에 널브러진다.
인디오의 삶도 그러하다. 고산지역에 살면서 밥과 옷을 얻으려 온데를 뛰어다닌다. 스스로 살아가려니 엉덩이가 처지고 어깨가 결린다. 곡식을 심고 키우기 위해선 비탈을 곡괭이로 파야하니 손도 부르튼다. 계단식 밭을 일궈 씨앗을 넣는 천둥지기는 자연 비를 기다린다. 비를 바라는 농사꾼은 호숫가나 언덕에서 비를 거느리는 신께 빈다.
기우제는 애가 타는 의식이다. 사람의 목소리를 대신해서 비를 부르는 무엇을 찾다가 가뭄으로 말라죽은 기둥선인장을 가져와 빗소리를 만든다. 자기들보다 기둥선인장의 한살이가 천 번 만 번 힘든 것을 훤히 안다. 또 굽슬겁은 성질이라 홀앗이살림을 하지 않고 낙타, 쥐, 거북, 새 등 사막의 숨탄것들을 거느리느라 비를 갈망한 삶도,
인디오는 죽은 기둥선인장으로 악기를 만든다. 양쪽 끝을 잡아 철심으로 속을 파낸다. 심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한 소망을 불어 넣는다. 가죽만 남자 인디오는 겉에 달린 수염 같은 가시도 칼로 따로 발라 모은다. 선인장 한쪽 끝을 완전히 막고는 다 빼내어 모아둔 가시를 선인장 안쪽에 나선형 형태로 다시 박아 넣는다. 꼭 박혀 있는 안쪽 공간에 마른 꽃씨를 적당히 채우고 다른 쪽도 단단히 막는다. 개성에 따라 겉에 인디오 전통문양을 넣거나 색을 칠한다.
레인스틱에는 인디오의 갈망이 다 들어 있다. 은근한 느낌으로 살며시 기울이면 늦가을 품은 공기처럼 차분하고 처연한 소리가 난다. 씨앗이 가시를 지나면서 이리저리 걸리거나 부딪쳐서 나는 소리다. 기둥선인장이 하염없이 비를 기다리며 환청으로 듣던 소리, 인디오가 자나 깨나 바라던 갈망이다.
비를 주소서, 비를 주소서
구주렵지게 산 죄 밖에 없는데 죽어서도 그 연속이다. 꿈속에서도 읊조렸고 빌붙는 자들이 늘어날수록 더 악착스레 되뇌었던 화두, 평생 미망(未忘)이 되어 사라지지 않은 문장이다. 기우제로 레인스틱이 온몸으로 우는 소리 애처롭다.
인간에게 오랜 갈망이 있다면 무슨 소리가 날까. 갈망은 짜증스럽고 싫은 감정으로 나타난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화를 내거나 그마저도 지치면 소리조차 닫아버린다. 아주 작고 가느다랗지만 가장 간절한 소리, 비를 부르는 소리는 보슬비처럼 가냘프다. 인간이 애타게 비를 부르는 소리도 레인스틱 소리와 같다.
한참 있었나, 그새 창밖이 환하게 밝아진다. 창문에 송글송글 맺혀 흐르던 이슬도 스러진다. 비가 그쳤다. 그러고 보니 앞산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 무지개가 걸쳐져 있다. 갈망 끝에 떠오른 희망이 촉촉하다.
웃음보따리/ 최선화
1. 웃음보따리가 터지고 있다.무슨 일인가 하고 뒷자리에 앉은 중년 여성들 쪽으로 눈 부조를 한다. 아마도 일행 중의 누군가가 우스갯소리를 한 모양이다. 목젖이 보이도록 웃는 것을 보니 핵폭탄급 이야기로 보인다.
2. 그녀들은 킥킥하는 소리와 함께 눈물, 콧물을 흘린다. 뒤늦게사 사람들의 눈길이 모여든 걸 알았는지 터진 웃음을 잠재우느라 애쓴다. 다들 약속이나 한 듯 눈가를 훔치느라 죄 없는 손들이 바쁘다. 몇은 겨우 얻은 휴지 한 장에 눈과 코를 닦으며 표정 관리에 든다.
3. 그런 중에도 떨림은 숨길 수가 없는지 부산하다. 어깨는 격하게 날뛴 심장 박동으로 인해 들썩이고 있다. 얼굴은 쉽사리 안정이 안 된 탓에 벌겋게 달아 올라 있다. 그러더니 찬물 한 그릇을 뒤집어 쓴 듯 드디어 조용해진다. 웃음을 참느라 용을 쓴 결과인데 그야말로 난리중에 난리다.
4. 그쪽의 분위기는 우리 자리에까지 전해 진다. 이유도 모르면서 너털웃음까지는 아니지만 다들 입꼬리가 올라간 채 웃고 있다. 진솔하고 정이 녹아 있는 웃음은 전염된다고 하더니 그랬다.
5. 건강한 웃음은 적극 권할 일이다. 사람들은 그런 웃음을 일러 보약이라고 한다. 그 말은 진리다. 웃음이 전해진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행복 바이러스가 전파된다는 뜻이기도 하기에 멀리하거나 밀어낼 일은 아니다. 오히려 보약 중에서도 만병통치약에 가깝기에 두 팔 벌려 반길 일이다. 비록 내가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주워듣고 흉내를 내도 좋다. 이는 의학적으로도 증명이 되었으며 웃음 치료사가 존재할 정도로 환영을 받고 있다.
6. 물론 그와 반대 현상도 있다. 씁쓸한 실소와 같은 현상이 먼저 떠오른다.그것은 퍼다 나를수록 환부를 키울 뿐이다. 비아냥거리는 것에서 시작하는 실소도 그렇다. 그런 웃음은 상대방과의 인간관계가 끊기는 원인이 된다. 그러다 보니 우리를 허탈하게 하는 씁쓸한 웃음 앞에서는 너도나도 손사래를 치게 된다.
7. 어느 해 겨울, 출근길에서 본 여자의 모습이 기억난다. 그녀는 겨울용 윗도리에 여름용 냉장고 바지를 뒤집어 입고 있었다. 어울리고 안 어울리고가 문제가 아니다. 도대체 무슨 궁합인지 꿰맞출 수가 없었다. 억지로 계절과 연결시키려고 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 환상적인 모습이었다.
8. 머리카락은 수세미 속처럼 뒤엉켜 있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파마한 긴머리카락을 길길이 풀어 헤친 채 웃음을 흩날리며 가다 말다 했다. 도저히 신호가 바뀔 때까지 지켜볼 수가 없어 혀를 차며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그녀는 정신줄을 놓은 것 같았다.
9.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성별로 분류되는 처지면서도 구경만 하고 있는것이 안타까웠다. 마음 같아서는 차를 어디인가에 세워 두고 그녀를 위한 일을 하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직접 집을 찾아주는게 힘들면 경찰서에 신고라도 해주었으면 좋았겠는데 신호가 바뀌어 그도 저도 할 수가 없었다.
10. 길거리를 가던 사람들도 그녀가 안 보일 때까지 걸음을 멈추거나 뒤돌아보곤 했다. 단지 본인만은 별일 아니라는 듯 히죽히죽 웃다가 잇몸이 보이도록 웃음보따리를 터뜨리며 길거리를 배회했다. 차림새로 보나 상대도 없는데 웃음보따리를 터뜨리는 것은 중병의 증세로 보였다. 지금도 출근길의 그녀가 생생할 정도로 웃음보따리의 여운은 길고도 강했다.
11. 의사는 의술과 약으로 환자를 치료한다. 맹물을 약이라고 먹여도 의사의 친절이 보태졌다면 약보다 나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다들 아는 바다.그것에 보태서 웃음 치료사급 치료를 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이는 상식임과 동시에 웃음의 가치를 말해준다. 그렇다면 웃음을 넘어 웃음보따리가 제 몸값을 다한다면 좀 더 건강한 사회가 될 줄 안다.
12. 웃음보따리가 세상의 이불이 되어줄 일들이 넘쳐나기를 바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소확행/ 엄옥례
1.이순耳順의 문턱을 넘은2024년 5월, 귀가 순해진 탓일까. 공기처럼 물처럼 여긴 것들이 새삼 감사함으로 다가온다.
2.폴란드에서 일하는 큰아들 심부름으로 경찰서 민원실에 왔다. 아들의 국제운전면허증이 만기 되었다며 재발급해서 보내달라고 해서다.
3.대기 번호를 뽑아 기다리다가 호명받아서 담당자 앞에 섰다. 준비해 간 서류를 확인하더니 한 가지가 빠졌단다. 전날 안내받을 때 내가 제대로 듣지 못했던 건지,아니면 안내하는 쪽에서 한 가지를 누락했는지 모를 일이다. 서류를 보충해서 다시 오라고 했다.
4.현재 시간 오후3시. 오늘 안으로 면허증을 발급받아 보내야 해서 마음이 급해졌다.보충 서류를 떼는 곳은 다행히 바로 옆에 있는 구청이다. 달려가서 담당 창구에 서류를 신청하니 아들 본인 도장을 찍어야 한다고 했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자꾸만 일이 꼬였다.
5.마음을 가다듬고 주변에 도장 파는 곳을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아들에게 연락했더니 출근 시간이라 바쁜 모양이었다. 겨우 통화가 되어 집에 도장 보관해 둔 곳을 알 수 있었다.
6.얼른 집에 가서 도장을 가지고 구청에서 서류를 뗐다.다시 경찰서 민원실로 이동하여 면허증 발급을 마쳤다. 마지막으로 우체국에 가서 부치기만 하면 된다.
7.우체국은 경찰서 민원실 바로 건너편이다. 겉봉투에 주소를 꾹꾹 눌러쓰고 접수하니 4시 56분이었다. 5시 안에 접수하게 돼서 다음 날부터 배송이 가능하다고 했다. 문득, 인프라가 참 괜찮은 곳에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8.이틀 후면 어머님 기일이다. 생신은 한여름이라 땀을 뻘뻘 흘리면서 준비했었다.찰밥을 안치고 미역국을 끓이고 전과 잡채를 장만해서 상을 차릴 때면, 땀방울이 음식에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일은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이라 음식 장만하기가 좋다.
9.어머님이 즐기시던 감주를 달이고 쫀득한 찰떡도 샀다. 지금 한창인 산나물도 파랗게 데쳐서 금방 짜온 참기름으로 무쳤다. 도라지,고사리도 볶고,돔배기,조기,산적도 구웠다.북어포와 알이 굵은 사과,배,곶감,밤,대추도 마련했다.
10.작은아들은 창고에서 상과 병풍,자리를 꺼내 왔다. 상에 제수를 진설하고 상 밑에 보자기도 펼쳐두었다. 제사가 없어진 조상께 어머님이 한보따리 싸가지고 가서 대접하라는 뜻이다.
11.자정 쯤 제사 모실 준비가 다 되었다. 휴대전화기의 가족 대화방을 켰다. 헝가리에서, 폴란드에서 일하는 남편과 큰아들이 퇴근한 시간이어서 참여할 수가 있다.남편이 시키는 절차에 맞추어 다 같이 절을 했다. 좋은 계절에 제사가 있어서, 그리고 가족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함께 할 수 있음에 가슴이 뭉클했다.
12.몇 년 전년부터 남편과 떨어져서 지낸다. 남편이 외국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아이들 뒷바라지와 내 나름의 일이 있어서 남편을 따라가지 못했다. 일 년에 몇 번 남편이 휴가를 나오고 방학 때면 내가 남편을 만나러 간다.
13.예순이 가까워지고는 같이 지내도 대화가 별로 없었다. 눈길로 서로 통하고 각자의 일을 이해하면서 지냈다. 자식 낳을 시기도 아니니 한 이불 덮고 눕는 일은 거의 없었다. 불같이 뜨거운 시기는 전설이 되고 있었다.
14.데면데면하고 지냈지만, 몸이 서로 딴 데 있어서인지 남편에게 마음이 쏠린다.영상 통화로 소식을 주고받으면서 같이 있을 때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눈다. 물설고 낯선 곳도 마다하지 않고 일하러 간 것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생긴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이 있듯이 허전함을 느낄 때도 있다.
15.그 허전함 때문일까. 혼자서 가끔 양푼에 밥을 푸고 냉장고에 묵은 반찬을 넣어 비벼 먹기도 한다. 숟가락에 밥을 봉두로 떠서 입에 넣다가 뜬금없이 눈물이 핑 돌 때가 있다. 노년에 얼마나 ‘삐까뻔쩍’하게 살려고 부부가 이렇게 떨어져 지내야 하나 싶어서다. 하지만 남편의 빈자리로 넉넉해진 시간과 허전함을 느낄 때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글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천만다행으로 여겨진다.
16.지금, 소소한 일에 감사함이 부쩍 밀려들고 있다.아들의 일로 종종걸음치면서,어머님의 기일을 맞이하면서, 그리고 남편의 빈자리를 느끼면서. 하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뭐든 나쁘기만 한 것은 없지 않을까.
명의名醫/ 백금태
1)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임영웅 대전 콘서트에 가는 길이었다. 두 달 넘게 손꼽아 기다린 콘서트가 아닌가.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하지만 콘서트로 인한 설렘만은 아니었다. 심장이 고장 난 듯 벌렁거렸다.
2) 얼마 전에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삼십여 분간 갇혔었다. 폐쇄공포증으로 호흡곤란이 오는가 싶더니 극심한 두통이 이어졌다. 119에 의해 가까스로 구조되었지만 후유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두통으로 동네병원을 전전하다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의사의 소견을 들었다.
3) 종합병원을 찾았다. 동네병원에서 뇌를 찍은 CD파일을 보던 의사가 대뜸“혼자 왔느냐?”고 물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드라마에서 흔히 듣던 소리였다. 심각한 병에 걸린 환자에게 직접 말하지 못하는 경우 보호자한테 설명해야 할 때 하는 소리였다. ‘아하, 뭔가 잘못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의사는 한술 더 떴다. 가족과 의논해서 서울로 가란다. 대구의 의술로는 힘들 것 같다는 말을 보탰다. 청천벽력이었다. 서울로 가기 전에 다른 병원에서 한 번 더 진료받아보기로 했다. 서울까지 움직인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4) 다음 날, 대학병원을 찾았다. CD를 본 의사의 말은 간단명료했다. “검사를 해봐야 어떻게 할지 안다”라는 한마디가 끝이었다. 이렇다 저렇다 상태의 설명도 없었다. 답답한 환자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었다. 검사 날짜를 잡아주고는 진료실에서 내쫓다시피 했다. 의사와 대면한 시간이 2, 3분이나 될까. 의사의 말이 맞긴 하다.밀려드는 환자에 일일이 화답할 시간도 없으리라. 그러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환자의 마음은 야속하기만 했다. 한 달 후로 잡힌 검사 용지를 들고 병원을 나섰다.
5) 검사를 기다리는 한 달이 나에게는 지옥이었다. 병원이라고는 아이를 출산할 때 외에는 거의 가본 적이 없었다. 예방주사도 무서워서 피하는 병원 기피증 환자라고나 할까. 평소 건강 체질이라 자만하고 살았다. 흔하디흔한 고혈압이나,당뇨병 등등 성인병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단지 체중이 미달이라 힘이 없는 것이 흠이었다. 그런데 서울까지 가야 하는 중병이라니!
6)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100에도 못 미치던 혈압이 150을 오르내렸다. 가슴이 두근거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자리에 누우면 침대가 들썩거릴 만큼 심장이 요동쳤다. 신경안정제를 먹고 잠을 청했지만 한두 시간 눈을 붙일까 말까였다. 심장이상을 호소하며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했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이 상태는 그대로였다. 장기가 하나씩 반란을 일으켰다. 조그마한 부품 하나가 기계 전체를 좌지우지하듯 몸의 한 부위가 이상 증세를 보이자 위장이, 심장이, 폐에 이어 몸 전체가 도미노처럼 신호를 보냈다.
7) 검사 날, 무거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직전 병원의사의 소견에 따르면 나쁜 결과가 나올 게 뻔했다. 검사가 끝나고 병원에 누워 결과를 기다리는 하루가 너무 길었다. 다행스럽게도 상태를 조금 더 지켜보자는 의사의 말에 하늘을 날 것 같았다. 지금 당장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나중 생각을 나지 않았다. 그저 지옥에서 탈출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놀란 가슴은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혈압은 여전히 들쭉날쭉했고, 가슴 벌렁거림도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8) 검사 후 일주일간은 절대적 안정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다. 그런데3일 후 임영웅 콘서트가 대전에서 열렸다. 사위가 54만 대1의 경쟁률을 뚫고 티켓팅해 준 콘서트 표였다. 포기할까 몇 번이나 주저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사위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임영웅을 봐야 한다는 열망이 더 컸다. 임영웅 콘서트를 좇아 전국을 누비던 마누라를 벌레 씹은 듯 못마땅해하던 남편이 큰 심을 썼다. 힘 들어하는 아내의 마음이 치유되길 바라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대전행을 권했다.
9) 전국에서 몰려든 수천 대의 관광버스를 뚫고 대전 컨벤션센터 앞 광장에 내렸다. 여느 콘서트와 마찬가지로 구름처럼 몰려던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너도나도 차려입은 푸른색 응원복은 푸르디푸른 동해를 만들었다. 푸른 물결이 되어 넘실거리는 사람들 틈에 나도 끼었다.
10) 콘서트가 막을 열었다. 가수를 태운 우주선이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자 콘서트장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가수의 격정적인 퍼포먼스에 체면도 나이도 다 팽개친 채 몸을 흔들었다. ‘소리 질러’란 가수의 외침에 목이 터지라고 함성을 질렀다. 절대안정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주의도, 몸 많이 움직이지 말고 조용히, 조심하라는 남편의 당부도 잊어버린 채 광란의 물결에 휩쓸리고 말았다. 뛰고 흔들고 소리 지르다 3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조심해서 가시라’는 가수의 인사와 함께 마지막 노래가 잔잔히 울려 퍼졌다. 그때 서야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의사와 남편의 얼굴이 퍼뜩 지나갔다. 지끈거리던 머리통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구름이 걷힌 듯 맑은 하늘이었다. 요동치듯 벌렁거리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잔잔한 호수였다. 신기했다.
11) 남편한테 전화를 걸었다. 얼마나 걱정했는지 남편의 목소리가 속사포처럼 튀어나왔다. 몸 괜찮냐고?
“여보, 임영웅이 명의야.”
생뚱맞은 소리에 남편이 “뭐, 뭐라고?”라며 의아하게 물었다.
“임영웅이 내 병을 고쳐 준 명의라니까!”
전화를 끊었다. 내 밝은 목소리에 남편도 짐작했으리라.
향수(鄕愁)/ 서소희
1) 의식이 깨인다. 분명 깨였는데 아직도 잠속에 있는 듯 마음이 고요하다. 겨울 새벽, 허공은 아직 어둠이 지배하고 있다. 동질의 어둠은 속을 보여준다. 처음에 까맣게 보이던 거실이 조금씩 밝아지고 숨어있던 사물들이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낸다. 어둠이 속에는 형태가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적요도 있다. 적요는 시간을 거슬러가 멀고 먼 풍경을 불러오고는 한다.
2) 무연히 유년시절의 내가 모습을 드러낸다. 번잡함속에 잊히었던 풍경이다. 어둠의 적요를 틈타 심장 속 깊은 곳에 묻혀있던 오래된 삽화들이 하나, 둘 희미하게 모습을 갖춘다. 마침내 퇴색되었던 색깔이 덧칠되고 풍경이 완성된다. 흙 담벼락이 보이고 커다란 석류나무가 신기루처럼 나타난다. 만개한 주황빛의 석류꽃, 그리고 우물이 보인다. 흙 담, 석류나무 그리고 우물 그것은 고향집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이다.
3) 아무도 없는 집에 홀로 있으면 어린 시절의 나는 가만히 우물을 들여다보고는 했다. 깊은 우물을 들여다 본 적이 있는가. ‘야아’하고 소리치면 소리는 미묘한 울림을 가지고 공명했다. 그리고 이내 고요해졌다. 우물은 깊었고 깊은 만큼 무서운 곳이었다. 혹시 잘못하여 저 곳에 빠져버린다면 가족들은 나를 찾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이 항상 궁금했다.
4) 한번쯤 그 곳으로 내려가 차가운 물을 직접 만져보고 싶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어쩌면 우물속의 고요를 직접 느껴보고 싶었는지 몰랐다. 바람조차 접근할 수 없는 곳, 오직 두레박만이 접촉 할 수 있는 곳에 홀로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어린 시절부터 그런 고요가 궁금했던 것인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이 새벽의 고요가 그 시절의 고요 불러온 모양이다.
5) 부모님이 처음 우물을 팔 때 아무리 땅을 파도 물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샘이 있다는 확신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물을 찾아 시작한 공사였으니 멈출 수도 없었다. 폭탄이 두 번 설치되었다. 그것을 터트릴 때 집터가 들썩했다. 그 만큼 어렵고 큰 공사였다.
6) 마침내 샘을 찾아내었다. 밧줄을 타고 사람들이 내려갔던 것일까. 샘 주위로 동그랗게 돌을 쌓아 올렸다. 하늘을 향해 뻗은 동굴처럼 둥근 돌이 차곡차곡 쌓여 허공과 연결이 되었다. 그렇게 고향집 우물이 만들어졌다. 우물 속 돌은 파란 이끼를 키웠고 파란 이끼는 점점 까만색으로 변해갔다 .이끼를 품은 돌은 화석처럼 샘을 지켰다.
샘은 빛이 들어가지 않는 깊은 곳에 있었다. 위에서 바라보면 까만 원판처럼 보였다. 우물담보다 키가 커지면서부터 목이 마르면 직접 우물 속으로 두레박을 던지고는 했다. 두레박과 함께 밧줄이 주루룩 흘러내렸고 일 초,이 초······,짧지 않은 시간의 흐른 후 찰방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까만 샘물이 두레박주위로 작은 원을 그리며 파문을 만들었다.
7) 작은 손으로 줄을 당겨 올렸다. 여린 팔뚝 힘으로 얼마나 많은 양의 물을 길었던 것일까. 꿀꺽꿀꺽 목마름을 해결하고도 두레박의 물은 넉넉했다. 이상하게 물이 달았고 깊은 만큼 시원했다. 그리고 남은 물은 석류나무에 뿌렸다. 마르지 않는 샘이 있으니 물은 흔했다. 무엇보다 물을 긷는 일이 놀이처럼 재미있었다.
8) 한 겨울에도 샘은 얼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겨울은 혹독했다. 눈이라도 내리면 천지간은 하얗게 변했다. 좁은 골목길도 눈이 무릎까지 쌓였다. 그때는 함박눈도 자주 내렸다. 고향의 겨울하면 그 하얀 풍경 먼저 생각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당연히 수도는 얼어서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니 우물의 샘은 우리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던 것이다.
9) 시골에서 집에 우물을 둔다는 것은 흔한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여름이 되면 이웃은 자주 우리 집 우물을 찾았다. 미숫가루를, 국수를 시원하게 먹기 위해서였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시원한 물은 귀했다. 물론 집집마다 수도가 있었고 동네 입구에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우물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집 우물의 청량함을 따라오지 못했던 것이다.
10) 시골 풍경이 그러하듯 집집마다 흔하게 오리나 닭을 길렀다. 닭은 한 곳에서만 알을 낳는 반면에 오리란 녀석은 걸어 다니면서 알을 낳고는 했다. 우물가에는 녀석들의 알이 한 개 혹은 두어 개는 꼭 굴러다녔다. 우물가에 놓여 진 알은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였다. 그 알을 주워 앞뒤로 톡톡 껍질을 깨어 작은 구멍을 만들어 호로록 마셨다. 잠시 후, 비릿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입안으로 번졌다. 아,그때의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11) 입 안 가득 비릿함을 물고 하늘을 바라보면 햇살은 하얗게 빛났고 석류꽃은 만개했으며 우물가의 하얀 오리들은 꽥꽥 울음을 울었다. 그 풍경 속에서 자주 우물의 샘을 들여다보던 작은 아이는 키를 더 키웠고 커진 키만큼 샘을 들여다보지 않는 시간이 흔해졌다. 그리고 그 풍경을 두고 고향을 떠나왔고 도시인의 삶을 배워갔다.
12) 도시에서는 배워야 할 것이 많았다. 머리는 여러 가지 생각으로 복잡해져 갔고 우물이, 우물가에서 놀던 오리가, 석류나무가 삶속에서 자연스레 퇴색되어갔다.어느 날 부터는 잊는 줄도 모르고 까맣게 잊혀졌다. 신기한 것은 많은 것이 변했어도 여전히 고향 소식을 듣는다. 집성촌이던 고향이웃은 대부분 일가 할아버지였고 아재였고 같은 항렬을 가진 언니 오빠 혹은 친구였다. 그러니 집안에 잔치가 혹은 장례식이 있으면 자연스레 소식이 묻혀왔다.
13) 고향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이상하게 고향집 우물이 떠올랐다. 물이 흔해지고 냉장고가 사시사철 돌아가는 요즘도 우물 샘을 길어먹을까. 우물담은 어떤 모습으로 늙어 있을까. 아득히 깊었던 샘은 또 얼마나 낮아졌을까.우 물을 지키던 석류나무는 지금도 붉은 열매를 알알이 매달고 여전히 우물을 지키고 있을까.
14) 안타깝게도 고향집 우물 소식은 들을 길이 없다. 고향집에는 아무도 없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고향집을 샀던 일가친척도 모두 고향을 떠나 도시로 혹은 하늘나라로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다만 샘을 감싸고 있는 돌은 여전히 까만 물이끼를 품고 늙어가고 있을 것이라 상상할 뿐이다. 유년의 삶이 담겨 있는 곳, 흐린 날이면 물비린내와 흙 비린내를 함께 풍기던 고향집 우물가. 그곳은 내 삶의 근원적 그리움이 박제되어 있다. 그래서 가끔 아주 가끔 그곳에서 우물물을 마시던 어렸던 내가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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