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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가택연금이 풀렸으니 사회복귀를 해보자.
2020년 5월 24일. 서울대 뇌물수수 사건. 일명 명소민 출입구의 주범 명소민에게 내려진 가택연금이 풀렸다. 엉망이 된 상태에서 법원의 공지를 들은 명소민은 처음에는 잘 알아 듣지 못하다가 우크라이나인 가정부가 이제 석방되었다고 재확인을 시켜주자 그제서야 현실을 파악하고 기뻐서 펄펄 뛰었다. 당장에 수면가운을 벗고 가벼운 옷으로 갈아 입은 다음에 곧바로 1층 로비로 내려갔다. 위치추적 밴드는 연금해제 전날에 여경이었던 홍민주,민솔이 떼어 줬지만 명소민은 경찰에서 장비 정검을 하는가? 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1층 로비의 유리문이 열리자 조심스럽게 한걸음을 내딛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감금된지 11년만에 1층 로비의 유리문을 넘어서 나왔다. 가택연금 2년차에 고교동문 홍민주,민솔에게 부탁하여 경찰의 감시를 피해서 한밤에 드라이브를 나온 것을 제외하면 처음이었다. 주차장까지 걸어 왔지만 아무도 소민을 제지하지 않았다.
"명소민 씨. 이제 죄 짓지 말고 착하게 사세요!"
'아직 고 주민지 씨 살인사건의 혐의가 남아 있어. 이 썅년아! 나중에 또 보자.'
검찰청 차량을 타고 지나가면서 담당검사가 외쳤다. 명소민은 다시 자유의 몸이 되었다. 너무 기뻐서 방방 뛰었다. 고결하고(반어법) 우아하며 재색겸비하다는 거실에서 다른 이들이 지켜보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명소민이 쇼생크 탈출의 재소자처럼 좋아서 방방 뛰었던 것이다. 가택연금이 해제된 시간은 이제 겨우 아침 출근시간을 지난 오전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출근한 타워팰리스의 주차장은 한산했다. 뒤따라 내려온 우크라이나인 가정부가 명소민에게 외출용 겉옷을 내밀었다. 지갑과 휴대전화,명품 시계를 소지하자 이제서야 고소득자 여사님으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남편 이서방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내 계좌를 개설하고 money을 송금해."라고 호통을 쳤다. 이서방은 네네. 하면서 일단 명소민이 원하는대로 일을 처리했다. 오늘만큼은 특별히 석방기념으로 서비스를 해주는 것이다.
휴대전화 알람으로 은행 계좌에 옛날처럼 막대한 money이 입금되었음을 확인한 명소민은 곧바로 모범택시를 타고 고교동문 방유경의 병원으로 향했다. 친구라고는 방유경밖에 없으니 석방되었다고 점심 식사나 하자고 놀러갔다. 외체차로 자가용이 3대나 있었지만 법적으로 국고에 귀속되었고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차량 자체가 쓸모없게 되어 버렸다. 소민의 차량은 차후에 구청에서 견인해갔고 대한민국 육군에 양도하여 연습용 표적이 되었다. 외과 원장 방유경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못난이 명소민을 보고 놀랐지만 가택연금에서 풀려났다는 말을 듣고 "아 그래. 정말로 잘 되었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럼에도 자기 이외에 친구 하나 없는 불쌍한 명소민을 위하여 인사치레로 기뻐하는 척 해주었고 이미 점심 선약이 있었지만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찌질이 친구를 위하여 내일 모래로 약속을 조정하면서까지 명소민과 점심식사를 같이 먹으면서 명소민의 설레발을 들어주었다. 명소민이 석방된 다음날에 인터넷 뉴스든지 조선일보의 사회기사 7면을 통하여 서울대 뇌물수수 사건의 주범,명소민의 가택연금이 해제되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유심히 읽어 보는 독자들은 없었다. 감금당한지 11년만에 명소민은 세상에서 거의 잊혀졌다. 영향력이나 인지도는 다 사라졌고 그저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사회적으로 뒤쳐진 인생낙오자만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과 다르게 money을 많이 주는 남편 이서방이 있을뿐이다. 명소민은 방유경과 점식식사를 먹고 난뒤에 일이 남아 있는 방유경을 뒤로 하고 모범택시를 타고 한동안 한성 시내 유람을 다녔다. 택시요금이 많이 나와도 아무 걱정 없었다. 근방에 프라이트 나이트 카페로 들어가서 비싼 쇼콜라 음료수를 마시면서 자유를 만끽했다. 가택연금이 해제되기 며칠전에 이서방이 명소민이 사용할 휴대전화를 새로 장만했다. 우크라이나인 가정부가 내밀었던 휴대전화가 바로 그것이다. 명소민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친정의 애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명소민의 번호는 차단되어 있었다.
무슨 기종을 쓰든지 소민의 휴대전화 번호는 그대로였지만 서촉 명씨 문중에서는 제명당한 상태였다. 엄빠는 물론이고 가까운 친척들은 아무도 받지 않았다. 소민에 관련된 일로 문의가 있으면 남편 이서방을 통해서 이야기가 오갔을 뿐이다. 그날 오후에 하교한 쌍둥이 딸 명효진과 명소명은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엄마를 보고 "뭐야. 저@@은."라는 표정으로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소민이 가택연금에서 석방되든지 어디 나가서 죽어버리든지 딸내미들의 마음속에서 명소민은 개뼉다구만도 못한 존재가 되었다.
딸내미들을 안으면서 기뻐하는 명소민은 딸들의 냉담한 표정을 보지 못했다. 가택연금이 풀린 5월에서 다음 6월까지 명소민은 여기 저기 들쑤시고 다니면서 가택연금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었다. 평소에는 한번도 가지 않았던 시립 도서관에도 방문할 정도다. 삼성 에버랜드 유원지나 사립 미술관에도 가보고 간만에 차량을 새로 구입하려고 BMW한성 지사를 찾았지만 BMW가 최종부도가 나서 폐업했다는 말을 듣고 잠시 충격을 받았다. 할수 없이 스웨덴제 폴스타를 구매예약할 수 밖에 없었다. 운전을 안 한지 오래 되었고 강습소를 찾아서 다시 운전감각을 되찾아야 했다. 이렇게 다시 재충전하고 정상인의 감각을 되찾는 와중에 어느새 7월이 되었다. 초여름의 어느날. 자신의 비정상적인 현황을 파악하고 명소민은 현자 시간을 가졌다.
"나 이제 뭐해야 하는 거지........."
이제 더 이상 서울대 교수가 아니었다. 번듯한 직장이 있는 한 것도 아니고 어떤 직위조차 없었다. 서울대 교수가 아닌 명소민은 그냥 money 많은 실업자일뿐이다. 사전적 의미에서 설명하는 실업자보다는 상황이 백배 나았지만 아무것도 할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라면 가택연금을 당한 그 시절과 다를게 없었다. 그저 외출이 자유롭다는 차이 말고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여전히 출국금지 상태지. 출국금지 풀리려면 6년이나 남았고."
대학교의 전임교원이라는 폐쇄적인 직업생태계가 아니라면 명소민이 무슨 일을 할수 있을까? 명소민은 처음으로 자아붕괴에 가까운 혼란을 겪었다. 고소득자의 여식이며 엎드려 절하는 부마도위를 거느린 서촉 명씨의 공주,재색겸비로 무장한 서울대의 교수. 이것이야말로 명소민이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신분적인 갑옷이었다. 이제 과거의 영광은 없다. 고소득 실업자라는 현재 상태는 명소민의 자존심이 용납치 않았다. 남들이 다 일하는 한낮에 홀로 강남 번화가에 온 명소민은 자괴감을 느꼈다. 이는 곧 수치심으로이어졌다. 명소민은 사법적 징계를 받기 이전에 명소민이 멸시하면서 하찮게 여기던 일개 쇠수저 시민들만도 못한 존개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무직자 다음으로 비참한 실업자........(0_0) 명소민은 크게 한숨을 쉬고 베르사유 백화점에 가려던 발길을 돌려 모범택시를 타고 다시 타워팰리스 자택으로 돌아왔다. 모처럼만에 자신의 개인 서재로 들어가서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하아. 자아를 찾는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은데 출국금지이고 이대로 매일 같이 한성시내에 어디 놀러 가면서 시간 때울수도 없고............"
멍하니 서재에 앉아서 가정부가 내온 배도라지청 차를 마셨다. 너무 책을 안 읽어서인지 이제는 화학전문 서적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문득 남편 이서방이 생각났다. 사회적 경험이 많은 이서방이라면 자신을 도와주리라. 소민은 이서방이 귀가하기를 기다렸다. 오늘 따라 사탄이 소민의 바램을 들어주려는지 이서방이 헬스클럽에서 일찍 귀가했다.
"사모님. 사장님이 귀가하셨습니다."
"어어어. 이서방. 잠시 서재로 좀 와줘."
"아. 명 교수. 무슨 일이야??? 오늘 외출 잘 하고 왔어."
"응.......... 당신은 이제 내가 실업자가 되었는데 별 반응이 없네."
"하하하하. 명 교수에게 실업이든지 아니든지 그건 아무 의미가 없잖아. 언제나 그렇듯이 상류층의 고고한 여사님이신데."
"하아....... 아버지에게는 의절당했고 이제는 money 주는 이서방밖에 없잖아. 딸년들을 나를 소가 닭 쳐다보듯이 대할뿐이고 아무 관심도 안 보여. 나. 내 딸들하고 대화단절이야. 학부형으로서의 의무도 하지 못했어. 딸들이 중학생인데 효진이,소명이 담임이 누군지도 몰라."
"그래.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러겠지. 이제부터라도 애들 학교에 학부형으로 모임에 자주 참석해봐."
"나한테 그게 아니라 나로서의 자신감을 찾고 나로서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무언가 필요해. 서울대 교수로서 추앙받던 시절처럼."
"아. 그래..... 명 교수에게 무슨 일이 필요할까?"
'미친 년. 니가 무슨 일을 하겠다고. 막말로 회사에 가서 인턴으로도 일할 수 있겠냐. 사회생활도 못 하는 년이.'
"무슨 일을 하면 좋으까. 내가 다시 추앙받을 수 있는 직업이 있을거야."
"...................................................."
'비정규직 일도 못 하는 년이 어딜 가서 나대려고. 어느 누구라도,어느 직종이든지 하찮게 취급받지 말아야 하지만 처음 사회인이 되었을때 직장 윗서열이나 고객에게 정중히 머리를 숙이지 못하면 아무 일도 못해.'
"대학교 교수 이외에 다른 일을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어."
"아...............(0_0)"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온다.)
"뭘 좀 생각해봐. 이서방."
"명 교수. 당신은 타인의 아래에서 명령을 받고 일할수가 없어. 고 강형찬 교수님의 랩실에 있었을때야 고인께서 친구 딸내미라고 편하게 대해주니까 캠핑장에서 노는 기분으로 연구할 수 있었잖아. 당신이 장례식장에서 막말을 뱉었던 그분의 휘하에 있었을때처럼." (완곡하게 말하면서 쇠망치로 뼈를 내리친다.)
"아............ 그 때는 내가 흥분해서 제정신이 아니었어. 충분히 반성하고 있어.(--;)"
"그러면 좋겠군. 명 교수. 당신의 경력으로는 어느 회사에 이력서도 못 내. 굳이 찾아본다면 민간연구소에 가서 채용해달라고 내가 선을 대줄 수 있지만 당신이 옛날에 저지른 사건이 워낙에 컸어야지. 뇌물 사건은 둘째치고 화학과 교수였던 고인에 대해 능멸을 했잖아. 화학과 인맥은 좁아. 다른건 몰라도 화학과 대선배의 영전에 대고 언어테러를 터뜨렸으니 대학교에 연계될수 밖에 없는 민간연구소에도 명 교수를 받아줄 가능성은 희박해. 민간연구소 사람들도 대학교 학연으로 엮어져 있어. 명 교수는 국내 화학계 한정이지만 임용,채용,섭외. 기타 등등 절대 금지로 검은 목록에 올라와 있잖아."
"아이고오오오오오.......... 나 어떻해."
"여차하면 외국계 기업이나 연구소에 접촉을 해보겠지만 출국금지가 풀려야지 갈수 있지. 국내에 지사가 있는 외국계 기업이라고 해도 명 교수라고 하면 전과기록을 살펴 볼것이니까 명 교수는 많이 어려워."
"이런 젠장 빌어먹을..............(+_+)"
"................................................................................................."
'고 주민지 씨를 살해하고서 고작해야 너는 추앙받을 수 있는 직위가 없다고 징징거리냐. 꼴 좋다. 음..... 그래도 사회생활의 쓴맛을 좀 보는게 좋지 않을까!'
"이서방. 어떻게 좀 해줘."
"아...... 내가 좀 생각해볼께. 며칠 기다려줘. 당신은 재충전을 위해서 정신건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도움이 될거야."
"구체적으로 뭘 어떻하라는 거야?"
"명교수. 일단은 명 교수는 아침 저녁으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옛날에 서울대 교수로 있던 시절처럼 말이야. 지금도 아침저녁 시간이 혼란스럽잖아. 오늘 아침도 열시 이후에 일어났지."
"아........... 그래."
"옛날에 교수직에서 근무하던 그 시절처럼 옛날 감각을 찾는 것이 최우선이야. 밤늦게 유료채널에서 외국 연속극을 첫편에서 완결까지 정주행하는 습관부터 고치는 것이 어때. 가택연금 내내 유료채널을 통해서 연속극은 실컷 봤잖아."
"맞아............ 당신이 옳아. 나에게는 사회적인 명망과 신분을 찾는 일이 최우선이야."
"명 교수는 대학교처럼 고립적인 생태계가 아니면 직장 생활을 할수 없어. 내가 구 대학교 시절과 유사한 환경의 직장을 찾아보겠어. 명교수의 일하는 방식에도 잘 어울리는 직종. 어디 가면 있을거야. 명 교수는 일단 지금 당장 양치하고 발을 씻고 일찍 잠부터 자는 것이 좋겠어. 일찍 자는 습관부터 들여야해."
"아............. 그러네. @@@@집사님. 내 목욕수건을 준비해줘요. 그리고 칫솔과 치약도 새로 개봉하고."
"네. 사모님."
"당신은 안 자?"
"서류 정리 마무리 하고 소파에서 누워서 배도라지청 차를 한잔해야지. 일단 당신은 일찍 자는 것이 중요해."
"응......... 아........ 수면용 침대를 하나 사줘. 배치하는건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그렇게 하겠어. 불가리아산 침대를 들여오도록 하지."
명소민은 곧바로 목욕탕으로 가서 씻을 준비를 했다. 동네목욕탕의 욕조만한 면적의 개인 욕조를 쓰는 것이 타워팰리스의 각 호실의 시설이다. 소민은 머릿수건을 하고 장미를 가득 부운 뜨거운 욕탕에 누워서 우크라이나인 가정부 2명에서 옆에서 시중을 들어 주었다. 국내의 주택중 99%의 비율에서 다 그렇듯이 타워팰리스의 호실에도 화장실과 욕실이 따로 분리되어 있었다. 타워팰리스답게 욕실에는 탈의실도 딸려 있었다. 명소민에게 11년이나 되는 가택연금 기한동안 명소민의 유일한 몇가지 낙중에서 목욕과 수영이 있다. 가정부가 때까지 다 밀어주고 샤워를 끝내자 명소민은 새로 사온 수면가운으로 갈아입고 곧바로 넓고 푹신한 침구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가정부가 인사를 하고 불을 꺼줬다.
모처럼만에 일찍 잠을 청했다. 교수 시절보다 1시간 늦기는 해도 자정을 넘겨서 자는 최근 패턴보다는 상당히 빨랐다. 무기력해진 신체 패턴을 바꾸는 것이 중요했다. 이서방이 살인범 명소민을 경멸하는 것과 별개로 정상인답게 취침을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해줬다. 물론 명소민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교정시설에 입방할때 최소한 적응이라도 하라는 사악한 배려이기도 하다. 다음날 아침. 명소민은 교수 시절보다는 많이 늦지만 무기력해진 방구석 실업자의 생활 패턴보다는 2시간 더 빨리 일어났다. 이서방이 출근하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가정부들이 크게 기뻐하여 격려해주었다. 우크라이나인 가정부들도 내색하지 않지만 명소민이 교정시설 입방 준비를 잘한다고,찬사를 아끼지 않으며 대견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가정부들이 칭송하자 명소민은 괜히 으쓱해졌다.
입주 가정부들은 우크라이나의 언어, 로망스 어로 떠들면서 "살인마년. 미리미리 연습해서 교정직 공무원들 귀찮게 하지 말아야지. 어이구 잘한다."라면서 낄낄거렸다. 물론 명소민은 우크라이나인 가정부들이 - 어차피 이해도 하지 못함 - 모국어로 떠드는 것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이렇게 명소민은 여름 내내 취침과 기상 연습을 하고 오랫만에 전공서적을 읽으면서 굳어버린 머가리를 다시 회복하려고 노력했다. 언젠가 다시 강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고 이서방이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직종을 찾아 온다고 생각했다. 교수에게는 연구와논문 작성이 중요하다고 해도 학부생들에게 강의를 하는 것도 중요했다. 세간에서 대학교 교수의 모습은 학부생에게 강의하는 것이고 명소민 역시 그런 모습에 의기양양했다. 과거의 옛 추억이 그리운 것이다. 명소민에게는 추억은 반드시 회복해야 할 찬란한 영광이다.
이서방은 명소민이 올해 여름 내내 신체 패턴부터 교수 시절과 동일하게 회복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자리는 늦여름이나 초가을에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모든 조건을 맞춰놓겠다고 약속했다. 명소민은 이서방을 충직한 소작농+money 벌어다 주는 당나귀로 인식하기에(누가 누굴!!!) 일자리에 관한 일은 안심하고 맡겨 두었고 몸매관리와아침 저녁 시간 조절. 화학 공부 등으로 스스로를 단련했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 서리가 내리기 시작할 무렵. 이 서방이 명소민에게 프라이트 나이트 카페로 와달라고 가정부를 통하여 연락했다. 일부러 전화를 하지 않고 이서방이 명소민을 먼저 호출하는 것은 가정부를 통해서였다. 즉 아침에 가정부에게 언지를 주면 오후에 명소민이 한가할때 말을 하는 것이다. 이래나 저래나 이서방은 절대로 명소민에게 먼저 전화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지 않았다. 타워팰리스 내부의 까페로 내려가자 이서방이 웬 낯선 사람 한명과 같이 기다리고 있었다. 명소민이 건너편 자리에 앉았다.
"아아아아. 명 교수. 와줬네. 약속하던 대로 명 교수에게 어울리는 직종을 찾았어. 내가 이분과의 약속을 주선했지. 당신은 차 과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곧바로 헬스장으로 돌아가야 해. VVIP고객님과와 상담 시간에 맞춰서 시간을 당겨 여기에 왔거든. 인사드려. 메가스터디의 인사과 과장님이시지."
"안녕하십니다. 차@@ 과장이라고 합니다."
"아. 네............."
'메가스터디. 수능 입시 위주의 사교육 학원 아니야...... 음. 일단은 격은 낮지 않은데.'
"차 과장님. 잘 부탁드립니다. 드시고 싶은 음료수와부식거리는 마음껏 드십시오. 양껏 포장해 가셔도 상관없습니다. 제 이름으로 계산해 놓겠습니다."
"그렇다면 사양말고 상담이 끝나면 우리 집 딸내미들이 좋아하는 비싼 식단으로 가득 포장해가겠습니다."
이서방은 차 과장에게 일을 넘기고 곧바로 헬스클럽 본점으로 향했다. 잠시동안 정작이 흐르는 11번 테이플. 차 과장은 석판 컴퓨터를 켜고 이리 저리 명소민에 관련된 정보를 훝어 보았다.
"실례지만 명소민 전임 교수님. 아니면 명소민 여사님이라고 불러들릴까요?"
"과장님이 편하신대로 불러주세요."
"지금은 전임교원이 아니시기에 여사님이라고 호칭하겠습니다. 명 여사님. 저희 메가스터디에서는 수능에 대비하여 화학관련 강의를 맡아주실 분을 찾고 있는데 학력과 강의 경험을 보면 명소민 여사님이 딱 적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
"명소민 여사님. 메가스터디는 지금까지 명 여사님이 근무하신 대학교의 근무환경과는 전혀 다릅니다. 대학교처럼 교수가 특정 랩실을 마음대로 주도하고 대학원생과 포닥을 하찮게 취급하면서 혹사시킬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교수들이야 나름대로 고충이 있겠지만 지금까지 세간에 보여진 교수들의 행태는 크게 보기 좋지 않지요."
"............................................................."
"메가스터디에서는 대학교처럼 한가하게 논문을 쓸수 없고 네이처에 논문을 등재한다고 해도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명 여사님이 교수로 재임하더 시절처럼 시중을 들어주는 랩실 조교든지 여러 포닥들은 없습니다. 이미 2002년에 대학원생 제도가 폐지되었기에 잘 알고 계시겠지만 교수의 몸종 역할을 맡는 대학원생은 메가스터디에 없습니다. 메가스터디의 담당 직원은 수강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봉사하며 얼마나 많은 학생을 인 한성의 여러 대학에 입학시킬 수 있느냐에 따라서 평가를 받습니다. 폐쇄적인 근무환경에 있던 전임교원과는 근무 조건이 다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네........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제가 더 이상 교수시절처럼 천상위를 걷는다는 사고방식으로 메가스터디에서 근무하면 안되겠지요."
"금방 알아들으셔서 기쁩니다. 명 여사님께 다소 기분이 상하실 수 있지만 전임교원 제도는 심각한 문제가 많기에 2009년에 폐지되었고 그 이전에 수많은 교수들이 전임교원 대숙군과 정리해임을 당했습니다. 과거 서울대 뇌물사건의 진상이 어찌되었던 명소민 여사님의 노력은 허사가 되었습니다. 설령 무사히 지도교수가 임용되거나 아니면 사범교육과에 잔류한다고 해도 명 여사님이 정리해고를 피할 가능성은 희박했을겁니다. 명 여사님은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고 강형찬 교수의 직계,후임자로 내정받으셨지요. 어찌 보면 전임교원의 막바지 시기에 서울대에서 해임당한 것이 그나마 천만다행이라고 봅니다. 2002년 대학원생 제도가 폐지된 것은 전임교원 직위를 없애버리기 위한 준비 단계였으니까요."
"차 과장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차리리 제 자존심을 지키면서 해임당하는 것이 낫지 전임교원 제도 폐지로 인하여 물갈이 해고를 당하는 것은 더 치욕스럽습니다. 전임교원 제도가 유효한 시기에 전임교원으로서 해임당한 것이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켰어요."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의도를 오해하시 않으셔서 다행입니다. 명 여사님이 가택연금을 당하고 두달후에 전임교원 제도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고 전국 대학교수들의 80%가 물갈이 정리해고가 되었지요. 거기에다 마지막 전임교원 기수로 재편성되었고요. 하여튼 지금까지처럼 교수와같은 기분으로 메가스터디에서 연구를 해도 안 되고 논문을 써서도 안 됩니다.
명 여사님이 메가스터디에 입사하신다면 옛날의 교수님들처럼 개인연구실을 제공해드릴 수 없습니다. 학원장님과 부학원장님,일부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든 메가스터디의 강사님들은 같은 사무실을 공유합니다. 강사님 한분에게 배정되는 근무공간은 최대한 넓게 배치할 것이며 책상도 최대한 좋은 상품입니다. 하지만 전임교원의 연구실만큼 쾌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근무공간을 공유하는 것은 익숙합니다."
"2000년 이전. 대학원생 시절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명 여사님께서도 대학원생들이 얼마나 부당하게 혹사당하면서 교수들에게 부역당했는지 아실겁니다. 명 여사님은 고 강형찬 교수에게는 친구의 따님입니다. 그렇기에 다른 대학원생들이 혹사당하는 동안 명 여사님은 즐거운 기분으로 개인연구에 몰입할 수 있었지요. 다른 사람과 근무공간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혼자만의 공간을 독점한 것이지요. 세간에서는 그것을 특혜라고 합니다. 신참 대학원생에 불과한 명 여사님이 넓은 책상 한곳에서 유유히 연구하는 동안 다른 대학원생이나 포닥들은 다른 구역에서 강 교수에게 시달리며 고생하며 성과를 올리려고 합니다. 명 여사님. 대학원생 시절에 어느 고참이 명 여사님에게 감히 이래라 저래라 할수 있을까요? 연공서열의 악습이 아니라 정당한 지시사항을 명 여사님에게 내릴 고참이 그 당시 강 교수의 랩실에 있었을까요? 있을리가 없지요!!
우리 학원장님이나 제가 우려하는 것은 명 여사님은 사회생활 경험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학력이나 지식만 보면 그냥 합격입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안 해보셨고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엎드리고 명령을 받고 당신께서는 명령을 내리는 방식에는 익숙해져 있습니다. 아무런 고난을 겪지 않고 곧바로 조교수에 임용되었고 휘하에 랩실 반장... 다른 말로는 조교라고 하지요. 대학원생이라는 직위가 없어진 다음에는 대학교에서는 시간제 강사중에서 쓸만한 사람을 뽑아서 교수의 시중을 드는 조교로 일을 시켰을겁니다. 명 여사님의 조교 역할을 맡은 사람 역시 고참 대학원생이 아니라 시간제 강사였지요."
"네....... 저보다는 나이가 열살에서 열몇살은 많은 사람이었지요..........."
"그분에게 사회인답게 존중과 배려로서 대하셨나요??"
"..................................................................................................................................................."
"명 여사님. 말씀해주십시오."
"민망하게도 제가 그 시절에 철이 없어서... 나보다 큰 오빠나 숙부뻘 되는 윗 어른에게 조교라는 이유 하나로 하대하여 일을 시켰습니다."
"노파심에 물어 보는데 담당 조교님에게 이봐 당신. 정도가 아니라 야,너.라고 부르셨나요?"
"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무례하게 하대하지 않았어요. 최소한 당신,이라고 불렀어요."(거짓말)
"아. 네..............."(뻥 치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파악했다.)
"하 하 하.... 예전에는 그저 제가 부덕했습니다."
"대학교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메가스터디에서는 다른 강사님에게 무례하게 굴어서는 안 됩니다. 식당이나 청소,기타 업무에 근무하시는 직원들에게도 예의를 갖추어서 대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학력이 높고 집안 배경이 좋다고 해도 메가스터디에 채용해드릴 수 없습니다. 정말로 지난 시절을 반성하고 새로 출발할 마음가짐으로 일하시고 다른 사람에게 존중과 배려로 대하신다면 우리 메가스터디는 명소민 여사님을 한번 믿어보겠습니다."
"정말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차 과장님의 당부를 항상 명심하겠습니다."
"올해 가을. 수능이 고작 두달밖에 안 남았으니 올해는 건너띄고 내년 수능부터 명 여사님의 실력을 기대해보겠습니다. 화학수업의 마무리 과정을 보조해주십시오. 화학수업에는 강사님 3분이 배정되어 있지만 수강생들이 많아서 많이 힘듭니다."
"내일부터 마무리 단계부터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직접 강의를 진행하겠습니다. 분석화학과의 교수직을 근무했던 사람입니다. 다른 강사님보다 제가 더 나을겁니다."
"그래 주신다면 정말로 고맙지요."
"나의 진면목을 수강생은 물론이고 학부형들도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흠...... 마지막으로 여사님에게 지급할 급여와연봉에 대해서는.......... 남편분께서 말씀하셨는데 여사님께서는 무보수로 일해주실 수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네. 나에게는 money에 부족함이 없어요. 나는 생계유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사회적 위상과 되찾고 한 사람의 지성인으로서 교단에 복귀하기 위해서 메가스터디에 입사하려는 것입니다."
"아. 그렇다면 정말로 감사한 경우입니다. 재정과에서 인건비를 절약할수 있다고 좋아하겠어요. 명 여사님과 같은 배경을 가진 입사 지원자라면 막대한 연봉은 기본으로 지급해야 하는데 이거 정말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
"명소민 여사님. 개인 면접은 합격입니다. 내일부터 우리 메가스터디에 출근하여 주십시오. 여기에 필요한 관련 서류를 가져왔습니다. 자세히 읽어보시고 맨 아래 기입란에 서명하시고 도장을 찍어주시면 됩니다."
차 과장은 두툼한 봉투에서 서류를 꺼내 탁자에 펄쳤다. 명소민은 그대로 서류의 아래 기입란에 서명을 하고 도장까지 찍었다. 여러가지 약관은 읽어 볼 필요조차 없다는 태도였다. 그만큼 명소민이 사회복귀를 간절히 바란다는 심리였다. 차 과장은 명소민이 서명,도장 기입을 끝낸 서류를 다시 봉투에 넣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소민 여사님. 내일부터 메가스터디에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여기 제 명함이 있으면 출근하시기 전에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늦은 저녁 시간이 아니라면 오늘중에 언제라도 물어주십시오. 출근하시면 제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을겁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네. 안녕히 가세요."
차 과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갔다. 그는 미리 주문해 놓은 쇼콜라 선물 상품을 쇼핑용 종이봉투에 가득 담아서 유유히 프라이트 나이트를 빠져나갔다. 홀로 자리에 남은 명소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후에 직원을 불러서 방금 전에 차 과장이 구입해간 상품의 계산서를 갖다 달라고 했다. 계산이야 남편 이서방의 계좌에서 다 결재되지만 나르시스트(조현병 환자) 또라이답게 지가 money 쓰는 것도 아닌데 생색내는 명소민이었다.
"@@! 천한 놈이 비싼 상품만 골라서 두둑히 담아갔네. 하여간에 천한 곳들은 이래서 안돼. 하아아아아. 어찌 되었은 사회 복귀는 할수 있어. 메가스터디에서는 애들을 서울대 보내주는 것에만 전념해야지. 애들 서울대에 보내주는 거야 쉽지. 메가스터디에서 명성을 쌓아서 학부형들의 지지를 받는거야. money과 인맥만으로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지난번 사례에서 똑똑히 깨달았어. 나 혼자서 나의 뒷배경만 믿고 없는 놈들의 조직력에 정면도전하면 절대로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너무 혹독한 댓가를 치르고야 알았어. 내 당숙어른이 한성지검장이면 뭐해. 서울대 카르텔이 어디 그런 거에 겁먹었나! 정작 지난번 일로 인하여 당숙 어른이 지검장을 사임하시고 거취를 결정해야 했지. 덕분에 나는 서촉 명씨 문중에서 영구제명당한 상태고.......(0_0) 다시는 어리석게 조직력에 홀로 도전하지 않을거야. 죽은 강교수가 예정대로라면 2010년에 퇴임하는데 내가 계승을 못했으니 다음 임용까지는 15년을 기다려야 해. 이제 4년 정도 남았어.
나에게 시간이 촉박해. 3년동안 수능치는 애들,내가 담당하는 학과의 애들을 서울대에 모두 합격시켜 주면 학부형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다시 서울대에 복직할 수 있어. 늙은이들 퇴임하고 나와동년배 세대가 카르텔의 실세이고 마지막 전임교원 기수이기에 이 시기에 마지막 승부를 걸어야 해. 지도교수까지는 무리라고 해도 부교수 직위 정도라면 만족하겠어. 지도교수 직위는 이제는 없지. 전임교원 제도가 폐지되었으니까. 내가 부교수 직위를 얻는 것도 과거의 부당한 사례를 핑계삼아서 명예직이라도 받아낼 수 있을거야......... 아이고오오오. 내가 이런 짓까지 해야 하나............(T_T) 이제부터는 포닥이 대학교의 실세이니 지도교수에 해당되는 포닥 최고서열은 효진이와소명이가 임용되야 할거야. 나는 거기에 기반을 다지는 것이고. 내 업적을 후대에 길이길이 남기려면 내 딸들이 내 직위를 계승해야 해."(딸 자매에 대한 애정이나 모성애는 전혀 없고 오직 자기만족이 목적이다.)
명소민은 차 과장이 남기고 간 안내 책자를 꼼꼼히 읽어 보았다. 메가스터디 위치야 뻔히 알고 있고 기타 궁금한 사항이 책에는 다 서술되어 있었다. 명소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자택으로 올라갔다. 명소민은 가볍게 저녁을 먹고 씻고 몸단장을 하고 수면가운을 입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대학 교수 재임 시절보다는 40분 늦게 일어났지만 가택연금 기한에 잠자리에서 뒹굴거린 것보다는 몇시간은 더 빨리 일어났다. 우크라이나인 가정부들의 도움을 받아서 아침에 필요한 일을 모두 마치고 영양가 높은 간소한 아침을 먹었다. 입가심으로 UAE산 커피를 마신 다음에 양치하고 외출용 옷을 입었다. 어젯밤에 고참 가정부가 최근에 명소민이 쇼핑해온 옷중에서 너무 화려하지 않지만 사회적인 품격이 떨어지지 않은 외출옷을 몇벌 골라놨다.
가정부들은 명소민의 겉옷까지 입혀주고 명품 가방과 자동차 열쇠를 내밀었다. 가정부들의 배웅을 받으면서 명소민은 자택을 나섰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와서 스웨덴제 폴스타 차량에 시동을 걸었다. 차를 타고 지하주차장에서 출발해서 곧바로 도로에 진입했다. 평소에 대학교로 이동하는 경로가 아니기에 약간 늦었지만 제시간에 메가스터디의 직원전용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차 과장과 몇명의 직원들이 보였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차 과장을 따라서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명소민은 여러 강사들이 공유하는 사무실에 들어왔다. 차 과장이 명소민을 데리고 들어오자 모든 강사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어제 사무실에서 혹은 전화 알람으로 공지를 받은 강사들은 그 소문의 서울대 뇌물스캔들의 주범. 명소민을 보자 모두 수근거렸다. 차 과장은 사무실에 들어가기 이전에 명소민에게 과거의 사건에 대해서 간략하게 해명해두라고 당부했다.
"강사 여러분.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오늘부터 메가스터디의 새로운 직원으로 합류하신 명소민 강사님이십니다. 수능입시의 화학과 수업을 맡아서 강의하실 것입니다. 명소민 강사님.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다. 메가스터디에 새로 입사한 명소민이라고 합니다. 전임 서울대 분석화학과 조교수를 역임하였으며 불미스러운 과거사로 인하여 해임당하고 한때 구속수사까지 받았습니다. 법정에서 집행유예로 판결받았지만 저 자신은 스스로 무고하다고 자부합니다. 저는 구차한 변명을 늘어 놓지 않겠습니다. 제가 거두는 성과로서 저의 무고함을 증명하겠습니다. 여러 강사님들의 많은 신세를 지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그녀답지 않게 정중히 머리숙여 인사했다.)
"................................................"
'이것만 보면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이네. 나르시스트 또라이답지 않게.'
명소민이 인사를 하자 사내 분위기를 주도하는 차 과장이 먼저 박수를 쳤다. 곧이어 사무실의 모든 강사들이 박수를 치면서 서로 앞다투어 악수를 권했다.(인사치레 가식은 아니다.) 과거사야 어쨌든 명색이 서울대 분석화학과의 조교수 정도 되는 인물이 메가스터디에 입사를 하니 뜨거운 화제가 아닐 수 없었다. 명소민은 많은 강사들과 악수를 나누고 차 과장에게 자신이 앞으로 주요 업무를 보게 될 책상을 배정받았다. 학창시절의 국중고 교무실보다 더 요란하고 활기넘치는 메가스터디 사무실의 분위기에 명소민은 색다른 경험에 잠시 흥겨워졌다. 차 과장의 안내를 받아서 메가스터디 학원장과 면담을 가졌다. 학원장에게도 과거사는 상관하지 않으니 성과를 거둬달라는 격려를 받고 나서야 명소민은 사회인으로 다시 복귀했다는 사실에 안심하였다. 그날부터 명소민은 일시적이기는 해도 메가스터디의 명강사로 세상에 이름을 널리 알리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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