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인사위원회(위원장 金光雄)는 2001년 11월25일 한나라당 鄭亨根(정형근) 의원의 요구에 따라 「부처別 選好(선호)職位(직위) 내역」을 제출했다. 이 文件에 오른 30개 부처의 120개 직위는 사실상 각 부처의 요직들로 이해해도 될 것이다.
이 문건은 사실 이번에 처음 공개된 자료가 아니라 2001년 3월16일 중앙인사위원회가 발표한 「公職인사 쇄신대책 발표」 속에 포함되어 있던 내용이었다. 김병식 중앙인사委 인사정책과장에 따르면 이 선호 자리들은 각 부처 인사담당자들의 의견을 모아 선정했으며, 업무비중이 상대적으로 크고 부처별로 소관 업무의 총괄조정 기능을 수행하며, 補職(보직) 경로상 승진예정직위로 관리되던 자리들이라고 한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예산·조직·정책 등을 담당하는 직위들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月刊朝鮮은 2001년 12월14일 현재 이들 120개 직위에는 어떤 사람들이 앉아 있는지와, 그들의 신상을 분석해 보았다. 출신지역별로 보면 嶺南 39명(32.5%), 湖南 36명(30%), 충청 19명(15.9%), 서울·경기·인천 15명(12.5%), 강원 4명(3.3%), 이북 4명(3.3%), 제주 3명(2.5%)이었다.
연령별로는 40代(40∼49세)가 22명(18.3%), 50代가 96명(80%), 60代가 2명(1.7%)였다 (2002년 기준 滿나이). 출신대학은 서울大가 전체의 39.2%(47명)로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 고려大(12명, 10%), 연세大(10명, 8.3%), 성균관大(9명, 7.5%), 陸士(9명, 7.5%)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부처별 선호 職位」와 「정부 부처 출입기자가 뽑은 정부 100大 要職(月刊朝鮮 2001년 2월호)」 가운데 공통되는 직책은 60개였다. 2001년 1월 현재 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2001년 12월14일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람은 12명이었다. 11개월 사이에 80%가 자리를 옮긴 것이다. 「120大 요직자」들의 프로필은 조선일보 각 부처 출입기자들과 부산일보 박진홍 기자(해양수산부)가 작성했다(부처 순위는 2001년 3월 현재 정부 조직법상 서열에 따랐음).
◈孫承泰 감사원 제1사무차장
공적자금 운용실태 特監 지휘
공대 출신이면서도 경영학 박사학위와 미국 공인회계사(AICPA) 자격을 취득하는 등 다방면에 두루 능통하다. 일 처리에 여유가 있으면서도 업무 통찰력이 뛰어나며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하는 스타일. 1974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감사원장 비서실장, 제3국장, 제2국장, 제1국장, 감사교육원장, 기획관리실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고 이번 공적자금 운용실태 특별감사의 주무 차장으로서 감사팀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1972년 감사원 2기 공채에 합격, 7급 주사보부터 시작해 사무차장(1급)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 1998년부터 2년여 간 공보관으로 일한 것 이외에는 줄곧 직무감찰·司正업무를 담당하는 5局에서만 근무, 5局 내의 모든 課를 거친 직무감찰의 전문가이다. 공직 사회의 「암행어사」로 통한다. 업무처리에 있어 완벽을 기하면서도 소탈하고 선이 굵은 성격으로 상하 간 신망이 두텁다.
▲58세 ▲대전 ▲대전高 ▲고려大 법대
◈片浩範 감사원 기획관리실장
公기업 구조조정 실태 特監
신사적인 매너와 온화한 인품으로 상하 간의 신망이 두텁다. 날카로운 기획력과 추진력을 갖췄다는 평이며, 公기업 감사를 담당하는 제2국장을 맡아 공기업 구조조정 실태 특별감사를 주도해, 公기업들의 방만한 운용과 구조조정 지연을 대거 적발해 냈다. 行試 18회 출신으로 공인회계사 자격을 가진 회계 감사 전문가다. 기획관리실장을 맡은 후에는 2001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감사원장회의(INTOSAI)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50세 ▲충남 홍성 ▲덕수商高 ▲성균관大 경영학과·서울大 행정대학원·美 조지아州立大 경영학 석사
◈李永台 감사원 제1국장
경제부처 감사 담당, 소신 뚜렷한 곧은 성격
재경부, 기획예산처, 국세청 등 경제부처 감사를 관장한다. 1973년도 行試 14회 출신으로 동기들에 비해 승진은 다소 늦었다. 소신이 뚜렷해 옳다고 믿는 것은 끝까지 추진하는 곧은 성격이 장점이지만 처세에 능하지 못하다는 평도 듣는다. 1980년대 중반 감사관 시절 농수산부 감사를 맡아 정부양곡 2400여 가마가 유출된 것을 적발한 것은 지금까지 양정관리 사상 가장 큰 감사사건으로 기록돼 있다. 부하직원들에게는 복선 없이 명확한 지휘 방침을 밝혀 따르기 편하다는 평을 듣는다.
▲56세 ▲부산 ▲검정고시 ▲부산大 섬유공학과
◈邊陽浩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월스트리트 저널 선정 세계에서 주시해야 할 15人 중 한 명
금융정책국은 官治금융을 대표했던 理財局의 後身. 금융기관의 상전으로 불리며 과거 재무부의 파워를 상징했다. 하지만 IMF 쇼크 이후 외환위기를 초래한 실무국으로 낙인찍히면서 위상이 크게 떨어졌다. 邊국장은 行試 19회 출신으로 外債협상 과정에서 두각을 나타내 전격적으로 금융정책국장에 올랐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세계에서 주시해야 할 15人으로 꼽아 스타로 부각됐다. 그러나 부실기업 처리과정에서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도입한 데 이어 구조조정촉진법을 제정, 官治시비를 일으키기도 했다. 정책조정과장과 국제금융과장을 지냈다. ▲48세 ▲제주 서귀포 ▲경기高 ▲서울大 무역학과
◈孫仁敎 통일부 기획관리실장
남북회담 사무국에서만 20년 넘게 일해
孫仁敎 실장은 남북회담사무국에서만 20년 넘게 일한 정통 회담꾼. 회담사무국 연락부장, 기획부장에 이어 2000년 남북 頂上회담 당시 「야전사령관」인 회담사무국장을 지냈다. 1999년 당시 康仁德 장관의 지시로 『이빨 치료하러 간다』며 주위를 속이고, 北京에서 북측과 비밀 접촉을 갖고, 차관급회담을 성사시켰다. 중앙정보부 출신으로 1980년 남북회담사무국이 통일부로 이관될 때 자리를 옮겼다. 회담업무를 오래해 입이 무겁고 對人관계의 폭이 넓지 않지만, 모나지 않은 성격으로 친화력이 크다는 평이다.
▲57세 ▲서울 ▲서울高 ▲고려大 경영학과
◈李鳳朝 통일부 통일정책실장
對北정책 입안·조정·총괄
통일정책실은 對北정책을 입안·조정·총괄하는 부서로, 국정원·외교부·국방부 등 관련 부처와의 협의 창구. 남북관계 현안을 비롯해 급변대책 등 중장기 정책, 통일 교육과 홍보, 여론 수렴, 국제 동향 파악 등의 업무를 맡고 있어, 통일부 內 가장 핵심자리이다. 李鳳朝 실장은 북한정세 분석 능력이 뛰어나고 국제정세에도 밝은 편이며, 기자들과 격의없는 토론을 즐기기도 한다. 林東源 前 외교안보수석 밑에서 통일비서관을 지냈다.
▲48세 ▲경남 마산 ▲마산高 ▲서강大 정치외교학과
◈趙明均 통일부 교류협력국장
對北 교류책임, 금강산 관광·訪北團 파동으로 곤경
남북 간의 모든 접촉과 교류, 북한방문 등에 대한 「승인권」을 쥐고 있으며, 남북교류협력기금 지출 책임도 맡고 있어 現 정부 들어서 가장 바쁜 자리. 그러나 現代의 금강산 관광사업이 「위기」를 맞고 있는 데다, 8·15 평양행사 파문과 야당의 교류협력법과 협력기금 개정 요구 등으로 시달리고 있다. 趙明均 국장은 치밀한 기획력과 유연한 對北觀을 바탕으로 모든 업무를 합리적으로 처리한다는 평. 통일부 內 몇 안 되는 클래식 마니아이며, 매주 자녀들과 DVD로 영화를 감상하는 게 취미. ▲45세 ▲경기 의정부 ▲동성高 ▲성균관大 통계학과 ▲「북한경제개관」, 「북한 GNP추계방법 해설」
◈崔革 외교통상부 통상교섭조정관
OECD 가입 진두지휘한 통상 전문가
外試 5회 출신으로, 일찍부터 통상정책과장과 제네바 참사관, 통상국 심의관, 통상국장 등 통상분야를 거쳐 성장한 통상교섭분야 전문가. 1978년 아프리카 근무 후 우연히 경제기구과로 발령나는 바람에 시작한 통상분야 근무가 20여 년 동안 계속되었다고 한다. 통상정책과장 시절에는 미국 수퍼301조에 대응하는 업무에 시달리다 쓰러지기도 했으며, 1992년부터 2년8개월 동안 프랑스 공사로 우리나라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을 진두지휘했다. 3년6개월 간 주미공사 최장기 근무기록의 보유자이며, 철저한 무역개방론자.
▲57세 ▲충북 영동 ▲중앙高 ▲서울大 외교학과·美 뉴욕大
◈金星煥 외교통상부 北美국장
美·北 문제 다루는 外試 10회 선두 주자
外試 10회 출신 중 선두주자. 북미과, 동구과, 인도1등 서기관을 거쳐 러시아 1등 서기관, 동구과장 등 러시아 관련 업무를 많이 했다. 인사과장 역할인 외무인사기획 담당관과 미국 참사관을 거쳐 李廷彬 장관 시절 보좌관을 지낸 뒤 한국 외교의 최고 핵심부서인 北美국장에 발탁되었다. 北美局은 미국과 캐나다를 담당하는 부서를 의미하지만, 「북한과 미국」의 약어라는 말이 있을 만큼 美·北 및 양자의 관계가 업무의 핵심. 조용하면서도 내실있는 스타일로,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복잡하게 얽혀온 韓·美 관계를 잘 처리하고 있다는 평이다. ▲49세 ▲서울 ▲경기高 ▲서울大 경제학과·영국 런던大
◈秋圭昊 외교통상부 亞太국장
목포상고 출신으로 外試 합격한 입지전적 인물
외교관 중 드물게 商高를 나와 은행에 다니면서 성균관大 야간 법학과를 졸업, 외교관으로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 늘 단정한 외모에 성실한 업무자세, 겸손한 성품으로 좋은 對人관계를 갖고 있다. 해병대 출신인데다, 매일 아침 6시30분에 청사로 출근, 지하 체력단련실에서 조깅을 하면서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 外試 9회로, 일본 1등서기관과 특수정책과장, 동북아1과장(일본담당), 이탈리아 공사참사관, 일본 참사관 등을 거쳤다.
▲50세 ▲전남 목포 ▲목포商高 ▲성균관大 법학과·일본 게이오大·美 존스 홉킨스大(석사)
◈宋光洙 법무부 검찰국장
업무처리 치밀한 소신파
업무처리가 치밀하고 상사에게도 직언을 서슴지 않는 소신파. 일선 지검장을 역임하면서 지휘통솔력과 조직관리 능력을 인정받았다. 중견간부 시절 법무부 검찰 1·2·4과장을 두루 역임해 법무행정에 밝고 아이디어가 많아 일찌감치 검찰국장 후보로 꼽혔다. 후배들을 아끼고 지도하는 자상함도 갖춰 따르는 후배가 많다. 사석에서는 술을 못하는 대신 재미있는 얘깃거리로 좌중을 이끈다. 취미인 바둑은 아마 6단으로 검찰內 최고 수준이다.
▲52세 ▲경남 마산 ▲서울高 ▲서울大 법대
◈南海一 국방부 인사복지국장
해군 출신의 첫 인사복지국장
꼼꼼하면서도 치밀하게 일처리를 해 업무 장악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군사관학교를 2등으로 졸업했다.
구축함 함장·목포해역 방어사령관·연합司 인사참모부장·2함대사령관·해군본부 인사참모부장 등을 지냈다. 인사 전문가로 그 동안 육군 소장이 임명돼온 국방부 요직인 인사복지국장에 해군 장성으로는 처음으로 임명됐다. 美 국방부 영어교관반, 美 지휘참모대학 등에 유학해 영어에도 능통하다.
▲55세 ▲경북 울진 ▲후포高 ▲海士 26기
◈金善奎 국방부 정책기획국장
對美정책·전략通, 야전 경험도 갖춰
미국 명문대 유학 경력에 야전 경험까지 갖춘 엘리트 장군. 對美 정책 및 전략通으로 리더십도 갖췄다는 평이다.
陸士를 졸업한 뒤 서울大 경제학과에서 위탁교육을 받았으며 美 컬럼비아大 및 스탠포드大에 유학했다. 1996년 준장진급 예정자(대령)로 소장이 임명돼오던 駐美 국방무관에 파격적으로 임명돼 화제를 낳기도 했다. 합참 美洲전략과장·5포병여단장·합참 지휘통신참모부차장·8사단장·5군단 부군단장 등을 역임했다.
▲52세 ▲전남 나주 ▲광주일高 ▲陸士 28기
◈趙泳澤 행정자치부 차관보
지방자치제도 실질적 총괄
행자부 차관보는 지방자치행정에 관련된 모든 분야를 조정하고 지방자치제도를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직위로 꼽힌다. 과거 내무부 시절에는 市·道지사 후보 1순위 자리였으며, 역대 長·次官 등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코스였다. 깔끔한 미남형에 만능 스포츠맨인 趙차관보는 추진력이 매우 강한 보스기질의 소유자로, 맺고 끊는 게 분명하고 판단이 빨라 상하의 신망이 두터운 편이다. 경기 공영개발사업단장, 국무조정실 자치행정심의관, 行自部 공보관·인사국장·자치행정국장 등을 역임했다.
▲51세 ▲전남 완도 ▲광주제일高 ▲연세大 행정학과
◈金範鎰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
행정부內 마당발, 행정의 達人
국회, 黨 등 對外기관과의 행자부 창구 역할을 맡고 있고, 옛 총무처 업무를 총괄 관장하는 등 행자부 정책 결정과 집행의 실무 최고책임자이다. 金실장은 유머감각과 친화력이 뛰어나 관계, 언론계, 재계 등 다방면에 知人이 많아 행정부內 마당발로 통하며 정부조직개편 같은 난제도 쉽게 풀어가는 행정의 達人으로 인정받고 있다. 대통령비서실 비서관, 총무처 조직국장,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지냈다.
▲52세 ▲경북 예천 ▲경북高 ▲서울大 경영학·美 남가주大 행정학(석사)
◈李相甲 교육인적자원부 학교정책실장
초·중등 교육 관장, 서울시 교육감 후보로 거론
학교정책실장 자리는 전국 초·중·고교와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는 1급 상당이나, 일반직이 아닌 전문직으로 일선 학교 교장 출신이 주로 맡고 있다. 1961년 경남 가야초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시작했다.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에 친화력이 뛰어나다. 업무추진력도 강하다는 평. 본인은 부인하고 있지만, 차기 서울시 교육감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서울 장평중 교장, 강남교육청 교육장, 서울교육청 교육정책국장 등을 지냈다. 2001년 1월 개방형 자리로 現 직책에 임명됐다.
▲60세 ▲경남 함안 ▲진주사범학교 ▲경남大·단국大 대학원(교육학 박사)
◈徐南洙 교육인적자원부 대학지원국장
논리치밀한 원칙론자 수능석차 공개 거부
특기도 일, 취미도 일이라고 할 정도로 일을 만들어 하는 일 중독형. 부하직원들보다 업무파악을 잘한다는 평. 入試 등 업무가 산적한 現 직책에 적합한 인물로 꼽힌다. 고스톱·골프·술 등 雜技를 전혀 못 한다. 부내 대표적 이론가로 논리가 치밀하나, 지나치게 자기 논리만 집착한다는 평가도 받는다. 2001년 수능시험 후 수험생들의 수능 석차 공개 요구에도 원칙을 고집했다. 行試 22회로 교육부 교육정책총괄과장·교육정책기획관·경기도 부교육감을 지냈다.
▲50세 ▲서울 ▲서울高 ▲서울大 철학과·동국大 대학원(박사)
◈金坪洙 교육인적자원부 교육자치지원국장
情이 많고 조직장악력 뛰어나
윗사람이 싫어할 수 없을 정도로 빈틈없이 잘 모신다는 평.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다. 업무상으로는 부하직원들을 호되게 다루지만, 뒤끝이 없고 잘 챙겨준다. 情이 많은 편이어서 두루 신망이 높다.
1968년 9급 공채로 임용된 후 교육부 총무과장, 강원도·경기도 부교육감, 국무조정실 교육문화심의관 등을 역임했다. 16개 市·道교육청을 총괄하는 자리로 과거에는 市·道교육감 자리를 좌지우지할 만큼 센 자리였다.
▲55세 ▲경남 남해 ▲경남商高 ▲동아大 사회학과·고려大 교육대학원
◈李基雨 교육인적자원부 기획관리실장
9급으로 출발, 차관 후보 물망
「발이 320㎜」라고 불릴 정도로 마당발이다. 사람을 사귀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 국회의원들과도 친해 對국회 업무는 그가 없으면 일이 되지 않는다는 평. 기억력이 뛰어나고 숫자에도 밝아 업무능력도 인정받고 있다. 부하직원을 잘 챙겨주기로 소문나 있다. 열아홉 살 때인 1967년 9급으로 공무원이 된 후 35년째다. 교육부 총무과장·공보관·부산시 부교육감·교육자치지원국장 등을 역임했다. 1999년 9월 기획관리실장(1급)으로 승진한 후 2년 넘게 現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몇 차례 차관 후보 물망에 올랐다.
▲54세 ▲경남 거제 ▲부산高 ▲안양大 행정학과, 경성大 대학원(박사)
◈李弘錫 문화관광부 차관보
20년 간 체육 행정 분야에서 근무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로 가장 바쁜 공무원 중 한 명. 국제 스포츠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체육通」. 1973년 행정고시 합격 후 내무부·총리실을 거쳐 1982년부터 체육부에 근무하며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러내는 등 체육 행정을 맡아왔다. 합리적인 일 처리가 돋보인다는 평.
노래 실력이 수준급인데다 좌중을 압도하는 유머로 부하들이 잘 따른다. LA와 뉴욕 한국문화원장을 지내며 국내 문화를 해외에 알리는 데도 힘썼다.
▲54세 ▲전북 전주 ▲동북高 ▲연세大 행정학과·서울大 대학원(교육학 박사)
◈吳志哲 문화관광부 기획관리실장
다양한 경력의 학구파
겉으론 온화하지만 일단 일을 맡으면 강하게 밀어붙이는 집요한 성격. 기업체에 근무하다 대한체육회 국제과장으로 스카우트됐다가 1982년 체육부 해외협력과장을 시작으로 官界에 입문했다. 처음엔 체육 관련 업무를 맡다가, 미국 하버드大 로스쿨에서 연수를 마친 1994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사무국장·문화산업국장 등을 맡으며 「문화 관료」로 변신했다. 晩學으로 1995년 서울大 법대에서 형사법으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을 만큼 노력파. 문화정책국장 시절 문화예산을 늘리기 위해 노력, 문화계의 박수를 받았다.
▲52세 ▲서울 ▲서울高 ▲서울大 법대
◈尹淸夏 문화관광부 문화정책국장
해외공보관 생활 오래한 공보通
누구와도 갈등을 빚지 않는 원만한 성품에 매사를 합리적으로 처리한다는 평. 깔끔한 외모에 의사 표현이 분명하다. 1971년 行試에 합격, 과거 문공부·공보처에서 근무하며 해외공보관(캐나다 토론토, 홍콩) 생활을 오래 했다. 1996년부터 3년 간 해외공보관 해외부장을 맡기도 했다. 문화부 관료로는 1998년 6월 종무관을 시작으로 예술국장·국립중앙박물관 사무국장·감사관을 지냈다. 공보通이어서인지 문화 정책도 대중에게 더욱 가깝게 와닿도록 집행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
▲55세 ▲전남 해남 ▲광주高 ▲전남大 법대
◈劉震龍 문화관광부 문화산업국장
문화부內 언론 담당
서울 상대 출신으론 드물게 경제관료가 아닌 문화관료로 자리잡았다. 영화배우 같은 잘 생긴 외모에 시원시원한 목소리의 호남형. 1979년 行試에 합격한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사무국장과 문화부 공보관을 거쳤다. 공보관 시절 박지원·김한길 장관 등 「정치형」 보스를 무난하게 보필해내 능력을 인정받았다. 정부 주도로 이른바 「언론 개혁」이 진행 중이던 2001년 4월 언론분야를 담당하는 문화산업국장을 맡았으나 언론과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요즘은 음반·게임·애니메이션 등 한국 문화산업 진흥이 그의 관심사라고 한다. ▲46세 ▲인천 ▲서울高 ▲서울大 무역학과
◈金在水 농림부 농산물유통국장
일처리 깔끔하고 판단력 탁월한 농산물 유통 전문가
채소·과일·농산물 유통을 책임진 농림부 핵심요직이다. 농산물 가격안정 정책과 농산물 가공산업도 담당한다. 金국장은 行試 21회 선두 주자로 남에게 흠잡히지 않는 깔끔한 일처리에, 업무 판단력이 탁월한 농산물 유통문제 전문가이다. 對外 개방직으로 임용되어 2년 임기가 사실상 보장되어 있다. 농업정책과장·농진청 종자관리소장·농업정보통계관 등을 지냈다.
자동차·조선·기계·섬유·반도체·유화 등 실물 경제와 산업정책 전반을 담당하는 자리. 상공부 시절부터 차관 승진 1순위로 꼽혔고, 이 자리를 거쳐 특허청장, 중소기업청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가 많았다. 역대 장·차관 등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 코스였다. 李錫瑛 차관보는 미국 상무관을 지낸 젠틀맨으로 對外 관계가 원만하고, 성격이 온화하다. 매너가 좋고 일 처리가 깔끔하다. 산업정책국장·무역위 상임위원·기획관리실장 등을 역임했다.
▲54세 ▲경북 성주 ▲경북高 ▲서울大 경제학과·美 보스턴大 경제학(석사)
◈金東源 산업자원부 자원정책실장
韓電·가스공사 민영화 문제로 고민중
자원정책실장은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고 에너지 수급 정책을 만든다. 요즘은 한전·한국가스공사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고민이 많은 자리이기도 하다. 金실장은 공직 생활의 대부분을 에너지 담당부서에서 보냈다. 소리나지 않게 꼼꼼하게 업무를 챙기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LPG 가격 인상 문제를 놓고 소비자 대표와 세 시간 넘게 토론을 벌여 설득시킨 끈기가 자랑거리다.
▲50세 ▲전남 광주 ▲광주제일高 ▲서울大 경영학과·美 콜로라도大 수료
◈金七斗 산업자원부 무역투자실장
강한 추진력 가진 해외通
무역투자실장은 무역과 외국인 투자를 총괄하는 자리이다. 외국인 직접투자 상황을 점검하고, 외국인 투자의 애로 사항을 풀어 주는 것도 주요 업무 중 하나다. 한번 목표를 세우면 과감하게 돌격하는 강한 추진력의 소유자로, 공보관을 지내 언론계에 知人이 많다. 호주에서 상무관을 지내고 영국에서 참사관을 지낸 해외通이기도 하다. 최근 수출이 잘 되지 않아 고민이 많다. 호주 상무관·전력정책과장·공보관·주영대사관 참사관·생활산업국장을 지냈다.
▲52세 ▲부산 ▲동래高 ▲연세大 행정학과·美 보스턴大 경영학(석사)
◈金彰坤 정보통신부 정보화기획실장
인터넷 등 정보화 기반 구축 담당
초고속 인터넷 망 구축과 정보화 교육, 인터넷 PC 보급 등 한국 정보화 기반 구축을 위한 모든 업무를 관장하는 곳. 행정고시에 합격했다가 체신청 근무를 위해 다시 기술고시에 응시해 합격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 1976년 기술고시 12기 출신으로 체신청에 근무한 이후 지금까지 줄곧 정보통신 관련 업무를 맡아와 통신업계 동향에 정통하다. CDMA 이동통신 상용화의 주역 중 한 명으로 꼽힌다.
▲53세 ▲충북 제천 ▲광운전자工高 ▲한양大 전자공학과
◈盧俊亨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정책국장
소프트 웨어 육성·IT 인력 육성 맡아
정보통신정책국은 「돈」, 「법률」, 「산하기관」을 쥐고 있는 막강한 곳이다. 특히 정보통신부의 예산인 수조 원의 정보화 촉진기금을 총 관리한다. 소프트웨어산업 육성·벤처기업과 IT 인력 육성, 이동통신 기술표준 결정 등을 담당하는 자리이다. 行試 21기 출신으로 정보통신부로 옮기기 전에는 경제기획원에서 일했다. 꼼꼼하고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부하 직원들의 신망이 두터운 편이다.
▲48세 ▲서울 ▲동성高 ▲서울大 법대
◈韓春求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지원국장
3300여 통신사업자 관리
정보통신지원국장직은 기간통신회사 33개, 별정통신회사 295개 등을 합쳐 모두 3300여 개의 통신사업자를 관리하는 자리이다. 통신회사 인·허가와 요금 인가에서부터, 차별 규제와 한국통신 민영화와 같은 통신산업 구조조정까지 관여한다. 陸士 출신답게 원칙을 중시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소령으로 예편한 후 1977년 특채 시험을 통해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54세 ▲경북 경주 ▲경주高 ▲陸士 26기
姜允求 보건복지부 기획관리실장
박사 학위 받은 斗酒不辭의 학구파
行試 16회 출신으로 경제기획원에서 사무관 시절을 보낸 뒤, 국민연금 실시를 앞두고 1987년 복지부(기금관리과장)로 영입되었다. 식품정책과장·가정복지과장 등을 거치면서 「알기쉬운 식품위생법」 등 업무와 관련된 책들을 펴낼 정도로 학구파이다. 치밀하고 차분한데다, 斗酒不辭(두주불사)의 술 실력으로 따르는 후배가 많다. 공보관·연금보험국장·기초생활보장심의관을 지낸 뒤 민주당 정책연구실장으로 나갔다가 2001년 5월 관리관으로 승진, 기획관리실장으로 영전됐다. ▲52세 ▲전남 영광 ▲광주高 ▲고려大 철학과·경희大 행정학(박사)▲「영유아 보육사업론」, 「보육시설 운영관리」
李圭用 환경부 환경정책국장
환경정책 총괄하는 환경부內 차세대 주자
李圭用 환경정책국장은 일찍부터 부처內에서 「차세대 주자」로 꼽혔다. 특히 金明子 現 장관을 포함한 역대 장관들에게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명석하고 노련한데다, 언변이 뛰어난 智將이란 평이다. 수질보전국장 재직 시절 부하 직원들이 『과장보다 실무를 더 잘 알고 있어 도저히 요령을 피울 수 없다』고 했다. 환경정책국은 국내 환경정책 업무 전반을 총괄 지휘하기 때문에, 「室長級 局長」으로 위상이 높다. 1978년 行試 21회에 합격, 법제처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1990년 환경부에 자원, 대기보전국장·수질보전국장을 지냈다. ▲47세 ▲서울 ▲경기高 ▲서울大 법대·서울大 행정대학원
尹成奎 환경부 수질보전국장
과장에서 지방 근무 없이 국장으로 수직 승진한 능력파
수질정책과장으로 일하면서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지방환경관리청 근무 없이 곧바로 본부 수질보전국장으로 수직 승진했다. 일 처리가 치밀하고 입이 무겁고 책임감이 강하다. 한 부하직원은 『일할 때는 독일 병정처럼 깐깐하지만, 속정이 깊은 상사』라고 평했다. 1977년 기술고시 13회에 합격, 건설부와 문화공보부에서 일하다 1987년 환경부로 왔다. 환경부 유해물질과장·폐기물정책과장·수질정책과장을 지냈고, 2001년 3월부터 수질보전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46세 ▲충주 ▲충주공업고등전문학교 ▲한양大 기계공학과·독일 클라우스탈大 대학원
金元培 노동부 기획관리실장
청와대 노동비서관 두 차례 지낸 노동행정通
노동부의 각종 기획·예산·조직관리 등을 주도하고, 고용 분야를 제외한 근로기준·勞政 업무를 총괄하는 노동부內 최고 요직이다. 金실장은 1973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노동청에 들어가 줄곧 노동분야에서만 근무하면서, 국제노동기구(ILO)주재관·노동부 직업능력개발심의관·노정국장·중앙노동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특히 청와대 노동비서관을 두 차례나 지냈다. 치밀한 업무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50세 ▲강원 ▲서울高 ▲서울大 응용물리학과·美 워싱턴大 경제학과
金容達 노동부 고용정책실장
호남인맥의 代父, 3년 넘게 청와대 勞使관계비서관 지내
고용정책실장은 IMF 외환위기 이후 비중이 부쩍 늘어난 자리로 각종 失業대책을 총괄한다. 金실장은 駐리비아 노무관, 駐제네바 국제 기구 참사관을 지낸 국제通으로, 통이 크며 노동부內 호남인맥의 代父로 불린다. 1974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대전지방노동청장·노동부 고용보험심의관을 지냈다. 現 정권 출범 후 청와대에 들어가 3년 넘게 복지노동수석비서관실에서 勞使관계 비서관으로 일하다 2001년 5월, 現 직책으로 자리를 옮겼다.
▲54세 ▲광주 ▲광주일高 ▲서울시립大·서울大 행정대학원
金鍾熙 건설교통부 수송정책실장
버스·택시 등 교통문제 전반에 해박
우리나라 육상·항공·철도 등 교통정책의 개발 및 수립, 집행을 총괄하는 자리이다. 金실장은 항공국장·육상교통국장·중앙토지수용위원회 상임위원을 거쳐 교통정책 전반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버스·택시문제에 관한 전문가로 육상교통국장 시절 자동차 리콜제를 주도했다. 陸士 출신으로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선이 굵고 추진력이 있으며 부하직원의 아픈 사정을 잘 챙겨 준다는 평을 받고 있다.
▲55세 ▲충북 청원 ▲대전高 ▲陸士 25기
蔣東奎 건설교통부 국토정책국장
추진력과 현실감각을 갖춘 건교부 수석국장
장기국토종합계획, 수도권계획, 광역권개발계획, 산업입지정책 등 우리 국토 전반을 계획하고 총괄 관리한다. 陸士 출신으로 추진력이 뛰어나면서도 섬세하게 각종 현안을 풀어나가는 능력이 뛰어나다. 감사관·수송심의관·서울국토관리청장·주택도시국장을 역임했다. 국토계획 체제 개편, 특정지역 제도 도입 등을 주도하였다. 부하들의 어려움을 배려하고 의리가 있다는 평이다.
▲54세 ▲경남 밀양 ▲세종高 ▲陸士 28기
崔在德 건설교통부 주택도시국장
그린벨트, 주택업무,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국장
그린벨트·신도시 등 이해관계가 얽힌 주택·도시 분야의 정책을 총괄하는 자리. 주택도시 행정이 민생과 밀접하기 때문에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국장이기도 하다. 국어교사를 하다 行試 18회로 관계에 입문한 崔국장은 「아이디어」와 추진력을 겸비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2001년 건교부 최대 현안 중 하나였던 그린벨트 해제와 전세난 대책을 별 무리없이 마무리지었다. 직원들의 술자리에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부하를 잘 챙겨 건교부의 「로맨티스트」라는 애칭도 갖고 있다.
▲54세 ▲대구 ▲경북高 ▲서울大 국어과
金一中 건설교통부 도로국장
국회의원·地自體長 민원 많아
각 지역구 국회의원들과 지방자치단체장들로부터 도로를 뚫어달라는 민원이 끊이질 않는 건교부의 요직. 도로에 관한 행정·계획·건설을 총괄하는 자리이다. 金국장은 기술고등고시 10회 출신으로 기술진흥과장, 기술정책과장, 원주지방국토관리청장 등을 역임했다. 빈틈없고 대범하게 일을 처리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합리적인 사고와 원만한 성품이 돋보이는 전형적인 기술 엘리트 관료.
▲55세 ▲전북 익산 ▲남성高 ▲서울大 토목과
金英南 해양수산부 항만국장
전국 항만공사현장 책임자 두루 거쳐, 국장급 이상 중 최고참
해양부內 국장급 이상 간부 중 최고참으로 해박한 전문지식에 강한 추진력을 갖춘 엘리트형 기술관료. 2000년 8월 항만국장에 선임된 이후 전국항만개발계획을 전면수정하고 항만산업 활성화 기본계획 등을 입안하는 등 정부의 항만투자 확대의 논리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 1970년 기술고시 5회에 합격한 후 대부분의 기간을 전국 항만공사현장의 책임자로 일해왔으며 특히 부산항건설사무소장, 인천항건설사무소장 등은 각각 두 차례씩 3년, 5년간 역임한 바 있다.
▲58세 ▲서울 ▲서울高 ▲서울大 토목공학과
朴奉欽 기획예산처 예산실장
국가의 살림살이 도맡아
한 해 각 부처 예산을 조절하는 위치가 예산실장으로 국가의 살림살이를 도맡는 자리이다. 꼼꼼한 성격이지만 부하직원들에게 좀처럼 화를 내지 않고 잘 챙김으로써 보스기질을 타고 났다는 평가다. 공평무사한 일처리를 인정받아 PK임에도 불구하고 두 해 연속 예산실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行試 13회이며 경제기획원과 재경부에서 물가총괄과장과 예산총괄국장을 거쳐 예산처 기획관리실장을 지냈다.
▲54세 ▲경남 밀양 ▲경기高 ▲서울大 상대·美 듀크大 경제학(석사)
任祥奎 기획예산처 예산총괄심의관
일처리 솜씨 깔끔한 物價通
예산실장을 보좌하는 자리가 예산총괄심의관이다. 任심의관은 목소리가 크기 때문에 어디에서든지 금방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호방한 게 장기. 업무에 들어가면 깔끔하게 처리하는 일솜씨를 인정받고 있다. 서울大 工大 재학 中 법대로 학사 편입한 다음 行試 17회로 공직에 발을 디딘 특이한 인물이다. 활달한 성격 탓에 직원들과 조화를 잘 이루며 운동과 술을 즐긴다. 재경부에서 물가 분야에 오랫동안 재직했으며, 물가정책과장을 거쳐 공보관·경제예산 심의관을 맡았다.
▲53세 ▲광주 ▲광주일高 ▲서울大 법대·美 시라큐스大 경제학(석사)
柳正錫 국무조정실 총괄조정관
장·차관회의, 국무총리의 대통령 주례보고 담당
1973년 13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대부분의 기간을 총리실에서 근무했다. 행정조정실 사정기획심의관, 수질개선기획단 부단장 등을 역임했다. 장관급인 국무총리국무조정실장을 보좌하며 외교안보·자치행정 등 국내·외 현안 과제를 조정하는 것은 물론 국무회의, 분야별 장관회의, 차관회의, 총리의 대통령 주례보고까지 챙기는 자리다. 2002년 월드컵 및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지원 업무도 총괄하고 있다.
▲58세 ▲전남 고흥 ▲조선大附高 ▲서울大 법학과·美 피츠버그大 경영대학원·고려大 경영학 박사
吳晟煥 공정거래위원회 독점국장
재벌개혁 진두 지휘
공정委 독점국은 재벌개혁을 진두지휘하는 실무부서다. 30大 기업집단의 출자 및 채무보증 제한, 독과점 행위방지 등의 업무를 담당하며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吳국장은 行試 14회 출신으로 조사국장과 소비자보호국장·경쟁국장 등 공정委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공정委 업무를 모두 꿰차고 있다. 업무처리에 무리가 없으며, 인간관계가 좋아 따르는 직원들이 많은 편이다. 최근에는 오랫동안 논란이 많았던 30大 그룹 지정제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55세 ▲대전 ▲서울師大附高 ▲성균관大 법학과
郭鎭業 국세청 차장
대기업 세무조사 지휘, 기획력·추진력 갖춰
항상 검소하고 소탈한 성품으로 조직의 화합과 친화력이 뛰어나 상하 동료 간 모두에게 신망이 두텁다.
行試 12회 출신으로 교육원 주임교관 및 소득·법인·전산 등 기획·정책총괄 부서는 물론 조사국에서 대기업 세무조사를 지휘, 국세 행정 전반에 걸쳐 폭 넓은 기획력과 업무추진력을 갖춘 국세행정의 전문가. 국세청 자료관리관, 부산지방국세청장, 국세청 법인납세국장 역임. 2000년 8월 국세청 차장에 임명되었다.
▲57세 ▲경남 김해 ▲동아高 ▲고려大 정치외교학과
奉泰烈 서울지방국세청장
호남 출신 첫 조사국장, 치밀하고 합리적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로 업무에는 치밀하고 상하 간에는 다정다감하며 매사에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스타일로서 내·외부적으로 신망이 두텁다.
行試 13회 출신으로 국세청 주요 기획부서에서 오랫동안 공직생활을 하면서 탁월한 기획력을 갖추고 있다. 호남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국세청 조사국장을 지냈으며 중부지방국세청장을 거쳐 2001년 10월 서울지방국세청장에 임명되었다.
▲57세 ▲전남 장성 ▲숭의高 ▲연세大 행정학과
李在光 국세청 법인납세국장
만능 스포츠맨, 酒類 전용카드제 도입
대학 2년 때에 行試(13회)에 합격, 공직에 투신. 학창시절 야구선수로 활약, 테니스·탁구 등 만능 스포츠맨으로서, 스케일이 크면서도 정이 많아 상·하 동료 간은 물론 대·내외적으로 신망이 두텁다. 조세연구원, 서울지방국세청 재산세국장·직세국장, 국세청 기획관리관, 광주지방국세청장 등 주요직책을 두루 거쳐 풍부한 실무경험과 이론에 밝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2000년 8월 국세청 법인납세국장에 임명되어 酒類구매 전용카드제 도입, 공공기관 과세자료 수집·활용 시스템 개발 등을 달성했다.
▲52세 ▲대구 ▲경북高 ▲영남大 법학과
成允甲 관세청 심사정책국장
總 國稅 수입의 26%에 달하는 약 25조원의 관세 거두어 들여
전국 세관을 지휘하여 2001년의 경우 總 國稅 수입의 26%에 달하는 약 25조원의 稅收목표를 무리없이 달성해야 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자리다. 成국장은 行試 17회 출신으로 광주·인천 세관장, 관세청 기획관리관 등을 역임했다. 항상 만면에 미소를 담고 있으며, 불우한 직원을 남몰래 보살피는 의리와 조용한 성품의 소유자. 한번 같이 근무했던 사람이 다시 찾아 오도록 하는 매력을 가졌다고 한다. 금강경 해설서 「강을 건넜으면 뗏목은 버려야지 왜 메고 가나」를 저술할 정도로 독실한 불교 신자로 별명도 「부처님」이다.
▲53세 ▲경북 청도 ▲부산商高 ▲고려大 사학과·동국大 대학원(철학)
金衡律 조달청 구매국장
6조7500여 원의 정부 구매예산 좌우
購買국장은 정부가 필요로 하는 모든 물자(군수품 제외)를 구매 공급하는 자리이다. 2001년에는 6조7500억원의 구매 계획을 세워 11월 말 현재 6조6000억원을 집행했다. 金국장은 기술고시 7회 출신으로 시설국장 등을 역임했다. 매사를 성실, 공정·투명하게 처리하는 원칙주의자로 실무자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는 평이다. 한나라당 全在姬 의원의 부군이다.
▲51세 ▲강원 강릉 ▲경동高 ▲한양大 기계과·연세大 경영대학원
姜秉兌 조달청 시설국장
연간 약 12조원 규모의 公共부문 시설 공사 관장
시설국장은 연간 약 12조원 규모의 公共부문의 주요시설공사를 책임지고 계약하는 자리이다. 姜국장은 기획관리관 재직 중이던 2000년 정부업무 심사평가시 기관운영 혁신과 민원서비스 고객만족도 부문에서 조달청이 종합우수기관으로 선정되는 데 기여했다. 과묵하고 치밀하면서도 원만한 성격으로 따르는 이가 많다. 行試14회 출신으로 조달청 기획관리관 등을 지냈다.
▲50세 ▲충남 금산 ▲서울 중동高 ▲서울大 경제학과·美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원 공공정책학(석사)
金珏泳 대검찰청 차장검사
직선적이고 다정다감한 외유내강형 검사
충청도 특유의 말솜씨를 지닌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검사. 성격이 직선적이고 다정다감하다. 울산지청장과 서울 서부지청장, 사법연수원 부원장,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을 거쳐 「공안 사령탑」인 대검 공안부장과 「검찰의 꽃」으로 불리는 서울지검장을 차례로 역임하면서 동기생 중 가장 먼저 「검찰 2인자」 자리에 올랐다. 1989년 광주지검 부장시절 조선대생 이철규君 변사사건을 처리했고, 12·12와 5·18 사건 항소심 공소유지를 지휘했다.
▲59세 ▲충남 보령 ▲대전高 ▲고려大 법대
吳仁成 서울지방병무청장
197만여 명에 달하는 首都 兵役자원 관리
강한 추진력과 리더십으로 업무 장악력이 뛰어나다. 1977년 수원지방병무청 총무과장을 시작으로 병무청과 인연을 맺었다.
1982년 체육부로 자리를 옮겨 체육·청소년 정책과장,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본부장 등을 지낸 뒤 1998년 「친정」으로 복귀했다. 전북지방병무청장, 부산지방병무청장을 거쳐 2000년 5월 서울지방병무청장으로 부임, 197만여 명에 달하는 병역자원을 관리하는 수도 병무행정의 「사령관」을 맡고 있다.
▲55세 ▲경남 진주 ▲진주高 ▲空士·건국大 행정대학원
尹圭赫 병무청 징모국장
매년 30여 만명을 軍 등에 공급
합리적인 성품에 추진력도 갖추고 있어 일처리가 깔끔하다는 평. 陸士 29기 출신으로 1979년 병무청에 들어온 뒤 인천·경기지방병무청 징병관, 대구·경북 지방병무청장 등을 지냈다. 1999년 병무청 핵심요직인 징모국장에 임명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매년 40만여 명에 대해 실시하는 징병검사를 비롯, 현역, 상근예비역, 戰警 등 30만여 명을 軍 등에 공급하는 장병 선발 및 충원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최근 병역비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병무청이 의욕적으로 추진중인 병무행정 전산화 작업의 실무 책임자이기도 하다.
▲54세 ▲경남 마산 ▲마산高 ▲陸士 29기
李大吉 서울지방경찰청장
直言 마다 않는 선비형, 정보국장 등 역임
차분하고 속마음을 잘 털어놓지 않지만 바른 소리를 마다않는 선비형. 간부후보 20기로 1980년대까지 전남에서 인사·감찰 분야의 요직을 거친 뒤 6共 末 서울경찰청 작전과장으로 중앙으로 진출했다. 서울 서부서장, 일본 주재관, 경찰청 공보관 등을 거쳤다. 金泳三 정권 시절 공보관을 지낼 때, 술자리에서 黃龍河 당시 경찰청장에게 『제대로 하시라』고 쏘아붙인 일화가 유명하다. 경찰청 정보국장 등 요직을 거쳐 2001년 11월 「경찰內 2인자」인 서울경찰청장에 부임했다.
▲57세 ▲전남 완도 ▲광주사범학교 ▲전남大 법대
成樂式 경찰청 차장
「無최루탄 원칙」 산파역, 現정권 출범 후 초고속 승진
큰 체구의 호남형으로 호방한 스타일. 간부후보 21기 출신으로 초급간부 시절 간부후보 과정 유격교관을 지내기도 했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때 서울경찰청 경비계장으로 국제적 행사를 치렀고 서울경찰청 경비부장을 지내기도 한 경비통. 1999년 서울 경비부장 시절 「無최루탄 원칙」 등 金大中 정부의 「新집회시위관리대책」을 만든 산파역이었다. 金大中 정부 출범 직후 경무관으로 진급한 뒤 1년8개월 만에 다시 치안감으로 진급하는 등 초고속 승진을 계속했다.
▲55세 ▲전북 남원 ▲전주高 ▲고려大 교육학과
安榮起 중소기업청 중소기업정책국장
중소기업창업진흥기금 등 4조5000억원 관장
1975년 관료 생활을 시작해 1998년까지 23년 동안 상공행정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산업通. 걸프戰 당시 駐사우디 대사관 상무관을 지냈다.
1999년 부산·울산 지방중소기업청장을 맡아 삼성자동차의 협력업체 문제를 잘 처리했다는 후문이다. 중소기업정책국은 중소기업 정책의 기본을 세우는 부서로서, 중소기업의 범위를 정하고, 단체 수의계약을 관장한다. 그가 관장하는 예산은 중소기업창업진흥기금 등 모두 4조5000억원 정도이다.
▲55세 ▲경북 월성 ▲동아高 ▲고려大 법대
李普遠 중소기업청 경영지원국장
중소기업에 자금·인력·판로·정보화 등 지원
경영지원국은 자금·인력·판로·정보화 등 중소기업에 대한 실질적인 경영지원을 시행하고 정책을 立案한다. 부드러운 성품으로 부하직원에게 인기가 높고 懸案사항은 국회, 관계부처를 직접 찾아다니면서 처리해 책임감이 강하다는 평이다. 行試 17회 출신으로 官界에 입문, 상공부 산업기술 분야를 두루 거쳐 2000년 2월 중소기업청 기획관리관을 맡으면서 중소기업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50세 ▲충남 부여 ▲경복高 ▲연세大 행정학과
徐泳柱 중소기업청 벤처기업국장
IMF 사태 후 주요 부서로 각광, 청렴강직한 성품
벤처기업국은 벤처중소기업 관련 정책수립, 창업 및 투자 지원 등을 담당하는 부서로 IMF 사태 이후 시대가 바뀌면서 중요 부서로 각광을 받고 있다. 徐국장은 行試 20회 출신으로 산업자원부 통상·산업 분야를 두루 거쳤으며 경제구조조정기획단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2000년 중소기업청으로 자리를 옮겨 대구·경북 지방 중소기업청장을 지냈다. 청렴강직한 성품으로 업무 추진력이 뛰어나고 속이 깊다는 평이다.
▲50세 ▲대구 ▲경북高 ▲서울大 법학과
李成宰 특허청 심사1국장
통상분야 오래 근무, 글로벌 스탠다드 강조하는 국제通
합리적이면서 해군장교 출신답게 화끈한 성격으로 智와 德을 겸비한 名將. 통상분야에 오래 근무하여 글로벌 스탠다드를 강조하는 국제통으로서 국제화를 지향하는 특허청 업무의 특성상 적임자라는 것이 주위의 평이다. 산업자원부 에너지관리심의관과 무역委 무역조사실장을 역임했다. 현직에 부임한 후 상표 및 의장제도의 선진화에 획기적으로 기여했다.
첫댓글 오래전에 행시 사이트에 올라왔던건데..
나 개인적으론..만약에 합격되면 감사원 가고싶은뎅..ㅎㅎ
90%가 문돌이네요...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