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 미국 월드컵에서 스페인과의 조별리그 당시 한국의 추격을 알린 홍명보(오른쪽)의 만회골 장면.
지금으로부터 꼭 30년전 오늘, 1994년 6월 18일은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미국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강호 스페인을 상대로 2 : 2 짜릿한 무승부를 기록한 날입니다.
이 경기는 2002 월드컵 4강 위업 이전에 우리 대표팀이 월드컵 무대에서 보여준 가장 드라마틱한 명승부로 한국 축구 역사에 길이 남아 있습니다.
미국 댈러스 현지 시간으로는 6월 17일 오후 6시 30분, 한국 시간으로는 18일 오전 8시 30분에 경기는 킥오프되었습니다. 평일 아침 시간대라 대부분의 학생들은 선생님의 특별한 허락하에 교실에서 중계를 보았습니다. 직장인들은 일찌감치 출근해 업무를 잠시 미루고 TV 앞에 옹기종기 모였습니다.
대회가 열릴 당시 스페인은 FIFA 랭킹 5위로, 4강 이상을 노리는 우승 후보였습니다. 반면 랭킹 41위의 한국은 역대 세번의 월드컵에서 1승도 거두지 못한 약체였습니다. 더구나 4년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도 두 팀은 맞붙어 일방적인 경기 끝에 스페인이 3 : 1로 이긴 바 있었습니다. 따라서 절대 다수의 전문가들은 스페인의 낙승을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모두의 예측과는 다르게 초반 양상이 흘러갔습니다. 김호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상대보다 더 많이 볼을 소유하며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섰습니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 무대에서 움츠러들지 않고 게임의 주도권을 잡는 모습은 사실상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미드필더 이영진과 노정윤이 부지런히 볼을 배급하고 김주성과 고정운이 쉴새없이 양쪽 측면을 파고 들었습니다. 무위에 그쳤지만 황선홍은 여러차례 과감한 슛을 쏘았습니다.
행운도 따랐습니다. 훗날 테니스 선수로 유명한 라파엘 나달의 친척 미겔 나달이 전반 25분 고정운의 질주를 막다가 무리한 반칙을 범해 퇴장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방 끝에 전반은 0 : 0으로 끝났습니다.
후반에 접어들자 한국의 수난이 시작됐습니다. 50분쯤 신홍기의 볼을 가로챈 카미네로의 반격이 코이코체아의 크로스로 이어지고, 공격수 살리나스가 쓰러지며 골문안으로 밀어넣었습니다. 다시 5분 뒤에는 카미네로의 크로스를 받아 코이코체아가 헤더 슛을 성공시켰습니다.
두 골차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김호 감독은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홍명보를 미드필더로 끌어올리고, 발빠른 서정원과 하석주를 투입하면서 기동력을 높인 것입니다.
남은 시간 6분, 페널티 에리어 왼쪽 모서리에서 얻은 프리킥 찬스에서 이영진이 살짝 밀어주자 홍명보가 날카로운 슛을 쏘았습니다. 볼은 스페인 선수 발에 맞고 골문 안으로 빨려들어갔습니다. 한국 1 : 2 스페인.
스페인과의 조별리그에서 서정원이 동점골을 터뜨린 후 포효하고 있다.
최후의 5분동안 태극전사들이 총공세를 퍼부었습니다. 이윽고 후반 44분. 홍명보가 아크서클 부근의 황선홍을 향해 빠른 패스를 보내자, 수비를 등진 황선홍은 홍명보에게 리턴 패스를 했습니다. 방향을 꺾은 홍명보의 왼발 패스는 골문을 향해 달려가는 서정원의 발끝에 정확히 닿았습니다.
그리고 서정원의 발끝을 떠난 볼은 스페인 골키퍼 카니자레스가 손쓸틈도 없이 골네트를 갈랐습니다. 한국 2 : 2 스페인. 두 주먹을 불끈 쥔채 어퍼컷을 날리는 서정원의 포효가 있고, 잠시후 종료 휘슬이 올렸습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극적인 무승부에 대한민국 전역은 열광과 환호로 들끓었습니다. 세계 축구계도 한국 축구의 성장과 놀라운 투혼에 찬사를 쏟아냈습니다.
어린 시절 보았던 이 경기를 계기로 축구에 빠져들었다는 중년 축구팬들이 많을 정도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영원히 잊을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 서정원 동점골 영상 보기 https://youtu.be/9K1WZ7vtEi0?si=N-mMrX6sIGtr1Rx6
글 : 송기룡(대한축구협회)
사진 : 한국스포츠신문사진기자회 /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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