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원
어제 편지 썼는데 오늘 학교서 방학할 때까지 특별히 할 일도 없어 또 쓴다. 각반마다 한시간 정도씩 남아 다른 방법으로 수업을 할 것이라 마음이 한가하다. 사람은 매일 만나는 사람 사이에 더 말이 많지. 가끔 만나면 처음에는 반갑다고 인사를 하지만 금방 할 이야기가 떨어지고 서먹서먹하지. 그래서 서로 멀뚱멀뚱 얼굴만 바라보며 헤어질 시간을 생각하게 되지. 학교에 아빠 따라 일찍 출근했는데 머리가 잘 안 돌아가. 집중력도 떨어져 책도 잘 안 읽게 된다. 어제도 책 읽는다고 하고서 그냥 책 편 채로 잠이 들었다. 현경이가 늦게 오니까 일러야 1시다. 그러니까 이른 잠시간은 아니지. 보통 아침에 5시 50분이면 눈이 떠지는데 나와 보면 아빠는 벌써 학교 갈 준비를 하시고 졸고 계신다. 그제는 3시에 일어나셨대. 월드컵 축구 결승과 박세리 골프 보시느라. 아침 학교 갈 때쯤 되면 매일 졸리고 피곤하다고 하신다. 사람들의 습관은 고치기가 힘들다. 난 그때 일어났다가 더 잔다. 6시 50분쯤 일어나도 별일 없어 그때까지 잔다. 한번 깨었다 자니까 푹 자는 셈은 아니지. 현경이가 그냥 학원서 점심 시켜먹는다고 하여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밥을 할 일이 거의 없다. 나도 없으면 간단하게 사 먹고 들어가니까 점점 더 안 하게 된다. 교무실에 소음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 출근들을 하니까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우리 부 선생님은 한 분도 오시지 않았다. 모두 젊은 여자 선생님이라 아이들이 어리니까 챙기느라 늦는다. 나도 젊었을 때는 늦게 다녔는데 나이 들면서 부지런을 떨게 된다. 집에 있어야 할 일이 없으니까 움직이게 된다. 지난 주에는 학교에 와서 아침 한 시간을 잤다. 늦으면 대처할 자신도 없고,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이. 추해 보여 될 수 있는 대로 지각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
어제 동혁(지원 외삼촌)이 엄마가 전화를 했다. 동호 엄마 가기 전에 만나는데 올 수 있겠냐고 하여 못 간다고 했다. 16일 목요일 오후 2시에 만난다고 하는데 난 그날 학교가 정상적으로 끝나 얼굴들을 못 보게 되는 것이지. 동혁이네 외할머니네 가게에서 모인다고 해. 일영에서 주차장도 크고, 축구장도 있는 큰 음식점을 한 대나 봐.. 꽤 잘 되는가봐. 놀이겸, 외식겸 모일 수 있는 곳인가 봐.. 주말에는 앉을 자리도 없을 정도라 동혁이네 온 식구가 가서 일을 돕고 일당을 받는대. 외삼촌네 회사가 문을 닫았어. 나산 그룹에서 하는 유통 회사 본부에 있었는데, 본부만 문을 닫고 매장은 그대로 영업을 하고 있는가 봐. 딴 유통 업체에서 오라고 하는데 신중하게 생각하고 가야 될 것 같아서 실업자 수당을 신청했대. 요즘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아. 성원이 외삼촌은 베트남에서 L.G 그룹 산하 회사들이 함쳐 졌는데 L.G 화학 지사장만 맡았다가 총지사장이 되어 아주 바쁘대. 외국 지사에 나간 사람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진가 보더라. 수출은 많이 하는데 비해 손해가 너무 많아 고민 중이라고 한다. 요즘 외국에 나가 있는 회사들의 공통된 고민이라고 한다. 모두 어려운 시절이다. 빨리 극복하여 웃으며 과거를 이야기하게 되면 좋겠다. 목요일에 면목동에서 모이면 너무 더워 그곳서 삼계탕이나 먹을 것이라며 나도 초대했다. 그런데 나는 그날 방학전 모임도 있고, 내가 맡은 부에서 전달해야 할 내용도 있고, 강서 여중 모임도 있어 못 간다. 직장을 다니면 좋은 점도 있지만 불편한 점도 있다. 시간에 구애를 받게 되지. 오늘도 대학 모임이 있는데 못 간다. 점심 모임인데 오늘 우리 학교의 자율 장학지도가 오후 3시에 있으니까 움직이면 안 되고, 요즘에는 시간이 안 맞아 못 나가고 있어. 직장 다니며 시간 구애받지 않고 다니는 것은 남 보기에도 불성실해 보이고, 나 자신도 그렇게 느껴져 낯 설은 짓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것이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난 방학에는 시간이 나는데 그 친구들은 방학에는 모이지 않아 얼굴을 일년에 한 두 번 보는 정도다. 그런데도 만나면 반갑다. 그 친구들은 직장을 다니지 않기 때문에 나를 많이 부러워한다. 내가 힘들어 학교를 그만 다닐까 보다고 했더니 모두 말린다. 자녀들이 모두 우리 집 같으니까 엄마처럼 한가하지. 경제적으로도 안정이 되어 있으니까 내가 부럽대. 종교 활동들을 많이 해서 보람을 느끼는데도 한계가 있는 듯 하다. 오늘 못 나간다고 했더니 친한 친구들만 방학 때 몇 모여 영화보고 식사하자고 했다.
아빠는 방학 때까지 매일 저녁을 잡숫고 들어오시겠다고 하신다. 그 학교는 남자선생님들이 많아 모임이 많다. 아빠네 학교는 방학을 20일날 하신다고 하는데 방학해야 매일 학교에 나가시니까 별 의미가 없다. 남자들 집에 있어야 밥 3끼 차리기 번거롭기나 하니까 아빠처럼 나갔다 오시는 것이 더 좋다. 아빠는 속이 안 좋으셔서 가리는 음식이 많으니까 굉장히 신경이 쓰인다. 지난 일요일 점심에 떡국을 먹었는데 속이 안 좋다고 하여 산책을 했다. 밀가루 음식을 거의 안 잡수시니까 음식 장만이 힘들다. 나처럼 잘 안 해 먹는 사람에게는 고역이다. 난 방학동안 컴퓨터 연수가 일주일 있는데 기초 반이라 모두 괜히 하지 않았느냐고 하는데 한번도 연수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하려고 한다. 난 그냥 워드 정도 하는 것이지 무엇을 알아하는 것이 아니니까 언제나 자신이 없다. 하긴 해도 타자정도 치는 것이지 하는 생각에 누군가 물어 보면 대답이 궁색하다. 배워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해보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다. 뒤로 물러서다 보면 뒤쳐질 것 같다. 게을러지고, 안일해지고, 풀어진 해파리처럼 될 것 같다. 오늘 저녁 6시쯤 성당에 가서 성체 조배하고, 기도 드리고, 미사 드리고 올 예정이다. 더운 날 꾹 참고, 땀 날 때는 몸무게가 그만큼 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살렴. 바꾸어지지 않을 일들을 가지고 옥신각신 하는 것은 어리석게 보인다.
우리 모든 가족은 너를 생각하고, 너의 평안과 건강을 빈다!
1998년 7월 18일
너를 사랑하는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