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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이면 금암리 출신 이재언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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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무스름한 건강한 피부, 짧은 머리, 균형 잡힌 몸매, 그를 60대로 보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다. 경기도 과천 이재언 세무사 사무실에 앉아있는 이재언(62)씨는 건강한 눈빛으로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만나기 전 그는 이미 자신이 돌아본 세월을 하나씩 되뇌어 보고 있었다.
1943년 동이면 금암리에서 8남매 중 넷째(차남)로 태어나서 1950년 동이초(16회) 입학, 1959년 옥천중학교(8회) 입학, 1959년 중학교 졸업 2년간 휴식(영농종사, 가출-양복점 보조자, 식당 종업원)까지 중학교를 졸업하고, 쉬었던 2년여의 시간은 그에게 주어진 인생과 그가 가려고 한 인생의 한바탕 힘겨루기였다.
그 시기는 그가 앞으로 세무사가 되기까지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큰 형님이 일찌감치 공부로 눈을 돌려 가업인 농사는 차남 이재언씨 차지였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볼 때 줄줄이 있던 동생들 학교를 계속 보내려면 그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사를 짓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부모님의 고생을 어렸을 적부터 보아 온 그는 죽어도 농사짓기는 싫었다고 했다. 그는 갈림길에서 나름대로 도박을 했다. 가출을 시도한 것이다. 혼자서 영동, 보은, 서울까지 돌아다니면서 양복점 보조자, 식당 종업원 등 다양한 직종을 경험하게 된다.
힘들면 집에 들어오고, 또 나가고, 그러기를 여러 번 집에서도 이미 포기를 했고, 그는 일찌감치 자기 인생의 주권(?)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그 만큼 책임도 컸고 고민도 많았다고 한다. 농사짓는 것을 물려받지 않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은 그의 의중대로 됐지만, 벌써 2년이 늦은 후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세무공무원까지
그가 그토록 원하던 공부였다. 공부 못지않게 운동도 좋아했던 그는 달리기, 아령 등을 하며 몸을 다졌고, 그래서 ‘스파르타’란 별명도 붙었다. 하지만, 학교성적은 별로 안 좋았다. 서울로 대학진학을 하려던 그는 당시 서울에 있던 형이 서울에서 사업을 접고 내려오자 그 꿈을 접었다.
본래 그의 꿈은 ‘육군사관학교’였으나 의욕적으로 입학했던 고등학교 생활도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아는 동네분이 교대를 권했고, 그는 고3 2학기부터 본격적인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의 시험 운과 더불어 피나는 노력으로 그는 당시 옥천에서 세 명만 입학한 청주교대에 입학했다. (이재언씨의 2년 후배로 같이 옥천실고에 다닌 박진하 죽향초 교장, 이병석 군남초 교장이 같이 합격했다)
대학에 입학한 그는 나이 때문에 바로 군대에 갔고, 제대 후 또 방황을 했다. 교대에 입학하기 전 교사에 대한 고민이 적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우연히 하숙집에서 같이 공부한 친구 때문에 그는 세무공무원 시험을 보게 됐고, 바로 합격해 대학을 휴학하고, 충주세무서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다.
동대전, 대전, 용산, 서울 중부, 안양 세무서를 거치고, 국세청연합조사반, 중부지방 국세청 조사반을 거친 그는 사무관 승진을 앞두고 사표를 제출한다.
그는 1984년 안양세무서 법인세계장을 마지막으로 16년간의 세무공무원 생활을 마감하고, 자신의 세무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관료주의의 염증도 있었거니와 오랫동안 청탁 등에 많이 시달려와 본격적으로 자기 사업을 하기 위해 그만뒀다고 그는 고백한다.
현재의 그, 과거의 그
그는 요즘 신바람이 나는 것 같다. 매일 어김없이 새벽 5시에 일어나 꾸준히 새벽등산을 하고, 등산일기로 기록한다. 매일 새벽등산은 모락산을 찾고, 주말은 관악산, 청계산, 백운산, 북한산 등을 휘돈다.과천에 정착한지 10여 년 된 그는 지역인사로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과천시지방세심의위원을 비롯해 과천라이온스클럽 회장을 역임했고, 과천시민회관관리공단이사 등도 맡고 있다.
또, 후배 황인구(옥천중 22회)동문이 만든 과천시민의신문에 매주 세무 상담 자료를 싣고 있다. 여기다 옥천중 8회 부부동반모임인 옥향회와 매년 8월15일마다 만나는 금우회(금암리 향우회) 등 고향의 여러 모임들이 그의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그는 ‘선택’과 ‘집중’을 생활화하고 있었다. 일과시간에는 세무상담의 자료를 항상 새롭게 정리하고 축적한다. 인터넷과 잡지, 신문 등의 자료를 잘 세분화해 그의 업무에 질을 높이는 것이다. 그 외 여가시간에는 자유롭게 자신의 시간을 향유하고 있었다.
옥천에도 벚꽃이 피었지만, 과천에도 벚꽃이 피었다. 그리고 그의 마음속에는 옥천과 과천의 벚꽃이 모두 피었다. 그는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2004년 04월 17일 옥천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