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편백나무(히노끼)인테리어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참살이 정보마당. 스크랩 전통가구_서울역사박물관
멋지자 추천 0 조회 1,231 08.05.09 14:2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강화반닫이
세로 49.2㎝ 가로 95.8㎝ 높이 76.4㎝ 
반닫이란 앞면 상반부를 문짝으로 만들어 위아래로 여닫는 가구로 의류, 서책, 그릇 등을 보관하였다. 반닫이는 지방마다 다른 독특한 형태와 금구(金具)장식에 따라 평안도 반닫이, 개성반닫이, 강화반닫이, 제주도반닫이 등이 있다. 반닫이는 기능성을 우선한 가구로 우리 가정에서 가장 요긴하고 다양하게 발달된 가구다.
이 반닫이는 사개물림으로 짜여져 견고한 느낌을 준다. 자물쇠 앞바탕은 '卍(만)'자가 뚫을새김된 호리병형이고 배꼽장식도 '卍(만)'자형이다. 각 모서리에는 화형 귀장식이 되어 있다.
 

 


문갑
세로 30.8㎝ 가로 84.4㎝ 높이 35.7㎝
문갑은 문구갑(文具匣)의 준말로, 중요한 서류나 물건을 임시로 치워두고 필통, 연적 등의 문방용품을 놓는 가구로. 조선 시대의 좌식 실내생활에 적합하게 발달된 것이다. 이 문갑은 내부서랍이 삼단으로 8개이며 서랍 내부 바닥에 ‘좌(左)’, ‘중(中)’, ‘우(右)’가 각각 먹으로 적혀서 위치가 표시되고 중앙부에는 서랍이 없다. 문은 3매의 판재로 되어 있으며 중앙부분에 금속으로 된 동그란 잠금장치가 있다.

 

 
서안
세로 40.3㎝? 가로 135.3㎝? 높이 36.1㎝
서안은 책을 읽거나 글을 읽는데 쓰이는 사랑방의 평좌식(平坐式) 가구이다. 장소와 용도에 맞추어 독서용으로는 길이가 짧은 것을 사용하고 두루마리에 글을 쓸 때에는 긴 것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선비들의 작은 방과 침실에는 작은 서안이 비치되었다. 이 서안은 두루마리 형태의 개판이나 풍혈 등의 장식이 없는 간소한 형태를 하고 있다. 4개의 서랍이 있으며, 각각 동판과 여기에 부착된 고리가 달려있어 열고 닫기 쉽게 만들어져 있다.
 

 


서안
세로 28.5㎝? 가로 59.2㎝? 높이 26.5㎝
서안은 책을 읽거나 글을 읽는데 쓰이는 사랑방의 평좌식(平坐式) 가구이다. 상판의 길이가 짧은 것과 긴 것이 있는데 독서용으로는 길이가 짧은 것을 사용하고 두루마리에 글을 쓸 때에는 긴 것을 사용하였다. 상판 아래에는 선반이나 서랍을 달았고 상판이 곧고 판판한 것을 격이 높은 것으로 보았다.
이 서안은 양 옆에 두루마리 개판이 있으며 서안 둘레에는 여의두(如意頭) 문양이 음각되어 있다.

 

 
의걸이장
세로 46.4㎝? 가로 111.0㎝? 높이 113.9㎝
장(欌)은 의복이나 이불 등을 넣어두는 가구로 2층 또는 3층으로 되어 있다. 구조에 따라 단층의 머릿장, 이층장, 삼층장 등으로 분류하고 쓰임새에 따라 의걸이장, 이불장, 버선장 등으로 분류한다.
이 의걸이장은 위 층과 아랫 층이 분리될 수 있는 이층장으로 옷을 보관하는 장이다. 옷장의 내부에는 비단을 붙였다. 윗층에는 앞면에 문을 달아 옷을 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위와 아래에 5개로 구획된 머름간이 있다. 문에는 화려한 모란과 잎을, 머름간에는 잎만을 뚫을새김[透刻]하였다. 아래층에도 옷을 넣을 수 있는 수납공간이 있고 모란꽃이 뚫을새김[透刻]된 문이 있다. 
 

 


이층책장
세로 35.3㎝? 가로 107.2㎝? 높이 85.9
책장은 책을 넣어 간수하기 위한 수납용품으로 문짝을 열어젖히는 서장이나 층층이 선반을 얹어 포개두던 서가(書架)도 있다. 책장은 병충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주로 오동나무를 사용하여, 무거운 책을 넣어둘 수 있도록 튼튼하게 만들었다. 이 책장은 천판에 두루마리 개판이 부착되어 있으며 윗층과 아래층에 여닫이 문이 약과형 경첩으로 연결되어 있다. 머름 간에는 여의두문(如意頭文)이, 그 이외의 부분에는 보상화 문양이 음각되어 있다.
 

 

자개함
세로 28.1㎝? 가로 49.0㎝? 높이 28.2㎝
함은 물건을 넣어두는 상자로 궤에 비해 크기가 작으며, 뚜껑이 위에 있고 경첩을 뒤에   달아 여닫을 수 있거나, 뚜껑을 덮어씌우도록 한 가구이다. 함은 대개 크기가 작아서 다른 가구 위에 올려놓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장식용으로도   사용되었기 때문에 조형뿐만 아니라 색채, 문양 등도 매우 아름답게 꾸며졌으며 일반 서민 가정에서는 저렴한 재료로 만들어 주로 수장구(收藏具)로 사용하였다.
이 자개함은 대나무, 소나무, 매화, 도화 등이 자개로 장식되어 있다. 뒷면에는 '壽(수)'자가 새겨져 있다.
 

 

제기궤
세로 50.3㎝? 가로 109.4㎝? 높이 99.5㎝ : cm
궤란 물건을 담는 나무로 만든 상자를 가리킨다. 이러한 양식의 궤는 윗판을 여닫는다 하여 윗닫이라 부른다. 궤는 곡식을 넣어 두거나 제기(祭器), 책, 피륙, 기타 기물(器物)들을 넣는 다목적인 가구로 사용되어 왔다. 크기도 30cm 가량의 소형에서부터 2-3m 가량의 대형으로 다양한 편이다. 가구의 구성은 반닫이와 같으나 윗쪽으로 문을 열어야 하기에 반닫이에 비해 키가 낮고 장식 또한 간략하다.
이 제기궤는 탁자 모양의 궤로 일반적인 궤와 달리 기둥과 족대가 있다. 윗면에 뚜껑을 달아 위에서 제기를 넣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책궤
세로 36.8㎝? 가로 89.6㎝? 높이 36.1㎝
궤란 물건을 담는 나무로 만든 상자를 가리킨다. 궤는 곡식을 넣어 두거나 제기(祭器), 책, 피륙, 기타 기물(器物)들을 넣는 다목적인 가구로 사용되어 왔다. 크기도 30cm 가량의 소형에서부터 2-3m 가량의 대형으로 다양한 편이다.
이 책궤는 이층 서랍 아래 책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단문갑
세로 29.1㎝ 가로 67.8㎝ 높이 30.6㎝
문갑은 문구갑(文具匣)의 준말로, 중요한 서류나 물건을 임시로 치워두고 필통, 연적 등의 문방용품을 놓는 가구로, 조선 시대의 좌식 실내생활에 적합하게 발달된 것이다. 한 쌍으로 된 것을 쌍문갑이라 하고, 이 문갑은 여의두(如意頭, 법회나 설법 때, 법사가 손에 드는 물건인 여의에 달린 '심(心)' 자를 나타내는 고사리 모양의 머리) 모양의 앞바탕과 활형의 손걸이가 있다. 자물쇠는 이미 떨어져 나갔으며 다리는 안쪽으로 말린 두루마리형이다.
 

 

돈궤
세로 27.0㎝ 가로 50.0㎝ 높이 24.0㎝
 

 

머릿장
세로 49.3㎝ 가로 83.3㎝ 높이 93.9㎝?
머릿장은 머리맡에 두는 장으로, 평소에 자주 쓰이는 물건을 쉽게 찾아 쓸 수 있도록 머리맡에 놓고 쓴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머릿장은 장롱을 축소한 듯한 형태이며 일상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용품을 넣기 때문에   중앙에 문을 달고 상하에 소품을 넣기 위한 서랍이 있다. 서랍과 쥐벽간, 머름간은 괴목, 문판은 소나무를 사용하였다. 기둥과 쇠목, 동자목 사이에는 새발장식을 하였고 서랍에는 원형들쇠가 있다. 여닫이문에는 원형 앞바탕에 물고기 모양의 자물쇠가 달렸고, 앞바탕 문양은 약간 마모되었다. 제비초리형 경첩이 4개 있으며 그 안에는 福(복)자와 壽(수)자가 음각되어 있다. 문짝의 좌우 및 상하에 댄 테두리인 문변자(門邊子)에는 각각 꽃 모양의 귀장식이 있다. 다리에는 밑에 대는 널인 족대와 운각, 풍혈이 있고 족통은 개다리[狗足]모양이다.
 

 

문서함
높이 11.7㎝? 세로 39.0㎝? 가로 60.0㎝
함은 물건을 넣어두는 상자로 궤에 비해 크기가 작으며, 뚜껑이 위에 있고 경첩을 뒤에 달아 여닫을 수 있거나, 뚜껑을 덮어씌우는 가구이다. 크기가 작아서 다른 가구 위에 올려놓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장식용으로도 사용되었다. 일반 서민 가정에서는 저렴한 재료로 만들어 주로 수장구(收藏具)로 사용하였다. 이 문서함은 평면이 넓고 높이가 낮은 상자모양으로, 여닫이용이며 흑칠이 되어 있다. 앞널에는 뻗침대, 뒷널에는 노출형 경첩이, 옆널에는 원형 들쇠 받침에 걸쇠고리인 배목으로 연결한 꽃모양의 들쇠가 있다. 상판과 하판, 옆널의 접합은 목재의 이음을 보강하는 감잡이를 이용했다.
 

 

반닫이
세로 42.6㎝ 가로 86.5㎝ 높이 78.5㎝
반닫이란 나무로 짜서 물건을 넣어두는 장방형의 커다란 궤(櫃)이다. 반닫이란 명칭은 궤의 윗널이나 앞널의 절반쯤을 문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열리게 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반적으로 느티나무, 느릅나무, 참죽나무와 같은 단단한 목재를 두껍고 폭넓은 널판으로 만들어서 튼튼하게 짠다. 주로 의복과 문서, 서책 등을 간수하는데 쓰였다.
 

 

버선장
세로 24.5㎝ 가로 42.7㎝ 높이 34.5㎝
장(欌)은 수납장을 통칭하는 용어이나 천판(개판)의 형태나 옆널에 따라 장과 농(籠)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장은 천판이 몸체보다 양옆으로 튀어 나와 있고, 몸체의 층별 구분이 없는 것이다. 농은 천판이 없으며 몸체와 천판이 같은 상자형으로 되어 있으며 여러 개를 포개어 놓고 사용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머릿장은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물건을 쉽게 찾아 쓸 수 있도록 머리맡에 놓고 쓴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장의 일종이다. 장이 궤에서 발달된 형태라는 것을 감안할 때 그 역사는 오랠 것으로 생각되나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 다만, 《삼국유사》의 함에 관한 기록, 《임원경제지》농에 관한 기사 등에서 미루어 볼 때 일찍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려시대의 나전 경함 등을 통해 짐작컨대, 그때 이미 우수한 목가구를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버선을 주로 넣어두는 장을 버선장이라고 한다. 앞판의 재료는 사랑방용으로 오동나무·먹감나무·소나무 등의 나무결이 좋은 양재(良材)가 쓰여졌으며, 안방용으로는 문양이 아름다운 물푸레나무나 채색이 아름다운 화각(華角)·수(繡)·자개 등으로 치장하였다.
 

 

사층책장
세로 47.4㎝ 가로 85.7㎝ 높이 189.0㎝
오동나무의 재질을 그대로 잘 살려 만들어진 직사각형의 책장이다. 4층의 구조로 좌우 양 편으로 문짝을 달아 수납공간을 열고 닫을 수 있게 되어있다. 위와 아래의 머름간에는 세로동자가 2개씩 있고 문에는 숨은 경첩을 좌우 각각 2개씩 달았는데 이는 장식의 용도도 겸하고 있다. 약과형(藥果形)의 앞바탕에는 사각형 고리를 달고 배목에 비녀장을 꽂는 방식의 선자물쇠를 달았다. 배목은 가운데에 고리를 만들고 양 끝을 뾰족하게 만든 것으로, 고리에 자물쇠의 윗부분을 끼워 고정시킨다. 자물쇠 앞면에는 쌍희자를, 위아래로는 아(亞)자문을 음각하였다. 
 

 


엽전궤
세로 41.5㎝? 가로 88.0㎝? 높이 42.0㎝
엽전을 담아두는 상자로서 경기도 지방에서 사용하던 궤이다. 이 궤는 윗판을 여닫는다 하여 윗닫이라고도 불린다.
궤는 물건을 담아두는 나무로 만든 상자를 말하는데 곡식을 넣어 두거나 제기(祭器), 책, 피륙, 기타 기물(器物)들을 넣는 다목적인 가구로 사용되어 왔다. 크기도 30cm 가량의 소형에서부터 2~3m 가량의 대형으로 다양한 편이다. 가구의 구성은 반닫이와 같으나 윗쪽으로 문을 열어야 하기에 반닫이에 비해 키가 낮고 장식 또한 간략하다.
 

 

찬탁
세로 31.3㎝ 가로 113.5㎝ 높이 143.5
찬탁은 부엌에서 반찬이나 반찬거리를 넣어두는 부엌가구이다. 또한 식기류를 얹어 놓는 것으로 자기나 놋그릇 등의 무거운 그릇을 감당할 수 있도록 굵은 기둥과 두꺼운 판재로 튼튼하게 만들었다. 이 찬탁은 나무로 만들어진 3층 찬탁인데, 각 층은 좌우로 뚫려있고 단조로운 구조이다.
우리나라에 목가구가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고분벽화나 풍속화 등으로 미루어보아 삼국시대 이전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조선 초기까지의 목가구는 매우 적은 양만이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에 이르러 독립장인들이 등장함에 따라 이전보다 더욱 다양한 목가구가 제작되었다.

 


가께수리
높이42.5㎝? 세로30.5㎝? 가로69.3㎝
가께수리란 남자들이 쓰던 세간의 하나로, 반닫이와 겉모양이 유사하나 내부에 여러 모양의 서랍이 있어 특별히 중요한 기물을 보관하는데 사용되었다. 일본에서 전래된 것으로, 조선 후기에 토착화하여 책상이나 문갑과 비슷한 외형을 가지게 되었다. 중요한 물건을 놓아두는 가구이기 때문에 장식성과 안전성을 고려하여 단단하게 만들었으며, 조선시대 후기에 부유한 집에서 주로 사용했다. 이 가께수리는 상판에는 여닫이용 문을 가진 공간이 좌·우 2곳에 있고 앞면의 여닫이용 문짝과 상판 사이의 중앙에 매우 낮은 한 개의 서랍이 있다. 여닫이용 문을 열면 3단으로 구획된 칸에 모두 4개의 서랍이 있다.

 

 
경상
높이 31.1㎝? 너비 72.2㎝? 길이 31.9㎝ : cm
경상은 중국의 당송시대의 경상양식에 영향을 입은 반곡(反曲)된 두루마리형 천판(天板)과 운당초형(雲唐草形)의 다리를 한 형태로서 우리 민족의 기호와 생활양식에 따라 변화되어 중국의 것에 비해 날렵하고 세련된 맛이 있다.
이 경상은 별도로 짜여진 서랍으로 한 칸을 구성하고 판을 받치는 별도의 쇠목을 둘렀다. 서랍의 앞면은 안상문(眼象文)을 세 개 양각하였고 그 중앙에 천도형 고리를 달아 열고 닫게 했다. 측면과 뒷면에는 투각된 안상문을 배치했고 천판을 받치는 초각(草刻)이 네 모서리에 마련되고 호족형(虎足形) 다리에는 대나무마디 모양의 풍혈(風穴)이 장식됐다. 
 

 

나전흑칠연상
높이 28.6㎝? 너비 42.3㎝? 길이 28.2㎝ : cm
나전은 자개를 무늬대로 잘라 목심(木心)이나 칠면(漆面)에 박아넣거나 붙이는 칠공예 기법을 말한다. 연상은 벼루를 담아두는 상으로 얇고 길쭉한 서랍이 달려 있는 것도 있고 공간을 두어 종이나 서진, 연적, 먹, 붓 등을 넣어 둘 수 있게 만든 것도 있다. 중국에서는 연갑을 많이 사용하였으며 우리나라는 온돌문화 때문에 방바닥에 그대로 놓고 써도 높이가 알맞은 연상을 많이 사용했다. 이 연상은 소나무에 옻칠한 후 자개로 무늬를 새겨 만들었고, 천판의 뚜껑이 두 쪽인 전형적인 연상이다. 윗면의 천판(天板)은 벼루를 넣는 두 개의 함으로 구성되고 뚜껑으로 덮도록 되어 있다. 앞면은 하단의 서랍에 박쥐형 들쇠고리를 달고 그 안에 물건을 담도록 했다. 천판은 완자문으로 테두리를 두르고 수자를 중심으로 운학문(雲鶴文), 천도문(天桃文)을 새겼다. 앞면의 상단은 사각의 테두리 속에 화조문(花鳥文)을, 하단의 서랍 역시 사각의 테두리속에 초화문(草花文)을 새겼다. 양 측면 상단은 초화문을, 하단은 물고기와 매화문양을 시문하였다. 뒷면의 상단은 산수루각문(山水樓閣文)을, 하단은 매화문(梅花文)을 새겼다.
 

 

삼층찬장
세로 44.5㎝ 가로 97.0㎝ 높이 149.2㎝
주방용 식기 및 음식물을 보관하는 가구. 괴목이나 소나무로 만들고 무쇠장식을 달았다. 주로 대청에 놓고 사용하였으며, 일용식기 외에 각종 반상기 등 중량감 있는 그릇을 포개어 보관할 수 있도록 튼튼하고 안전한 구조로 짜여졌고 둔탁하고 육중한 형태로 되어 있다. 단층 뒤주장, 2층 또는 3층 찬장으로 분류되며 쥐벽칸·머름칸을 두어 분할, 장식하였다. 2층찬장은 천판(天板)이나 하부공간에 소도구를 얹게 되어 있고 3층찬장은 수저 등을 넣는 서랍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찬장은 1층과 3층은 비워져 있으나 2층에 2짝을 경첩으로 연결한 4짝의 살창을 본딴 여닫이를 만들어두었다.
 

 

삼층탁자
세로 44.2㎝ 가로 55.0㎝ 높이 161.0㎝
삼층탁자는 서책이나 완상품을 진열할 수 있도록 3, 4층의 층널을 얹은 사방탁자이다. 층널은 소나무이고 기둥은 참죽나무로 만들었다.
 

 

쌍문갑
세로 29.8㎝ 가로 206.0㎝ 높이 32.7㎝
문갑은 각종 문방구와 간단한 문서 등을 임시로 치워두기 위해 실내에 비치하는 낮고 긴 가구로 문구갑(文具匣)의 준말이다. 쌍문갑은 같은 모양의 문갑 한 쌍을 좌우로 진열하여 사용하는 문갑을 말한다. 문갑은 조선 시대의 좌식(坐食) 생활에 적합하게 발달된 가구로 높이가 낮아서 앉은 채로 사용했다.
이 쌍문갑은 동자, 쇠목, 기둥은 대나무이고, 나머지는 오동나무를 사용하여 만들었다.

 

 
평상
세로 106.0㎝ 가로 206.0㎝ 높이 44.0㎝
평상은 앉거나 눕기 위한 가구로, 방안에 놓아 주로 잠을 자는데 사용하는 침상과 마당이나 뜰에 놓고 사람이 앉거나 걸터앉는데 사용하는 뜰마루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왕궁과 대갓집 등에서 두루 사용되었다.
이 평상은 침상인데, 침상은 대부분 두 짝으로 되어 붙여서 사용하도록 되어 있는데 서로 붙이는 부분을 제외한 3면에 난간을 두었고 바닥에는 듬성듬성한 살대를 깔아서 여름에 시원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였다.
 
경상
높이 31.7㎝? 가로57.9㎝? 세로 25.9㎝
경상이란 불교의 경전을 얹어놓고 읽는 데 사용했던 책상으로 상판(床板) 양쪽이 두루마리형으로 말리고, 몸체에는 한두 개의 서랍이 달려 있고, 다리에는 아름다운 당초무늬나 죽절형(竹節形), 안상문(眼象文)이나 여의두문(如意頭文)을 조각하여 장식했다. 이 경상은 여닫이문이 달렸고 내부에는 두 개의 서랍이 있다. 국화무늬 앞바탕에는 방환고리가 달려있으며 화형문귀장식이 부착되었다. 양측면과 후면에는 나무의 이음매를 보강해주는 새발감잡이가 장식되어 있다.
 

 

고비
길이 65.3㎝? 너비 16.4㎝? 두께 6.2㎝
고비란 방이나 마루의 벽에 걸어놓고 편지나 간단한 종이말이 같은 것을 꽂아두는 실내용 세간이다. 앞판과 등판 사이를 적당량 떼어 2∼3단으로 선반을 만든 형태로 되어 있다. 간단하게는 종이로 주머니나 상자 모양을 만들거나, 종이띠를 멜빵 모양이나 엑스자형(X字形)으로 만들어 벽에 직접 붙이기도 한다. 오동나무를 재질로 장식을 하여 멋을 살리기도 한다. 선비의 서재에 걸리는 것이 보통이나 규모가 작고 화려하게 치장한 여성용 고비도 가끔 있다. 이 고비는 3단으로 되어 있고, 표면에 별다른 장식은 없으나 상단에 투각을 하여 걸어놓을 여분을 마련해놓았다.

 

 
머릿장
높이 93.3㎝? 가로103.3㎝? 세로45.3㎝
머릿장은 사용이 편리하도록 머리맡에 두는 장으로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물건을   쉽게 찾아 쓸 수 있도록 머리맡에 놓고 쓴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머릿장은 장롱을 축소한 듯한 형태이며 일상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용품을 넣기 때문에   중앙에 문을 달고 상하에 소품을 넣기 위한 서랍이 있다.  
이 머릿장은 상단에 세 개의 서랍, 복판에 여닫이 문과 2개의 쥐벽간, 하단에 7개의 머름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리부분에 구름모양의 다리장식[雲脚]이 있다.
 

 

빗접
세로 27.7㎝? 가로 29.0㎝? 높이 17.9㎝
빗접은 빗, 빗솔, 빗치개와 같이 머리를 빗는데 쓰는 물건을 넣어 두는 도구이다. 상단의 뚜껑 아래에는 한 칸의 빈 공간이고 그 아래는 두 단의 서랍으로 이루어진 빗접이다. 밑판의 네 모서리에 부착된 네 개의 반원형 동곳 중 한 개가 빠져있다. 상판과 측판의 모서리는 국수형 감잡이(두 부재를 감아 목재의 이음을 보강하는 쇳조각)로 보강했다. 전면의 상단에 약과형 자물쇠 앞바탕이 있고, 그 중앙에 고정역할을 하는 선형 자물쇠가 드리워져 있다. 각 서랍의 양쪽에 꽃모양의 바탕에 원형 고리가 배목으로 고정되어 있으며, 활형의 들쇠(서랍이나 문짝에 붙여 잡아당길 수 있도록 만든 손잡이)의 중앙과 선형 자물쇠의 양쪽에 중앙이 튀어나온 꽃모양의 장식이 부착되었다. 뒷판에는 국수형 경첩으로 뚜껑과 몸체를 연결했다.
 

 

삼층장
높이 166.0㎝? 가로 101.6㎝? 세로 50.2㎝
장은 옷을 넣어 두는 가구로 보통 안방에 두며, 장은 궤에서 양식이 변하여 단층장인 머리장의 형태가 되고 이것이 2층, 3층으로 발전했다. 장의 기본구성은 천판(天板)·기둥·마대(足臺)로 되어 있는데, 천판과 마대사이의 몸체는 널빤지로 측면, 뒷면, 바닥을 막아 실리적인 입체공간을 갖춘다. 상류층에서는 화초장, 죽장, 삿자리장, 비단장과 같은 고급재료의 장을 사용하였고, 서민층에서는 일반적으로 먹감나무장, 용목장, 오동장을 사용했다. 이 삼층장은 문목(紋目)으로 문판과 알갱이를 만들었고, 상단 네칸의 서랍에는 눈썹형 고리와 둥근 고리 받침으로 장식했다. 여닫이문의 앞바탕, 고리 경첩, 문귀장식 모두 원형으로 통일했으며 목재의 이음을 보강하는 감잡이도 앞면은 둥글고, 뒷면은 국수형이다.
 

 

이층장
높이 131.3㎝? 세로 53.4㎝? 가로 108.2㎝
이층장은 옷을 넣어 두는 가구로 보통 안방에 두며, 층을 들여 2층으로 만들어져 있다.
장은 궤에서 양식이 변하여 단층장인 머리장의 형태가 되고 이것이 2층 3층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층장의 기본구성은 천판(天板)·기둥·마대(足臺)로 되어 있다. 천판과 마대사이의 몸체는 널빤지로 측면, 뒷면, 바닥을 막아 실리적인 입체공간의 용적을 갖춘다.
상류층에서는 화초장, 죽장, 삿자리장, 비단장과 같은 고급재료의 장을 사용하였고, 서민층에서는 일반적으로 먹감나무장, 용목장, 오동장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 이층장은 다리가 수직으로 뻗은 일(日)자 모양을 하고 있다. 양 옆널과 뒷널은 한지를 부착했고 뒷널을 제외한 전면에 흑칠을 했다.
 

 

제관통
높이 40.0㎝? 직경 27.0㎝
제관(祭冠)이란 제례(祭禮)를 관장하는 제관(祭官)이 쓰던 관을 말하며 제관통은 이를 보관하는 통을 말한다.
10개의 측판과 아랫판을 목재의 이음을 보강해주는 몸통 감잡이로 이어 10각형의 몸체를 만든 후 덮개를 만들어 덮고, 덮개와 측판을 잇는 두 개의 경첩을 달았다. 철제 자물쇠 앞바탕이 있어 자물쇠를 채우도록 되어있으며 앞판 상?하단에 3개의 철제 고리가 부착되어 있다. 경첩 및 자물쇠 앞바탕, 고리의 금속이 다소 부식 및 변색됐고 표면에 흰 얼룩과 긁힌 흔적이 있다.

 

 
책장
높이 90.5㎝? 가로 98.0㎝? 세로44.1㎝
책장은 책을 넣어 간수하기 위한 수납용품으로 문짝을 열어젖히는 서장이나 층층이 선반을 얹어 포개두던 서가(書架)도 있다. 책장은 병충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주로 오동나무를 사용하였으며 무거운 책을 넣어둘 수 있도록 튼튼하게 만들었다.
이 책장은 상판 아래에 한 개의 서랍이 있고, 그 아래에 '日'자형 여닫이 문이 달렸다. 흑칠이 되었으며 상판의 양쪽에 두루마리 변죽을 댔다. 양 옆널은 4단, 뒷널은 3단으로 열쇠목을 이용하여 구획하고 양 옆널의 각 단은 쇠목을 이용하여 2분, 뒷널은 3분했다. 서랍의 앞쪽은 쇠목으로 3분하였는데 여의두(如意頭) 문양 4개가 음각되어 있다. 내부는 널빤지를 가로질러 상?하 2단으로 구획했다. 오른쪽 문의 안쪽에 '通(통)'자가 적혀있다. 
 

 


고비
세로 69.6㎝? 가로 13.3㎝? 두께 6.7㎝
고비는 방이나 마루의 벽에 걸어놓고 편지나 간단한 종이말이 같은 것을 꽂아두는 실내용 세간이다.
앞판부분에 卍(만)자와 十(십)자 무늬가 뚫을새김[透刻]되어 있다. 서찰을 꼽는 부분은 네 단으로 나뉘어졌으며 고비 상단에 벽에 걸 수 있는 끈이 있다.
 

 

고비
전체너비(전체너비) : 9 cm / 전체길이(전체길이) : 25 cm / 두께(두께) : 2.3 cm
소색의 문단(紋緞) 앞면을 자수(刺繡)로 장식한 고비이다.
고비는 간찰(簡札)이나 편지 같은 것을 꽂아 두는 물건이다. 주로 나무로 만드는데, 오동나무 같은 가벼운 나무를 길게 2∼3단으로 짜서 매화·대나무 등을 조각하고, 위에 당채(唐彩) 칠을 하거나 시문(詩文) 등의 글귀를 조각하기도 한다. 그 외에 간단하게는 종이를 주머니나 상자 모양으로 만들거나, 종이오리를 X자형으로 오려서 벽에 붙여 사용하기도 하며, 卍자나 여의두문(如意頭紋)을 투각한 것, 통대나 대오리를 재료로 만든 것 등 종류가 다양하다.
이 고비는 무늬가 있는 소색(素色) 비단으로 만들고, 앞쪽에 수가 놓아진 작은 편지꽂이가 달린 형태이다. 뒷면과 편지꽂이의 안쪽에는 종이를 배접하였다. 편지꽂이의 표면에는 모란을 수놓았는데 자수의 기법으로는 평수, 자련수, 가름수, 매듭수, 사슬수 등이 보인다. 벽에 걸수 있도록 색동단으로 만든 고리가 달려 있다. 고비의 테두리는 연두색과 꽃분홍색을 혼합한 견사(絹絲)로 사뜨기하여 마무리하였다. (신상정 기증유물)
 
나전칠기구갑문빗접
세로 23.7㎝? 가로 17.5㎝? 높이 12.3㎝
빗접은 빗, 빗솔, 빗치개, 가리마 등 머리손질에 필요한 용구를 담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빗질할 때 빠진 머리카락을 일 년 동안 모아 두었다가 정월 초하루   저녁에 태움으로써 일 년간 무사하기를 기원하였기 때문에 여자들의 방뿐만 아니라 남자들의 방에도 빗접이 비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빗접은 전체적으로 흑칠이 되어있으며 귀갑문이 나전되어 있다.
 
나전흑칠함
세로 17.5㎝? 가로 28.3㎝? 높이 18.6㎝
함은 의류, 패물 등 물건을 넣어두는 상자로 궤에 비해 크기가 작으며, 뚜껑이 위에 있고 경첩을 달아 여닫을 수 있게 하거나, 뚜껑을 덮어씌우는 가구이다. 함은 대개 크기가 작아서 다른 가구 위에 올려놓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장식용으로도 사용되었기에 조형뿐만 아니라 색채, 문양 등도 매우 아름답게 꾸며졌으며, 서민들은 저렴한 재료로 만들어 주로 수장구(收藏具)로 사용하였다. 이 함은 전체적으로 흑칠이 되어 있고 앞, 위, 좌, 우 네 면에 나전 장식이 들어가 있다. 앞은 매화문, 위는 산수문, 왼쪽은 국화문, 오른쪽은 매화문이 새겨져 있다. 장식은 상당히 정교하며 아름답다. 함의 네 모서리를 둘러 약과형의 금속 징이 박혀있으며, 뚜껑과 본체를 연결하는 곳에는 자물쇠가 달려있다.
 

 

연상
세로(세로) : 24.2 cm / 가로(가로) : 45 cm / 높이(높이) : 26 cm
소형궤(小形櫃) 형태의 연상(硯床)이다.
연상은 문방사우를 담아 사용하는 문방가구로 사랑방의 서안 옆에 두고 사용하는데, 사랑방 가구 중에 가장 애용되는 가구이다. 처음에는 벼루만 넣어 두는 연갑(硯匣)의 형태에서 점차 2∼3단으로 변화되었다. 2단일 경우 상단에는 벼루를 넣는 칸을, 하단에는 서랍을 놓고 3단일 경우에는 종이를 넣는 공간이 추가된다.
이 연상은 책상 면이 궤의 뚜껑이 되며, 뚜껑을 열면 속에는 물건을 넣을 수 있는 상자가 있다. 궤의 뚜껑 면에는 열쇠고리 모양이 있고 몸체의 오른쪽 밑에는 잠금장치가 되어 있는 서랍이 있다. 다리는 짧고 사방에 경첩이 있으며 서랍 표면에는 옻칠이 되어 있다. (신상정 기증유물)

 

 
주칠빗접
몸체 : 높이 30.0㎝? 세로 36.2㎝? 가로23.4㎝
빗접은 빗, 빗솔, 빗치개 같은 머리손질에 필요한 용구를 담는 제구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빗질할 때 빠진 머리카락을 일 년 동안 모아 두었다가 정월 초하루 저녁에 태우면서 일 년간 무사하기를 기원하였기 때문에 여자들의 방뿐만 아니라 남자들의 방에도 빗접이 비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빗접은 상판에 있는 뚜껑 아래에 한 칸의 빈공간이 있고 전면의 여닫이 문 안에 두개의 서랍이 있다. 보통 윗서랍에는 빗과 퇴발(退髮)주머니 등을 넣고 아랫서랍에는 분과 기름을 넣는다. 부녀자용 소갑은 주칠(朱漆)을 하지만 남자용 오동나무 소갑은 인두로 지져서 침향색을 낸다. 이 빗접의 여닫이문에는 보상화(寶相華) 모양의 숨겨진 은혈 자물쇠 앞바탕이 있고 자물쇠를 여는 열쇠는 분리되었다. 외면에는 주칠을 하고, 내면과 밑판에는 옻칠을 했다. 밑판에는 운각을 새겨 풍혈(風穴)을 장식한 받침대가 부착되어 있다. 
 

 

 

 

 



 세로(세로) : 14 cm / 가로(가로) : 44.6 cm / 높이(높이) : 13.8 cm
나무로 만든 직사각형의 함(函)이다.
함은 의복이나 패물 등을 넣어두는 상자이다. 큰 가구 위에 올려놓고 장식을 겸한 수장구(收藏具)로 쓰이며, 혼인 때 신랑측에서 채단(采緞 : 치마저고리감)과 혼서지(婚書紙)를 넣어 신부측에 보내는 용도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형태는 정방형 또는 장방형 등으로 단조로우나, 전면 뚜껑과 몸체를 연이은 모서리까지 장식이 풍부하다. 자개·죽장·화각(華角)·교피·자수 등과 같이 재료가 화려하고 복잡한 문양이 있는 것과 금속으로 장식된 것이 있다. 면끼리 맞닿는 모서리는 흔히 맞짜임을 하거나 연귀맞짜임으로 짜는 게 보통인데, 함의 모서리에는 무쇠나 주석 등의 감잡이(합쳐서 못을 박는 쇳조각) 장식을 하여 더욱 구조적인 힘을 받게 하였다. 뚜껑 앞에는 앞바탕장식, 귀퉁이에는 불로초나 당초문의 귀싸개장식이 있고, 환고리를 달아놓는다.
재료로는 가볍고 좀이 잘 안 먹는 오동나무나 결이 고운 소나무·은행나무·배나무가 많이 쓰이고, 내부에는 한지를 바르고, 겉에는 옷칠을 하여 늘 반들반들하게 광을 내어 사용하였다.
이 함의 안쪽에는 상자가 없으며 앞쪽에는 물고기모양의 자물쇠에 열쇠가 달려 있다. 경첩은 놋쇠로 만들었으며, 뒷면에 세 개, 앞면의 중앙에 한 개가 있다. 경첩은 뒷면의 것은 지름 3.8cm, 앞면의 것은 지름 9.0cm의 원형이고 앞면에는 화형(花形) 잠금고리가 있다. 안쪽에는 한지가 발라져 있고, 각 면은 서로 맞물리게 하여 놋쇠로 만든 고리에 못을 박아서 연결시켰다. 표면에는 옻칠이 되어 있다. (신상정 기증유물)

 

 
세로(세로) : 14 cm / 가로(가로) : 51.8 cm / 높이(높이) : 15.1 cm
오동나무로 만든 직사각형의 함(函)이다.
함은 의복이나 패물 등을 넣어두는 상자이다. 큰 가구 위에 올려놓고 장식을 겸한 수장구(收藏具)로 쓰이며, 혼인 때 신랑측에서 채단(采緞 : 치마저고리감)과 혼서지(婚書紙)를 넣어 신부측에 보내는 용도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형태는 정방형 또는 장방형 등으로 단조로우나, 전면 뚜껑과 몸체를 연이은 모서리까지 장식이 풍부하다. 자개·죽장·화각(華角)·교피·자수 등과 같이 재료가 화려하고 복잡한 문양이 있는 것과 금속으로 장식된 것이 있다. 면끼리 맞닿는 모서리는 흔히 맞짜임을 하거나 연귀맞짜임으로 짜는 것이 보통인데, 함의 모서리에는 무쇠나 주석 등의 감잡이(합쳐서 못을 박는 쇳조각) 장식을 하여 더욱 구조적인 힘을 받게 하였다. 뚜껑 앞에는 앞바탕장식, 귀퉁이에는 불로초나 당초문의 귀싸개장식이 있고, 환고리를 달아놓는다.
재료로는 가볍고 좀이 잘 안 먹는 오동나무나 결이 고운 소나무·은행나무·배나무가 많이 쓰이고, 내부에는 한지를 바르고, 겉에는 옷칠을 하여 늘 반들반들하게 광을 내어 사용하였다.
이 함은 뚜껑을 열면 안쪽에 상자가 들어 있는 형태이다. 경첩은 놋쇠로 만들었으며 뒷면에 두 개, 앞면의 중앙에 한 개가 있다. 경첩은 화형(花形)판에 고리장식이 두 개 있는 형태이다. 앞면에는 경첩 위에 화형의 장식물 두 개가 잠금쇠로 사용되었는데, 오른쪽의 것을 오른쪽 방향으로 밀면 잠금쇠가 풀리고 죽절문(竹節紋)이 조각된 걸림쇠를 들어 올려서 뚜껑을 열 수 있다. 잠금쇠 옆에는 열쇠 모양의 구멍이 있다. 각 면은 서로 맞물리게 하여 놋쇠로 만든 고리에 못을 박아서 연결시켰다. 안쪽에는 한지가 발라져 있고 네 모서리에는 길이 8.2cm의 나무를 덧대어 놓았는데, 이것은 상자가 밑으로 빠지지 않고 걸려 있게 하는 받침목의 역할을 한다. (신상정 기증유물)
 

 

 

 

홍칠함
세로 23.6㎝? 가로 22.5㎝? 높이 29.9㎝ : cm
함은 물건을 넣어두는 상자로 궤에 비해 크기가 작으며, 뚜껑이 위에 있고 경첩을 달아 여닫을 수 있게 하거나, 뚜껑을 덮어씌우는 가구이다. 함은 대개 크기가 작아서 다른 가구 위에 올려놓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장식용으로도 사용되었기 때문에 조형뿐만 아니라 색채, 문양 등도 매우 아름답게 꾸며졌으며 서민들은 저렴한 재료로 만들어 주로 수장구(收藏具)로 사용하였다. 이 함은 윗부분에 뚜껑을 만들고 본체와 경첩으로 연결하여 뚜껑을 열고 안에 물건을 넣을 수 있도록 하였다. 전체적으로 홍칠이 되었으며, 앞면에는 덩굴문이 새겨진 초문형 앞바탕이 부착되어 있고 그 위에 자물쇠가 달려있다. 함의 네 모서리를 둘러 약과형의 금속판을 박았으며, 함의 양 옆에는 고리를 달아 들고 옮기기 쉽게 했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