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그 여자가 집으로 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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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집을 나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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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참으며 그 여자가 떠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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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넘기와 에어로빅을 하는 여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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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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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과 살기로 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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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내와 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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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참으며 떠나기로 함 |
여자들의 아픔 또 다른 여자들의 아픔
▶ 생각해 보기
1. 화자는 시공에 오거나 떠날 때에 손 씻는 버릇이 있다. 이 버릇의 근저에 웅크리고 있는 심리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화자의 버릇은 ‘그 여자’와 관계되는 것이다. 화사하고 아름답고 깨끗한 것에 대한 부러움이 마음의 심층에 무의식으로 쌓여 그것이 이 마을과 관련될 때마다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 열등감으로 설명될 수 있다.
2. 화자의 어머니와 ‘그 여자’는 어떻게 그려지고 있으며, 그렇게 보고 있는 화자의 의식을 추리해 보자.
어머니는 촌스럽고 여성다움을 완전해 잃은 모습으로 그려지고, 그 여자는 어머니와 대조적으로 밝고 화사한 아름다움으로 그려진다. 이것은 화자가 여전히 그 여자의 아름다움에 대한 각인이 지워지지 않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으로, 환상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를 일깨워 준다. 화자에게 어머니는 혈육이며 동시에 현실이지만, 그보다 강력한 힘으로 그 여자는 화자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다.
3. 화자가 사랑하는 ‘당신’에게 가지 않으려 하는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화자는 ‘당신’을 무척 사랑한다. 그러나 그 사랑은 자신을 위한 것이다. 화자는 ‘당신’에게 빠져 있는 동안 자아에의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고향으로 와 비로소 의식이 자아 바깥에까지 미치게 되는데, 그것은 ‘그 여자’의 환상 때문이다. 그 여자로 인해 고통받았던 어머니의 모습과 비슷한 경우의 점촌 아주머니. 그리고 에어로빅을 하는 여인에게까지 생각이 미치면서 자신도 ‘그 여자’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이르러 마음에 회오리가 인다. 그러나 단순히 ‘당신’의 아내나 딸이 받을 고통만을 위해서 배려하는 차원의 행동은 아니다. 그 여자의 눈물도 화자는 보았으며, 그 여자는 어린 화자에게 ‘나처럼은 되지 마.’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 여자도 사랑 때문에 아픔을 겪는 여자이고 어머니 같은 여자들도 그러한 것이다. 결국 화자나 ‘당신’의 아내나 아픔을 겪게 될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숙명 같은 일이지만, 화자는 그 아픔을 견뎌 보기로 한다. 그러나 화자에게 그 사랑의 아픔은 지워지지 않을 아픔으로 남게 될 것임도 짐작할 수 있다ㅑ. 사랑은 운명적인 것이다.
4. 줄넘기와 에어로빅을 하며 우는 여자들을 보는 화자의 태도를 말하고, 그런 태도에 대해 비판해 보자.
두 여자는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자들이다. 줄넘기와 에어로빅은 살 빼기의 수단이다. 물론 그 목적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는 데 있다. 미모의 상실이 애정의 상실을 불러 온 것이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서는 비판의 소지가 있다. 문제는 그것이 남성적 가치의 기준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아내를 대하는 남편의 태도가 오직 외모에만 그친다면 그 잘못은 남편에게 있지 아내에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소중한 가치의 하나라고 본다면 그런 편협한 관념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화자는 여자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긍정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 성인이 된 지금까지 그 여자를 닮고 싶어하는 데서 그 점을 읽을 수 있다.
5. 이 작품의 표현상의 특성에 대해 정리해 보자.
편지글 형식을 쓰고 있으면서 부분적으로 2인칭 서술을 하고 있는 점. 문장 부호를 많이 써서 내면의 흐름을 섬세하게 그릴 뿐만 아니라, 진술을 간결하게 하여 시적 효과를 자아내는 점, 그리고 관념을 직접 노출하지 않고 감각화된 표현을 하고 있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6. 서두에서 까치 이야기를 하고 나중에 까치 이야기를 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까치’의 상징적 의미를 말해 보자.
‘까치’ 이야기는 복선이다. 처음 집으로 올 때는 까치 부부가 열심히 둥지를 틀고 있었는데, 소설의 끝 부분에서는 새끼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 기간은 곧 화자의 내면적 성숙의 기간과 동일하다. 까치 새끼가 아직 어려 어미에게 먹이를 받아먹지만 곧 날갯짓을 하게 될 것과 같이 화자 또한 지금은 사랑의 아픔에서 힘들게 지탱하고 있지만 극복의 날이 올 것이라는 걸 암시하고 있다.
7. 제목이 된 ‘풍금이 있던 자리’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추리해 보자.
‘풍금’은 ‘그 여자’와 이미지가 상통한다. 시골에서 산 아이들에게 풍금은 새로운 세계의 한 경이로 다가왔음은 문화사적 배경에서 읽어낼 수 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 때는 ‘풍금’이 신선하고 서정적이며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리고 풍금의 소리 또한 애잔한 아름다움의 정조를 풍긴다. ‘그 여자’는 열흘 남짓 화자의 집에 머물렀지만, 화자에게는 새로운 아름다움의 경이로 다가왔고, 애련한 아픔으로 여전히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풍금이 있던 자리’는 결국 그 여자의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이 있던 곳이라고 하겠다.
▶ 작품 맛보기
어느 동물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마리의 수컷 공작새가 아주 어려서부터 코끼리 거북과 철망 담을 사이에 두고 살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주고받는 언어가 다르고 몸집과 생김새들도 너무 다르기 때문에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사이가 아니었다. 어느덧 수공작새는 다 자라 짝짓기를 할 만큼 되었다. 암컷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그 멋진 날개를 펼쳐 보여야만 하는데 이 공작새는 암컷 앞에서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는 엉뚱하게도 코끼리 거북 앞에서 그 우아한 날갯짓을 했다. 이 수공작새는 한평생 코끼리 거북을 상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했다..... 알에서 갓 깨어난 오리는 대략 12-17시간이 가장 민감하다. 오리는 이 시기에 본 것을 평생 잊지 않는다.
- 박시룡, <동물의 행동>중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길은, 막 봄이 와서, 여기저기 참 아름다웠습니다. 산은 푸르고 ...... 푸름 사이로 분홍 진달래가.....그 사이....또..... 때때로 노랑 물감을 뭉개 놓은 듯, 개나리가 막 섞여서는....환하디 환했습니다. 그런 경치를 자주 보게 돼서 기분이 좋아졌다 가도 곧 처연해지곤 했어요. 아름다운 걸 보면 늘 슬프다고 하시더니 당신의 그 기운이 제게 뻗쳤던가 봅니다. 연푸른 봄 산에 마른버짐처럼 퍼진 산 벚꽃을 보고 곧 화장이 얼룩덜룩해졌으니.
저, 저만큼, 집이 보이는데,
저는, 집으로 바로 들어가질 못하고, 송두리째 텅 빈 것 같은 마을을 한바퀴 돌고도......또 들어가질 못하고......서성대다가 시끄러운 새소리를 들었어요. 미루나무를 올려다보니 부부일까? 두 마리의 까치가, 참으로 부지런히 둥지를.....둥지를 틀고 있었어요.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둘이 서로 번갈아 가며 부지런히 나뭇잎이며 가지들을 물어 나르는 것을.
이 고장을 찾아올 때는 당신께 이런 편지를 쓰려고 온 것이 분명 아니었습니다. 이런 글을 쓰려고 오다니요? 저는 당신과 함께 떠나려 했잖습니까.
비행기를 타 버리자.
당신이 저와 함께 하겠다는 그 결정을 내려 주었을 때, 저는 너무나 환해서 꿈인가?......꿈이겠지, 어떻게 그런 일이 내게......다름도 아닌 내게 찾아와 주려고, 꿈일 테지, 했어요.
죄라면 죄겠지. 내 삶을 내 식대로 살겠다는 죄.
제가 꿈인가? 헤매는데 당신은 죄라면 죄겠지, 하시며 진짜 일을 진척시키기 시작했죠. 당신을 알고 지낸 지난 이 년 동안에 무너져만 내리던 제게 어떻게 그런 환한 일이, 스포츠 센터 일을 다 정리하고 나서도 암만 꿈만 같아서, 당신에게 다짐을 받고 또 다짐을 하다가 결국은 또 눈물.... 이.
이 고장을 찾아올 때는 당신께 이런 글을 쓰려고 온 것이 분명 아니었습니다. 이런 편지를 쓰려고 오다니요? 저는 일단 나서고 보자는 당신에게 제 숨을.....이 숨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떠나기 전에, 아무것도 모르시는 부모님과 작별을 하려고 온 것입니다. 당신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나면 이분들을 살아생전에 다시 뵐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기차에서 내려 제가 맨 먼저 한 일은 역구내 수돗가에서 손을 씻었던 일입니다. 십 오륙 년 전에, 여학교를 졸업하고 이 고장을 떠나면서도 나는 그 수돗가에서 손을 씻었었습니다. 그 이후로 이 고장에 내려오거나 다시 이 고장을 떠날 때마다 저는 그 수돗가에서 손을 씻었습니다. 그 무엇과 아무 연대감도 없이 이루어진 손 씻는 습관은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어느덧 저는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불쑥 제 속에서 누군가 묻는 것이었어요. 너는 왜 이 고장을 떠나거나 도착할 때마다 이 자리에서 손을 씻는 거지? 저는 그 질문에 답변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손을 씻고 마을로 들어가면 도시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잊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랬을까요? 그 자리에서 손을 씻고 이 고장을 떠나가면 이 고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잊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랬을까요? 글쎄, 그건 단순히 이루어진 습관이었을까요? 그 날, 그 수돗가에 손목시계를 벗어 두고 온 것을 집에 돌아와서야 알았습니다. 그 노란 시계는 당신이 주신 것이었지요. 제 팔목에 매달려, 햇살을 받을 때마다 반짝 윤이 나던, 시침과 분침 초침을 맑게 비추던 유리알에 당신의 이니셜이 새겨진.
제 마음속에 일어난 이 파문을 당신께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과연 설명이 가능한 파문인지조차 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영문을 몰라 하는 당신이 거기 있으니, 저는 당신께 어떻게든 제 마음을 전해 드려야지요. 지금 제 마음은 어쩌면 당신께 이해를 받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설령 그렇더라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해야 하는 것임을, 그것이 당신에 대한 제 할 일임을 괴롭게 깨닫습니다. 제 표현이 모자라서 이 편지를 다 읽으시고도 제 마음이 야속하시면.....그러면 또 어떡해야 하나.....
강물은.....강물은, 늘.....늘, 흐르지만, 그 흐름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어찌된 셈인지 제게는 그 강과 함께 흐르기로 마음먹는 일이 제 심연의 물을 퍼 주고야 생긴 일임을, 아니에요, 이런 소릴 하는 게 아니지요, 다만, 어떻게 하더라도 제게 어찌할 수 없는 아픔이 남는다는 걸 알아 주시 ....아니에요, 아닙니다.
그 여자.....그 여자 얘길 당신에게 해야겠어요.
그토록 서성였는데 들어와 보니 집은,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텅 빈 집 마루에 앉아 대문을 바라다본 적이 있으신 가요? 누군가 열린 그 대문을 통해 마당으로 성큼 들어서 주기를 바라면서 말이에요. 마당엔 봄볕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대문 옆 포도나무 덩굴 감김새 위에 메추라기 한 마리가 포르르 내려와 앉더군요. 메추라기는 잠시 어리둥절한 폼을 취하더니 다시 포르르 허공에 금을 긋고 날아갔습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메추라기를 쫓아가던 시선을 다시 대문에 고정시켰을 때, 제 속에서 매우 친숙한 느낌이 어떤 두꺼움을 뚫고 새어나왔어요. 저는 파란 페인트칠이 벗겨진 대문을 눈을 반짝 뜨고 바라다봤습니다. 언젠가 이와 똑같은 풍경이 제 삶을 뚫고 지나간 적이 있음을, 저는 기억해 낸 것입니다. 시누대가 있던 자리에 아스팔트를 깔았는데, 몇 년이 지난 어느 봄에 그 아스팔트를 뚫고 죽순이 솟았다더니, 제 마음에도 바로 그런 요동이 일었어요. 여섯 살이었을까, 아니면 일곱 살? 막냇동생이 막 태어나던 해였으니, 일곱 살이 맞겠습니다. 저는 마루 끝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누군가 열린 대문을 통해 들어와 주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토록 간절히 바란 것으로 보면 어쩌면 어머니를 기다렸던 건지도 모릅니다. 바로 그 때 그 여자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 여자가 열린 대문으로 들어섰을 때 제 발끝에 매달려 있던 검정 고무신이 툭, 떨어졌습니다. 여자는 마당의 늦봄 볕을 거느린 듯 화사했습니다. 그 때까지 저는 그토록 뽀얀 여자를 본 적이 없었어요. 마을을 단 한 번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어린 저는, 머리에 땀이 밴 수건을 쓴 여자, 제사장에 오를 홍어 껍질을 억척스럽게 벗기고 있는 여자, 얼굴의 주름 사이로까지 땟국 물이 흐르는 여자, 호박 구덩이에 똥물을 붓고 있는 여자, 뙤약볕 아래 고추 모종하는 여자, 된장 속에 들끓는 장벌레를 아무렇지도 않게 집어내는 여자, 산에 가서 갈퀴나무를 한 짐씩 해서 지고 내려오는 여자, 들깻잎에 달라붙은 푸른 깨벌레를 깨물어도 그냥 삼키는 여자, 샛거리로 먹을 막걸리와, 호미, 팔 토시가 담긴 소쿠리를 옆구리에 낀 여자, 아궁이의 불을 뒤적이던 부지깽이로 말 안 듣는 아들을 패는 여자, 고무신에 황토 흙이 덕지덕지 묻은 여자, 방바닥에 등을 대자마자 잠꼬대하는 여자, 굵은 종아리에 논물에 사는 거머리가 물어뜯어 놓은 상처가 서너 개씩은 있는 여자, 계절 없이 살갗이 튼 여자...... 이렇듯 일에 찌들어 손금이 쩍쩍 갈라진 강팍한 여자들만 보아 왔던 것이나, 그 여자의 뽀얌에 눈이 둥그렇게 되었던 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텃밭이 어디니?
그 여자가 제게 다가와 제 어깨를 매만지며 물었어요. 여자는 어느덧 부엌에서 소쿠리를 들고 나와 제 앞에 서 있었지요. 저는 그 여자의 화사함에 이끌려 고무신을 꿰신고, 그 여자를 뒤세우고는 텃밭으로 난 샛문을 향했습니다. 그 여자에게서는 그때껏 제가 맡아 본 적이 없는 은은한 향내가 났습니다. 그 여자가 움직일 때마다 그 향내는 그 여자에게서 조금 빠져나와 제게 스미곤 했습니다. 그게 왜 그리 저를 어지럽게 하던 지요. 텃밭으로 가는 길에 물을 길어 나르던 장성 댁을 만났는데, 장성 댁은 물동이를 내려놓고까지 그 여자와 나를 쳐다봤어요, 샐쭉한 표정으로.
그 여자는 잔 배추와 잔 배추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소쿠리에 잔 배추를 뽑았습니다. 텃밭 한 켠에 심겨진 푸르른 조선파도 뽑아 담았습니다. 여자는 새각시처럼 뉴똥 저고리를 입고 있어서, 배추를 뽑을 때는 배춧잎같이, 파를 뽑을 때는 팟잎같이 파랗게 고왔습니다. 텃밭 지기 노랑나비도 그 여자 머리 위에 내려앉으니 날개를 바꿔 단은 듯했어요. 텃밭에 들어갔다 나오자 여자의 흰코 고무신에 흙이 얼룩졌지만, 여자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듯 제 손을 이끌고 다시 샛문을 통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우리 집으로 불쑥 들어온 그 여자가 맨 먼저 한 일은 김치를 담그는 일이었어요. 저는 영문도 모르고 김치 담그는 그 여자 곁에서 잔심부름을 해주었어요. 생강 껍질도 벗겨 주고, 마늘도 짓찧어 주었으며, 우물에서 소금에 절인 배추를 씻을 때는 두레박질도 해주었지요. 그 여자는 아무래도 그런 일이 서툰 듯했어요. 어머니께서는 한눈을 파시면서도 단숨에 척척 해내는 무생채 써는 일은 특히 말이에요. 어머니의 도마질 소리는 깍둑깍둑깍둑.....경쾌했지만, 그 여자의 도마질 소리는 깍.....뚝.....깍.....뚝.....이었어요. 그렇게 그 여자는 파란 페인트칠이 벗겨진 대문을 통해 우리 집으로 들어왔고, 대신 그 대문으로 어머니께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안방 아기 그네에 백일이 겨우 지난 막냇동생까지 남겨 두고. 여자는 힘들게 김치를 담가서 저녁 밥상을 차려 내놓았지만, 우리 형제들은 아무도 수저를 들지 못했습니다. 큰오빠가 윗목에 버티고 앉아 눈을 부라리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저는 점심도 못 먹었던 터라 밥상이 나오자, 수저를 들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큰오빠의 매서운 눈초리에 힘없이 내려놓았어요.
밥들 먹어!
여자는 우리 형제들을 향해 애원하듯 말했지만 우리는 큰오빠의 위세를 물리칠 수가 없었어요. 아버진 입을 꽉 다문 큰오빠를 지나 어두워진 마당을 담배를 피우며 내다보실 뿐이었습니다. 그네 속의 막냇동생이 울음을 터뜨렸을 때, 큰오빠는 아버지에게 보내는 도전장처럼 무겁게 입을 열었어요.
너희들 모두 나를 따라나와.
써내려 온 글을 읽어보니 혼란스러움으로 머리가 빠개지는 것만 같습니다. 지금 제가 당신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나요? 혹시 저는 당신에 대한 변심을 열심히 둘러대고 있는 중은 아닐까요? 그렇지 않다면 왜 이렇게 마음이 조급한 것입니까? 느낌들이 마구 엉켜서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계속해야 될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제 기억이 어느 정도 정확한 것인지도.
당신과 알고 지냈던 지난 이 년 동안 저는 이 마을을 단 한 번도 찾지 않았습니다. 단순한 우연일까요? 아닌 것만 같습니다. 이 곳에 와서 맞부딪칠 얼굴이 저는 두려웠던 게지요. 당신을 사랑하는 일이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제 자신이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면 저는 지금, 당신 말처럼 당신과의 관계가 불륜이었음을 나 스스로가 인정하면서, 자랑할 만한 사랑을 하겠다, 그래서 당신을 잊어야겠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중이란 말입니까? 사실은 그렇게 간단한 것을 이렇게 복잡하게 얘기하고 있는 건 가요? 제가?
그.......여자, 그 여자는 왜.......다시 집을 나갔을까요?
당신을 믿어요.
그 여자가 아버지께 한 말 중에 지금껏 기억에 남는 말은 유일하게 이 한마디입니다. 그 여자의 당신이었던 아버지를 믿었으면서도, 그 여자는 왜 그렇게 도망치듯 집을 나갔을까요. 어머니 때문이었을까요? 그 여자는 어머니가 잠시 다녀간 다음날 집을 나갔습니다. 그렇다고 어머니께서 그 여자에게 무슨 대거리를 한 것도 아니에요. 어머니는 오셔서 그 여자가 업고 있던 막냇동생을 받아 안았을 뿐입니다. 지치셨던 것인가? 아니면 그것이 어머니께서 견디시는 방법이셨는가? 어머니는 그저 말없이 아이를 받아 안고서 젖을 먹이셨어요. 어머니 젖은 퉁퉁 불어서 푸른 힘줄이 불끈불끈 솟아 있었습니다. 어린애가 한참을 빨고 나니까 그 힘줄이 가셨습니다. 봄볕이 내리쬐는 그 봄날에 마루에 앉아 젖먹이는 어머니와 그 곁에 서서 그저 마당만 하염없이 내려다보고 있는 그 여자라니. 어머니는 젖을 빨다 잠이 든 어린애를 포대기에 싸서 마루에 눕혀 놓고, 토방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제게로 오셨어요. 그 때, 제 손에 그 여자가 만들어 준 설기떡이 쥐어져 있었던가 말았던가. 그 풍경을 생각하니 눈물이 번지는군요. 어머니는 한 칸씩 위로 채워진 제 웃옷 단추를 다시 끌러서 제대로 채워 주시고, 벗어 놓은 제 신발에 담긴 흙부스러기를 털어내 주시고서는 물끄러미 제 눈을 들여다보시더니 다시 가셨어요. 삼십 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지요. 단지 그뿐이었는데 그 다음날 그 여자는 나갔습니다. 뒤란 마당까지 깨끗이 쓸고 난 다음이었어요. 실에 꿴 감꽃을 주렁주렁 목에 매달고 있는 제 손을 그 여자는 잡아당겼어요. 점심상은 방에 차려 놨어. 동생은 방금 잠들었구. 깨어나면 기저귀 속에 손 넣어 봐서 오줌쌌거든 얼른 갈아 줘.......그러구 아버지가 날 찾거든 모른다고 해라. 언제 나갔는지 모른다고 해, 알았지? 어느새 그 여자는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입었던 저고리와 치마로 바꿔 입고 있더군요. 분을 옅게 바르고 있어서 얼굴빛이 더욱 뽀앴습니다. 처음 우리 집에 온 날 저를 어지럽게 하던 그 은은한 향내가 그 여자에게서 다시 났어요. 큰오빠가 무서워 다락에 숨었다가 거기서 잠이 들어 버려 굴러 떨어진 뒤로는 맡지 못했던 냄새였습니다. 어느 날 그 여자가 제게 책을 읽어 주고 있는데, 어느 대목이 재미있어서 막 웃고 있는데, 큰오빠가 들어왔어요. 큰오빠는 저를 노려보더니 다시 방문을 쾅 닫고 나가 버렸죠. 저녁에 큰오빠에게 혼날 일을 생각하니 무섭기만 했어요. 그래서 숨은 곳이 불이 안 들어서 쓰지 않고 있던 빈방의 다락이었어요. 그 다락은 경사진 좁은 계단을 몇 개 통과해야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 곳에서 저녁밥도 안 먹고 잠이 들어 버렸어요. 다락에서 잠이 든 줄도 모르고 잠청을 하다가 밑으로 굴러 떨어져 내렸지요. 제가 쿵, 떨어졌을 때 달려온 이는 그 여자, 그 여자였습니다. 그 여자는 제 엉덩이를 세게 때렸어요.
집을 나가 버린 줄 알았잖니 이것아!
그 여자는 거의 울 듯했어요. 저 때문에 말이에요. 제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다른 식구들은 다 깊은 잠에 빠져 있었는데, 아버지까지도 주무시고 계셨는데, 그 여자는 그때껏 마루에 앉아 있었던 겁니다. 그 때, 그 여자는 악마다'라고 했던 큰오빠의 말이 다 틀린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여자에게서 느껴지던 어질 머리가 그 다음으로 다 사라, 사라졌어요. 그런데 그 여자는, 그 향내를 다시 풍기면서 그 파란 페인트칠 대문을 빠져나갔습니다. 저는 그 여자가 처음 우리 집 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앉아 있었던 그 마루에 앉아서 집을 나가는 그 여자를 바라봤어요. 역시 환한 햇살 속에서요.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하고, 어서 아버지가 오셨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어요. 그 때 제 눈에 띈 게 칫솔 통이었습니다. 그 속엔 그 여자의 노란 칫솔이 그대로 있었어요. 저는 키를 세워 그 칫솔을 꺼냈어요. 그리고 마구 달려갔습니다. 마을을 빠져나가는 길은 큰길과 소롯한 수리 조합 둑길이 있었는데, 그 여자는 수리조합 길로 걸어가고 있더군요. 저는 정신 없이 뛰어 그 여자 뒤에 섰어요. 제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음직도 한데 그 여자는 그저 여민 치마 한 끝을 싸쥐고 뒷모습만 보이더군요. 그 여자 뒤에 바짝 서서 그 여자의 치마를 잡아당겼습니다. 그 때서야 그 여자는 돌아다봤습니다. 아, 그 때 그 여자의 얼룩진 얼굴이라니. 눈물에 분이 밀려나서 그 여자 얼굴은 형편없었어요. 칫솔을 내밀자 그 여자는 웃을락말락 했습니다. 그 여자는 내 손에 있는 칫솔을 가져가는 게 아니라, 손을 그대로 꼭 잡았습니다. 그러고선 제 손을 깊게 들여다봤어요.
나.....나처럼은.......되지 마.
그 여자는 한숨을 포옥 내쉬었습니다. 그러고선 곧 저를, 저를 떠밀었어요. 어서 가 봐. 동생 잠 깨겄다아.
오늘은 비가.......명주실 같은 저, 봄비......가 자꾸만 바깥을 내다보게.....귀......귀기울이게 해요. 방금 저는, 아버지와 저 속을 쏘다니다 왔어요. 들과 산과 빨래터를요. 산등을 따라 죽 이어지는 봉우리들까지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산쑥은 물론이요, 연둣빛 능선에는 벌써 산수유가 피어서 가는 비에 파들거렸어요. 실비라서 우산 쓸 생각은 하지도 않았었는데, 돌아올 때는 제 머리결이, 아버지 어깨가 축축했어요. 새를 잡으러 나갔었습니다. 단 한 마리도 못 잡았으니 잡으러 나갔다기보다 쫓아다니다가 왔다는 게 맞는 말이겠군요. 아버지께서 오후 한 차례씩 엽총을 어깨에 메고 들과 산으로 사냥을 나가신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안 일입니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벌써 이 년째 습관처럼 하시는 일이라는데요. 하긴 저는 지난 이 년 동안 여길 오지를 않았었으니까요. 사냥이라고 써 놓고 보니 말이 크군요. 그 큰말의 울림 속에는 원시적인 게 섞여 있네요. 이젠 사냥이 딱히 동물을 잡는다는 뜻으로만 쓰이지는 않습니다. 제게 와 닿는 사냥이라는 말의 울림은 아직 원시적입니다. 저 먼 부족이나 더 멀리 씨족들이 무리 지어 살았던 때로 생각이 거슬러 갑니다. 그들은 이런 상상을 하게 해요. 길도 없는 아니 어느 곳이나 길이 되는 산자락 밑이나 들판 한가운데에 짚으로 엮어 만든 수십 채의 움막집, 그 움막집 앞엔 늘 타고 있는 불기둥, 그 불길은 더 깊은 상상을 불러일으킵니다. 움막 집집마다에 한 가족들이 보입니다. 남편과 아내와 여러 아들과 딸들이 그 속에서 서로 엉켜 삽니다. 그들은 거의 알몸입니다. 햇볕에 그을린 살갗은 희지 않습니다. 그들의 머리결은 검고 윤기가 흐르며 숱이 많습니다. 종아리와 팔뚝엔 알통이 불쑥 나와 있으며, 가족들 모두 엉덩이가 바람이 빵빵한 공처럼 둥글어서, 걸을 때마다 누가 발로 차내는 듯이 실룩거리는 겁니다. 그런 그들이 모두 함께 사냥을 나갑니다. 짐승을 동그랗게 둘러싸 몰려면 숫자가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 때, 여자들은 누구나 자식을 덩실덩실 여럿 낳고 싶어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산맥같이 얽혀서 사냥해 온 멧돼지나 오소리, 때때로 곰을 그 움막집 앞의 불길에 굽는 겁니다. 사냥이란 모름지기 이런 것이라야 하지 않을까요.
말을 이렇게 해 놓고 보니, 방금 다녀온 아버지와의 새 사냥은, 사냥이라 하기가 민망하군요. 그냥 새잡이라고 해두지요. 처음부터 아버질 따라나설 생각이 있었던 것 아니었습니다. 마당으로 나 있는 창문으로 아버지께서 스쳐 지나시기에 저는 의아한 마음으로 창을 통해 아버질 따라가 보았습니다. 아버지의 차림이 특이했거든요. 아버진 털이 보숭보숭하고 각이 진 밤색 모자를 쓰고 계셨는데, 갈색 가디건에 검정 목티를 받쳐입고 계셨는데, 헐렁한 상아색 골덴 바지에 벨트를 꽉 조인 차림이셨는데, 무릎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고 계셨는데, 맑게 쏟아지는 봄볕을 뚫고 가시는 그 모습이 꼭 사냥꾼 같았습니다. 아버지께서 헛간 벽에 걸어 둔 엽총을 꺼내 어깨에 메셨을 때, 그 엽총은 완벽한 소품이 되더군요. 분장을 마친 아버진 대문을 나가셨습니다. 그 때, 저도 방문을 열었지요. 처음엔 그저 어리광쟁이 어린애처럼 앞서가시는 아버지 장화 발짝에 제발 짝을 갖대 대며 뒤따랐습니다. 한쪽으로 우리 부녀의 그림자가 나란히 함께 걷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기 전까지 아버진 꽤 늠름해 보였습니다. 바람이 불자 상아빛 골덴 바지가 아버지 몸에 달라붙는 거였지요. 저는 뒤따르던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바지 안에 아버지 몸이 과연 있는 걸까? 믿어지지 않게 바람만 쿨렁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제 기척이 끊기자, 아버진 뒤돌아보셨습니다. 털모자를 쓴 아버진 제가 당신 가까이 다시 다가설 때까지 기다려 주셨습니다. 아버지가 저렇게 작아지시다니, 털모자 밑으로 보이는 뒷목덜미까지 흰머리가 수북했습니다. 귀밑으론 탄력을 잃은 살이 처져 겹을 이루고 있는데 거기까지 무수히 핀 검버섯이라니. 저 깊은 곳에서 고함이 터져나왔어요. 당신을 향해 지르는 것도 같았고, 어쩌면 삶을 향해 내질렀는지도 모르지요. 연민에 휩싸여 아버지 골덴 바지 뒷주머니에 제 두 손을 포옥 집어넣었습니다. 갑자기 뒤에서 잡아당긴 셈이라 아버진 순간 몸의 중심을 잃으시고서 뒤에 서 있던 제게 쏟아지셨습니다. 주머니 속에서 만져지는 앙상한 아버지의 엉치뼈.
아버진 오는 콩새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들에서도 산에서도 빨래터에서도. 허심해 보이는 산비들기를 향해 나무 뒤에 거의 나무처럼 붙으셔서 겨냥하시기도 했지만 매번 헛방이었습니다. 그러실 때마다 아버진 저를 바라다보며 겸연쩍게 웃으셨어요. 아버진 제 앞에서 날아가는 새를 멋지게 쏘아 맞추고 싶으셨을 거예요. 하지만 오늘 사냥은 아버지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사냥 얘기를 하다 보니 당신에게서도 언젠가 사냥에 대한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당신은 아프리카 어느 마을 원주민들에 대한 얘기를 하셨습니다. 그들의 선조들은 기마 민족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말을 타고 밀림을 달려 사냥을 해서 물물 교환을 하며 후손들을 번창시켰다고 했습니다. 밀림은 길이 되고..... 밀림은 농사지을 땅이 되고, 원주민 장정들은 더 이상 사냥을 할 수 없게 되었다,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밤낮으로 무기를 손으로 만든다면서요. 마을 여자들은 해가 뜨기도 전에 들에 나가서 구슬땀을 흘리며 식구들의 식량을 일구며 하루해를 보내는데, 장정들은 동이 트자마자 떼를 지어 황야로 나간다지요. 창을 들고 활을 메고 말이에요. 그들은 황야로 나가 온종일 서성거리다 돌아오는 게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젠 함성을 지르며 사냥할 짐승도, 피 흘리며 싸워야 할 다른 부족도 없는데, 그들은 그들 선조들이 해 왔던 사냥과 전쟁의 습속을 버리지 못해 온종일 지평선을 바라다보다 돌아온다지요. 당신께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저는, 정말이에요? 하며 웃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나의 오라버니들같이 느껴지는 건 웬 까닭일까요? 떼를 지어 웅성웅성 온종일을 서성거리다가, 붉디붉은 황혼을 등에 지고, 공허하게 마을로 돌아오고 있는 그들 속에서 제가 제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면 당신, 당신은..... 웃겠지요.
당신과의 약속 시간은 이제 이 밤만 지나면 다가옵니다. 당신은 정말 떠나실 건가요? 그렇다면 저는 지금 무엇을 참고 있는 것일까요? 당신이 떠나 버리면 제가 참고 있는 것은 모두 부질없는 일이 되어 버립니다. 오늘 하루는 종일 중얼중얼거렸어요. 당신에게 달려가려는 쪽으로 마음이 바뀌려 할 적마다, 저를 스쳐 간 당신과의 기억들이 모두 나쁜 것이었다고, 속삭이고 속삭였어요. 그래도 불쑥 열이 났고, 당신에게 가야지, 잠깐씩 가방을 챙기기도 했어요. 행여 당신이 저를 데리러 오지 않나, 여러 번 대문을 내다보기도 했어요. 어렵게 견뎌 내고 찾아온 이 밤. 이미 당신에게로 가는 기차는 끊겼는데, 내일 새벽 첫차는 몇 시던가, 저는 지금 그걸 헤아려 보고 있으니, 이 밤이..... 무섭습니다. 산버찌를 먹으면 눈물날 일이 생긴다고 제가 산에서 버찌를 따오면 어머니는 마당에 쏟아 버리시곤 하셨죠.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는 눈물날 일이 이것인가요? 어머니 몰래 먹은 산버찌가 지금 저를 울리는 것인가요?
아버지는 그 여자를 정말 사랑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여자가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들어오면 손 크림을 발라 주셨지요. 왜 그것만이 유난히 생각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아버지의 손과 그 여자의 손이 전혀 스스럼없이 서로 엉키는 것이 꼭 꿈결인 것만 같았어요. 손 크림을 통에서 찍어 내 그 여자의 손에 골고루 펴 발라 주실 때 아버지의 그 환한 모습을, 그 이후에도 그 이전에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손. 그래요. 그 시절의 아버지와 그 여자는 손을, 둘이서 있을 땐 늘 손을 잡고 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그것이 손 크림을 발라 주는 한 컷으로 합쳐져서 생각나는 모양입니다. 손잡는 일이 뭐 대수겠습니까만, 저는 지금도 아버지 손을 꼭 잡아 보지 못한걸요. 당신의 손. 저도 당신 손을 참 좋아했습니다. 언젠가 운전하는 당신의 손등에 제 손을 갖다 대며, 당신 손이 참 좋아요, 제가 했던 말 기억하십니까. 당신 손엔 늘 결혼 반지가 끼여 있었어요. 그걸 볼 때마다 쓰라림이 제 가슴을 훑고 지나갔지만, 당신은 당신 자신이 결혼 반지를 끼고 있는지조차 모르시는 듯 했어요. 그 반지는 그저 당신의 일부분처럼 거기 끼여 있었습니다. 그래도 당신에 대한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이 마음에 휘몰아칠 때마다 당신의 손을 찾아 쥐었습니다. 그러면 서러운 마음이 가라앉곤 했어요. 저는 당신에게 반지 말고 다른 것을 받았다고, 설령 그 받은 것 때문에 제가 그 속에 갇혀 죽는다고 해도.....제겐 그것만이 유일하다고 그렇게 저를 달래고는 했......
사랑하는 당신!
.......여기에 오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이 마을은 저를, 저 자신을 생각하게 해요. 자기를 들여다봐야 하다니요? 싫습니다! 저는 지쳤어요. 그 여자가 떠나던 날, 그 여자에게 칫솔을 건네주던 때, 그 때 저는 그 여자와 무슨 약속인가를 했다고, 지금이 그 약속을 지킬 때라고......이 생각을 당신이 있는 그 도시에서 제가 어떻게 해낼 수 있었겠어요. 그 여자가 그 때 떠나 주지 않았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됐을까? 어머니와 우리 형제들은? 그 여자가 떠나 주지 않았어도 과연 우리 가족들이 지금 이만한 평온을 얻어 낼 수 있었을까? 여기에 오지 않았으면 이런 생각들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 여자가 우리 집을 떠나고 나서 아버지는 오랫동안 술에 취해 계셨습니다. 아무 데나 마구 토해서 부축할 수도 없었어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버지 인생에서 가장 환했던 때는 그 여자가 있던 그 시절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당신, 그것만이 우리 삶의 다라고 여길 수 없는 불편한 부분이 이 마을에는 흐르고 있어요. 여기에 오지 않았으면 모를까, 이미 저는 그 불편함에 의해 끔찍해져 있는 여기에, 여기에 오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것밖에 달리 제 마음을 어떻게 쓴단 말인가요. 양잿물을 들이마신 것같이 쓰라리게 당신이 그리워요.
지금......막, 당신과의 약속 시간이 지났습니다. 순간, 숯불이 얹혀지는 듯한 뜨거움이 가슴에 치받쳤습니다. 이 치받침은 매우 익숙한 것입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동안 나의 하루는 이 치받침으로 시작해서 이 치받침으로 끝나곤 했으니, 나에겐 오히려 동무 같은 감정이예요. 당신을 만날 때의 반가움, 당신의 얼굴을 만져 보고 싶은 수줍음, 당신이 없는 동안의 그리움, 누구에게도 당신을 자랑할 수 없어서 곧잘 얼굴이 발그레해졌던 무안함까지 그 치받침 속에는 섞여 있습니다. 그렇게 익숙한 것이지만, 방금 것의 치받침은 한 세계를 무너뜨리느라고 쉬이 가라앉지 않을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는 가까이 가선 안 될 게 얼마나 많은 지요. 그 안 된다는 것 때문에 또 얼마나 애가 타는지요.
가슴을 방바닥에 대고 엎드려 있었어요. 오늘 이 치받침은 이렇게 삭혀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지만, 달리 삭힐 방법이 제겐 없습니다. 당신은 정말 떠날 것인가? 한 시간 전부터 저는 시계를 들여다보고 여기 있었습니다. 시침이 오후 3시를 막 지나갈 때, 그토록 간절히 붙잡고 있던 당신과의 끈을 놓아 버린 셈입니다. 제가 놓아 버린 한 끝은 지금 여기에서, 당신이 잡고 있는 거기 한 끝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중인가요? 당신은 지금 시계를 들여다보며 거기 서 계신가요?
거의 한 달을 글을 못 썼습니다.
당신과의 약속 시간이 지나고 나니, 맥이 풀려서 다시 펜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이 글이 목적을 잃어버린 탓도 있었겠지요. 표적이 당신이었는데, 어느새 제 글은 무목의 화살이 돼 버린 것입니다. 당신이 제게 주었던 즐거움들이 고통이나 슬픔, 허무로 바뀌어 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 했던 처음 며칠은, 마비된 듯이 누워만 있었습니다. 이젠 당신을 다시 볼 수 없다 생각하니, 제가 무슨 엄청난 일을 저질러 놓은 것 같았어요. 제 마음속의 회오리가 다시 시작된 것만 같더군요. 제게 있어 어떤 중요한 것을 내놓아도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니, 저는 벼랑 앞에 선 것같이 아찔했어요. 그 절박한 마음이, 어느 날인가 당신에게 수화기를 들게 했습니다. 당신은 정말 떠났는가? 정말 가 버렸는가?
전화는 당신 아내가 받더군요. 평화로운 목소리였습니다. 당신 이름을 또박또박 대며 바꿔 달라고 했을 때만도, 당신은 정말 가 버렸는가? 가슴이 불덩이 같았지요. 당신 아내 옆엔 당신의 아이가 있었던가 봅니다. 당신 아내가 당신 아이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은선아, 아빠에게 전화 받으시라고 해.
저는 가만히 수화기를 놓았습니다. 당신, 딸 이름이 은선이었군요. 은선이. 그 애의 이름을 서너 번 불러 봤어요. 나물 같은 이름. 어디에 고여 있었는지 눈물이 오래 쏟아졌어요. 은선이.
방문을 열어 보니 마당의 감나무에 감꽃이 하얗게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바깥으로 나오자 환한 햇살이 너무나 어지러웠어요. 대문까지 나오는데 서너 번은 무릎이 꺾였어요. 회복기 환자의 걸음걸이가 아마 그런 것이겠지요. 방안에 제가 누워 있는 동안 봄 농사일은 이미 시작이 돼서, 들판에 수건을 쓴 여인들이 모판에 볍씨를 뿌리고 있었어요. 갓 돋아났던 파란 쑥들은 너무 웃자라 쇠어 있었고, 팔레트 속의 물감들 같던 꽃들도 그 사이 덧없이 지고, 어느새 푸른 잎새들이 그 꽃자리를 차지하고 있더군요. 걸어다니는 동안 제 마음이 조금은 평온해져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봄꽃들은 무엇이 급해 잎도 돋기 전에 저희들이 그리 피어났다가 저리 속절없이 질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볕 바른 골목에서는 두 여자아이가, 한때는 뭉게구름 같았으나 너펄너펄 져 버린 누런 목련잎을 찧어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어요. 피는 모습을 봤으니 지는 모습도 봐야 하는 거겠지요.
제 얼굴은 지금 볕에 그을려 가무스름해졌습니다. 일손이 귀한 곳이라 더 이상 방안에 있을 수만은 없어서 어머니를 거들기 시작한 일이 이제 제법 익숙해졌습니다. 그래 봐야 새참 준비하는 일이나, 고구마순 모종하는 일 정도뿐이지마는요. 그래도 눈먼 송아지는 제가 우사의 문을 열면 제 발 소리를 알아듣고 몸을 일으킵니다. 이 곳에 와서 가장 친해진 대상입니다. 아버지께서, 첨엔, 눈먼 놈이라......기가 막히더마는 무던하다. 먹고 잠 잘 자니 살이 몽실몽실 올랐어야, 제값 받기엔 별 무리 없겄다! 하실 땐 그 송아지를 짐승으로만 생각하시는 아버지 마음이 야속하게 느껴질 정도로 친해졌어요. 어머니께선 본격적으로 모심기가 시작되기 전에 어서 다시 그 곳으로 가라 하십니다. 고생한다고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이 평온을 얻기까지 제가 한 일이란, 이 글을 쓰다 말다 한 것뿐이지요. 이 편지를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땐 처음으로 제 인생을 제가 조정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답니다. 이토록 힘든 것을 모르고서 저는, 이 마을에 내려와 제 마음결에 일어난 일들을 당신께 글로 쓸 수 있다고 믿었나 봅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번 일도 제 인생을 제가 조정한 게 아닌 듯 싶습니다. 저는 이 글을 마무리짓지도 못했는데, 당신은 거기에, 나는 여기에 있잖아요. 어제는 빨래터에서 이 사실이 어찌나 낯선지 물밑을 오래 들여다봤습니다.....화르르 흩어지는 송사리 떼들.......그래도 몇 년만에......숨을.....깊은.....숨을.....들이쉬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을 당신께, 이미 거기 계시는 당신께 부칠 필욘 이제 없겠지요. 그래도.....까치, 까치 얘기는 쓰렵니다. 이 마을에 온 첫날 그렇게 부지런히 둥지를 틀던 까치가 새끼 세 마리를 낳았더군요. 옥수수 씨를 심을 구덩이를 파느라고 산밭에 다녀오다가 봤어요. 먼발치라 자세히는 못 봤지만, 그 중 어느 새끼도 눈먼 새는 없는 듯했어요. 세 마리 모두 다 어미가 먹이를 물어 오니까 서로 밀치며 소란스럽게 한껏 입을 벌리는데, 입속이 온통 빨갛.....새빨갰어요. 그 새끼 까치들이 날갯짓을 할 무렵이면 이 곳도, 여기 이 고장에도 초여름, 여름.....이겠지요. 저기 저 순한 연두색들이 짙어, 짙어져서는 초록이, 진초록이......될 테지요. 그 때쯤엔, 은선이란 당신 아이 이름도 제 가슴에서 아련해질는지, 안녕.
숨막히는 슬픔과 고통이 우러나오는 소설들
-「풍금이 있던 자리」
신경숙의 소설은 슬펐다. 소설이란 것이 대부분 슬프고 암울한 것인 것 같긴 하다. 쉽게 희망을 노래했다가는 유치하다는 소리를 들을 터이므로. 그런데 신경숙 소설에서의 슬픔은 좀 특별한 데가 있는 것 같다. 마치 슬픔을 노래하는 시인 듯 소설에서 슬픔이 풍겨 나오는 것 같다. 소설 속 깊은 곳에서 슬픔이 우러나오는 것 같다. 소설을 읽는 동안 절로 차분해진 마음에는 슬픔이 차곡차곡 쌓여 무기력해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읽는 이를 무기력하게 하고 숨막히게까지 하는 이 슬픔들은 어디서 나왔을까?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호흡, 세심한 묘사와 차분한 어조로 이루어진 신경숙의 문장은 하나 하나가 시 같고 슬픔을 얘기하고 있지 않은데도 슬프다. 문장 속에서 저절로 슬픔이 우러나오는 것 같다. 질펀한 전라도 사투리도 슬프게 작가는 쓰고 있다. 담담한 듯 이제는 가라앉은 감정인 듯 가만가만 얘기하는 차분한 어조 속에 슬픔이 있다. 중간 중간 끊어지는 호흡에 읽는 이는 자신의 슬픔을 덧붙인다. 시 같은 서정적인 묘사에서 슬픔이 우러난다. 너무나 차분해서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 묘사가 너무나 세심해서 읽는 이는 숨막힘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설 속 인물들도 슬퍼하고 있다.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같이 슬프다고 울부짖지 않는다. 고통스럽다고 소리치지 않는다. 그런 주인공들로 인해, 맘속을 거쳐 어디론가 흘러가버릴 슬픔들이 흘러가지 못하고 읽는 이의 마음에 고이는 것은 아닐까? 주인공들은 자신 안의 슬픔들을 곱씹고 있었다. 그것이 버릇이고 습관인 양. 지나간 시절의 추억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청춘이, 외로움이, 사랑이, 운명이, 현실의 벽이 슬픔으로 고통으로 그들의 가슴에 머물러, 지독히 머물러 결국 그들을 죽음으로까지 내몬다. 소설의 처음부터 주인공들의 슬픔과 고통은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치유될 수 없는 견고한
것들로 부여진다. 외부의 사건들이 개입될 수 없는, 그리하여 결국 주인공들을 파국으로 치닫게 할 수 밖에 없는...... 슬픔에 치어 그들은 죽거나 아프거나 무기력해진다. 이 소설집의 모든 소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하던 작가는 너무나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로 주인공들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작가도 울부짖지 않는다. 고통과 슬픔을 너무나 담담하게 그저 그려내고 있다.
신경숙의 소설에서 내가 읽은 것은 정제되어서 더 견고해보이는 슬픔과 고통들이었다. 소설이 꼭 희망을 보여줘야 하는 것은 아닐 거다. 신경숙의 소설이 다 숨막히는 슬픔을 노래하는 것도 아닐 거다. 어쩌면 그 숨막히는 슬픔들 속에서 희망을 찾을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어쩐지 그 슬픔과 고통 속에서 다른 것을 찾으려 한다는 것은 억지 같기도 하다. 작가는 그 숨막히는 슬픔과 고통들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저 슬픔 그것만을 얘기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