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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는 한국인의 ‘집’이 될 수 있는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누군가 의문을 제기하고 설명을 요구하면 우리는 당혹스러워진다. ‘왜 숨을 쉬는가?’, ‘왜 밥을 먹는가?’라는 질문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아파트가 왜 이리 많냐?’, ‘아파트에 사는게 좋으냐’ 등등의 질문은 한국인을 당혹스럽게 한다. ‘많이 지었으니까 많겠지…’, ‘살 사람이 많으니까 많이 지었겠지’, ‘좋다 싫다가 어딨어… 아파트 말고 달리 살 데가 없으니까 그렇지’ 등등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논의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는다. 국민 대다수가 아파트에 살고 있고, 아파트를 손에 넣길 열망하는 상황에서 그 이유를 되짚어 보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좁은 땅덩어리에 많은 인구가 살기 때문에 아파트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지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외국인의 눈으로 보면 한국인의 아파트에 대한 열망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맹목적이다. 또한 전국토가 아파트로 뒤덮인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아파트 공화국’으로 비쳐진다. 왜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 되었을까? 단지 국토가 좁고 인구가 많아서일까? 아파트가 편리하고 쾌적한 최상의 주거형태라서 일까? 이 책 ,아파트 공화국.의 저자 발레리 줄레조는 이 같은 의문을 출발점으로 한국의 아파트를 연구했다. 그리고 아파트에 살고 있을 확률이 높고, 언젠가 아파트 분양권을 얻기 위해 장기주택저축을 들어야 할 여러분들은 이런 물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고층 아파트는 필연적인 것인가?
아파트의 난립에 대한 가장 전형적인 해명은 한국이 땅이 좁고 인구가 많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생각이 지나치게 단선적이며 일종의 ‘착각’에 가깝다는 점을 지적한다. ‘좁고 자원이 없으며 인구가 많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고층 건설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고 이것이 대형아파트 건설이라는 단순하고 경제적인 방법으로 귀착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파트와 같은 용적률을 유지하면서 주거 공간을 만들어내는 데는 단독주택, 연립주택, 소형 아파트단지 등 여러 가지 해결책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줄곧 이런 방법을 외면하고 오로지 고층 아파트 건설에만 힘써왔다. 이는 무엇보다 아파트 건설이 돈이 되며, 정치적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지 지리적, 환경적 필연성 때문이 아니었다는 의미다.
서울의 인구밀도와 주택구조의 변화를 살펴보면 인구밀도와 아파트의 확산에는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자명하다. 서초구, 강남구, 노원구는 서울에서 가장 아파트가 많은 지역이지만 이 지역의 인구밀도는 오히려 도시 평균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인구가 많은 곳에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단지 돈을 쫓아 들어설 뿐이다. 인구밀도가 높지 않은 시골에까지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을 보면 아파트 건축의 진짜 이유는 아무래도 땅이 좁고 인구가 많아서라는 우리의 통념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생각해보면 사람이 살 집을 짓는 것, 도시공간 계획을 세우는 것은 그리 획일적이고 간단하게 생각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파트 건설이 한국의 주택문제, 인구문제를 해결해 주는 거의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맹신해 왔다.
아파트와 중산층
아파트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중산층’이다. 대한ㅁ민국의 아파트란 것이 어디를 가나 비슷비슷한 구조이지만 또 그 만큼 비슷비슷한 가족의 행복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정도의 공간을 소유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과 가족구성원의 집합체는 중산층이라는 말과 가장 잘 어울린다. 실제 아파트에 살기 원하는 사람들의 열망은 아파트 자체보다는 중산층에 편입되었다는 안도감과 자존심의 충족을 더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중산층이란 말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위키 사전의 정의를 빌려 파악해보면 대략 이런 모습이다.
“중산층 또는 중산 계급은 노동자 계급에 속한다고 보기에는 자산을 가지고 있지만 자본가에는 끼지 못하는 계층을 의미한다. 세계 대공황 이후 이익의 독점이 혁명의 도화선이 될 수 있음을 깨달은 자본가 계급은 노동조합에 양보하여, 자본에 협력하면 노동자에게도 그 이익 중의 몫을 더 많이 주는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그리하여 중산 계층의 육성이 사회와 정부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종합해보면 중산층이란 일반적인 하위 계급보다는 자본주의 사회에 더많이 협조하며, 그 대가로 경제적 이익을 얻고 또 활발히 소비하는 사회계층을 말한다. 그들은 하층민도 아니고 상류층도 아니지만 건강하고 나름 능력있는 시민들이다. 우리 사회에서 중산층의 이미지를 그려 보면 대출을 받았거나, 온전히 샀거나를 떠나 어쨌든 자기 소유의 집이 있고, 그 대출금을 갚을 정도의 경제적 능력이 있으며, 학벌과 직업군에 있어서도 평균이상의 수준을 갖는 사람들이다. 즉 중산층은 대다수 소시민이 그리는 자기 모습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산층의 존재는 무척 중요하다. 앞서의 정의에도 나왔듯이 중산층은 훌륭한 일꾼인 동시에 소비자이므로 중산층의 성장이 곧 자본주의의 성장이 된다.
한국의 아파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왜 중산층의 이야기가 이토록 장황하게 나오는지 독자들은 눈치 챘는가? 자본주의가 압축 성장한 한국에서는 중산층도 압축적으로 양산될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중산층을 압축적으로 양산한 시스템은 무엇이었을까? 아파트 건설에 열쇠가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고도성장과 함께 불어 닥친 아파트 열풍
아파트 공화국.에서 일관되게 이어지는 주장은 한국의 아파트 문화는 정부와 기업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부흥시킨 것이며 여기에 한국 중산층이 ‘수혜자’이자 ‘공범자’로 가세한다는 것이다. 무슨 뜻일까? 잠 책의 본문을 살펴보자.
권위주의 국가는 연구 성장을 관리하고 봉급생활자들이 경제 발전에 헌신하도록 가격이 통계된 아파트를 대량 공급하려 했다. 그리하여 중간계급을 대단위 아파트로 결집시키고, 이들에게 주택 소유와 자산 소득 증가라는 혜택을 주었으며 그들의 정치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다. 결국 이러한 상호 혜택의 구조 때문에 한국의 도시 중산층과 중간계급 일반이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하층의 사회계층으로부터 공간적으로 분리될 수 있었다.
이 대목에서 우리나라 중산층의 육성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 정부는 숙련직 노동자, 사무직 종사자, 공무원, 기업 간부 등 새로운 공화국에 탄생한 중간계급을 위해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세우고 낮은 분양가로 공급했다. 이들은 자기 집을 가지고 또 그 집의 자산가치가 상승하는(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혜택을 입으며 정부의 강력한 지지기반이 되는 것이다.
물론 아파트 건설을 주도하는 대기업 및 건설 회사들은 아파트 건설붐이 이어지는 한 막대한 이윤을 남길 수 있다. 우리나라의 모든 대기업이 아파트 건설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보라. 한국의 아파트 문화는 이처럼 정치ㆍ경제ㆍ사회적인 목적이 응축된 다분히 ‘의도된것’이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땅이 좁고 사람이 많아 생겨난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아파트를 건설하는 대기업들은 특급 모델과 현란한 광고카피를 내세워 사람들이 아파트를 욕망하게 만드는데 여념이 없다. 아파트 광고가 줄기차게 보내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아파트는 현대적이고 쾌적하며 세련된 주거환경이다. 무엇보다 당신이 ‘살만한 계급’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또한 아파트는 기존에 살고 있던 하위계급을 밀어내고 건설된다는 점에서 계급간의 구분을 더 명확히 한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난장이 가족처럼 아파트가 새로 생긴가는 것은 그 자리에 살고 있던 원주민은 작은 보상금을 받고 더 외곽으로 쫒겨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파트를 살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계급끼리 모여 그들만의 보금자리를 만든다. 모 아파트 광고의 ‘이웃도 자부심이 됩니다’라는 카피처럼, 아파트는 계층간 주거 공간 구별을 손쉽게 할 수 있는 수단인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 우리가 당초 생각했던 것처럼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중산층이라는 계급이 훨씬 소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서울 지역의 아파트를 구매할 수 있는 중산층은 ‘중간보다 높은 사회계층’이다. 그들은 복부인이고, 부동산 투기꾼일 수도 있으며 그도 아니면 중산계급에 편입되기 위해 빛내고 대출받아 분양받은 소시민이다. 그리고 이런 소시민들도 언젠가 무리해서 장만한 아파트를 통해 시세차익을 실현하면 이 아파트 공화국체제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이렇게 해서 대한민국은 아파트로 뒤덮여 간 것이다.
필자는 중산층 제조 메커니즘으로서 아파트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한국인이 아파트에 열광하게 된 결정적 요인은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다.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아파트를 분양받은 것이 이윤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아파트를 분양받은 가구는 중간계급으로 편입되고 체제의 수혜자가 됬다. 한국에서 아파트단지는 ‘중간계급 제조 공장’처럼 보인다.
아파트는 정말 ‘좋은’ 주거환경인가?
많은 사람들은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것이 더 없이 편리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아파트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주로 과거의 주거환경과 비교해서 이루어진 평가일 뿐이다.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1970년대 이전의 단독주택과 아파트를 비교한다면 아파트는 당연히 편리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현대적인 설비의 저층 단독주택과 아파트에 대한 비교가 빠져 있다. 즉 시간의 경과에 따른 기술의 진보가 아파트에 녹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같은 기술을 적용한 저층 단독주택이 과연 아파트만 못할까? 한국의 도시에서 단독주택이 불가능한 선택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한국의 모든 건축기술과 건축사업자, 기업과 주택정책을 좌우하는 정부의 초점이 아파트로 모여 있기 때문이다. 결코 아파트 외의 주거형태가 불편하거나 나쁘기 때문은 아니다.
한국의 경우처럼 인구가 많고 국토가 좁은 일본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주거 형태는 조그만 정원이 딸린 단독 주택이다. 한국 아파트들이 참고한 프랑스의 아파트 ‘씨떼’는 볼품없는 외관과 저급한 생활환경을 연상시키는 빈민가로 전락한지 오래다. 실제로 2005년 일어난 프랑스 이민자들의 폭동사태는 도시 외과의 아파트 지역이 전원지였다. 프랑스에서 아파트단지가 처음 들어설 즈음에도 아파트는 젊은 부부들이 단독 주택을 사지 못해 잠시 거쳐 가는 주거 형태로 여겨졌다.
그러한 아파트가 우리에게는 현대적이고, 서구적이며, 깨끗한 주거 환경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에서만 보이는 독특한 오해이며, 사회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집단적 착각이라 할 수도 있다. 실제 아파트 내에서 한국인의 주거 양식은 서구적이라기보다는 한국적인 것의 ‘아파트식’ 변형이다. 여전히 옛날처럼 상을 펴고 밥을 차려내는 습관이 아파트내에 남아 있고 김치냉장고, 화분 등이 놓인 다용도실과 베란다는 마당과 창고를 대신한다. 구들장은 가스보일러로 대체되고 아파트 놀이터나 광장은 마을 어귀의 동네 사랑방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존재하는 아파트는 지극히 서구적이고 현대적이라 할 것이 없는 셈이다.
한국인들의 생활 속에 여전히 한국적인 것이 남아있다면 이를 굳이 아파트라는 형식에 가두는 것이 더 이상하게 느껴진다. 한옥을 현대적으로 바꾸는 건축기술이나 미적ㆍ기능적으로 뛰어난 단독주택을 짓는 기술이 성장할 기회는 아파트에 의해 잠식당해버렸다. 아파트가 유일무이한 주거 형태라는 생각은 주거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과 선택의 여지, 미적 감수성을 훨씬 편협한 것으로 만든다.
왜 아파트 공화국을 반성해야 하는가?
아직도 부동산 신화가 굳건한 이 나라에서는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부자를 만들어 주는 아파트, 땅값을 올려주는 아파트, 중산층을 만들어주는 아파트를 아무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파트가 우리 경제에 가져다 주었던 ‘약발’도 서서히 떨어져 가고 있다. 2008년 현재 지방에는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고 중소 건설회사는 부도위기에 처해 있따. 빚을 내서 악착같이 중산층의 꼬리라도 잡아 보려고 아파트를 산 사람들은 집값하락과 금리상승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 경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부동산 거품이라는 시한폭탄을 떠안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 공화국>이 출간되었던 2007년에는 아직 한국의 부동산 거품 문제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파트가 갖는 프리미엄이 점차 상실되어 가고 노후한 아파트 때문에 늘어나는 주민 부담에 대한 저자의 지적은 앞으로 우리에게 일어날 아파트의 부메랑을 예고하고 있다. 아파트의 노후 문제는 관리비의 문제로 이어지고, 이는 아파트 경비원의 감원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전죽의 아파트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그자리를 CCTV가 대신한다. 아파트로 인해 한국은 외국보다 CCTV가 단시간에 퍼져나간 ‘감시의 왕국’이 되었다. 어떤 나라도 CCTV가 이렇게 광범위하고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또한 지금은 드러나지 않지만 20년만 지나도 아파트는 노후된다. 따라서 90년대, 2000년대 지어진 아파트들 그리고 지금 건축 중인 아파트들의 노후화와 재건축ㆍ재개발 문제는 중대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이미 인구가 감소국면으로 들어선 상황에서 수요를 찾지 못한 아파트들은 수십 년 후 하층계급의 슬럼가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프랑스의 슬럼에서 일어난 폭동에서 한국의 미래를 보는 것은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또한 아파트는 지난 50여 년 동안 사회계층을 자연스럽고 교묘하게 분리시켜왔다. 평수가 넓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같은 평형대의 친구하고만 논다. 급속히 진전된 거주 지역의 계층 간 분리는 한국인들의 다른 계급에 대한 이해나 배려심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경제적 상실보다 더 큰 가치의 상실이다. 부자와 가난한 이가 한 마을에 공존하고, 이웃주민이 경찰이나 CCTV를 대신 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고 건강한 풍경이 아닐까?
한국인에게 ‘집’은 있는가?
아파트는 재테크를 위한 수단이며, 계층 상승의 도구이자, 자본주의의 가장 유행 상품이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집이 아니었다. 아파트가 집이라면 그렇게 많은 한국 사람들이 틀에 찍어낸 듯 똑같은 구조의 아파트에 애착을 가지며 살 리 만무하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한국인은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무신경한 민ㅇ족이거나 주거환경에 너무나 초월적인 민족이리라.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 잘 알고있다. 그렇다면 왜 한국인들은 아파트라는 ‘집’에 무신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경제적 가치에 열을 올리게 되었는가?
이것은 사실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문제다. 아파트는 우리에게 돈을 벌어 주거나 중산층으로 편입할 수 있게 하는 도구에 불과할 뿐이지 어떤 문화적, 정서적, 미적 가치를 지닌 대상이 아니다. 그 결과 아파트가 오래되면 불도저로 싹 밀어버리고 또 새 아파트를 짓는 것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몇 십 년 동안 살아오던 정원 린 단독주택, 동무들과 뛰놀았던 골목길, 마을 어른들이 도란거리며 안부를 주고받던 구멍가게, 각 시대와 주인의 취향이 반영된 아기자기한 주택들…. 이 모든 것들을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것을 그렇게 초연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서울에 올라와 터전을 닦은 지방 사람들은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서울의 아파트를 손에 넣었을지라도 그 집이 진정한 ‘집’ 이라는 생각을 좀처럼 하지 못한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고향의 바닷가나 감나무. 기와집이나 각 지방의 생활양식이 반영된 유년시절의 자기 집이 진짜 집의 이미지에 가깝다. 또 서울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전전해 오던 회색빛 아파트에서 집과 고행이 주는 따스한 느낌을 얻기가 힘들다. 그래서 서울 시민들에게조차 서울은 회색빛 도시며 삭막하고 애정없는 도시가 되어버렸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가장 일반적인 주거 형태, ‘아파트’는 낡으면 부수고 새로 지으면 되는 상품에 불과하고, 그 상품은 대기업의 설계 사무실에서 일률적으로 뽑혀 나오는 기성품이다. 그래서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서울 시민은 전통적 정서가 깃든 주거문화에 대한 미의식이나 그에 수반되는 여러 가치를 점점 느낄 수 없게 된다. 과연 한국인에게 ‘집’은 있는 것일까?
<아파트 공화국>의 마지막 페이지를 보자.
대단지 아파트의 출현과 변화 과정은 근본적으로 정부 정책으로 표현되는 정치적 선택의 문제라는 점을 확인시킨다. 한국은 어떤 도시 형태와 사회 구조를 발전시키길 원하는가? … 주택이 유행 상품처럼 취급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는 문제이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대단지 아파트는 서울을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하루살이도시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미래에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가? 정부가 어떤 방향으로 도시 형태와 사회구조를 발전시키기를 원하는가? 아파트는 정말 여러분이 살고 싶은 ‘집’이 될 수 있는가?
프랑스 고등사법학교에서 지리학을 전공했으며 서울의 아파트단지에 대한 연구로 파리4대학(소르본)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을 처음 방문했던 1990년 거대한 아파트 단지에 놀라 이를 연구하기로 마음먹었으며, 이후 한국의 아파트를 다룬 박사학위 논문이 2003년 프랑스에서 책으로 출간되었따. 그해 프랑스 지리학회가 수여하는 가르니에 상을 수상했으며 최근에는 프랑스 대학연구원이 주관하는 연구 재정지원자에 선정되었다. 백령도와 같은 접경 지역을 대상으로 남북한의 상호 인식을 조사하는 등 한국을 대상으로 한 그녀의 연구열정은 특기할 만한 것이다.
지식검색 연대별 아파트 소사(小史)
1970년대- 정부주도의 아파트 건축
70년대 정부는 주택난 해소를 위해 ‘주택 건설 180일 작전’을 시행했다. 이 와중 에 졸속 행정과 부실시공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1970년 4월 8일 일어난 와우아파 트 붕괴사고가 그 예이다. 준공된 지 불과 4개월 만에 일어난 이 사고는 34명 사 망, 40명 부상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빚었다.
1980년대- 부동산 활황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고층건물의 규제가 완화되어 전국이 부동산 시장의 활황기를 맞았다. 서울의 서초, 강남, 송파에 대규모 단지가 건설되었으며 가장 유명한 것으로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를 꼽을 수 있다.
1990년대- 신도시 등장
1980년대의 부동산 투기 붐이 진정되면서 개발 포화상태의 서울 도심에서 벗어나 수도권 위성도시, 신도시 같은 외곽지역에 아파트단지가 조성되었다. 분다, 일산, 평촌, 산본 등이 대표 지역이며 특히 분당은 ‘하늘아래 천당 분당’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각광받았다. 신도시 열풍은 판교 추첨에도 이어졌으며 현재 판교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건설 중에 있다.
2000년대- 주택시장의 신자유주의
90년대 말의 IMF사태는 한국의 주택시장에 규제완화와 가격 자유화라는 신자유 주의 물결을 일으켰다. 호화 아파트와 사무실, 오피스텔 등이 혼합된 주상복합 건 물이 대거 등장하였으며 대표적인 것이 도곡동 타워팰리스다.
토론해봅시다
…한국의 아파트 건설 붐 뒤에는 어떤 사회적 배경이 있었는지 추측해봅시다.
(정부, 기업, 사회계층의 관계 등을 고려하여)
…한국인들의 아파트 선호 경향이 현대 한국인의 가치관
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생각해 봅시다.
…댓글토론_홈페이지댓글토론방에서 왁자지껄 토론하기! 한국적 상황에서 아파트 외에 다른 주거환경의 대안은 없을까요? 사람들의 인식과 정책 방향, 산업여건 등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 봅시다.
[조우석 칼럼]-아파트를 보는 명쾌한 시각
“우리 학계는 통이 큰 편이다. 관심은 계급구조·세계체제·민족문제 같은 주제에 쏠려있다. 일상세계에는 눈길 주지 않는다. 학계가 전장화(戰場化)하고 황폐화되니 ‘배우고 때로 익히는 일’이 즐거울까?” 지난 주 ‘상반기 내 마음의 책’을 소개해드렸는데, 그 다섯 권 중 마지막 책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엄숙주의 학문 풍토에 대한 예사롭지 않은 자기반성이다. 전상인의 『아파트에 미치다』가 문제의 책인데, 다음의 정문일침도 인상적이다. “우리 학계는 스토리가 부족하고 디테일이 취약하며 모국어의 미학 또한 아쉽다.”
전상인은 누구인가? 서울대 교수인 그는 『한국현대사-진실과 해석』 『고개 숙인 수정주의』를 펴내온 중견이다. 그럼 이 책은 본업을 제쳐둔 여기(餘技)이자 한담일까? 그렇지 않다. 중앙일보에도 크게 소개됐던 『아파트에 미치다』는 디테일이 살아있고, 전에 없는 아파트의 사회문화론을 다룬 첫 책이다. 즉 아파트의 역사·특징에서 그 안의 한국인의 의식변화를 추적한다. 아파트야말로 한국사회를 해석해내는 블랙박스라는 시각이다.
일테면 한옥은 사랑채·안채·별당이 구분되는 사대부 중심의 성리학적 질서를 구현했다. 아파트는 그게 사라진다. 남성 공간 축소 대신 부엌이 주방으로 격상됐고 시스템키친으로 진화 중이다. 문단속이 쉬워 여성 나들이도 잦아졌다. 복부인이라는 말처럼 아파트 매매를 주도하는 여성의 발언권도 높아지는 등 가족의 권력구조 변동을 주도해왔다. 이토록 흥미진진한 ‘의미의 황금어장’ 아파트를 왜 학계는 외면해왔을까? 이 분야의 박사학위 논문도 2005년 프랑스인이 처음 썼단다.
혹시 우리는 재테크에 열중하면서 “아파트쯤이야”하며 거룩한 학문은 따로 알아온 게 아닐까? 그거야말로 ‘학문 따로, 생활 따로’의 이중의식이다. 현실적으로 아파트인구가 52.7%로 세계 최고다. 아파트를 현대 주거공간으로 끌어올린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꿈이 이 땅에서 열린 것이다. 오해 마시라. 아파트가 최고라는 게 아니다. 잿빛 시멘트덩이는 여전히 흉물스럽고(미학적으로), 썰렁해서(몰개성이라서) 대안의 생활공간을 찾는 게 우리 몫이다.
하지만 인구밀도 등의 이유로 지구촌 유일의 ‘아파트 공화국’을 만들어냈다면 엄연한 분석대상이다. 그걸 외면한 채 바다 건너 저쪽의 이야기를, 그것도 낯선 외국이론을 빌려다가 무한 반복하는 ‘수입 완제품 학문’이란 보기에 민망스럽다. 진짜배기 학문이란 지금 여기의 우리네 삶을 보듬으면서 새로운 질서와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아닐까? 그래야 학문에 생기가 돌고, 사람냄새도 풍긴다. 하반기에는 『아파트에 미치다』처럼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과학, 좀 더 따뜻한 책을 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도시들이 온통 아파트로 뒤덮여 있다. 1995년 이후 15년간 전국에 지은 주택(728만채) 중 80%(560만채)가 아파트이다 보니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정부와 건설사들은 "국민들이 아파트만 유독 좋아해 대안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파트는 무조건 팔린다는 '아파트 불패신화'는 이미 옛말이다. 소비자들의 외면으로 공사가 중단돼 방치된 유령아파트가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달 30일 충남 천안시 목천읍에 있는 A아파트를 바라보던 주민 김모(52)씨가 혀를 찼다. "해 질 녘만 되면 애들이 슬금슬금 저기로 기어올라간단 말이야. 동네에선 저 썩어 가는 아파트가 완전히 애물단지야."
3개 동(棟)으로 된 이 건물은 회색빛 외관의 골조(骨組)만 덩그렇게 올라간 채 공사가 중단된 '유령 아파트'다. 건물 사이 빈 공간엔 사람 키높이는 됨직한 잡풀이 무성했다. 폐허가 된 내부에는 썩은 물이 고여 악취가 진동했다. 깨진 유리창과 뜯겨 나간 창틀은 아무렇게나 나뒹굴었다.
이곳에서 자동차로 20분쯤 거리에도 작년에 공사가 중단된 아파트 공사장이 방치돼 있다. 펜스막 뒤로 회색 콘크리트 건물이 3~7층까지 올라가 있지만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공사장을 오가는 차량도,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B건설사가 1300여 가구 규모로 지하 2층, 지상 35층짜리 10개 동을 지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계약자가 없어 결국 지난해 하반기 공사 도중 사업을 중단했다. 주민들은 "공사중단으로 우범지대로 변하고 있다"면서 "주변에 논바닥밖에 없는 곳에 아파트를 지을 생각을 한 건설사들의 발상이 황당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이처럼 공사를 하다가 3년 이상 방치된 유령 아파트는 전국적으로 112개 단지에 달한다. 연면적으로 치면 여의도(850만㎡) 면적의 절반에 가까운 354만㎡나 된다.
완공은 됐지만 주인을 찾지 못해 빈집으로 남아 있는 아파트도 전국적으로 5만 가구가 넘는다. 대구(8662가구), 부산(5186), 광주광역시(4930), 원주(2132)뿐만 아니라 경기도(2121)에도 빈 아파트가 늘어나고 있다. 현재 공사 중인 미분양 아파트까지 합치면 13만 가구 수준. 최근 조금 줄고 있지만, 3만 가구 수준이던 2001~2003년과 비교하기조차 힘들다. 대구에만 2만 가구가 넘는 미분양 아파트가 몰려 있다. 미분양 급증으로 인해 자금난을 겪는 건설사들의 부도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짓기만 하면 무조건 돈이 된다'는 '아파트 불패 신화'만 믿고 건설사들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파트를 짓다 자초한 자승자박(自繩自縛)이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아파트가 돈이 되기는커녕 대량 미분양으로 건설사들의 연쇄부도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미분양 아파트에 잠긴 돈만 가구당 1억원으로 계산해도 13조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건국(建國) 이후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처음 선보인 건 1958년. 서울 종암동에 지은 5층짜리 '종암아파트'가 효시다. 당시 "서울에 명물이 등장했다"고 할 정도로 아파트는 희귀했다. 당시 부족한 주택을 대량공급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었던 측면도 있었다.
대량 생산이 가능한 아파트의 확산으로 1970년 78% 수준이던 주택보급률이 지난해 100%를 처음 넘어설 수 있었다. 그러나 아파트가 남아도는 지역에서도 지방자치단체들이 아파트가 지역 개발의 상징이고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다는 이유로 아파트 인허가를 남발하고 있다. 정부도 주택공급 실적을 올리기 위해 주택공사(현 LH공사)를 동원해 주택이 남아도는 지방까지 아파트를 대량으로 짓고 있는 실정이다.
외국인들로부터는 특색 없는 도시라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한국 생활 10년이 넘은 영국인 존 세이가(38)씨는 “서울에 오는 외국인이 첫눈에 가장 놀라는 건 도시 전체를 뒤덮은 아파트”라며 “땅값 싸고 사람도 별로 없는 농촌까지 아파트가 있다는 게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는 도시 중심의 사회다. 지난해 국토해양부의 발표에 따르면 전체 인구 중 도시지역 거주자의 비율을 나타내는 도시화율은 90.5%로 국민 10명 중 9명 이상이 도시지역에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에 밀려든 사람들은 대부분 아파트에 산다. 좁은 땅에서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으로 정부는 아파트 위주의 주택공급정책을 폈고 그 결과 아파트는 도시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이처럼 오늘의 한국사회를 대변하는 도시와 아파트에 주목한 책 3종이 나란히 출간됐다.
’아파트에 미치다’(이숲 펴냄)는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아파트를 통해 한국인의 의식을 들여다본 책이다.
저자는 아파트 보급과 확산의 역사, 우리나라 특유의 아파트 선호 현상을 살피고 나서 아파트 주거형태의 확산 이후 한국사회에는 익명성이 전반적으로 심화했다고 진단한다. 아파트 내부에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거나 감추는 일이 사회적으로 보편화했으며 그런 현상을 가장 잘 드러내는 사례로 문패의 실종을 든다.
그러나 아파트는 한편으로는 고립된 섬처럼 살다가 필요하면 섬을 연결할 수 있는 ’개폐식 삶’이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아파트 진출입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통로인 현관문을 걸어잠그면 자신과 가족만을 위한 궁궐과 성채를 차릴 수 있지만, 현관문을 열고 나오면 이웃이 지척에 천지로 깔린 곳 또한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또 아파트 위주의 주택정책이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병리를 어느 정도 호도하고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한 것은 아닌가 하는 물음을 제기한다.
한국사회가 압축적인 경제성장 과정에서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포함한 여러 번의 계급적 위기를 맞이했지만, 자본주의체제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거나 사회주의적 혁명을 추구하는 방향의 진로를 택하지 않은 것은 아파트 공급이라는 물량공세를 통한 노동자계급에 대한 박애주의적 주택정책이 일부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저자는 그러나 ’미쳤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오늘날의 아파트값 상승에 대해 “아파트사회로의 행군이 이 땅의 평범한 시민과 미래세대로 하여금 처음부터 좌절하고 주눅이 들게 만드는 것이 한국사회의 후진성”이라고 개탄하며 20-30대 초반의 사회신참자들이 자신의 땀과 노력으로 살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는 청년주거복지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200쪽. 1만2천원.
같은 대학원의 황기원 교수는 ’도시락 맛보기’(다빈치 펴냄)에서 ’도시’를 구석구석 해부한다. 저자는 자신을 ’도시 요리사’로 지칭하며 ’도시락(都市樂) 맛보기’라는 책 제목처럼 도시를 즐겁게 맛볼 수 있도록 도시의 어원부터 이상적인 도시의 모습까지 100가지 메뉴로 나눠 소개한다.
동·서양의 문화사를 아우르며 도시가 어떠한 과정 속에서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도시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살기 좋은 미래의 도시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까지 도시에 관한 객관적인 정보와 저자의 생각을 함께 담아 도시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336쪽. 1만8천원.
경제신문의 경제·금융 전문기자로 활동하는 최은수 씨는 ’명품도시의 탄생’(매경출판 펴냄)을 통해 돈과 상품, 인재가 전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갈 원심력을 갖추고 인재와 돈이 몰려드는 구심력을 갖춘 ’명품도시’의 핵심 요소를 제시한다.
글로벌 명품 도시가 갖춰야 할 3대 키워드는 ’풍’(豊), ’화’(和), ’격’(格)이다. 풍요로움을 뜻하는 ’풍’은 ’살기 좋은 도시’를 의미하며, ’화’는 사회 구성원 간의 융화, 복지도시, 글로벌화가 이뤄진 도시를 뜻하는 것이다. 마지막 ’격’은 질서와 문화, 환경이 어우러진 ’품격’이 지배하는 도시의 조건이다. 328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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