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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명정사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방송. 기사 스크랩 청봉스님의 장군죽비카페에서 퍼온글
검산 추천 0 조회 179 09.04.23 16:47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장군죽비님 왈 가로대; 화두를 드는 것은 식을 관 하는 것이 아니니 관 할 식이 본래 공하여 없거늘 여기에 관나하는 것도 식이 아닌데 다시 그식을 관 할 것이 있겠소이까? 식으로부터 定止하며 慧로써 자성 본래의 성품을 觀하는 것이올시다.

화두를 드는 것은 그 화두의 도리를 알려고 집중하는 가운데 定이되여 식이 살아지고 慧가 작용(觀)하여 본성과 계합 증오하는 것을 구경으로 하는 것이며 깨달음은 그 화두의 도리 뿐 아니라 구경의 일체종지인 것이올시다."

 

참나 문1; 위 말씀은 일 마치신 분상에서 하신 말씀이신데
아직 견성하기 전의 수행자에게는 식으로부터 공부의 출발일 것입니다.

 

장군죽비: 누가 아니라 하였소?

 

목표로써의 식을 관하는 것이 아니라 식으로부터 정지하여 혜로써 자성의 성품을 관하는 것이라고 하시면 알아 먹을까요?
알아 먹으면 이미 견성한 후이겠지요.

 

장군죽비: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소?  蛇足을 달지 마시오.

 

항상하는 혜가 혜를 관하는 경지가 되었을 때 내외 안팎 중간없는 모양없는 것이 모양없는 이름하여 자기(?)가 자기(?)를 보는 경지를 견성이라 하여도 되겠군요.

 

장군죽비: 사족을 달지 말라하였소.관할 혜가 어디 있소?

 

참고 문헌-단경지침(육조 왈);
<이 법을 깨친 이는 곧 무념이니 기억과 집착과 망념도 없어서 광망을 일으키지 않고 자기의 진여의 성품을 써서 지혜로써 관조하여 모든 법을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나니 이것이 곧 성품을 보아 부처님 도를 이루는 것이니라.>

 

장군죽비: 광망을 이르키지 않는 것이 곧 止이거늘...취하지도 버리지도 않는 것이 곧 定인 것이오.


문2,자기(?)가 자기(?)를 보아 그것(?)이 나(?) 임을 분명히 알게 되고 천상천하유아독존임을 알게 되면 깨달음이 겠지요?

 

장군죽비: 보고 안다하면  둘이니 알음알이에 속하는 것이오.

 

문3;장군죽비님 왈:"화두를 드는 것은 그 화두의 도리를 알려고 집중하는 가운데 定이되여 식이 살아지고 慧가 작용(觀)하여 본성과 계합 증오하는 것을 구경"

 

이렇게 되면 생각 일으키지 않으면 일체의 모양이 머물지를 못합니까? 일체의 모양이 없어집니까?
문득 문득 모양이 나타난다면 공부가 끝난 것은 아닌지요?

 

장군죽비: 하하....참나... 이런 경계에 이르러 일체의 모양이 무엇이 있어 머물지 못한다는 말을 하시는 것이오? 심행처멸에  모양이 나타나기를 구하리까?

 

"번뇌즉 보리다." 는 말은 공부가 끝나면 번뇌가 없어진다는 겁니까  번뇌는 깨닫기 전이나 깨달은 후나 마찬가지인데 다만 번뇌를 다른 차원으로 인식한다는 겁니까?

 

장군죽비: 번뇌가 곧 보리라는 말은 본분의 도리가 일체가 眞空임을 證한 견처로 한 말인 것이오.

 

문4,필요할 때만 생각 일으키면 모양이 나타납니까?

 

장군죽비: 무슨 모양을 구하오?

 

문5, 다음 글을 해설해 주시면 감읍하겠습니다.

 

단경의 일구;
모양이 없다고 하는 것은 모양에서 모양을 떠난 것이다.
생각이 없다고 하는 것은 생각에 있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요,
머무름이 없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본래 성품이 생각마다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간 생각과 지금의 생각과 다음의 생각이 생각생각 서로 이어져서 끊어짐이 없나니 만약 한 생각이 끊어지면 법신이 곧 육신을 떠나느니라.

 

장군죽비:
모양이 없다 한 것은 망상이 끊어짐이요,
생각없다 한 말은 생각에서 계교함이 끊어짐이요,
머무름이 없다 하는 것은 무엇이든 집착이 끊어짐이요,
생각 생각이 이어진다는 것은 마음 작용이 끊임 없음이요,
만약 생각 할 줄 모르는 것이라면 육신이 있어도 무정물과 같다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오.

 

장군죽비:

볼見과 볼觀은 가릴 줄 알아야 할 것이올시다.

관한다는 것은 定으로 慧가 발혀되어 始覺의 경계인 合一 契合하게 되는 것을 이르는 것이니  둘이 아닌 것으로 證悟 體達하는 것을 이르는 것을 말하며

본다고 하여 상대적으로 무엇을 본다면 상견에 떨어져 그릇된 邪見을 짓게되어

나도 남도 그르치게 되는 것이올시다.

무엇이 어떤것인가를 알려고 하거나 볼려하거나 알음알이 짓지 마시고

오직 간절하게 그 화두의 도리만을 알려고 참구해 가노라면

구경은 절로 이르게 되는 것임을 믿고 잡된 망념을 짓지 않도록하시기를 당부하오이다.()

 

 

-간화선 수행법의 핵심은 무엇인지?

정혜상수인 것임~

정은 곧 법성의 실상을 증오하는 것이요,

혜는 일체종지를 증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니

이 간화선보다 더 좋은 방편문은 없다할 것임~

간절함은 의단이 정에 이르고 이 정에서 혜가 발현되는 것이라

구경에는 자기 본래면목을 증하고 그 갖춰진 보리반야가 발현하여 일체진리를

깨닫게 되는 길이기 때문임~

 

-도에 이르는 길-

 이르시기를 "분별 계교로 아는것이 아니요 말아래(혜로써) 단박 봄(본성반야와 계합:합일)이며   이같이 되었을때는 전쟁터에서도 무너짐이 없음"을 강조하셨다. 이 자성은 나눌수도 흔들림도 없는 不動 부증불감의 體이며 이것에 둘아니게 됨이 깨달음이요 견성이기 때문이며, 진아가 주인됨을 잃고 오온을 주인으로 하여 종노릇하며  상에 집착하여 뒤집힌 삿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범부중생이 이 덧없고 허망한 상에 집착하여 한생 한생을 윤회에 침몰하면서 살고  죽는것은 이 오온(假我) 육신을 참나로 착각하여 부질없는 망상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還源本際하여 진여인 진공묘유한 본성에 계합해야만 참낙을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무상 무념으로 공덕을 깨우쳐 증오하는 길이 곧 도에 이르는 길이다.

 그러나, 도는 먼곳에 있음이 아니다.

 다만 상견으로 자아(개아)에 집착하므로 진아인 진성이 가려져 있음을 밝게 요달하면 되는 것이다.

 이 수행을 三학(계정혜)으로 정혜쌍修(닦아)하여, 정혜쌍收(증득)한다하는 것이다.

 

 

 

청봉스님의 장군죽비 카페에서(http://cafe.daum.net/buddhajukb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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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9.05.04 00:07

    첫댓글 둘째줄, 관나는-관하는 ,넷째줄 ,살아지는----사라지는 으로 수정하여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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