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문을 여는 서울 국제고등학교가 최근 신입생 전형요강을 발표했다. 국제계열 고교 중 서울 지역에 처음 생기는 국제고여서 특히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국제고와 더불어 역시 서울에 생기는 공립 과학고인 세종과학고도 내년 부터 신입생을 선발할 계획이다.
서울 국제고는 특히 나라에서 국민의 혈세를 들여 고교평준화를 해치고 위화감을 조성하는 입시명문고를 설립한다는 것에 설립 초기부터 많은 논란을 빚어 왔다. 서울국제고나 인천국제고의 경우 서울?경기 지역에 설립되기 때문에 기존의 국제고들에 비해 지역적‘프리미엄’도 큰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여 논란이 더욱 더 커지고 있다.
2008학년도 전형 요강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전형 요강 발표에 따르면 서울국제고는 특별전형과 일반전형으로 나눠 선발할 계획이다.
지원자격은 3학년 1학기 국어, 사회, 영어의 교과 석차 백분율이 각각 상위 10% 이내인 자로 학교장의 추천을 받거나 서울시교육청 주관 비교평가시험(9월 20일 실시예정)에서 이들 3개 과목의 교과 석차백분율이 각각 상위 10% 이내여야만 가능하다. 특히 사교육 유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중학교 내신 성적을 총점의 82?97% 반영하고 인성면접이나 심층면접을 실시한다. 토플과 토익.텝스 등의 각종 영어 인증시험 성적은 반영하지 않기로 했다. 특히 심층 면접은 1박2일 간 합숙하면서 리더십과 인성, 개방적.비판적 사고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특별전형은 학교장추천자 전형(45명), 특례입학대상자 전형(15명),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15명)으로 나누어 선발한다. 학교장추천자 전형은 각 학교별로 학교장의 추천을 받은 학생 1명씩만 지원할 수 있으며, 교과성적(280점), 비교과성적(10점), 인성면접(10점), 영어듣기 성적을 합산해 선발한다.
특례입학 대상자 전형은 외교관이나 상사 주재원의 자녀 등 특례입학 대상자 가운데 영어,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 외국어 구사능력이 우수한 자를 대상으로 선발하며, 외국어 에세이 쓰기(60점), 외국어 면접(30점), 인성 면접(10점), 영어듣기 점수가 반영된다.
서울시교육청은 특별전형 영어듣기 평가는 사교육 확산 등의 부작용을 우려해 중학교 교육과정 수준에서 출제할 방침이며, 성적으로 환산해 반영하지 않고 합격(pass)/불합격(fail)으로만 판단할 방침이다.
특별전형 지원자격은 서울 소재 중학교 졸업예정자로 제한하며, 일반전형은 이미 국제고가 있는 부산?경기?인천을 제외한 지역 소재 중학교 졸업예정자 가운데 일정 자격을 갖춘 자로 제한을 둔 것이 특징이다. 과학고와 외국어고 등 다른 특목고와의 이중지원은 허용하지 않았다.
대부분 사립인 특목고와 달리 공립학교이기 때문에 공교육 정상화에 초점을 맞춰 신입생을 선발하고 교육과정을 운영한다는 게 서울국제고가 내건 운영 방침이다.
지난 해 개교한 청심국제고는 올해 실질 내신반영 비율을 대폭 하향 조정했고 특별전형에서는 아예 내신을 반영하지 않는다. 또한 서울시교육청이 밝힌 서울지역 외고의 내신 실질 반영률이 30%인 점을 감안한다면, 서울국제고 입시에서 내신의 영향력은 월등히 크다.
이는 특목고들이 당초 설립 취지와 달리‘입시명문고’로 변질돼 사교육을 부채질한다는 지적에 따라 나온 것으로 국제고 입시에서 학생 선발방법의 획기적 변화를 통해 사교육을 줄여보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그동안 특목고 진학을 위해 사교육에 너무 많은 비용을 쏟아 붓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기 때문에 올해 특목고 입시안은 설립 취지에 맞는 최적의 학생을 선발하되, 사교육비 유발 요인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서울국제고 입시안이 마련됐다”고 밝혔다.
국제고 입시에 토플?토익?텝스 등 영어인증시험 하나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도 의외다.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 이외의 자격 인증 시험 등은 사교육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에 사교육에 기댄 인증시험은 반영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중학교 교육만 충실히 한 학생이면 누구나 지원 가능하다는 것을 교육청은 의례적으로 비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교육청의 눈치보기식 전형방법과는 달리 입시 요강이 발표되자마자 중학생과 학부모들은 난색을 표했다. 대부분“내신반영 비율을 높인다는 것은 결국 중학교 때부터 국제고 입시를 위해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며“사교육을 더 조장하는 꼴”이라고 반발했다.
교육과정, 혜택도 프리미엄인 귀족 명문고
서울국제고의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1학년은 국민공통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지만, 2, 3학년은‘무학년 선택제’로 운영되며‘국내대학 진학과정’과‘해외대학 진학과정’으로 나눠 선택해 공부할 수 있다. 2~3학년 전문 교과 과목들을‘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B) 교육과정’기준에 맞춰 여섯 영역으로 편성해 영어로만 수업을 진행한다(국어, 국사, 제2외국어는 제외). 외국 대학 진학 시 유리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런 교육과정은 전국의 단 두 곳, 외국인학교에서만 시행중이다.
일부 외국인학교만 진행하는 이 교육과정을 아무런 준비 없이 서울국제고에 도입하겠다는 것도 문제시 되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교육청 정책연구 보고서는‘2008~2010년 정초기와 2011~2016년 발전기를 거치는 동안 2012년 이 교육과정 인증을 신청해, 2017년 이후 본격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국내 외국인학교도 이 교육과정 도입에 신중하며 시기를 미루는 마당에 시교육청은 다시“교육과정 이행 실적을 쌓고, 교사 연수 등을 하면 1~2년 뒤에는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레발을 쳤고 결국 내년부터 도입해 시행할 예정이다.
학생 1인당 들어가는 국가 예산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서울시교육청 의뢰로 ‘서울시 국제고등학교 설립에 따른 교육과정 편성 운영 방안 연구’에 따르면 이와 같은 교육과정을 1년 간 제대로 운영하려면 학생 1인당 1500만~2000만원이 들어간다. 여기에 아이비 재단에 내야 할 회비만 학생 1인당 80여만 원 정도가 더 추가되고 고교 과정을 넘는 고급 수준 과목까지 가르칠 교사 연수비, 교재.교구비 등도 더해야 한다. 우리나라 고교생 1인당 평균 공교육비 587만원과 비교할 때 3배가 넘는다는 얘기다.
나라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지어지는 공립이라 등록금도 일반고와 같은 수준이다.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지만 실비만 받을 예정이어서 거져 쓰는 거나 마찬가지다. 외고의 공식적인 학비만 일반고의 2?3배 수준인 점과 1년 등록금이 950만원 정도가 드는 청심국제고와 비교할 때 큰 차이다. 그야말로 선택받은 학생들만 누리는 국가적 혜택이 아닐 수 없다.
국제고 입시 설명회에 참석한 주부 정지수(목동, 43) 씨는“내 아이가 그 선택 받은 아이가 돼 공부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래도 국민의 세금으로 소수의 학생들에게만 너무 큰 혜택이 돌아가는 것 같다”며 형평성에 대해 지적했다.
이와 관련, 서울시교육청의 오대석 공보담당관은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일부 언론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된 예산과는 달리 학생 1인당 교육비는 아직 정확히 산정하기 어렵다”며“충분한 검토 후 정확한 예산을 공개할 예정” 이라고 밝혔다.
‘리틀서울대’식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이번 서울국제고 입시 요강 발표를 지켜보면서 교육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은 서울국제고가‘리틀서울대’식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울국제고는 고교서열화 체제의 정점에서‘서울대 효과’를 불러일으켜 전국의 중학생에게 가혹한 입시 부담을 안겨 주게 될 것이며, 국내 명문대나 외국대학 입학을 위한 극소수 상류층을 위한 또 하나의‘입시 명문고’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한다. 여기에 국제고인 만큼 해외유학 열풍, 조기영어교육 열풍, 토플 대란 등 우리 사회에 만연된‘영어 식민주의’나‘영어 입시’사태만을 더욱 조장할 것이라는 우려다.
서울시교육청에서 만들어 공립인데다가 특별전형 대상은 서울 소재 중학교 졸업 예정자만으로 한정하는 등 지역적 인센티브와‘In 서울’이라는 위세감 때문에 서울국제고는 고등학교의 서울대인‘리틀서울대’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와 마찬가지로 교육적 내실보다는 입시의 권력으로만 전락하지 않도록 경쟁력을 갖추는 게 시급하다. 또한 국제고만의 특성을 살려 외고와도 차별화 된 교육을 해야 한다. 내년이 개교 첫 해이기 때문에 당장은 외고와의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외고가 사립이기 때문에 국립인 서울국제고가 누릴 정책적인 혜택도 많다. 대입 동일계 특별전형에서 어문 계열로 제한을 받고 있는 외고와는 달리 경제나 법학 분야 등 다양한 전공으로 진학하는 데 제약을 두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국제고는 설립목적에 맞게 세계무대에서 경쟁할 글로벌한 인재를 키우는 것이다. 국민들의 혈세로 지어졌고 또 많은 우려와 논란 속에 내년 개교를 앞두고 있는 만큼 해결해야 할 숙제도 많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