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원고는 1900년대 초반, 제가 한국교원대부설미호중 근무 시
그 학교 교지에 낸 콩트입니다. 정병국 총무님께서 그때 그 글을 읽으시고
저와 인연을 맺게 되었지요. ㅎㅎ ㅋㅋ 언젠가 그 글이 보고 싶다는 투로 말씀하시기에
졸필에 둔필에 난필이지만 추억을 생각하며 여기에 사알짝 적어 봅니다. 그냥 재미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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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찰떡 궁합이 뭐 따로 있습니까
우산을 접어 몇 번이고 물기를 털어내며 회사 계단을 올라 선 우리의 도연발 씨는 현관을 들어서다 말고 뒷걸음을 두어 번 쳤다. 회사 간판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마구 퍼붓는 빗발 때문에 안경 너머로 가늘게 쳐다보기는 했지만 자기 회사 간판이 틀림 없으렷다.
휴, 얼마 전에는 같은 붉은 벽돌이라 옆에 있는 다른 회사로 들어갔다가 망신을 당했는데 오늘은 무사하구만 그래. 그 때부터 우리의 도연발 씨는 회사 간판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던 것이다.
빙글빙글 도는 현관문을 들어서며 우리의 도연발 씨는 또 언젠가처럼 ‘들어갔는데 되레 밖으로 나온’ 그 촌스러움을 또 할까봐 약간은 긴장했다.
하기사 그 때 내가 여러 사람이 쳐다볼 그 촌스러움을 보인 것은, 그렇지 결코 내가 촌스럽기 때문이 아니라 아 글쎄, 마침 밖으로 나오려고 동시에 회전문을 들어선 그 아가씨 때문이었던 거지 뭐. 나는 밖에서 안으로, 그 아가씨는 안에서 밖으로. 나는 따라 돌고, 그 아가씨는 돌아서 나가고. 그래서 그랬던 거지 뭐.
또박또박 계단을 올라 3층으로 간 우리의 도연발 씨는 회색빛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내가 일찍 왔나, 아직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저 쪽 유리창 가의 자기 자리에 앉은 우리의 도연발 씨는 마침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신문을 펼쳐 들었다.
신문에는 큰 사연 작은 사연, 큰 활자 작은 활자 빼곡히 들어차 있었지만, 우리의 도연발 씨가 볼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아니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이 있나 보군 그래. 이거 말야 그 사람이 다 봤으니까 내가 볼 게 없는데. 내일은 제일 먼저 와서 다른 사람이 다 보기 전에 얼른 빨리 봐야지.’
우리의 도연발 씨는 의자에 몸을 젖히며 담배를 빼어 물었다. 으이구, 어제 그 사실은 생각할수록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저녁 느지막해서 술 한 잔 걸치고 집에 들어갔는데 앉기가 무섭게 사모님 이거순 여사가 우리의 도연발 씨에게 두툼한 편지 하나를 내민 것이었다. ‘하지만 올림’ 생전 처음 접하는 발신인 이름이었다.
혹시 수취인이 내가 아닌지도 몰라. 우리의 도연발 씨는 봉투를 뒤집어 확인해 보았지만 ‘또연발 귀하’ 이름에서 한 자만 맞춤법이 어긋날 뿐 주소나 우편 번호는 분명히 내 것이었다. 어디볼까.
“도연발씨, 전 댁이 누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의를 표현하고자 한 점 참으로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말이죠. 봉투를 주신 것은 좋으나 무엄하게도 속이 텅 비었더군요. 봉투나마 보내실 곳으로 다시 보내시라고 이렇게 거금 100원 우표를 붙여 다시 보내 드리오니 그렇게 아시기 바랍니다.”
으악! 이게 어찌된 일인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얼만 전에 회사 직속상관인 ‘두고봐’ 부장님네 집에서 딸 시집을 보내기에 급한 일 때문에 사모님 이거순 여사에게 대신 갔다 오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때 그 빈 봉투에 작은 거나마 수표 한 장 넣으라는 말을 내 미처 못했고, 또 그렇고 그런 내 마누라 또한 확인 없이 그렇고 그렇게 다른 사람네 결혼 접수대에 덜컥 내고 만 것이리라.
이런 저런 일로 가뜩이나 자기를 고깝게 보고 있는 두고봐 부장님인데, 이거 변변치 못하게 일을 처리했으니 아이구, 이제 나는 더 눈 밖에 날 것이요. ‘하지만’인지 ‘동지만’ 인지 하는 낯선 이름한테서 핀잔 보태기 창피까지 당하다니 으앙. 그래서, 예식장이 북적거려 실수했다는 사모님 이거순 여사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도연발 씨는 사모님 이거순 여사와 펑펑, 따따따따 드르륵 드르륵 부부 싸움을 한바탕했던 것이다. 아무리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하지만 그래도 싸울 건 싸워야지.
으이구, 또 신음 소리를 낸 우리의 도연발 씨는,
“할 수 없지 뭐. 나도 그런 판인데 뭐.”
담배를 또 한 모금 깊이 빨아들었다.
하기사, 우리의 도연발 씨는 평상시 멍청하리 만큼 실수를 많이 하는 편이었다. 안경 들고 안경 찾기, 구둣솔 들고 운동화 신기, 버스에 우산 놓고 내리기, 시계 차고 시간 묻기, 술 잘자시고 같은 아파트 통로 다른 집 안방 들어가기, 그리고 시내버스에서 떨어지는 도시락마다 내 도시락인줄 알고 남학생 여학생 대여섯 명 것을 싹쓸이 했으니 허참…….
그러나 그 실수 때문에 발견한 천생 연분, 그것 때문에 또한 결혼이란 걸 하게 된 우리의 도연발 씨가 아니었던가.
연애할 때 일이다. 사람이 북적대는 대전 EXPO에 데이트란 걸 하러 갔다가 하루의 문을 닫는 시간에 인파에 묻혀 나올 때다. 우리의 도연발군이 한참 자기 자랑을 하면서 나오다 언뜻 옆을 봤는데 아니 이럴 수가! 분명 자기 손에 잡혀 있어야 할 아가씨 이거순양의 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대신 다른 여자의 손이 손안에 있소이다가 아니던가. 그런데 더 기막힌 일은 몇 걸음 뒤에서 역시 자기 자랑을 조잘대며 나오는 아가씨 이거순 양 또한 웬 남자의 손에 붙잡혀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멍청함, 그 실수에도 불구하고 서로 열렬히 연애하고 웨딩마치를 올린 이유는 바로 그런 실수 궁합이 딱 맞았기 때문이리라. 하기사 독신주의자인 남자와 여자도 서로의 생각이, 이상이 같기에 결혼하는 세상이라고 유머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어쨌든, 우리의 도연발 씨는 군복무 때 처음에는 이름만 바꿔 베끼던 연애편지에서 끝 부분에 가선 옆 전우의 원본에 있는 아가씨 이름을 그대로 베껴서 망신당한 사건 이후 편지를 두어 개 부칠 때마다 풀로 붙인 봉투를 또 뜯곤 하여, 제대로 봉투에 그 내용이 들어있나 보는 습관까지 생겼으니 병은 병이런가.
또 신음 소리를 낸 도연발 씨는 담뱃재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언제부턴가 자신을 자꾸 훔쳐보는 아가씨의 시선이 있음을 느꼈다.
‘누굴까? 사무실에 온 아가씨 같은데 왜 나한테 인사를 안 하지?” 요즘 젊은 것들은 예의도 없단 말야.’
사실 자신도 삼십 약간 넘은 젊은 축이었는데도 순간 머리에 떠오른 선임이란 단어가 자신을 노숙한 축으로 떠밀고 갔던 것이다.
우리의 도연발 씨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책상 서랍을 열려고 했지만 도무지 맞지가 않는다. 한참을 끙끙거리고 있는 우리의 도연발 씨는 주위에 이상한 움직임이 있는 느낌이 들어 엉거주춤 고개를 들었는데 거기엔 ‘나몰라’란 명찰을 단 아까 그 아가씨와 ‘이봐요’란 명찰을 단 순경 아니 수위복 차림인 아저씨가 서 있었다,
아니 이 사람들은 누구란 말인가. ‘이봐요’명찰이 소리를 친다.
“아니, 다 당신 누구요. 엉?” “이 사람 도둑 아니 간첩 아냐?”
‘나몰라’ 명찰이 삼도 높은 음으로 말을 잇는다. 아니 이 사람들이 왜이럴까. 잔뜩 흥분한 얼굴을 한 ‘이봐요’ 명찰은 총도 없으면서 사격 자세를 취하고 있었고, 한결 빨개진 얼굴을 한 ‘나몰라’ 명찰은 빗자루를 들고 있지도 않으면서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아니 왜들 이러세요. 여긴 제 사무실인데요.”
역시 엉거주춤 일어서며 말하는 우리의 도연발 씨 귓가에 ‘이봐요’명찰이 후딱 말한다.
“아니, 여기는 오지마 회사란 말입니다.”
“아니, 그럼 여긴 가지마 회사가 아닙니까?”
아하, 그러고 보니 우리 옆집 회사는 첫 자만 틀리고 둘째, 셋째 글자는 같았지. 으이그 그 빗방울 때문에 적당히 두 자만 확인한 내가 잘못이지 뭐.
“죄 죄송합니다. 저의 회사인 줄 알고 그만.”
“아 그랬습니까? 우린 또 도둑인 줄 알고…….”
‘죄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그 사무실을 나오려는 우리의 도연발 씨의 귀에 따르릉 전화를 받는 ‘나몰라’ 아가씨의 목소리가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뭐라구요, 도연발씨 사무실이냐구요? 예? 집이라구요?”
역시 ‘죄 죄송합니다.’를 외치며 날쌘돌이 같이 수화기를 낚아챈 우리의 도연발 씨에게 사모님 이거순 여사는 전화번호를 잘못 알고 전화했는데 왜 거기 있느냐며 수상스럽단 말꼬리를 남긴다.
어쨌든-.
그 날 저녁 퇴근 때, 우리의 도연발 씨와 사모님 이거순 여사는 먹자골목에서 둘 다 좋아하는 통만두를 서로 열심히 먹여주며 참 용하게도 우린 왜 그러냐며 오랜 만에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비록 실수 때문에 몇 사람에게선 창피를 당하였지만 여기 이렇게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아주 많은 사람에게 소개되고 있으니- 웃음(?)을 주고 있으니- 우린 참 유명하고 행복하다 그치?”
턱을 내밀어 말하는 사모님 이거순 여사의 말에
“거럼, 거럼! 찰떡 궁합이 뭐 따로 있남?”
우리의 도연발 씨는 한 쪽 눈을 찔끔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낮 동안 세차게 내리던 비가 속삭이듯 소리를 내며 가늘게 내리고 있었다.
첫댓글 그런 인연도 있군요 재밋네요^^ 다음 글도 기대가 됩니다 ~
찰떡 궁합 맞네요...ㅎ
감사합니다. 다음 생활글쓰기(4)는 2000년 초반 제가 <제1회도민백일장>에서 시와 수필부문 입상자 10여분 중 유일한 청일점으로 아주 우수수 으시시하게 선정된 글 <물>을 소개합니다. 기대하시라 ~~~
ㅎㅎ 기대하겠습니다....
새로운 한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 덕분에 유쾌한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ㅎㅎㅎㅎ
음....재미있는 시트콤 한편 시청한 듯하네요^^* 근데 저는 자꾸 도연발씨에게서 제 모습이 투영되는 듯함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