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 1795-1881)의 <영웅숭배론>(On Heroes, Hero-Worship, and the Heroic in History)은 원래 칼라일이 1840년 5월 5일부터 22일까지 런던에서 매주 화, 금요일에 행한 여섯 차례의 강연 원고를 그 이듬해인 1841년에 책으로 펴낸 것이다. 책 제목을 직역하면 <역사에서의 영웅, 영웅숭배 및 영웅정신>이 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영웅숭배론>으로 불려 왔다.
<영웅숭배론>은 19세기 서양 사회에서 최고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였다. 1841년에 초판이 간행된 후 1928년에 이르기까지 영국에서 28판, 미국에서 25판이 각각 간행되었고, 독일어 번역본은 6판이 간행되었다. 칼라일이 사망한 후 이 책은 유럽 각국어로 번역되었는데, 1888년에는 프랑스어로, 1892년에는 폴란드어로, 1893년과 1932년에는 에스파냐어로, 1897년에는 이탈리아어로, 1900년에는 헝가리어로, 1901년에는 스웨덴어로, 1902년에는 네덜란드어로, 1903년에는 세르보-크로아티아어로, 그리고 1916년에는 덴마크어로 옮겨졌다. 19세기말과 20세기초 유럽의 독서인구 상당수가 이 책의 애독자였다고 할 수 있다.
<영웅숭배론>은 역사서술의 측면에서 각별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 20세기 영국 역사가 트리벨리언(G. M. Trevelyan)은 칼라일이 현대 역사학이 결여하고 있는 상상력과 설화적 자질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그는 <영웅숭배론>의 ‘루터’와 ‘크롬웰’을 뛰어난 역사 서술로 평가한다. 삭막하고 무미건조한 현대의 ‘과학적’ 역사 서술에 식상한 독자들은 <영웅숭배론>을 통해 ‘역사가 열정을 낳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밖에도 ‘셰익스피어와 인도를 바꿀 수 없다’는 말을 비롯해 수많은 명언․명구들이 수록되어 있다.
영웅에 대한 선입견
<새우리말큰사전>(신기철, 신용철 편저)은 ‘영웅’을 ‘재지(才智)와 무용(武勇)이 몹시 뛰어난 사람’으로 풀이해 놓고 있다. 중국의 무협(武俠) 전통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몰라도, 아무래도 우리에게 ‘영웅’이라 함은 전사(戰士)의 이미지를 강하게 풍기는 것이 사실이다. ‘영웅숭배’란 어휘도 마찬가지여서, 우리 사이에서 그 말은 항용 ‘군인 영웅에 대한 맹목적 숭배와 절대적 복종’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칼라일의 <영웅숭배론>을 읽을 때는 이런 선입견을 잠시 접어둘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칼라일이 말한 ‘영웅’은 결코 군사적인 의미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에서 다룬 11명의 영웅 중에는 나폴레옹과 크롬웰 같은 군사적 영웅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나머지 영웅들은 북유럽 신화의 주인공 오딘, 이슬람교 창시자 마호메트, 종교개혁자 루터와 녹스, 시인 단테와 셰익스피어, 문인 존슨․루소․번즈 등이다. 이렇게 볼 때 칼라일의 ‘영웅’을 군사적 영웅으로 단순화해서 생각한다면 그것은 칼라일의 의도와는 크게 빗나가게 될 것이다.
칼라일의 영웅은 인격적 성실성과 도덕적 통찰력이라는 정신적 자질을 갖춘 ‘위인’을 의미한다. 실제로 칼라일은 이 책에서 ‘영웅’(Hero)과 ‘위인’(Great Man)을, 그리고 ‘숭배’(Worship)와 ‘존경’(Reverence)을 같은 의미로 혼용하고 있다. 이 책에서 직접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칼라일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련하여, ‘모든 영웅 중 가장 위대한 영웅은, 우리가 감히 여기서 그 이름을 말하려 하지 않는 바로 그분’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예수야말로 모든 영웅 중 최고의 영웅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 있는 것이다. 칼라일의 영웅개념을 파악하기 위한 첫 단추는 바로 이 대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신적 위대성이야말로 위인의 가장 큰 특징이었던 것이다.
영웅의 특성
칼라일이 역사 속에서 선별한 모든 영웅은 근본적으로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로 그들은 ‘성실’했다. ‘깊고 크고 참된 성실성이야말로 모든 위인들의 으뜸가는 속성’이었다. 그러나 영웅들은 자신의 성실성을 의식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이 불성실하다는 것을 예민하게 느끼며 살아가는’ 인물들이었다.
둘째로 모든 영웅들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사물의 외관을 투시하고 사물 그 자체를 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어떠한 시대, 어떠한 장소, 어떠한 상황에서든 진실로 돌아가 사물의 외관이 아니라 사물 그 자체 위에 서는 것’이 그들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모든 영웅들은 성실성과 통찰력이라는 공통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이 취하는 모습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서’ 매우 다양했다. <영웅숭배론>에는 비록 확고한 논리는 갖추지 못했지만, 영웅의 모습이 시대와 조건에 따라 어떤 형태를 취하는가에 대한 칼라일 나름의 관점이 제시되어 있다.
영웅은 맨 처음 ‘신’으로 간주되었다. 북유럽 신화의 주인공 오딘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다음 단계에서 영웅은 신으로서가 아니라 마호메트처럼 ‘신의 영감을 받은 예언자’로 등장했다. 사람들이 이제 더 이상 영웅들을 신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후 시대가 흐르면서 영웅들은 시인, 성직자, 왕 등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했고, 특히 근대에 접어들어서는 인쇄술이 발명되면서 문인이라고 하는 새로운 형태의 영웅도 출현할 수 있었다. 요컨대 칼라일의 영웅은 그들이 살던 시대의 사람들이 그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서,’ 그리고 자기 시대의 ‘물질적인 조건에 따라서’ 모습을 달리하여 등장하는 존재였다.
영웅과 범인
칼라일은 인류가 향유하는 모든 것은 영웅 또는 위인들의 산물이며, 따라서 범인(凡人)은 진정한 영웅을 발견하고 그에게 복종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범인은 결코 영웅과 같은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칼라일이 범인에게 아무런 중요성도 부여하지 않았다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물론 범인은 영웅에게 복종해야만 했다. 그러나 모든 인간에게 정신적 질서를 구현할 의무가 부여되었다는 점에서 범인 역시 고귀한 존재였다. 칼라일은 <과거와 현재>(Past and Present)에서 인간 존재의 고귀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의 육체는 태양 아래서 가장 존중되어야 할 존재이다. 왜냐하면 지극히 높으신 신께서 머무르고 또 자신을 보이시는 곳은,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나’라고 부르는 신비롭고 불가해한 그러면서도 눈에 보이는 그 존재이기 때문이다. 노발리스(Novalis)의 말을 빌면 ‘사람 앞에 몸을 구부리는 것은 육체 속에 임한 계시에 대해 존경을 바치는 것과 같다. 인간의 몸에 손을 댈 때 우리는 천국을 만지고 있는 것이다.’"
영웅에 대한 칼라일의 생각은 기독교에 대한 그의 관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위인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로 보았고, 기독교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영웅숭배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칼라일이 영웅과 추종자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였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기독교에서의 영웅숭배, 다시 말해서 기독교의 교세 확장이 어떻게 이루어진다고 보았는지 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칼라일은, 어떤 종교에서든 그 종교가 추종자를 얻게 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잠자고 있는 정신적 위대성을 일깨움에 의해서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인위적인 조직이나 강제적인 조치들이 아니라, 개인적․자발적 노력에 의해 마음에서 마음으로 감화력이 파급됨으로써 추종자를 얻는 것이었다. 칼라일은 그와 같은 관점을 자신의 에세이 「시대의 징표」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기독교는 인간 영혼의 신비로운 심연 속에서 발흥하였으며, 그것의 확산은 어디까지나 ‘말씀의 전파’에 의해, 그리고 자연스럽고 개인적인 소박한 노력에 의해 이루어졌다. 기독교는 마치 신성한 불꽃처럼 마음에서 마음으로 흘러 들어가 마침내 모든 사람이 그 불꽃에 의해 정화되고 빛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영웅의 추종자 획득이 도덕적 감화력에 의해 가능하다고 본 칼라일은, 일차적으로 복종해야 할 사람은 범인이 아니라 영웅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위인은 ‘신에게 복종해야만 했고,’ 그의 모든 힘은 ‘신이 하는 모든 일에 스스로를 맡기고 복종하는데’ 있었다. 하늘이 이 땅에 계시한 지혜는 ‘자아의 부정’(Denial of Self), ‘자아의 절멸’(Annihilation of Self)이었다. 영웅은 이 지혜를 받아들이기 마련이었다. ‘위대한 영혼은 항상 자기 위에 있는 존재를 존경하고 복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위대한 ‘신의 세계’에 사는 위인의 임무는 하나의 정의로운 법을 믿고 경건한 침묵으로 그것을 따르며 복종하는데 있었다. ‘이 위대하고 중심적인 법과 합치하는 동안은 그에게 승산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동안에는 승리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영웅에게 전면적인 자아의 포기가 요청되었던 것과는 달리, 범인에게는 일차적으로 자신의 판단력을 활용하여 영웅을 자신의 지도자로 받아들일 것인지를 결정하는 역할이 맡겨졌다. 영웅은 일방적으로 주변의 범인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없었다. 범인들이 영웅을 따르기로 자발적인 결단을 내릴 때에만 추종자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영웅이 추종자를 얻기 위해서는 그를 영웅으로 알아주는 주변의 인식이 필수 조건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어떤 인물도 그의 하인 앞에서는 영웅이 아니다’라는 프랑스의 속담은 칼라일에게 대단히 부당하게 들렸다. 만일 영웅이 그의 하인의 눈에 영웅으로 비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영웅이 영웅답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인의 정신이 저급하여 영웅을 보아도 영웅임을 알아볼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웅숭배의 뜻
칼라일이 말한 ‘숭배’는 상급자에 대한 수동적이고 맹목적인 복종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는 자발적인 ‘존경’이다. 칼라일의 그와 같은 관점은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경우와 비교할 때 차이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즉 니체가 ꡔ권력의지ꡕ에서 초인(超人)과 범인의 특징을 의지(willfulness)와 무의지(will-lessness)로 파악하고 양자를 ‘상반’된 속성을 지닌 존재로 간주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칼라일은 영웅과 추종자의 차이가 다만 ‘정도’의 차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영웅은 성실성과 통찰력을 구비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 영웅을 알아보려면 범인 역시 성실성과 통찰력을 구비한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 양자는 결국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었다. 다만 영웅은 신성한 진리를 직관으로써 간파할 수 있을 만한 강력한 통찰력과 성실성을 가진 반면, 추종자는 영웅의 구체적인 언행을 통해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인 것이다.
칼라일이 이렇듯 영웅과 범인의 차이를 ‘질’적인 것이 아닌 ‘양’적인 것으로 생각한 것이 분명하다면, 그를 ‘정치 문제에 있어 수동적 복종을 가장 단호하게 옹호한 인물’이라고 간주한 에른스트 카시러(Ernst Cassirer)의 주장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카시러는 <국가의 신화>(1946년 초판)에서 ‘참된 자발성은 선택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보유되고, 나머지 버림받은 대중은 이 선택된 소수의 의지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 칼라일의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앞에서 본 것처럼 칼라일은 범인 개개인에게 영웅다운 품성이 있을 때 비로소 영웅에 대한 추종 역시 가능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칼라일에게 있어서 영웅에 대한 복종은 ‘버림받은 대중의 수동적 복종’이 아니라, ‘작은 영웅들의 자발적 복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가 말한 영웅숭배란 ‘도덕성을 지닌 위인에 대한 자발적인 존경과 헌신’ 정도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칼라일은 <영웅숭배론>에서 영웅의 주변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설명하기 위해 영웅을 ‘광명의 원천’으로 비유했다. 그러나 그 ‘빛’은 주변 세계를 아무런 장애 없이 밝힐 수 있는 무제한의 능력을 결코 갖지 못했다. 칼라일은 ‘광명이 빛을 어떻게 퍼뜨리게 되는가, 그리고 그 형태와 색채에 있어서 어떻게 수천 배로 확대되어 뻗어 나가는가 하는 것은, 그 광명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민의 마음에 달렸다’고 보았다.
그 결과 <영웅숭배론>에서 영웅으로 등장한 크롬웰(Cromwell)은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조건과 상황이 개선되기까지 12년 동안 묵묵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인물로 묘사되는가 하면, 문인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은 시대를 제대로 만나지 못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칼라일의 영웅은 소수의 특출한 지도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영웅은 성실한 사람을 의미했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영웅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영웅과 추종자의 관계는 결코 정치적 지배・예속의 관계가 아니었다. 칼라일은 이런 의미에서 ‘사람들 간에 이루어지는 행동 가운데 지배하고 복종하는 일보다 더 도덕성을 띠고 있는 일도 없다’고 말한다. 영웅적 지도자가 추종자를 얻기 위해서는 성실성 및 영웅을 알아보는 안목을 지닌 ‘수많은 작은 영웅들’이 있어야만 했다. 칼라일의 말을 직접 인용하자면 ‘영웅들로 가득 찬 세계’(a whole World of Heroes)에서 비로소 진정한 영웅숭배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칼라일의 영향력
칼라일은 19세기 영국 사상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 중 하나이다. 20세기의 역사가 크레인 브린턴(Crane Brinton)은 빅토리아 시대에 가장 영향력이 컸던 두 인물로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과 더불어 칼라일을 꼽고 있다. 칼라일의 영향력은 앞에서도 밝혔듯이 ꡔ영웅숭배론ꡕ이 19세기 영국 독자들로부터 얼마나 열렬한 호응을 얻었는지를 통해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많은 연구자들이 지적하듯이, 실로 칼라일을 배제하고서는 19세기의 영국 문학사도 영국 사회사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괴테(Goethe)는 칼라일이 아직 문인으로서 이름을 떨치기 전인 1827년에 에커만(Eckermann)과의 대화 가운데서 이미 그의 특유의 통찰력으로 ‘칼라일이 대단히 중요한 도덕적 힘을 가지고 있다’고 간파한 바 있다. 바로 이 ‘도덕적 힘’이야말로 칼라일의 강점이었으며 그가 빅토리아 시대에 그토록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비결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18세기 계몽주의의 물질주의와 종교적 회의주의로 정신적 지향을 상실한 19세기 전반기의 젊은 세대에게 칼라일의 저작들은 계시와도 같은 권능으로 받아들여졌고, ‘칼라일은 나의 종교’(Carlyle is my religion)라는 말도 흔히 들을 수 있었다.
칼라일은 벤담(Bentham)의 공리주의를 ‘돼지 철학’(pig philosophy)이라고 질타했는가 하면, 산업 사회에서의 비정한 인간관계를 일컬어 ‘금전 관계’(cash nexus)라고 적절히 표현하기도 했다. 특히 이 ‘금전 관계’라는 말은 엥겔스를 비롯한 19세기 사회주의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문구가 되기도 했다. 루카치(Lukács)가 <소설의 이론>에서 칼라일을 ‘사회주의 비평의 선구자’라고 자리 매김한 것도 그의 이렇듯 예리한 사회적 통찰과 휴머니즘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칼라일에 대한 오해
그러나 당대의 비할 데 없는 커다란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20세기에 들어 그의 사상은 철저히 왜곡 당하기에 이르렀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책의 제목을 직역하면 ꡔ역사에서의 영웅, 영웅숭배 및 영웅정신ꡕ이 된다. 언어 감각이 있는 독자라면 벌써 짐작했겠지만, 이 제목에는 다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다. 우리말에서와 마찬가지로, 영어에서도 ‘영웅’이란 말에는 정치적․군사적 함의가 있고, 게다가 여기에 ‘숭배’라는 말까지 덧붙여지면 그것은 대뜸 20세기 전반기를 휩쓸었던 나치즘․파시즘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칼라일이 말한 ‘영웅숭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약 20년 동안 서유럽에서 ‘총통숭배’와 동일시되는 경향을 보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 형성된 칼라일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는 이렇다할 ‘결정적인’ 수정 없이 오늘날까지 그대로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로 왜곡의 답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칼라일이 영웅의 으뜸가는 자질로서 ‘성실성’과 ‘진실성’을 꼽고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영웅 중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꼽고 있다. 제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루터, 녹스, 단테, 셰익스피어, 존슨, 루소, 번즈 같은 칼라일의 영웅들과 히틀러 같은 전체주의자 사이에 연결 고리를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영웅숭배론>과 우리 시대
한국 사회는 광복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실로 격변에 격변을 거듭해 왔다. 서유럽이 200년, 300년 동안 겪었던 정치, 경제, 사회적 변화를 우리는 불과 반세기 동안에 경험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고도의 압축 성장이 도덕성 상실이라고 하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얻어진 것이라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사리사욕을 위해 민족과 사회의 장래를 뜯어먹는 일에 조금도 주저함이 없는 추악한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 관료, 지식인 등이 여기에 앞장을 섰던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강 다리가 무너지고, 백화점 건물이 주저앉는가 하면, 사회 전반이 부실과 날림으로 중병을 앓아왔다. 실로 황금만능주의와 가치관 전도의 극단을 보는 느낌이다. 이렇듯 탐욕스러운 정치인, 부정직한 사회, 잿밥에 눈이 어두운 간교한 지식인을 향해 ‘19세기의 예레미야’로 불리기도 하는 칼라일은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천박한 인간일지라도 좀더 고귀한 무엇을 갖고 있습니다. 총알받이로 고용되어, 상소리나 지껄이는 가련한 병사들도 훈련 규정과 하루 1실링의 급여 외에, 그 나름대로의 ‘군인의 명예’라는 것을 갖고 있는 법입니다. 아무리 가련한 인간일지라도, 그가 막연히나마 그리워하는 것은, 달콤한 사탕 맛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고상하고 진실한 일을 하고, 신의 하늘 아래서 그 자신이 신이 만드신 인간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일입니다. 그에게 그것을 할 수 있는 길을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아무리 둔해빠진 날품팔이일지라도 빛을 발하며 영웅이 될 것입니다. 인간이 안일을 좇아 움직인다고 말하는 사람은 인간을 크게 모독하는 것입니다. 어려움, 자기 억제, 순교, 죽음, 이런 것들이야말로 인간의 가슴을 자극하는 ‘유혹물’입니다."
<영웅숭배론>에는 ‘성실,’ ‘진실’이란 말이 실로 무수히 반복된다. 거의 매 페이지마다 나올 정도이다. ‘성실,’ ‘진실’이야말로 이 책의 핵심 어휘(key word)이며, 실로 ‘성실,’ ‘진실’이야말로 칼라일의 영웅이 갖는 으뜸가는 자질인 것이다.
옮긴이가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생 시절이었다. 젊은 가슴을 끓어오르게 만드는 책으로서, 다 읽고 난 후에도 설렘과 흥분이 쉬 가라앉지 않는, 여운이 오래 남는 책이었다. 인간 내면에 있는 열정을 활활 타오르도록 부채질하면서도, 그 불길에 올바른 방향을 잡아주고, 동시에 불꽃에 섞인 불순물을 정화시켜주는, 아주 특별한 책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이 책은 젊은 영혼에 ‘고상한 야심’(noble ambition)을 일깨워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옮긴이는 이 책을 독자들이 평이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하고자 번역 과정에서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트리벨리언의 말처럼, ‘투명한 문체는 언제나 고된 노력의 결과이며 문장과 문장, 단락과 단락 사이의 흐르는 듯한 연결은 항상 이마에 땀을 흘린 후에야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옮긴이는 우리말 표현에 유의하는 동시에 칼라일의 시대와 우리 시대 사이의 시간적, 공간적 거리를 줄이고자 가능한 한 자세한 역주를 붙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 책에는 북유럽 신화를 비롯해서 철학․문학․예술, 종교, 정치, 역사 등, 과연 이것이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강연’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방대한 학식이 동원되고 있어서, 옮긴이가 욕심냈던 것만큼 평이한 글이 되었는지 의문이다. 옮긴이는 이 책을 옮기면서 19세기 영국 교양 대중의 인문학 수준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아울러 기껏해야 만담조의 건강 강연이나 처세술 강연이 주류를 이루는 우리의 딱한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