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1972학번)가 학생때 제주대학에서 내과학을 강의하셨던 임정택교수님이 지금은 광주에 살고 계십니다.
제주대학수의학과을 비롯한전국 8개 수의과대학이 서울대학으로 통합된다는 등의 구실로 제주를 떠나신
수의과 교수님들은 전남대,경북대 수의과 제주대 축산과, 제주대 생물학과 등으로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그 시절 제주대학에서 강의하셨던 김오남(전염병학),서두석(외과학)(한방근 생리학),...? 은사님들은 이미 이승을
하직 하셨고 임정택 교수님 만 아직 청청한 건강을 유지하시며 저희들과 카페 만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라톤을 하여 하프(21. 0975Km)를 달리셨는데
나이 드시면서 운동을 꾸준히 하신 결과 건강을 유지하시는 듯 합니다.
간혹 제주에 오실 때면 졸업 동기들끼리 교수님을 뵙고 지난 날을 반추하곤 합니다.
제동목장 근무 당시(1983년_85년) 전남대에 계시던 교수님께서는 학생들을 인솔하여 제주에 졸업 여행?
오시면 제동목장 현황을 학생들과 교수님께 제가 브리핑을 하곤 하였지요..
내과학 강의 시간에 침을 튀기며 열강을 하시던 임정택 교수님 옛 모습이 아른 거립니다.
지난 해에는 교수님 모시고 저가 다니는 임상 현장( 소,말,코끼리,호랑이 등)에 하루 종일 교수님을 모실 수 있었습니다.
코끼리쇼 공연장,호랑이 마술공연장에서는 얼마나 좋아하셨던지 저도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그 옛날 학생 시절
저흰 교수님 아파트에서 소주 파티를 자주 열었고 교수님과 탁구장에서 함께 땀을 뻘뻘 흘렸습니다.
그 임정택 교수님께서는 지금도 제주도수의사회 카페에 매일 오시어 저희들에게 삶의 가르침을 주십니다.
아래 내용도 교수님께서 카페에 올리신 글을 복사한 내용입니다.
너무 맛나는 글이라 퍼왔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7168E454E9C32B818)
임정택 교수님
못난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s104.onlymymailer.net%2FattachedFiles%2Fimages%2Fseptember%2F0926%2F001.jpg)
제가 참으로 존경하고 좋아하는 친구 같은 선배님 한 분이 계십니다.
입담이 워낙 좋은 분이라 이분이 입만 떼면 우리는 늘 배를 잡고 웃습니다.
이분은 한 때 디제이를 했는데 목소리를 착~ 깔아서 이랬다고 합니다.
꽃은 피어도 소리가 없고
사내는 울어도 눈물이 없고
사랑은 불타도 연기가 없습니다.
오늘 노래 나갑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러브 미 텐더입니다.
그러면서 음악이 잔잔하게 흘러나오면 동네 아가씨들이 그냥 ‘껍벅’ 죽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랬다고 하니 그냥 믿어야 합니다.
저에게는 하늘같은 선배님이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그 선배님과 대화를 하다가 굽은 소나무 얘기가 나왔습니다.
자식들을 좋은 대학에 진학시켜서 큰 아들은 현재 미국에서 대학교수를 하고 있고, 작은 아들은 서울에서 대기업의 임원으로 있는데, 정작 그 어머니는 여주에서 혼자 쓸쓸히 지내고 계시는 분의 얘기를 하다가 그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자식을 아주 잘 키우면 국가의 자식이 되고, 그 다음으로 잘 키우면 장모의 자식이 되고, 적당히 잘 키우면 내 자식이 된다는 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식 중에 한 명 정도는 시골공고에 보내서 내 가까이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말도 했습니다.
"A bird in the hand is worth two birds in a bush"
"내 손 안의 새 한 마리가 숲 속의 두 마리만큼 값지다"
웃자고 하는 얘기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틀린 얘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야 집에 하수도가 막혀도 “누구야? 하수도가 막혔다.
얼른 와서 해결 좀 해라.”하고 편하게 부를 수 있고, 방안의 전구를 바꿀 때도 “누구야? 얼른 와서 전구 좀 바꿔라.”하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A living ass is better than a dead doctor.
죽은 박사보다 살아 있는 멍청이가 낫다
하수도가 막혔다고, 전구가 나갔다고,
미국에 있는 아들을 부를 수 없고,
서울에 있는 아들을 부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일 년에 겨우 한두 번 볼까 말까하는 아들이 내 아들이라고 할 수가 없고,
평생에 한두 번 볼 수 있고 사진을 통해서나 겨우 만날 수 있는 손자들이
내 손자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소리만 요란하고 결과는 없다.
All cry and no wool
빵 한 덩이리가 수많은 새들의 노랫소리보다 낫다.
A loaf of bread is better than songs of many birds.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s104.onlymymailer.net%2FattachedFiles%2Fimages%2Fseptember%2F0926%2F003.jpg)
‘한겨울 추워져서야 소나무·잣나무가 쉬이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는 글이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나오는 말입니다.
옛 어른들도 못난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무릎 꿇고 앉아 산을 지키는 못난 소나무. 그 못난 소나무가 부모의 산소를 지키고, 선산을 지키고, 고향을 지키는 것입니다.
같은 소나무지만 토질이 좋고 비바람을 덜 받아 곧고 수려하게 자란 소나무는 사람들이 재목으로 쓰기 위해 베어가 버립니다.
또한 괴이하면서도 특이한 소나무는 분재용으로 송두리째 뽑아가 버립니다. 그러나 같은 땅이라도 척박한 곳에 뿌리를 내린 못난 소나무는 모진 고생을 하면서 자라야 합니다.
또 크게 자란다고 해도 동량이 되지 못하니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못난 소나무는 산에 남아 산을 지켜야 합니다.
그렇게 산을 지키는 못난 소나무는 산을 지키면서 씨를 뿌려 자손을 번성케 하고 모진 재해에도 산이 훼손되지 않도록 산을 보존합니다.
결국 잘난 소나무가 멋지게 자라서 재목이 될 수 있는 것도 못난 소나무가 산을 정성스럽게 지켜준 덕분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이 못난 소나무를 업신여기는 경향들이 없지 않습니다.
서로가 못난 소나무이면서, 너는 나를 우습게 알고, 나는 너를 우습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그러했지 않습니까.
서로 힐난하고, 서로 깎아 내리고, 잘난 꼴은 못 보고. 그리고는 잘난 소나무만 바라보며 그를 우러러 봅니다.
우리 대부분은 못난 소나무입니다.
우리 자식들 대부분도 못난 소나무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못난 소나무가 우리에게 효도하고 우리의 산소를 지키고 우리의 고향을 지킬 것입니다.
그래서 도시의 교육정책도 못난 소나무에게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잘난 소나무는 잘난 소나무대로 열심히 키워야 하겠지만 평생 동안 고향을 지키게 될 못난 소나무들을 우리가 쉽게 생각하고 소외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자식이 잘되면 고마운 일이지만 자식이 평범하게 성장하더라도 구박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오히려 더 정성스럽게 키워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 아이가 결국은 내 곁에 오래남아 막힌 하수구를 뚫어주고, 전구를 바꿔주고, 내가 아프면 나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갈 놈이기 때문입니다. 못난 소나무도 함께 모이면 울창한 숲이 됩니다. 서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못난 소나무가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오랫동안 은사님과의 연을 이어가는 모습에 정이느껴집니다.
학교에 계시는 우리 후배님들이 잘 께우쳐야 할텐데요!
요즘은 교수님이 학생님들을 떠받치고 있는것 같아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