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2년 올림픽이 어디서 열렸는지 기억하시는가?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였다. 나는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거의 잊었지만 두 가지 사실만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하나는 황영조가 마라톤 우승을 차지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막식 축하행사로 스페인이 자랑하는 세계적 성악가들이 올림픽 스타디움에 모여 갈라 콘서트를 벌였다는 것이다.
올림픽 개막식에 거창한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는 콘서트라니 스페인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당시 맏형 격인 알프레도 크라우스는 몇 가지 이유로 본 공연에 빠졌지만 호세 카레라스, 플라시도 도밍고, 쟈코모 아라갈, 후앙 폰스, 몽세라 카바예와 더불어 메조소프라노 테레사 베르간자가 무대에 등장하는 것을 보고 나는 =베르간자가 아직도 노래해?=하는 놀라움과 반가움을 감출 수 없었다. 베르간자는 한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가수 중의 하나였는데 1977년 <카르멘>를 노래한 이후에는 쇠퇴기에 들어가 거의 활동을 접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서울에만 틀어박힌 바람에 유럽 무대 동향에 밝지 못했던 나의 착각일 뿐이었다. 베르간자는 꾸준히 연주활동을 계속하고 있었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미렐라 프레니와 동갑내기이니 올림픽 당시에는 겨우 57세에 불과(?)했던 셈이다.
테레사 베르간자는 1935년 스페인 마드리드 태생이다. 메조소프라노로서 스페인 출신이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오페라 공연사를 통해서 스페인의 메조소프라노가 맹활약한 전통이 있고 특히 20세기 전반기 최고의 메조소프라노로 불렸던 콘치타 수페르비아(Conchita Supervia, 1895~1936)도 스페인 출신이기 때문이다. 수페르비아는 로시니의 <알제리의 이탈리아인>, <신데렐라>, <세빌랴의 이발사> 같은 작품에서 특출한 개성을 발휘했고 마스네, 토마스 등의 프랑스 서정 오페라도 잘 불렀으며 그녀의 마지막 커리어를 <카르멘>으로 불태웠다. 그런데 베르간자의 경우 수페르비아와 목소리의 개성은 다르지만 레퍼토리 영역은 거의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스페인 음악계의 입장에서는 늦은 결혼과 그에 따른 산욕(産褥)으로 41세의 한창 나이에 요절한 콘치타 수페르비아의 비극에 대한 안타까움을 베르간자로부터 보상받고 싶었을 것이다.
모차르트와 로시니의 히로인으로 성장하다
테레사 베르간자의 처음이자 영원한 스승은 엘리자베트 슈만의 제자였던 롤라 로드리게스 데 아라곤이다. 베르간자는 마드리드 음악원에서 만난 이 스승과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와 선생님과의 유대는 어머니와 딸의 그것보다 더욱 강하고 깊습니다. 믿지 못하시겠지만 선생님은 저에 대해서 제 어머니보다도 많이 알고 계시거든요. 그녀는 아무도 모르는 저의 예술적 측면, 즉 어둡고 내면적이며 불가사의한 부분까지 모두 꿰뚫고 계신답니다.=
놀랍게도 베르간자는 10대에 만난 이 스승에게 세계 최고의 명가수 반열에 오른 다음에도 계속 레슨을 받았다. =저는 지금까지 모든 배역과 노래를 선생님과 함께 공부했고 아직도 그렇게 합니다. 목소리에 문제가 생겼다든지 할 때 선생님은 한결같이 해결책을 주시지요.=
훌륭한 메조소프라노라면 콘트랄토부터 소프라노의 음역을 거의 커버해야하기 때문에 가장 문제시되는 것은 저음역 - 중음역 - 고음역에서 어떤 음빛깔을 유지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당연히 두 가지 답이 있다. 음역별로 음색을 달리 가져가거나 아니면 균일한 음색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롤라 로즈리게스는 베르간자가 밝은 색조로 균일하게 가져갈 것을 원했다. 케루비노의 아리아 =사랑의 괴로움 그대는 아는가=를 비롯하여 모차르트의 노래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레지스터에 관계없이 일정한 톤을 지니도록 연습시킨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얻어진 베르간자의 성질(聲質)은 리릭 메조소프라노라고 분류되는데 세상의 어떤 메조소프라노와도 비견할 수 없을 만큼 어느 음역대에서나 환하게 빛나는 발군의 개성을 갖추었다. 스승은 또 다른 미덕도 가르쳤다. 오페라를 공부할 때 자신의 노래만 연습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른 파트의 음악까지 완전히 이해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래서 베르간자는 성악뿐 아니라 피아노, 오르간, 작곡, 지휘까지도 욕심을 내어 공부했으며 그 결과 언제나 오페라 스코어와 텍스트를 철저히 분석하고 그 전체 구도를 이해하면서 연주하는 습관을 지니게 된다. 베르간자와 더불어 작업했거나 그녀를 인터뷰한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베르간자를 철두철미한 예술가로 평하며 그 정확한 악보 읽기와 음악적 판단력, 가사의 해석에 찬탄을 금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베르간자는 21세가 되던 1956년 슈만의 연가곡 <여인의 사랑과 생애>로 데뷔했다. 오페라 가수로는 이듬해 프랑스의 악상-프로방스 페스티벌에서 데뷔했는데 처음에는 예상대로 모차르트 가수로서 케루비노나 도라벨라를 잘 부른다는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에게 어울리는 모차르트 배역이라고 해야 위 두 역외에는 체를리나 정도에 불과했으므로 곧 로시니의 오페라로 시선을 돌려 진정한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세빌랴의 이발사>의 로지나, <라 체네렌톨라>의 안젤리나,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의 이사벨라야말로 테레사 베르간자를 상징하는 =로시니 3대 히로인=으로 손꼽힐 수 있을 것이다. 베르간자는 로시니의 오페라 중에서도 세리아에는 손을 대지 않고 오로지 부파만으로 승부하여 세계 최고의 메조 소프라노라는 명성을 얻었다. 로지나 또는 이사벨라같이 재치와 기지로 번득이는 적극적 여성상을 그려내는데 베르간자만한 가수는 결코 없었다. 더욱이 베르간자의 목소리는 밝고 테크닉이 정확하며 로시니가 요구한 아무리 어려운 콜로라추라라도 메조소프라노답지 않은 시원한 고음으로 통렬하게 부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줄리에타 시미오나토(Giulietta Simionato)의 아성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테레사 베르간자가 로시니 히로인으로 맹활약한 시기의 최대 라이벌로는 미국의 마릴린 혼(Marilyn Horne, 1934~)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혼은 베르간자와 반대로 콘트랄토에 가까운 부드러운 음색을 지녔으며 비음이 많이 섞인 낙천성과 아메리칸 스타일의 친근감으로 인기를 얻었다. 나는 베르간자 못지 않게 마릴린 혼을 사랑한다. 그러나 베르간자가 집중했던 세 편의 오페라 부파만큼은 마릴린 혼이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대신 혼은 인기 오페라에 집착하지 않고 더 많은 로시니 레퍼토리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하며 두 가수간의 우열을 가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카르멘과 더불어 바뀐 베르간자의 인생
테레사 베르간자는 언제나 작품을 면밀히 검토하여 자신의 소리에 어울리지 않는 배역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유명한 사례가 묵직한 메조 역으로 유명한 <돈 카를로>의 에볼리와 원래 콜로라추라 소프라노의 몫인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였다. =저주스런 미모여= 같이 강렬한 피날레를 지닌 에볼리의 노래라면 찬란한 음성을 자랑하는 베르간자로서도 충분히 도전할 만 했지만 테시투라(음표가 집중되는 음역대)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했고, 메조소프라노이면서도 워낙 고음에 강점을 지닌 베르간자가 불렀다면 굉장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을 것이 틀림없는 비올레타는 라 스칼라 극장의 구체적인 제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베르간자가 1957년에 직접 목격했던 마리아 칼라스의 감동적인 연기를 재현할 자신이 없다며 거절했다.
현재 가장 인기있는 메조소프라노인 체칠리아 바르톨리에게 <카르멘>을 부르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1970년대 당시의 베르간자도 그런 유혹을 수도 없이 받고 있었다. 처음엔 물론 망설였지만 40세를 넘기자 가벼운 부파를 벗어나 좀더 극적인 배역에 도전하고 싶어진 베르간자는 프랑스 오페라인 마스네의 <베르테르>를 성공적으로 소화한 것을 계기로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고 에딘버러 페스티벌의 감독 피터 다이아몬드의 요청을 받자 보다 구체적인 검토에 들어갔다.
일단 음악적으로는 도전할 만 하다고 싶었다. 악보상의 검토 결과는 물론 직접 세빌랴 지방을 여행하며 집시들을 만나 그들의 생활상을 탐구해 보니 집시들도 정당한 인격체라고 느꼈고 카르멘의 캐릭터 또한 타락한 여인상이 아니라 사랑의 자유를 갈구하는 분별력있고 영리한 여인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르멘의 자유로운 영혼과 분방한 남성 편력은 베르간자에게 정서적 갈등을 일으켰다. 무척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결혼한 후에도 남편을 하늘같이 여기며 그가 정해준 테두리 안에서만 오페라 가수의 생활을 영위하면서 자신의 뜻을 숨겨야했던 베르간자에게 카르멘의 캐릭터는 아무리 자기 식으로 해석해보았자 파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단 에딘버러에서의 작업이 시작되자 베르간자는 가식없고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카르멘에 점점 더 동화되어갔다. 1977년 8월, <카르멘>의 마지막 드레스 리허설을 노래하면서 베르간자는 자신이 완전히 카르멘이 되어버렸음을 느꼈다. 모든 의식과 사회적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기분이었다. 그러자 그 순간까지도 동행하면서 일일이 간섭하고 있던 남편에게 더 이상 결혼생활을 유지할 생각이 없다고 선언해 버렸다. 그리고는 끝내 남편에게 돌아가지 않고 3년간이나 자식들과 함께 호텔에서 생활하게 된다.
보수적인 사람에게는 베르간자의 행동 또한 너무 과격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 하지만 그녀는 =오랫동안 나는 바르톨로의 집에 갇혀 지낸 로지나같은 존재였어요. 하염없이 알마비바 백작을 기다렸던 모양입니다. 그런 내 인생을 카르멘이 해방시켜 준 것입니다.=고 말한다. (베르간자는 1986년 재혼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테레사 베르간자의 <카르멘>은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지휘로 음반화되었으며 카르멘을 매춘부에 가까운 집시가 아니라 자유롭고 영민한 여인으로 그려내어 큰 관심을 모았다. 이 연주를 듣고 있으면 마리아 칼라스나 레온타인 프라이스의 근육질적인 카르멘도, 빅토리아 데 로스앙헬레스의 교태로 가득한 카르멘도 아닌 베르간자만의 자유정신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카르멘>으로 자신의 영역을 이동하자 베르간자는 새장에 갇힌 로지나의 신세로 다시 돌아가기는 싫었던 모양이다. 나이를 먹었어도 거의 변하지 않은 리릭 메조소프라노의 소리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베르간자의 로시니나 모차르트는 그때부터 듣기 힘들어졌다. 녹음 기록을 보아도 로시니는 1972년이 마지막 레코딩이고 모차르트는 어린 시절의 습작을 실험적으로 레코딩한 <보아라, 바보 아가씨>를 제외하면 1974년이 마지막 음반이다. 베르간자가 쇠퇴기에 접어들어 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필자의 오해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1977년 이후의 베르간자는 당분간 <카르멘>을 계속 노래하면서 조국 스페인 음악에 천착한 것으로 생각된다. 오페라 레코딩을 보면 마누엘 드 파야의 단막 오페라 <덧없는 인생>, 스페인 민속 오페라인 자르수엘라 작곡가 마누엘 페넬라의 <삵쾡이>와 뒤늦게 주력한 프랑스 오페라로서 쟈크 오펜바흐의 <페리콜>, 줄 마스네의 <돈 키호테>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오페라 활동을 줄이면서 스페인 민속 노래의 비중을 늘린 것으로 보이고 그중 내가 소장한 음반도 몇 개 있다. 가장 최신 음반으로는 2000년쯤에 녹음된 것으로 보이는 =Alma de Espana=, 즉 =스페인의 무희=라는 것을 소개할 수 있겠다. 엔리케 그라나도스, 헤수스 구리디의 스페인 노래를 담은 것이다. 이 음반을 들어보면 환갑을 지난 베르간자가 아직도 비교적 맑은 음색을 유지하고 있으며 비브라토 또한 나이에 비하면 훨씬 덜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목부터 관리한다는 부지런한 정성 덕분인 듯. 그러나 한창 때에는 화려한 아질리타, 아무리 복잡한 콜로라투라 악구라도 기가 질리도록 정확하게 불러냈던 천하의 베르간자도 이제는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어졌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레사 베르간자의 음악회는 여전히 스페인과 프랑스 곳곳에서 인기리에 열리고 있다.
【참고】테레사 베르간자의 대표음반
로시니 <세빌랴의 이발사> DVD (DG 073 021-9)
리릭 메조소프라노라는 베르간자의 장점이 최고로 발휘된 것은 역시 로지나 역이다. 세 종류의 녹음이 모두 높은 수준을 들려주고 있는 만큼 그중 영상물을 추천한다. 헤르만 프라이의 피가로, 루이지 알바의 알마비바 백작 모두 최상급이며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예민한 지휘도 톱 레퍼런스로 꼽을만하다.
로시니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DECCA 417 828-2)
로지나와 가장 비슷한 캐릭터를 지닌 로시니 히로인이 이 오페라에 나오는 이사벨라인데, 남자가 여인을 구출하는 구출극의 전형과 달리 여인의 지혜로 탈출한다는 설정이라 더욱 유쾌하다. 루이지 알바, 페르난도 코레나와 공연하며 실비오 바르비조 지휘이다.
비제 <카르멘> (DG 419 636-2)
<카르멘>의 최고 명연으로 손꼽히는 음반. 베르간자가 가장 신뢰하는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를 맡았고 플라시도 도밍고, 셰릴 밀른즈, 일레아나 코트루바스의 황금 케스팅이다. 그러나 거칠고 육감적인 카르멘이 아니고 베르간자다운 깔끔하고 영민한 카르멘이므로 호불호(好不好)가 크게 엇갈릴 수 있을 듯.
스페인 노래집 (DG 435 848-2)
바로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스페인 작곡가의 주요 노래를 2장에 집대성한 것으로 1970년대 녹음이다. 남편이었던 펠릭스 라비야가 피아노 반주를 맡았지만 이보다 더 많은 노래는 나르시소 예페스의 기타 반주로 노래한다. 스페인 음악 이해를 위해서는 필청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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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유형종 (객석 2002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