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송씨(鎭川宋氏)
우리나라 송씨의 선대는 중국 당나라 사람 송주은(宋柱殷)이다. 그의 후손 송자영의 세 아들 대에서 3개의 본관으로 갈린다. 첫째 ▲송유익의 후손은 여산송씨, 둘째 ▲송천익의 후손은 은진송씨, 세째 ▲송문익의 후손은 서산송씨가 된다. 송씨는 이들 본관을 합쳐 모두 29개의 본관이 있다. 그 중에서 ▲여산송씨가 232,753명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 ▲은진송씨…208,816명 ▲진천송씨…29.049명 ▲야성송씨…18,341명 ▲연안송씨…12,149명 ▲신평송씨…11,185명 ▲남양송씨…10,183명 순이다. 서산송씨 2,713명 등 나머지 본관은 몇 천 명에 불과하다. 한편 진천, 신평, 야성은 각각 여산, 은진, 진천송씨에서 갈라졌다.
진천송씨의 시조는 송주은의 7대손 송순공(宋舜恭)이다. 그러나 계대가 불명하여 고려 때 평장사를 지낸 송인(宋仁)을 1세조로 한다. 1125년 충북 진천군 덕산면 두촌리에서 출생한 송인이 진천백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진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송인의 아들 송원겸이 고려 때 평장사에 올랐으며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한 송언기는 송원겸의 손자로 감찰어사를 지냈으며, 송언기의 아우 송언상은 대장군을 지냈다.
송국첨은 1231년(고종 18년) 몽고의 살리타이가 대군을 이끌고 침입했을 때 감찰어사로 화의를 청했다. 최우의 정방(政房)에 들어갔으나 아부하지 않는 성격 때문에 정방을 떠난다.
경기도 이천군 호법면 송갈리, 강원도 춘성군 신동면 사암리, 춘천시 사북면 지촌리, 경북 안동군 임하면 송천동, 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익산시 왕궁면 일원이 집성촌이다.
2000년 현재 29,049명이 있다. 주요파는 ▲전서공파 ▲낭장공파 ▲안성공파 ▲송정공파 ▲참의공파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