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수필작가
김용옥
중앙대학교 영어영문과 졸업․1980년 『전북문학』에 「서로가 서로를 원하는 이유는」 발표로 작품활동 시작․『시문학』 추천완료․제10회 노령봉사상 문화장, 제8회 전북문학상, 제1회 박태진 문학상, 제9회 전주 풍남문학상 본상, 제3회 녹색 신인상, 제14회 백양촌 문학상 수상, 2000년 전주시 문화예술 창작지원금 선정 도서, 수필집 『生놀이』, 『틈』, 『아무것도 아닌 것들』. 시집 『서로가 서로를 원하는 이유는』, 『세상엔 용서해야 할 것이 많다』. 시선집 『그리운 상처』
│대표 작품│
눈 쌓인 벌판에 혼자서 서라 외4편
눈 쌓인 벌판에, 백지와 대면하듯이 혼자서 서라. 막막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아무 말도 못하다 보니 할말도 없는, 백지가 되라.
천지간에 어스름이 고양이 발걸음같이 깔리더니 눈이 내린다. 함박눈이 적막하게 소복소복 쌓이는 것도 아니고 싸락눈이 싸르락싸르락 소곤대는 것도 아니다. 구물구물 밤벌레 같은 눈이 시름없이 기어 내려온다. 강풍이 시샘하지 않으니 아장아장 하강한다. 하염없이 내린다.
백설아,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마음의 갈피에 꽂아 둔 누구인가, 그 사람에게 말 걸고 싶다. 설원의 새끼짐승처럼 겅중겅중 눈 속을 헤매고 싶다. 눈밭에 개 뛰듯 뛰고 싶다.
아뿔싸.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서서 뭣, 뭣, 뭣을 하고 싶다고? ‘하고 싶다’는 일종의 허영. 삶의 포장지에 불과하다. 포장지를 찢어야 알맹이가 나온다. 어서 저 문을 열고 한 발자국 내딛어야 한다. 일상 탈출에 주눅든 소시민 근성을 접어 두고 늙은 몸의 겁도 접어 두고 하루쯤 빈둥거리자. 생애만큼 촘촘히 쌓인 티끌을 털어 눈발로 날리자. 소나무에 설화로 피어나자.
생애에 몇 번쯤이나 이런 폭설을 만나랴. 걸어서 걸어서 눈 쌓이는 도시를 빠져 나가자. 허허벌판 김제 땅에는 백설이 첩첩이 쌓여 하늘도 대지도 희디희었다. 막무가내로 백설군단을 하강시키는 하늘의 설해전술. 눈발이 하늘을 지우고 산을 지우고 벌판을 지운다. 신과 인간의 천지창조에 지우개질을 한다. 희디흰 모조지 세상에 아련히 지워지다 만 전신주 실금이 보인다. 저기 저 눈 쏟아지는 하늘에 빗금을 그으며 날아가는, 검은 듯 허이연 까마귀의 무리를 보아라. 까마귀야, 내 마음도 실어 가렴. 백설아, 사는 데 토라진 내 마음을 지워 주어라. 잘못 색칠한 내 청춘도 지워 주어라. 하이얀 물감을 풀어 내 인생에 덧칠할 수 있다면 참 괜찮으련만.
검정 외투에 초록색 카츄샤 스카프를 쓰고서 바벨탑 같은 서울의 빌딩 사이로 내리는 백설을 마중하던 그 시절, 그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면사포처럼 받아 쓰던 백설을 잃어버린 후, 깡시리던 카츄샤의 유형의 길처럼 막막하고 비참했던 길, 길, 길. 모든 여자의 운명 같은 카츄샤의 길 위에 눈이 덮인다. 움푹움푹 빼툴빼툴 그어진 과거의 길 위에 눈이 내린다.
백설의 벌판에 홀로 서라. 세계의 낯선 곳에서 길을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된다. 길인 듯 길이 아닌 곳에 선, 잘 아는데도 뚫고 갈 방향을 찾지 못하고 뱅뱅이질 하는 그 두려움과 낯설음. 사실은 내 삶이 혹은 우리의 삶이 그렇게 진행되어 온 것이다. 겁나는 세상, 늘 낯설은 사람들.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살고 싶어한 게 아니라, 세상이 나에게 이렇게 살 수밖에 없게 했다.
지상에 눈이 두터워지면 더 이상 먹이를 찾을 수 없는 노루 한 마리. 드문드문 저녁연기 피워 올리는 인가가 있는 들판으로 겁먹은 채 내려오는 노루 한 마리. 허기지고 지쳐 아니 오직 목숨줄인 먹이를 위해, 살고 싶어, 죽음을 겁내면서 막막하게 설원을 걸어온 노루 한 마리. 그 노루가 나였다.
먹장 같은 죽음의 커다란 아가리가 나를 덥썩 삼킬까 봐 염불처럼 외워댔다. 살고 싶어, 살아야 해, 살아 남아야 해.
인생의 맛은 참 지랄 같았다. 달콤새콤하거나 다달보드레한 어린 시절은 잠깐, 헛물켜게 들쩍지근하거나 시큼떨떠름해졌지. 지금에야 물론 무맛의 신선함과 담백함을 알 만하지만 인생은 아직도 타분하거나 짐짐하다. 솜사탕처럼 눈을 한 움큼 퍼서 먹는다. 개운하고 시원하다. 한 움큼 퍼서 머리 위로 던진다. 면사포가 아니라 하이얀 고풀이 띠다. 활개치며 눈사진도 찍고 얼굴을 깊이 눈 속에 묻어 마스크도 찍어낸다. 그 위로 눈발이 쌓여 희미해진다. 그렇게 나는 사라져 갈 것이다 흔적도 없이. 그래도 나는 포근하다. 눈밭에 서서. 꼭꼭 처닫은 마음을 열어 주니까. 가벼워지니까. 작아지니까. 비워지니까.
설경에는 아름다운 시학(詩學), 깊은 미학(美學)이 있다.
오늘 내내 내려온 눈발의 숫자는 우주자연이 갖고 노는 공깃돌 몇 개에 지나지 않을 터. 무한한 수의 눈알갱이가 오직 한 덩어리 하양으로 일원화한다. 설경은 신묘하고 신비하다.
편리한 만큼 지저분하고 탐욕스런 세상 것과 작은 새만큼도 삶을 수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따돌리고, 텅 텅 하얗게 빈 벌판에 의연히 눈 뒤집어쓰고 서 있는 나무들. 등이 휜 황토집. 크리스마스 카드의 교회처럼 뾰족지붕을 높이 올린 둔덕 위의 시골 교회. 알몸처럼 부드럽고 섹시하게 곡선을 드러내고 누워 있는 풍만한 언덕바지. 그 적적한 풍경에도 어떤 사람들의 과거와 미래가 서려 있다.
과거. 이미 죽어 버린 아니 묻어 버린 과거의 현실이 꼼지락거린다. 말짱히 잊혀지지 않는, 아주 사소하지만 질풍이나 벽력같이 나를 할퀴고 간 과거. 그 중 몇 가지는 억누르기 힘든 회한과 향수를 몰고 온다. 그때, 그 일, 그 사람에게 충분히 마음을 쏟지 못했다는 자괴 때문이다. 어찌할 수 없는 과거는 저 설원처럼 묻어 두자. 과거로 인하여 내일을 낭비해선 안 된다.
천지가 하얗다. 하양 속으로 길을 뚫고 청하산 청운사를 찾아간다. 꼭꼭 숨어 버린 청운사. 저수지인지 논바닥인지 그 사잇길인지 분간할 수 없는 길. 영원히 멎지 않을 것 같던 통증의 시절이 가버린 것마냥 표백된 대지에 새 발자욱을 찍으며 길을 내듯이, 사슴사슴 낯설게 간다. 스님께서 힘드시거나 말거나- 사실은 힘드시리란 생각조차 안 한 채 포로롱 하이얀 덤불숲으로 날아드는 쑥새를 보라고 탄성 지르니, 도원스님께서 백지같이 웃으신다. 온통 희구나.
희디흰 날개의 천사도 검은 망토의 악마도 더러운 이기심으로 가득 찬 어른의 동화일 뿐. 어머니의 자궁 밖 첫 세상을 만나던 아기 영혼은 백설이었을 것이다. 너무 쉽게 부서지는 백설이지만 매일, 거듭 태어나는 아기 영혼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청운사는 적요 그 자체였다.
눈 시리게 맑은 배추색 단청. 무릎까지 닿는 눈의 마당. 눈 무게에 낭차짐하게 휘어져 마치 법당을 향해 읍하는 듯한 대나무들. 이따금 진저리치듯 눈을 털어 면사포를 늘어뜨리는 빈 나뭇가지들. 어깨에 백설기 견장을 얹고 촉촉이 웃음띠는 미륵보살님. 간간이 박새소리, 직박구리소리, 까마귀가 줄지어 청하산을 서으로 넘어가는 소리가 떨어진다. 설야(雪野)에 눈이 자꾸 내린다. 눈이 자꾸 쌓인다. 침묵도 쌓인다.
이제, 과거라는 한 편의 영화 상영을 끝내야 한다. 수많은 조역들과 단역들의 이름이 줄줄이 끝자막으로 사라진다. 그렇다. 아무리 감동적인 영화의 끝일지라도 그 끝은 언제나 저 설원처럼 막막하게 하얗다. 끝이기도 하고 시작이기도 한 하이얀 스크린. 난 어느새 백지 영혼이 되는 듯하다.
“스님. 이제 저는 세상 속으로, 환속해야겠네요.”
눈물겹게 깨끗한 하양 속을 지금 떠나지 않으면, 다시는 세상 속에서 뒹굴고 싶지 않아질까 봐 겁났다. 미련 없는 세상, 덧정 없는 사람일지라도 그것들 속에서 나는 아직 닳아져야 하나니.
스님께서 앞장서서 눈을 쓸며 가신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나 ‘피터 팬‘이 타고 날던 마법의 빗자루를 들어 눈을 좌우로 쓸어 날린다. 그 뒤를 폴짝폴짝 내가 따라간다. 알량한 중생을 스님께서 보살핀다.
법당 토방에 올라 눈 아래 펼쳐진 모조지 세상을 본다. 신천지다. 하이얀 스크린에 새 영화 제목을 뭐라 쓸까.
스님의 오른손에 법장처럼 들려 있던 빗자루를 받아 온몸으로 쓴다. 눈밭에 큼직하게 새겨지는 법문 한마디.
사 랑 해
봉숭아 꽃물 드네
봉숭아꽃 붉게 피는 여름이 왔네. 잘 익은 김칫국물 빛깔의 홑봉숭아꽃. 정갈하고 다소곳한, 속내가 깊은 여인 같은, 아니 아니 속이 펑 뚫린 여인의 그리움 되어 피는 봉숭아꽃 꽃철이 왔네.
엄마 잃고 시름시름 야위어 가는 어린 계집애 봉선이. 엄마 냄새 그리워 엄마 냄새 행여 맡아질까 장독대로 새암가로 정지 뒤안 흙담 밑으로 해종일 서성이다가, 엄마 엄마 그리워 엄마 따라 죽었다네. 무덤도 없이 흙이 된 봉선이의 몸에서 꽃이 돋아났기에 봉선화라 했다네. 봉선이의 그리움 따라 장독대로 새암가로 울밑으로 꽃씨들이 달려갔다네.
봉숭아꽃의 꽃얘기가 새삼스레 마음에 아려드네.
어렸을 적, 초복이 지나간 여름밤 별 총총 돋아난 밤이면 별 헤며 평상에 누워 더위를 몰아냈지. 곳간채 곁에선 모깃불이 숭얼숭얼 피어 오르고, 언니들이 도란거리며 장독대 돌팍에다 봉숭아 꽃잎 으깨는 소리 들렸지. 뱀도 쫓는다는 백반가루. 하얗고, 혀끝에 닿기만 해도 신 침이 줄줄 흐르는 백반가루를 송송 뿌려 몽글게 짓찧은 봉숭아 꽃즙을 까슬한 호박잎에 덩그러니 담았지. 평상에 둘러앉아 제각기 손가락을 내밀면 두근두근 한 꿈이 자라나기 시작했지.
새끼손톱과 약지손톱에 으깨어진 봉숭아 꽃즙을 얹고 아주까리 잎으로 돌돌 싼 후, 외할머니 반짇고리에서 외할머니의 한숨처럼 길고 가느다란 명주실을 풀어내어 손가락 끝마디에 친친 감았지. 엄마는 보드랍고 긴 손톱 끝에 꿈을 달아매셨지.
고실고실한 삼베 홑이불에 물고기 같은 몸을 반듯이 뉘고 가슴에 두 손을 얌전히 포개면, 가슴에 먼저 꽃물이 들었지. 짧은 여름밤이니까 어서 깊은 잠 들어야 꽃물이 예쁘게 든다는데, 그 밤엔 잠이 쉬이 오질 않았지.
큰언니 처녀손으로, 저승꽃 다닥다닥 피어난 외할머니 손을 받쳐 잡고 새끼손톱에 봉숭아 물 심어 드릴 때 꿈결처럼 꿈결 같은 얘길 들었네. 얘야, 할머니 새기손톱의 봉숭아 꽃물은 꽃등불이란다. 언제 아주 먼 길 떠나실지 모르는 할머니의 저승길, 환히 불 밝혀 주는 꽃등이란다. 꽃등, 꽃등. 슬픈 듯 이쁜 듯한 꽃등이란 말을 나직하게 따라 중얼거리며 스르르 잠들곤 했지. 어린 꿈에도 꽃등 하나 밝혀 들고 하늘을 날았지. 유성처럼.
서른이 지나고 쉰이 다가드는 세월 동안, 딸아이 손톱 끝에 때에 맞춰 봉숭아 꽃물 들여 주면서 어린 날의 설렘도 어머니의 정한도, 외할머니의 저승길도 더욱 아름다워졌다네. 가장 짧은 복더위 속의 밤. 장마를 피하여 하늘 맑고 환한 날 밤에, 여자들끼리 두레지어 나누던 놀이. 참 이뻤네.
아련히 물든 봉숭아 꽃물. 처음엔 멍청하게 보이지만, 가을이 다가들수록 손톱에는 붉은 보름달이 떴다가 반달이었다가, 샐쭉 웃는 실눈 같은 초승달이 될 무렵이면 가을은 무장무장 깊어져 무서리 내리지. 물끄러미 손톱 끝의 초승달을 바라보면 눈물 아롱아롱 그리움과 이루지 못한 기다림이 거기 머물러 있네. 꿈이 바래지듯 꽃물이 줄어 가고, 그리움이 멀어지듯 꽃물이 야위어 가네.
그렇게 겨울이 다가왔다 가고 봄 신명이 지필 쯤이면, 건드리기만 해도 툭 터져 씨를 튕겨내는 씨주머니에서 튕겨 나간 봉숭아꽃 씨알들이 새 목숨 홀로 키워, 다시 달랑달랑 고개 숙인 채 꽃 피우네. 그러면 잃었던 전설을 다시 주워 들고, 땡볕을 이고서 그리움의 만월을 손톱 끝에 앉히네. 꽃등, 꽃등을 밝혀 드네. 여인의 한 생애 같은 그리움의 꽃등을, 기다림의 꽃등을 가장 많이 부리는 삭신 끝에 밝혀 드네.
세상이 변해도 버리고 싶지 않은 놀이, 결코 버릴 수 없는 그리움의 의식이네.
그리움이 봉숭아꽃 꽃물 든 손톱 끝에 머무네.
외사랑 직박구리
일상적 일과 만남 사이사이에 자투리 시간이 생긴다. 영화 한 편 감상할 시간도 못 되고 전람회장을 둘러볼 시간도 못 되는 시간에 게으름의 산책을, 명상의 소요를 한다. 전주천변 둔치나 다가산, 경기전, 덕지연지, 완산칠봉자락 등등 오라는 곳은 쌔고 쌨다. 눈을 맞추면 벗이요 귀를 기울이면 법문이요 마음을 마저 부리면 일심동체가 되는 자연 속에 서는 것이다.
햇살도 나른히 풀어지는 한봄의 오후. 신록의 풋풋한 향내 가득한 경기전에 서성서성이며 머릿속을 맘속을 헹굴 때였다. 도망자와 추적자의 사투를 목격했다.
도망자는 청설모 두 마리, 추적자는 직박구리 일곱 마리였다. 생생한 자연화면을 보라.
청설모 두 마리가 비자나무, 은행나무, 매화나무, 사철나무 사이를 날 듯이 건너뛰며 겨울바람처럼 민첩하게 나뭇잎들을 뒤흔들었다. 섬세하게 털이 곤두선 꼬리를 우아하게 치켜 들고서 앞발을 얼굴 앞에 모아 쥔 채, 나뭇가지 사이로 눈망울을 굴리며 아양을 떨던 청설모가 아니다, 저건. 청설모는 직박구리들에게 집단적으로 집중공격을 받고 있는 중이다. 승자는 누구일까? 투쟁은 왜 하나?
침엽수를 좋아하는 직박구리가 적송의 높은 가지에 밥그릇 모양의 둥지를 지어 신방을 차린 후 그 곳에 갓 깬 새끼들을 거두고 있는 중이다. 어미의 보호본능이 가장 강한 때다. 그런데 먹성이 잡식성인 청설모란 녀석이 춘궁에 정력제가 필요했는지 직박구리의 새끼들을 노린 것이다. 갓난아이의 강그라지는 울음처럼 새끼새들이 삐이용 삐이용 울어대자 어미새가 삐욧 삣삣 삐욧 삣삣 금속성 소리로 악을 썼고 금방 예닐곱 마리 직박구리가 날아들었다. 그리곤 쫓고 쫓기는, 쪼고 쪼이는 사생결단의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청설모가 휘익 날아서 비자나무로 숨어들었지만, 직박구리는 본디 침엽수를 좋아하는지라 싸움터로는 유리하다. 팔방에서 내리꽂듯이 쪼아댄다. 청설모는 칙칙해 보이는 사철나무의 탱탱한 잎들 속으로 도망쳤지만 자식의 목숨을 공격당한 어미새의 눈은 희번덕, 눈썹이 곤두선 채 찌이익 찌익 분노의 으름장을 쉴새없이 질러댄다.
청설모는 분별을 잃었는지 제 몸이 훤히 드러나는 곳으로 이동했다. 아름드리 은행나무의 몸통을 타고 S자를 그리며 두 녀석이 산발적으로 또는 허둥지둥 오르락내리락거렸다. 높은 데 나는 명수인 직박구리들이 무차별 공격을 퍼붓는다. 청설모가 수없이 쪼인다. 오, 진짜 사생결단이다. 내 등줄기에 냉기 한 줄이 지나간다. 무섭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녀석들의 생(生)놀이를 바라보다가, 생존이라는 게 얼마나 치열하고 지독한 것인가 느껴지자 소름이 돋는다. 저러한 법칙이 그대로 인간사에 적용되지 않는가.
흔히 새에 대한 기억이나 인식은 평화롭고 이상적이다. 노래 같은 지저귐, 아름답고 다양한 날개와 날갯짓, 그들의 정적과 비밀은 사람들로 하여금 환상을 갖게 한다.
그러나 보라. 새들에게 쪼아먹히는 생생한 목숨의 벌레의 꿈틀거림, 작은 물고기의 몸부림을. 식물들의 새 아기인 열매를 날카로운 부리로 콕콕 쪼는 모습을. 무서운 속력으로 날아내려 평화로이 물질하는 오리를 갈퀴발톱으로 채 가는 맹조를. 생존이란, 생존을 위한 싸움은 이토록 잔인하고 혹독하다. 하나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약육강식은 죄악이나 자연에선 생명법일 뿐이므로, 서로 공존공생한다.
사람들 곁에 까치나 참새보다 흔하게 돌아다니는 새 직박구리. 나무나 공중에서만 살면서 공중곡예를 보여 주는, 눈이 매섭게 번쩍이는 후루룩빗죽새. 늘씬하고 날렵한 새다.
순간적으로 날개를 폈다 오므리며 날쌔게 상하좌우로 회전하는 직박구리가, 익은 봄날 하늘을 앞서거니뒤서거니 노니는 모습은 다정한 연인 같다. 짝을 부를 때는 한가롭고 부드러이 예이에 예이에 소리 한다. 빨간색을 좋아하는 녀석이 농창 익은 물앵두나 버찌, 피라켄사스 열매를 부리에 물고, 과즙물을 또록 또로록 흘리며 웃는다. 삐유르르 비요 궁근 소리로 노래한다. 어여쁘게 눈웃음치는 새 직박구리. 사람만이 웃음을 창조한 생명체란 말은 말짱 거짓말이다.
고창 선운사로 동백꽃 만나러 가서는 직박구리 귀여운 표정을 덤으로 만났다. 추사(秋史)가 휘호한 백파율사의 비석 귀꽃에 앉아 반기는가 하더니, 저를 귀애하는 줄을 아는 양 재롱을 떤다.
선운사 경내 뒤울안 숲에 청춘보다 붉고 첫사랑보다 고운 동백꽃 동백꽃 동백꽃을, 잃어버린 청춘 잃어버린 첫사랑인 양 말끄러미 바라본다. 동백꽃과 추억의 시선 새로 직박구리 한 쌍이 동적 물체로 끼여든다.
둘이서 빨간 꽃잎 속에 머리를 들이밀고 술래놀이 하나 싶어지는데, 꽃술 빨아먹고 고개 들어 청산 청천을 치어다보는데, 어라, 검은 부리와 또랑또랑한 눈망울을 가린 눈썹에 온통 노랑 꽃가루 분장되어 있다! 그런 줄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삐요르르 삐요르 경쾌하게 목울대를 떨고 있다. 그럼. 맛있는 것을 먹는 게 얼마나 즐거운데. 귀여운 것!
이렇게, 기쁘면 기뻐하고 분하면 성낼 줄 안다, 여린 새들도. 저 빨강의 이나무 열매를 날면서 따먹고, 높은 가지의 가을꽃인 홍시를 쪼는 직박구리처럼 살면 병 없이 살 수 있게 될까. 사람은 최선을 다해서 산다고 잘난 체를 하지만, 저 새들은 그 삶 자체가 그냥 최선이다.
직박구리는 시도 때도 없이 내 주위를 맴돈다. 아니, 알고 지내는 사이라서 눈에 잘 띄게 되는 거다. 친구처럼.
연엽이 쑤욱 호수면에 오를 때 덕진연지에서였다. 울타리 위 전깃줄에서 직박구리 두 녀석이 애끓는 몸짓과 소리로 소란을 떤다. 잣솔나무 가지 사이 둥지에 고물고물 새끼들이 노란 부리를 쫑긋거리고 있다. 사방을 둘러보다가 이내 어미새의 말을 이해한다.
“아주머니. 저 새들 소리, 들리시죠? 새끼에게 먹이를 먹이러 들랑거려야 되는데 사람들 때문에 놀랐나 봐요. 자리를 다른 데로 멀찌감치 옮겨 주실래요? 부탁합니다.”
그 쪽 부근 철쭉숲에는 방울새의 요람도 있기에-나는 알지요.-나는 아주 나긋하고 죄스러운 목소리로 사정을 했다.
새끼를 거두고 보호하는 어미새의 본능적인 사랑, 본능적인 힘을 보며 자식 앞에선 전지전능이 되어야 하는 어머니란 이름을 생각한다.
자식을 위해 나를, 내 젊음과 사랑과 날개를 포기할 수 있던 용기는 모성본능 덕이었을까? 홀로, 어린 자식을, 이 설움 저 설움 쓴 내 나게 삼키며 기른 것은 내 인격이 훌륭해서가 아니다. 위대한 덕성인 모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모성이여! 모성은 자비며 인내며 용서며, 지상에서 가장 찬란하면서도 빛이 없는 외사랑이다.
직박구리가 말한다. 사는 것 자체가 최선이라고.
장국영 별곡(別曲)
울컥, 가만 조약돌 같은 슬픔이 솟구치더니 목울대에 걸린다. 눈시울에 물기가 고인다.
전깃줄에 촘촘히 앉아 있던 비둘기들이 포르르 포르르 전주천 시냇물가로 날아 내리는 순간, 느닷없이 그의 죽음이 함께 보였다. 죽음을 실현하는 그 순간, 그는 새처럼 날았을까? 블랙홀로 빨려들어 갈 것을 믿었을까? 그 순간 최상의 엑스터시를 느꼈을까? 살아 있던 그 모든 현재보다 행복할까, 죽음은?
그와 얘기하고 싶다. 꼬치꼬치 캐묻고 싶은 게 아니라 그가 아무거나 마구 지껄여댈 수 있도록 이야기의 실마리를 끌러 주고 싶다. 켜켜이, 마디마디에 쟁여 바윗덩이가 되었을 그의 속내를 드러내 준다면 고독하다 못해 무표정한, 밤의 호수 같은 눈빛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그는, 갔다, 그런 눈빛인 채로, 그 눈빛을 남기고, 아주 갔다. 2003년 4월 1일 만우절에 하얀 거짓말같이.
그는 20여 년간 아시아의 최고 스타였던 장국영(張國榮). 그의 성장과정, 무명시절, 그의 음악과 영화들, 그의 동성애와 예술 중독성, 그의 허무적인 꽃미남 얼굴과 고독까지 이해하고 사랑했는데. 이 말은, 그에 관한 한 어떤 사회적 편견에 서서 비판 비난한 적이 없다는 의미다. 나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사랑하고 일하며 살아간다 해도 그건 그 사람의 생존방식이므로. 오히려 그나 나처럼 살지 않으며 내가 살고 싶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그 점이 그를 이해한 이유인지도 모른다.
그는 겉보기에 화려한 상류층 가정에서 성장한, 속 빈 강정이었다. 그가 과거형 인물이라니! 어린이에겐 세상을 향한 창槍이며 방패(防牌)인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는 대신 병약한 외조모의 훈김을 얻어먹어야 했다. 그가, “가장 위대한 여성이다”고 칭찬한 유모 품에서 성장하면서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과 심약함이 그의 내면에 싹텄을 것이며 그의 비운(悲運)은 자라기 시작했을 것이다.
1980년대 후반. 오랜 무명시절을 벗고 홍콩 차트에 오른 그의 노래 ‘바람아 계속 불어라’를 광동어로 흥얼거리던 딸애를 통해 알게 된 그의 목소리. 멍든 내 혼을 어루만져 주는 듯한 그 목소리를 들으면 물기가 축축이 내 몸을 돌았지. 그의 얼굴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처럼, 절대로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조상(彫像) 같았지. 그 후로 콘서트 비디오랑 영화들, 그에 관한 가십과 기사들을 보고 들었다. 절반은 슬픔에 젖어 절반은 매료되어서.
그는 조용하고 파격적이며 과감한 이벤트로 세상과 자신을 동시에 위장했다. 그래서 그의 철저한 고독이 늘 슬펐다.
1989년, 검은 망토를 걸치고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던 그에게서 공허의 냄새를 들이마시고, 아름답고 화려한 경극영화 ‘패왕별희’에서 외롭고 고통스럽다 못해 비장미가 묻어 있는 그의 연기에 홀딱 빠져 버렸다. 삶의 대리발현이었을 것이다. 살고 싶지 않을수록 더 강렬히 살아 있는 몸짓. 타인의 배역 속에 자기를 구겨 넣는 하무. ‘아비정전(阿飛正傳)’의 주인공 ‘아비’를 연기한 그는 실토했다. “고독과 정체성의 혼돈으로 휘청거리는 아비는 곧 나 자신”이라고. 타인은 타인의 아픔과 고독을 절대로 대신 앓아 줄 수 없는데! 그는 나에게 늘 슬픈 존재였다. 그러기에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노래와 연기로 타인을 살아내면서 자기 자신을 꽁꽁 포박하여 한 뼘도 안 되는 가슴 깊이 가둔 채, 오직 그 내면의 감옥에서 탈옥할 때를 무작정 기다리는 무기수 같은 그. 그의 몽상가 같은, 투명하고 무심한 안면과 흑청빛 눈은 불확실성과 절망으로 비틀거리는 나에겐 일체감이고 외사랑이었다. 공허하고 유리구슬 같은 그의 눈, 대상을 넘어 무한을 넘어 블랙홀 혹은 죽음을 보고 있는 듯한 그의 눈은 내게, 늘 표현하지 못할 눈물 한 방울이 되곤 했다.
그는 어떤 자아 이상을 세우고 있었을까? 절망과 죄의식의 뿌리를 심고 있을까? 아니, 아니. 공(空)과 허(虛)의 바오밥나무가 그의 가슴별에 꽉차게 그늘을 지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어떤 인간에게서도 어떤 삶에서도 구할 수 없겠지. 다만 죽음에의 유혹뿐…… 죽음은 그리운 세계…….
그는 아름다운 동성애자였다. 어머니에게서 습득하지 못한 사랑이 여성을 사랑하기 어렵게 했을 것이다. 지나치게 외롭고 불안한 무명생활을 하며, 성인인 그가 어찌 프로메테우스적 약속을 바라지 않을 수 있으랴. 기술문명과 도시 빌딩숲에서 쫓기듯 바삐 생활하는 현대인은 외로워서 성욕에 빠진다. 성(性)은 한 순간일지라도 긴장과 불안에서 사람을 해방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선택한 성(性)의 대상은 동성(同性)이고 그의 사랑은 그렇게 길들어 갔을 것이다. 동성애도 분명 사랑일진대, 흔히 사랑의 유효기간이라는 3년 고개를 20여 년 간이나 넘고 넘으면서 오직 탕허더(당학덕)에게 순애보를 지킨 그. 한편으로 그는 그런 자신과 삶에 적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그런 삶과의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증오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드러난 자기와 진정한 내면의 자기가 조용히 마주앉아 대화할 시간을 마련치 못했을 것이다. 사랑이란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죠?’라는 물음이며 ‘사랑한다’는 동사일 때 완성된다. 사랑이란 잘하면 인생의 보약이지만 잘못하면 독약이 되지 않는가. 그는 그런 대화를 나눌 사람을, 최소한 자신과의 대화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오래 전부터 자기의 말을 잃었으니까. 세상에 대한 자기의 말이 끊기면 세상 사람도 끝인 것을. 수많은 남의 삶을 살아 보느라 그 자신은 외로이 텅 비어 가고 있었을 것이다. 세상에, 이토록 쓸쓸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가 죽어서 나는 문득문득 슬프다. 바람도 없는데, 정월 햇빛 속에서 하르르 떨어져 내리는 매화 꽃잎을 보면서 그의 죽음이 겹친다. 고요히 슬퍼진다.
표정 없는, 밤의 호수 같은 눈빛에 담긴 처연함. 어린아이 같은 입술의 미소. 퉁 손가락으로 건드린 현(絃)처럼 울림과 떨림이 낮은 목소리. 얄미운 세상을 향해 슬픈 농담을 던지는 것 같은 ‘과월 콘서트’와 영화 ‘춘광사설’에서의 황폐한 눈빛. 내 넋마저 뺏어 간 빨강 하이힐에 올라선 몸에서 슬픔이 가물진 인어마냥 낭창거리던 육체. 영화 ‘패왕별희’의 청디에이[程蝶衣]와 일심동체가 되어 드러낸 비장미의 외로움과 고뇌. 어느 모습 하나 슬프지 않은 게 없다. 빛나는 자의식과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으나 슬픔과 허무의 덩어리였던 장국영.
나보다 나이가 10년이나 젊고 얼굴은 20년이나 젊고, 아마 영혼은 영영 젊었을 그, 장국영은 아주 예술적, 영화적인 죽음을 스스로 선택했다. “자살은 전 인생을 사로잡는 하나의 예술이 된다”고 철학자 질 들뢰즈가 간파했는데 그의 자살은 오직 그의 시나리오, 그의 연출, 그의 연기(演技)로(처음으로 완벽한 자기의 표출인지도 모른다.) 예술이 되었을까?
그는 죽음의 유혹에 공포를 느끼며 끊임없이 괴로워했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자기가 살 수밖에 없고 살아야만 하는 삶을 벗어 버리고 싶었을까? 고소공포증의 그가, 홍콩 만다린어리엔털 호텔 24층의 창턱에서 날개도 없이, 날으는 새처럼 두 발을 떼는 순간 이렇게 말했을까?
‘죽음아. 그립고도 두려웠던 죽음아. 이제야 우리 둘이 만나 하나가 되겠구나’라고? 그의 겨드랑이에서 깃털 하나 돋지 않았지만 그는 새의 날개마냥 두 팔을 부드러이 들어 날갯짓했을 것만 같다.
그를 생각한다. 그의 노래구절을 생각한다.
往事不要再提 지나간 일은 다시 생각하지 말아요
人生已多風雨 인생은 험난한 일이 많지요
縱然記憶抹不去 결국 기억하지 못할 거예요
愛鄧恨都還在心裡 사랑과 증오는 모두 마음속에 있을 뿐
眞的要斷了過去 정말로 과거를 끊어 버리고 싶어요
讓明天好好旣續 내일은 편안하게 지내고 싶어요
―「패왕별희」 주제곡 ‘當愛已成往事’
그는 비로소 영원에 안착했다. 다시는 날 수 없는 새가 되었다.
슬픈 일이지만, 그를 생각할 수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나의 절망과 슬픔과 허무를 울 수 있게 해 준 그가 쓸쓸히 그립다.
적막이여 안녕?
초추의 만월이 중천에 두렷하다. 사람들의 부대끼는 소리가 뚝 끊기고 인가의 불빛이 거의 소등될 시각. 생명 있는 것들이 고른 숨을 쉴 때다. 겹겹이 에둘러서 위용을 펴던 산들도 밤이 깊을수록 엎드린다. 저리 낮게, 웅크린 초식동물처럼 순하고 조그맣게 깃을 접은 산들을 위하여 귀뚜라미가 다독다독 노래부른다.
밤의 어둠 속에서, 어둠의 끝이 어디쯤일까, 어찌하면 어둠을 뚫을 수 있을까, 어둠을 생각한다. 동분서주 낄낄대며 낮의 소리들이 다아 건넌 후 어둠의 가운데에 동그마니 홀로 섰는 밤이 편안하다. 어둠이 한낮의 오욕칠정으로부터 차단해 주므로. 어둠은 늘 나를 나에게 돌아가게 한다.
들판 가득 밤안개가 피어 오르고 앞산과 뒷산이 포개어 눕는다. 아마 낮의 시련을 삭이느라고 대지가 저리 깊게 한숨을 토하는 것일까. 빛나야만 했던, 소란해야 했던 낮의 땅이 비로소 안식의 담배 한 개비 살라 품어 뱉는 것일까.
이 시간엔 아무것도 인위가 아니다. 멀리 보이는 불빛 몇 점도 그냥 부드럽고 따뜻하다. 아버지, 나를 바라보시던 눈빛 같다. 초목들이 낮은 소리로 간간이 흐느끼다 멎고, 밤벌레들이 이따금 현을 켠다. 제 숨소리조차 잦아드는 적막. 전신의 세포 하나 하나까지 귀를 열며 적막에 귀기울인다.
언제였을까, 맨 처음 적막을 느낀 것은. 아마 여남은 살 적 땡볕 여름날이었을 게다.
1958년 한여름. 지프차의 뒷자리에 앉아 차창에 코를 박고 매달려 황토 흙먼지 풀풀 날리는 굽이길을 꿈처럼 바라보며 변산해수욕장에 갔다. 백사장도 바다도 온통 아버지와 더불어 우리 것이었다.
낮잠에서 깨어난 오후, 아버지와 함께 바다 멀리로 둥둥 떠갔다. 남빛 수영복을 입고, 놋쇠 꼭지가 달린 타이어 튜브에 팔다리를 걸친 채 온통 파랑 속으로 끌려갔다. 망망한 바다였지만 두려움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아버지가 곁에 계셨으니까.
이따금 생각난 듯 팔다리를 내두르면서 내 마음은 하늘처럼 평화로웠다. 모래밭에 드문드문 점 찍어 놓은 듯 보이는 사람들과 조가비 같은 천막은 동화 속의 삽화였다. 삶의 실체가 꿈처럼 바라보이는 거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버지의 손길이 사라졌다는 걸 느꼈고 어디를 둘러보아도 아버진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망망대해에서 갑자기 혼자가 된 것이다.
“아빠아! 아빠!” 느닷없이 밀려드는 두려움으로 악을 쓰며 아버지를 불러댔다. 아버진 어디에도 없었다. 바닷가의 누구도 내 공포를 몰랐다. 아득한 수평선과 푸른 하늘이 도저히 뚫고 갈 수 없는 막막한 적들이 되어갔고, 동화 속 삽화 같던 어머니와 형제들도 그 공포에서 나를 구해 줄 지팡이가 될 수 없는 절망일 뿐이었다.
까마득한 해안 쪽을 향하여 소리쳐 울부짖던 발성이 점점 사그라들고 소리 없는 눈물이 흘렀다. 그 순간. 바로 적막이었다. 그리고 손끝 하나도 움직이지 못한 채 그 적막 안으로 빠져들었다. 하늘은 오직 고요하고 간간이 물결소리가 들렸고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관통하던 얼굴과 일상이 사라져 갔다. 모든 것을 잊어 갔고 어떤 알 수 없는 평강으로 인도되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살게 될 것인지 어쩐지 같은 생각은 이미 사라지고 말았을 때(그것이 포기인지, 완전한 절망인지는 지금도 잘 알 수 없다) 아버지는 불쑥 나타나셨다. 두 손에 적갈색의 커다란 생합을 쥐고서.
“막내야, 아빠다.”는 부름소리에 먼 곳에 나들이 갔던 정신이 돌아오듯 서서히 아버지를 확인하는 순간, 공포는 되살아났고 오래 오래 흑흑흑 울었다. 그 눈물은 또 다른 평안이었고 구원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구원이었다.
내 삶의 작은 실뿌리에까지 숨어 계신 아버지가 참 그립다.
살아가노라니 절망은 곳곳에 수렁을 파고 있었다. 그 수렁에서 허우적일 때마다 열 살 적의 바다를 떠올리곤 했다. 그때마다 목마르게 그리운 건 ‘막내야, 아빠다’ 하던 두 마디의 의미였다. 스스로 살아가야 하는 어른이 되어 빠진 절망에 ‘막내야, 아빠다’가 되는 것은 무엇이었던가.
살아갈수록 피 마르게 두려운 건 절망이 다가오는 일이었고, 그 절망을 이겨낼 힘이 없어서 절망에 아주 무너져 버리지 않을까 하는 거였다. 그것은 공포였다. 그 공포를 뚫으려고 피를 흘리며 신음했다. 그 여름날의 아버지는 어디에 계시는가.
우둔한 행자승이지만 마당쓸기 3년에 한 도(道)를 얻듯이, 절망에 허우적이면서 절망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웠다. 절망이 있거든 죽도록 절망하라. 그리하면 어느새 적막이 오고 무심(無心)에 이른다. 그때에 절망에서 일어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스스로 적막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다시 일어서기 위하여, 다시 살아나기 위하여 적막 속으로 떠난다.
만물 가운데, 절망의 수렁을 파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의 번뜩이는 눈빛 너머로 걸어가라. 그들의 등뒤로 적막으로 가는 길이 있다. 그들 속에서 조용히 달아나라. 자신마저도 사라져 버리는 적막으로.
달빛이 산하를 포옹하고 밤안개가 전신을 끈끈히 어루만진다. 어둠 속에서만이 어둠에 눈 밝아져, 어둠을 볼 수 있고 어둠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둠이 어둠으로 드러눕는 의미는, 낮이 되어 낮으로 벌떡 일어서기 위함이다.
밤이여 안녕?
적막이여 안녕?
│김용옥 작품론│
붓 갈 데로 가는 수필
―김용옥 수필의 문학성
오 하 근
(문학평론가·문학박사·원광대 교수)
수필가 김용옥은 ‘체험으로 쓰는 수필론’ 「문학적으로 써야 한다」(『수필세계』2005 봄)에서 수필은 ‘생각나는 대로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 아니라고 기존의 수필의 정의에 이의를 제기하고, 작가는 ‘박학다식에 다습다작해야 기초가 된다’면서, 산문적 요소와 시적 요소가 결합해야 자기고백적인 수필이 문학성을 가진다고 하였다. 우리는 이에 동의하면서 그녀의 수필이 그 수필론에 어떻게 부합되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서예가 어머니 덕분에 시인 묵객들의 내방(來訪) 속에 자랐다. 무릎 꿇고 앉아 벼루에 가득 먹을 갈면서, 서예가들이 화선지에 붓을 내려가는 것, 일필휘지하는 것을 보았다. 특히 행서나 초서를 쓸 때의 모습은 긴장됐다. 첫 글자를 위해 먹을 입힌 붓을 내리기까지는 묵언기도하듯이 고요하고 숙연하지만 붓이 화선지에 닿는 순간부터는 굽이굽이 물 흐르듯이 붓 잡은 손이 흘러간다. 얼마큼 정확하게 표현할 글귀를 알아야, 저 희한한 서체를 얼마나 연습해서 붓이 갈 길을 통달해야 뜻대로 붓대로 흘러가겠는가. 숨죽이며 지켜보곤 했다.
―「문학적으로 써야 한다」
이는 수필이 ‘붓 가는 대로 쓰는 문학’이 아니라 ‘붓 갈 데로 가는 문학’이라는 뜻일 것이다. 수필은 붓이 가야 할 필연적인 당위성이 있어야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지, 개나 걸이나 이리저리 아무렇게나 왔다갔다 제멋대로 하는 우연적 임의성으로 쓰는 것이 아니다. 그런 수필 때문에 ‘예술성이 없는 신변잡기가 수필의 사해(死海)를 넓혀 가면서 수필가도 수필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문학적으로 써야 한다」)
원래 수필을 ‘수필(隨筆)’이라고 한 것은 자기겸양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수필이란 이름을 처음 썼다는 용재수필(容齋隨筆)의 저자가 ‘천성이 게을러서’ 운운한 걸로 미루어 이런 추측이 가능하다. 그래서 만필(漫筆)이니 수록(隋錄)이니 수상(隨想)이니 수감(隨感)이니 단상(斷想)이니 비슷한 용어가 생겼을 것이다. 프랑스어 에세(essai)의 어원인 ‘시도’ ‘시험’도 자기겸양의 그런 의미인지 모른다.
「눈 쌓인 벌판에 혼자서 서라」는 이 붓이 어떻게 제 갈 데로 가야 할 데를 찾아가는가를 보여 준다. 이 작품은 ‘눈 쌓인 벌판에, 백지와 대면하듯이 혼자서 서라. 막막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아무 말도 못하다 보니 할말도 없는, 백지가 되라.’고 스스로에게 명령하는 언사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어나가는 글들은 이 서두 글에 집중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이다. 백지 앞에서 백지가 되라고 한다. ‘백지’는 물론 눈 덮인 벌판의 이미지이면서 자신이 지향할 바이다. 여기에서 ‘자연과의 합일’이니 ‘물아일체’니 하는 고상한 말은 필요 없다. 그냥 눈 앞에서 눈이 되고 싶은 거다. ‘눈 쌓인 벌판’은 ‘막무가내로 백설군단을 하강시키는 하늘의 설해전술’로 ‘하늘을 지우고 산을 지우고 벌판을 지우고’ 해서 벌판 그 자체마저도 지워진 ‘허허벌판 김제 땅’이고, ‘눈이 덮인’, ‘면사포처럼 받아 쓰던 백설을 잃어버린 후, 깡시리던 카츄샤의 유형의 길처럼 막막하고 비참했던 길, 길, 길, 모든 여자의 운명 같은 카츄샤의 길 위’ ‘움푹움푹 빼툴빼툴 과거의 길 위’ ‘서울의 빌딩 사이’이다. 현재와 과거의 오버랩이다. 눈에서 면사포가 파생했듯이 면사포에서 ‘하이얀 고풀이 띠’가 파생한다. ‘꼭꼭 처닫은 마음을 열어 주니까. 가벼워지니까. 작아지니까. 비워지니까.’
‘구물구물 밤벌레 같은 눈이 시름없이 기어 내려온다. 눈은 강풍이 시샘하지 않으니 아장아장 하강한다. 하염없이 내린다.’ 시인 유치환이 자기 앞에 밀려오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파도야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고 반문했듯이 수필가 김용옥은 자기 앞에 내려오는 눈송이 앞에서 ‘백설아,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고 되묻는다. ‘아장아장’에서 ‘설원의 새끼짐승처럼 눈 속을 헤매고 싶다. 눈밭에 개 뛰듯 뛰고 싶다’가 연결되고, ‘인생의 맛은 참 지랄 같았다.
달콤새콤하거나 다달보드레한 어린 시절은 잠깐, 헛물켜게 들쩍지근하거나 시큼떨떠름해졌지, 지금에야 물론 무맛의 신선함과 담백함을 알 만하지만 인생은 아직도 타분하거나 짐짐하다. 솜사탕처럼 눈을 한 움큼 퍼서 먹는다. 개운하고 시원하다’가 이어지고 ‘허기지고 지쳐 아니 오직 목숨줄인 먹이를 위해, 살고 싶어, 죽음을 겁내면서 막막하게 설원을 건너온 노루 한 마리.’가 연상되고, ‘어머니의 자궁 밖 첫 세상을 만나던 아기의 영혼은 백설이었을 것이다. 너무 쉽게 부서지는 백설이지만 매일, 거듭 태어나는 아기 영혼일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추측과 원망에 도달하는 일련의 과정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화자는 처음 집 안에서 유리창 너머로 백설을 보다가 눈 쌓인 벌판을 걸어서 ‘하양 속으로 길을 뚫고 청하산 청운사를 찾아간다.’ 그 곳에서 ‘하이얀 덤불숲으로 날아드는 쑥새를 보라고 탄성 지르니, 도원스님께서 백지같이 웃으신다. 온통 희구나.’에서 예의 백지가 또 등장한다. 이제는 눈 덮인 벌판의 이미지인 백지가 절에까지 번져 스님의 웃음에 이른다. 이는 백지인지 백치인지 아리송할 정도이다. 이 눈 덮인 벌판, 눈 덮인 청운사는 ‘끝이기도 하고 시작이기도 한 하이얀 스크린’에 이른다. 이는 ‘과거라는 한 편의 영화 상연을 끝내야’ 하는 스크린으로 ‘수많은 조역들과 단역들의 이름이 줄줄이 끝 자막으로 사라진다.’ 그 스크린에 화자의 이름조차도 사라져 ‘난 어느새 백지 영혼이 되는 듯하다.’고 말한다. 과거는 그렇게 사라져 가고 사라져 가야 한다.
눈은 과거를 덮어서 지우고 스님은 쓸어서 지운다. 스님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나 피터 팬이 타고 날던 마법의 빗자루를 들어 눈을 좌우로 쓸어 날린다.’ 그 앞의 ‘하이얀 덤불숲으로 날아드는 쑥새’에서 촉발된 ‘희디흰 날개의 천사도 검은 망토의 악마도 더러운 이기심으로 가득 찬 어른의 동화’에서 이미 이 스크린이 장만되어 있었고 이 ‘어른의 동화’를 극복할 엘리스와 피터 팬이 마련되어 있었다.
‘법당 토방에 올라 눈 아래 펼쳐진 모조지 세상을 본다. 신천지다. 하이얀 스크린에 새 영화 제목을 뭐라 쓸까. 스님의 오른손에 법장처럼 들려 있던 빗자루를 받아 온몸으로 쓴다. 눈밭에 큼직하게 새겨지는 법문 한마디. 사랑해’로 이 수필은 끝맺는다. 법장은 불교의 권위이다. 빗자루는 엘리스와 피터 팬의 영혼이 깃들여 청소뿐만 아니라 신통한 능력마저 지니고 있다. 이 법장 같은 빗자루로 쓴 영화 제목, 인생의 지침서는 법문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 삶의 신념이 ‘사랑해’이다. 이 낱말 뒤에는 마침표도 붙어 있지 않다. 그 사랑은 이른바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이 법문은 ‘사랑’이라는 명사가 아니고 ‘사랑해’란 동사이다. 명사는 관념이지만 동사는 행위이다. 또 그 동사도 ‘사랑한다’라는 공식적인 낱말이 아니고 ‘사랑해’이다. 이는 선언이 아니라 속삭임이다. 세상을 향해 ‘너는 나를 싫어하지만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고 빈말 같은 공개된 언어가 아니라, ‘비록 그렇더라도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비밀스런 속삭임에 어느 누가 거부하겠는가. 이 사랑을 머리로써가 아니고 몸으로써 실행하려는 의지가 이 에피그램에 새겨져 있다. 아마도 화자는 ‘면사포처럼 받아 쓰던 백설을 잃어버린 후’ ‘모든 여자의 운명 같은 카츄샤의 길’ ‘그 사람에게 충분히 마음을 쏟지 못했다는 자괴’ 등으로 미루어 사랑에 신물이 났을 법하다. 그런데도 다시 사랑을 받으려 하지 않고 사랑을 주고 있다. 물론 그 사랑은 어떤 개인이 아닌 세상을 향한 것이다. 고운 여인의 마음씨가 눈마냥 하얗다.
이 수필은 백지로 시작해서 백지로 끝난다. 다만 그 백지가 눈 쌓인 벌판에서 스크린으로 전환되었을 뿐이다. 이렇게 처음과 끝이 하나가 된다. 그 과정은 사념과 사실과 배경에 의한 연속과 연상과 연쇄에 의해 진행된다. 그 백지는 폭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이 폭설은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기도 하고 카츄샤의 험난한 길이나 허기지고 지친 노루를 생산하기도 한다. 그 백지는 과거의 기록이 지워진 것이기도 하고 새로운 기록을 남기기도 한다. 과거의 기록은 개인을 향한 사랑이고 새로운 기록은 세상을 향한 사랑이다. 이 눈과 백지는 이렇게 아이러니의 눈이고 아이러니의 백지이다. 이 아이러니는 눈 덮인 허허벌판에 고독하게 혼자서 서서 그 아름다움과 험난함 속의 과거를 극복하려는 의지의 과정이다. 고독 속에서의 회한과 바람과 각오는 자신과 자연물과 스님 등과의 대화와 전개되는 들판과 숲과 절 등의 풍경 속에서 과거와 현재와의 소통을 통해서 그 결실을 맺는다.
어쩌면 치밀한 플롯으로 짜여진 듯한 이런 수필이 어떻게 붓 가는 대로 내버려두어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까. 오랜 수도를 거치면 저절로 그런 경지에까지 이른다 하니 차라리 신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풋내기조차 저절로 이를 그렇게 쓸 수 있다면 수필은 신기조차도 초월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적막이여 안녕?」 역시 앞의 「눈 덮인 벌판에 혼자서 서라」와 그 주제에서 궤를 같이한다. ‘초추의 만월이 중천에 두렷하다. 사람들이 부대끼는 소리가 뚝 끊기고 인가의 불빛이 거의 소등될 시각. 생명 있는 것들이 고른 숨을 쉴 때다. 겹겹이 에둘러서 위용을 펴던 산들도 밤이 깊을수록 엎드린다. 저리 낮게, 웅크린 초식동물처럼 순하고 조그맣게 깃을 접은 산들을 위하여 귀뚜라미가 다독다독 노래부른다.’로 시작된 이 수필은 ‘달빛이 산하를 포옹하고 밤안개가 전신을 끈끈히 어루만진다. 어둠 속에서만이 어둠에 눈 밝아져 어둠을 볼 수 있고 어둠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둠이 어둠으로 드러눕는 의미는, 낮이 되어 낮으로 벌떡 일어서기 위함이다.’로 끝나는 듯싶다가 ‘밤이여 안녕? 적막이여 안녕?’ 하는 의문문을 덧붙여 맺는다. 서두에서는 달빛 속에서 산들은 낮게 내려앉고 이를 위하여 귀뚜라미가 노래하고 결말에서는 달빛은 산하를 포옹할 때 어둠의 숨소리를 듣는 ‘나’를 밤안개가 어루만져 준다. 서두의 자연과 자연과의 조응이 결말에서는 자연과 인간과의 조응으로 바뀐다.
그 가운데 어둠의 적막이 있다. 적막 속의 불빛이 아버지의 따뜻한 눈빛을 불러오고, 그 아버지가 잠깐 사라진 해수욕장에서의 절망의 공포 다음에 오는 적막의 평강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화자는 이 기억을 통하여 인생이 절망으로 힘을 다할 때, 밤의 적막 속에 홀로 빠져들면 그 어둠의 의미를 깨닫고 그를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얻게 된다. 이는 마치 눈 내리는 벌판에 혼자서 섰을 때 사랑을 앗아간 세상을 사랑할 수 있다는 믿음을 깨닫게 된다는 것과 같다. 이 역시 이열치열인지 모른다.
그런데 마지막에 사족인 양 덧붙은 ‘밤이여 안녕? 적막이여 안녕?’은 무엇인가. ‘안녕’은 만남의 인사가 아닌 헤어짐의 인사로 느껴진다. 그렇다면 다음의 물음표(?)는 또 무엇인가. 지금까지 주장했던 적막 속의 철저한 고독이 생산하는 완전한 절망과 그것으로부터의 탈출이 완전하거나 철저하지 못하다는 의미일 수 있다. 초인이 아닌 이상, 그것이 종교적인 신념으로까지 발전하지 않은 이상 또다시 반복되는 인생사의 고통에 종지부를 찍을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물음표로 남긴 것은 아닌가. 아니면 이제는 오히려 길들여진 절망과 적막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용옥은 수필에서 산문과 시의 결합을 시도한다. 수필가 김용옥은 본바탕이 시인이다. 실제로 김용옥은 시인이다. 그런 그녀는 시적 수필을 꿈꾼다.
특히 수필이 산문이므로 산문적 요소 즉 현재, 현실, 지성, 객관, 논리, 실용성, 경험, 외연만 있다면 문학의 아름다움을 획득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시적 요소인 미래, 이상, 감각, 사색, 예술, 내포, 감성, 직관 등등이 수반될 때 수필은 문학성을 가진다.
―「문학적으로 써야 한다」
수필이 현재, 현실, 경험적인 리얼리티만을 중시한다거나, 지성, 객관, 논리적인 과학적 태도만을 수용한다거나, 실용적인 가치만을 우선한다거나, 외연적인 의미만을 한정한다면 그것은 일상적인 언어나 과학적인 언어로만 채워질 것이다. 사실적인 소설이나 논설이나 설명문이나 신문기사 등이 그런 언어를 지향할 것이다. 시는 미래, 이상, 사색적인 상상력이나 감각, 감성, 직관적인 서정성이나 예술적인 미적 쾌락이나 내포적인 의미 등을 그 특성으로 한다. 수필이 운명적으로 타고난 산문의 속성에 문학이 운명적으로 지향하는 시적인 속성을 결속시켜야 수필과 문학이 결합하는 수필문학이 된다고 이 글은 주장한다.
아련히 물든 봉숭화 꽃물. 처음엔 멍청하게 보이지만, 가을이 다가들수록 손톱에는 붉은 보름달이 떴다가 반달이었다가, 샐쭉 웃는 실눈 같은 초승달이 될 무렵이면 가을은 무장무장 깊어져 무서리 내리지. 물끄러미 손톱 끝의 초승달을 바라보면 눈물 아롱아롱 그리움과 이루지 못한 기다림이 거기 머물러 있네. 꿈이 바래지듯 꽃물이 줄어 가고, 그리움이 멀어지듯 꽃물이 야위어 가네.
―「봉숭아 꽃물 드네」
이 글은 단순히 손톱에 봉숭아 꽃물을 들이는 이 땅 여인네의 풍습만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너를 반겨 놀았도다’라 할 정도로 봉숭아꽃은 우리의 여인네와 함께 친숙하게 자리하고 있다. 봉숭아꽃은 그런 한국적인 여인네의 그리움과 기다림의 상징이다. 그래서 손톱에 그 꽃물을 들인다. 처음 보름달처럼 원숙한 손톱의 꽃물이 손톱의 자람에 따라 깎여 초승달처럼 가늘어짐은 그 그리움과 기다림을 이루지 못한 이 땅 여인네의 운명 같은 것, 그 운명의 상징이다. 이 덧없는 바람을 자조처럼 쌜쭉 웃어야 하는, 그러면서도 그 바람을 떨치지 못하는 운명의 아이러니(irony of fate)를 이 봉숭아 꽃물은 암시한다.
달 역시 여성의 상징이다. ‘달하 높이곰 돋아샤’에 깃들인 백제 여인의 그리움과 기다림이 여인네 손톱에 판 박혀 있는 것이다. ‘무서리’ 속에는 그런 여인의 인고의 세월이 감춰져 있다.
이 글에서 봉숭아꽃이나 봉숭아 꽃물은 ‘잘 익은 김칫국물 빛깔’, ‘두근두근한 꿈’ ‘보드랍고 긴 손톱 끝에’ 달아맨 ‘꿈’, ‘할머니의 저승길 환히 불 밝혀 주는 꽃등’, ‘아련히 물든 봉숭아 꽃물’, ‘눈물 아롱아롱 그리움과 이루지 못한 기다림이 거기 머물러 있’는 곳, ‘그리움의 만월’, ‘그리움의 꽃등’ ‘기다림의 꽃등’ 등으로 노출되어 있다. 이 노출은 은폐의 다른 표현이다. ‘-네’라는 어미 역시 여기 적절한 말투(tone)이다. 아주 친근한 이에게 속삭이듯, 아니면 과거의 자신을 불러 추억을 되살리듯 하는 그런 정감 어린 어법이다. ‘무장무장’ ‘아롱아롱’ 등의 시늉말 등 풍부한 어휘들도 시어법(poetic diction)에 이바지한다. 이렇게 이 산문은 직유와 은유와 상징과 아이러니 그리고 말투 등, 시의 본질적 요소가 결합하여 시의 경지에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이런 문장은 시적 산문과 산문시의 경계를 아리송하게 한다.
1980년부터 시의 길을 가파르고 팍팍하게 걸으면서도 수필에 대한 애정을 깊이 묻어 두고 있었다. 불혹을 넘으면 밑둥이 든든해질 거라고, 그때 쓰겠노라고. 적어도 5,000권의 책을 읽고, 영화 1,000편 감상하기, 고전음악 1,000곡 구별하기, 그림 10,000폭 이해하기, 1,000권의 시집을 읽어 본 후에 연필을 쥐리라고.
그것들이 녹고 삭고 스며들어 인생관의 뼈를 세우고 의지(意志)의 피를 돌게 할 것이다. 그것들이 수필의 내용, 소재, 주제가 되어 줄 것이다. 배워서 익히 알아야 무엇을 사색하고 어떻게 사유할지 길이 열릴 것이다. 수필가의 유비무환이다.
―「문학적으로 써야 한다」
김용옥이 수필을 쓰기 위해 준비하겠다는 지식의 양에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라는 허풍도 있지만 남아도 아닌 그녀가 그런 포부를 지녔다는 것이 가상할망정 과장이라고 힐책할 일은 아니다. 그랬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그녀의 수필집을 읽고 있노라면 그 박식에 놀라게 된다. 더구나 동식물의 이름뿐만 아니라 그 생태까지를 꿰뚫는 글을 읽으면 그 지식이 ‘5,000권의 책’에서 애써 배운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자연히 터득했음을 알 수 있다.
침엽수를 좋아하는 직박구리가 적송의 높은 가지에 밥그릇 모양의 둥지를 지어 신방을 차린 후 그 곳에 갓 깬 새끼들을 거두고 있는 중이다. 어미의 보호본능이 가장 강한 때다. 그런데 먹성이 잡식성인 청설모란 녀석이 춘궁에 정력제가 필요했는지 직박구리의 새끼들을 노린 것이다. 갓난아이의 강그라지는 울음처럼 새끼새들이 삐이용 삐이용 울어대자 어미새가 삐욧 삣삣 삐욧 삣삣 금속성 소리로 악을 썼고 금방 예닐곱 마리 직박구리가 날아들었다. 그리곤 쫓고 쫓기는, 쪼고 쪼이는 사생결단의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외사랑 직박구리」
이 글에는 직박구리의 서식처, 깃의 형태, 새끼 새와 어미 새의 울음소리, 청설모의 식성 등이 보인다. 화자는 ‘흔히 새에 대한 기억이나 인식은 평화롭고 이상적이다. 노래 같은 지저귐, 아름답고 다양한 날개와 날갯짓, 그들의 정적과 비밀은 사람들로 하여금 환상을 갖게 한다.’라고 했지만 보통사람들은 아예 새에 대한 관심조차 없다. 높은 나무 위에서 보였다 말았다 하는, 이름도 모르는 새와 다람쥐 같은 것이 왔다갔다하는 모습을 ‘그런가 보다’ 하고 곧 고개를 돌려 버리는 것이 보통사람인 우리의 태도이다. 비록 새에 대한 관심이 있다 해도 오랜 관찰로 ‘눈을 맞추면 벗이요 귀를 기울이면 법문이요 마음을 마저 부리면 일심동체가 되는 자연 속에 서’지 않았다면, 그 싸움의 원인과 경과를 ‘춘궁에 정력제’라는 위트까지 섞어 가면서 이렇게 사실적으로 그리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수필이 지식의 전시장은 아니다. 이 글은 직박구리와 청설모의 싸움이 진행되면서 필요한 때를 택해 더러 나타나는 정도이다. 「모비딕」의 경학(鯨學)처럼 겁낼 것이 없다.
김용옥은 수필이 자기고백의 문학이라는 일반론에 몇 가지를 첨부한다.
수필은 문학 중에서 작가 자신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글이다. 수필이 다분히 생활문적이며 사실적, 고백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린아이가 스스럼없이 괴춤을 내리거나 발가벗듯이 드러내거나, 공중목욕탕에서 남을 의식하지 않고 훌훌 옷을 벗어대듯이 까발리는 문학이 절대 아니다. 자기 신변이나 신체를 친구나 이웃에게 조잘조잘 털어놓듯 한 고백이며 사실이라면 그것은 문자를 이용한 잡담에 불과하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과 체험을 관상(觀想)하여 승화시킨 결정체를 언어로 형상화해야 수필이 된다.
―「문학적으로 써야 한다」
수필이 자기 고백적 문학이란 시처럼 시인이 아닌 가면(mask)을 쓴 페르소나(persona)가 화자로 등장한다거나, 소설처럼 소설가가 아닌 인물이 전개하는 꾸민 이야기(fiction)가 아니라 수필가 자신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 보니 개나 걸이나 아무나 설쳐대는 무대가 수필이다. 누구든 하고 싶은 자신의 이야기는 있는 법이다. 수필은 이 자기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하지 말고, 이를 명상을 통한 순수한 이성의 활동에 의하여 미화하고 순화하여 지혜로운 앎으로 전환시키고, 언어로 문학적 형상화 과정까지 거쳐야 진정한 수필이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논리이다.
그는 조용하고 파격적이며 과감한 이벤트로 세상과 자신을 철저히 위장했다. 그래서 그의 철저한 고독이 늘 슬펐다.
1989년, 검은 망토를 걸치고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던 그에게서 공허의 냄새를 들이마시고, 아름답고 화려한 경극영화 ‘패왕별희’에서 외롭고 고통스럽다 못해 비장미가 묻어 있는 그의 연기에 홀딱 빠져 버렸다. 삶의 대리발현이었을 것이다. 살고 싶지 않을수록 더 강렬히 살아 있는 몸짓. 타인의 배역 속에 자기를 구겨 넣는 허무. ‘아비정전(阿飛正傳)’의 주인공 ‘아비’를 연기한 그는 실토했다. “고독과 정체성의 혼돈으로 휘청거리는 아비는 곧 나 자신”이라고. 타인은 타인의 아픔과 고독을 절대로 대신 앓아 줄 수 없는데! 그는 나에게 늘 슬픈 존재였다. 그러기에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장국영 별곡(別曲)」
이는 ‘아시아의 최고 스타’ 장국영의 생애와 연기에 대한 화자의 감상을 적은 글이다. 그러나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자신의 비운을 이 연기자에게 투영시킨 것이다. 장국영은 화자 자신이다. 화자는 장국영처럼 자신의 비운에 자살충동을 느꼈는지 모른다. 그리고 세상과 자기를 철저히 위장했는지도 모른다. ‘타인은 타인의 아픔과 고독을 절대로 대신 앓아 줄 수 없는데!’ 영화를 통하여 쳉은 장국영의 ‘삶의 대리발현’을 했고, 장국영은 삶과 연기를 통하여 화자의 ‘삶의 대리발현’을 했는지 모른다. 김용옥은 수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털어놓지 않고, 그 명상을 통하여, 그 순수한 이성의 활동에 의하여, 그 미화와 순화를 거쳐, 그 지혜로운 앎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수필화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김용옥이 ‘체험으로 쓰는 수필론’ 「문학적으로 써야 한다」라는 수필에서 주장하는 바를 실제 수필을 예로 하면서 그녀의 작품세계를 살펴보았다. 김용옥의 수필은 그녀의 ‘체험으로 쓰는 수필론’에 그대로 부합된다. 이들은 잘 짜여져 붓 갈 데로 가고 있고, 산문과 시가 결합한 시적 산문이고, 풍부한 지식이 바탕을 이루고 있고 사실과 체험이 관상을 거쳐 승화한 문학적으로 씌어진 수필이라 할 수 있다.
│문학적 자전│
나 하나가 왔다가 떠나가듯이
김 용 옥
행정구역명 전주시. 해넘이 때 백로가 깃을 접는 동네 서서학동(西棲鶴洞). ‘옛 것을 그리다’는 순수한 우리말 ‘예그린’아파트. 하늘에 가장 가까운 5층, 자유의 집.
‘미칠 것 같은 이 세상’을 부르게 하는 바깥 나들이를 끝내고 ‘저 높은 곳을 향하여’를, 박자 맞추어 계단을 밟으며 노래부르면서 천상계단을 오르듯 5층까지 올라간다.
연두색 문. 안팎으로 열 수 있는 문. 지옥문이기도 하고 천국문이 되기도 하는 문. 나를 나이게 하기도 하고 나로 하여금 나를 버리게 하기도 하는 문. 그 문을 열고 평화와 안식의 작은 집에 들어간다. 비로소 날개 없는 자유의 새가 된다. 시공간을 넘나들어도 된다 훨훨.
과거와 오늘과 미래로, 우주를 넘어 무(無)의 공간으로, 타인과 사물과 그들의 삶과 존재의미 속으로 넘나든다. 그리고 씨가 되어 내 자리로 돌아온다. 내 정신의 풀어짐, 영혼의 가벼운 유희를 주는 작은 집 한 칸의 자유를 감사한다. 격식의 자유, 의식의 자유, 병든 몸이 끙끙 아플 자유를 누린다. 내가 비로소 비워진다. 한 날의 집착과 번뇌에서, 하루의 지옥단련과 피로에서. 비로소 나는 생각하고 사색하고 분별하고 더디게 글을 쓴다. 새 땅을 밟는 마음으로, 먼 길을 떠나는 마음으로. 그리곤 대부분 지운다.
흔히 글을 감성으로 쓴다고 생각하는 듯한데, 나는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힘 곧 생각하는 힘으로 쓴다. 하루도 쓰지 않은 날이 없다는 사르트르처럼 설사하듯이 써 갈기는 능력도 없지만,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잘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곱씹으며, 글쓰는 일을 신중하게 한다. 글은 인간의 아름다운 포장지가 아니라 인격과 하나인 바로 작가 자신이라고 생각하므로. 글 잘 쓰는 위선자가 되고 싶지 않으므로. 내 지식만큼 내 사유만큼 내 분별만큼 솔직하게 쓴다.
여름날 내내 그리고 가을날 깊어 느닷없이 무서리 내리는 날까지 나팔꽃들 핀다. 아침기도의 새벽마다 하루를 열어 주는 나팔꽃들. 어느 날엔 백팔번뇌만큼, 어느 아침엔 노모의 생애만큼 핀다. 연하고 작고 약한 첫 나팔꽃이 핀 날부터 매일 아침의 의식은 시작된다. 시인이 잠을 털며 맨 먼저 하는 일은 눈짓으로 끄덕끄덕 나팔꽃을 세는 일. 그만큼의 슬픔과 번뇌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한다. 한 날의 시간만큼 갖가지 타자의 삶을 포용하고 수용해야 한다. 박새, 귀제비, 까치, 직박구리 소리랑 산자락에서 건너오는 꾀꼬리, 뻐꾸기, 방울새, 오목눈이 얘기도 들어 줘야지. 정치, 경제, 문화의 변화랑 해외 소식, 오지의 생활을 받아들이듯이. 기도소리가 늘 푸른 하늘에 닿기를 소망한다. 나팔꽃 벙그는 이른 아침에.
그리곤 꽃밭에 도란도란 알토란같이 살아가는 식물들과 눈맞춤한다. 사연 많고 시련도 많은 붙박이 식물들. 그들은 늘 제자리에서 최선으로 꽃 피고 씨를 맺고 살아간다. 비록 꽃을 피우지 못한 백련잎에도 빗방울이 또로록 구르며 놀다 가고, 매화목은 한풍 속에서 서늘한 꽃을 피워 한 해를 열어 준다. 견디어라, 꽃을 피우나 못 피우나 목숨을 견디어라, 생애를 견디어라, 그것이 사는 것이다, 법문을 하는 식물들. 친지를 생각하고 이웃친구를 생각하고 부모형제를 생각한다. 그러면서 한 날의 기도만큼, 생각나는 그들에게 평강과 복이 흘러갈 것을 믿으며 기운을 낸다. 해가 밝는다. 시름시름 지내던 철골소심란이 팔월이 이우는 날 꽃대공 하나 정갈하게 돋우고 있다, 새로 자란 맑은 촉들과 함께. 기운난다.
이 모두 영혼을 가진 것들이다. 각자의 일생을 고행하는 생명 있는 것들. 시인은 그것들을 사랑한다. 날마다 시인에게 책을 읽어 주므로, 시시때때로 경전의 말씀으로 되살아나므로. 이것들, 이 존재들과 함께 지지자(知之者)에서 호지자(好之者)가 되었고 호지자에서 낙지자(樂之者)가 되어간다. 지(知)의 궁극은 나를 알고 인생을 아는 것. 아등바등 지지(知知)하다가, 삶의 무겁고 지겹고 괴로운 것들을 내려놓고 잊고 잃을 줄 알게 되니 눈도 귀도 순해져서, 이제사 만신창이 인생을 조금 낙락(樂樂)한다고 할까.
몸이 아프고 생(生)이 아프다. 몸이 아파도 여태껏 살아왔듯이 생(生)이 찢어지게 아파도 살아왔다. 이제는 몸이 아픈 것을 즐길 줄 알 듯이 삶의 아픈 것을 즐긴다. 아픈 몸을 달래고 어르며 돌보듯이 뼈 시린 생(生)을 달래고 어르며 돌본다. 살아 있으므로 춥고 외롭고 아픈 삶을 즐길 수 있으므로 또한 즐겁다. 고통도 함께 놀아 보면 놀 만한 놀이이다.
이것들이 삭고 삭아서 시인의 시로 현현하고 수필로 환골탈태한다. 시다궁이후공설(詩多窮而後工說)이라 했다. 얼마나 다궁했으랴만, 어쨌거나 곤궁을 겪고 응시하며 그 환난 때문에 존재에 대하여 궁구하고 성찰하게 되었으니 다궁 덕분에 그리움도 애절함도 비통함도 누린 셈이다. 상처도 그립고 고통도 즐거운 복(福)이다. 그것들이 시인의 글이다.
머나먼 인생행로의 첫 울타리요 안내자인 부모를 잘 만난 인연복으로, 성인이 되기까진 순탄하고 영민하고 인덕이 많은 삶이었다. 그때의 1년을 돌려준다면 앞으로의 10년을 잘라서 바꿔 살고 싶다! 국가대표 야구단의 투수였던 부친과 근면과 지혜로 인생을 개척하던 서예가 모친의 훈김 속에서 다재다능한 막내딸로 성장했다. 민주적이고 문화적이고 정신적인 환경이었다. 시인묵객들의 내방과, 야구와 농구 경기장과, 곳곳의 산천 탐방도 스승이 돼 주었다.
그러나 사회는 폭력적이고 독재적이었다. 중학교 1학년 생도가 혈서를 쓰는 선배의 꼬리에 붙어 4·19 학생운동의 시위대열에 참여한 후, 5·16 군사혁명, 월남 파병 반대시위, 데모로 해가 뜨고 데모로 세월이 갔다. 집 밖에선 반공을 내건 횡포와 폭력이 내 삶의 피를 말렸다. 이유도 없고 까닭도 모르는 채, 끔찍한 반공법의 칼날이 우리 집을 강타했고, 침묵할 수밖에 없는 어린 청춘은 책갈피 사이로 도피했다. 조갈 난 자가 물을 벌컥벌컥 마시듯 독서했다. 나는, 나 아닌, 수많은 다른 삶 속으로 여행을 떠나 유랑했다. 그때에, 무혈전쟁의 승리자 간디나, 아프리카로 향한 지성적 성자 슈바이처나, 칩스 선생님이나 치셤 사제 같은 평화주의자요 인간주의자인 분들의 실천적 삶을 흠모했다. 햄릿과 아리사와 히페리온을 깨달았고 고문진보와 고전의 시인묵객을 알현했다.
광산 김(金)씨라는 양반 기질과 남평 문(文)씨라는 호문(好文) 기질을 물려받은 위에 기독교라는 죄와 구원 의식을 덧입혀 주었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를 탐구할 만큼 성장하자 박태선장로교, 통일교, 여호와증인교, 몰몬교를 읽었고 그리고 니체를 뻥! 뒷머리 얻어맞듯 읽었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아니고 싶고 내가 나일 수가 없어졌다. 모순투성이인 세계와 세상과 사상과 철학과 예술에 대한 회의와 불만과 패배감과 부정(否定)이 싹텄다. 뮤리엘 루카이서의 시(詩)에서처럼 자살을 꿈꾸고 세코날(수면제)을 꿀꺽 삼켰다. 나는 나를 잃고 방황했고, 나는 내 의지와 소망대로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지고 있다는 것이 괴롭고 덧없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생(生) 쪽으로 던져졌고 살았다.
하루 24시간이 아까웠다. 수면은 길어야 서너 시간. 알량한 그림 나들이, 음악에 정신 팔기, 밥먹기보다 더 잘한 책 책 책먹기. 사람에 지쳐 나동그라질 때마다 찾아가 속 얘기를 주고받은 풀, 나무, 벌레들의 이름 부르기. 한 끼니의 밥은 되어 주지 못했어도 진실로 나를 생명의 존재로 묶어 준 끈들이었다. 그것들이 진실로 내 정신의 자양이 되었고 내 영혼의 깃털들이 되었다.
영혼의 방 한 칸이 얼마나 깊길래 쟁여도 쟁여도 밑 빠진 독에 물붓기일까. 스펀지 같은 두뇌로 빨아들인 그것들은 인생이라는 실전에서 소통 불가능한 것들이었다. 인생은 내 두뇌와 가슴속의 형이상학적 재산으로 살찌는 게 아니라 형이하학으로 걸어가는 길이란 걸 몰랐다. 이 무지함으로 인생의 중허리를 꺾이고 만신창이로 찢어져야 했다. 장맛비 내리는 아침에, 오래 가꾸어 드디어 피어나려던 나팔꽃이 갈가리 찢어져 버리듯이.
그러나 그것은 신이 내린 죽비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장대비에 속수무책으로 망가진 나팔꽃이지만 내일이면, 더 훗날에도, 아니 내년에도 나팔꽃은 다시 피어날 수 있다. 토막난 인생의 밑둥에 어머니와 어린 딸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동안 먹어댄 문학 예술이란 양분이 있었다. 환난고통을 직시하는 동안에 상처에 진물이 나고 딱지가 지고 새살이 돋았다. 그 절망을 견딜 수 있게 한 자존심은 문학으로의 외출이었다. 그러나 폐병환자의 외출이다. 혼자서 아무도 몰래 된기침과 각혈을 하고 소독을 하고선 창백한 얼굴로 조심스레 토해 내는 몇 마디의 외출. 질식사할 것 같은 삶에 한숨이 되어 준 시와 수필이었다.
엄습해 오는 추억이 쿡쿡 찌른다. 에드와르 뭉크의 절규는 나다. 인생은 낭만이 아니다. 꿈이 아니다, 찬비가 아니다. 산다는 것은 끈질기게 견디는 것이다 지옥단련이다, 극복하는 것이다. 기필코 나를 버리고, 세상만물을 그리고 너를 아프게 사랑하는 것이다. 그 아픈 사랑만이 모든 어휘를 싸 안는 유일한 법이다. 내 삶의 정답이다.
나팔꽃송이가 쪼그르르 오므라든다. 그것도 즐겁다. 미련 없이 피었다가 집착 없이 지는 것이 즐겁다. 한 생각이 왔다가 스러지는 것을 지켜본다. 나 하나가 내게로 와서 머물다 떠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