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잡는해병 청룡부대
(해병 제2여단)
한편 해병대 사령부는 한국전쟁 당시 혁혁한 전과를 기록한
해병 제1사단 2연대를 파월부대로 선정하였다.
그런데 연락단 (단장 이세호 합참 전략정보국장)이
사전에 주월미군 및 월남군측과 교섭한 결과 육군은 퀴논(Qui Nhon) 지역에,
해병은 캄란(Cam Ranh) 지역에서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보고함에 따라
해병대의 규모를 연대에서 독립작전이 가능한 여단규모로 증편조정하고
여단장에는 해병대 사령부 관리국장
이봉출 준장(해병 특교대2기)을 임명하였다.
수도사단과 해병 제2여단 등 전투부대에 대한 파병이 결정되자
이들 부대에대한 군수지원을 위한 수도사단 예속으로
군수사령부를 창설(1965.9.1), 사령관에 이범준 준장(육사8기)이 임명되었다.
수도사단과 해병 제2여단의 파월로 주월한국군은
군사원조단을 포함하여 25,000여 명에 달하게 되어
이들 부대들을 통합지휘할 사령부의 편성이 불가피하였다.
이에 국방부일반명령 제16호로
1965년 9월25일 주월한국군사령부를 창설,
사령관은 채명신 수도사단장이 겸무하도록 하였다.
제3차 파병부대인 수도사단과 제2해병여단은
1개월 정도의 교육훈련이 끝나자 3개 제대로 나뉘어 월남으로 출발을 하였다.
1965년 9월 16일 육군 283명과 해병 95명으로
편성된 선발대가 미 수송기 편으로 출국한데 이어 제1제대인 해병 제2여단은
9월 20일 포항에서 박대통령과 내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결단식을 가진 후 10월 3일 부산항을 출항하여
9일 캄란에 도착하였고,
10월 12일에는 여의도기지(K-16)에서 박대통령 임석하에
수도사단에 대한 환송식이 거행되었으며
수도사단 제1연대가 주축이 된 제2제대는 10월 16일 부산항을
출발하여 22일 퀴논에 도착하였으며,
기갑연대가 주축이된 제3제대는 26일 부산항을 출발하여 11월 1일 퀴논에
도착함으로써 제1차 전투부대의 파월이 완료되었다.
★파 월 : 1965. 9. 20 경북 포항에서 출범, 1965. 10. 3 한국을 떠나
1964. 10. 9 캄란에 상륙.
1967. 12. 12부터는 호이안에 주둔.
★사령관 : 이봉출 여단장의 뒤를 이어 김연상, 이동호, 이동용, 허홍 준장
★참전기간 : 1967. 12. 12 - 1972. 2. 24
★참전군인 : 37,340명 (장교 2,166명, 사병 35,174명)
★희 생 : 전사 1,202명 (장교 42명, 사병 1,160명)
부상 2,904명 (장교 99명, 사병 2,805명)
★전 투 : 151,522회 (대부대 전투 175회, 소부대 전투 151,347회)치열한
전투의 와중에서도 따이한로(지금은 남조선로라 불림)라고 불리는 다낭에서
호이안간의 도로건설과 많은 대민지원 사업을 실시하여
한월간 친선을 도모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1965. 11. 8부터 한달동안 벌인 번개 1, 2, 3호 작전을 비롯하여
짜빈동, 괴룡작전, 승룡작전, 황룡작전 등
많은 전투를 이끌어 참전 부대중 가장 용감한 부대로 평가를 받으며,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으로서 귀신잡는 해병의 맹위를 온 천하에 떨쳤다.
특히
1967. 2. 14일부터 15일까지
실시한 짜빈동 전투는 세계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신화중에 신화로써
한국 해병의 이미지를 부각하는데 큰 몫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