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바닷가를 떠나지 못하는 어부
회사 생활을 접고 글 쓰겠다고 결심했을 때 나한테는 작가가 되기에는 결정적인 핸디캡이 있었다. 아이들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일상을 보내고 무엇을 욕망하는지, 글의 소재이자 주제가 될 아이들에 관해 무지하다는 건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더구나 이런 결점은 공부로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또 웬만한 이야기는 이미 책으로 다 나와 있었다. 이런 현실에서 나는 무엇을 쓸 수 있고,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였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내가 잘 할 수 있고, 나만이 쓸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는 거였다. 현실의 아이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으니 현재의 아이나 옛날 아이나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고민, 일테면 “행복이란 무엇일까?” “왜 공부를 해야 하는 걸까?”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뭘까?” “나는 누구인가?” 같은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면 되지 않을까? 거기에다 나는 책 읽는 것을 밥 먹는 것만큼 좋아하고, 강의 듣는 것을 즐기고, ‘공부의 즐거움’을 평생 지녀야 할 덕목으로 여기니 역사소설이 딱이나 싶었다.
<성균관 스캔들> <바람의 화원> <추노> 같은 드라마들은 여전히 인기를 끌었고, 이정명, 김탁환 같은 역사 소설가들은 청소년소설은 쓰지 않으니 썩 괜찮은 전략 같았다. 5학년 아이들이 보는 역사관련 책부터 읽기 시작했고, 역사 관련 강좌가 있는 곳이라면 무작정 찾아다녔다.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공부를 하면 할수록 공부할 게 점점 더 많아졌지만 모르는 사실을 알아가는 즐거움이 더 컸다. 얼마 후 늘품사에서 본격적으로 역사 공부를 시작했는데, 이 년에 걸친 근현대사 공부는 역사에 대한 시야를 넓혀주었다.
일제강점기 전기수 이야기 <뽀이들이 온다>
전기수라는 직업에 대해 알게 된 것은 MBC드라마넷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 시즌 1> 15화 <조선 전기수 이업복>에서였다. 대한제국 시대, 수사관이었던 별순검들의 범죄 추적 드라마였는데(근대 조선의 생활사를 생생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로 강력 추천한다) 어두컴컴한 광에서 혀를 짤린 채 죽어있는 시체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피해자 이업복은 실존 인물이었고 조선 후기 최고의 인기와 명성을 누린 전기수였다. 그날 <임경업전> <숙영전> 같은 소설을 장터나 담뱃가게 앞에서 책을 읽어주는 전기수라는 직업에 단번에 꽂혔다. 책값이 비싸고 글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수였던 시절에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삶의 윤활유가 되었을 터다.
전기수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자료를 찾는데 이승우 작가의 단편소설 <전기수>와 조선시대 후기 조수삼의 신변잡기 산문집 <추재기이> 단 두 권뿐이었고 이승우 작가의 단편은 조수삼의 수필 내용을 그대로 현재 말로 옮겨 적은 것이었다. 공부가 벽에 부딪치자 조선 영정조 시대 최고의 전기수였던 김중진의 이야기를 쓰는 것으로 결정했다. 관련 자료가 많지 않으니 고증에 억매이지 않고 상상력에 기대야 할 부분이 많으니 ‘이야기’의 기원, 이야기의 사회성, 이야기의 힘에 대해 더 진지하게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책쾌(서쾌)에서 일하는 주인공이 어찌어찌해서 김중진을 알게 되고 전기수가 되는 이야기로 정하고 조선후기 생활사를 공부해나갔다. 이상하게도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야기가 진부해지고 재미도 점점 줄어들었다. 열심히 달려갔더니 막다른 골목에 부딪친 기분이랄까. 여기에서 접어야 하나, 아무튼 돌파구가 필요했다.
<어린이와문학> 편집부원으로 있을 때 작가들의 창작에 도움이 될 만한 릴레이 특강으로 김진경 작가의
<동북아 신화 특강>을 열게 되었는데 대단한 호응을 얻었다. 그 열기를 이어 북유럽 신화 특강을 마련하기로 하고 적당한 강연자를 찾게 되었는데 그때 눈에 띈 것이 마포구의 한 자치센터(그때는 동사무소)에서 하는 안인희 선생님(번역가이자 북유럽 신화학자)이었다. 거기에서 들은 그림형제 이야기는 쇠망치로 뒷머리를 내리치는 충격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화작가라고 알고 있는 그림 형제는 고문헌학자였고 언어학자였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동화까지 쓰게 되었을까? 프랑스가 독일을 지배하는 시기 두 사람은 고향인 카셀의 작은 동네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었다. 프랑스의 독일 지배가 길어지자 두 형제는 이렇게 가다가는 독일어가 지구상에서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독일어를 지키기 위해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그것이 이야기로 독일어를 남기는 것. 두 형제는 쉬는 날이면 동네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이 알고 있는 재미나고 무서운 이야기를 채록하고 동생인 빌 그림이 글로 정리했는데 그 중 252편이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동화집>으로 출간했다.
그림 형제의 이 동화집에 실린 몇 이야기를 월트 디즈니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고, 세상의 모든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엉뚱한 놈이 버는 형국이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데 일제강점기 광통교 주변에서 활동하던 어린 전기수가 떠올랐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수한이 경성역으로 가는 길에 누군가의 폭탄 투척으로 엉망진창이 된 종로경찰서를 보는 장면을 통해 수한이도 항일운동의 한 방편으로 이야기를 찾아떠나는 것으로 그렸다. (작품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항일투쟁을 위해 아버지가 만주로 떠난 것처럼 수한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투쟁 방식으로 전기수를 택한 것이다. 총칼을 든 독립운동만큼이나 우리말과 우리 이야기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조선 후기에서 일제강점기로 시간 배경을 옮기면서 무성영화에 대한 자료조사를 해야 했는데, 전기수 만큼이나 무성영화와 변사에 대한 자료 역시 적었다. 고기를 잡기 위해 낚시터를 찾듯 틈만 나면 상암동의 한국영상자료원에 갔다. DVD 시청도 가능하고 책 보기 지겨우면 지하의 시네마테크의 무료 영화를 관람할 수 있어 일거양득이었다. 이전에 십여 년 동안 영화 관련 일을 했던 것과 한때 일년에 이백 편 넘는 영화를 볼 만큼 영화광이었던 게 글을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직장 생활이 소모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도둑질과 살인 말고는 쓸모없는 경험은 없는 것 같다.
원고 방향이 정해지고 그간의 공부를 바탕으로 석달 만에 원고를 완성했고, 무모하게 여러 문학상에 응모했지만 한 곳에서만 본심에 올라가고 여전히 출판은 멀어보였다. 이렇게 책도 한 권 못내고 끝나나 싶은 불안과 좌절감이 일 년 넘게 계속되었다. 그러던 차에 신여랑 선생님이 꼭 문학상으로 등단해야 하는 것 아니면 원고 투고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 사계절출판사라면 이 원고에 관심이 있을 것 같다고 조언해주었다.
어린이와문학 편집부 일을 하면서 사계절 편집장을 알고 있던 터라(편집장은 나를 몰랐을 테지만) 혹시 거절당하면 어떡하냐 싶어 이름을 지우고 메일을 보냈다. 추석 전날에 출간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책으로 나오기까지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기획도서로 ‘전기수’를 출간할 예정이었던(이 책 나오고 3달 후 <거리의 이야기꾼 전기수>로 나왔다) 인문교양팀에서 내 책의 출간을 반대했다. 한 해에 그것도 한 출판사에서 동일한 내용의 책을 내는 게 낭비라는 게 그 이유였는데 편집장이 나서서 역사동화와 기획책이 같이 나오면 시너지 효과가 있을 거라며 담당자들을 설득했다. 책 내준다는 데 힘든 것도 별일 아니었다. 몇 달에 걸쳐 7백 매 원고를 동화로 고쳤다. 다시 편집회의를 거쳐 ‘이야기의 힘’이라는 주제가 초등학생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왔고 다시 청소년소설로 수정해야 했다. 원래 제목인 <천하제일 전기수>라는 제목이 너무 고리타분하니 진취적이고 모던한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사장님의 의견을 따라 <뽀이들이 온다>라는 근사한 제목을 달게 되었다.
출간 이후 EBS에서 ‘이야기의 힘’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제작되는 등 스토리텔링 붐과 문화 콘텐츠에 관심이 커지면서 책따세 추천도서와 우수문학도서, 씨앗재단 주제도서로 선정되는 등 작가로서의 첫 출발이 썩 순조로왔던 편이었다. 이래저래 이 책은 책도 저마다의 운명이 있다는 선배 작가들의 말을 실감나게 했고, ‘운칠기삼’의 세상 이치를 몸으로 깨닫게 해 준 책이었다.
역사와 추리의 장르 결합, <계회도 살인사건>
전기수보다 이야기로 먼저 찾아온 것은 계회도였다. 무작정 읽는 것으로는 불안해서 닥치는 대로 강의를 들으러 다니던 2011년 무렵, 한 대학 박물관에서 서대문 구민들을 위한 ‘서울 600년’이라는 인문학 강좌에 했는데 명지대학교 이태호 교수님의 강의 중에 ‘계회도’라는 그림을 처음 보게 되었다.
사진이 없던 조선 시대, 사람들은 화공을 불러 환갑연, 퇴역 모임, 봄맞이 시회 등 소중한 순간들을 그림으로 남겼는데 그것이 계회도였다. 한우리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고 이듬해인 2015년 7월에 <밤의 화사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으니 내 작품 중에 가장 시간이 많이 걸려 탄생한 셈이다.
계회도를 알면서 곧바로 쓸 수 없었던 데는 새롭고 신선한 소재라 잘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컸기 때문이었던 같다. <바람의 화원>을 에피소드 별로 정리하며 여러 번 읽고 관련된 영화와 드라마를 다시 보기도 했다.
계회도 역시 유홍준 교수와 이태호 교수가 쓴 짧은 글 밖에 없어서 계회도를 둘러싼 공부를 다방면에 걸쳐 해야 했다. 조선 전 시대에 걸친 화풍의 변화, 어진화사와 방외화사, 문인화가의 차이, 사화원의 등장과 도화서와의 관계, 어진화사의 선정 과정과 사대부 명문 가문들, 어진 제작의 의미, 어진화사 추천 과정에서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력집단, 당시의 정치 상황과 생활사, 조선 후기의 형벌제도와 사건 수사법 등은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이야기를 끌고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단 한 줄도 써먹지 못하더라도 이야기 배경이 되는 시대에 대한 공부가 넓고 깊을수록 이야기의 개연성도 높이고 내용도 풍부해지기 마련이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면서 느끼는 ‘앎의 즐거움’이 없다면 역사 공부는 지겹고 힘든 과정이고 또 오래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많은 작가들이 역사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한번 공부해두면 그 안에서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고 추리, 로맨스, 스릴러, 호러 같은 장르로의 확장성이 크고, 2차 저작물(영화, 드라마, 웹툰 등)로의 전환이 비교적 쉽다는 등 ‘되로 주고 말로 받아낼 수 있는’ 보물창고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작가가 많이 공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는 독자의 글로도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으니 미리부터 겁먹을 필요는 없다.
공부와 강연 듣기 이외에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을 답사하는 것도 필요한 과정이다. 물론 답사에서 본 것 때문에 이야기를 지어내는 데 한계가 생긴다면 작품을 다 쓰고 나서 확인 절차 삼아 둘러보는 괜찮지만 역사 소설에서 답사는 기본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다른 글 작가보다 조금 더 부지런하고 걷기를 좋아해야 할 것 같다. 어떤 작품이 자료글을 베낀 듯한 느낌을 든다면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 글을 쓸 때는 광통교가 있는 청계천, 구리개 골목이 있던 을지로, 광화문통의 육조거리, 종로 시전(육의전)거리, 백석동천이 있는 백사실계곡, 창덕궁과 그 주변, 북촌과 서촌을 많이 다녔다.
여기저기 다니다보면 가끔 뜻밖의 인물이나 에피소드를 발견할 때도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최훈장의 서당 풍경은 포천의 산사원(산사춘을 제조하는 술도가)을 갔을 때 그곳 홍보실장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에서 나왔다. 술도가는 발효가 잘 되는 환경만큼이나 깨끗하고 맑은 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수원이 필수적이다. 산사원은 산 바로 아래라 명당이 가져야 할 ‘배산’의 조건은 충족하지만 ‘임수’에 해당하는 물길은 한참 멀었다. 물길을 내려면 엄청난 공사비도 문제지만, 주위 풍광을 망치게 되고 생태계 파괴 같이 곤란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곳의 창업자는 홍송 세 그루를 심어 내 천(川) 자를 만들어 물길을 대신했다. 절로 무릎을 치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조선시대 화원 이야기는 이미 다양한 작품으로 출간된 상태여서 기존 이야기와 어떻게 차별화해야 하는가가 관건이었다. 그런 고민이 깊어질 무렵 자주 다니는 마포도서관에서 <조선의 수장 문화> 강좌를 듣게 되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상업이 발달하고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림을 소장하려는 문화가 형성되고 누구의 그림을 소장하고 있느냐가 권력의 우위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었다니.... 이야기의 물꼬를 틀 실마리를 찾은 황홀한 경험이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무사히 아버지의 망령으로부터 도망친 줄 알았다.”
첫 문장은 그때 내 머리속에 씌여졌다.
돈과 명성을 가져다주고 권력자들이 좋아하는 그림 대신 중인들이나 동네 사람들이 불러주는 모임에 가서 계회도를 그리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미워하며 절대 아버지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는 고집불통 아들을 이야기에 중심에 놓았다. 이야기에 재미를 더하기 위해 예술을 권력화했던 사대부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아들이 살인범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많이 읽기는 했지만 겨우 장편소설 한 권 낸 초보작가로서는 버거운 글쓰기였다. 그 무렵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처음으로 출판사나 영화사, 게임개발사가 멘토가 되어 신인작가들이 소설 한 권을 완성할 때까지 지원하고 이끌어주는 ‘원작소설 창작 과정’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완성된 원고를 내는 게 아니라 시놉시스와 100매 분량의 도입부 원고를 내는 것이었는데, 설마 하며 응모하게 되었는데 운 좋게 선정되었다.
나의 멘토는 고즈넉출판사의 대표였는데 알고 보니 강원도 후배였다. 멘토 역시 계회도라는 신선한 소재 때문에 내 작품에 관심이 갔다고 했다. 글쓰기에 참고할 만한 도서를 추천해줘 참고서 삼아 열심히 읽었고 한 달에 두세 번 원고를 메일로 보내는 과정을 일 년 가까이 했다. 신촌 카페에서 멘토를 만나 집필 방향을 함께 논의하고 원고의 부족한 부분을 체크해주면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처음 시행하는 프로그램이라 한콘진에서도 선정 작가들을 위한 (장르소설, 영화, 게임, 캐릭터산업 등에 대한) 다양한 강좌를 열어줘 열심히 들으러 다녔다. 강의가 끝난 후에는 목동에 집필실도 마련해주어서 6개월 간 집중해서 원고를 썼다.
빼어난 그림솜씨에도 아버지가 도화서 시험을 보지 않고 계회도만을 그리게 된 이유, 영정조 시대 중인계층에 불었던 시회 전경, 대를 이어온 화원 가문과 광통교의 서화 가게들, 조선 후기의 수장 문화 등을 풀어가는 동안 점점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
원고 중간쯤 됐을 때 범인을 장화원에서 인국으로 바꾸었는데, 지금도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추리소설에서 가장 범인 같지 않은 사람이 범인으로 밝혀지고 살인으로 인해 얻을 이익이 크면 클수록 이야기는 더 드라마틱해지기 마련이다.
추리소설에서의 관건은 중간 중간 단서들을 뿌려두고 다음 사건의 복선을 깔아두는 게 중요하다. 아버지가 낙관 대신 그려넣은 억(億)이라는 글자, 시체에 남은 유엽상, 담배 냄새, 가슴에 꽂혀 있던 검계의 칼, 아버지가 쥐고 있던 계회도 한 조각 등이 그것이다.
<계회도 살인 사건>은 2015년에 나왔던 <밤의 화사들>의 개정판이다. 약간의 문장 수정과 과하다 싶은 설명적인 정보를 걷어냈을 뿐 전체적인 줄거리는 똑같다. 개정판이 초판본보다 많이 팔린 예가 드문데, 이 책은 그런 기록을 세우고 있는 중이라니 고무적인 일이다.
이 책을 읽은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으로부터 조선 후기 역사책으로 읽혀도 좋을 것 같다는 칭찬을 들었을 때,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부추김과 재미 있어서 밤새 읽었는데, 천 매가 넘는 긴 글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속도감이 있었다는 감상평을 발견할 때, 도서관 사서로부터 조선 시대 회화에 대한 인문학 강좌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너무 먼 곳이라 마음만 감사히 받았다) 그간의 시간이 허송세월만은 아니었고 헛공부가 되지 않았다는 뿌듯함과 안도감이 든다.
그런 기쁨들이 나를 역사의 바닷가를 계속 어슬렁거리게 만드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랴. 그 바다만큼 싱싱하고, 살집 탄탄한 맛난 고기가 많은 곳이 없으니, 어부는 바다로 나갈 수밖에....
* 긴 글이라 죄송하고 늦어서 미안하고 그렇습니다.
다음 이을 분은 최근 재밌게 읽은 <위험한 소년>을 쓰신 선안나 선배님입니다.
작가의 말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할 듯, 기대합니다.
첫댓글 선생님! 전기수 이야기도 계회도 이야기도 분명히 들었던 건데 이렇게 정리된 글로 접하니 또 새로운 느낌입니다. (이래서 글이 중요한 것 같아요 ㅎ)
두 작품 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당시의 현장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듯 해서 영상으로 만들어도 손색없겠다 생각했는데 그만큼 발품을 판 효과가 톡톡히 나온 것 같아요.
흥미로운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안나 선생님의 창작노트도 기대하겠습니다.
선생님, 바쁘신 와중에 창작노트까지 내어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고민과 공부와 쓰기와 답사 등 자세하게 써 주셔서
더 고맙습니다. 역사 창작 뿐 아니라 다른 작품을 쓰시는 분들에게도 길잡이가 되는 글이라 생각됩니다.
역사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고 단단한 어부가 되는 길을 알려주셔서 많이 배웠습니다.^^
선생님~ 때가 지났는데도 창작노트가 안 올라오니 '얼마나 고심하며 쓰고 계실까' 죄송스럽다가도
'혹시 바빠서 잊어버리셨나?' 생각이 많아졌드랬습니다. 그런데 왜 늦으셨나 이해가 되고도 남습니다.
두 작품이 세상으로 나오기까지의 창작과정, 고뇌, 자료찾기, 공부 과정 등...이렇듯 세세히 내어주셔서
샘들에게 많은 도움 될 것입니다. 풀어내시느라 고생 많으셨고, 고맙습니다. 선안나 선생님의 창작노트도 두근두근 기다려 봅니다.^^
역사의 현장이 살아움직이듯이 다가왔던 선생님의 작품들이
이렇듯 치열한 공부와 집요한 관심의 결과라는 사실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역사의 바다에 이처럼 멋진 어부가 계셔서 독자들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창작노트에서 느끼는 선생님의 열정, 쬐끔이라도 본받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긴 글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단숨에 읽어내렸어요
이야기가 하나 나오는데 이렇게 깊은 수고와 정성이 들어있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며, 너무도 안일하고 게이른 저는 반성이 몹시 됩니다...ㅠㅠ
이렇게 창작의 노하우를 세세하게 풀어내 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려요~ 선생님
더 멋진 이야기 기대하며~건강 유의하시길요.
이 글을 읽으며 역사의 바닷가에서 즐겁게 때론 고되지만 보람차게 열심히 고기를 낚는 어부가 된 선생님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직접 발로 뛰며 글을 써야하는구나, 반성하고 깨닫습니다.
개정판이 더 많은 사랑받을 수 있다니 역시 좋은 작품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도 배웁니다.
아낌없이 창작과정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저서 뿐만 아니라 역사 동화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혜숙쌤. 너무나 정성스런 글에 송구스러움을 느낍니다. 글쓰기모임에서 만나뵙고 싶었는데 언젠가 그 날이 오겠지요^^ 쌀쌀한 날씨 감기조심하세요
선생님 보면서 아무나 역사이야기 쓰는 것 아니구나 싶었어요. 그 열정과 에너지 반의 반이라도 나눠가지고 싶네요.^^ 귀한 창작노트 글 나눠주셔서서 감사드려요. 이 글에서도 선생님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네요. 멋진 작가님의 길을 따라 저도 열심히 가볼게요.^^
그 바닷가, 같이 거닐고 싶어요~~ 그런데 아직은 마음만 가득할 뿐, 너무 넓디 넓고 깊어 두렵기 그지 없네요. 그래도 이렇게 가까이 열정으로 고기도 낚고 방법도 전수해주시는 샘이 계시니 언제든 마음을 기댈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든든합니다. 귀한 창작노트 고맙습니다^^
정말 엄청난 시간과 정성이 선생님의 작품에 녹아 들어있군요. 샘의 노력에 비하면 좁쌀만큼도 못한 저의 나날을 반성하며 존경심에 고개 숙입니다.
선생님 오랜만에 글로 뵙네요. 귀한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권의 책이 완성되기까지 참 많은 시간과 발품까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가만히 앉아 인터넷으로만 자료를 얻고자했던 저의 안이함이 송구스럽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