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속의 지도를 펼쳐 서늘한 바람 틈새로 바라보이는 지도의 한 지점 ‘추풍령’을 밟고 선다.
영동지방은 충북과 경북, 전북 지방의 접경 지역에 위치해 있어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등 3방향에서 신자나 선교사들이 순회하며 북음을 전했다.
청주 신대교회 출신 서경춘과 마로덕은 미 남장로교 선교사 메큐첸(Luther O. McCutchen, 1873∼ 1960)목사로, 목포를 거처 전주에 선교근거지를 두고 무주지방를 순회 전도하던 중 영동지방에 들러 복음을 전한 것으로 알려진다.
◇잠실 방에서 출발한 관리교회
추풍령 지역에 최초 복음의 씨앗은 양잠을 하던 한 농부의 집 잠실에서 파종되었다.
당시 친척들과 동네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흥청거리며 가산까지 탕진하는 것을 보면서 자라온 정철성씨는 예수를 믿으면 술을 마시지 않게 된다는 선교사의 말에 예수를 믿게 되었다.
예수를 믿기 시작한 그는 성경과 전도서를 즐겨 읽었고,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전도에 열심을 다했다.
당시 근처에 교회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추풍령에서 대구 제일교회 또는 김천 아포 송천교회(1901년 창립)에 출석해 예배를 드렸다.
그의 집에서 송천까지는 약 90리, 한번 교회에 가려면 왕복 180리를 걸어야 했으니, 주일 새벽 기도회, 낮 예배, 저녁 예배까지 드리려면 꼬박 3일이 걸렸다.
그러나 그는 한번도 빠지는 법 없이 예수믿는 일에 열심을 다했고, 특히 평안도까지 가서 한달 동안 말씀을 익히고, 배우는 등 초대 교인들에게 큰 믿음의 본이 되었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까지 찾아 다니며 예배를 드리던 어느 날, 주일 예배를 드리러 아포로 간 사이 어린 자녀가 아파서 죽게 되었다.
그 후 정철성은 교회가 가까이 있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추풍령땅에 교회가 세워지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1903년 3월 8일 주일, 정철성의 잠실 방에서 첫 예배를 드림으로 관리교회(현 추풍령제일교회)가 출발했다.
이것은 추풍령 최초의 교회이자 영동지역 최초의 교회로, 충북에서 세번째 세워진 교회가 됐다.
누에가 다섯번 잠을 자고 고치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곱디고운 비단을 내어줌과 같이 누에를 치는 잠실에서 시작한 추풍령제일교회는 숱한 역경과 시련 속에서 농촌 지역 복음화를 담당하며 성장, 발전했다.
이처럼 추풍령지역에 교회가 출발한 데는 대구선교부에 와 있던 미국 부해리(H. M. Bruen)선교사의 후원과 송천교회 지원이 큰 힘이 되었다.
부해리 선교사는 달성, 고령, 상주, 칠곡, 김천, 추풍령 지역을 말을 타고 다니며 전도를 했다. 말을 타고온 서양인을 보기 위해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면 그 기회를 이용해 전도지를 나눠주며 이 때를 복음 전도의 기회로 삼았다.
잠실에서 시작한 예배는 17년이나 계속 되다가 변호사 활동을 하던 최종철 장로가 자택을 교회에 헌납하면서 이것을 개축해 ‘조선예수교 장로회 관리교회’ 간판을 걸고 예배를 드림으로 본격적인 교회의 모습이 갖추어졌다.
◇어둠과 수난의 시대 등불을 밝히며
온 교인들이 틈틈이 선교사들이나 전도지를 통해 신앙에 대한 믿음이 견고해졌다. 못 먹고, 못 입어도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린다는 믿음으로 헌금과 예물을 드렸고, 1931년에는 교회의 초가지붕을 함석지붕으로 교체해 하나님 보시기에도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었다.
일제치하의 암울한 시대임에도 교인수가 점차 늘고, 교인들의 신앙심도 더욱 굳어져 일본인들조차도 이들의 믿음을 막지 못했다.
또한 어린이 교육에도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 기독교의 도덕적 교훈과 실천으로 아이들을 변화시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일제말기 청주 선교부의 민노아 목사에게 인정을 받아 평양장로신학교에서 공부한 경환 목사를 초대 목사로 모시게 되면서 관리교회는 전환점을 맞아 1957년 헌당예배를 드리고, ‘추풍령제일교회’로 이름을 바꿨다.
그 후 80년 후반에 이르러 교회 건물이 노후돼 예배를 드리기에 불편한 지경에 이르자 황차남씨(현재 권사)가 300여평의 땅을 교회터로 내놓았다. 건축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청년들은 헌혈까지 했고, 여신도회에서는 결혼반지, 목걸이 등을 내놓는 정성으로 행복한 교회, 지역사회를 섬기는 성숙한 성전이 완성 되었다.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새역사 100년,
이 목사는 2003년 창립 100주년을 맞아 “영동지역 최초의 신앙공동체인 추풍령제일교회가 이 지역에 세워진 것은 하나님의 크신 섬리임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하고, “지나온 역사도 소중하지만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더욱 선교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할 것을 온 성도와 함께 다짐한다”고 말했다.
추풍령제일교회 100주년 기념 사업으로 기념비를 건립하고, 필리핀(싼칼로스)에 교회를 건축, 현지 김우철 선교사가 시무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방학기간에 학생들을 필리핀에 보내 선교활동 및 신앙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나누고 섬기는 노인대학 세계로 뻗어가리/ 삶에 참 행복을 주는 교회 추풍령 노인대학’ 2005년 5월에는 노인대학을 설립, 50여명의 지역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글반, 서예반, 노래교실을 운영하는 등 지난 가을에는 수학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으며, 지난달 27일에는 제1기 노인대학 수료식을 가졌다.
노인대학 한글반에서 한글을 깨우친 노인들은 이날 목사님께 드리는 편지를 써 낭송 하기도 해 보는이들로 하여금 눈시울을 적시게 해 “진정한 복음 전파는 속의 생명이 흘러나옴으로써 열매를 맺는 것이다”를 실감케 했다.
또한 노인대학에서 노래교실을 맡고 있는 노유미 사모는 “2005년 처음 시작한 노인대학이 잘 운영돼 지역의 어르신들에게 큰 기쁨으로 다가갔으면 한다”고 말하고, “지난 2001년부터 지역 어르신들을 초청해 경로잔치를 열고 노래자랑, 민속놀이 등을 개최하면서 지역사회에서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지역과 함께하는 교회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