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천팔마문학회 20년사
한 줄기 밝은 햇살로
순천팔마문학회는 순천의 상징인 팔마비의 청백리 정신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키자는 취지로 1992년 6월에 출범하였다. 그리고 어느덧 스무 해가 흘러 2012년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당초 시작할 때는 열 손가락 남짓한 인원이라 과연 이대로 몇 년이나 지탱할 수 있을까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문학에 대한 재능과 열의가 넘치고 다양한 개성을 지닌 회원님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탄탄한 전력(?)을 갖춘 동아리로 성장하여 스무 살의 성년에 이르고 보니, 스스로 느껍고 대견스럽고 감사하기 이를 데 없다.
지난 2002년 창립 10주년이 되던 해에 <순천팔마문학회 10년사>를 팔마문학 제10호 《오아시스는 어디에 있는가?》에 게재한 적이 있다. 태동하여 열 살이 될 때까지의 성장기록이 거기에 제법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제 다시 강산이 한 번 더 바뀌어 20주년이 되었으니, 그 뒤의 10년을 포함해서 스무 해 동안 우리 문학회가 어떤 길을 어떻게 걸어왔는지 한 번 더 되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사람은 본디 망각의 동물이다. 지나간 일은 세월이 흐르면 기억이 흐려지고 결국 잊어먹기에 우리가 활동했던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 망각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이에 팔마문학회의 지난 스무 해를 되돌아보고 몇몇 기념될 만한 사항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역대 회장과 총무
순천팔마문학회가 20년 동안 큰 탈 없이 순항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구보다도 회장과 총무의 공이 크다. 회장과 총무가 하는 일은 한 달에 한 번씩 월례회를 주관하고, 연례행사인 문학기행과 시낭송회 등의 행사 추진과 동인지 발간을 맡는다. 회원들의 애경사에도 회원을 대표하여 참례한다.
임원이라고 해서 무슨 특전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역대 회장과 총무들은 재임 기간 동안 모임의 발전과 활성화를 위해서 봉사정신을 발휘했다. 그동안 제10대에 걸쳐 회장과 총무가 배출되었다.
제1대 회장은 장병호가 이채인 총무와 함께 1992년 6월 18일부터 1996년 3월 21일까지 4년 간 모임의 기틀을 닦았다. 그리고 제2대 회장은 정양주가 장애선 총무와 더불어 1996년 3월 22일부터 1998년 3월 18일까지 2년 간 모임을 활성화시켰다. 제3대 회장은 다시 장병호가 맡아 이삼례 총무와 힘을 모아 1998년 3월19일부터 2000년 3월 15일까지 2년 간 수고를 하였다.
대망의 2000년대를 맞아 제4대 회장으로 최순애가 뽑혀 김계선 총무와 짝이 되어 2000년 3월 16일부터 2002년 3월 29일까지 2년간 회의 발전에 힘썼다. 이어서 제5대 회장으로 박정남이 선출되어 송봉애 총무와 합심하여 2002년 3월 30일부터 2004년 3월 26일까지 2년 동안 모임의 단합과 발전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제6대 회장은 이삼례가 맡아 이두엽 총무와 한마음이 되어 2004년 3월 27일부터 2006년 3월 30일까지 두 해 동안 회를 이끌었다.
다음으로 제7대 회장은 김계선이 맡게 되어 양승화 총무와 손을 잡고 2006년 3월 31일부터 2007년 3월 21일까지 1년 동안 노력하였으며, 뒤이어 제8대 회장은 박정빈이 추대되어 양동운 총무와 2007년 3월 24일부터 2009년 3월 27일까지 두 해에 걸쳐 모임의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뒤를 이어 제9대 회장 송봉애가 이종희 총무와 2009년 3월 28일부터 2011년 5월 20일까지 2년간 호흡을 맞추었으며, 제10대 회장은 남석우가 선출되어 이종희 총무와 2011년 5월 21부터 2012년 12월 현재까지 회를 안정적으로 이끌고 있다.
팔마문학회 회칙을 보면 회장의 임기는 1년이고 연임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동안 팔마문학회 회장은 한 번 맡으면 총무와 함께 대개 2년씩 모임의 발전을 위해 헌신해왔으며, 2012년 현재 제10대에 이르게 되었다.
팔마문학 통신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이 이루어지려면 회원들에게 날짜와 장소를 통지해야 한다. 물론 매월 모임이 있을 때 다음 달의 모임에 대해 예고를 하지만 생업에 종사하다보면 잊어먹기 일쑤다. 그래서 모임 날짜에 근접한 시기에 다시 한 번 알릴 필요가 있다.
팔마문학회 초창기에는 월례회 안내장을 우편으로 발송했다. 당시의 안내장 명칭이 <팔마문학통신>이었다. 안내장에는 앞 달 모임의 활동내용을 소개하고 그 달의 모임 날짜와 장소를 비롯하여 회원들의 동정과 기타 알림사항 등을 담는다. 이것을 작성해서 회원 수만큼 복사한 다음 회원 주소를 쓴 봉투에 넣고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기까지의 공정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회 창립 이후 10여 년 동안은 그와 같이 통지를 했다.
2002년 4월 김혜련 회원의 노력으로 팔마문학 인터넷 카페가 개설되면서 번거로움이 대폭 줄었다. <팔마문학회 소식> 방에 월례회 날짜와 장소를 예고하게 되었다. 아울러 휴대전화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문자메시지로 알려주고 있어서 불편함이 대폭 감소되었다. 그러나 일부 연로한 회원들은 인터넷 접속이 원활하지 않아 불편을 겪는 사례도 없지 않다. 월례회가 끝나면 카페에 <모임 후기>를 올려 활동 내용을 공지한다.
모임 장소
월례회를 가질 때 항상 문제되는 것이 장소이다. 저녁시간에 모이는 까닭에 식사를 고려하여 장소를 정해야 한다. 회의 빠듯한 재정 형편을 생각할 때 식비도 부담되어서는 안 된다.
그동안 우리 문학회가 모인 장소는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 초창기에는 고려삼계탕과 궁전예식장 지하식당을 비롯해서 한식집 덕진회관과 중화요릿집 신천지 등을 전전했다. 그리고 상당기간 김종주 회원이 사는 연향동 부영아파트와 장애선 회원이 운영하는 대우한문학원의 신세를 졌다. 나중에는 연향도서관과 전교조 순천지회 사무실, 중앙서점 세미나실 등에까지도 발을 뻗쳤다.
그 후로는 북부시장에 있는 <세종회관>과 순천시청 아래쪽의 <수정회관> 및 시청 뒤편의 <명동회관>을 섭렵했으며, 2010년 2월 모임부터는 금당지구의 <가마솥추어탕>에서 몸임을 가지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로 소음이 없고 손님이 많지 않은 식당에서 모임을 갖고, 식사도 회비 지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되도록 간단한 것으로 하고 있다. 모임 장소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여유 있는 독지가가 나타나서 팔마문학회관을 하나 마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막연한 꿈을 꾸어볼 때도 있다.
문학기행
해마다 6월이면 팔마문학회 창립을 기념하는 문학기행을 추진한다. 문학과 관련된 지역을 탐방하면서 견문을 넓히고, 회원 간의 친목을 다지는데, 1년에 한 번씩 있는 바깥나들이기 때문에 회원들로서는 가장 신나는 날이다.
1993년 6월에 창립 1주년을 맞아 강진 영랑생가와 다산초당 및 청자도요지를 답사한 이후로 문학기행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시행되었다.
1994년에는 구례 운조루와 하동 칠불사, 1995년에는 고창 선운사와 모양성, 1996년에는 해남 녹우당과 대흥사, 1997년에 진도 운림산방과 남도석성, 1998년에 전북 부안의 매창공원과 채석강, 1999년에 벌교의 소설 태백산맥의 현장과 보성다원, 2000년에 지리산 연곡사와 하동 평사리, 2001년에 남원 혼불 마을과 지리산 실상사를 돌아보았다.
이어서 2002년에는 경남 통영 세병관과 한산도, 2003년에는 전북 군산의 월명공원과 채만식문학관, 2004년에는 담양 금성산성과 송강정 및 면앙정, 2005년에는 여수 금오도 대부산, 2006년에는 경남 함양 상림과 산청의 남명기념관 등지를 탐방하였다. 이때까지는 대부분 전세버스를 빌려 행사를 치렀으며, 회원 가족들도 다수 참여하였다. 가장 많은 인원이 참가한 것은 1996년의 변산반도 문학기행으로 40명이 동참하였다.
창립 15주년이 되던 2007년부터는 문학기행의 형식을 바꿨다. 전남문협에서 매년 6월에 ‘남도문학의 뿌리를 찾아서’ 심포지엄을 개최하면서 그 일대를 답사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서 여기에 동참하는 것으로 우리의 문학기행을 대신하기로 한 것이다. 문협에서 버스를 마련해주기 때문에 경비 절감에 도움이 되었다.
그리하여 2007년에 장흥 여다지해변과 천관산문학공원을 탐방한 이후, 2008년에 강진 영랑생가와 사의재 및 고금도 충무사, 2009년에 나주 영모정과 영상테마파크, 2010년 목포문학관과 해양유물전시관 및 유달산, 2011년 목포문학관과 자연사박물관 및 삼학도, 2012년 곡성 조태일시문학관과 기차마을 및 장미공원 등지를 다녀왔다. 단 2010년 행사는 전남문협의 영광 심포지엄이 일요일인 관계로 참례치 못하고, 자체행사로 치렀다.
시낭송회
1년 사계절 가운데 가장 시심을 자극하는 계절이 가을이다. 이러한 문학의 계절을 맞아 회원들의 시흥을 한껏 발산해보자는 뜻으로 1996년 9월 순천시내 카페에서 가을시낭송회 행사를 시도해보았다. 순천과 광양 지역의 문인들을 다수 초대한 가운데 성황리에 행사를 치렀지만 만만찮은 경비가 큰 부담이었다.
그래서 2000년 9월에는 형식을 바꾸어 죽도봉 공원 연자루에서 <시민과 함께 하는 열린 시낭송회>를 개최하였다. 2001년 9월에도 같은 장소에서 행사를 가졌는데, 시민들의 동참이 많지 않은 까닭에 우리만의 잔치로 끝나고 말았다.
이와 같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팔마 회원들만의 실내 행사로 내실을 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얻고, 2004년에 9월 광양의 레스토랑 메종, 2005년에 승주의 펜션 쉬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 동안은 광양 옥룡계곡의 두메산장, 2010년 순천 상사면의 민형기 화실, 2011년 승주의 펜션 쉬가에서 행사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올해 2012년 9월에는 좀 특별하게 지리산 대성동에 가서 행사를 치렀는데 아주 특별한 분위기였다.
동인지 발간
팔마문학회는 해마다 동인지를 펴낸다. 대개 11월에 회원들의 작품을 모아 12월에 책이 나오며, 순천문협에서 개최하는 송년문학의 밤 때 지역 문인들에게 배포된다. 20년의 세월이 흐르다보니 동인지의 호수(號數)도 제20호에 이르게 되었다.
초창기에는 당해 연도에 책을 내지 않고 다음해 1월이나 2월에 책을 냈다. 제9호까지 그렇게 했는데, 아무래도 지역문인들에게 배포하는 일이 어려웠다. 그래서 제10호부터는 계속해서 12월 송년문학의 밤에 맞추어 출판하고 있다.
팔마문학회의 동인지는 ‘팔마문학’이라는 천편일률적인 제호(題號)를 취하지 않고, 매호 제호를 달리 한다. 그 해의 책자에 실린 회원의 작품 제목 가운데서 하나를 골라 제호로 내거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 권의 작품집으로서 매호의 독립성을 살리고 신선미를 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지금까지 나온 작품집의 명칭과 표제작의 지은이 및 장르는 다음과 같다.
제1호『한 줄기 밝은 햇살로』(양준석 시), 제2호 『내가 소망하는 삶은』(김상복 수필), 제3호 『내일은 맑음』(이한나 시), 제4호 『일과 사랑』(장세주 시), 제5호 『저 환한 은행잎』(정양주 시), 제6호 『바다바라기』(이삼례 시), 제7호 『길에 들어서기 위한 준비』(조태섭 시), 제8호 『평행선』(김계선 시), 제9호 『그림자 지우기』(김혜련 소설), 제10호 『오아시스는 어디에 있는가?』(장병호 수필), 제11호 『까치 울던 날』(박정빈 수필), 제12호 『달천마을』(이삼례 시), 제13호 『살구나무 아래에 앉으면』(박정빈 수필), 제14호 『나의 별 자리는』(윤광진 시), 제15호 『첫눈이 내리던 날』(신성호 시), 제16호 『그림자 벗을 삼아』(기미순 시), 제17호 『내 삶이 꽃피는 날은』(신성호 시), 제18호 『하얀 구름』(김계선 시), 제19호 『갈대에게 길을 묻다』(남석우 시), 제20호 『스무 해를 하루 같이』(장병호 회고담)
동인지 표지화
팔마문학 동인지의 표지에는 처음부터 줄곧 지역 화가의 그림을 실어오고 있다. 여기에는 문학과 더불어 미술도 같이 독자들과 만나 지역 예술이 함께 발전하고자 하는 뜻을 담고 있다. 표지화를 선정할 때는 되도록이면 당해 동인지의 제호에 어울리는 그림을 선택하여 책자의 분위기를 살리려고 노력해왔다.
그동안 동인지에 실린 표지화의 작가와 그림 제목은 다음과 같다.
제1호 양준석 <가족>, 제2호 양준석 <소나무>, 제3호 홍성담 <꽃>, 제4호 홍성담 <가족>, 제5호 김덕기 <뱀사골의 가을>, 제6호 양준석 <꿈>, 제7호 박문수 <겨울 설악>, 제8호 서남수 <생-99>, 제9호 송차자 <자연-이미지>, 제10호 김용근 <순천하일>, 제11호 김용근 <까치 울던 날>, 제12호 박병철 <어촌 풍경>, 제13호 강홍순 <양귀비>, 제14호 배민옥 <세월의 공존>, 제15호 배은수 <Natural Image>, 제16호 나안수 <연(蓮)>, 제17호 기경자 <추억 속의 봄>, 제18호 이광호 <한라산 설경>, 제19호 김재일 <바람이 분다>, 제20호 김재일 <큰 나무>
여기서 홍성담과 김재일 화백을 제외하고는 모두 순천 출신이거나 순천에 재직 중인 분들이다. 홍화백과 김화백의 그림이 각각 두 차례 실렸는데, 이는 제호의 성격을 고려해서 분위기에 맞는 표지화를 찾아 그렇게 된 것이다.
특히 제20호의 그림은 20주년을 맞은 우리 문학회가 앞으로 큰 나무가 될 때까지 오랜 세월 번창하기를 바라는 회원 모두의 기원을 담았다.
동인지 속표지 경구
팔마문학회 동인지의 속표지에는 짤막한 경구(警句)들이 들어 있다. 이것은 제3호 때부터 싣기 시작한 것으로 유명 문학인들이 남긴 말이나 시구들로서 우리가 한번쯤 음미해볼 만한 내용들이다. 그동안 실었던 경구들을 한데 모아본다.
제3호 : 설사 당신이 죽은 뒤에 이 세상에 당신의 시가 세 편만 남게 되더라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시를 쓰십시오. 그리고 살아서 유명해져야겠다는 생각일랑은 아예 하지 말고 시를 쓰십시오. (에즈라 파운드)
제4호 :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함민복)
제5호 :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위험이 적다. 그렇지만 배는 그러자고 있는 것이 아니다. (홍신자)
제6호 : 험한 바위 만날수록 파도는 아름답다. (도종환)
제7호 : 시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킨다.(신경림)
제8호 : 발표 안 된 시 두 편만 가슴에 품고 있어도 나는 부자다.(정희성)
제9호 :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려면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하라.(푸블릴리우스 시루스)
제10호 : 물을 푸지 않으면 샘이 말라버리듯 글을 쓰지 않으면 생각까지 말라버린다. (전우익)
제12호 : 이 세상에서 제일 큰 것은 마음이다. 마음 안에는 담지 못할 것이 없느니…. (최명희)
제13호 : 문학은 외로운 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일은 외롭기 때문에 아름다운 일인지도 모른다. (안도현)
제14호 : 문학은, 창조는 항상 새로움이며, 새로움으로 향한 모험이라야 합니다. (박경리)
제15호 : 이름의 주인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그 이름의 느낌이 생기는 게다. 사람들이 네 이름을 부를 때면 은혜의 마음이 일어나도록 아름답게 살라 (신경숙)
제16호 : 좋은 소설의 기본원칙 가운데 하나는 독자에게 어떤 내용을 실명하려 하지 말고 직접 보여주는 것이다. (스티븐 킹)
제17호 : 사람이 문장을 지니는 것은 초목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 (정약용)
제18호 : 중요한 것은 안락한 삶이 아니라 충만한 삶이다. (법정)
제19호 : 행복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서 꽃처럼 피어나는 것이다. (법정)
제20호 :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태양이 있는 한 절망하지 않아도 된다.(헤밍웨이)
제1호와 제2호의 속표지에 경구가 없는데, 그것은 초창기라 미처 그것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제11호에서도 경구가 한 차례 빠진 적이 있는데, 당시 편집을 맡았던 회장이 미처 그 부분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함께 읽는 좋은 글
팔마문학회 동인지에 우리 회원들의 글만 실을 것이 아니라 국내 유명 문인들의 글도 한 편씩 실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글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팔마문학 제6호부터 <함께 읽은 좋은 글>이라는 이름으로 글 한 편씩을 실었다. 여기에 실린 글은 문인들의 창작활동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이다.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창작에 임할 것인가?’ 하는 내용이다. 특히 창작에 열의를 가진 초심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글들을 주로 골랐다.
그동안 동인지에 실었던 글의 필자와 제목들을 한데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제6호 서울대 권영민 교수의 <시를 읽는 사회>, 제7호 윤오영 수필가의 <양잠설>, 제8호 조지훈 시인의 <시의 비밀>, 제9호 이호철 소설가의 <문장 수련에 쏟은 정열>, 제10호 소설가 한승원 <글 잘쓰는 천재들의 말은 믿지 마라>, 제12호 조정래 소설가의 <문학 지망생에 주는 글 : 임우경 님에게>, 제13호 권영민 교수의 <아름다운 언어의 성찬을 만끽하는 즐거움>, 제14호 간복균의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작업>, 제15호 이어령 교수의 <명문장은 깊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힘에서 나온다>, 제16호 안정효 소설가의 <글쓰기의 하루>, 제17호 국문학자 김열규 교수의 <시의 멋, 시의 재미>, 제18호 김승희 시인의 <내 시 속의 카페인>, 제19호 서울대 김난도 교수의 <글은 힘이 세다>, 제20호 시골의사 박경철의 <글쓰기와 말하기>
이와 같이 제6호부터 국내 유명 문인들의 글을 고정 지면으로 실어왔고, 앞으로도 지속할 계획이다. 그런데 유독 제11호에서 <함께 읽은 좋은 글>이 한번 빠졌는데, 이 또한 당시 편집을 맡았던 분이 챙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인지 출판사
20년간 팔마문학회 동인지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출판사가 세 차례 바뀌었다. 스무 차례 책을 낸 점을 생각할 때 많이 바뀐 것은 아니라고 본다.
초창기에는 우리 문학회의 이효복 회원이 광주에서 <도서출판 글이랑>을 운영하고 있어서, 거기에서 창간호부터 제9호까지 아홉 차례에 걸쳐 책을 냈다. 팔마문학회의 어려운 재정 형편을 알고 저렴한 경비로 책을 만들어 주었다. 인쇄가 끝난 책을 손수 차에 싣고 순천까지 가져다주기까지 했던 이효복 회원의 희생적인 노고는 두고두고 잊을 수 없다.
그 뒤를 이어 제10호부터 제19호까지는 순천에 있는 <아세아기획>에서 냈다. 아세아기획은 도서출판에 많은 경험과 실력을 갖추고 있어서 우리가 많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우리의 취향에 맞게 책을 잘 만들어주었다. 특히 우리의 영세한 재정 형편을 잘 이해하고 저렴한 가격으로 책을 만들어주었다.
특히 고마운 것은 연말에 원고가 늦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래도 싫은 내색을 하는 법이 없이 빠른 시일 안에 책을 만들어서 순천문협 송년문학의 밤에 책을 나누어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아세아기획 이명환 사장의 깊은 배려와 노고 덕분이다.
이렇게 고마운 분들의 희생적인 노고 덕분에 우리 문학회는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알찬 동인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제20호 특집호를 내게 된 <신영기획>은 남석우 회장의 소개로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앞으로 팔마문학회와 좋은 관계가 유지되기를 빈다.
문예진흥기금 수혜
동인지를 출판할 때 자체 경비로 내자면 부담이 크므로 전라남도청에서 지원하는 문예진흥기금에 의존하게 된다.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그것이라도 있어야 회원들의 부담을 덜 수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문예진흥기금을 받으려면 먼저 순천시청을 통해 전남도청 문화예술과에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리고 지원대상자로 선정이 되면 책자 발간에 맞춰 송금신청서를 제출해서 지원금을 통장으로 받는다. 책을 낸 뒤에는 정산서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일련의 과정이 끝나는데, 이렇게 여러 차례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동안 스무 권의 작품집을 발간하는 동안 모두 14회에 걸쳐 지원금을 받았다. 제5호(1998년) 때 순천시청으로부터 120만 원의 보조금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으로부터 제6호(1999)에 대해서 150만 원을 받고, 그 이후로는 전라남도청에서 제7호(2000년)부터 제12호(2004년)까지, 다시 제14호(2006년)부터 제17호(2009년)까지, 그리고 제19호(2011년)와 제20호(2012년)를 받았다. 순천시청으로부터 1회, 전라남도청으로부터 13회 등 모두 합쳐 14회가 된다. 반면에 제1호부터 제4호까지, 제13호와 제18호 등 총 6회는 아쉽게 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자체 경비로 출간을 했다.
본디 문예진흥기금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관장했다. 그러다가 1999년 이후로 도청으로 사업이 이관 운영되어 왔다. 다시 2010년에 문예진흥기금 지원 업무가 전남도청에서 전남문화예술재단으로 이관되어 진흥기금 신청서를 순천시청을 경유하여 문화예술재단으로 제출하였다. 그런데 올해 2012년부터는 다시 방식이 바뀌어 시청을 거치지 않고 전남문화예술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직접 신청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지원금의 액수이다.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지원금이 100만원으로 못 박힌 채 변동이 없는 것이다. 물가상승에 비례해볼 때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앞으로 문화예술진흥 차원에서 반드시 현실에 맞게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등단 회원 및 저서
팔마문학회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회원들이 문단에 등단하여 작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우리 팔마문학회에서 현재 활동하고 있거나, 과거에 활동했던 분들로서 문예지에 등단한 회원들의 이름과 등단지를 정리해본다.
신갑식(수필, 문학춘추, 1994. 겨울호), 김종주(시, 문학세계, 1994. 3․4월호.), 최순애(시, 한맥문학, 1994. 7․8월호), 이채인(시, 앞선문학, 1995. 6월호), 박정남(시, 문예사조, 1997), 김영호(수필, 문학춘추, 1997. 봄호), 남석우(시, 한맥문학, 1998), 김혜련(시, 문학21, 2000. 4월호), 장병호(평론, 문예운동, 2000. 여름호), 윤광진(시, 한맥문학, 2001. 10월호), 김철중(시, 한맥문학, 2001. 10월호), 고영심(시, 광주매일 1월 신춘문예), 박정빈 수필(한맥문학, 2004. 2월호), 기미순(시, 한맥문학, 2004. 3월호), 송봉애(시, 문예사조 2006. 2월호), 박정빈(시, 한맥문학, 2006. 3월호), 전영희(시, 한국인문학, 2009. 겨울호), 최윤서(시, 한국인문학, 2009. 겨울호), 신성호(소설, 대한문학세계, 2010. 겨울호), 이금안(시, 문예운동, 2011년 겨울호)
우리 문학회에서는 회원이 등단을 할 때에는 ‘등단기념패’를 제작해주고 있다. 등단을 축하하며 앞으로 더욱 발전하기를 바라는 기대를 담은 패이다. 그리고 20년의 세월이 흐르는동안 수많은 회원들이 시집이나 수필집 또는 평론집 등의 개인 작품집을 출간한 바 있다. 이들을 연도순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김종주 시집 『울음을 울음으로 통역해 주세요』(글이랑, 1994), 최순애 시집 『노짐고개』(글이랑, 1995.10.), 박진환 시집 『구기자꽃이 피는 아침』(조선문학사, 1996), 장효문 시집 『사랑아 내 사랑아!』(살림터, 1997), 박정남 시집 『석양 앞에 서니』(한맥문학사, 1998), 남석우 시집 『대답 없는 날들의 그 웃음』(동아기획, 2001), 최순애 시집 『사모곡』(아세아, 2003.1.), 김철중 시집 『저 높은 곳을 향하여』(코람데오, 2003.9.), 남석우 시집 『내 안의 작은 우주』(동아기획, 2004.3.), 윤광진 시집 『내 마음 실어가는 봄바람』(도서출판 아세아, 2005.5.), 김영석 시집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어머니』(대우, 2005.10.), 남석우 시집 『방짜수저공장』(도서출판 신영, 2006.9.), 박정남 시집 『오솔길』(MK미디어, 2006.12.), 김혜련 시집 『피멍 같은 그리움』(한솔, 2007.11.), 고영심 시집 『기린 울음』(삶이 보이는 창, 2007.3.), 최순애 시집 『고향길』(을지출판공사, 2008.7.), 장병호 문학평론집 『소외의 문학 갈등의 문학』(시와사람, 2008.8.), 김해양 소설집 『갈릴레이의 변』(청어, 2008.10.), 장병호 수필집 『코스모스를 기다리며』(빛나리, 2008.11.), 박정빈 시집 『하얀 물소리』(도서출판 늘보, 2009.12.), 김혜련 시집 『가장 화려한 날』(그림과 책, 2010.5.), 남석우 시집 『남석우시선집』(동아기획, 2010.12.), 장병호 수필집 『천사들의 꿈노래』(문학마을, 2010.12.), 송봉애 시집 『쉰, 그님이 오셨네』(심미안, 2011.11.), 박정빈 수필집 『바람이 사는 동네』(도서출판 늘보, 2012.9.), 장병호 순천 문화유적 탐방기 『연자루에 올라 팔마비를 품다』(도서출판 아세아, 2012.12.)
작품집은 작가가 일정 기간 동안 발표했던 창작품을 한데 묶음으로써 개인에게는 작품 활동을 총결산하는 의미가 있고, 독자에게는 작가의 문학세계를 한눈에 보여주는 구실을 한다. 그래서 작품집을 한 권씩 내면서 작가는 한 단계씩 성장을 하게 된다. 앞으로 팔마문학회 회원들이 더욱 절차탁마하여 알찬 결실들이 나올 것을 기대한다.
떠나간 회원들
팔마문학회 활동을 하던 분들이 인연에 따라 모였다가 인연이 다해 헤어지다 보니, 스무 해 동안 구성원의 변동이 꽤 심했다. 탈퇴한 분들은 대개 다른 고장으로 거주지를 옮기다보니 문학회 활동이 어려운 경우도 있지만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어느 날 갑자기 발길을 끊고 연락이 두절된 분들도 있다. 그런 분들에 대해서는 아쉽고 서운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문학 활동이라는 것이 강제나 의무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로 하는 것인 만큼 남아 있는 회원들의 입장에서는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는 형편이다.
한때 팔마의 울타리에서 반갑게 만났던 분들의 이름을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길석규 김성규 김영석 조수향 오명주 황선주 임송본 김경옥 황미숙 권민선 이형근 이규황 김민숙 조윤주 송진아 양재삼 장채열 김영아 나승록 김연자 김태이 장효문 신갑식 박진환 이채인 김상복 장애선 염장섭 김종주 주서호 김석환 연 암 이한나 이재신 장세주 이금안 강윤영 배선임 정양주 안미경 송창용 박희정 박재희 추정례 박은애 양준석 정혜숙 윤재왕 고영심 이중재 최효진 신의섭 이미옥 정희자 김영호 조태섭 김화정 김철중 손 샘 김준영 신예리 조금자 박맹식 이두엽 김기춘 박정남 임상호 한영식 문은주 오선님 기미순 조숙일 김해양 양동운 김미정 김계선 이삼례 정 현 우지수
스무 해에 걸쳐 80명 가까운 인원이 팔마를 거쳐 간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사정에 따라 팔마문학회를 떠났지만 문학회에 몸담고 있는 동안 모임의 발전을 위해 열성을 다해준 데 대해 감사를 드리며 건승을 빈다.
현재 활동하는 회원들
오늘날 팔마문학회에 몸담고 활동하고 있는 회원들은 스물 한 명이다. 회원의 연령은 30대에서 80대까지 널리 분포되어 있는데, 40~50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20~30대의 젊은 층이 많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러나 이러한 고령화 현상은 어느 문학동아리나 비슷한 상황임이다.
현재의 팔마회원 가운데는 다른 지역에 거주하면서 인터넷 카페회원으로 활동하는 분들도 있는데, 나름대로 문학에 대한 열정과 역량을 갖춘 분들이어서 회원에 포함하고 있다. 2012년 12월 현재 활동 중인 팔마가족들은 다음과 같다.
장병호 전영희 최순애 윤광진 김혜련 양승화 송봉애 박정빈 남석우 이종희 김종춘 이정선 김부선 윤계원 이금안 최윤서 주승자 김연이 신성호 지소은 이한나
이 가운데 장병호(1992년 6월 창립)를 비롯해서 전영희(1993년 5월 입회)와 최순애(1994년 3월 입회), 윤광진(1999년 2월 입회), 김혜련(2000년 7월 입회), 양승화(2000년 7월 입회), 송봉애(2001년 8월 입회), 박정빈(2002년 1월 입회), 남석우(2002년 4월 입회) 등 아홉 명이 10년 이상 활동하고 있는 회원들이다.
10년 미만의 회원들도 앞으로 꾸준히 활동하여 팔마를 튼튼히 이끌어갈 것으로 믿는다. 또한 팔마의 미래를 짊어질 젊고 역량 있는 신인들이 많이 들어오기를 바란다.
한 줄기 밝은 햇살이 되기 위하여
팔마문학 동인지 창간호의 제목이 『한 줄기 밝은 햇살로』로였다. 팔마문학이 지역문학은 물론 한국문학에서 한 줄기의 빛으로 존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러한 제목을 내걸었다.
그런데 정작 강산이 두 번 바뀐 오늘의 시점에서 과연 우리가 그만한 구실을 했는가를 되돌아볼 때 솔직히 부끄러운 생각이 앞선다. 나름대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오기는 했으나 지역문단이나 한국문단에 특별히 기여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겨우 자기 앞가림이나 할 정도를 가지고는 한줄기 빛이 되었노라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이는 우리가 뼈저리게 반성할 부분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승부한다. 좋은 작품을 썼을 때 작가는 빛을 발한다. 좋은 작품으로 독자에게 감동을 주었을 때 비로소 작가는 빛을 얻는다. 우리 회원들이 절차탁마하여 감동을 주는 작품을 썼을 때 팔마문학회도 빛나는 것이다.
스무 해를 살아왔지만 우리는 아직도 크게 부족하다. 우물 안에 갇혀서 자화자찬해봤자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 오히려 비웃음만 살 뿐이다. 부족한 것을 인정하고 뼈를 깎는 마음으로 분발해야 한다. 문학을 여기(餘技)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문학을 적당한 놀이삼아 하려면 빨리 그만두어야 한다. 기왕 문학의 길에 들어섰다면 전력투구해야 한다. 그래야 한 줌의 성과라도 얻을 수 있고, 독자에게 희미한 호롱불이나마 되어줄 수 있는 것이다.
팔마문학회 창립 스무 돌을 맞아 회원들의 뼈저린 반성과 분발을 촉구하며, 앞으로 진정 우리가 이 땅에서 한 줄기 햇살로 빛을 떨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집필 장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