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단기선교를 위한 자료들
1. 마음가짐
첫째, 모든것이 국내와 같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말라. (기대감 조정) –
Adjustment of expectation
둘째, 어떤 것이든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모든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Acceptance challenge( new environment ).
셋째, 다른 사람을 고치려고 신경을 쓰지말고 보든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Acceptance person
넷째, 자신이 조국과 예수 그리스도를 대표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마라.
Being representative
다섯째, 지나치게 걱정하지말라.
No weary
여섯째, 여권을 항상 가지고 다니라. 여권이 없는 사람은 나라가 없는 사람이다.
Keeping passport
일곱째, 감사하다는 말을 항상하고 감사의 말이 팁보다 낫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라.
Saying thanks
여덟째, 로마에서는 로마식으로 행동하고, 어려울 때는 상식과 친절로 해결하라.
Solution problems with kindness and common sense
아홉째, 당신과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을 판단치 말고 그의 필요를 채워주라.
No judging but satisfying needs
열째, 당신이 그나라에 손님으로 간 것임을 잊지 말라. 주인을 존경하면 그들이 당신을 존경할 것이다.
Respect
2. 주의사항(금기사항)
첫째, 영적인 사역에만 치우치고(기도,말씀, 전도하는 일만 하려면),
트럭에서 짐내리기, 밥하기, 건물 청소하기등 하챦은 일은 안하기.
Neglecting physical service
둘째, 여행 스케쥴이 빡빡해서 규칙적인 성경묵상과 기도 빼먹기
Skipping daily spiritual meditation & prayer
셋째, 계획된 스케쥴데로만 하고, 비행기 연착, 갑작스런 계획변경, 즉석에서의 방문과 초청 허용안하기.
No flexibility
넷째, 선교사님들은 최신 정보를 모르니 선교사님들을 돕기 위해서
리스트를 작성해서 선교사님의 실수를 지적해서 고쳐주기.
Criticism
다섯째, 현지 주민이나, 선교여행 동료끼리 로맨틱한 사랑을 시작하기.
Romance
여섯째, 자기나라 말만 하고 현지어 하나도 안하기.
No adoption of local culture - language
일곱째, 자기 팀원의 잘못을 지도자에게 현장에서 지적하기.
Breaking team spirit (team work)
여덟째, 현지 음식에는 손도 안대기.
No adoption of local culture - food
아홉째, 선교 여행 경비를 완전히 내지 않은 사람 따돌리기.
Excommunication one out of all
열째, 귀국후 교인들의 헌신과 기도와 재정지원 부족을 불평하기
Complaining on week commitment, prayer and financial support of congregation
3. 알아두면 좋은 상식 (에티켓)
캄보디아 사람들은 대체로 온순하고 친철하다. 여기도 동양권이라 체면 문화가 형성 되어있다. 특히 외국인에게는 더욱 친절하고 호의적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 보다는 약간 느리다. 여인들도 빨리 걸으면 예절이 없는것으로 생각한다. 천천히 걸어야하고 조용히 얘기 하여야한다. 만약 어떤 오해가 있어도 웃으면서 처리 해야지 인상을 쓰거나 큰 소리를 지르면 상대방에서 더 큰 오해를하고 적대시 한다. 직선적인 것을 피하는 것이 지혜롭다. 최근에도 어떤 한국회사의 간부가 회사직원이 봉급을 올려달라는 요구를 거절하자 칼을 들고 회의장에 들어와서 두명의 한국인 경영관계자를 살인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들은 평소와 달리 화가나면 감정처리가 되지않아 쉽게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다. 아름다운 미소와 “옥꾼”하며 감사를 잊지 않는다면 여행은 즐거울 것이다.
의상은 긴소매 셔츠와 긴 면바지가 좋다. 직사광선에 노출되기 때문에 자외선을 차단하기도 좋고, 모기나 곤충의 피해를 줄일 수도 있다. 특히 이곳에서는 노출이 너무 많은 옷이나, 짦은 옷을 입는것은 예절에 벗어난다.
(건강)
불행하게도 캄보디아의 의료사업 기초망은 여전히 노후하다. 종합 병원 까르멧이 있기는 하나 위생과 비상시에 대처능력이 많이 떨어진다. 대부분 큰 수술과 비상시에는 태국으로 가서 치료 및 수술을 받는다.
여행자들을 위한 조언 : 캄보디아는 말라리아,댕기가 흔하다. 그래서 인섹트 리펠런트는 꼭가지고 다니는것이 좋다. 체력이 떨어진 사람들은 체력보강을 하고 오는 것이 좋다. 날씨가 무덥기 때문에 물을 자주 마시고 식사를 잘하고 비타민등 영양제를 복용하는것을 권장한다.
(사진)
프놈펜에서 사진 필름은 어느곳에서나 가능하다. 아그파, 후지 그리고 코닥 필림이 팔리고 있다. 필림현상도 곳곳에 있어 용이하게 할 수 있다. 물론 질은 각각 다르지만. 비디오 필림도 괜챦은 가격으로 만들수있다.
캄보디아인들은 대체로 조용하고 예의바르다. 사진을 찍자면 별 상관하지 않는다.
그래도 사진 찍기전에 물어보는게 좋다. 그리고 캄보디아 사람들은 기념 사진 찍기를 무척 좋아한다. 가까운 사진관에 가면 각국 전통 의상들과 파티 드레스등을 준비해 두고 입혀주고, 화장까지 해 줘서 아주 싼가격에 찍어준다.
좋은 기념품이 될수 있다.
(통화와 환전)
캄보디아 통화는 리얼이다. 전국 어디서나 시장 근처에는 어김없이 몇 군데 환전상이 있다. 10만, 5만, 2만, 만, 5천, 2천, 1천, 5백, 2백, 1백, 그리고 오십 리얼이 있다.
그러나 많은경우, 물품거래가 미화 달러로 될 때가 더 많다. 에를들어 호텔요금. 그리고 타이랜드 바트는 빠일른 뽀이뻿, 꼬꽁같은 국경도시에서는 가장 많이 사용되는 가격 단위이다. 물건값을 바트로 표시.
심지어 꼬꽁에서는 국경 통과시 비자비도 타이 바트로 받는다. 엄연히 20불 25불로 알려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외국인에게 바가지 요금을 적용하기위한 수법? 이다.
미리 사진(명함판)을 항상 2,3장씩 여권에끼어 다니면 피해를 덜본다.
(쇼핑정보)
슈퍼마겥을 제외하고는 물건을 살때는 흥정을 꼭해야한다. 이곳의 상인들은 정찰제에 익숙하지 않고 서로 흥정하는 데 익숙하므로 가격을 깍을것을 예상한 금액을 부르기 때문이다. 모토, 시클로등을 탈때도….
기념품 을 가장 많이 파는곳은 프놈펜에서는 러시안 마켙(프사 뚤똠봉) 과 센트랄마켙(프사톰트마이)이 유명하고 시엠리읍에서는 올드마켙(프사짜)이 있다.
캄보디아산 상황버슷과 노니와인은 한국에서도 알려져 있다. 프놈펜 시내의 몇몇 한국 식당에서 판매를 하기도 한다. 더욱 저렴하게 구입하려면, 오르세이마켙(프사 오르세이)에가서 집 번호( 프떼야레익) 59번에서 65번( 삐 레익 하섭 또으 혹섭쁘람) 사이를 찾으면 쉽게 많이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공항에서 입국시에 가지고 들어가는 량이 제한 되어 있어 대량으로 가져가면 검색에 걸려 세금을 물어야한다.
4. 캄보디아 교육제도에 대한 개략적 고찰
공립학교는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와 비슷하다.
유치원(살라멋따이) 1년과정
초등학교 (바토머석사) 6년과정 초등학교 6년과정을 마치면 Certificate을 주고, 졸업시험은 주(Province) 마다 출제 시험을 내서 치르게 한다.
중등학교(아눗뷧찌어라이) 3년과정 중학교 과정을 이수하면 중요한 졸업 시험을 본다. 이 시험은 교육부에서 출제, 주관한다. 시험에 통과하면, Certificate를 주고, 고등학교에 진학 할 수 있게 한다.
고등학교(뷧찌어라이) 3년과정 고등학교 과정을 잘 이수하면, 큰 시험이라 불리는 시험을 친다. 교육부에서 출제, 주관한다. 이시험은 매우 중요하여, 우수한 성적을 가진학생은 대학교를 선택 할 수있고 장학금을 받게된다. 합격자들은 Diploma를 받고, 시험에 떨어진 학생들은 졸업은 하지만 디플로마를 받지 못한다.
대학교(사꼴뷔찌어라이) 4년과정 (학사 디그리) 2년과정(전문대 디그리)
학사과정에서, Art (인문과학)를 하는 학생은 Khmer Literature
를 반듯이 공부해야하고, Science(자연과학)을 공부하는
학생은 Math를 반듯이 이수해야한다.
캄보디아에는 공립 대학교는 Royal University of Phnompenh(로얄 프놈펜 대학) 비롯해서 10개 정도 있다. 여기서는 단과 대학를 하나의 독립된 대학으로 간주하는듯하다. 한국과 다른점은 종합 대학교 안에 단과대학이 있어 하나의 총체적인 운영체계를 가진 한국과 달리 이곳은 각 단과 대학이 각 부처의 소속으로 정부의 각 부처가 관리 운영한다. 예를 들어 의과 대학은 보건부의 관할으로 보건부(Ministry of Health and science)가 운영관리한다.
1. Royal University of Phnompenh
이것은 종합대학이란듯인“사꼴뷔찌어라이”라고 불리는데, 두개의 단과 대학( 마하뷔찌어라이 라고 불린다)과 외국어 학부을 합한 것이다. 자연과학대 (Science) ----- 생물학, 화학, 콤퓨터, 환경과학, 수학, 물리학과가 있다.
인문 사회과학대(Social Science &Humanities) ---- 지리학, 역사, 크메르어 크메르문학, 사회학, 심리학, 미디어 통신학, 관광학, 언어학과가 있다.
외국어과(institute of Foreign Language)에는 영어, 불어, 한국어와 일본어도 강의 되고 있다. 그리고 외국인을 위한 크메르어 강의가 진행되어 많은 외국인들이 배우고 있다. (참고로 한텀에 200불이며, 3개월이 한텀이다) 조만간 타이어도 가르친다고 한다.
2. National University of Health Sciences --- 보건부 관할이다.
의과대에는 Doctor, Pharmacy, Dentist 세 단대로 나누어 지는데, 예과는 1년 본과는 5년이며, 인턴 레지던트는 2년이라고 한다.
간호 대학 (Nursing School)살라뻬잇 ---간호대는 3년과정이며, 전국에 4개 정도 있다.
캄퐁챰, 바탐봉, 프놈펜, 스떵뜨레잉 주에 있는데, 과정을 모두 마친 학생들은 시엡리읍에 있는 정부 병원에서 1달 훈련과정을 밟는다. 이과정후에는 졸업 시험을 친다. 졸업자중에서 공부를 더하고 싶은 학생들은 프놈펜에서 1년을 더 공부하여 산파(Mid Wife)가 된다. 의과대와는 분리되어 있는데 이것은 간호원을 배출하는 기관이지만 학사 디그리를 주지는 않는다.
3. National Institute of Education(Faculty of Pedagogy)---- 여기에는 두가지 학교가 있다.
한국에서 말하는 사범대학과 교육대학과 같은 개념으로 보면 될것이다.
National Pedagogy Institute ( 사범대학) ---- 3년제로서 고등학교 교사 배출
Phnompenh Pedagogy College (교육대학) --- 2년제로서 초등학교 중학교교사를 배출한다. 캄퐁솜, 다케오, 껀달, 바탐방등 더의 모든 지방에 하나씩 2년제 교육 대학이 있다. Royal University of PhnomPenh 을 졸업한 학생들이 교사를 하기를 원하면 다시 사범 학교 에서 1년과정을 더 공부해야한다.
4. Royal University of Fine Arts
5. Faculty of Law and Economic Sciences
6. Royal University of Agriculture
7. National Institute of Management
9. Institute of Technology of Cambodia
10. Moyarishi Vedic University (located in Province)
거의 대부분의 공립 대학은 프놈펜에 있고(프놈펜에 10개 & 쁘레이베잉이라는 지방에 1개), 정부 각 부처에서 운영을 하고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그저 하나의 종합 대학으로 운영 할텐데, 각 부처의 힘이 작용하였는지 운영이 교육부 관할아래 있지 못하고 있다. 그외에 많은 사립 대학교(Private University)가 있는데 대개 24개 정도의 대학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반야사스트라 대학, BBU 그리고 Norton 대학 등이다. 그러나 그규모나 여러가지 면에서 단과대학 같은 성격을 뛰는것 같다.
학비 ---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는 수업료가 없다. 그러나 실제, 학교를 다니려면 일 년에 $2.5 ( 10,000리얼)정도를 낸다. 프놈펜 대학교의 학비는 두가지로 나뉘는데, Scholarship students와 Non Scholarship Students 로 나뉜다. 상당히 많은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고 공부하고 있는데, 졸업고사에서 획득한 점수에의해서 장학금액이 결정된다. 전면 장학생, 부분 장학생과 전면 학비 자부담생이 있는데, 1년에 해당과에 따라서US$200내지 US$450 정도의 수업료를 낸다.
2003-2004년 교육부 편람에 따르면,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의 수는 7,999개이다.
교육부의 Director of Cabinet 인 라타 치브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알게된 현재 교육상황은 어둡지만은 않았다.
1. 그에 따르면 교사 수급은 어느정도 원활하게 이루어진다고 한다. 다만 극도로 오지인 경우는 교사들이 가서 가르치기를 꺼리고 심지어 쉽사리 교사직을 포기한다. 그는 “ 이는 부분적인 어려움이지, 전체적으로는 큰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2. 어려운점은 오지인경우 학생들이 집에서 학교가지의 교통편이 없는 것이 라고한다.
3. 교육의 질에 대해서는 캄보디아는 현재 Reform 의 진행중에 있으며, 어느 정도 수준이 (과거보다 는)올라 있다고 보고, 앞으로 주변국의 높은 수준까지 올라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한다.
4. 여자 어린이 들의 교육기회의 균등을 위해서 힘쓰고 있다. 남자 학생수와 여자 학생수의 차이가 아직도 크다. 몇몇 NGO 에서 여학생들을 위해서 스폰서를 구해주거나, 여자 학교에 기숙사를 만들어주거나(예를 들어 캄뽕츠낭 지역) 등등의 노력을 보여 주고있다.
5. 교사의 월급여가 현실화 되어야하지만 캄보디아에 만연되어있는 구조적 문제이다. 실제 교사들이 그들의 봉급으로는 기본적인 가정생활을 영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온갖 종류의
부정이 빈발한다.
OMF 의 자료는 “ 30Days Focus On Cambodia” 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현지에서 선교하는 선교사의 입장에서 본 캄보디아의 교육현장에 대한 평과와 비젼
김은실 선교사가 본 교육의 문제점과 해결모색
1997년도에서 2000년 사이의 캄보디아 학교 교육은 그야말로 제데로 관리 되지 않는 책임지지 않는 학교였다. 우선 공휴일이 너무 많은 데다, 교사의 자질과 학생들의 대응이 그야말로 적당히 시간을 메우는 식이었다. 예를 들어, 본인은 사역 초기에 영어를 가르친 적이 있었는데, 영어 선생님들이 수업에 왔다. 그 중 한명은 원래는 크마이어 선생님이었다. 정부가 새로이 영어 진흥정책을 세웠는데 (그전에는 프랑스 식민 통치의 영향으로 많은 지식인들이 불어를 배웠음), 영어교사는 절대부족 이었다. 그래서 그 해결책으로 아무 과목 교사든지 3개월간 , 외국 NGO의 도움으로 정부에서 제공하는 곳에 모여서 외국인 강사로 부터 Training을 받고 캄퐁솜에 교사 발령을 받아서 내려왔다. 그는 영어 교사기 때문에 사전을 계속 가지고 다니며 단어를 줄줄이 외고 다녔지만, 그의 문법 실력은 그야말로 기초가 없었다. 수업시간에 통역을 부탁 했었는데, 그 영어 선생님이 해석하면 어떤 학생들은 웃고 어떤 학생들은 짜증을 부렸던적이 많았다. 이것은 교육의 수준을 보여주는 한 보기에 불과하다. 그리고 학생들은 학교를 자주 결석했다. 오늘은 이래서 내일은 저래서 안 간다고 했다. 농번기라서, 선생님께서 결혼식에 가셔서, 비가와서, 심지어 크마이 새해나 다른 명절에는 한 달씩 가지 않고 우리 선교센타에 와서 영어 공부를 했다. 이렇듯이 많은 문제점들이 있는데 몇가지를 이야기 해 보려고 한다.
1. 교사들의 봉급의 비현실성과 그에 따른 동기 결핍
2. 열악한 학교시설 과 환경
3. 낮은 교사의 교육 수준과 교사 사명감 부재
4. 도시 교육 집중 발달과 지역간 불균형
5. 남여간 교육기회의 불균등
6. 부모의 낮은 교육의 중요성 인식과 경제적 어려움
7. 뿌리 깊은 불교가 학교 교육에 미치는 영적 문제
1. 교사의 봉급의 비현실성과 그에 따른 동기 결핍
박봉에도 불구하고 좀더 학교를 발전 시키고 싶어하는 비젼을 가진 학교 교장 선생님들을 만나 본 적이 있다. 물론 크리스챤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그저 포지션을 확보를 위해서 자기 이름을 올려 놓은 이들이 많다. 예를 들어 현직 군인 활동을 하지 않는 자들이 매월 받는 봉급을 상관과 같이 나누어 가지는 식으로해서 이름만 올려 놓고, 실제 자기 개인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경우 와 같다. 고급 장교가 시찰 올 때나 한번씩 군대에 들어가 머리수 만 채운다. 그럼에도 여전히 교사직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과거 시하누크 국왕의 집권기에, 교사의 봉급이 거의 국회의원 봉급 수준 만큼 많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그들도 언젠가는 개선 되는 날이 오겠지 바라보면서 자리 메김만을 하고 있는것이다. 그래서 가르치고 개선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다. 사실 그들의 봉급 20여불은 현재 오토바이를 매일 타고 학교에 출 퇴근하는 기름값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교사들은 학생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자가 되지 못하는 것은 명약관화이다.
그리고 교사가 자기개발에 최선을 다하기를 바라기란 어려운 일이다.
2. 열악한 학교시설 과 환경
그리고 캄보디아 학교에는 화장실과 우물이 없는 학교가 아직도 많다. (교육부의 통계 참고) 아직도 흑색 칠판을 이용하고, 흰색 분필을 사용한다.
3.낮은 교사의 교육 수준과 교사 사명감 부재
라따나끼리라는 북동부에 있는 주는 소수 민족( 쭌찌엇 피어딕) 이 많이 살고 있다. 13개정도의 크고 작은 소수 민족은 대부분 라오스나 베트남계이고 중국계도 있다. NGO등의 도움으로, 각 소수 민족 지역에 학교가 세워져있고, 우물도 파져 있어 전에 보다 는 많은 생활의 진보가 있기는 있지만, 학교에 학생들이 가면 교사들이 자주 프놈펜이나 어떤 개인적인 이유로 타도시에 가서 돌아오지 않아서 매일 학교에 갔다가는 그냥 돌아오곤한다. 또 그런 것에 대해 그러려니 생각하고잘 이해하고 받아 들인다. 그러다 보니 학교 공부에 흥미를 자연적 잃게 된다.
학교는 있지만, 교사와 학생이 없는 학교도 많있다. 그리고 오지로 발령을 받는 교사들은 쉽사리 자기직업을 포기하고 다른 도시에가서 직업을 구한다.
캄퐁솜 시내에서 약간 외진 곳 바다 가까이에 23가구가 무허가 건축을 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집지을 땅도 없고 가난하여 길가에 그냥 마른 풀을 이어 집을 짓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곳은 캄퐁솜 시내이지만 학교가 멀다. 어린이들은 학교가 너무 멀어서 걸어가기가 힘들다. 비가 오는 우기에는 길이 질어서, 건기에는 햇살이 너무 뜨거워서 힘이든다. 그리고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이 시험 문제가 적힌 종이를 판다, 또 교실에 사탕을 갖다놓고 학생들에게 사먹으라고 한다. 사먹지 않으면 미움을 받는다. 그리고 선생님이 여는 개인 교습에 가지 않으면 시험문제를 입수 할 수도 없다. 그래서 학교에 가서도 선생님 눈치 보기도 힘들고, 선생님으로 부터 과자를 사먹거나 시험 문제 카피된 종이도 살 수 없어 학교가는것 보다는 비치에 나가서 노는 편이 더쉽고 당연한 것이었다.
4.도시 교육 집중 발달과 지역간 불균형
부의 도시 편중현상이 교육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도시에서의 캄보디아인의 교육열은 대단하다. 시골에서도 프놈펜으로 자녀를 공부 시키려고 온 가족들이 희생하며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꽤나 있다. 이렇듯 도시간 지방간 차이가 많이 난다. 프놈펜이나 캄퐁솜에서 교육열이 높은 가정의 자녀들은 아침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많은 과목의 과외공부를 한다. 그리고 영어, 불어,중국어 까지 몇가지 언어를 한꺼번에 배운다. 오후 다섯시에서 7시까지 도시에서는 구석구석이 영어배우는 공부터가 된다. 그러나 시골의 아이들은 너무 많은 자유시간이 있고 시간을 소중하게 쓰는법을 배우지 못한다.
5.남 .여간 교육기회의 불균등
캄보디아 학생수 성별비교표를 보면 남학생이 여학생의 수보다 2배정도 많다. 가정에서 남아를 여아보다 존중히 여기는 아시아 지역의 전통적 사고 방식을 볼 수 있다. 최근 도시로 갈수록 여학생 수의 비율이 올라간다. 시골지역에서는 월등히 차이가 난다. (교육부 도표 참조)
6. 부모의 낮은 교육의 중요성 인식과 경제적 어려움
예를 들어 빠일런의 뽀후이 산 중턱에는 정부가 2년 전 쯤에 세운 학교가 있다. 정부학교는 산위의 동네와 산아래 동네의 학생들이 모두 학교에 다닐 것을 예상하고 세웠다. 그러나 형편이 좀나은 산아래 동네의 학생들은 학교에 다니지만, 산 위 동내 아이들은 집안 일을 하든가 동생들을 돌보고, 집을 지키느라 학교를 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부모님이나어린 사내아이들이 노천광에서 금이나 보석등을 찾느라 채를 쳐야하기 때문이다.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노동을 강요하는 경우도 많이있다. 그 부모들은 자식을 가르치고 싶지만, 막태어나거나 더 어린 아이들이 스스로 집에 있을 수 없고 집을 지켜야하니 우리가 교사를 자기네 산꼭대기에 와서 자녀들을 가르쳐 주기를 원했다. 그래서 우리가 후원하는 교사 한 명이 매일 오후에 5시에서 6시 사이에 올라가서 가르친다. 학교는 있지만, 현지인들의 의식 부족으로 또는 피치 못하는 삶의 현실 때문에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다. 절대적인 가난과 낮은 정신력으로 인해서 자식들을 농사일이나, 노동터로, 식모로 내 보내는 부모들과 심지어는 홍등가에 미성연자녀 를 파는 부모들도 있다.
지금 현재는 교과서가 개편되고, 많은 학교가 지워졌고, 전에 보다는 학교의 규율과 규칙이 이전보다 잘 이행된다. 이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진보를 보인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도시에서나 그렇다. 이번 크마이 새해( 쬬울 츠남트마이)에는 큰도시에서는 1주일간만 휴일을 하지만, 다른 시골에는 아직도 1달을 쉰다. 공식적인 공휴일 기간은 4월13일에서 15일까지 이지만, 3월 말 부터 4월말까지 개인적으로 공휴일을 선포하고 휴가들을 떠난다.
이것은 단지 국민 의식의 문제 만은 아니다. 실제로는 경제적인 요인이 더욱 크다. 예를 들어 고향에 갈 때 교통편을 이용하는데, 새해에 가까운 날일 수록 교통편이 너무 비싸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무 많은 사람들을 차에 실어서 사고의 위험성도 있기 때문에… 그래서 가능한 정상적인 가격일 때 고향으로 가고 휴일 끝에나 천천이 돌아오곤 한다. 고속도로가 잘 닦이고 자가용차가 있고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한 달간의 새해 명절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7. 뿌리 깊은 불교가 학교 교육에 미치는 영적 문제
프놈펜 대학에서 크메르어 강좌를 들을 때 있었던 일인데, 4월 13일은 캄보다아 새해 인데, 그 날을 전후한 일주일은 휴일로 쉰다. 근데 그 전 금요일에는 특별예식이 있는데, 불교 승려들이 와서 새해의 축복을 비는 기도를 했다. 그림에 그려진 석가모니의 초상과 그 앞에 바나나등의 과일들과 꽃을 차려 놓고 염불을 왠다. 그때 의자에 앉아 있는 외국인 학생들더러 의자 에서 내려 앉으라고 했다. 최고 승려보다 더 높은 위치에 아무도 앉거나 설 수 없다는 거였다. 최고의 학문의 전당에서 불교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그리고 한국해병대가 캄보디아 해군을 훈련시켜주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그 훈련 발단식을 할 때에도 함참의장 해군 사령관 모두 참석한 행사 였는데, 가까운 절의 승려들 에게 축복을 기원해 달라고 많은 선물을 주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절하고, 승려들은 염불을 왜는 것을 본적이 있다. 그리고 캄보디아의 공립학교는 아침조회때 우리나라의 조국에 대한 맹세 같은 것을 학생들에게 외우게 하도록 약 3년전서부터 실시하고 있다. 국가 종교가 불교이기에 삶의 구석구석에 뭍어있는 불교와 전통의 가면으로 속이는 악한 영의 영향력이크다.
그리하여 우리학교 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마을에서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영어와 크메르 그리고 찬양 시간은 더 할 나위 없이 즐거운 시간이 된다. 배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미래에 대한 비젼을 심어 주었다. 그리고 정부학교에 갈 수 있도록 각 가정마다 자전거 사주기 운동을 펼쳤다. 이제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도 뜻뜻하다. 영어도 다른 아이들 보다 더 잘하고 여러면에서 실력이 있고 자신감도 있다. 그러나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면 다시한번 좌절의 위기가 온다. 집에서 중학교는 자전거를 타고 갈 만한 거리가 아니다. 그래서 진학하는 학생들에게는 교통비를 얼마씩 후원해 주기로 했다. 그러나 집안이 너무 가난하다보니 학교를 다니지 않고 성경학교 산에 와서 공부하고 싶어한다. 그 중 한 여학생이 지금 우리 성경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선교사들이 무엇을 어떻게 도와 줄 수 있을까?
1. 기독교 학교를 설립하여 양질의 교육을 제공함과 동시에 구원의 진리와 과 성경의 교훈들을 가르치는 기회를 확보한다.
2. 빈민 지역에 계몽운동을 실시하여, 위생, 환경개선, 교육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3. 학교가 있지만 멀리떨어져 있을 때는 분교식으로 일부 가르칠 수 있으나, 가능하면 장학금을 주거나 하여, 교통편을 제공하여 학업을 계속 하도록 도와 준다.
4. 지역사회에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는 자세 --- 교사 훈련 후원 프로그램등
5. 선진 기독교 NGO, 그리고 기독학교 들의 후원및 노력으로 교사의 자질을 향상시켜야 한다.
6. 캄보디아 전반적인 경제가 회복되고 균형 잡힌 부의 분배가 되도록 기도한다.
7. 학비가 현실화 되거나, 정부가 잘 지원 할 수 있어, 교사들이 정상적인 급여를 받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도록 기도한다.
8. 하나님을 공경하고 국민을 존중하는 휼륭한 크리스챤 정치, 사회, 경제 지도자들이 많이
나오도록기도한다
1. 기독교 학교를 설립하여 양질의 교육을 제공함과 동시에 구원의 진리와 과 성경의 교훈들을 가르치는 기회를 확보한다.
빠일런에는 한국 부곡 교회가 지은 오따바오 국민학교가 있다. 현재 150여명이 공부하고 있는데, 4명의 교사를 우리가 후원하고 오전, 오후반으로 나누 어서 가르치는데, 매일 성경을 가르치고 찬양을 부른다. 학교운영은 우리가 하고 학생들이 진급할때 교육청에서 시험문제를 가지고 와서 테스트하여 상급반에 진급하게 해준다.
2.빈민 지역에 계몽운동을 실시하여, 위생, 환경개선, 교육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본인이 알고 있는 NGO 도 이런일 하굈는데 예를 들어 산아제한 프로그램이라든가, 건강한 성생활을 영위하여 Aids 를 퇴치하자등의 주제를 가지고 전국으로 다니면서 계몽운동을 하고 있다.
3.학교가 있지만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분교식으로 일부 가르칠 수 있으나, 가능하면 장학금을 주거나 하여, 교통편을 제공하여 학업을 계속 하도록 도와 준다.
4. 지역사회에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는 자세 --- 교사 훈련 후원 프로그램등
그런데 빠일런의 다른 국민학교 교장 선생님과 교사들이 우리 사역자 파닛에게 영어를 배우러 온다. 이 곳은 특별한 경우로 교회 성도의 대부분이 교사(30여명)들이다. 그들에 따르면, 정부는 교실 하나를 만들어 주고 교사 봉급을 지원하고는 유치원을 시작하라고 한다. 교사는 어린이 교육에 대해 전혀 배워 보지도 못했는데….. 그리고 시청각 교육을 위한 자료와 물품이 전혀 없다. 그래서 싱가폴이나 홍콩서 단기 선교팀이 오면, 학교로 초대하여 학교의 필요한 물품을 후원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가족을 부양하기에는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을 한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공립학교 교사들의 공급까지 후원을 할 수는 없겠지만, 교사진을 조직하여 1주일, 2주일 간의 교사 교육 세미나 등을 열어 빠일런 지역 전체의 교사들중 원하는 교사들을 정기적으로 , 단계별로 교육하는 일들은 아주 중요한 일이요 가치있는 일로 생각된다. 그리고 유치원 교재와 시청각도구들을 제공하면 더욱 좋겠다.
5. 선진 기독교 NGO, 그리고 기독학교 들의 후원및 노력으로 교사의 자질을 향상시켜야 한다.
더 적극적으로는 신실한 교장 선생님이나 과목 담당자들을 엄선하여 한국이나 영어권등의 교육 선진국에 있는 대학교와 연결시켜 유학의 기회를 주고, 자기 나라에서 다른 교사들을 가르치고 헌신하게 한다면 더 효과 적이지 않을 까 생각한다. 물론 그들의 신실성은 검증되어야 하겠지만…
6. 캄보디아 전반적인 경제가 회복되고 균형 잡힌 부의 분배가 되도록 기도한다.
9. 학비가 현실화 되거나, 정부가 잘 지원 할 수 있어, 교사들이 정상적인 급여를 받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도록 기도한다.
10. 하나님을 공경하고 국민을 존중하는 휼륭한 크리스챤 정치, 사회, 경제 지도자들이 많이 나오도록기도한다
6.7.8. 항들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캄보디아가 균형있게 발전하되 신실한 크리스챤들이 청지기 정신을 가지고 정치, 사회, 문화, 예술, 교육, 모든 부분에서 리니더쉽을 발휘하는 국가가 되기를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한다.
OMF “ 30Days focuc On Cambodia” 에서 발췌
1. 배경 (Background)
베트남 전쟁으로 한 동안 고통받던 캄보디아는 1970년에는 내전으로 빠져들어갔다. 1975년 승리한 폴폿은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었다. 그의 공포정치(1975-1979)기간, 붉은 크메르는(크메르 공산당을 지칭하는 용어) 300만명(800만 인구가운데)의 캄보디아인의 죽음을 야기하였다. 이 전쟁은 캄보디아의 기초 산업망을 해체시켰고, 그 성인인구를 격감되었고, 어린이들은 문맹이 되게 만들었다. 이어서 일어난 베트남의 세력을 등에 업은 행정부(1979-1989)는 대량학살은 종식시킬수 있었지만, 그 손상을 없이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캄보디아는 아직도 부패와 불법의 악들사이에 놓여있으며, 오랜 전쟁후유증과 투쟁하고 있고, 빈곤으로부터 기어나오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것은 중요하다.. After being buffeted by the war in Vietnam for years, Cambodia was drawn into a civil war in the 1970. She emerged from that war with PolPot victorious in 1975 PolPot then proceeded to drive the country into ruin. During his reign of terror (1975-1979), the Khmer Rouge(KR) caused the death of nealy 3 million (out of 8 million ) Cambodans. This war left her infrastructure in shambles, her adult popularation decimated and her children illiterate. The subsequent rule of the Vietnamese-backed government (1979-1989) ended the genocide but could not undo the damage. Thus it is important to remember that Cambodia is still struggling with the after-effects of a long war and trying to climb out of poverty while straddled with the evils of corruption and lawlessness.
1. 면적 : 180000 평방 킬로메터( 싱가폴292배) *남한의 2배에 조금못미치고 한반도의 80%의 면적.
2. 캄보디아는 전쟁으로 찢기고 많은 기반시설들이 제데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
3. 90%의 캄보디아인은 농부이다- 가나하고 질병이나, 자연재해 (가뭄, 화재) 부자들의 착취로 쉽게 빚을 진다.
4. 많은 NGO들이 구지작업을 하고있으나 장기적 개발작업이 더욱 필요하다.
5. 기부가들에의해 거액의 융자가 기초 산업망을 재구축하는데 (좋은일)주어지고 있고 혹은 유력한자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다(나쁜일).
6. 인구 : 1998년도 인구 센서스에 따르면 11.43백만이 20개주와 4개 행정도시에서 살고 있다. 자세한 것은 아래에서 보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