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서든 리버에 새 백화점이 오픈하는 날이었다. 내가 세금을 걷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는 친구의 아내가 디자이너로 런칭을 하였기에 옷을 구입하기 위하여 방문하였다. 그런데 도무지 마음에 드는 옷이 없었다. 결국 아무도 구입하지 않을 것 같은 옷을 집어 들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이 작은 키에 어울릴만한 옷이 여기에는 없는걸 알고 왔다. 보라색 옷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하늘거리는 베옷도 같이 구입했다. 제일 안 팔릴 것 같은 옷을 집어 들고 카운터로 가자 직원은 패션 감각을 운운하며 날 띄우기 바빴다.
"됐고, 결제나 해주게"
'이렇게 또 몇 백이 지출 되는구나'
하지만 괜찮다. 옷은 몇 백이지만 세금은 그 이상으로 뜯어내면 되니깐 말이다. 디자이너의 남편, 즉 내 친구가 분명히 내가 옷을 사간 것을 알고 날 도와줄 것이다.
백화점에 간 김에 킹크랩 전문점에 들렀다. 아무나 먹을 수 없는 음식이다. 하지만 난 쉽게 먹는다. 돈이 있으니까 말이다. 몇백짜리 옷을 사서, 몇십만원짜리 킹크랩을 먹는 나를 보니 꽤 마음에 든다. 근데 혼자 먹으려니 영 맛은 없다. 리치만을 부를까 했지만 그놈의 '영원히 사는 법' 타령이 거슬려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 때였다. 내가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린 킹크랩 조각을 먹으려고 거지꼴을 한 녀석이 나에게 기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점점 가까워지니 누구인지 알 거 같았다. 나자로였다. 늘 우리 세무서 앞에서 직원들과 내가 버린 음식이나 주워 먹는 거지 녀석이다. 사실 친구였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친구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저런 거지같은 녀석과 친구라는 사실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다. 순간 기분이 나빠졌다. 입맛이 뚝 떨어져 버렸다.
'젠장, 나자로 녀석, 여기까지 쫓아올 줄은 몰랐군. 어서 집으로 가야겠어. 짜증이 나는구만!'
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바람에 먹고 있던 킹크랩 전체가 땅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나자로는 그것이라도 먹으면 안 되겠냐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와 동시에 지배인을 불렀고, 나자로는 당장에 쫓겨나게 되었다.
"지배인, 여기 대체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거지가 이렇게 들어와도 되는 거야? 내가 다시는 이 가게에 오나 봐라"
"죄..죄송합니다. 스크루지 서장님! 음식을 다시 가져 오겠습니다"
"됐네"
피곤이 몰려왔다. 빨리 집으로 가서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아직 일과 시간이라 일단 세무서로 차를 돌렸다.
'내 호화로운 하루의 끝이 이 모양 이 꼴이 되게 하다니! 나자로 녀석 초등학교 이후로 나에게 도움이 되지를 않는구만!'
그렇게 난 내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잠이 들었다. 그런데 요즘은 잠만 자면 악몽을 꾼다.
꿈에서 나자로의 장례식과 나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그런데 나는 그대로 땅에 묻히는데, 나자로는 천사들이 어디론가 데려가는 것이 아닌가? 그 천사들은 나자로를 어떤 이의 품에 내려놓았고, 너무도 평안한 모습으로 품에 안기어 쉬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나자로를 품에 안은 그 사람은 우리의 조상이라고 알려진 아브라햄이었다. 나는 땅에 묻힌 채로 있지 않았다. 나는 곧 '지옥'이라는 곳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젠장! 설마 진짜 지옥이 있었을 줄은 몰랐다.
'으아악! 뜨거워! 이게 뭐야? 으악! 살려주세요! 잡아 당기지마. 악! 내 목! 내 팔! 내 다리! 안 돼! 아프다구! 으악! 살려줘! 살려줘! 제발!'
지옥은 너무도 괴로웠다. 그 중에 가장 괴로웠던 것은 타는 듯한 목마름이었다. 누가 물을 줄 사람이 없나 고개를 들었을 때 저 멀리 아브라햄이 보였고, 그의 품에 안겨있는 나자로가 보였다. 오늘 낮에만 해도 나자로 녀석이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반대가 되었다. 자존심이 너무 상했지만 자존심을 생각하기에는 목이 너무도 말랐다. 그래서 나는 모든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아브라햄 조상님! 나도 좀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저 나자로 녀석만 안고 계시지 말고 저에게도 자비를 좀 베풀어 주십시오. 제발 나자로 그 녀석을 저한테 보내셔서 물 좀 전해 주십시오. 목이 너무 말라서 죽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햄은 나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스크루지야. 넌 살아 있는 동안 배부르게 살았고, 나자로는 온갖 괴로움을 다 겪었다. 그러니 이제 나자로는 위로를 받고, 넌 고통을 받는 거야"
"아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입니까? 난 열심히 살았으니 배부르게 먹고 살았던 거고, 나자로 녀석은 그냥 거지일 뿐이었다구요!"
"스크루지야! 아쉽게도 우리가 있는 곳과 네가 있는 곳 가운데에는 큰 구렁텅이가 있어서 건너가려고 해도 갈 수가 없단다. 아, 물론 너도 이쪽으로 건너올 수 없고 말이야"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는 상황에 난 너무 힘이 들었다.
'왜 부자라는 이유로 여기에 와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 거지? 차라리 그럼 거지가 나은 건가? 설마 영원토록 여기 지옥에 있는 것인가? 정말 영원히 이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 잠깐 그러면 영원히 사는 것이 정말 있는 것인가?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유도 없이 리치만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리치만이 이곳에 오든 말든 나는 리치만을 싫어했기에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유일한 친구라고 생각해서였을까? 아브라햄에게 다시 한 번 힘을 모아 소리를 질렀다.
"조상님,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나자로를 내 친구 리치만의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제발 나자로가 가서 리치만에게 경고하여, 리치만은 고통 받는 이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리치만에게는 나자로 말고도 말해 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아닙니다. 조상님,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누가 살아나서 그에게로 가야만, 리치만이 깨달을 것입니다. 리치만은 영원히 사는 것에 대해서 연구하는 중이니 나자로가 가서 영원한 고통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만 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것입니다"
"리치만이 얼마 전에 만났던 사람의 말도 듣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의 말도 듣지 않았는데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누가 살아난다고 해도, 리치만은 믿지 않을 거야! 자, 그럼 나와 나자로는 그만 가보겠네"
"조상님! 조상님! 가지 마세요! 제발 물 한 모금만 주세요! 제발 가지 마세요! 조상님! 물! 물! 물!"
누군가가 나를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눈이 번쩍 뜨였다.
"서장님, 서장님, 괜찮으세요? 여기 물을 가지고 왔어요"
비서였다. 내가 물이라고 소리를 질러서 물을 가지고 왔는데 아무 대답이 없어서 가까이 다가와 보니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아 깨웠다고 했다.
"고..고맙네..."
"네? 지금 고맙다고 하셨나요? 아...아닙니다. 여기 물 있습니다"
"그래, 나가보게. 고맙네"
악몽이었다. 요즘 들어 부쩍 악몽이다. 지난 번 스스로 있는 자에 이어 오늘은 아브라햄에 나자로까지...
'아 참 나자로!'
나는 당장 밖으로 달려 나갔다. 멀리 전봇대 사이에 쓰러져 잠이 들어 있는 나자로가 보였다. 나는 나자로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나자로에게 내가 마시려던 물을 건넸다. 내 손에서 훔치듯 컵을 가져간 나자로는 단숨에 물을 들이켰다. 그리고는 다시 쓰러졌다. 나는 나자로를 일으켰다. 어느새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저기봐. 스크루지서장이잖아. 근데 왜 거지랑 같이 있지?"
"초등학교 동창이라고 하더니 사실이었던 거 아냐?"
"거지한테도 세금을 뜯어내려나 보구만. 나쁜 놈 같으니라고"
그런데 그런 말보다 지금은 나자로가 더 신경이 쓰였다. 난 차로 달려가 오전에 백화점에서 산 보라색 옷을 꺼냈다. 그리고 나자로에게 입혀 주었다. 나자로는 갑작스러운 내 태도 때문에 겁이 났는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난 그대로 나자로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나자로, 밥이나 먹으러 가자구"
"밥? 지금 밥이라고 했어? 스크루지 자네가 밥을 사 줄 건가? 자네가?"
"그래, 가자구. 그러니 어서 빨리 걸어. 사람들이 쳐다보잖아"
"그...그래..."
우리는 함께 근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런데 나자로가 뒤에서 나를 잡아끌었다.
"거기에 가봐야 배도 안 부르고 그냥 우리 저기를 가면 어떨까?"
"이봐 나자로 그냥 닥치고 내가 사주는 거나 먹으라고! 지금 내가 니가 예뻐서 밥을 사주는 것 같아 보여?"
"그러면 왜 사주려는 것인가? 평소에 하던 것처럼 그냥 모른 척 하지 그랬나? 왜 갑자기 달려와 날 깨운 건가? 물은 왜 줬어? 옷은 또 뭐고? 밥을 사준다고 한 건 너 아닌가? 초등학교 때 이후로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 아니었는가?"
"그..그건...에잇...몰라. 이걸로 니가 알아서 먹고 싶은 거 사먹어"
나는 나도 모르게 지폐 몇 장을 던져버리고는 사무실로 돌아와 버렸다. 근데 창가에서 서서 보니 돈은 다른 사람이 줍고 있었고, 나자로는 옷을 벗어 주차된 내 차 위에 내려 놓았다.
에필로그
부자와 나사로 비유(누가복음 16장 19~31절)
아브라햄 - 아브라함
나자로 - 나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