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쯤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이하 슈스케)를 기억하는가? 나는 예나 지금이나 TV 프로그램을 그리 많이 보지 않지만 그 프로그램은 즐겁게 봤다.
매 시즌 슈스케에는 ‘레전드’로 꼽히는 무대들이 있었다. 시즌 2의 ‘본능적으로’와 ‘신데렐라’, 시즌 3의 ’Swing Baby', ‘막걸리나’, 5의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6의 ‘당신만이’.... 그리고 그 레전드 무대 중에 ‘먼지가 되어’가 있었다.
김광석의 명곡을 재해석해낸 것은 시즌 4의 로이킴과 정준영이다. 다들 알 버닝썬 게이트에 연루된 그들이 맞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상하다. 원래라면 그렇게 관심 갖거나 좋아하지 않았을 인물들도 경쟁 속에서 응원하고 부여받은 서사와 캐릭터를 기어코 사랑하게 만든다. 나는 시즌 2 부터 슈스케를 보며 계속 어떤 가수를 ‘최애로 잡았고’, 시즌 4에서 잡은 것은 로이킴과 정준영. 둘 중 하나였다.
세상사 매일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터지는 게 일상이지만 버닝썬은 그럼에도 큰 사건이었다. 연예계와 공권력, 정치권 역시 연루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남긴 대형 범죄 사건.
돌이켜 보면 그랬다. 내가 처음으로 좋아한 남자 아이돌은 동방신기 출신의 믹키유천-박유천이다. 남성 연예인들이 자신을 흠모한 팬들의 추억과 마음에 흙과 먼지를 뿌리고 모욕하는 것 역시 예삿일이지만 그의 성추문 또한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는 굵직한 사건이었다. 본인의 남자 보는 눈이 문제인 걸까 아니면 쉽게 타락해서 스스로의 수준과 영혼을 지하 저 밑바닥으로 내팽개치는 남자들이 문제인 걸까? (내가 사랑한 여성들은 그런 불쾌함을 주지 않았으므로 역시 후자가 맞는 것 같다.)
동정은 사양한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머지않아 나의 애정은 빠르게 식었고 애정은 금세 다른 ‘배우‘로 넘어갔으므로. 하지만 뒷맛이 씁쓸한 건 사실이다. 그렇다, 씁쓸하다. 이렇게 최악의 결말을 본 경우가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뜨겁던 사랑도 언젠가 식고야 만다. 그렇게 애틋하고 사랑스럽던 사람을 보면서도 그땐 이 사람의 무엇이 그렇게 특별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던 걸까 생각하게 된다. 사랑의 끝은 마음에 찬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왜 사람은 그런데도 무언가를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 걸까? 사랑이 도대체 뭐길래, 사람과 생존에 어떤 이득이 되길래.
하지만 사실 알고 있다.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평온함보다는 사랑하며 느끼는 고통이 더 감미로운 것이 나라는 인간인 것을. 사랑한 사람은 허무와 후회와 무감동한 존재가 되지만 그래도 그 당시의 감정과 추억과 곡만큼은 남는다는 것을. 주어조차 밝히고 싶지 않은 그는 마음속에서 죽었지만 ‘먼지가 되어’라는 명곡은 여전히 살아 남았다. 그리고 이렇게 나의 글감이 되어주었다. 그것에 만족하고 다시 무언가를 사랑하려 한다.
첫댓글 매번 사랑이 끝나면 후회 속에서 내가 이 지긋지긋한 일을 왜 또 시작했지? 하면서도 또 다시 나타난 사랑 앞에 마음을 활짝 열어버리는 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글이네요... 정말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도대체 사랑이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꼭 그게 이성 간 사랑이 아니더라도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고 서는 살 수 없다는 걸 이미 깨달아 버려서 쉽지 않네요ㅎㅎ 이원님의 다음 사랑은 허무와 후회에 점철된 씁쓸함보다는 오래 남을 달콤함이 가득하길 바랄게요~ 고생하셨습니다!
주어조차 밝히고 싶지 않다는 문장이 공감되고 웃기네요 ㅋㅋㅋ 어떤 대상을 정말 사랑했나? 정말 내가 그걸 좋아했나? 스스로 되묻는 순간이 있더라고요. 사랑의 환상을 걷어내고 보면 정말 별볼 일 없는 대상인 경우가 많아요. 그렇다고 냉소적인 마음으로 혼자 살 수 있는 존재도 생물학적으로 못 되는 것을 보면 인간은 평생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가야 하는 신세인가 봅니다 ㅎㅎ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 이원님의 그들은 왜..🤦🏻♀️ 사랑이란 언제나 기대와 실망의 연속인 것 같아요.. 2D를 사랑해도 그런일이 생기나요?
그래도 글감을 남겨주는 것에 그나마 한줌 보답이라도 한 것일까요... ㅎㅎ 마지막 문단이 너무 공감가고 좋았습니다!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게 ‘평온함’일까?는 생각해보아야겠지만 다시 무엇인가를 사랑하겠다는 이원님의 결심! 응원합니다!
인간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나봐요. 고통스러워도 결국 또 사랑하고 사랑받는 그런 존재..
저도 슈스케 먼지가 되어 노래를 꽤 많이 좋아했는데요. 버닝썬, n번방 등등 여러 사건을 통해서 현실 남자는 사랑할 존재가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그들에게 쏟을 사랑을 다른 여성을 사랑하는데, 다른 존재를 사랑하는데 써야겠더라구요ㅎㅎㅎㅎ
이원님의 또다른 사랑을 응원하며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