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새날입니다.
지난 주는 책 소개와 ‘1. 설득의 무기’에 대해 같이 읽어 보았습니다.
이번 주는 ‘‘2. 상호성의 원칙’, ‘3. 일관성의 원칙’, ‘4. 사회적 증거의 원칙’을 살펴보겠습니다.
〈 읽고, 정리하기 〉
PART 2 상호성 원칙
상호성의 원칙이 어떻게 작동하는 지에 대해서는 심리학자 데니스 레건(Dennis Regan, 1971)이 실시한 실험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연구진은 피험자를 다른 피험자 한 명과 함께 미술 작품 몇 점을 평가하도록 하는 ‘미술 감상’ 실험에 참가시켰습니다. 다른 한 명의 피험자(‘조’라고 합니다)는 동료 피험자인 척했지만 사실 레건 박사의 조수였습니다. 실험은 두 가지 서로 다른 조건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첫 번째 실험에서 조는 요청하지도 않은 작은 호의를 진짜 피험자에게 베풀었습니다. 실험 도중 휴식 시간에 조는 몇 분 동안 실험실을 나갔다가 콜라 두 병을 들고 들어와 한 병은 자신이 마시고 나머지 한 병은 피험자에게 건네주면서 “실험자한테 콜라 좀 마셔도 되냐고 물어보니 괜찮다고 해서, 같이 마시려고 한 병 더 사왔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실험에서 조는 피험자에게 아무런 호의도 베풀지 않았습니다. 휴식 시간에 잠깐 밖으로 나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밖에 조의 모든 행동은 첫 번째 실험과 동일했습니다.
미술 작품 평가가 끝나고 실험자가 잠깐 실험실을 비운 사이, 조는 피험자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당첨되면 신차를 받을 수 있는 복권을 자신이 지금 판매 중인데, 복권 최다 판매자는 상금으로 50달러를 받게 되어 있으니 한 장에 25센트짜리 복권을 구매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한 장만 사주셔도 됩니다. 물론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요.” 이 연구의 주목적은 두 가지 조건에서 피험자가 구입하는 복권의 매수가 얼마나 달라지는가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조는 당연히 처음에 콜라를 건네며 호의를 베풀었던 피험자에게 더 많은 복권을 팔았습니다. 조에게 뭔가 신세를 졌다는 생각을 한 첫 번째 피험자들은 아무런 호의도 제공받지 못한 두 번째 피험자들보다 두 배나 많은 복권을 구매했습니다.
레건의 연구는 상호성 원칙의 작동 방식을 매우 간략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상호성의 원칙을 이용해 어떤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는 일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줍니다. 이는 작은 호의로 비롯된 의무감이 훨씬 더 큰 호의에 대한 승낙을 얻어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상호성의 원칙에 따르면, 처음 호의를 제공하는 사람이 첫 번째 호의는 물론 보답의 형태까지 결정할 수 있는 까닭에 상호성의 원칙을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하려는 사람은 얼마든지 불공평한 교환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그 증거를 찾기 위해 다시 한 번 레건의 실험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실험에서 조는 한 그룹의 피험자에게만 먼저 선물로 콜라를 제공한 다음, 실험 마지막에 전체 피험자에게 한 장에 25센트짜리인 복권을 구매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레건의 실험은 1960년대 후반, 즉 콜라 한 병 가격이 10센트이던 시절에 실시되었습니다. 물론 티켓을 일곱 장까지 구입한 인심 좋은 피험자도 있었지만, 10센트짜리 콜라를 받아 마신 피험자들은 평균적으로 복권을 두 장 정도 구입했습니다. 평균만 따져도 조는 상당한 이득을 올린 셈입니다. 투자 대비 수익률이 500퍼센트라면 엄청난 성과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빚진 느낌은 싫어합니다.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에 빨리 갚아버리고 싶어 합니다. 이런 기분의 원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호혜적 관계는 인간 사회에 매우 필수적이라 우리는 누구한테 신세를 지면 불편한 느낌이 들게끔 조건화되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누군가의 호의에 보답하지 않는다면, 호혜적 관계가 붕괴되면서 상대방은 다시는 먼저 호의를 베풀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상황은 사회에 전혀 유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갚아야 할 의무가 있을 때에는 불안한 느낌이 들도록 훈련을 받습니다. 그렇다 보니 불편한 부채의식을 벗어버리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받은 것보다 더 큰 호의를 베푸는 일까지 기꺼이 승낙합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상호성 원칙을 어겨 다른 사람의 호의를 받기만 하고 보답할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배척을 받습니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 사람들은 때때로 불평등한 교환에 동의합니다.
내적인 불쾌감과 외적인 수치심이 결합하면 상당한 심리적 비용이 발생합니다. 이 심리적 비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상호성 원칙에 따라 종종 받은 것보다 더 많이 내주는 사람들의 행동도 그다지 이상해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보답할 수 없는 처지일 때는 꼭 필요한 부탁조차 하지 않으려는 심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차라리 물질적 손실을 감수하는 것이 심리적 비용을 치르는 것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상호성 원칙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그 위력을 차근차근 약화시키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호의와 양보를 모조리 거부하는 것은 추천할 만한 전략이 아닙니다. 이를 위한 보다 바람직한 해결 방법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호의를 받아들일 때 무조건 선의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파악하는 방법입니다. 누군가 호의를 베풀면 우선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언젠가 보답을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이런 식의 관계는 상호성의 원칙에 따라 상대한테 이용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류 문명의 형성기부터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우리 모두에게 유익했던 ‘명예로운 의무의 네트워크’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만약 상대의 호의가 그에 보답하는 우리에게 더 큰 호의를 노리고 특별히 계획한 수단이자 술책이며 계략으로 밝혀진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집니다. 이런 상대는 호의를 베풀려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를 이용하려는 사람입니다. 이 경우에는 우리도 정확히 동일한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우선 상대의 제안이 호의가 아니라 설득 전략이라고 판단했다면 그에 알맞은 대응으로 상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상대의 행동이 호의가 아니라 설득 기술이라고 우리가 인식하는 한, 상대는 더 이상 상호성의 원칙을 동맹군으로 활용할 수 없습니다. 상호성의 원칙이란 호의를 호의로 갚는 것이지, 속임수를 호의로 갚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상대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는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효과적인 대처가 가능합니다. 그것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상황을 재정의하는 것입니다. 영업 사원한테 받은 모든 것은 선물이 아니라 판촉 물품과 같은 영업 도구였다고 재정의하면, 상호성의 원칙에 걸려들지 않고 자유롭게 구매 제안을 거절 또는 수락할 수 있습니다. 상대의 호의에는 보답해야 하지만, 영업 전략에는 보답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상호성 원칙의 위력을 이용해 승낙을 얻어내려는 사람을 상대하는 최선의 방어 전략은 상대의 제안을 무조건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첫 번째 호의나 양보는 선의로 받아들이되, 나중에 음흉한 속셈이 드러날 경우 호의나 양보를 술책으로 재정의하는 방법을 사용하면 됩니다. 일단 그런 식으로 재정의하고 나면 상대에게 호의나 양보로 보답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PART 3 일관성의 원칙
다른 무기들과 마찬가지로 이 설득의 무기도 우리 내면 깊은 곳에서 조용히 우리의 행동을 조종합니다. 바로 자신이 이미 한 말이나 행동과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그리고 남들에게도 그렇게 보이려는 욕망입니다. 일단 어떤 선택을 하거나 입장을 취하면, 우리는 스스로나 다른 사람에게 기존의 태도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습니다. 그 압력 때문에 우리는 이미 내린 결정을 정당화하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래야만 자신이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고 확신할 수 있고, 당연히 그 결정으로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향은 경우에 따라 우리 자신의 이익과 정반대되는 행동까지 하게 합니다.
일관성이 이토록 강력한 동기로 작용하는 이유는, 일관성이 대부분의 상황에 적합한 가치 있는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일관성이 없는 성격을 바람직하지 못한 특성으로 여깁니다. 신념과 행동, 말 등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은 엉뚱하거나 표리부동한 사람, 심지어 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여깁니다. 반면에 수준 높은 일관성은 대개 뛰어난 인격과 지성이 연상됩니다. 일관성은 논리와 합리성, 견실함과 정직함의 핵심입니다.
일관성 있는 성격은 확실히 우리 문화에서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실제로 언제나 일관성 있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더라도 분명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일관성이 없다면, 끔찍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나름의 매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동화된 대부분의 반응과 마찬가지로, 일관성 역시 복잡한 현대 생활에서 지름길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어떤 주제에 대해 일단 마음을 정하면, 일관성을 고수하는 편이 훨씬 편합니다. 그 주제에 대해 더 이상 궁리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제에 관한 자료를 찾아 정보의 바다를 헤맬 필요도 없고, 찬반을 결정하려고 정신적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도 없으며, 어려운 결정을 내리느라 골머리를 앓을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주제와 맞닥뜨렸을 때 그저 일관성 기록 장치만 ‘누르고, 작동하면’, 무엇을 믿고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바로 알게 됩니다. 과거에 내린 결정에 맞춰 일관성 있는 생각과 말, 행동만 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그 힘은 어디서 시작되는 것일까요? 과연 무엇이 강력한 일관성 기록 장치를 ‘눌러, 작동하는’ 것일까요? 사회심리학자들은 그 답을 ‘입장 정립’에서 찾아냈습니다. 일단 상대에게 어떤 입장이나 태도를 취하게 한다면, 이후로는 일관성의 원칙을 이용해 상대에게 자동적이고 무분별한 행동을 유도해내기 쉽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일단 어떤 입장을 정하면 그 입장과 일관성 있게 행동하려는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심지어 최종 결정을 내리기 직전에 어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에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과 최대한 일관성을 유지하는 선택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활동하는 설득의 달인들은 입장 정립 전략을 이용해 우리를 공략합니다. 이런 전략들의 공통적인 목적은 일단 우리로 하여금 어떤 발언이나 행동을 하도록 한 다음 이와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요구를 승낙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일부 부도덕한 설득의 달인들은 이런 특성을 이용해 막대한 이득을 취합니다. 우리가 일단 어떤 선택을 하면 그 선택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이유를 만들어낸다는 점을 악용해, 그들은 그럴듯한 유인 요소를 제공해 선택을 이끌어냅니다. 그리고 우리가 결정을 내리면 그들은 그 유인 요소를 제거해버립니다. 우리가 새로 만들어낸 이유와 근거를 바탕으로 기존 결정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입장 정립과 일관성 원칙이 결합된 설득의 무기를 방어하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일관성 원칙에 따르는 것이 대체로 유용하고 때로 필요하지만, 경우에 따라 어리석고 경직된 측면도 있음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기계적인 입장 정립과 일관성 반응을 악용하려는 사람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으므로 우리는 자동적이고 무분별하게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성향을 반드시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동적 일관성은 대체로 경제적이고 적절한 반응을 가능하게 하는 유용한 측면도 있어 우리 삶에서 완전히 제거해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끔찍한 결과가 벌어질 것입니다. 만약 이전의 결정이나 행동을 자동적으로 반복하지 않고 일일이 모든 것을 심사숙고해서 행동해야 한다면 중요한 일을 수행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는 위험하고 기계적인 일관성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관성의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일관성이 어리석은 선택을 유도하는 순간을 알아차리는 능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두 가지를 가정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입장 정립과 일관성 함정에 빠져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승낙해야 할 때라면 상대에게 어리석은 일관성을 유지하느라 불합리한 요구에 응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분명히 밝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초의 입장 정립이 잘못되었다는 확신이 없을 때는 “시간을 되돌려 지금의 내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래도 같은 입장을 취했을까?”라고 자문해봐야 합니다. 이 질문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순간적인 느낌이 정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PART 4 사회적 증거의 원칙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행동을 따라하려는 우리의 성향을 악용해 이득을 취합니다. 바텐더들은 영업 시작 전에 마치 손님들이 남겨둔 팁인 양 팁 담는 병에 미리 지폐를 몇 장 넣어둡니다. 그렇게 지폐를 접어 팁 병에 넣는 것이 바의 관례라는 인상을 주기 위함입니다. 광고주들은 자사 제품에 대해 ‘최다 판매’나 ‘초고속 성장’ 같은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그렇게 하면 품질이 우수하다고 직접적으로 광고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자체가 충분한 증거가 됩니다. 일부 나이트클럽 주인들은 입장 공간이 충분한데도 손님들을 문 밖에 길게 세워놓고는 가장 인기 좋은 나이트클럽이라는 사회적 증거를 조작하기도 합니다. 영업사원들도 구매를 권유할 때 이미 제품을 구매한 기존 고객들의 이름을 최대한 많이 언급하라고 배웁니다. 영업교육 및 동기부여 강사인 카베트 로버트(Cavett Robert)는 이 원칙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정확히 표현한 바 있습니다. “주도자는 5퍼센트뿐이고, 나머지 95퍼센트는 ‘따라쟁이’들이다. 다른 사람의 행동은 영업사원이 제시하는 어떤 증거보다 더 설득력이 높다.”
사회적 증거의 원칙은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증거를 제공하는 경우 최고의 효과를 발휘하는 듯합니다. 바로 이것이 사회적 증거의 원칙이 가진 위력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대체로 사회적 증거에서 제공한 정보를 선호합니다. 보통은 유용하고 가치 있는 정보들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증거를 참조하면 모든 일을 하나하나 꼼꼼히 조사하지 않고도 많은 결정을 손쉽게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 증거의 원칙이 제공하는 자동 판단장치는 비행기에 탑재된 자동 항법장치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자동 항법장치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주로 잘못된 비행 정보가 입력되는 경우입니다. 그럴 때 비행기는 궤도를 이탈하는데, 입력된 오류의 규모에 따라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증거의 원칙에서 제공하는 자동 항법장치는 대체로 실보다 득이 많아 함부로 연결을 차단해버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 이득을 안겨주지만 만만찮은 손해도 끼치는 이 장치를 과연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에 빠집니다.
다행히 한 가지 해결 방법이 있습니다. 자동 항법장치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주로 잘못된 정보가 입력되는 경우이므로, 잘못된 정보가 입력되는 순간을 파악하면 됩니다. 자동 항법장치가 잘못된 정보를 기초로 사회적 증거의 원칙을 작동시키려는 순간을 예민하게 포착할 수 있다면, 즉시 자동 장치의 연결을 차단하고 직접 통제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동 항법장치가 객관적 사실이나 이전 경험, 이성적 판단 같은 다른 증거와 어긋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닌지 때때로 점검해야 합니다. 잠깐 주변을 돌아보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시간이나 노력이 그렇게 많이 들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다수가 보여주는 사회적 증거에 매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따금 주변을 둘러볼 필요가 있습니다. 잘못된 사회적 증거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지 않으면 결국 자신이 원치않는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새날의 생각 나누기 〉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번 주는 설득의 무기로 사용되는 여섯 가지 원칙 중 상호성의 원칙, 일관성의 원칙, 사회적 증거의 원칙 등 세 가지 원칙에 대해 알아 보았습니다. 책에는 이 원칙들에 대해 상세하고도 깊이 있는 연구 논문과 각종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지면 한계상 이를 다 다룰 수 없어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중 일관성의 원칙에 대해 부정적인 사례를 통해 우리가 경계해야할 것과 긍정적인 사례를 통해 좋은 쪽으로 잘 활용할 수 있는 것을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무언가 결정해야 할 사안에 대해 일단 어떤 선택을 하거나 입장을 취하면, 우리는 스스로나 다른 사람에게 기존의 태도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습니다. 그 압력 때문에 우리는 이미 내린 결정을 정당화하는 반응을 보이고, 경우에 따라 우리 자신의 이익과 정반대되는 행동까지 하게 합니다. 그 이유로는 세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첫째, 일관성 있는 성격은 사회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둘째, 일관성 있는 행동은 대체로 일상생활에도 유리한 영향을 미칩니다. 셋째, 일관성 있는 태도는 복잡한 현대 사회를 헤쳐나가는 소중한 지름길을 제공합니다. 이전의 결정과 일관성을 유지하면 미래에 유사한 상황에 처했을 때 관련 정보를 전부 심사숙고할 필요가 줄어들고, 이전 결정을 기억해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리면 되기 때문입니다.
설득의 달인들은 일관성의 이러한 특성을 이용해 우리로 하여금 어떤 발언이나 행동을 하도록 한 다음 이와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요구를 승낙할 수밖에 없도록 합니다. 그에 대한 사례로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수많은 미군 포로들에게 중공군이 가한 세뇌 프로그램 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당시 중국은, 가혹한 형벌로 포로를 복종시키는 북한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포로를 다뤘다고 알려졌습니다. 종전 이후 미국 심리학자들은 송환 포로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그 실태를 파악했고, 조사단장이었던 미국 심리학자 에드가 슈인(Edgar Schien, 1956)은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탈출 사건이 발생하면, 중공군은 밀고자에게 보통 쌀 한 봉지를 주는 방법으로 탈출한 포로를 다시 잡아들였다.” 실제로 중공군의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거의 모든 미군 포로가 이런저런 방식으로 중공군에 협조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었습니다.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중공군은 주로 입장 정립 및 그에 따른 일관성 유지 압력을 이용해 포로들의 복종을 유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포로들에게 어떤 신체적 가혹행위 없이 군사기밀을 폭로하고, 동료들을 밀고하고, 공개적으로 조국을 비난하도록 하게 한 것입니다. 그 방식은 낮은 단계부터 차근차근 올라간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중공군은 포로들에게 전혀 심각해 보이지 않는 반미적 또는 친공산주의적 발언, 즉 “미국은 완벽하지 않다”, “공산국가에는 실업 문제가 없다” 등을 하도록 요구했습니다. 포로들이 이런 작은 요구를 수용하면, 그와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좀 더 실질적인 요구가 이어졌습니다. 우선 미군 포로에게서 미국이 완벽하지 않다는 동의를 얻어내면, 어떤 면이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구체적으로 지적해보라고 요구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군 포로가 몇 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이야기하면, 그런 ‘미국의 문제점’을 목록으로 작성해 서명하라는 요구가 이어졌고, 다른 포로들과의 토론 시간에 자신이 작성한 목록을 직접 읽도록 했습니다. 목록을 읽으면 “결국 당신은 정말 그렇게 믿고 있는 거지?”라는 식의 질문을 했고, 나중에는 작성한 목록을 더 확대하고 미국의 문제들을 더 자세히 논의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고 나면 중공군은 해당 포로수용소뿐만 아니라 북한의 포로수용소 및 남한의 미군들에게까지 송출하는 반미 성향의 라디오 방송에서 그 포로의 실명을 밝히면서 그가 작성한 문서를 공개했습니다. 그 미군 포로는 순식간에 적군을 돕는 ‘협력자’로 전락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미군 포로가 강력한 위협이나 강제에 따라 그 글을 쓴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다만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자신의 자아 이미지가 자신의 행동 및 ‘협력자’라는 새로운 꼬리표에 맞도록 변했을 뿐입니다. 슈인은 연구를 통해, “전체적으로 협력을 거부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한 반면, 대다수가 한두 번에 걸쳐 자신에겐 사소해 보이지만 중국으로서는 얼마든지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행위들로 중국에 협력행위를 했다. ……이런 방법은 취조 중에 자백과 자아비판, 정보 등을 끌어내는 데 특히 효과적이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번에는 비슷하지만 다른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이하 출처1 참조). 영국의 의료경제학자들은 진료 예약을 어기는 사람들로 인한 손실 금액이 연간 8억 파운드(1조 6,000억 원)에 달한다고 계산했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이 엄청난 금액이 무의미하게 낭비된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의사 세 명의 진료실에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진료 일정 확인 전화를 받은 환자들에게 통화를 끝내기 전 진료 날짜와 시간을 스스로 소리 내어 확인하도록 요청했습니다. 이 사소한 요청은 약간의 변화를 이끌어내어 예약 불이행률이 3퍼센트 낮아졌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그다지 큰 변화 같지 않겠지만, 다음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고려한다면 상당히 의미 있는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이러한 방법은 실행하는 데 부가적인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그저 환자와의 상호작용에서 1~2초를 추가하면 됩니다. 두 번째로, 3퍼센트 감소라고 하니 상대적으로 적어 보이지만 전체 규모를 놓고 보면 꽤 큰 금액입니다. 10억 달러에서 3퍼센트가 감소했다면 3,000만 달러나 되는 큰 비용이 절약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약속 이행을 더욱 공고히 해줄 더 나은 방법이 있습니다. 병원의 수납 직원이 환자에게 다음번 진료 예약일과 시간을 예약 카드에 직접 적어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4개월 동안 이런 접근법의 효과를 살펴보았더니 놀랍게도 예약 불이행률이 18퍼센트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결과를 비용으로 환산해본다면 3,000만 달러가 아닌 1억 8,000만 달러를 절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별도의 비용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단순히 “예”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설득이 끝나는 지점이 아니라 설득의 시작점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의도한 대로 상대가 행동에 옮길 가능성을 높이려면 약속한 목표를 진행하기 위해 어떤 계획을 세울지 구체적인 질문을 몇 가지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만 제일 좋은 설득의 기술은 설득하는 과정 그 자체가 아닙니다. 상대방이 스스로 약속하도록 유인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자기 스스로 설득하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설득의 기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출처2 참조).
정리하면 사회적 영향력의 기본적인 원칙들 중 하나는 약속과 그것에 이어지는 일관성입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이전에 한 약속 혹은 결정, 그중에서도 특히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노력을 필요로 하며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한 약속일수록 여기에 부합하는 일관된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중공군 사례와 같이 다른 사람을 불순한 목적으로 조종하는 게 아니라 병원에서의 약속과 같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되는 방식으로 활용되어야겠습니다. 다시 말해 1주차에서도 강조하였지만, 설득의 원칙이 사용됨에 있어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어야겠습니다.
다음 주에는 ‘5. 호감의 원칙’, ‘6. 권위의 원칙’을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참고 도서 〉
O 출처1: 『설득의 심리학 3』, 로버트 치알디니 외 2인 지음, 김은열 외 1인 옮김, 21세기북스 출판, 2015.02.09 출간, 352 쪽, 설득의 심리학 3: 완결편 - 교보문고
O 출처2: 『심리학을 만나 행복해졌다』, 장원청 지음, 김혜림 옮김, 미디어숲 출판, 2021.02.10 출간, 336 쪽, 심리학을 만나 행복해졌다 - 교보문고
〈 소통과 성장의 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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