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Century 20 Tenors (1) ] Enrico Caruso (엔리코 카루소, 1873 ~ 1921 이탈리아) ▣ 시대를 뛰어넘은 영원한 현재, 그 불멸의 인간적 슬픔 "무릇 예술가란 자신들만의 영웅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화가들은 다 빈치나 고야를, 작곡가는 모차르트나 베토벤을 염두에 둘 것이고, 작가들은 톨스토이나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를 언급할 지도 모른다. 서로 다르긴해도 사람마다 그 자신만의 이상적인 인물을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테너들은 다르다. 그들에게도 우상은 있되, 그러나 그들 모두는 오직 단 한 명의 똑같은 우상만을 섬기고 숭배한다. 모든 것을 갖춘 거인이자, 모든 테너들의 신(神) - 엔리코 카루소가 그다." - 플라시도 도밍고 - 금세기 최고의 테너라 불리는 엔리코 카루소는 나폴리의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엄청난 고통 속에 긴 무명시절을 겪어야했다. 1894년 나폴리 누오보 극장에서 데뷔한 카루소는, 1902년 라 스칼라에 데뷔하고 이어서 몬테카를로와 영국 코벤트가든 가극장에 데뷔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1903년에는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 무대에 서게 되는데, 이후 사망할 때까지 이 곳 메트에서 626회나 노래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골든 디스크(100만장 이상 판매된 디스크) 기록을 세웠고, 헤밍웨이의 소설 <무기여 잘있거라>, 심지어 대한민국의 어느 중2 영어 교과서에까지 등장하는 등 그의 명성은 가히 신화에 가깝다.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인공미가 완벽하게 거세된 그야말로 "신기의" 프레이징 처리능력, 카멜레온처럼 변화하는 음색, 높은 소리 처리 능력의 부족 덕분에(?) 생긴 더욱 오묘하고 신비해진 음색 등 기술적인 완벽성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카루소의 위대성과 신화를 설명해낼 수 없다. 카루소, 그의 노래에는 인간적인 고뇌와 슬픔 그리고 어두움의 그림자가 짙게 베여있다. 베냐미노 질리의 우아함, 페르틸레의 세련미, 스키파의 정교함 - 카루소는 이 모든 것을 "초월"해서, 그 벨벳과도 같이 따뜻한 목소리 속에 꿈틀대는 인간의 진실을 가슴저리게 담아내었고, 곧이어 그의 노래는 시대를 뛰어넘는 영원불멸이 되었다. -------------------------------------------------------------------------------- [20 Century 20 Tenors (2) ] Aureliano Pertile (아우렐리아노 페르틸레, 1885 ~ 1952 이탈리아) ▣ 세련된 격정, 20세기초 이탈리아를 대표한 테너 엔리코 카루소만큼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진 않지만, 아우렐리아노 페르틸레 또한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20세기 초반의 위대한 테너다. 카루소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를 중심으로 활약한 반면, 페르틸레는 20여년간 밀라노 스칼라 극장을 지켰다. 특히 위대한 지휘자 토스카니니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 "토스카니니의 테너(Il tenore di Toscanini)"로 불리기도 했다. 페르틸레는 1885년 이탈리아의 몬타냐에서 태어났다. 1911년 비첸차에서 <마르타>의 리오넬역으로 데뷔하였으며, 스칼라 데뷔는 1916년, 메트로폴리탄은 1921년이다. 페르틸레의 노래는 동시대의 어느 테너보다도 세련된 해석이 돋보이는데, 유려한 프레이징 전개와 열정적인 음성, 무엇보다도 견고한 음악성을 바탕으로 한 탁월한 음성 연기력은 현대 테너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대개의 오페라 가수들이 자신의 크고 아름다운 목소리만 뽐내는데 몰두하던 시기에, 페르틸레는 이미 오페라 캐릭터의 음악적 형상화에 관심을 투여함으로써 시대를 앞서 나간 테너가 되었으며, 이후 마리오 델 모나코, 프랑코 코렐리, 카를로 베르곤치, 루치아노 파바로티 등 그의 위대한 후배들에게 하나의 전범이 되었다. 그는 셈세한 에드가르도(<루치아>)부터 드라마틱한 카니오(<팔리아치>), 라다메스(<아이다>)까지 소화해낸 불세출의 리리코 스핀토 테너였다. -------------------------------------------------------------------------------- [20 Century 20 Tenors (3) ] Giovanni Martinelli (지오반니 마르티넬리, 1885 ~ 1969 이탈리아) ▣ 리릭 드라마틱 테너의 최절정 힘과 기백이 넘치면서도 해석의 깊이와 정교함을 갖춘 테너가 있었다. 1938년 메트로폴리탄 <오텔로> 실황(오페라 음반리뷰 코너 참조)에서 보여준 마르티넬리의 완벽에 가까운 오텔로 연기는 "오페라 테너"에 관한 모범답안이었다. 엔리코 카루소의 급서 이후, 그 커다란 부재의 시기에, 저마다 포스트 카루소의 선두주자이자 진정한 카루소의 후계자라 다퉈 나설 때, 카루소와 음색마저 비슷했던 마르티넬리는 카루소의 모든 레퍼토리에 착실히 도전하며 자신의 존재를 어필해 나갔다. 젊은 시절의 로맨틱한 노래는 나이가 듦에 따라 크고 호쾌한 영웅적 풍모의 드라마틱 음색으로 변해갔고 그 두 시기 모두에서 완벽에 가까운 성공을 거두었다. 마리오 델 모나코나 프랑코 코렐리 등 명 드라마틱 테너들도 결코 마르티넬리만큼 정제된 극적 감동을 들려주진 못했다. 마르티넬리는 1885년 목수집의 아들로 태어나, 1908년 <아이다>의 단역인 전령으로 오페라 데뷔를 했다. 로마 오페라 극장에서 푸치니의 <서부의 아가씨> 주역 테너 딕 존슨을 노래하였고, 이후 수 년간 세계 주요 가극장에서 최고의 연주력을 선보였다. 그 또한 많은 레코딩을 남겼는데, 대단한 개성을 발견하기는 어려우나 항상 수준급의 연주를 들려준다. -------------------------------------------------------------------------------- [20 Century 20 Tenors (4) ] Tito Schipa (티토 스키파, 1888 ~ 1965 이탈리아) ▣ 20세기 최고의 레지에로 테너 레지에로 leggiero, 그러니까 깃털처럼 가볍고 우아한 목소리의 테너들이 있었다. 요즘이야 워낙 격정과 힘이 강조되는 시대이다보니 이제는 이런 테너들의 시장성도 예전만은 못하지만 그러나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시공을 초월하는 법. 낡은 복각 CD를 타고 흐르는 스키파의 목소리는 그 지직이는 잡음에 상관없이 너무나 맑고 또렷하다. 레체에서 태어난 스키파는 1911년 <라 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로 데뷔하였으며, 주활동 무대는 미국의 시카고 오페라 하우스와 뉴욕 메트로폴리탄이었다. 특유의 경묘하고 섬세한 목소리와 함께 완벽에 가까운 딕션(발음) 덕분에, 이탈리아에선 그가 노래 부르는 날엔 도통 리브레토(대본집)가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노래만 듣고도 가사를 다 알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철저한 레퍼토리 관리로 긴 가수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레퍼토리의 폭이 넓지 않은 반면에 맡은 역은 완벽하게 소화했다(스키파는 젊은 파바로티에게 자신의 이런 목소리 관리법을 전수했고, 파바로티는 이를 그대로 실천했다). 오페라 아리아, 칸초네 뿐만 아니라 탱고 음악에도 일가견이 있었고, 특히 그의 라 쿰파르시타 연주는 "전설"이란 말 외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 [20 Century 20 Tenors (5) ] Beniamino Gigli (베냐미노 질리, 1890 ~ 1957 이탈리아) ▣ 질리(Gigli)는 진리(眞理)다. 질리는 진리(眞理)며, 그는 그 자체로 벨칸토 예술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질리는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구둣방집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렸을 때부터 타고난 미성으로 "종탑의 카나리아"라는 근사한 별명을 얻었다. 1914년 7월 파르마 콩쿨에 도전한 젊은 질리는 심사위원들로부터 "드디어 우리는 진정한 테너를 찾았다"라는 격찬을 받으며 우승을 차지하였고, 같은 해 10월 <라 지오콘다>의 엔쪼 그리말도를 부르며 오페라 무대에도 데뷔했다. 이후 부드럽고 관능적이며 우아한 테너의 전형으로 자리매김한 질리는, 아름답고 섬세하면서도 늘 기본에 충실한 노래로 관객에게는 황홀한 감동을, 모든 성악도들에게는 하나의 전범 역할을 하게 되었다. 크지 않은 성량을 가졌으면서도, 구강 공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최고급 발성법으로 드라마틱 배역들도 훌륭하게 소화해낸 질리는 분명 테너들의 영원한 귀감임에 틀림없다. -------------------------------------------------------------------------------- [20 Century 20 Tenors (6) ] Lauritz Melchior (라우리츠 멜히오르, 1890 ~ 1973 덴마크) ▣ 웅대한 풍모, 20세기의 헬덴 테너 리하르트 바그너의 장엄하고 스케일 큰 악극에 어울리는 테너를 흔히 헬덴테너(Helden Tenor, 직역하면 영웅적인 테너)라 부른다. 덴마크인 라우리츠 멜히오르는 이 헬덴 테너의 계보에 있어 맨 앞머리에 위치한, 20세기 초반의 가장 뛰어난 바그너 테너였다. 1890년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태어난 멜히오르는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음악적인 재능을 보였다. 처음에는 바리톤으로 가수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테너로 전향. 1924년에는 바그너의 성지 바이로이트에 데뷔하였으며, 이후 바이로이트와 메트로폴리탄을 오가며 불굴의 인간적 의지를 지닌 초인적 영웅상을 노래하여 당대의 바그너팬들을 열광시켰다. 마리오 델 모나코를 "황금의 트럼펫"이라 부른다면, 멜히오르에겐 "황금의 호른"이란 별칭이 적당할 것이다. 금관의 거치른 외침과 목관의 섬세한 리리시즘이 절묘하게 섞인 호른처럼, 멜히오르의 목소리도 드라마틱함과 서정성이라는 서로 어울리지 않을 듯한 두 요소를 한몸에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벨벳과도 같은 부드러운 유연함과 오케스트라를 압도하는 폭발적인 성량은 지금도 달리 비교대상을 찾기 힘들다. 트리스탄(<트리스탄과 이졸데>) 222회, 지그문트(<발퀴레>) 181회 등의 공연기록과 300장에 달하는 레코드를 통해 그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다. -------------------------------------------------------------------------------- [20 Century 20 Tenors (7) ] Jussi Bjoerling (유시 비욜링, 1911 ~ 1960 스웨덴) ▣ 떨어지지 않은 채 고여있는 눈물 "비욜링의 목소리에 대한 수많은 설명 중에서도 가장 잊지 못하는 표현이 있다. 그것은 BBC 음악방송이 마련한 비욜링에 대한 특집시간 중이었다. "내게 있어 비욜링은..." 방송을 들은 한 여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떨어지지 않은 채 고여있는 눈물입니다" " - 나이젤 더글라스 - 북유럽 출신으로 이탈리아 레퍼토리를 불러 세계 최정상에 우뚝선 특이한 이력의 가수다. 1930년 <돈 지오반니>의 돈 오타비오역으로 공식 데뷔하였으며, 1936년 빈 국립 오페라단에서 <아이다>의 라다메스 장군을 노래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이후 미국 메트로폴리탄과 영국의 코벤트 가든을 중심으로 수많은 감동적인 명연을 쏟아내며 영미권 최고의 테너로 오랫동안 군림하였다. 절제없는 사생활로도 유명했는데, 연습과 리허설을 극도로 싫어하고 술과 휴가, 여유를 즐겼다. 그러면서도 늘 최상의 음악을 만들어낸 전형적인 "게으른 천재"라 할 수 있다. 북유럽 특유의 우수어린 은빛 음색과 격조높은 귀족적 해석, 간간히 엿보이는 소박하고 넉넉한 인간미, 거기에 정제된 프레이징과 아름답고 우아한 비브라토까지 -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비욜링의 단아한 음성은 그가 남긴 수 백장의 레코드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 [20 Century 20 Tenors (8) ] Richard Tucker (리처드 터커, 1913 ~ 1975) ▣ 미국계 테너의 대표주자 몸매나 외모는 전혀 미국적이지 않지만, 터커는 엄연히 "미국 테너"다. 유럽-이탈리안 테너들이 판을 치는 오페라 무대에서 그의 이러한 미국적인 배경은 특이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터커 이후로 그의 뒤를 잇는 대형 미국 테너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그의 위대성과 희소성을 반증한다. 뉴욕에서 태어나 뉴욕을 위해 노래하다, 뉴욕에서 죽었다. 그가 사망했을 때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는 개관 이후 최초로 극장 명의의 장례를 치뤄 터커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했다. 터커는 1913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6살때 합창단 보이 알토로 노래하는 등 어려서부터 탄탄한 음악 수업을 쌓아왔으며, 1944년에는 당시 메트로폴리탄 단장인 에드워드 존슨의 눈에 띄어 1945년 <라 지오콘다>로 메트 데뷔를 하였다. 페란도(<코지 판 투테>)부터 삼손(<삼손과 데릴라>)까지 노래할 수 있는 탄력있는 목소리는 그만의 장점이다. -------------------------------------------------------------------------------- [20 Century 20 Tenors (9) ] Mario Del Monaco (마리오 델 모나코, 1915 ~ 1982 이탈리아) ▣ "황금의 트럼펫" - 그 앞엔 거칠 것이 없었다. "엔리코 카루소, 그리고 어떤 의미에선 질리. 이 둘을 제외하고 나를 능가하는 테너는 없다" - 마리오 델 모나코 - 마리오 델 모나코 - 그는 분명 상식을 뛰어넘는 테너였다. 목을 완벽하게 열어 고음 피치가 떨어질 것 같았지만 천만의 말씀이었고, 그렇게 "마구 질러대면" 금방 목소리가 쇠퇴할 것 같았지만 40년이나 노래했다. 대형 교통사고를 당해 죽을 고비에 처했지만 초인적인 의지로 기적적으로 컴백했다. 무엇보다 그 압도적인 성량, 무대를 뜨겁게 달구는 극적인 자질은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한다. 어떤 어려움과 장애도 특유의 불같고 도도한 성격으로 강행돌파하는 델 모나코는 무대 안팎에서 그야말로 살아있는 오텔로였다(테너에게 가장 어렵다는 베르디 <오텔로>의 타이틀롤을 그는 무려 427회나 불렀다). 델 모나코는 일명 "멜로키식 발성"의 적자다. 델 모나코의 유일한 스승이었던 멜로키는 구강을 최대한 확장시켜 노래하는 - 러시아에서 유래한 - 발성법을 가르쳤는데, 델 모나코는 이후 이를 독자적으로 발전시켜 예의 극장을 날려버릴 듯한 "괴물같은 성량"은 물론이고, 기적적인 고음 하나를 손에 넣게 되었다. 그것은 높이와 호쾌한 폭이 동시에 확보된, 상식적으로는 좀처럼 이해가 안되는 기적의 고음이어서, 델 모나코의 부인이자 성악 코치인 리나 여사는 이를 두고 "첼로의 현으로 바이올린의 음색을 낸다"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어쨋든 웅혼한 중음, 포효하는 고음, 강직하면서도 격렬한 가창 스타일 등 전후 최대 최고의 드라마틱 테너로써의 마리오 델 모나코의 위업은 결코 잊혀질 수 없을 것이다. 1915년에 피렌체에서 태어난 델 모나코는, 페자로 음악원과 로마에서 음악 공부를 하였고, 이후 레코드(특히 카루소와 페르틸레)를 들으며 독학으로 오페라를 연마하였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밀라노에서 <나비부인>의 핑커튼을 노래하여 데뷔하였고, 1946년 <아이다>의 라다메스 장군으로 온 이탈리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황금의 트럼펫"이라 불리는 그 특유의 근육질적인 격렬한 가창과 통렬한 고음은 <오텔로>, <안드레아 셰니에>, <노르마>, <일 트로바토레>, 특히 <팔리아치>의 카니오역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기량을 선보이게 했다. 언제나 포르테로 일관하는 강성 위주의 연주로 그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아서, 열광적인 컬트의 대상이 됨과 동시에 철저한 무시를 받기도 한다. 어쨋든 20세기를 대표하는 불후의 명테너였다. -------------------------------------------------------------------------------- [20 Century 20 Tenors (10) ] Giuseppe Di Stefano (쥬세페 디 스테파노, 1921 ~ 이탈리아) ▣ 달콤하고 열정적인 "태양의 카리스마" 델 모나코와 거의 동시대에 활약한 또 한 명의 슈퍼스타. 발성 자체는 이탈리아 주류에서 벗어나 있지만, 특유의 감각적인 음악성으로 그만의 스타일을 확립했다. 특히 칼라스와 이룬 파트너쉽은 20세기 최고의 것이었다. 디 스테파노는 전형적인 "자립형 천재"다. 음악교육도 받았고 노래를 배운 적도 있지만, 그보다는 천부적인 감각이 우선이었다. 시칠리아 태생인 그는 2차 대전중에 군을 탈영하여 스위스로 도피했다. 1946년 레지오 에밀리아에서 공식 데뷔하였으며, 이후 전세계 주요 가극장을 휩쓴 최고의 리릭 테너가 되었다. 소리를 둥글게 만들지 않았고 경과구(파사지오)의 커버링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어 고음역에 문제점이 많았으나, 듣기만해도 황홀해지는 달콤한 음색과 독특한 취향의 목소리는 이를 상쇄시키고도 남았다. 칼라스와 남긴 <토스카>, <리골레토>, <루치아> 등 불후의 베스트셀러는 물론이고, 그가 부른 이탈리아 칸초네는 그의 위대한 선배들을 능가하는 놀라운 감동을 안겨다준다. 무리한 레퍼토리 확장으로 이미 1960년대부터 목소리의 윤기를 잃어갔으나, 20세기가 낳은 가장 뛰어난 천재가수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 [20 Century 20 Tenors (11) ] Franco Corelli (프랑코 코렐리, 1921 ~ 이탈리아) ▣ 위대한 폴리오네여, 그 무엇이 두려운가 이탈리아 출신 가수 중 가장 수려한 외모를 지닌 테너다. 루돌프 빙(메트 단장)이 그를 뉴욕으로 스카웃한 것도 그의 노래 외에 외모가 한 몫했다. 또한 그는 20세기 테너 역사상 가장 짜릿한 음색을 지닌 테너일 것이다. 쓸데없는 여음을 많이 섞는 등 음악 공부를 늦게 시작한 탓에 노래 자체의 감각적인 세련미가 떨어지긴 하지만, 멋진 음성과 외모로 이를 극복했다. 1951년 비교적 늦은 나이로 오페라 데뷔를 한 코렐리는, 1954년 스칼라, 1957년 코벤트 가든에 데뷔하였다. 1961년 루돌프 빙의 초청으로 뉴욕 메트를 찾은 코렐리는 이 곳에서 만리코(<일 트로바토레>)로 전설적인 밤을 만들면서 뉴요커들을 열광시켰다.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 그리스 조각같은 외모, 짜릿하고 웅장한 목소리와 터질 듯한 성량, 게다가 드라마틱 테너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High C 처리능력 등 - 한마디로 그는 "물건"이었다. 칼라프(<투란도트>), 만리코(<일 트로바토레>), 돈 호세(<카르멘>), 폴리오네(<노르마>) 등에서 듣는 이의 가슴을 갈갈이 찢어놓는 감동적인 열연을 들려준다. -------------------------------------------------------------------------------- [20 Century 20 Tenors (12) ] Carlo Bergonzi (카를로 베르곤치, 1924 ~ 이탈리아) ▣ 기품있는 감성, 전후 최고의 베르디 스페셜리스트 델 모나코, 디 스테파노, 코렐리 등 "하드코어 테너"들이 무대를 휩쓸 던 시기, 원칙에 충실한 기품과 신사다움으로 자신만의 가치를 유지해나간 "소프트코어" 테너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베르곤치. 처음에는 바리톤으로 캐리어를 시작했으나, 이후 테너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혼자서 피치 파이프 하나들고 테너 수업을 쌓았다. 안드레아 셰니에로 테너 데뷔를 한 그는, 무리없고 단정한 창법의 모범적인 가창으로 리릭과 드라마틱 양 방면에서 영양가있는 튼실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또한 베르디 스페셜리스트로 오텔로를 제외한 모든 베르디 오페라를 레퍼토리로 가지고 있다. 테발디와 커플을 이룬 <아이다>, <라 보엠>, <나비부인>, 세라핀 지휘의 <일 트로바토레> 등에서 감동적인 명연을 들려준다. -------------------------------------------------------------------------------- [20 Century 20 Tenors (13) ] Nicolai Gedda (니콜라이 게다, 1925 ~ 스웨덴) ▣ 경이적인 레퍼토리의 소유자 아버지는 러시아 사람이고, 어머니는 스웨덴인. 그 자신은 7개 국어에 능통했고,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바그너 포함), 심지어 러시아 레퍼토리까지 불렀다. 게다는 도밍고와 함께 20세기에서 가장 레퍼토리가 넓은 테너 중의 한 사람이며, 자기 관리에도 철저해서 60이 넘어서도 전성기 못지 않은 노래를 들려줄 수 있었다. 가수가 되기 전에 은행원 생활을 5년간 하기도 했던 그는, 1953년 돈 오타비오로 스칼라에 데뷔하였으며, 1957년에는 파우스트로 메트 데뷔를 하였다. 여러 오페라에 두루 강했지만, 역시 게다의 본령은 프랑스 오페라라 할 것이며, 그가 남긴 두 가지 <카르멘> 전곡은 아직도 이 작품의 레퍼랑스(규범적 연주)로 남아있다. -------------------------------------------------------------------------------- [20 Century 20 Tenors (14) ] Jon Vickers (존 빅커스, 1926 ~ 캐나다) ▣ 쇳가루 섞인 쉰 목소리의 매력 캐나다가 낳은 최고의 명테너. 1957년 리카르도(<가면무도회>)로 코벤트 가든에 데뷔하여 국제적인 캐리어를 쌓기 시작한 빅커스는, 1958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지그문트(<발퀴레>)를 노래하며 최고의 바그너 테너로 격찬을 받았다. 약간 쉰 목소리와 특유의 느릿한 전개, 또한 거대한 풍모는 독특한 매력을 선사한다. 레퍼토리의 폭이 좁지만, 맡은 배역에서는 언제나 최고 최상의 연주력을 선보였다. 지그문트, 삼손(<삼손과 델릴라>), 오텔로(<오텔로>), 피터 그라임즈(<피터 그라임즈>) 등의 역은 그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 [20 Century 20 Tenors (15) ] Fritz Wunderlich (프리츠 분더리히, 1930 ~ 1966 독일) ▣ 요절한 테너, 영원한 타미노 1958년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데뷔하여 최고의 모차르트 테너로 단번에 주목을 받았다. 정제되고 순수한 독일적 미성으로 짧았던 생애 동안 최고의 인기를 모았다. 독일에서는 곧잘 이탈리아 레퍼토리를 독일어로 부르기도 했으며, 특히 그의 타미노 등 모차르트 레퍼토리는 매우 유명하다. 지성보다는 유려한 미성을 앞세운 슈만의 <시인의 사랑> 연주는 아직까지 동곡의 베스트셀러로 남아있다. 한창 나이에 사고로 급서하여 수많은 팬들을 안타깝게 한, 아직도 영원한 청년으로 기억되고 있는 테너다. -------------------------------------------------------------------------------- [20 Century 20 Tenors (16) ] Luciano Pavarotti (루치아노 파바로티, 1935 ~ 이탈리아) ▣ 기적의 High C, 신이 내린 목소리 20세기 성악사를 통틀어 최고의 슈퍼스타다. 전성기가 지난 이후로 크로스오버까지 활동영역을 넓히면서 이제는 어느 대중스타보다도 유명해졌다. 그러나 본래는 지금처럼 이것저것 아무 노래나 부르는 무절제한 테너가 아니라 얄미울 정도로 자신의 레퍼토리를 철저히 관리해 나갔던 진정으로 완벽한 소리꾼이었다. 1935년 모데나에서 태어난 그는,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와 함께 저명한 성악 코치 에토레 캄포갈리아니 아래서 음악 수업을 받았다. 1963년 디 스테파노의 대역으로 코벤트가든에서 로돌포(<라보엠>)를 노래하여 유시 비욜링이 다시 찾아온 것 같다는 격찬을 들었으며, 3년 뒤에는 도니제티의 오페라 <연대의 아가씨>에 나오는 아홉 개의 High C(테너 최고음)를 가성이 아닌 진성으로 노래하여 저 유명한 "아홉 하이 C의 전설"을 낳았다. 전음역에 있어 완벽하고 확고한 능력을 갖고 있으며, 특히 고음 처리는 역사상 최고라 할 수 있다. 레퍼토리의 폭이 넓은 편은 아니지만, 도니제티와 벨리니의 오페라, 푸치니의 <라 보엠> 등은 그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기적의 고음으로 무장한 채, 어떠한 타협도 거부하고 자신만의 소리를 지켜나간 테너로,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자체가 감격적이다. -------------------------------------------------------------------------------- [20 Century 20 Tenors (17) ] Rene Kollo (르네 콜로, 1937 ~ 독일) ▣ 영원한 청년 지그프리트 독일 테너계에서 르네 콜로처럼 도도하면서도 멋스런 스타일은 참으로 찾기 힘들다. 원래 뮤지컬 가수에서 오페라로 전향했으나, 어떤 오페라 테너보다도 오히려 고결하고 유려하다. 베를린에서 태어난 그는, 1965년 <오이디푸스 왕>으로 데뷔하였으며, 1967년부터 1971년까지 도이치 오퍼 전속 가수였다. 1969년부터 바이로이트에 데뷔하였으며, 특히 카라얀 지휘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의 발터역과 솔티 지휘 <탄호이저> 타이틀롤에서 들려준 그 특유의 시적인 젊음과 약동하는 에너지는 멜히오르나 빈트가센류의 스케일 크고, 영웅적이며, 신비스러웠던 기존의 헬덴 테너들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어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1971년 바이로이트에서 로엔그린을 불러 압도적인 성공을 거둔 이래 파르지팔, 트리스탄, 지그프리트 등에서 연전연승을 거뒀다. -------------------------------------------------------------------------------- [20 Century 20 Tenors (18) ] Giuseppe Giacomini (쥬세페 쟈코미니, 1940 ~ 이탈리아) ▣ 성스럽고 깊은, 동굴의 목소리 1988년, 서울 올림픽 기념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저 유명한 이탈리아의 라 스칼라 오페라단이 <투란도트>를 들고 한국을 찾았다. 지휘자 로린 마젤과 타이틀롤의 소프라노 게나 디미트로바 등 세계적인 슈퍼스타 군단의 방한은 한국의 오페라팬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으나, 정작 우리를 경악케한 것은 칼라프를 노래한 쥬세페 쟈코미니라는 테너였다. 당시만해도 한국에는 그 존재조차 알려져있지 않았던 이 무명(?)의 테너가 들려주는 깊고 드라마틱한 목소리는 관객들의 혼을 빼놓았고, 1993년 바리톤 피에로 카푸칠리를 대신한 두 번째 내한 리싸이틀에서 그의 위대한 목소리는 다시 한번 서울의 밤하늘을 뒤흔들었다. 1966년 베르첼리에서 핑커튼을 노래하며 공식 데뷔한 쟈코미니는, 1974년 라 스칼라, 1975년 메트로폴리탄 데뷔를 거쳐 유럽과 미주의 유수한 극장에서 수많은 배역을 노래하였다. 유창하고 고색창연한 가창 스타일과 델 모나코 이후 가장 목을 잘 여는 그의 발성법 덕에 흔히 "정통 카루소 창법의 계승자"라 불리기도 하며, 실제로 1980년대엔 라 스칼라의 오프닝 공연을 도맡다시피했다. 영혼이 깃든 장중한 스타일의 노래는 큰 감동을 주나, 적절한 피치가 확보되지 않는 무거운 고음과 억세고 된 질감의 음색때문에 테너다운 쾌감을 주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39세의 나이에 녹음한 <노르마>(Sony, 1979)는 그의 베스트 레코딩이다. -------------------------------------------------------------------------------- [20 Century 20 Tenors (19) ] Placido Domingo (플라시도 도밍고, 1942 ~ 스페인) ▣ 열정과 지성, 20세기의 오페라 가수 오텔로와 모차르트의 아리아를 동시에 소화하고, 이탈리아, 프랑스, 심지어 바그너 오페라까지 부를 수 있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기적의 테너"다. 늘 최고의 노래와 최고급의 연기력을 선보이며, 고도의 지성으로 모든 작품에 있어 깊이있는 해석을 들려주기에 그를 빼놓고는 20세기 오페라사를 논할 수 없다. 목소리 자체야 20세기 중반을 휩쓴 명테너들이나, 그의 라이벌이기도 한 파바로티에 떨어질 지도 모르지만, 그들에게는 없는 도밍고만의 다양한 장점을 잘 조합하여 언제나 모자람없는 수준높은 연주를 들려준다. 특히 1970년대부터 부르기 시작한 <오텔로>와 바그너 테너 역들은 도밍고의 음악적 깊이와 폭을 더욱 확대시켰다. 고음 처리에 큰 어려움이 있고, 소리 자체에 힘이 많이 들어가 된소리들이 자주 들리지만 오페라 가수로서의 종합적인 능력에선 그를 따라올 자는 없어 보인다. 어느 오페라, 어느 음반을 사건 도밍고의 해석은 하나의 강력한 규준으로 자리매김될 정도로 레퍼토리의 폭은 넓고, 음악성은 깊으며, 사상 최고의 연기력은 그의 가치를 더욱 드높이는 요인이다. -------------------------------------------------------------------------------- [20 Century 20 Tenors (20) ] Jose Carreras (호세 카레라스, 1946 ~ 스페인 ) ▣ 달콤한 음색, 로맨틱 테너의 전형 30대 젊은 시절에 들려준 신기의 가창이 이후 급격히 쇠퇴하면서 "조로(早老)현상"이라는 비아냥까지 듣다가, 급기야 치명적인 백혈병에 걸린 이후로는 예전의 기량을 되찾지 못해 그를 아끼는 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는 테너다. 달콤한 외모와 리릭한 음색에 더해진 드라마틱한 감성으로, 로맨틱한 노래에 대단히 강하다. 그러나 그 역시 (도밍고와 마찬가지로) 노래할 때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 이탈리아계 테너들처럼 아주 편안한 목소리를 뽑아내지는 못한다. 아바도 지휘로 녹음한 <시몬 보카네그라>의 가브리엘레 아도르노에서 들려준 가창은 성악적으로나 표현적으로나 완벽에 가까운 실로 경이 그 자체이며, <돈 카를로>, <안드레아 셰니에>의 타이틀롤, <카르멘>의 돈 호세, <토스카>의 카바라도시, <라 보엠>의 로돌포 등은 표현력의 우수함에서 평가를 받을 만하다. |
출처<http://cafe.daum.net/vocalofvoc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