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나도..#
오늘도 오후엔 날이 더웠습니다.
숙소에 들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을 구경을 나간 상태였고 남아있던 사람 몇몇은 낮잠을 즐기고도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난 다음 나는 조금은 한산한 숙소의 그늘에 앉아 있었는데요.
숙소의 뜰에는 사과나무와 커다란 호두나무가 있어서 크고 작은 서너 종류의 새들이 지저귀면서 건물의 지붕에서 뜰로 또는 나무들로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새로 보이는 새 한 마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자기보다 작은 새들에게 먹이를 입에 넣어주는 모습이, 멀거니 앉아있던 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미 새와 새끼들일 것이었습니다.
어린 새들은 이제 막 날기 시작한 듯, 날개 짓도 조금은 서툴렀고 나르는 거리도 어미에 비해서 짧더라구요. 그래도 이젠 제법 훈련이 된 듯, 어미를 따라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먹이를 받아먹으며 빠른 몸놀림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어미 새는 열심히 땅바닥에서 뭔가를 쪼아다 새끼의 입에다 넣어주고, 새끼 새는 입을 찢어질 듯 크게 벌리면서 먹이를 받아 삼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런 동작이 몇 번 반복되던데......
순간, 쿵하고 내 심장을 내려치는 게 있었습니다.
나른한 한 낮 더위 속에서도 내 정신은 찬 겨울 하늘처럼 시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저 하잘 것 없는 미물도 어미와 자식 간의 사랑이 저다지도 깊은데......
당연히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올랐고, 반사적으로 나에겐 사랑을 베풀어줄 자식 하나 없음이...
쩌르르 가슴을 할퀴는 것이었습니다.
아, 인생은 그런 것인데......
뭔가 아쉽고 안타깝고, 그리고 불안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인생은 허무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도 있습니다.
살다 보면, 혼자 사는 나도......
7 . 29
#자유의 맛#
이 길을 걸으며 난 내가 관광객이 아님을 스스로 강조하기도 하고 느끼기도 한다.
어쨌거나 지금까지 약 800 킬로미터를 걸어왔으니, 볼거리가 많은 유명한 곳이나 큰 도시들을 지나오기도 했다. 기왕에 그런 명소를 지나는 길에, 다른 사람들 처럼 잠깐 짬을 내어 내로라 하는 곳의 관광에 나설 만도 했지만, 난 관광 쪽에는 별로 흥을 내지 않아왔다.
'산 페르민(San Fermin) 축제'로 유명한 빰쁠로나에서만 며칠을 소비해가면서,
그 투우와 사람이 뒤엉켜 뛰고 달아나는 '엔시에로(Encierro)'를 보았을 뿐, 거기서도 다른 흥미도 없었고 관심을 갖지 않았던 나다.
'산 페르민(San Fermin)' 축제?
사실 그 곳에서도 나는 그 축제를 보고 난 뒤, 너무 정신이 없고 실망(?)해서(허와 실을 보면서) 탈출해 나왔다고 생각했었고, 그 뒤로 그 어떤 숙소에 도착하더라도 그 주변에서 맴돌았을 뿐, 관광 같은 일에는 거의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
특히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고딕식 성당으로 역사적으로나 문화 예술적으로도 너무나 유명한 '부르고스(Burgos)' 같은 곳을 지나면서도, 도심의 그 성당 옆을 지나면서 한 번 그 건물을 흘려보았을 뿐, 차라리 숙소의 침대나 숙소와 가까운 공원의 한 그늘 벤취, 또는 강가... 그런 곳에 앉아 있거나 그저 내 일하기에 바빴던 것이다.
여기 '아스또르가(Astorga)'만 해도 그렇다.
이 도심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옛날 성벽으로 둘러 쌓여있고, 대성당은 높고 독특했다.
그런데 난 대성당 부근을 한 바퀴 돌았을 뿐(그것도 알베르게 문이 아직 안 열려있어서 열릴 시간을 기다리는 사이에), 그 안에조차 들어가 보지 않았다.
나에겐 스페인의 성당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다.
5 년 정도 스페인에 살면서 그리고 그 뒤로 또 멕시코에 살면서, 또 독일에서도... 내가 어디 한두 군데 성당엘 들어가 보았겠는가? 그 수많은 성당들은 겉모습부터 안까지 다 조금씩은 다를 게 분명하다.
그건 마치 우리네 절이 그 형식은 비슷해도 그 건축양식이나 지형에 따라 건물이 자리한 것도 다르고, 그 안의 부처상들도 다르듯이... 이들의 경우도 예수상, 성인 상, 마리아 상 그리고 레따블로(성당에 있는 종교화등)도 다 다르다.
허지만 나에겐 거의가 다 그저 그럴 뿐, 그 이상의 흥미나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
아무튼 그 웅장한 아스또르가의 대성당도 나는 겉모습만 한 번 훑어보고 지나쳤을 뿐이다.
그런데 그 옆에 있는 '가우디 궁전(Palacio Gaudi)'에는 들어가 보고싶은 마음도 없지만은 않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나 '구엘 공원(Parque de Guell)'등 가우디의 대표 작품들은 대부분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한 '까딸루냐(Catalunya)' 지방에 밀집해 있어, 스페인 내에서도 까딸루냐 지방을 벗어나면 그의 작품이 두어 군데 밖에 없다는 희귀성 때문에라도 한 번 보고도 싶었는데,
지금은 순례자를 위한 박물관으로 사용한다고 하던데...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내가 간 날이 월요일이라고 문이 닫혀 있었다.
그렇게 갑자기 김이 샜던 나는, 숙소로 돌아온 뒤 더 이상 시내에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 아스또르가는 그리 크지 않아서 맘만 먹으면 두어 시간 정로만으로도 중요한 것들은 다 돌아 볼 수 있는데다, 이곳의 유명한 특산물이라는 쵸콜렛과 '만떼까다(Mantecada)'란 빵 맛도 봄직한데... 난 그런 쪽엔 전혀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숙소가 너무 편안해서도 아니었다.
오늘은 날까지 더워서 그 열기가 숙소까지 전해져, 침대에 앉아있자니 파리가 잉잉대고 끈적거리기까지 해서 짜증만 나기도 했었는데,
그렇게 무료하고 어정쩡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나는 숙소 밖을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한 가지였다.
멍청하고 우둔하게도, 어서 빨리 시간이 가서 밤이 되어 기온이 조금 내려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면 잠을 자는 것이었다.
그래야 내일이 되고, 새벽에 일어나 또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들로 산으로 떠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 그렇게... 난 바람에 중독 되어 있는 것 같다. 확 트인 자연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래!
그것은 자유일 것이다.
나는 그 자유의 맛에 길들여져 있는 것이다.
7 . 30
#물에 기름 뜨듯#
여기 '레온(Leon)' 지방 중에서는 상당히 큰 도시인 '뽄페라다(Ponferrada)'에 도착했다.
그런데 숙소의 시설이 현대적이고 대규모인 만큼, 사람도 갑자기 많아진 게 확 눈에 띄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아진 이유는, 8월이 되어, 7월에 휴가를 보낸 사람들과 교대하는 휴가의 시작 날인 데다가, 이 부근의 거점도시인 이 뽄페라다에서 걷기를 처음으로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몰려왔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더구나 한 반도 넘어 보이는 청소년 학생들 그룹이 합류하다 보니 숙소는 도떼기시장처럼 붐볐다.
이 길을 걸으면서 간혹 나는, 왜 피부색이 같게 생긴 사람마저 하나 없는 낯선 곳을 이렇게 다니고 있는지... 하는 생각이 스쳐, 어떤 때는 섬뜩하다는 생각도 든다.
가끔, 몇 사람의 일본인들을 보고 지나오긴 했지만, 다 각자 자기의 일정에 따라 걷기 때문에 지금은 어디쯤 걷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였을까?
그 동안은 모르고 지나치다가, 요 근래에는...
'내가 왜 이 백인들 무리에 홀로 끼어있다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한다.
백인들의 세상인 이 곳에, 황색인종으로(동양인으로) 혼자서 이들과 같이하고 있는 내 모습에, 나 스스로도 놀라곤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내 낯이 그만큼 두꺼워져 있다는 건가?
그러니 난 혼자이기 일쑤고, 또 내 스스로 혼자인 걸 선호하다 보니, 평소에 사람 사귀기에 미숙한 나는 아예 혼자가 되어 이 길을 걷고 있고 또 그게 편하기도 하다.
그런데 이 숙소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에서는 여러 가지 언어가 들리고, 그러다 보면 자기들끼리 뭐라 지껄이며 떠드는 모습을 보고 들으면서는, 나도 우리말을 맘껏 지껄여보고도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날마다 외국어만 귀에 들리다 보니, 그 언어들이 다 쓸데 없이 떠들어대는 소리만 같고, 어떤 때는 귀까지 따갑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것도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어쨌거나 오늘 숙소의 식당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던데, 혼자인 나는, 그것도 유일한 동양사람인 나는 그들 틈에 끼어 식사를 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평소에도 남들의 시선 받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는 음식이 입에 들어가지도 않을 것 같았던 것이다.
그래서 슈퍼에서 사 놓았던 간단한 저녁거리를 들고 아예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특히 오늘처럼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은 날은, 유일한 동양인인 나를 향하는 시선이 많기에, 그 걸 피해 밖으로 나왔던 것이다.
나는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으로 향했고, 아무도 없는 풀밭에 앉았다.
종일 흐렸던 하늘의 구름이 걷히고 2,000 미터가 넘는다는 이 도시 주변의 산들은, 드디어 그 모습을 맑고 환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오늘 내가 넘어왔던 산이 구름아래 아마득하게 보였고, 그 보다 더 높은 산들도 깨끗한 하늘 앞에 그 모습을 짙게 내 보이고 있었다.
난 얇은 비닐로 포장된 치즈를 천천히 벗겨 달지 않은 과자에 싸서 먹기 시작했다.
구름이 바람에 실려 눈에 띄게 날아다니고 있는 평화롭고 깨끗한 저녁 풍경이었다.
여기는 서쪽 나라라서 그럴까? 저녁이 매우 느리고 길다.
해가 넘어가는 시간은 9시 반이 되어야 하니, 최소한 7시 경 부터 저녁으로 봐도 두어 시간의 늦은 오후의 기분을 즐기기도 한다.
그래서 이들의 저녁식사 시간이 9시 이후인가 보다.
난 약간 그늘진 언덕에 앉아 산을 바라보며 달콤한 자두로 저녁을 마쳤다.
아, 나도 텐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이런 언덕에서 자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저 구름처럼 자유로울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렇게 하자면 너무 복잡하기도 하고... 그럴 용기를 내기가 쉽지가 않다.)
그렇게...
땅거미가 지도록, 그래서 숙소에 들어가면 바로 침대에 틀어박힐 수 있도록,
나는 하염없이 큰 산 앞에 앉아있었다.
8 . 2
#사람 사는 일#
'뽄페라다(Ponferrada)' 도심을 벗어나니 아침 햇살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상쾌한 아침 들길을 지나는데, 길 옆 농장에는 토마토 밭이 하나 있었다.
제법 너른 밭의 굵직한 나무 기둥으로 받쳐준 가지에는 크고 탐스러운 토마토가, 참... 많이도 열려있었다. 거기엔 30대로 보이는 한 여자가 익은 토마토를 따고 있었고.
싱싱한 토마토를 보자, 나는 식욕이 당겼다.
아직 아침을 먹지도 않은 데다가 개인적으로도 나는 토마토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런 나도, 바로 스페인에 살면서부터(1990년대) 토마토가 입에 익었던 것인데,
이렇게 토마토 농장을 지나면서는 그 맛이라도 보고 가고 싶은 충동도 일었다.
"여보세요(Oiga)!" 하고 나는 그 여자를 불러, 토마토 몇 개만 팔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얼마나 필요하냐고 해서, 걷는 중이라 많이는 필요 없고, 지금 당장 먹을 정도만 있으면 되는데, 그렇게라도 팔 수가 있냐고 했더니, 내 쪽으로 오면서,
"얼마 정도나 살 건데요?" 하고 다시 물었다.
그래서, 100 뻬세따 정도면 몇 개를 줄거냐고 물었더니... 통통하게 잘 익은 놈으로 네 개를 골라 주는 것이었다.
나는 두어 개 줄줄 알았는데, 그리고 두 개면 충분하기도 했는데... 그렇게나 많이 주었던 것이다. 그러니,
'여기가(스페인은) 토마토가 싸기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많이 주는군......' 하는 생각을 하면서 토마토를 받으며 동전을 주었는데, 그녀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조금 기다리세요!" 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토마토를 따 놓은 노란 플라스틱 통으로 가더니 비닐 봉지를 꺼내면서, 얼른 보기에도 한 열 개 정도는 될 토마토를 담아서 나에게 다시 건네는 것이었다.
(물론 생김새는 볼품이 없었지만, 먹는데는 전혀 이상이 없는 것들이었다.)
내가 손사래를 치며,
"아니, 그럴 필요 없어요!" 하고 애써 얘길 했는데도, 그녀는 묵직한 비닐 봉지를 나한테 떠넘기고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일을 하려고 저만치로 멀어져 갔다.
그렇게 뎅그러니 토마토 봉지를 받아 들었던 나는,
'아니, 근데... 이걸 어떡한다지?' 하는, 갑작스런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나쁜 일은 아닌데, 아니, 좋은 일이 분명한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마냥 좋다고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또, 나쁘달 수도 없는......
그래도 일단은 먹고 보자며, 두 개를 그 옆의 수로에 흐르던 물로 씻어 우직우직 씹어 먹었다.
그 것만으로도 배가 차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시 배낭을 짊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이 토마토가 들어있는 비닐 봉지를 어떡한다지?'
난감했다.
물론, 그 여자의 친절이 고맙긴 하지만, 그래서 이 자리에 놓고 갈 수는 없는데......
그래서 어쨌거나 가지고는 가보자며, 그 토마토를 따는 여자에게 큰 소리로,
"아디오스(Adios)!" 하고 외쳤더니,
그녀도 행운을 빈다면서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렇게 걷는데, 자유로웠던 왼 손에 묵직한 토마토 봉지가 들리니, 온 몸에 여유가 하나도 없는 듯 답답했고 성가시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평소엔 그저 오른 손에 지팡이 하나만을 들고 걷던 나로써는 걸리적거리기까지 했던 것이다.
'에이, 이 아까운 걸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당장 먹을 수도 없고......'
그런 푸념을 하면서도, 차마 버릴 수는 없어서 나는 그 묵직한 토마토 봉지를 들고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잠깐 소변이 마려워, 배낭을 내려놓고 길 나무 숲에 들어갔다 나왔는데,
저 뒤에서 알 만한 여자 하나가 오고 있었다.
요즘 알베르게에서 안면이 익은 덴마크 사람들 그룹의 한 여자였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늘 붙어 다니던 일행들 없이 그녀 혼자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 네 명이 함께 왔다면, 어쩌면 한 순간에 토마토를 다 처리할 수도 있을텐데......'하는,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으로 나는, 일단 그녀에게 만이라도 몇 개의 토마토를 나눠주자는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그녀가 가까워지기를 기다리다 내가, 당신 동료들은 어디에 있냐고 물었더니, 오늘은 각자 걷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토마토 드시겠어요?" 했더니,
갑작스런 상황에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조금 전 지나오던 밭에서 샀는데 너무 많이 줘서, 무거워도 이렇게 들고 갈 수밖에 없다고 하자,
그녀도 이해가 되는지, 활짝 웃으면서,
"그러면 두 개만 주세요." 하는 것이었다.
나는 단단한 걸로 두 개를 골라 그녀에게 주었다.
뜻밖의 토마토 선물에 식욕이 돋았는지, 그녀도 이 참에 아침을 먹고 가야겠다며 배낭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어쩌면 자기 일행을 기다릴 수도 있을 것 같아, 토마토를 맡길 양으로,
"당신 친구들이 곧 올 건가요?" 하고 물으니,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을 거 같은데요. 그리고 언제 올지 모르겠어요."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토마토를 그녀에게 짐으로 떠맡길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그럼 맛있게 먹고 천천히 오라고 말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래도 큼직한 토마토 일곱 개나 더 든 비닐 봉지는 여전히 무거웠고 또 신경이 안 쓰여지지가 않았다.
'이 거 골치네! 그렇잖아도 힘들어 죽겠는데, 이런 것까지......'
참으로 미련한 짓이었다.
그렇지만, 먹는 걸 버릴 수는 없었다. 더구나 그렇게 싱싱하고 큼직한 토마토를.
어릴 적부터 먹는 걸 버린다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생활화가 된 나는 이미 구세대인지도 모른다. 허지만, 정말 버릴 수는 없다. 그렇게 가정교육을 받아온 나는, 이 나이가 돼서도 그러면 큰 일 나는 줄 안다.
아, 그래서 교육이니 습관은 무섭다고 하는가 보다......
그렇게 아둔한 줄을 알면서도, 나는 내 삶의 틀 속에서 벗어나지지가 않았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마을을 지나게 되었는데,
나는 길에서 한 노파를 만났다.
내가 인사를 건네자(평소 답지 않게 내 쪽에서 먼저 반갑게 다가가면서) 그 노파도 선한 얼굴로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웬 동양 사람이 그렇게 친절하게 인사를 걸어주나?' 하는 표정이었지만, 그 표정은 퍽 밝았다.
그래서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사정 얘길하며 노파에게 토마토를 드려도 괜찮겠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우리 집 텃밭에도 토마토가 있다오." 하며 사양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그러면 내가 이 무거운 걸 들고 계속 걸어가야 합니까?" 하고 웃으며 물었더니,
"그럼, 가지고 가다가, 배가 고프거나 목이 탈 때 먹으면 되잖아요?" 라는 것이었다.
아이고, 답답해!
내가 난처한 얼굴로 그러면서 한숨까지를 쉬면서,
"그럼, 이제는 무거워서 들고 갈 수가 없으니... 여기에 버리고 갈 수밖에 없겠군요." 하자,
그제서야,
"그러지는 마세요. 그럼... 내가 가져갈게요." 하기에,
'아, 살았다!' 하면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 비닐 봉지를 노파에게 건넸다.
"아니! 이거, 꽤나 무거운데?"하면서 노파는 다시 나를 보면서 환하게 웃는 것이었다.
고마운 건 나였다. 나 역시도 얼마나 고마운지......
그 노파에게 연거푸 큰 소리로 두번 씩이나 인사를 한 뒤, 손을 흔들어 보이며 길을 계속했다.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렇게 짐을 덜어낸 안도감에 심신이 가벼운 상태로 걸으면서도, 나는 뭐가 뭔지 머리가 멍- 하기만 했다.
'근데, 그 노파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정말 어디까지 그 무거운 걸 들고 갔을 것인가? 만약, 그랬더라면... 가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어딘가 그걸 버렸을 것인가?'
아닐 것이었다. 아무래도 그러지는 못할 것이었다. 최소한 거기까지 들고 간 수고가 아까워서라도......
그렇다면 자꾸 악순환이 되풀이되었다면?
차라리 어디 한 곳에 멈춰, 배가 터지도록(?) 토마토를 입안으로 밀어 넣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참 내! 그저 싱싱한 토마토 한 번 먹어보겠다고,
그래, 나는 나대로 힘들었고, 또 몇 사람을 귀찮게 만들고......
아이고, 나도, 참!
8 . 3
#초가을#
오늘, 초가을을 보았다.
밭이랑에는 커다란 호박 몇 개가 익어가고, 그 뒤에는 옥수수들도 불룩불룩 제법 탄탄하게 영글어가는 모습이었다.
언덕 받이에는 사과며 배를 주렁주렁 매달은 과수 가지들도, 뜨거운 볕을 받으며 불어오는 바람에 이파리들만을 살랑대고 있었고, 허공에는 이따금 잠자리의 모습도 보였다.
우리의 초가을하고 다를 게 없었다.
하늘은 파랗고 맑고 높았고, 몇 점 구름이 떠가는 모습에다, 그 전체적인 색감마저도.......
걷다가 나는 양쪽 길가의 툭툭 불거져 검게 익은 산딸기를 따먹으며 시간을 잊기도 했다.
문득,
'야! 초가을 냄새나는 이런 야산 능선을 따라 걷고있는 내 모습이, 여유로운 나그네 같이 무척 평화롭게 보일 거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어쩌면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건 그런데, 웬일이었을까?
그러면서는, 어쩐지 내 마음 한 구석이 비어가는 듯 자꾸만 허전해지는 것이었다.
불현듯 사람의 정이, 그리고 또 먼 옛날이 그리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많은 사람들 중, 내가 사랑하고, 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한정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한 평생을 살아오며 알아온 사람들 중, 나에게 진실을 느끼게 해줄 사람은 몇이나 될까?
한 시절 서로가 다시 없을 것 같던 믿음을 주고 받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멀어지고, 또 다시 가까워졌다가 아주 멀어져...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제법 있는데......
짧은 것 같은 우리네 인생은, 어떻게 보면 또 길은 듯 복잡하기도 하여, 돌이켜 보면 아쉬움도 많은데,
그 아쉬움을 남긴 채 멀어진 사람들 몇몇을 떠올리며...
그 누구래도 그들 중 하나와, 이런 초가을 냄새나는 언덕길을 함께 걸으며, 우리가 살아왔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다면......
배낭에 달고 다니는 물통의 물을 나눠 마시거나 비상식량을 갈라먹으면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을 수만 있다면......
'모든 복잡한 문제들 다 잊고, 그 다정했던 옛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생각이 들었다.
아, 소중한 내 세상의 사람들과, 남아있는 우리네 인생을 서로 공유하고 싶다!
구름이 바람에 흘러가듯, 우리도 흐르는 구름처럼 느긋하게 걸어가며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 아름답고 그리운 내 사람들이여!
8 . 8
#나라가 강해야...#
이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내 삶은 거의 컴퓨터와 무관하게 바뀌어 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차라리 모든 걸 잊어버리고 걸을 수 있어서 홀가분할 것만 같았는데, 그 게 아니었다.
내가 컴퓨터를 잘 다루는 사람은 아닐지라도, 그래도 날마다 개인 홈페이지 등과 관련된 삶을 살아왔기에... 이런 길에서 마저 툭하면 컴퓨터 생각이 나고, 의외로 자주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게다가 이렇게 걷다 보니 내 세상의(나와 관계있는)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이 고작, 내 쪽에서 쓴 엽서뿐이라... 다른 사람들의 소식이 궁금하고 그립기도 했다.
그러니 여태까지 걸어오면서도 큰 도시를 지날 땐, 일부러 인터넷 까페를 찾아 돌아다니며 잠깐씩 메일 박스에 들어가 보는 것으로 허전한 마음을 달래보곤 했는데,
그런 곳에 가도 컴퓨터만 마주할 뿐 대부분이 한글이 깨져 나왔기 때문에,
차라리 그 갈증은 더 크기만 했다.
설사 새로운 메일이 와 있을지라도 겨우 누군가에게서 메일이 왔는지 ID만 가능할 뿐, 읽지도 못하고 까페에서 나와야 할 때도 자주 있었던 것이다.
그럴 땐 정말, 사람 환장할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 느낀 건, 이들(스페인)에겐 한국이란 나라가 그저 동양의 먼 한 조그만 나라일 뿐, 별 관심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컴퓨터와 인터넷 분야에선 그래도 앞서간다는 한국이지만, 이들의 인터넷 카페에는 몇몇 한국 상표의 컴퓨터가 설치돼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그 컴퓨터엔 한글이 뜨지 않는 아이러니도 겪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의 언어 선택란에 들어가 봐도, 일본어와 중국어는 있지만 한글은 없는 경우가 많은 것만 봐도.
그럴 때마다 화가 나기도 하고 이들이 얄밉기까지 하지만, 그건 내 개인적인 감정일 뿐, 이들을 미워하기까지 할 근거나 이유 또한 없다고 본다.
게다가 이들은 우리처럼 아등바등 살아가려고 애쓰는 삶도 아니라서 굳이 그 어려운 한글을 배울 이유도 없는 듯하다.
자신들이 아쉬워야 한글도 배우고, 컴퓨터 언어란에 자발적으로 한글을 깔아놓기도 할 텐데, 지금 상황으론 굳이 그럴 일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컴퓨터 분야에서 세계에서 제일, 그러니까 월등하게 앞서나간다면 가능한 일일 수도 있으리라......)
그에 비해선 우리는 아쉬우니까, 영어에 불어에 독어에 일어에 중국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등을 배우느라 그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아 붙고 있는데......
그리고 내가 외국을 다니면서 살아보니, 영어권의 사람들은 이 세상 어딜 가도 자신의 밥벌이를 쉽게 찾는다는 걸 알게 됐다. 최소한 영어를 말하고 가르치는 일만으로도 대우를 받고 현지에서도 너끈하게 살아갈 수 있으니까.
그렇게 나라가 강해야, 이런 곳에 나와서도 큰 어려움 없이 또, 대접을 받으며 다닐 수 있는데......
그건 그렇고,
어쨌거나, 나라가 강해서 나쁠 건 없다. 국가 전체적으로도 그렇겠지만 그 국민 한 사람 한 사람도.
우리 한국 사람도, 단지 한국사람이란 이유 하나만으로도 어딜 가나 대접을 받을 수는 없는 걸까?
그리고 그런 시대가 오긴 할까?
8 . 11
'이렇게 글(1장)을 끝내게 되는데...... 어차피 책에 실리지 못한 글들이라 어떤 큰 틀에 맞춘 게 아니라서 산만하긴 하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으면서 썼던 글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보여준 의미는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