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아키노 로시니(Gioacchino Rossini, 1792-1868) 호른과 트럼펫 주자였던 아버지에게서 음악을 배우고 볼로냐 음악 학교에서 작곡 공부를 시작한 로시니는 18세부터 오페라 작곡을 의뢰 받았고, 30대 후반에 오페라 작곡을 그만둘 때까지 총 39편의 오페라를 발표했습니다. 해마다 평균 두 편을 쓰는 속필이었던 셈이죠. 고전주의 형식을 따른 마지막 오페라 작곡가이면서 풍자 희극에 강했지만, 여러 편의 오페라 세리아와 규모가 큰 대작들도 발표했습니다. [세비야의 이발사], [신데렐라]를 비롯한 그의 여러 걸작들은 ‘희극을 위한 천재성’이 어떤 것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2. 가에타노 도니체티(Gaetano Donizetti, 1797-1848) 도니체티는 원래 관현악과 실내악, 칸타타와 교회음악에 헌신할 작정이었으나, 자신의 초기 오페라 작품에 유명 흥행사가 관심을 보이자 오페라 작곡에 전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1830년에 밀라노에서 초연된 [안나 볼레나]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그는 [사랑의 묘약],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연속적인 성공으로 당대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 자리를 굳혔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검열에 염증을 느끼고 아내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아 이탈리아를 떠난 그는 파리로 가서 [린다 디 샤모니], [돈 파스콸레] 등의 오페라로 다시금 성공을 누렸으나 신경쇠약 등의 이유로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3. 빈첸초 벨리니(Vincenzo Bellini, 1801-1835) 시칠리아 지방에서 태어난 벨리니는 나폴리 음악원에서 하이든, 모차르트, 페르골레시의 음악을 배우며 작곡가로 성장했습니다. 1924년 로시니의 오페라 [세미라미데]를 보고 결정적으로 오페라에 헌신하게 되었지요. 그의 오페라는 초기부터 관객과 제작자 모두를 만족시켜, 이미 젊은 나이에 벨리니는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 작품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해적>을 작곡할 때 만난 대본가 펠리체 로마니와 함께 [몽유병 여인], [노르마] 등의 히트작들을 발표했으나, 파리로 이주한 뒤 마지막 오페라 [청교도]를 발표하고 34세로 병사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