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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에세이포럼
22기-1차시
일시 : 2024년 2월 20일 (화) 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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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 제 목 | 작 가 | 편수 | 합평 담당 |
1 | 황혼의 수세미 | 민창현 | 1 | |
2 | 유모차 | 박동조 | 1 | |
3 | 집청정기(集淸亭紀) | 예수백 | 1 | |
4 | 걸음을 걸을 수 있을 때까지 | 배정순 | 1 | |
5 |
합평순서 / 권춘애 김기람 김선애 김인옥 민창현 박동조
박희자 배정순 예수백 이경자 이혜경
1. 황혼의 수세미 – 민창현1
1. 싱크대 수도꼭지 위에는 컵 몇 개를 놓을 수 있는 받침대가 있다. 받침대 끝에는 큰 집게가 달렸다. 지금은 나의 둘도 없는 파트너가 된 물건 하나를 집게가 물고 있다. 식사가 끝나면 늘 반갑게 맞아주는 누런색 천연 수세미 반쪽이다.
2.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다 손에 잡힌 황혼의 수세미를 문득 바라본다. 촉감이 얼마 전과 많이 다르다. 탱탱하던 몸매는 다 어디 가고 힘을 잃고 늘어져 있다. 황혼에 접어든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괜히 스산한 마음이 든다.
3. 직장 생활을 할 때는 떼 돈을 벌어온 것도 아니었건만 가족 구휼에 모든 힘을 다 쏟아서라는 핑계가 통했다. 퇴직을 하고나니 상황이 달라졌다. 시간이 있으니 남자도 적극적으로 가사를 분담해야 한다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었다. 분리수거, 청소, 빨래 등 손쉬운 것부터 시작했다.
4. 이들이 어느 정도 정착되자 아내의 요구 사항이 늘어났다. 퇴직 후에는 밥상을 차례 주겠다는 약속은 어디 갔냐는 것이었다. 퇴직 전에 미리 준비한다고 나름 요리학원에도 다녔건만 아무리 해도 요리만은 뛰어넘기 힘든 높은 허들이었다. 다각도로 시도는 해 보았지만 남다른 미각을 지닌 아내의 입을 즐겁게 만드는 것은 불가했다. 이생에서는 해결하기 힘든 것으로 결론 내고 그 대타로 잡은 것이 설거지였다.
5. 전형적인 초록색 합성수지 수세미부터 여러 가지 종류를 사용해 보았다. 아크릴 손뜨개 수세미는 부드럽긴 한데 사용하다 보면 안쪽에 끼인 찌꺼기가 잘 빠져나오지 않아 불결해 보였다. 스펀지 수세미는 물기가 잘 마르지 않고 많이 쓰고 나면 색깔이 변해서 보기가 좋지 않았다.
6. 그러다가 찾은 것이 천연 수세미였다. 요즘의 대세가 친환경적인 것도 있었고 어릴 적 우리 집 대문 옆에 수세미가 주렁주렁 달렸던 기억이 났다. 어머니는 매달린 수세미가 다 익으면 따서 양 끝단을 잘랐다. 끓는 물에 푹 삶은 후 건져내어 찬물에 담가 껍질을 벗겨냈다. 바짝 건조해서 두고두고 하나씩 꺼내어 사용했다.
7.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바로 천연 수세미를 온라인으로 구입했다. 써보니 이것도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보내온 것을 통째로 사용했다. 수저 같은 것이나 작은 접시를 씻어보니 너무 커서 수세미를 반으로 잘랐다.
8. 그렇게 해도 사용 처음과 끝 무렵이 문제였다. 처음에는 물을 아무리 묻혀도 숨이 쉽사리 죽지 않았다. 사용하다 보면 서서히 죽어 용도에 전혀 불편하지 않는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이제 딱 되었다, 이런 모습으로 계속 가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으면 힘이 다 빠져 너덜너덜해졌다. 종국에는 제구실을 하기 어려운 모습이 되어버렸다.
9. 손에 쥔 수세미가 얼마 전만 해도 너무 뻣뻣해서 불편했다. 빨리 숨이 죽기를 학수고대했다. 그런 수세미가 막상 부드러워지고 이제는 황혼에까지 이른 것이다. 다시 돌아가지 못할 우리 젊은 시절이 생각나서 일까, 수세미의 풋풋한 시절을 너무 빨리 재촉한 게 걸려서일까 측은지심이 든다.
10. 천연 수세미의 일생이 우리네 삶을 참 닮았다 싶다. 천연 수세미만 그러하랴. 이 세상 만물의 생멸이 다 그러하지 않는가. 억센 청춘의 질풍노도와 같은 시절을 보내고 나면 고개를 숙일 줄 알고 주위도 살필 줄 아는 장년이 온다. 이렇게 좀 오래가면 좋겠다 싶은 데 바로 황혼이다.
11. 마주한 황혼에 대한 바램이 있다면, 노년의 삶이 여태까지의 천연 수세미의 황혼과는 좀 달랐으면 하는 것이다. 수명을 다한 천연 수세미를 달리 재생해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너덜거리는 낡은 수세미 두 개을 붙여 묶었더니 힘이 생겼다. 이렇게 만들어 써 보니 버려야 했던 낡은 수세미도 다시 쓸만해졌다.
12. 요즈음 노인 복지관, 구청, 주민센터에 가면 온갖 강좌가 즐비하다. 온라인으로 가면 더 다양한 익힐 것들이 있다. 요양보호사, 노인심리상담사 공부를 하는 노인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무척 반가운 일이다.
13. 노후 준비가 덜된 노인들의 생활비 보충의 일면도 있겠지만 이것뿐만은 아닐 테다. 아직도 사회 일원으로서 일조를 할 수 있다는 보람과 함께 자존감도 분명 느낄 수 있다.
14. 복지관 사진반에 열심히 다니는 누님뻘 되는 분으로부터 며칠 전 전화가 왔다. 어르신들 사진 찍어주는 일이 있는데 마침 자리가 비어서 연락한다고 했다. 이처럼 우리도 무언가를 덧붙여 가면 겹붙인 수세미처럼 황혼의 사용 기간도 늘려갈 수 있지 않을까.
2. 유모차 / 박동조
1. 우리 집 창고에는 유모차가 한 대 있다. 손녀가 백일을 맞았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 만나러 오면 필요할 것 같아서 마련한 것이다. 공교롭게 아들네가 올 때마다, 날씨가 받쳐주지 않아 유모차 이용할 일이 없었다. 어느덧 손녀는 초등학교 오 학년이 되었다.
2. 쓸모를 유예 당한 유모차는 바퀴 한 번 굴러보지 못하고, 십 년 넘는 세월을 상자 안에서 잠자는 중이다. 남이라도 사용하게 하자는 나의 제안에 짝지는 “훗날 필요한 시간이 올 텐데, 그때 자가용 해야지”라며 햇볕이 들지 않는 장소에 고이 보관했다.
3. 그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철렁했다. 유모차가 지팡이를 대신하는 시대라곤 해도 빈 유모차 미는 할아버지는 보지 못했다. 그러니 미래의 유모차 주인으로 나를 지목해 놓은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뒤로 유모차를 밀고 가는 할머니를 만나면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4. 종종 아파트 후문 가파른 돌층계 아래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는 K할머니를 만난다. 층계 위까지 유모차를 올려 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다. 운이 좋아 나 같은 사람 만나면 기다리는 시간 없이 상황이 종료되지만, 오가는 사람 뜸할 때는 제법 긴 시간을 무료히 앉아 있어야 한다.
5. 일전에도 유모차를 올려드렸다. 소스라치게도 할머니가 네 발로 엉금엉금 기어서 층계를 오르는 게 아닌가.
6. 몇 달 전만 해도 그런 모습까지는 아니었다. 당시의 할머니는 ㄱ자가 무색한 꼬부랑 허리여도 난간을 붙들고 두 발로 걸어서 계단을 올랐다. 불과 가을 지나 겨울인데 그새 네발로 기지 않으면 계단을 오를 수 없게 된 것이다.
7. 연세가 아흔둘인 할머니는 우리 아파트에서 사시다가 근처 주택으로 이사하신 분이다. 친구분들이 모두 이곳에 살고 있어 오전에 아파트 경로당을 찾아와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나절 집으로 돌아가신다. 당연히 조력자가 있어야 층계 길을 내려간다. 아파트 정문을 이용하면 남의 도움 청할 일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백 미터 둘러 가는 길이 천릿길처럼 무서워 지름길인 후문을 이용한다고 했다.
8. 늙으면 어린애가 된다는 말이 있다. 정신이 아이처럼 천진해진다는 뜻이다. 할머니를 보면서 정신만 아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몸의 기능도 아기가 되는구나, 싶었다. 다르다면 아기의 행동은 성장을 지향하고, 노인은 아기의 몸짓을 하면서 소멸을 향해 퇴행한다는 사실이다.
9. 누구라도 기억력이 떨어지고 신체의 기능이 약화 되는 노화의 시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태어나 성장하고 그러다 노화의 과정을 거쳐 소멸에 드는 것은 존재하는 모든 생명에 주어진 필연의 과정이다. 그렇다손 만에 하나 현대판 지팡이인 유모차 없이는 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면, 상상만 해도 오금 저리다.
10. TV에서 106세 할머니의 일상을 다룬 다큐를 보았다. 20킬로 쌀 포대를 어깨에 메고 날렵한 걸음새로 걷는 모습은 청춘이 따로 없었다. 그분에게 유모차는 농사지은 푸성귀를 나르는 도구일 뿐이었다. 사람마다 생명의 길이가 다르듯 건강지수 역시 천차만별이라는 걸 106세 할머니는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꾸준한 운동과 절제된 생활, 그리고 삶을 긍정하는 자세가 유모차가 필요 없는 노년을 선물해 준 것이다. 신체검사 결과는 더 놀라웠다. 할머니께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신체 나이가 70세라니 기적이 따로 없었다.
11. 돌층계 아래서 유모차를 올려 줄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92세 할머니와 이십 킬로 쌀 포대를 휘딱 들어 유모차가 아닌 어깨에 둘러메고 마을의 경로당을 찾아가는 106세 할머니의 삶을 저울에 올려본다. 두 분이 거쳐온 삶의 행로에서 무엇이 인생 말년의 모습을 저리 다르게 바꿔놓은 것일까.
12. 한 분은 이백 미터 거리를 천릿길로 느끼고, 한 분은 힘든 일이 생기면 ‘그까이꺼’라며 대수로이 여긴다. ‘성격이 운명이다’라는 말이 있다. 닥치지 않은 미래가 걱정되어 유모차를 갈무리해둔 우리의 행위도 성격의 산물일 터다. 앞날의 어디쯤, 유모차를 밀어야 걸을 수 있는 시간이 기다릴 거라고, 지레 무서워하며 속을 끓였다. 오래 살까, 걱정하는 마음은 또 얼마나 컸던가! 이런 성격이 유모차를 미는 인생 말년으로 안내하는 계기가 될까 봐 겁이 난다. 걱정도 팔자라 했거늘, 또 하나의 걱정을 보태고 있다.
3/ 집청정기(集淸亭紀)/예수백1
1. 집청정은 울주군에 있는 정자다. 가까이에 선사시대의 유적으로 유명한 반구대 암각화 명소가 돋보이다 보니 이곳을 찾는 이가 많지 않다. 집청정은 암각화 가는 길 중간에 위치해 있다. 주위에는 관광객을 불러 세울 근사한 안내판도 제대로 없다. 마당 넓은 고택이라면 호기심이라도 가질 법도 한데, 담과 마당이 붙어 있으니 지나는 눈길을 멈추게 하는 공간적 여유도 궁색하다. 다만 집청정 담벼락 옆에 세워진 입간판에 새겨진 산수화 한 점이 가는 길을 멈추게 할 뿐이다. 이마저도 관광객이 밀리는 때면 곁길을 내주며 읽어보아야 한다. 일부러 들르지 않으면 스쳐 지나가기가 십상이다.
2. 대곡천변 아스팔트 길옆에는 채색을 언제 했는지 모를 나무 대문이 반쯤 열려있다. 집청정에 들어서는 문이다. 좁은 마당에는 그 흔한 잔디도 깔려있지 않다. 사람이 통행한 흔적이 드물었는지 마당 흙은 며칠 전 내린 빗물에 씻긴 채로 있다. 마당에 들어서니 대청 아래가 언덕으로 연결되어 훤하다. 이제야 자연과 더불어 정자를 지은 흔적이 보여 옛 선인의 마음이 보인다. 고개를 젖혀 위를 쳐다보니 ‘集淸亭’이라고 쓴 편액이 눈에 들어온다. 왼쪽으로는 대치루(對峙樓)가 오른쪽으로는 청류헌(聽流軒)이 자리하고 있다. 집청정 편액을 중앙으로 삼고 좌우로 배치하여 좌청룡, 우백호의 형상이다.
3. 옆으로 난 돌계단을 밟고 올라오니 비로소 정자 같은 느낌이 드는 건물이 나온다. 좌청룡 방향에 배치한 대치루다. 누(樓)에 오르니 나뭇잎 떨어진 겨울 산이 앞을 가로막는다. 마주 대하는 자그만 겨울 산이 반구대(盤龜臺)다. 엎드려 있는 거북을 받쳐놓은 형상의 너럭바위다. 바깥의 큰길에서는 주의해 보지 않으면 십중팔구 지나치기 마련인 거북 형상의 바위다. 대치루에서도 고개를 돌리면서 보아야 거북 모양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집청정에 대치루를 먼저 배치한 까닭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4. 거북의 머리는 멀리 동해를 향하고 있다. 동쪽은 해가 떠오르는 희망과 번영의 방향이다. 학문을 익히고 수양이 깊은 훌륭한 사람이 이웃을 위하고 나라를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반구대 거북이 동쪽을 향하고 있는 이유다. 옛날 지방의 수령이 행정을 행하는 곳을 동헌(東軒)이라 한다. 동쪽에 있는 집무실에서 백성을 위하고 나라의 번영을 위해 나랏일을 하는 집이라는 의미다. 다음 왕을 이을 세자가 거처하는 곳도 동궁(東宮)이라 한 것도 유사한 예다.
5. 위쪽으로 눈을 돌리니 너럭바위 거북의 꼬리와 등은 뒷산 비래봉으로 연결되어 있다. 거북을 잉태한 비래봉이 구름 속에서 서늘하다. 둥글고 둥근 봉우리들이 모래를 파내듯 곳곳에 거북알을 심고 천년을 품어 반구로 깨어난 것이다. 이슬을 머금어 적시었을 것이고 따뜻한 온기로 포근히 감싸기도 했을 것이다. 밤이면 소나무 가지에 걸린 달이 대치루 안으로 들어와 새끼 거북의 잉태를 돕기도 했을지도 모른다. 새롭게 태어난 새끼 거북의 몸을 씻어주기 위한 생명수도 비래봉 향로봉 골짝마다 쉬지 않고 흘러 내려온다. 거북은 발 씻고 몸도 씻으며 머리 한번 길게 젖혀보았을 것이다. 동해 먼바다로 나아가야 하는 숙명적인 기운을 몸에 지니고, 등도 움직여 보고 발도 움직여 보았을지도 모른다.
6. 신령스러운 기운이 산줄기로부터 거북의 등에 맺힌 곳이 반구서원이다. 유생들의 낭랑한 글 읽는 소리는 먼 여행의 힘을 얻기 위한 수단의 하나였을 것이다. 글 속에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 있고, 사람과 사회를 맑게 하는 의로움이 있다. 맑은 의로움은 단 한 번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꾸준히 거침이 없이 마음에 모아야 생기게 된다. 거북은 이제 맑은 물로 몸을 씻었고, 글 읽는 소리로 마음도 맑게 했으니 긴 여행을 할 준비는 마쳐져 있다.
7. 소리 따라 자리를 옮기니 청류헌이다. 누마루 사이로 흐르는 소리가 듣기 좋다. 대치루에서 채 보지 못한 맑은소리다. 봉우리마다 내려보내는 물줄기가 모여서 거북의 배 옆으로 흐른다. 물이 흐르는 청량한 소리는 거북 속으로 흘러 흘러 들어간다. 그 남은 소리는 바위 절벽에 울림이 되어 청류헌 다락에 모여든다.
8. 소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야 제격이다. 보고 듣고 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지만 때로는 보지 않고 듣는 것만이 나을 때가 있다. 눈을 감고 물 흐르는 소리를 걸러내니 건너편 반구서원에서 들리는 글 소리가 맑고 청아하다. 유생들은 낮이면 새소리 바람소리 걸러내고, 밤이면 달빛 소리조차 걸러낸다. 그들의 글이 맑은 글이었을 까닭이다.
맑음은 세상을 살아가는 깊은 도덕률이다. 도덕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이 마음은 영원히 이어져 가야 하는 최고의 가치이기도 하다. 영원을 염원하는 동물이 거북이다. 거북 등 위에 세워진 반구서원은 이웃을 사랑하는 의로움의 소리를 길이 전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9. 대치루에서는 눈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보았다. 청류헌에서는 귀로, 그리고 마음으로 들었다. 이제 몸과 마음은 맑은 집청정에 모인다. 반계구곡 여러 계곡의 청량한 물이 반구대에 모인다고 하여 집청정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물 건너 반구서원의 글 읽는 소리에 묻어있는 도덕적 의로움을 모으려고 지었는지도 모른다.
10. 이 건물의 건축자는 고전(古典)에 전해지는 “집의(集義)”즉, ‘의로움을 모은다’라는 의미를 담아 정자 이름을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의로움을 꾸준히 쉬지 않고 모으면(集義), 어떠한 일에 부딪쳐도 두려워하지 않는 도덕적 용기가 생겨난다(所生)”는 말을 ‘集淸亭’ 현판 글자에 한자 두자, 의미를 더하며 새겼으리라.
11. 가까이 있는 반구서원 입구에 ‘지의문(知義門)’이 세워져 있다. ‘의로움을 아는 문’이다. 의로움을 서원의 중요한 강령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학문과 수양에서 닦은 맑고 청량한 몸과 마음이 세상에서 의로움으로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원에서 강의한 의로움이 집청정에 와서는 맑음에 승화한다. 한 점 부끄럼이 없고 남이 선(善)하지 못함에 분연히 일어날 수 있는 용기가 이곳 집청(集淸)이라는 정자(亭子)에 숨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12. 집청정 나무계단을 내려서니 겨울 산에 비치는 햇살이 따사롭다. 비래봉 봉우리 사이에 흐르는 개울물의 푸른 소리가 봄이 오는 것을 알린다. 집청정을 뒤로 하고 돌아보니, 저 멀리 암각화 절벽 위에 흰 구름 한 점 외로이 떠 간다.
4. 걸음을 걸을 수 있을 때까지 /배정순 1
1. 열흘 붉은 꽃 없다더니 극성이던 괴질이 약세로 돌아섰다. 묶여있던 관광 규제가 풀리자 고향 소식이 날아들었다. 동창회를 개최할 예정이니 참석하라고. <걸음 걸을 수 있을 때 만나자>는 회장의 동기부여가 설득력이 있었다.
2. 타향에 뿌리내리고 산지 사십여 년이 넘었다. 그런 나이기에 고향은 늘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가족이 다 떠나고 없는 고향, 연결고리는 동창들밖에 없다. 여태는 이런저런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가지 않을 것 탈퇴하면 그만인데 그러지도 않았다. 탈퇴 후 찾아올 단절감보다는 그렇게라도 고향 친구들과의 끈을 유지하고 싶었다.
3. 코로나로 발이 묶이고 차츰 몸이 부실해지자 내 생전에 고향 방문이 가능하기나 할까, 하는 우려가 되었다. 머지않은 장래에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죽음과 맞설 날이 올 것이다. 그때, 껄, 껄, 껄 하며 떠나는 건 내가 바라는 삶이 아니다. 운신할 수 있을 때 보고 싶은 곳 가 보고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만나며 살다가 세상을 하직할 때 가볍게 떠나고 싶었다. 미적거리던 동창회 참석을 기정 사실화한 건 그런 이유였다.
4. 동창회 전날, 아침 일찍 출발했다. 집결 장소는 목포지만 근거리에 있는 고향 진도에 가야겠다고 작정했다. 광주에서 친구를 만나 고향 진도로 향했다. 학창 시절 추억의 산실인 진도읍에 내려 숙소를 정하고 짐을 풀었다. 짐 정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데 나는 고향 땅을 밟은지 수 십년이 넘었다. 환경이 너무 변해 고향에 사는 동창의 도움이 없었다면 길 찾기가 어려울 뻔했다.
5. 친구의 도움으로 새롭게 개축한 모교를 둘러보고 학창 시절 시험 마지막 날이면 들락거렸던 단골 빵집, 가난한 자취방, 눈을 피해 다녔던 극장, 이곳저곳을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찾아다녔다. 이전 모습이 너무 변해 친구의 도움 없이는 어디가 어딘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6. 다만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세월이 가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교 교문 안 노거수와 학교길 옆 아름드리 팽나무뿐이었다. 보호수라는 이름표를 달고 아직도 옛날 그대로 청청한 모습으로 노인이 된 우리를 맞았다. 수령이 오백 년을 넘었다고 하니 지금 상태로는 너끈히 곱은 살 것 같았다. 팽나무 아래 쉼터가 마련되어 있어 빙 둘러앉았다. 다시 못 올 것처럼 팽나무를 끌어안고 인증샷을 남겼다. 나무가 마치 돌아온 자식을 품어주는 어머니 품처럼 살갑게 느껴졌다.
7. 붉은 해는 노을빛 속으로 숨고, 어둠이 내리는 골목길로 들어섰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함이었다. 현지 친구의 안내로 맛집으로 소문난 갈치조림집에 들어가 저녁을 달게 해결하고 찻집으로 향했다. 옛 다방 단골 메뉴인 쌍화차를 들며 또 학창 시절 얘기에 빠져들었다. 해도 해도 화수분같이 피어나는 이야기꽃, 식당 주인, 찻집 주인이 누구네 누구 하면 알 수 있는 분들이었다. 고향에 와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고향이란 이런 곳이구나 싶었다. 조금만 펼쳐보면 아름아름 다 알 수 있는…. 아쉬움을 남긴 채 숙소에 돌아왔다. 다시 얘기꽃을 피우느라 밤 깊은 줄 몰랐다.
8. 동창회 당일,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려면 널브러져 있을 수가 없었다. 친구에게서 태우러 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동창회장의 배려로 차편을 재공받았다. 운전대를 잡은 친구는 일면식이 없는 다른과 친구여서 떨떠름했는데 걱정은 기우였다. 마당 발이라서 사람 대하는 데 스스럼없었다. 목포로 이동하는 동안 차 안에서 그를 통해 고향, 동창들 소식을 덤으로 듣는 즐거움을 덤으로 누렸다.
9. 시간에 맞춰 동창회장에 들어섰다.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들이니 처음엔 낯설어 누구냐고 묻느라 이산가족 상봉 한가지였다. 몇 분 안 있어 기억 속에 잠자던 옛 모습이 살아나 유쾌한 만남이 이루어졌다. 다들 한 가정을 책임져 온 건강한 어른들이었다. 보지 않고 살아 낯설 만도 한데 금방 마음이 편해졌다. 동창이란 이런 건가 싶었다.
10. 맛난 회 정식으로 식사를 마무리한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나 찻집으로 몰려갔다. 식사 대금을 내는 친구, 차를 사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가는 길에 먹으라며 간식마저 안기는 친구도 있었다. 동창회장은 기부금을 희사한 친구들이 여럿 있어 회비는 받지 않겠다고 했다. 외지에서 온 친구들을 위해 끝까지 차편 배려에 마음을 썼다. 즐거움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따듯한 마음 마음들! 그 마음을 한 아름 안고 울산행 차에 올랐다. 훈훈한 마음이 가슴 한 가득 이었다.
11. 뒷날 카톡방에 감사의 글을 남겼다.
누군가 삶이란 작은 기쁨으로 큰 아픔을 견디는 거라 하데요. 이번 고향나드리가 저에게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내 태 고향을 찾았을 때 너무 달라진 모습이 낯설어 고향을 잃었구나 싶었습니다. 고향을 상징하는 정겨운 초가집 돌담 골목, 누렁소 고샅에 사람 하나 볼 수 없었으니까요. 한데 동창 모임에서 함께 늙어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나에게는 고향에 아직 이런 울이 되는 벗들이 살아있었구나 싶어서요. 삶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갔는데 회장님 말씀, <다리가 성해 걸음은 걸을 수 있을 때까지>라는 말이 나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그레서 생각을 바꿨습니다. 회장님 말씀을 따르는 걸로요.
요즘도 고향 친구와 통화하면 다시 만나자는 말을 잊지 않는다. 걸음을 걸을 수 있을 때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