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부터 터키에 가 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냥 단순히 지중해의 푸른 물빛이 보고 싶었고 동서양의 문명이 서로 만나는 곳이라는 특별함 때문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내년에는 그 꿈을 꼭 이루리라 하고 지난해 부터 벼르다가 마침내 친구와 둘이서 그 길에 올랐다.
9일동안에 터키를 여행 한다는건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다가 그리스를 함께 했으니... 비행시간 11시간의 먼곳이니 가는 김에 가까이 있는 그리스도 함께 보고 오자는 생각이었고 오랜 역사 속에 부침(浮沈)을 거듭해 온 나라들이라 그 깊이만도 다 가늠할 수 없을진데 넓은 땅덩이는 가는 곳 마다 그 곳만의 특별함 속에 끝없이 깊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냥 터키에 가서 푸른 지중해를 바라보는 낭만만을 꿈꾸던 나의 생각은 얼마나 가벼운 것이었는지... 그래서 여행후기를 쓰는건 더욱 힘들어졌다. 가는 곳 마다, 나름 놓지지 않고 사진을 찍고, 가능한한 메모도 곁들였지만 이미 쇠퇴하기 시작한 기억력도 한몫하여 정리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넘기기는 너무 아까워 대강 전체의 느낌을 적고 도시별로 사진을 곁들인 설명을 붙여보자는 결론을 얻었다.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제국은 AD 196년에 이스탄불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콘스탄틴 대제는 이 도시를 더욱 크게 확장하여 '콘스탄티노플'로 이름을 바꾸고 로마의 두 번째 수도로 만들었다(330년 5월 11일). 그는 기독교를 최초로 공인했다. 얼마 후 로마제국은 분열되고 콘스탄티노플은 동로마(비잔틴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15세기에 와서 이슬람 교도들이 세운 오스만제국이 들어서면서 콘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이 되었다. 천 년이 흐르는 사이에 찬란한 기독교문명이 그곳에서 꽃을 피웠다. 중세부터 500년 동안에는 오스만제국이 지배하며 이슬람 문화가 번창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로마 기독교 그리스 이슬람 문명이 융합된 지역이며 지중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항구로서 격랑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 이스탄불이다.
오전 11시 인천공항을 이륙한 OZ551기는 현지시간 24일 3:50분(서울9:50)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공항에 도착했다. 한국과 터키의 시차는 6시간이다. 빈좌석 없이 만석인 기내였지만 인천공항에서 발권을 할 때 우리 두 사람에게 나란히 붙어있는 좌석이 없다는 이유로 맨 앞좌석의 4인석 중 두 개를 배정해 준 직원의 배려로 긴 시간이지만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며칠전 뉴스에서 앞으로 기내의 이코노미석을 좀 더 넓게 바꾸겠다는 항공사즉의 발표가 있었는데 만시지탄이 있지만 다행한 일이다. 아타튀르크 공항은 생각했던것 보다 훨씬 크고 붐볐다. 터키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초대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지은 이름이다. 입국절차를 마치고 출국장을 빠져나가서 피킷을 들고 기다리고 있는 현지 가이드를 만나고 함께 투어하게 될 우리 팀원들과 대면했다. 따로 온 아가씨 두 명 (홍대 미대 대학원생. 노원구청 직원) 3대가 함께 온 한가족 5명 네 자매팀 (독일, 브라질, 서울에 흩어져 살고 있는 네 자매가 부라질에 거주하는 둘째언니의 회갑기념으로 함께 여행하게 됐다는데 개인적으로 부러운 팀이었다.) 그리고 네 부부팀 8명 (모두 따로 온 팀이며 이 중에 상주가 고향인 부부가 두 팀이었다.) 그리고 우리 둘.. 이래서 스물 한 명이다.
긴 비행과 그리고 시간이 한국에서 잠자리를 준비할 시간이라 비몽사몽하는 시간이었지만 저녁식사를 하기 전에 지붕있는 시장으로 세계에서 손꼽힌다는 그랜드 바자르로 먼저 갔다. 많은 물건들이 눈이 부실 정도였지만 마지막날 다시 한 번 들른다는 가이드의 말에 건성으로 돌아봤다. 결국 마지막 날엔 다른 일정이 빠듯해 이 곳은 생각지도 못 했지만.. 그래서 좀 아쉽다. 워낙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싫어하고 또 시장은 더욱 그랬지만 동서양의 교역인들이 몰려든다는 대형시장인데 좀 더 살피고 쇼핑도 했으면 했는데....
그랜드바자르 1455~1461년 술탄 메메드 2세의 명에 의해서 건축되었으며 16세기 술탄 술레이만 1세 통치 시기의 대대적인 확장을 비롯하여 여러 번의 증·개축을 통해 오늘에 이르렀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실내 시장으로, 현재 60여 개의 미로같은 통로에 5,000여 개의 상점이 있으며 2개의 주요 통로 끝에 있는 입구 4개를 포함하여 모두 20여 개의 입구가 있다. 시장에는 금,은 세공품을 포함한 각종 보석류, 피혁류, 카펫, 향신료, 형형 색색의 도자기와 기념품을 포함한 각종 공예품과 특산품 등을 판매하고 있다.
터키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무슬림들, 어디에서나 뾰죽탑이 솟아있는 사원이 보이고 하루에 몇차례씩 그들의 기도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들려온다. 여자들은 보기에도 답답한 검은색 차도르를 뒤집어 쓴 여자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거리에는 시리아난민이라는 표지판을 놓은 거지들 또한 자주 보게 된다.
이스탄불 외곽의 5성급 호텔에서 첫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잠을 주신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든 피로를 날려버리고 가뿐한 몸으로 아침을 맞았다. 창 밖에 너른 밀밭이 펼쳐지고 멀리 보이는 길에 드문드문 차들이 지나간다.
톱카프궁전 이슬람 문화의 진수를 보여 주는 톱카프 궁전은 1453년 오스만제국의 마흐메드가 건설을 시작해 1467년 마흐메드 2세 때 완공되었다. 주변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보스포르스해협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평지에 위치한다. 톱카프는 ‘대포 문’을 뜻하는데 과거 해협 쪽에 대포가 놓여 있던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오스만제국 때 세워진 톱카프 궁전은 단순한 왕족의 거처가 아니라 술탄과 중신들이 회의를 열어 국가 정치를 논하던 장소였다. 당시 궁전에 거주하는 시종과 군사, 관료의 수만 5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궁전 내부는 정원 4개와 부속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400여 년 동안 계속된 증·개축으로 오스만 건축 양식의 변화 과정을 순서대로 살펴볼 수 있다.
톱카프궁전을 관람하고 보스포러스 해협이 바라다 보이는 카페에서 잠시 다과를 즐기며 친구와 함께 이국의 낭만에 젖어 본다. 이스탄불은 유럽대륙과 아시아대륙이 맞닿는 지역으로 2500년의 긴 역사와 함께 찬란한 세계 문화유산의 보고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동쪽은 아시아지구, 서쪽은 유럽지구로 나뉘어 지며 유럽지구는 다시 금각만을 사이에 두고 남쪽은 구시가지 북쪽은 신시가지로 나뉘어 진다. 우리가 앉아 있는 카페는 구시가지에 속해 있고 바라보이는 바다를 왼쪽으로 돌아가면 금각만이고 직진해서 보스포러스해협을 통과하면 흑해가 나온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가면 마르마라해다. 마르마라해는 좁은 해협을 지나 에게해로 연결된다. 저 멀리 유럽지구의 신시가지와 아시아지구를 연결해 주는 다리가 보인다. 재미있는 곳이다. 여행객들은 주로 유럽지구를 선호한다. 아시아지구는 발전도 더디다.
성소피아성당 성 소피아 성당은 현존하는 최고의 비잔틴 건축물이다. 그 위대한 예술적 가치는 모자이크, 대리석 기둥, 돔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재위 527-565)의 명령으로 세워진 유명한 돔은 비잔틴 건축의 전형으로 여겨지며 ‘건축의 역사를 바꾸었다’는 찬사를 듣고 있다. 1520년 스페인의 세비야 성당이 완성되기 전까지 약 1000년 동안 이 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었다. 또한 그리스 정교회 창설의 중심지이었으며 비잔틴 제국 황제의 의식이 치러지는 중요한 장소이기도 했다. 그리스 정교회, 로마 가톨릭, 무슬림 등의 건축물과 의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중앙 돔 주위에 그려진 네개의 가브리엘천사상이 보인다. 내 어설픈 감상이라든가 느낌은 곁들이지 않겠다. 성당 건축을 마치는 낙성식 때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그 위용에 감탄하여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예루살렘 대성전을 지은 솔로몬이여 당신을 내가 능가했소!"
비잔틴 시대에 6년의 대역사 끝에 AD 537년 완공된 성당은 1453년까지 로마 가톨릭과 그리스정교회 성당으로 사용되었다. 종교예식과 대관식 등 국가적인 행사를 이곳에서 행했다. 오스만제국이 세워진 후에는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어 1931년까지 모스크로 사용됐다. 제단을 이슬람식으로 바꾸고 직경 7.5m나 되는 원판에다 코란을 써서 여러 군데 붙였다. 벽에 있는 많은 성화들은 회칠을 해서 가렸다. 건물 자체의 보수는 물론 덧칠해진 회칠을 벗겨 성화들을 복원하는데 온 힘을 쏟고 있는 중이다. -디시스(청원)- 세례 요한과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가운데 두고 서서 인간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모습의 성화가 그 모습을 반 쯤 드러내고 있다.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상 모자이크. 오른쪽에는 왕관을 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새 도시 콘스탄티노플을, 왼쪽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성 소피아 성당을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에게 봉헌하고 있는 모습의 성화다. 반 이상이 복원 되었다.
톱카프궁전과 성소피아성당을 관람하고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는 보스포르스 해협위로 건설된 다리를 지나 아시아지역으로 들어섰다.
터키의 나라꽃 튤립을 수놓은 잔디밭이 멋스럽다.
이스탄불 사비하쾩첸국제공항에서 예정된 시간보다 한시간이나 딜레이 된 페가수스항공을 타고 한시간 반 만에 카이세리공항에 도착 버스를 타고 80분쯤 달려 가파도키아 힐튼호텔에 도착해 두 번째 밤을 맞았다. 깨끗하고 넓은 객실에서 오래된 친구와 내일 새벽 카파도키아 벌룬투어가 성사될 수 있기를 빌며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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