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인상 심사평
등단과 프로 의식
전병호
1.
여러 응모자들이 보내온 동시를 살펴보니까 동시를 쓰게 된 동기를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일반시를 쓰다가 동시를 쓰게 된 경우이고, 두 번째는 처음부터 직접 동시를 쓰게 된 경우이다. 두 유형 모두 공통되는 장점과 문제점을 각각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첫 번째, 일반시를 쓰다가 동시를 쓰게 된 경우, 어느 정도 시적 수준은 갖추고 있으나 동심이나 동시의 어법을 획득하는데 미흡했다. 동시는 어린이를 독자로 하는 특수 문학이다. 즉, 동시 문학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특성 때문에 동시라고 하는 것이다. 일반시를 쓰다가 동시를 쓰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경우 이런 면에서 동시에 대한 인식이 다소 미흡하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떠올리며 막연하게 ‘동시란 이런 걸 거야’ 하는 정도의 관습적인 생각으로 써서 응모하는 경우도 실제로는 많은 듯하다. 누구나 어린 시절이 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소재로 삼아 시의 형식을 빌려서 썼다고 다 동시인 것은 아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런 글은 동시가 아니다. 유년시절의 회고담이라면 차라리 시의 범주에 가깝다. 그러나 시로서도 수준 미달이다.
동시를 쓰다보면 유년 체험이 시에 직․간접적으로 많이 녹아드는 것은 틀림없다. 인상 깊은 체험이 시를 쓰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오늘의 감각으로 참신하게 되살려 써야 할 것이다. 동시는 먼저 ‘지금, 여기’에 사는 어린이가 읽는 시라는 점을 더 철저하게 인식해 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쓴 동시를 읽고 어린이가 쉽게 받아들이고 또 감동 받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아동문학이란 먼저 독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동심을 가진 어른이 ‘어린이에게 주기 위하여’란 뚜렷한 목적을 갖고 쓴 글인 것이다. 작품 속에 얼마든지 자기 자신을 시적 화자로 담을 수 있다. 또 자신의 심리적 갈등을 정화하기 위해 쓸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먼저 동시의 본질은 철저하게 지켜져야 한다.
두 번째는 처음부터 직접 동시를 쓰게 된 경우이다. 대개의 경우 ‘동시도 시’라는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 동시를 잘 쓰려면 먼저 시를 훌륭하게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 다음에 쓸 수 있는 것이 동시인 것이다. 즉, 동심을 갖고 쓴 훌륭한 시가 동시인 것이다. 이 점에 대한 인식이 미흡하기 때문에 ‘예쁘고 고운 말만 골라 쓰기’, ‘어린이의 생활 심리 묘사하기’, ‘단순한 재치 내지는 말장난’ 등에 빠져들거나 모처럼 의욕을 갖고 쓴 실험적인 작품이라고 해 보아야 그야말로 공허한 말놀이로 그치게 되는 것이다. 어느 경우이든 기본기부터 충실하게 닦고 동시 창작에 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편, 동시의 요건에 충실한 작품을 써야한다는 말이 간혹 ‘안정지향적인 작품’만을 써야한다는 말로 잘못 받아들여질지 몰라 이 점 염려스럽다. 이는 절대로 선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다. 기본기를 갖춘 다음에 시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끊임없는 실험 정신인 것이다. 실험 정신이 없는 시는 그야말로 매너리즘에 빠진 죽은 동시인 것이다. 진정한 시인이라면 작품 한 편 한 편마다 변화와 새로움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어제 쓴 작품은 이미 구작이다. 오늘은 새로운 감수성으로 새로운 시를 써야한다. 항상 이와 같은 자세로 노력하면서 동시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고 동시의 특성을 살려서 작품을 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이를 동시인으로서 가져야할 프로의식이라고 할 것이다. 등단하기 위해서 먼저 필요한 것이 프로정신이다. 프로는 ‘피를 말리는’ 숨은 노력을 쌓지 않으면 안 된다.
2.
본심에 올려 논의의 대상으로 삼은 작품은 전세중, 최승훈, 박영란, 남 순 등이 보내온 작품이었다. 이외에 전병무, 한경주, 박광우, 우덕호, 김반달 등이 보내온 작품도 읽었으나 이들은 아직 당선 여부를 거론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 순은「맑은 저녁이면」이 한 편이 비교적 동심을 잘 그려내어 관심을 끌었으나 나머지 작품들은 수준이 이에 미치지 못했다. 그는 동화적 상상력을 접목시킨 동심주의적 동시를 지향하고 있는 듯하나 시상을 선별하고 다듬어 형상화하는 능력은 아직 더 수련이 필요했다.
박영란의 작품 역시 어느 정도 시적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으나 아직은 많은 수련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마음속에만 담겨있는 ‘아직 씌어지지 않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수련이 필요하다. 작품이 주는 무게나 메시지로 보자면 「고추모종」이 단연 앞서지만 이 작품은 아직 덜 다듬어져 있다. 많은 습작을 권한다. 끈기만큼 뛰어난 소질이 없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전세중은 무려 30편을 보내왔다. 선할 만한 수준의 작품을 골라 놓고 보니까 동시인으로서 세상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마음에 걸렸다. 선자가 뽑은 작품은「눈물 자국」,「자국」,「산양」,「현수막」 이 네 편이다. 이중에서 3편이 공교롭게도 현실비판적이거나 문명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작품들이었다. 작품에 대한 경향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동시는 어느 경우에도 사랑과 긍정을 노래하는 문학임을 깊이 인식해 주었으면 한다. 또한 개별 작품에서는 디테일한 감각도 더 요구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시조로 등단했고, 동시에 대한 열의와 가능성을 믿어 당선시키기로 우리 둘은 합의하였다.
한편 최승훈은 응모자 중에서 동시를 가장 잘 알고 있으며, 동시의 어법을 이미 터득하고 있는 사람으로 판단되었다. 그는 이미 1회 추천 과정을 거쳤으므로 당선의 자리에 올렸다. 당선 작품으로 고른 것이 「엄마와 아이」, 「파도」, 「구름 속에는」, 「흔들바위」등이었다. 그의 동시에는 어느 정도 실험의식을 찾아 볼 수 있어 이 때문에 참신성과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지만 일부 시는 너무 드라이하거나 요설로 빠질 위험성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다고 보았다. 일부 작품에서는 완성도도 더 요구되었다. 그렇지만 이만한 수준이면 문단에 나와서 충분히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시에서 찾아낼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어느 정도의 실험 의식이다. 앞으로 이 실험의식의 확산과 성공 여부가 그의 동시에 대한 평가가 될 듯하다.
이번에 문단에 나오게 되는 두 분은 부디, ‘이제 시작이’다 하는 각오로 좋은 작품을 빚어 동시 문학의 발전을 위해서 많은 힘을 보태어 주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 박두순, 전병호(글)>
첫댓글 작품 봤어요. 심사평도 꼼꼼하게 잘 읽으며, 작품과 같이 보면서, 고개도 끄덕여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