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형시 시조부흥을 위한 좌담회: 월간문학 05년4월호
더는 참을 수 없는
국어교과서 시조의 수난과 우리의 대응
참석자: 김제현(경기대 교수)
한춘섭(성남기능대 교수)
한분순(문협 시조분과 회장, 사회)
박시교(유심지 주간, 오늘의 시조학회 회장), 사회
박구하(사단법인 세계시조사랑협회 이사), 정리
일시: 2005년 3월2일 11시 - 14시
장소: 한국문인협회 편집실
한분순: 오늘 눈까지 내리는 궂은 날씨에 이렇게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올 겨울은 유난히 길고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편인데 이것이 꼭 우리 시조의 당면한 처지를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지는군요. 계절의 겨울이야 곧 봄으로 바뀌겠지만 우리 시조의 봄은 언제 올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그런 우리 시조의 참혹한 실상을 알아보고 그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 말해보고자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먼저 좌담에 들어가기 전에 오늘의 좌담회를 갖게된 배경을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시조 하면 문제점이 많이 있지만 그 많은 것을 이 자리에서 모두 다룰 수는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을 줄 압니다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우리 시조는 700년 이상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민족의 전통시인데도 그것이 일반에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알려져 있다해도 고리타분한 구시대의 유물쯤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는 것일 겁니다. 시조가 홀대받아온 온 것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에 와서 그 정도가 지나쳐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소리가 높습니다.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청소년이 배우는 교과서에 전통시인 우리 시조를 배제하고 홀대하는 것이 마치 남의 나라 물건 취급하듯 그 정도가 심한 정도를 넘어 경악할 지경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작년 연말 무산 조오현 시인을 중심으로 몇몇 시조시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국정교과서 내 시조수록 실상이 거론되면서 구체화하였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지난 1월 유심지에서 “중고교 교육현장에서 홀대받는 우리시” 라는 좌담회를 가진 것으로 압니다. 문협에서도 시조분과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우리 민족문학인 시조의 실상을 이대로 두고 볼 수 없다하여 신세훈 이사장 이하 전 임직원들의 파격적인 배려 아래 오늘 좌담회를 열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서로 민감한 문제나 지엽적인 이야기는 접고 우리 시조의 발전을 위해 큰 줄기로서 꼭 필요하고 시급한 문제로서 교과서시조문제를 다루고자 하오니 참석자 여러분께서는 이에 국한해서 보다 심도 있는 의견을 개진해 주었으면 합니다.
세계보편성은 자기 정체성 위에 피는 꽃
김제현: 교과서는 아시다시피 성장기의 학생들에게 우리의 민족정신과 민족의 정체성 나아가 올바른 국가관을 배양하는데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책으로서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 교과서 편찬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국민총의를 반영하는 뜻에서 교과서포럼 같은 것을 거친다든지 해서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최선의 자료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작금의 교과서를 보면 우리 민족의 특수성, 고유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느낌을 받습니다. 시조만 하더라도 교과과정이 바뀌면서 수록작품의 질을 따지기 전에 우선 양적으로 작품수가 점점 축소되고 그나마 구성에서 우선순위가 밀리고 있는데 편찬자 측의 의견을 들어보면 모든 장르 중에서 시조라고 특별히 고려해 줄 수 없고 세계보편성을 전제로 편찬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글로벌 시대에 보편성도 중요하죠. 그런데 세계보편성이 뭡니까? 오늘날 세계는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자유세계이며, 자유사상에 따라 다양한 자기 개성발휘의 시대가 아닙니까? 개성은 자기의 정체성을 확립할 때 발휘되는 것이지 자기를 빼고는 안됩니다. 즉 보편성이란 구체성이 없이 안 된다는 겁니다. 오늘날 어느 나라 치고 국가주의를 우선시하지 않는 나라가 없습니다. 자기 것을 팽개치는 나라는 없지요. 우리의 정체성이 뭐겠습니까? 우리 문화, 우리 역사 아닙니까? 우리 문화의 핵심이 문학이요 그 문학 중에서도 시조야말로 핵심인데 이 시조를 빼고 우리 정체성을 얘기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교과서를 보면 초중고를 통틀어 시조교육을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를 어느 구석에서도 발견할 수 없어요. 국민문학으로서 시조를 부흥시킬 때 이 나라 교육이 제대로 서는 것인데 우리의 현실을 보면, 중학교 교과서의 경우 시와 시조의 수록비율이 63대 4라는 엄청난 편차를 보이고 있어요. 이는 시조교육은 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다를 바 없습니다.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 문제를 일생 처음 접하게 되는 청소년에게 민족시라 할 시조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서양의 교재를 보면 대개 고전작품들이 많이 수록되고 있지 현대작품은 거의 없어요. 그것은 고전을 익힘으로써 현대작품은 자연히 알 수 있게 된다는 뜻이죠.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하고 있어요. 비율로 한다면 정반대가 되어야 해요. 국적불명의 자유시를 우대하고 우리의 유일한 전통문학인 시조를 홀대한다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젭니다. 선진국에서 우리는 단순히 교육방법론만 배울 게 아니라 이런 교육정책적인 면, 교육정신도 배워야 합니다. 지금 시와 시조의 비율문제를 두고 단순히 교과서에서 시조가 축소되었다 하는 측면보다는 진정으로 교육현장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 국어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는가, 그러기 위해 편제가 온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시조교육이 이처럼 홀대되고 있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되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시급히 시정되어야 할 일입니다.
박시교; 교과서문제는 사실 가장 기초적이면서 중요한 문제인데 그간 여러 차례의 교과과정이 변경되었습니다만 그냥 우리가 게으른 탓으로 지나쳐 온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그 교과과정 참여에 우리 시조계가 배제되었던 점도 있지만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잘못도 큽니다. 현행 7차 교과과정을 보면 직전인 6차에 비해 중학교의 경우를 보면 자유시는 42편에서 58편으로 증가되었음에 반해 현대시조는 5편에서 2편으로 축소되었습니다. 이는 과거 1차 과정 때 14편이었던 것이 갈수록 줄기차게 축소되어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만, 만약 이런 추세라면 다음 8차 과정에서는 현대시만 남고 현대시조는 아예 말소되고 말지 모릅니다. 고등학교도 현대시조는 2편인데 본문 단독편성에는 실리지 못하고 보충학습자료로 실려 있을 뿐입니다. 그래도 고교에는 문학이론이 실려 있어 나은 편인데 중학에는 그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중학과정에서 시조를 한번도 공부하지 못하고 보내는 학생도 많습니다. 이것은 뭔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된 겁니다.
8차 교과과정이 2007-8년경에 된다고 보면 그 작업은 내년이나 그 후에 개시될 것으로 봅니다만, 과거 교육과정 개편 시 한번도 이러한 시조홀대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는 점, 우리 모두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방금 김제현 교수께서 시와 시조의 편차비율이 정반대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만 저는 거기까지는 안 바라고 현실적으로 자유시의 1/3 수준이라도 되면 만족하겠습니다. 사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단순비율이 문제가 아니고 교육방법이 바로 서야 할 것입니다. 우리 시조에 대한 교육당국의 인식의 전환에 따른 근본적인 배려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시 교과목을 편성하여 암기위주로 교육하는 프랑스
박구하: 사실 교과서 시조문제는 어제오늘 갑자기 생긴 일도 아닌데 지금에야 나선다는 게 좀 계면쩍기도 합니다만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시조단체도 아닌 문협이 나서서 이런 좌담회도 갖게 하고 또 성명서도 준비하고 있다니 시조 쓰는 한 사람으로서 고맙고 부끄럽습니다. 시조시인협회도 있고 잡지나 유관 단체가 많이 있었지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 문제를 잊고 지낸 점에 대해서는 박시교 선생의 말씀처럼 우리 크게 반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8차 교과과정 심의를 앞두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이슈화한다는 것은 오히려 시기 적절한 감이 들고, 또 이런 좌담회가 기폭제가 되어 앞으로 얼마든지 다양한 유사 모임이 생겨날 것을 생각하면 우리 시조의 희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앞서 박시교 님은 중학교 예를 드셨는데 저는 초등학교를 예로 들겠습니다. 사실 초등학교 때가 제일 중요한데 교과과정을 보면 더 비참합니다. 6차 과정에서 16편이었던 시조가 반으로 줄어 8편이 되었고 그나마 본시(本詩)로는 단 3편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쉼터 학습용입니다. 쉼터 학습용이란 가르쳐도 그만 안 가르쳐도 그만인 것이며 본시 또한 소단원에 편성되어 교사들의 관심도가 적습니다. 제가 세계시조사랑협회에서 어린이 시조운동을 벌이면서 현직 교사들을 만나보면 대부분의 교사들이 시조를 모르며 안다고 해도 학생들에게 시조를 특별활동으로 따로 가르친다는 것은 상상조차 않는 실정이었습니다. 교사평가시 가점(加點)이라도 주는 제도가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런 것도 과거에는 있었으나 시나브로 없어져버려 교사든 학생이든 동기부여가 전혀 없습니다, 프랑스 초등교육 예를 많이 듭니다만, 프랑스는 초등학교 교육과정 8개 과목 중 그 반인 4개 과목이 국어교과목으로 편성하고 특히 시를 1개 교과목으로 편성토록 하고 있습니다. 시(詩)교육도 분석하고 비평하는 식이 아니라 무조건 암송하게 하여 자연스레 몸에 배게 하여 시적 감동을 스스로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졸업 시에는 누구나 자국시(自國詩) 수백 편은 기본으로 암송합니다. 옛날 우리 시조교육과 꼭 같습니다. 그때 시조를 배운 세대는 나이가 들어도 그 시조를 잊지 않으며 알게 모르게 평생 시조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빠르면 유치원부터면 더 좋겠습니다만, 시조교육은 빠를수록 그만큼 중요한데 이때 시조가락을 익혀 놓으면 그만큼 시조의 수요와 공급층이 넓어지게 될 것이고 그리 되면 우리 시조는 발전하지 말라고 해도 발전하게 됩니다. 그러자면 교과서에 제대로 된 시조를, 현대시조든 고시조든, 적극 수록해야합니다. 교과서 시조가 없거나 있어도 보충학습 코너 정도에 넣어 자율학습에 맡긴다면 시조교육이 제대로 될 리 없지요. 그 결과가 바로 오늘의 현실 아닙니까? 시조교육은 단순한 문학교육이 아닙니다. 시조를 통해 우리 언어의 아름다움은 물론 한국적 정서와 그 정서표현법을 배우고 시조에 담긴 한국의 얼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해주는 인성교육까지 나아간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다목적의 격조 높은 시조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란 세대가 오늘날 주류를 이루고 있으니 아직도 우리 사회는 혼탁하며 방황하는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지금 기본적으로 시조가 무엇인지 모르는 현실이 슬프고 안타까운 것입니다. 우스운 예로 연전에 제가 사단법인 세계시조사랑협회를 만들려고 문화관광부에 가서 시조담당부서가 어디인지 물었더니 제가 만난 몇몇 공무원들이 모두 “시조”라는 말 자체를 모르더군요. 차라리 시조가 뭐냐고 물었다면 제가 설명해 주었을 텐데 모두 고개만 내젓는 것입니다. 겨우 안다는 사람이 알려주는 부서로 갔더니 아, 글쎄 족보 다루는 부서가 아닙니까. 시조를 시조(始祖)로 알았던 게지요. 세상에, 문화부 관리가 우리 시조를 모르는 것이 바로 오늘의 현실입니다.
시조 하면 시조창을 하는 줄 아는 세상
한분순: 맞아요. 제가 시조를 한다니까 어떤 분은 시조창을 말하는 줄 알더라구요. 우리가 얼마나 고립무원 속에 살고 있는지 실감나는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문학은 시대의 반영이라는 겁니다. 신라 향가 고려 가요 이조 가사 등이 모두 그 시대의 삶을 반영한 것인데 우리 시조야말로 시대의 문학, 당대의 현실을 다루는 문학 아닙니까? 현대시조는 민족시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자유시와 똑 같은 현대시입니다. 다만 형식상 율격이 있다는 점에서 구분이 될 뿐이므로 우리 현대시의 양 갈래로서 큰 축을 이루는 것인데 지금 세상에는 고시조만 시조인 줄 알고 있거나 그나마 방금 박구하 선생 말처럼 시조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시대상황이 깃 든 문학으로서 시조는 우리가 민족과 함께 영원히 같이 가는 문화유산인데 현실은 이처럼 너무 시조를 모르거나 무시합니다. 이것은 무엇보다 시조보급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면 이제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해 보기로 할까요?
한춘섭: 다들 좋은 말씀해 주셨는데 제가 현직에 있을 때 4번이나 교과과정이 바뀌었습니다만, 그때마다 시조가 홀대받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우군이 될 만한 유명학자나 비평가 등 외부인사가 부족했다는 점도 있습니다. 시조보급을 위해서는 이제는 주장이나 탁상공론만 해서는 안되겠고 실천 가능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바로 행동에 착수하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차제에 작가, 이론가 등이 다 참여하는 시조연구모임이랄까 시조대변기구를 만들어서 시조에 관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를 전담하여 당국에 건의하고 추진해 나가도록 하면 어떨까 합니다. 이것은 한시적이 아니라 지속적인 상설기구로 해야합니다. 거기서 작품 선정기준을 마련하고 후보작품 선정도 맡아 편수담당자에게 제시하는 거죠. 또 수록 내용도 작품만 할 게 아니라 시조이론이나 시조비평도 넣어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할 것입니다. 자유시의 경우 문덕수 시인의 시론도 있고 기타 수필론, 소설론도 다 있습니다만 시조는 과거 초정 선생과 가람 선생이 주고받은 편지글이 실린 적이 있었을 정도입니다. 지금은 작품도 작품이지만 창작이론이 필요합니다.
박시교: 시조보급을 위해서는 역시 교과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고시조는 고등학교에 가면 굳이 시조가 아니라도 고전문학에서 배울 수 있겠으나 중학교는 오로지 교과서에서밖에 배울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아까 박구하 시인은 초등학교 예를 들었지만 지금 중학교과서에는 본문 위주로 편성되어 있지 않으므로 교사용(지도용) 교과서에 시조가 수록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시조는 시의 하위개념으로 파악되어 있는데다 지도방법서까지 없으니 교사가 가르치지 않게 되고 지도를 받지 못한 학생이 고교에 가면 바로 입시준비로 돌아서니 시조교육이 안되고 그대로 대학이나 사회로 나와 버리니 결국 시조 모르는 국민이 양산되는 셈이지요.
앞서 <유심>지에서 좌담회를 했던 교수들에게서 들은 바에 의하면, 일본의 경우 유치원에서부터 하이쿠 등 자국의 정형시를 가르친답니다. 그들에게는 유치원용 국정교재가 따로 있는데 이게 아주 중요한 교재로 되어 있어 유치원생들은 자국의 민족혼을 자국 전통시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흡수하게 되지요. 이런 기초 위에 소학교, 즉 초등학교와 중․고교에 들어가 하이쿠(俳句)와 단카(短歌)를 차례로 배우고 익힙니다. 그러니 일본은 문인은 물론이고 모든 국민이 그들의 전통시에 친숙하게 되고 기본 소양으로 애용하는 겁니다. 그러니 따로 보급이니 할 것이 없지요. 따라서, 뭐니뭐니 해도 시조보급은 국정교과서에 중요과목으로 확실하게 수록하고 정식으로 가르치는 길이 첩경입니다. 무론 과도기적으로 시조교사를 양성하거나 기존 시조시인을 1일 지도교사를 임명하여 시조단체에서 파견하는 것도 일책이 되겠지요.
한춘섭: 시조보급에 있어서 교과서 수록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교과서에 올라지면 선생들이 자동적으로 시조를 가르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교과서를 편성하는 작업팀원들(담당 편수관, 서울대, 교원대 등 교수)에게 시조 편성을 요구해야하는데 그것은 1-2회 논문발표로 끝난다든지 개인적으로 해서는 안되고 조직적으로 해야 합니다. 예컨대 이번 좌담회가 발표되면 이 내용을 교수연구실에 들어가게 하고 다각도로 언론에 홍보하는 등 공론화(公論化)할 전담기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부터 80년 전 육당선생이 시조부흥운동을 했지만 그는 시조도 썼지만 기본적으로 역사학자 아닙니까? 이 일에는 시조시인은 물론이고 시조 외부에 있는 사람들 특히 나라를 사랑하는 의식 있는 학자나 유지를 움직여야 합니다. 성명서, 탄원서도 만들되 그것이 단발로 끝날 게 아니라 지속적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시조보급의 한 방법으로 시조카드놀이가 있습니다. 과거 20년 전에 성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졌는데 학교시조교육이 시들해짐에 따라 이것 또한 슬그머니 사라져버렸습니다. 일제시대에도 이와 유사한 것으로 가투(歌鬪)놀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시조를 두고 게임을 하는 것인데 그때는 너나 없이 민족적인 것이라 하여 경연대회까지 벌이며 즐겼습니다. 그것이 뇌리 속에 음각 된 나이 드신 분들은 지금도 시조를 잘 외우고 계십니다.
또 하나, 시조보급이라면 과거 부산 볍씨 동인 장학사의 예를 들 수 있겠습니다. 이분은 교육청 차원에서 개인의 힘으로 예하 교사들에게 강제적으로 시조를 쓰게 하고 각 학교행사에서 시조를 알림으로써 크게 시조확산운동을 벌였는데 그때 배운 교사들이 지금 부산시조의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린이시조운동은 교사양성부터
박구하: 맞는 말씀입니다. 그분이 바로 살매 김태홍 선생인데 제 고교 은사이기도 하지요. 그분은 자유시를 쓰는 분인데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시조를 쓰지 않았는데 1970년대에 부산시 장학사로 가시면서 우리 시조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만년을 시조보급운동에 보냈지요. 부산은 지금 100여명이 넘는 시조시인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열정들이 대단하여 포텐셜이 대단합니다. 지금 세계어린이시조운동도 그쪽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여기서 저는 개인적으로 시조보급에 있어서 한 사람의 교사, 한 사람의 장학사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절감하고 있습니다. 시조보급문제는 이처럼 직접적으로는 초등학교 교사를 동원하여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첩경입니다. 중학교 정도만 가도 아이들이 선생님 말을 잘 안 듣지만 초등학교는 선생님이 절대적이거든요. 선생님이 다잡아 아이들을 가르치면 시조교육은 됩니다. 물론 그것이 얼마나 작품성으로 연결되고 미래의 시조시인이 될지는 미지수지만 보급차원에서는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시조교육을 받고 자란 학생은 커서도 시인이 못되더라도 시조를 이해하고 시조를 사랑하는 시조의 우군(友軍)이 될 수 있어요. 제가 관여하는 세계시조사랑협회에서는 지금도 시조교실은 전국적으로 50여 군데 실시하고 있는데 5년간 600여명의 어린이시조시인을 배출해 내었습니다. 이 중에는 중국 조선족 어린이도 50명 포함되어 있지요. 이들을 가르치면서 애로사항은 시조지도교사부족, 시조쓰기 동기유발요인 부족 등인데 여기에 한 가지 더 아직 어린이시조지도책이 없어요. 우리나라 시조보급에 참고가 될지 모르겠기에 중국의 예를 들어보지요. 중국에는 조선족 2백만 명이 살고 있는데 얼마 전까지도 시조가 없었어요. 여기 한춘섭 선생이 연변시조의 개척자시지만 최근에는 제가 다니면서 연변은 물론 심양, 대련, 북경, 흑룡강성의 목단강까지 찾아가서 시조교실과 시조백일장을 열고 중국작가협회에 가서 강연도 하고 시조쓰기를 권유하여 현재 연변에만 시조시인이 70여명이 됩니다. 이들과 현직교사들이 시조보급에 적극 나서서 지금 시조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습니다. 목단강시의 경우 첫 시조백일장에 총 7백 명의 조선족 학생 중에 100명 이상이 모이는 성황을 이루고 그곳 문인회에서 시조모임을 별도로 조직하여 동북시조사랑회(회장 김성우 시인)를 만들었는데 시조가 얼마나 좋은지 기차로 5시간이 넘는 거리에서 아파서 누워 있던 노인들이 달려와 시조운동에 참여할 정도입니다. 이들에게 별도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이처럼 호응도가 높은 것은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조국에의 향수와 국가는 달라도 민족은 같다는 인식 하에 우리 민족의 얼인 시조를 알고 이를 해야겠다는 민족의식이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여기저기 상도 많은데 어린이에게 주는 상은 거의 없어요. 이것도 동기부여가 될 수 있겠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어떤 분들은 시조보급을 위해서는 태교부터 해야 한다고도 합니다만. 시조가 음악이니 시조가락을 태교 때 들려주면 좋겠지만 아직 그것까지 바랄 수는 없겠지요.
한분순: 한 사람의 시조보급운동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는 말씀 같습니다. 사실 시조는 우리가 여유가 없어서 그렇지 국내에만 갇혀 있을 수 없습니다. 정책적으로 도와주지 않는 가운데서도 민간 차원에서는 열심히 하고 있지요. 부산, 울산 등지에서 어린이시조운동이 그곳 지방시조문학회의 열렬한 지지 하에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음을 봅니다. 방금 박 시인이 말씀하신 중국뿐 아니라 미주 또한 시조 열기가 대단합니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고 괴테도 말했지만 우리 시조는 우물안 개구리처럼 한국의 울타리에만 묶어둘 수 없습니다. 지금은 인터넷 시대라 사이트 활동도 최근 활발해지고 《시조월드》만 해도 원래 《해외시조》라고 김호길 시인 등 미주시조시인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잡지 아닙니까? 외국에 살수록 그들에게 시조는 더 절실한가 봅니다. 지금까지 어린이시조와 중․고등학교 실정은 논의가 되었습니다만 좀 더 욕심을 내자면 여기서 대학은 어떻습니까? 지금 대학에 시조학과 같은 게 개설되어 있나요?
박시교: 시조학과는 없고 시조강좌가 있지요. 서울대학 빼고는 지금 웬만한 대학에는 문창과가 다 있습니다만, 시조강좌를 개설하고 있는 곳은 경기대, 교원대, 단국대 등 불과 3-4개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만... 대부분 과(科)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의는 안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시조사업은 국책으로 할일
김제현: 지금까지 여러분께서 좋은 말씀들 많이 해주셨는데 이것은 우리처럼 시조에 직접 관여하고 있거나 시조에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할 때 통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이것만 갖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시조를 안 쓰는 시인이나 시조를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시조를 어떻게 인식시키느냐가 시조보급의 관건이 될 겁니다. 안에서보다 밖에서 시조를 알아주지 않으면 모든 것이 도로(徒勞)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다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접근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 접근방법으로 이 좌담회가 국정교과서를 타겟으로 잡은 것은 아주 잘한 것 같습니다. 여기서 잠시 지금까지 국정교과서가 어떤 방식으로 편수되어 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문교부 편수관이 모든 교과서를 편수하도록 하였는데 그 후 편수관이 직접 하는 게 아니고 유관단체에 하청을 주어 신청을 받는 방식으로 바뀐 적이 있습니다. 그 하청자가 편성 시마다 바뀌는데 답답한 것은 당사자끼리 해버리니까 다음 번에 누가 될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다음 편성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미리 자료를 주고 어필을 하고 할 텐데 그걸 모르니 시조부문의 문제성을 인지시킬 시간이 없는 겁니다. 아까 서두에서 교과개편에 우리 시조단이 역할을 못했다는 반성도 있었습니다마는 그 내면에는 이런 애로도 있었습니다. 또, 한춘섭 교수가 조직위가 필요하다고 하셨지만 애국심의 발로는 교육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기왕 국정교과서에서 출발하기로 했으면 거기에 시조비중을 얼마나 높이느냐가 중요합니다. 시조비중이 높으면 수능시험에 나오니까 교사들도 열심히 지도하고 학생들도 열심히 공부하게되는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는 겁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모든 체제가 관(官)에서 움직여줘야 빠릅니다. 멀리 보면 어린이시조다, 창작교실이다, 연변시조다 모두 좋지만 이는 관에서 안 하니까 궁여지책으로 하는 것이지 사실은 국책사업으로 해야할 일들입니다. 관에서 안 해도 언론기관을 움직여 시조를 공론화할 수도 있겠지만 그 또한 예산의 뒷받침이 없으면 못하는 겁니다. 언젠가 KBS에서 해보자고 했으나 실패했지요. 그런데 일본 NHK는 국가 예산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하여 오늘의 전통시를 세계무대에 올린 겁니다. 그것은 전통문화를 지키려는 의지도 있었지만 경제적 animal 이 아니다, 우리도 문화 마인드가 있다는 과시욕도 있었을 겁니다. 일본인들은 어디 여행을 가도 호텔에서 일어나면 단카부터 외운다고 합니다. 이 땅의 외교관은 물론 시인들, 소설가, 평론가들 대부분이 시조를 모르면서, 다시 말하면 자기의 본체를 모르고 교양인이나, 전문문학인으로 자처하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차적 목표로 교과서 개편건의를 교육인적자원부에 어떤 방법으로든 자꾸 제시해야 합니다.
한분순: 그래서 이번에 7천여 명의 회원을 가진 우리나라 최대 문인단체인 문협에서 이사장의 이름으로 오늘의 주제에 관한 성명서를 발표하고 교육부에 전달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봤자 계란으로 바위치기겠지만 8차 과정에서 시조가 교과서에서 사라질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냥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지금 우리가 시조를 문제시하지 않으면 우리는 역사 앞에 죄를 짓는 못난 국민이 될 겁니다.
교과서 시와 시조 비율이 64대 2 라니 경악할 일
김제현: 물론이지요. 시조가 8차 교과과정에 누락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뭘 모르는 사람들은 자꾸 시조더러 자기변화, 자기 혁신을 보이라고 합니다만, 왜 시조만 보고 그럽니까? 남의 장르를 들먹여서 미안합니다만 자유시쪽도 문제가 없지 않습니다. 이번에 시조만 줄인 게 아니고 자유시조 분량도 같이 줄였다고 합니다만 그래도 그 결과가 64대 2라면 자유시쪽은 줄임을 당한 것도 아닙니다. 제가 지금 문단생활 40년이 넘었지만 교과서에 실린 자유시를 보면 내가 모르는 작가들의 작품이 수두룩합니다. 작품 선정 등을 볼 때 그쪽도 문제가 많다는 말입니다.
박시교: 맞아요. 자유시도 과거 반체제문학이라 불리던 시인들은 얼마 전까지 작품성에 불구하고 교과서에 실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시대가 바뀐 탓인지 역전되어 그쪽 계통이 아니면 힘을 못 씁니다. 김제현 교수보다 10년이나 후배인 제가 봐도 교과서에 시(詩)작품이 오른 시인들 중에 제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자유시단도 문제제기가 있어야 할겁니다.
한춘섭: 그것은 현행 국어 교과서 편찬과정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고 봅니다. 과거에는 어까 김제현 교수의 말처럼 교육부에서 하청을 주어도 분야별로 분산하여 주었습니다. 예컨대 읽기는 서울대. 쓰기는 인천대, 말하기는 부산대, 이런 식으로 분배하였는데 7차 과정부터는 「교육과정평가원」이 그 모든 분야를 한 손에 장악하였습니다. 물론 교육부에서 편수관이 여기에 나가 참관은 하지만 실제 연구는 각 파트별로 담당자를 1명씩 배정하여 그에게 모든 것을 맡깁니다. 이들은 자기가 맡은 분야 말고는 알려고도 않고 또, 알지도 못합니다. 그러니 무슨 문제가 생기면 교육부가 아니라 이들을 거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컨대 시조가 어떤 작품이 선정되고 분량과 비중이 어떻게 변하였는지 그 결과에는 무관심하다 이겁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부정을 하거나 이상한 짓을 한다는 건 아닙니다. 지금 누구라도 교과서에 실을 작품 하나 어느 한 사람의 임의대로 못합니다. 작품 선정은 전국 교사들에게 설문 조사를 하여 교사들이 추천하는 작품을 집계 심의한 후 작가 이름을 가리고 작품만으로 최종 심사를 하니까 결과적으로 이상한 작가나 시인의 작품이 수록되는 겁니다. 작품 위주로 선정하는 이 방법이 좋은 것 같지만 아주 큰 맹점이 있습니다. 즉 작품추천권이 현장 일선 교사들에게만 있다는 점이 그겁니다. 교과서에 자신이 작품이 수록되면 그만큼 자신이 유명해지므로 작가나 시인인 교사는 누구나 자기작품이나 자기와 가까운 사람의 작품을 추천하게 됩니다. 교사들 작품을 대상으로 추천하니 교사들 작품이 선정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입니다. 지금 교과서 수록 작품의 90%가 모두 현장 교사들 작품인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박구하: 하, 그런 점이 있었군요. 현대시조는 초중고를 통틀어 몇 편 안되니까 그럴 리는 없겠지만 다른 장르는 심각하겠군요. 작품추천권을 현직 교사에게만 주는 것은 반드시 시정할 사항이 되겠군요. 한춘섭 교수 얘기를 들어보니 8차 과정에서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될지 힌트를 얻을 수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이들이 꼭 시조에 대한 억하심정이 있어서 시조비중을 낮춘 게 아니라 시조가 우리 문화에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기 때문에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본 탓에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과거에는 김제현 교수의 말대로 다음 담당자가 누군지 모르니까 손을 쓸 시간이 없었다지만 이제는 교육평가원에서 집중 심리한다니까 그들을 집중 상대하면 될 것 아니겠습니까? 우선 현 교과서시조 실태를 종합하여 민족교육으로서 시조의 역할을 인식시키고, 각 파트별로 담당자를 찾아가서 작품비중개선 건의서와 함께 작품선정방법에 대한 어드바이스와 후보작품추천 리스트를 적시하여줄 필요가 있겠군요.
박시교: 그전에 전체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여 현 실상을 언론에 여론화시키든지 하여 자신들이 한 일이 잘못되었구나 하는 인식이 들도록 계몽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 후에 자료를 인비(人秘)로 보내든지 직접 들고 가야할 겁니다.
김제현: 작품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교과서에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가 나온다는 겁니다. 이 시조는 교과서에 절대로 실어서는 안 되는 작품입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하는 말이 적당주의 가치관을 심어주어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교육적으로도 안 좋고 전체 시조에 대한 인상을 버릴 위험성이 있어요. 또 작품 수는 고교과정에, 그것도 인문계 고교에 많이 넣어야 합니다. 그래야 수능에 많이 나올 테니까요.
금후 시조활동은 모두 교과서시조문제를 포커스로 해야
한분순: 지금 상당히 구체적인 접근방법이 제시되고 있군요. 듣고 보니 교육평가원의 역할이 막강하군요. 그런 줄도 모르고 우리는 교육부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이제부터 평가원 사람들과 친하고 가능하면 각종 시조세미나에 담당자들을 초청하여 현장감을 보여줄 필요도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각종 세미나도 주제를 교과서문제에 포커스를 맞추었으면 합니다.
박구하: 그래요. 뿐만 아니라 시조현장에서 우리는 시조의 실상을 고발해야 하고 시조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가만히 있는데 누가 떡 줍니까? 울어야 젖을 주지요. 지금껏 우리 시조시인들은 집안에서만 소리 높였지 나가서 그리 못했습니다. 오히려 분열하는 듯한 모습만 보였는데 앞으로는 대동 단결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로 민감한 문제는 접어두고 시조의 발전을 위하는 길로 가자는데 누가 마다하겠습니까? 누구의 사람, 누구의 편도 아닌 “시조의 편”이 되어 크게 단합하여 힘을 합할 때가 되었습니다.
한춘섭: 또 하나 과거에는 시조개편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거나 전차(前次)의 좋은 작품은 남겨 두고 개편이 되었는데 지금은 전면 개편으로 경향이 바뀐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과거 정완영 선생의 「조국」 같은 시조는 작품성이나 상징성이 뛰어나 교과서 작품으로 알맞은 것이었는데 다음 교과과정에서 아무 이유 없이 빠져버린 것도 수긍할 수 없는 일이지요. 시조의 경우 집필자는 시조시인이 아니라 교원이어야 한다는 점도 독소조항입니다. 이 점 작품선정 기준, 집필자 조항 등에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할 단체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까부터 제가 주장합니다만 우리 시조단을 사심 없이 대변할 기구가 꼭 필요합니다. 여기서 시조교육에 필요하거나 꼭 가르쳐야할 후보작품을 100편 정도 선정하여 이 중에서 골라보라고 할 수도 있지요.
한분순: 이제 교과서문제는 대충 짚어볼 것은 짚어본 셈인 것 같군요. 그 마무리는 잠시 미뤄 두고 여기서 교과서문제와 관련하여 우리 시조시인들을 자극하는 또 하나의 사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올 10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최되는 국제 도서전에 관한 것인데 여기서는 우리 시조가 홀대받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시당하고 있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먼저 이 문제를 가장 제기하신 박구하 선생이 그 경과를 잠시 말씀해 주시죠.
시조를 무시하는 국제도서전 조직위
박구하: 이 문제를 거론하자니 벌써 가슴이 울렁거립니다. 저는 먼저 국제도서전에 시조를 무시한 우리 측 조직위원회보다도 그런 무시를 당하고도 무시를 당한 줄도 모르고 가만히 있는 우리 시조단에 더 화가 납니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50년이 넘은 세계 최대의 유서 깊은 출판문화행사로 문화올림픽 같은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나라는 금년도 도서전에 주빈국(country of guest)이 되었는데 이는 아시아권에서는 일본 다음입니다. 여기에 예산 30억원을 들여 한국의 책 100권을 선정하여 번역 소개하는데 우리 시조관련서적 예컨대, 고우영의 「일지매」 같은 만화는 들어 있는데 「청구영언」이나 「노산시조집」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문화를 소개하면서 한국문학, 그 중에서도 핵심이라 할 시조를 통째로 뺀다는 것은 문인으로서 기본소양이나 선정위원회가 한국인 집단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를 선정한 문인이 총 64명(위원장 황지우 시인)인데 그 중에 시조시인은 단 한 명도 끼지 못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총 예산 250억 원이 드는 각종 행사 예컨대, 역대 유럽 각 지역 순방 한국문학강연회, 전시회, 시낭송회, 세미나 등에 시조인이 끼거나 시조작품은 철저히 제외되고 있습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지금이라도 시조인 이름으로 성명서라도 내어 시정해야 할 것입니다.
박시교: 선정위원 명단을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문인 64명 중에 시조시인이 한 명도 못 끼었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자유시는 7권이나 든 것으로 아는데 시조 이론서나 시조집 하나 못 낀 것도 우리를 분노케 합니다. 자유시가 모더니즘을 베껴온 서양시인데 자기의 정체성을 밝혀주는 시(詩)인 시조를 홀대한다는 것은 참으로 무식한 소치입니다. 반드시 우리의 견해를 선정위원회에 알리고 시정토록 해야 할겁니다. 이미 시기적으로 늦어 시정이 안 되면 그 무식한 소치를 만천하에 폭로해야 합니다.
한춘섭: 참으로 한심하군요.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우리끼리만 알아봤자 소용없지요. 외부에 알리지 않으면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일도 협회에서 해야 하는데 우리 협회나 기타 단체는 다 무얼 하는지 안타깝군요. 우리 다 맹성해야 합니다.
박구하: 시조시인협회가 40여년 존립해오고 있으나 무얼 하는지 한심합니다. 그저 우리끼리 주고받는 작품집이나 내고 놀러나 가고 상이나 갈라먹으면 그만이고 회장이 바뀌면 회장 중심으로 따로 국밥으로 놀아서야 무슨 의의가 있겠습니까? 정작 나서야 할 때 침묵한다면 유명무실한 거지요.
박시교: 그렇다면 누구든 나서야 할 때 아닙니까? 시조시인 치고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자기 이익에 눈 붉히는 사람이라도 시조를 살리자, 시조를 발전시키자 하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제 진정한 시조시인이라면 모든 계파나 자기 이익을 초월하여 시조대변기구를 하나 만들 때가 되었습니다. 어떻습니까? 김제현 교수께서 대장을 맡아 그런 행동대를 하나 만들었으면 합니다. 이 단체는 어떤 명리도 추구할 것 없고 어떤 서열도 내세우지 않고 오직 능력과 열정과 실천만으로 뭉친 단체를 만들기를 제의 합니다.
박구하 한춘섭: 좋습니다. 재청이요. 그렇게 하시지요.
김제현: 이 일은 아무래도 젊은 사람이 나서야 해요. 제가 맡을 힘도 없고 재주도 없습니다만 그럼 씩씩하고 유능한 젊은 인재가 나올 때까지 한시적이라는 조건이라면 한번 맡아보지요. 우선 그 첫째로 성명서를 만들어봅시다. 오늘의 주제인 교과서문제는 문협 이사장 이름으로 나가도록 하고 이 국제도서전에 관해서도 성명서를 작성, 우리 이름로 담당부서에 보내고 시조단 내부에도 공론을 일으키며 여러 방면에서 언론에도 유포하도록 하지요.
한분순: 그럼 오늘 생각지도 못했던 시조단체 하나가 태동한 셈이군요. 이것도 오늘 좌담회의 한 성과라 하겠습니다. 오늘 주제는 교과서 실상을 고발하고 그 개선을 위해 우리 시조시인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해야할 것인지 심도 있게 짚어보았습니다. 우리 시조의 당면문제를 두고 이 정도로 구체적이고 적확한 지적과 방향제시는 처음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더구나 단순히 결론만 내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행동화하기 위해 범시조단체를 결성하기로 한 것은 망외의 소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울러 이번 국제도서전에 무시된 우리 시조의 위상을 알리고 우리의 체면과 응분의 대책을 강구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합의점도 도출해내었습니다. 오늘의 교과서문제 제기는 작년 조오현 시인과의 면담에서 비롯되어 그것이 바로 《유심》지의 좌담으로 나타났고 이어 문협의 전폭적인 지지 하에 오늘 《월간문학》 좌담회를 가지게 된 것이지만 이 좌담회를 시발로 앞으로 각 시조전문지와 시조단체들이 8차 교육과정 개편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이 문제를 집중 거론하고 사회문제화 할 수 있도록 각자의 위치에서 적극 홍보해야 할 것입니다. 장시간 좌담에 응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정리․ 박구하) / 월간문학 2005. 4월호26-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