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 공지영
첫째날 오후 1시 30분
우리는 이미 좀 늦어 있었다. 토요일 오후여서인지 빈 택시가 영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합승손님으로 인해서 조금 돌아간다는 운전사의 말을 듣고도 우리는 주저하
지 않고 택시에 올랐다. 나이가 오십줄에 마악 접어들었을까, 하와이식 남방셔츠를 입은 운
전사는 합승으로 우리를 태우자마자 길음삼거리에서 곧장 정릉으로 통하는 사잇길로 접어들
었다. 아마도 우리보다 먼저 탄 앞자리의 아낙이 그리로 가는 모양이었다. 그런일이야 한두
번 겪은 바도 아니었지만 길은 좀 위태로워 보였다. 거의 사십오도 각도나 되는 경사에다 길
이 좁아서, 차가 지나칠 때마다 훌라후프를 하거나 고무줄을 하던 계집아이들이 길가에 납작
하게 붙어서서 불안한 눈동자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연탄을 넣어두기 위해 길가에 세워
둔 낡은 캐비넷과 배춧단을 실은 리어카들, 그리고 길에서 방으로 바로 연결되어 있는 남루
한 주택의 알루미늄 방문 겸 대문들이 거의 충돌할 듯 말 듯 차창을 휙휙 스쳐지나갔다. 손
잡이를 잡고 있는 내 손에서 벌써 땀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우리보다 먼저 탔던 손님을 내려놓고 곧바로 카세트를 밀어 넣었다. 처음에 우리는
그것이 그냥 운전기사들이 자주 듣곤 하는 흘러간 가수들의 메들리 테이프인 줄 알았다. 하
지만 잠시 후 흘러나오는 여자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낯익은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노래라곤
거의 도레미도 배워보지 못한 여자의 목소리는 음정도 박자도 제멋대로였다. 그런데 운전사
는 그 노래를 따라 부르며 추억에 젖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뒷자리에 나란히 앉은
박과 나는 어이가 없어서 서로 마주 보고 잠깐 웃었다. 아마도 요즘 노래방에서 자신이 부른
노래를 녹음을 해주기도 한다는데 그런 종류의 것인 모양이었다. 생각은 틀리지 않았는지 여
자의 노래가 끝난 다음에는 빰빠라밤밤밤바바....하는 빵빠레가 울려나왔다. 1993년도에 대
한민국에 살면서 노래방이라는 곳에 한번이라도 가본 일이 있는 사람은 아마도 그것이 노래
가 끝난 후 점수가 나타나기 전에 나오는 음악이라는 걸 알 것이었다. 이어서 남자의 노랫소
리가 흘러나왔다.
----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 브라보, 브라보 아빠의 청춘 ‥‥‥
운전기사는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것과 똑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불렀다. 좁은 골목길
에서 거의 충돌할 듯 마주치는 봉고차들을 요리조리 피하기 위해 핸들을 휘이익 휘이익 돌려
가면서, 또 한편으로는 브라보, 브라보 노래를 따라부르면서 운전사는 물고기의 창자 속처럼
가늘고 가파른 골목길을 오르락내리락 차를 몰아갔다. 골목길도 참을 수 있었고 곡예하는듯
차를 요리조리 몰아가는 것도 그런대로 참을 수 있었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그 노래들은 시간
이 지나면서 점점 참기가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차가 급하게 왼쪽으로 몸을 틀어 오른쪽으로
상체가 기울 때마다 온몸의 신경들이 우르르 오른쪽으로 몰려서는 비죽거리며 비져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옆자리의 박은 입술을 꼭 앙다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자 비로소 그
가 작곡가라는 생각이 났다. 몇년 전 내가 참여한 적이 있는 영화일 때문에 처음 인사를 나
누었을 때 그는 미국에서 재즈 음악을 전공하고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자신을 소개
했었다. 그는 전문대학의 강사로 나가면서 영화음악을 작곡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가 미국에
서 작곡해 왔다는 음악을 듣고 곧 그의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다. 쉽지만 통속적이지 않은 음
악. 나는 그가 작곡한 몇편의 음악들을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해서 가끔 듣곤 했는데, 음반을
내놓게 됐다고 기뻐하는 그를 본 지 거의 일년이 지났건만 그는 여태 아무 소식도 가져오지
않고 있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남의 글을 읽을 때 맞춤법이 조금만 틀려 있으면 글의
내용과 상관없이 그 틀린 철자가 자꾸 눈에 거슬리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그가 택시기사가
틀어놓은 저 소음, 그러니까 음악을 잘 모르는 내가 들어도 음정도 박자도 틀리는 이상하게
육감적인 저 노랫소리들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은 여전히 그
자세였다. 나는 그 이상한 소음을 좀 참아보기로 했다. 음악을 전공하는 그도 참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저 허스키한 젊은 여자는 아
마도, 아무리 생각해도 아내는 아닐 것이니, 그렇다고 딸이나 조카이지도 않을 것이니, 그저
삼에 상처 입은 여자와 일상에 지친 늙은 남자가 정말 사랑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런
데 저들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서 노래방엘 갔던 것이고, 평소엔 쑥스러워서 할 수
없었던 고백을 노래로 하고 있는 것이라고, 누구 말마따나 남이 하면 스캔들이고 자기가 하
면 비련이라는 생각 같은 건 집어치우자고‥‥‥ 저 음악은 귀에 거슬리다 못해 이제 속까지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하고 있지만 그래도 좀 다르게 생각
해보자고‥‥‥ 저 운전기사는 오죽
하면 이 물고기의 뱃속 같은 골목길을 곡예하듯 달려가면서 저렇게 추억어린 표정을 짓고 있
을까, 하고 말이다. 소설가라면 입체적으로 사람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어떤 점잖은 평론가도
내게 충고하지 않았던가.
---- 죽도록 사랑해놓고 두번 다시 만나지 못해‥‥‥ 남자아 남자, 남자의 약속이 미워요
오오오‥‥‥
하지만 생각은 생각이었고, 운전사의 난폭한 운전을 참아내면서 음이 안맞는 노래와 여자
의 육감적인 콧소리를 듣고 있으려니까 짜증은 바야흐로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 화가 나
는 건 나는 거였고, 듣기 싫은 소리는 듣기 싫은 거 아닐까. 내가 아무리 소설가이고 인간의
생을 입체적으로 그려내야만 한다 해도, 변호사라고 매일 쿄통법규를 지키는 것도 아니지 않
는가 말이다. 그래서 화가 나는 마음이라도 서로 좀 나누어볼까 하고 박을 바라보았지만 그
는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그가 미국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행각했다. 가끔 술자리에
서 그는 80년도초에 도망치듯 미국으로 갔다는 말을 잘도 해댔는데 나중에야 그가 광주 출신
이라는 것을 알아낸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 이상했어요. 80년대초에 한국에 있을 때 나는 생각했지요. 독재자 니들이 아무리 나
를 제약해도 빼앗아갈 수 없는 것도 있다고 말예요. 예를 들면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들이나 상상력 같은 것들, 꿈들‥‥‥ 한데, 아니었어요. 미국에 간 지 6개월쯤 지나고 나서
나는 내가 한국에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상상을, 생각을 그리고 꿈을 꾸고 있다는 걸 깨닫
게 됐지요. 그건 무서운 발견이었어요. 혹시 이해할수 있으세요?
하지만 공부를 마치고 9년 만인 89년에 그는 그곳에서 곧 보장될 안락한 생활을 뿌리치고
돌아왔다. 광주를 저지른 자가 아직 통수권좌에 앉아 있는 나라에 말이다. 꿈조차 다르게 꿀
수 있는 나라를 두고 왜?
택시를 타기 전 박은 내게 한달 동안이나 피아노를 만지지도 못했다는 말을 털어놓았었다.
그런 말을 할 때 그의 얼굴이 하도 어두워 보여서 하마터면 나는 왜요? 하고 물을 뻔했었다.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요 하고 물을 뻔도 했다. 그러나 나를 자제케 한 것은 나 역시 몇달 동
안 한줄의 글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아직은 컴퓨터 위
에서 피아노 치듯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쓰고 또 지우고 또 지우고, 그리고 마지막에 다
지워진 컴퓨터의 검은 홧녀에 명멸하는 커서만 바라보는 일‥‥‥ 마치 너는 할 수 있어, 없
어, 있어, 없어‥‥‥ 하듯이 명멸하는 그 커서‥‥‥ 그런데 그는 피아노엔 손도 안 댔단
다. 그가 치는 소리는 나처럼 Delete라는 단추를 누르지 않아도 허공 속으로 지워져가는 것
이 있는데 그는 왜 손도 대지 않았을까.
한낮의 골목길에도 차들이 밀리고 있엇다. 마주치는 차를 피해주고 다시 올라갈 때마다 차
는 가벽게 진저리를 치면서 뒤로 밀렸다가 다시 출발하곤 해다. 우리는 그 아슬아슬함 때문
에 둘다 차창 위에 달린 손잡이를 구명대처럼 부여잡고 앉아서 이제 흥에 겨워 못살겠다는
듯한 남녀의 발악적인 이중창을 견디고 있었다. 이중창 속에는 간간이 여자의 교태스러운 웃
음소리가 섞였고, 이어서, 아이 그러지 마, 하는 것 같은 콧소리도 들렸다.
---- 소쩍꿍새가 울기만 하면 떠나간 우리 님이 오신댔어요, 소쩍꿍 소쩍궁‥‥‥
박수소리, 웃음소리, 발을 구르는 소리‥‥‥ 소쩍꿍새가 한참 울고 있을때 박이 아주 천
천히 말했다.
---- 아저씨 우린 여기서 좀 내리고 싶은데요.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운전사가 볼륨을 줄였다. 소쩍꿍새가 저만치 사그라들었다.
---- 뭐라구요?
---- 내려달라구요, 우린 내리겠단 말입니다.
박은 이를 악무는 듯이, 그러나 여전히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내가 투덜거리는 운전사에게
요금을 지불하고 나서 돌아보자 그는 골목 뒤편으로 들어가 몹시 토하고 있었다. 지갑을 챙
기다 말고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박이 손수건으로 천천히 입가를 닦으며 내게로
다가왔다. 겸연쩍은 그의 표정이 억지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나는 토하느라 그의 눈가에
맺힌 눈물방울이 눈꼬리로 사그라드는 것만 보고 있었다. 나는 박이 택시에 두고 내린 작은
배난을 그에게 건넸다. 그는 마치 웃는 것처럼 입술을 가볍게 뒤틀며 배낭을 받아들었다.
---- 택시가 있을까요?
내가 시계를 들여다보며 묻자 박은 잠시 망설이더니 대답했다.
---- 조금만 걷고 싶은데요.
그래서 우리는 아슬아슬한 비탈길을 천천히 걸었다. 가끔 맹렬한 속도로 차들이 지나갈 때
면 아까 우리가 차창 안에서 보았던 계집아이들처럼 길옆으로 납작하게 붙어서면서 택시 안
에 탄 사람들을 바라보기도 했다. 노파가 택시 앞좌석을 꼭
붙든 채로 지나가고 트럭이 배
추, 양파 하는 확성기를 울리면서 우리 앞을 스쳐 지나갔다.
---- 어젯밤에 술 드셨어요?
납작하게 붙어서서 차를 피하는 중에, 얼굴에 화색이 좀 돌아온 그가 내게 물었다.
---- 왜요? 술냄새가 나요?
---- 예...... 글쓰는 사람들하고 마셨나보죠?
그는 딱히 할말도 없다는 듯, 말했다.
---- ‥‥‥글쎄요, ‥‥‥아닐 거예요, 소쩍새들하고‥‥‥
내 입에서 왜 소쩍새라는 말이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택시를 내리기전에 들리던 소쩍꿍
새라는 노래 때문이었을까?
잠시 후 우리는 다른 택시를 잡아탈 수가 있었다. 절믓나 운전사는 라디오를 켜놓고 있었
는데 거기서도 물론 유행가가 흐르고 있었다. 내가 박에게 물었다.
"저기요, 왜 우리는 그 기사한테 테이프를 멈추라고 말을 하지 못했을까요?"
박이 그제서야 그게 이상하다는 듯 잠시 웃더니 택시 안의 스피커에서 울리는 가수의 노래
를 들으며 말했다.
"그래도 프로페셔날이 좀 낫군요."
전날 밤 11시 40분
어제 초저녁에는, 갑작스러운 비가 내렸다. 남쪽으로 난 베란다에서 쏴아 하는 빗소리가
들리는 것을 시작으로 뒷베란다에서도, 서쪽으로 뚫린 목욕탕에서도 빗소리가 밀려들었다.
목욕탕 창으로 내다보니 멀리 인수봉의 흰 이마가 마악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참이었다. 나
는 투명하고 날카롭고 긴, 비의 창살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글을 써보려고 컴퓨터 앞에 앉
아 있다가 말고 부엌으로 나오니 집안이 엉망진창이었다. 우선 쌓여 있는 설거지감부터 손을
대려다 말고 앞치마를 입은 채로 나는 그냥 맥주 캔을 따버렸다. 그러니까 비 때문이었다.
나는 빗소리에 갇혀서 멍하니, 개수대에 쌓여 있는 설거지 그릇들과, 식탁 한켠에 수북한
쓰레기 봉투들과, 찌그러진 채 나뒹구는 맥주 캔의 수를 세고 있었다. 세면서 닥쳐오는 마감
날짜를 걱정하고 있었다.
---- 삼세번입니다. 두 번 빵구를 내셨으면 이제 그만 좀 주시죠.
그들은 내가 좋은 작품을 숨겨놓고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처럼 말했다. 사실이 아
니라는 걸 누구보다 그들이 잘 알면서도 말이다.
---- 그래야겠죠. 저도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대답했었다.
---- 그러셔야죠.
그들도 동의했다. 그러니 문제는 이제 컴류터 앞에 앉아서 쓰기만 하면된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린 것은 그때쯤이었다. 자주 어울리던 문인들이
모여 있다면서 한 시인이 짓궂은 목소리로 집앞 술집의 이름을 대는 것이었다.
밖에는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우산을 펴고 빗속으로 한발짝을 내디뎠다. 빗소
리는 이제 우산 위에서 두두두두 울리고 있었다. 걸아가면서 이 밤에 수유리까지 와서 술을
마시며 내게 전화를 건 시인을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일하던 작은 운동단체에서 함께 일했던 그는 얼마전 꽤 급진적인 문
학단체에 몸담았다가 징역을 살고 나온 일이 있었다. 나는 그가 남을 위한 일에, 특히 그것
이 궂은 일일 때에 빠지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잊혀져간 문인의 임종을 지키고 나서 문인
들에게 연락을 취해서 문인장을 치러준 것도 그였고, 후배들이 구속되기라도 하면 꼭 한번씩
은 면회를 가고 책을 넣어주는 것도 그였다. 나 역시 그의 후배라는 특권을 가지고 있어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에게 달려가곤 했었다. 나는 이제까지 그가 내 앞에서 화를 내는
것을 본 일이 없었다. 아니, 딱 한번 있었다. 화를 낸다기보다 언제나 웃고 있던 그의 입가
에서 미소가 싹 가시는 순간을 말이다. 그건 어떤 술자리에서 문학평론가이자 대학교수인 그
또래의 한 남자가 그에게 물었을 때였다. 그는 시인과 함께 대학원에 다녔으나 시인은 뛰쳐
나왔고 그는 교수가 된 사람이었다.
---- 어때요? 그만 복학하시죠. 생계도 그렇고요. ‥‥‥부인이 어렵게 일하신다는데.‥‥
‥
내가 한번도 글을 발표해보지 않은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있던 낯선 문인들이 일제히 그에
게 시선을 던졌다. 그 말에 별 악의가 담겨 있지 않은것이 틀림없었지만, 대학원에 복학하는
것도, 그래서 교수가 될 자격을 얻는 것도 절대로 나쁜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더
더구나 질문을 받은 것은 시인 자신이었지만 내 얼굴이 먼저 굳어져버렸다. 마치 질문을 받
은 것이 나였던 것처럼 나는 그 낯선 평론가에에 모욕감을 느꼈다. 그건 말이죠. 그건‥‥‥
그렇게 간단히 물어보면 안되는 건데요, 당신이 뭐하는 사람인지 나는 모르지만, 왜 그런 이
야기를 하는지 모르지만‥‥‥ 그게 아니란 말예요, 그게‥‥‥ 물론 나는 입을 열지 않았고
신인은 잠시 후 그냥 씨익 웃고 말았다. 나는 그때 우리가 1993년을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
하고 있었다. 내가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이 대학 4학년 때인 1984년이니 벌써 십년이나 흘러
가 있었던 것이다. 십년이란 건 간단한 세월이 아니었다. 특히 젊었던 우리들에게 그 십년이
란 세월은 그랬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간단하다. 짧고 간결하다. 십년새 우리는 간결해져버
린 것이다.
---- 복학하시죠.
---- 그래보지요.
그런 그를 나는 요 며칠 전 인사동의 한 단골 술집에서 만났다. 여주인이 내게 와서 그를
좀 어떻게 해보라는 말을 건넸다.
---- 벌써 이박삼일 동안 여기서 술을 마시는 중이야. ‥‥‥집으로 보내봐. 집에서 기다
리는 사람 생각도 해야지.
마주앉았을 때 그의 눈빛에서 희미하게 무언가가 빛나고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형‥‥‥ 하고 튀어나오려는 말을 붙잡아준 것은 아직도 빛나고 있는 그 희미한 빛 때문이었
다. 화장실에 가려는지 일어서려다 휘청거리는 그의 팔을 내가 잡았을 때 그는 도로 자리에
주저앉아 마른 얼굴을 한번 쓸어내렸다. 그의 얼굴은 곧 울음이라도 터질 것같이 보여
서 나는 덜컥 겁이 났다.
---- 형, 이제 자기 자신도 좀 생각해. 애들도‥‥‥ 자꾸 남 생각만 하다보면 자기는 누
가 챙겨?
주제넘은 말참견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나는 물었다. 묻는 나를 바라다보는 그의 눈에
서는 아직도 그 희미한 빛이 빛나고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희미할 뿐이었으므로 나는 내
질문이 장난이 아니란 것을 표시하기 위해 굳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어린아이
처럼 깔깔 웃었다.
---- 우리 마누라가 챙기지‥‥‥ 우리 마누라가‥‥‥ 재밌지?
그는 정말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 임마, 너 시궁창에 빠져본 일 있냐? 난 있다. ‥‥‥물이 생각보다 뜨듯하데. ‥‥‥
그 기분 너는 모를 거다. ‥‥‥더는 더러워질 수 없는 느낌, 더는 모욕당할 수 없는 평화‥
‥‥ 그건 좋은 거야. 그리고 거기서부터 정말 우리는 시작하는 거야.
나는 그가 낸 세 권의 시집을 모두 읽었다. 모두가 그렇고 그런 옳은 말씀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애았었다. 그런데 이박삼일 동안 술에 절어서 집에도 안 가고 잠도 안 자고 술만 마시
는 그가 내뱉은 그 말이 내 가슴으로 와서 닿았다. 나는 처음으로 그가 정말 시인일지도 모
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나는 또 생각하고 말았다. 정녕 이런 시궁창 같은 고통이 있
고 난 후에라야 우리는 시작할 수 있는 것인가‥‥‥
집앞의 술집에 들어서자 시인이 손을 들어 나를 반겼다. 벌써 오년째 같은 소설을 고치고
있는 소설가와 안경을 쓴 평론가가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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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사 정차장이 너 소설 안 준다고 투덜거리던데‥‥‥ 좀 썼어?
시인이 물었다. 나는 오년째 같은 소설을 고치고 있는 소설가를 바라보며 자신있게 대답했
다.
---- 아니!
내 대답이 하도 의기양양해서인지 사람들이 함께 웃었다. 나도 웃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들의 미소 뒤에, 그들의 미소가 막 거두어지려는 찰나에 그들의 얼
굴 위로 떠오르는 상흔들‥‥‥ 나는, 미소가 아니라 미소 뒤에 그들에게 곧통적으로 떠오르
고야 마는 그 상흔들을 자꾸 보는 내가 싫었다. 이런 걸 또 느끼려고 열두시가 다 된 시간에
빗속을 걸어온 것은 아니었다. 어색한 기분 때문아 나는 아주바구니에 담긴 멸치만 축내고
있었따. 자기는 마누라가 챙겨주니까 자신은 다른 사람을 챙겨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인
이 빈 멸치바구니를 놓칠 리가 없었다. 그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다 말고 잠시 낭패한 표정을
짓더니, 생각을 바꿨는지 나비넥타이를 맨 웨이터를 불러 아주 어눌한 목소리로 말했다.
---- 아저씨 여기 멸치만 조금 더 주실래요?
---- 하나 더 시키세요. 멸치값이 요즘 아주 비싸거든요.
그러면 그러죠 뭐, 하고 사람좋은 시인이 말하려고 하는데 내가 불쑥 끼여들었다.
---- 멸치값이 뭐가 비싸요? 오늘 시장에 가니까 천원에 세 바구니나 주던데 ‥‥‥
웨이터의 얼굴이 험악해지는 순간 시인이 탁자 밑으로 가만히 팔을 뻗어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 올랐어요. 멸치가 얼마나 비싼 줄 알아요?
웨이터는 험악한 눈초리를 거두지는
않았지만 손님에게 최대한의 자제심을 발휘하니까 그
리 알라는 듯 다시 말했다.
---- 안 비싸다니까요. 마른안주 한 접시에 팔천원이나 받으면서 그깟거 좀 못 줄 이유가
뭐예요?
---- 이 아줌마가 술집에 와서 그게 무슨 소리야!
웨이터가 다시 말했다. 그는 폭발하는 듯했다. 하기는 그도 피곤할 것이었다. 열두시가 넘
어도 창문을 검은 커튼으로 가리고 늦게까지 장사를 하는 주인 때문에, 말도 안되는 주정을
하는 손님들 때문에, 멸치만 더 달라는 얌체같은 우리들 때문에 말이다. 시인은 이제 내 손
을 힘을 주어 잡고 있었다. 나는 시인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 알고 있었지만 그 손을 뿌
리쳤다. 뿌리치면서 갑자기 팽팽한 전의가 내 아랫배를 긴장시키는 것을 느꼈다.
---- 아줌마? 그래요. 아줌마가 술집에 와서 안주 비싸다는 소리 했어요. 비싸지도 않은
멸치 한줌 갖고 바싸다고 거짓말하는 당신한테 따지는거예요. 왜요? 뭐가 잘못됐어요, 아저
씨?
결사적인 싸움이라도 한판 벌일 듯이 대어드는 내 얼굴을 몸으로 막으며 시인이 마른안주
한 접시를 시켜버렸다. 그러자 나를 노려보던 웨이터가 참아준다는 얼굴로 사라졌고, 시인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왜 그래? 요즘 무슨 일 있니? ‥‥‥그만한 일로 목숨 걸 거 뭐 있어?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뱉은 목숨이라는 단어가 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그 말은 참으로 오래된 말인 듯이, 마치 슬픔 전설이 배어 있는 듯이 느껴
졌던 것이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좀 겸연쩍기도 했으므로 나는 그냥 그가 따르는 맥주만
마셨다. 물론 아무일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요 몇달째 화를 내고 있었다. 왜 당신 글에는
전망이 없느냐고 무심히 묻는 착한 독자들에게도 화가 났고, 내 글을 빨리 빨리 읽어치우는
평론가에게도 화가 났었다. 아니다. 완성되지도 못한 글들이 내 컴퓨터에 잔뜩 들어 있는 것
도 화가 났고, 그 글들을 불러내서 Delete단추를 누르면 내가 며칠 밤을 뒤척거리며 써놓은
글들이 일초도 안되는 순간에 지워지는 것이 화가 났으며, 더구나 그 그들을 지워놓고도 전
혀 후회가 되지 않는 것에 결정적으로 화가 났었다. 시인은 가방을 뒤적여 작은 수첩을 꺼내
들었다.
그 수첩의 앞장에는 어딘가에서 곱게 오래내 풀로 붙인 듯한 싯구가 있었다. 그는 손가락
으로 깨알같이 잔잔한 그 글씨들을 하나하나 짚어나가기 시작했다.
---- 봐라, 이게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란 거다, 임마.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용
서받기보다는 용서하며‥‥‥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
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반질반질 벌써 손때가 묻어버린 그 시인의 수첩 앞장이 내 눈에 와서 박혔다. 그는 대체
언제부터, 얼마나 자주 저 앞장을 펼치고 일일이 손으로 글귀를 짚어가며 저 구절을 읊어주
었을까 생각하니 콧등이 무거워졌고 이내 시큰해졌다. 나는 그가 들이미는 수첩에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 외면하지 말아, 이놈아. 이게 진리야!
---- 무슨 진리가 그렇게 많아? 해탈했어? 형은
해탈해버린 거야? 시궁창에 코박고 전도사
같이 웅얼웅얼 기도하면서 해탈할 거야!
내가 분위기를 깬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술자리에서 쓸데없이 분위기 개는 인간들을 가
장 혐오하고 있었지만 나는 소리를 버럭 지르고 말았다. 시인이 어색하게 입술을 훔치며 수
첩을 닫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화를 내기로 했다. 나는 이제 싫어져버린 것이었다. 서로 빙
빙 돌려 말하기, 결정적인 사항들, 예를 들면 생계는 어떻게 해? 라거나, 아직도 진행되는
그 재판 끝났어? 라거나, 형이 그 운동단체에 기금을 내기 위해 저당잡혔던 집문서는 찾았어
라거나, 형이 끌려가던 날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님은 요즘 어떠셔‥‥‥ 하는 말들은 절대로
내뱉지 않고‥‥‥ 서로서로 모른 척 하기, 그래서 술자리에서는 재미있는 말만 하기‥‥‥
서로 같은 상처를 지니고 있다는 내색은 절대로 안하기‥‥‥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가 싫었
던 것이 아니라, 해탈하고 싶어하는 그 시인의 몸부림이 싫었던 게 아니라 말이다. 나는 시
인을 외면하고 오년째 같은 소설을 고치고 있는 소설가가 주는 잔을 받았다. 노동현장에서
수배를 받으면서 쓰기 시작했다는 소설, 고치다 보니 이미 역사소설이 되어버린 노동서설을
쓰는 그는 우스운 말로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의 말에도
억지로 웃지 않았다.
결국 분위기는 나 때문에 깨져서 우리들은 묵묵히 술만 마시다가 세시쯤 술집을 나왔다.
비는 그쳐 있었다. 비에 젖은 텅 빈 아스팔트 위로 나트륨들이 뿌옇게 어리고 있었다. 용산
이요, 구의동이요, 사람들이 택시를
타고 사라지고 나서 나와 시인 둘만 남았다.
----‥‥‥미안해요, 형‥‥‥
---- 괜찮아 임마, 다 그러면서 사는 거지‥‥‥ 포장마차 가서 한잔 더 할까?
---- 아니‥‥‥
시인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하더니 우리 집까지 날 바래다 주겠다고 천천히 앞서 걸
었다. 나도 그를 따라 나트륨등이 비 저은 아스팔트 위로 어리는길을 걸어갔다. 가로등에 비
친 가로수 이파리에서 맑은 빗방울의 여운들이 뚝, 뚝 떨어져내렸고 멀리, 비 그친 국립공원
숲속에서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 형, 소쩍새를 본 일이 있어요?
---- 아니‥‥‥ 소쩍새는‥‥‥ 몰래 울잖아‥‥‥ 다른 새들 다 잘때, 밤에만‥‥‥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소쩍새를 본 적이 있었다. 비가 부슬부슬 뿌리던
날, 약수통을 달랑 들고 산으로 향하는 길에, '북한산의 동물 자원'이라는 게시판에 소쩍새
는 부엉이와 나란히 사진으로 앉아 있었다. 통통한 부엉이 옆에 앉아 있었기 때문일까, 나는
왠지 소쩍새가 저주받은 부엉이처럼 느껴졌다. 이제 더는 부엉부엉 울지 못하고 인간의 자음
과 모음으로는 더 흉내낼 수 없는 소리로 목을 쥐어짜며 꾸르륵 꾸욱꾹 우는 새‥‥‥ 아마
도 몰래 접근해서 소쩍새를 찾아낸 사진작가가 그를 찾아내고 플래쉬를 터뜨리는 찰나, 소쩍
새는 정확히 렌즈 쪽을 보고 있었는데, 나는 그 소쩍새의 눈빛에서, 저주라는 단어가 함축하
고 있을 법한 모든 말들, 그러니까 영원한 갇힘, 풀어내지 못하고 쌓여만 가는 슬픔, 원망까
지도 뚫고 나올 듯 아직도 치밀어오
르는 어떤 꿈...... 같은 것들을 공연히 느끼고는, 왠지
비가 부슬부슬 뿌리는 한적한 산길이 무서워져서 약수도 뜨지 않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와버
린 적이 있었던 것이다.
침묵하며 우리 집 앞까지 와서 그는 내게 악수를 청하고는 껑충한 뒷모습을 보이면서 사라
져갔다. 내 손에 아직 남아 있는 그의 손의 여운이 딱딱하게 느껴졌다. 수배도 해제되었고
조사도 받았고 재판도 끝났지만,게다가 밤 세시까지 술을 마셨지만 그는 온몸의 긴장을 다는
풀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어쩌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정말로 혼자 포장마차에 갈지
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어쩌면 또 이박삼일 동안 술을 마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는 저주받은 것처럼 다는 부드러워지지 않는다. 다는 풀어헤쳐지지 못하는 것이다. 아마 그
는 딱딱한 손으로 연필을 들고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문이 적힌 수첩을 꺼내서 깨알같이 메모
를 할 것이다었다. 말하자면 그는 죽는 날까지 시를 쓸 것이었다. 왜냐하면,
첫째날 오후 6시 20분
김감독은 속도를 좀 줄였다. 벌써 다섯번째 검문소였다. 헌병이 우리 일행을 쓰윽 훑어보
더니 가라는 손짓을 했다. 운전대를 잡은 김감독이 기어를 바꾸어 넣으며 속력을 냈고 우리
는 더 북쪽을 향해서 달려나갔다. 의정부와 포천 시내에서 생각보다 길이 많이 막혔기 때문
에 우리는 또 늦어 있었다. 가끔 우리 둘을 불러내서 낚시터로 데리고 가곤 하는 낚시광인
김감독은 좋은 포인트를 놓칠까봐 초조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박과 나로 말하자면 그저 아무
생각이 없었다. 머리를 짧게 간은 수양버들이 차창을 스쳐가는 길에서 담배만 피우고 있던
박이 새삼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검문을 하는 거지요?"
"우리가 젊으니까요."
"그것도 그렇겠군요."
그들은 선문답 같은 이야기를 간결하게 주고받으며 잠시 하하 웃었다.
차창 곁으로 트럭이 천천히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 무엇을 그렇게 많이 실었는지 푸른
비닐에 덮여 있는 내용물은 보이지 않았지만, 트럭은 우리 차를 비껴 뒤로 멀어져갔다. 김감
독의 차는 이제는 거의 생산되지도 않는 고물형이었지만 트럭보다는 그래도 나은 모양이었
다. 트럭을 가볍게 스쳐 오르막길을 다 오르고 나서 우리 차는 322번 지방도로 접어들었다.
낚시터가 이제 가까워진 것이었다. 우리는 낚시가게 앞에 내려 지렁이와 케미라이트와 라면
을 샀다. 돌아보니 박이 캔맥주를 한아름 가지고 와서 계산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비포장길
로 접어들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긴 여름해가 먼산 위에 떠 있었다.
한탄강의 지류인 그 강가는 언제 와도 좋았다. 마치 태초에 누군가가 쇠스랑으로 긁어놓은
듯한 가파른 절벽들이 서 있고 그 아래로 잔잔한 물이 푸르렀다. 토요일치고 한산한 편이었
다. 자리를 잡고 나자 김감독이 서둘러 낚싯대를 폈고, 박이 가지고 온 텐트를 강가 한쪽에
설치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여러 번 이곳에 왔지만 낚시를 한 일이 없었다. 그건 처음에
낚시터를 따라오자마자 김이 가르쳐준 대로 지렁이를 꿰면서부터였다. 낚시의 뾰족한 바늘이
지렁이의 몸을 관통했을 때 지렁이는 온몸을 동그르르 말았다. 내 손끝으로 딱딱한 긴장감이
분명학 전달되어왔다. 지렁이 자신은 아마도 그게 저항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지
렁이가 불쌍하다든가, 그건 잔인하다, 그런 생각 때문에가 아니라 나는 그냥 지렁이의 그런
본능적인 저항들, 결과적으로는 소용도 없는, 그래서 결국은 무모한 본능적인 저항을 아무렇
지도 않다는 듯 묵살해버리는 그 행위가 싫었을 뿐이었다.
---- 그러면 대체 뭐하러 따라오는 거예요?
언제나 낚시터에서 한켠에 앉아만 있는 나를 보고 한번은 김감독이 물었지만 나는 그저,
라고 대답했다. 그 후로 언제나 나는 낚시터에 오면 한켠에 앉아서 맥주를 홀짝이며 그들이
낚시하는 것을 구경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낚시를 갈 때마다 나를 불러내곤 했다. 한켠
에 가만히 앉아만 있는 내 모습이 이제는 그들에게도 그냥 익숙한 모양이었다. 나 역시 끼여
들지 못하고 그저 한켠에 앉아 있는 것에는 익숙했다. 예를 들어, 여자 친구들과 동창회에서
만날 때 남편에 대한 이야기, 시댁 이야기, 그리고 아이 이야기를 하며 깔갈거리다가 가끔
그들이 나를 바라보았을 때, 그들의 눈빛에는 그러니까 이혼한 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도
실례가 안 되겠지하는 배려가 담겨 있었지만, 언제나 그럴 때마다 나는 굳어지기 시작했었
다. 아무 생각 없이 같이 웃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갑자기 웃는 내 얼굴이 서걱거리는 듯한
느낌들‥‥‥ 그럴 때 나는 그들이 그어놓은 금 밖에 있는 사람이었다. 금 밖에 밀려난 사람
은 그러니 입을 다물고 한켠에서 조심스레 웃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가끔 깊은 밤, 내게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
---- 미치겠어, 정말 이혼하고 싶어‥‥‥ 글쎄 우리 영미 아빠가 말이야‥‥‥
글을 쓰다가도, 라디오를 들으며 혼자 차를 마시다가도 그들의 전화를 받으면 나는 그들의
결혼생활 속으로 끼여들었다. 함께 웃고 울고 그리고 이야기해주고‥‥‥ 그럴 때 분명 나는
그들의 금 안에 있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나면 나는 다시 금 밖으로 밀려나왔다. 내가 금
밖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내게 전화를 건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같이 금 안에 있
는 친구들, 예를 들어 행복한 결혼생활을 자랑하는 친구에게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지는 않았
었다. 아마도 내게는 하지 않는 즐거운 이야기들을 서로 나눌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
고 보니 어린시절 동네에 비행기 모양의 놀이기구를 리어커에 싣고 오던 아저씨가 생각이 났
다. 우리들은 그가 나타나면 일제히 엄마에게 달려가 어렵게 십원씩 타내가지고는 그 놀이
기구를 타러 몰려갔다. 하지만 잠시 후, 그는 나를 번쩍 들어 놀이기구 밖에 내려놓았다.
---- 안되겠구나 얘야, 너 또 저번처럼 멀미할라.
더 타고 싶다고 떼를 쓰는 때도 있었지만, 나는 대개는 순순히 포히곤 했다. 실제로 멀미
가 입안 가득히 몰려나와 있던 때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리어카의 금
밖에서 아이들이 비행기 모양의 그 놀이기구를 타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걸 구경했다. 순미는
무서운 듯이 입을 꼭 다물고 있고, 숙자는 입을 헤벌린 채로 좋아서 죽을 지경이고
‥‥‥ 경식이는 부우우웅, 정말 비행기처럼 소리를 지리고 있고‥‥‥ 금 밖에 서서, 하
지만 금 언저리를 아주 떠나지도 못하고 우두커니 서서 친구들이 탄 비행기에 파란 페인트가
조금 벗겨진 것을 보는 일, 모형비행기 하나하나마다 씌어 있는 필리핀이라든가 월남이라든
가 태국이라든가, 우리가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의 지명을 읽는 일. 만일 내가 멀미를 하
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그 안에 들어가서 모형비행기가 오르내릴 때의 짜릿한 재미만을 기억
해냈을 것이었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는 그런 것 대신, 나를 빼놓고 모형비행기를 타던 친
구들의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 풍경과 그들의 표정, 지켜보고 있던 내 모습까지
말이다. 그래서 그 시절을 회상하면 나는 언제나 그들과 함께 비행기를 타보기라도 한 듯이
즐겁기도 한 것이다. 한번은 순미처럼 무서운 듯이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내 모습도 있고, 또
한번은 좋아서 죽을 지경인 숙자처럼 타보기도 하고‥‥‥ 나는 어쩌면 그때부터 소설을 쓰
고 싶어했던 것은 아닐까. 영원히 술래가 된 것처럼 금밖을 서성이면서 그들이 그것을 타는
모습을 지켜보기‥‥‥ 그리고 그들처럼 해보는
것을 상상하기‥‥‥그래서 밖에 서 있는 자
의 쓸쓸함과 안에 있는 자들의 복닥거림을 엮어내보기‥‥‥ 그런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바로 소설 쓰기가 아니었을까?
"‥‥‥소설 한 권 읽고 이렇게 저 자신이 아픈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는다는 것이 바보같
은 일이겠지요. ‥‥‥ 남편은 학교 선배였습니다. 제가 일학년 때 이미 시위 주동을 해서
제적을 당했습니다. 사랑은 아마 제가 그의 약혼자로 등록을 하고 옥바라지를 하면서부터였
나 봅니다. 그는 그 시절 젊은이들이라면 누구나 그랬듯이 석방되고 나자 노동현장으로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사실을 이야기하자면 저는 그가 자랑스러웠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내 자
신이 하고 싶었던 노동운동을 그에게 미루어놓고 대신 그가 노동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동물 외판원에서부터 서점 점원까지 안해본 일이 없었습니
다. 그가 해고당한 후에는 그가 다니던 공장 앞에 분식집을 차려서 회사 근처에 갈 수 없는
그 대신 제가 노동자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년 전 어느날 그는 느닷없이 큰 회사
에 취직을 해버린 것니다. 이제 우리는 신도시에 분양받은 28평짜리 아파트에 삽니다. 아침
이면 그는 넥타이를 매고 출근을 합니다. 처음에 저를 만났을 때 그는 말했습니다. 옳다고
믿는 걸 버리는 건 죄악이야‥‥‥ 취직을 하면서 그는 말했습니다. 좀더 장기적으로 봐야
해‥‥‥ 그런데 요즘 그는 말합니다. 올 여름엔 동남아로 한번 떠나보는 게 어떨까‥‥‥
가끔 출근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의 뒷덜미를 낚아채고는 발악하듯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물어내, 내 세월, 죽은 우리 애 물어내‥‥‥ 내가 가졌던 꿈 물어내! ‥
‥‥하지만 저는 정녕 그를 미워해야 합니까‥‥‥날마다 같은 일상이 반복됩니다. 아침에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나면, 설거지하고 집안 치우고‥‥‥ 하지만 저
는 가끔씩 중얼거려봅니다. 사랑이라든가, 행복이라든가, 그도 아니면 희망 같은‥‥‥ 이제
는 제게서 너무나 멀어져버린 그런 단어들‥‥‥ 나이을 먹는다는 것은 그런 것들을 버려가
는 과정일까요. 하지만 당신의 책은 내게, 내가 그런 사실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는 바로 그
런 걸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조금씩 소설 공부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저도 소설가가
될 수 있을까요. ‥‥‥가슴속에서 버둥거리는 할말이너무 많습니다."
가끔씩 집이나 출판사로 배달되는 편지에 사람들은 그런 글귀를 보내오곤 했다. 한번도 본
일이 없는 그녀들이 왜 이런 글을 내게 써 보냈을까, 하고 나도 그녀들처럼 생각했다. 그녀
들 입에서뿐만 아니라 내 입에서조차 그런 말들은 사라진 지 오래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들
은 말한다. 당신의 글은 내가 그런 사실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는 바로 그런 걸 깨닫게 해주
었습니다, 하고.
일전에 소설을 쓴다는 후배가 작품을 가지고 나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작품에 대해 좀 이
야기를 하고 나서 매가 물었다.
---- 방속국 구성작가 일을 하면 생활을 넉넉할 텐데 뭐하러 소설 쓰려고 이 고생이니?
그녀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 선배님은 잡문 써서 돈 잘 버는 사람이 그럼 부러우세요?
그녀는 조금의 의심도 갖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그 글이 잡문이라면, 그렇다면 소설은 본
문이라는 말일까‥‥‥웃음이 나왔지만 바라보는 후배의 얼굴 그냥 입을 다물고 말았다.
해가 절벽의 끝에 손톱처럼 걸려 있었다.
"특별히 예민한 찌니까 대어 한마리 낚겠네요. 매운탕 준비나 좀 해주세요."
김감독이 긴 찌에 케미라이트를 끼우며 말했다.
이제 어둘이 내리면 그는 저 녹색으로 빛나는 케미라이트 찌에 온 신경을 모으고 앉아 있
어야 할 것이다. 밤이 내리는 저 물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아마 저 케미라이트 찌만
이 그에게 전해 줄 것이니까 말이다. 붕어가 살금살금 다가와 일밀리미터쯤 미끼를 건드린다
해도 예민한 찌는 춤을 춘다. 그걸 보면 사람들은 알아차린다. 붕어가 조금씩 건드리고 있구
나‥‥‥ 붕어가 일밀리미터를 건드리는 진실과 그것이 일밀리미터를 우직임이라는 진실을
알아차리는 그 사이에는 그 움직임의 열 배 스무 배로 춤을 추어야 하는 찌가 있다. 무엇이
변했을까, 사람들은 어떻게 삶을 바꾸었을까. 십년 사이‥‥‥ 아주 적은 일들이 일어났을
뿐이다. 자가용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늘어서 길이 더 막히게 되었고, 신문의 일면 기사의
주자게 바뀌게 되었고, 가끔은 노래방에 가고, 자주는 술집에 가서 좀 덜 정치적인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십년이 지난 지금에 나는 춤을 추는 사람들
을 만나고 있다. 열 배, 스무 배 비틀거리다가 시궁창에 빠져서는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부
터 정말 시작이 아닐까, 하고, 그러면 나는 붇고 싶어지는 것이다, 뭘? 대체 뭘?
어둠이 내리면서 발밑에서 찰싹이던 물결 소리도 잦아들었다. 사방이 고요해지기 시작했고
동쪽 하늘은 희미한 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나는 어둠이 내리면 내릴수록 더 환해져오는
케미라이트 찌를 바라보며 여전히 한켠에앉아 있었다. 검은 강물 위에 케미라이트 찌가 별처
럼 뿌려져 있었다.
"보름달인가."
김감독이 중얼거렸다.
첫째날 밤 9시 45분
보름달이었다. 비탈마다 저희들끼리 모여 한줌씩 피어 있는 개망초꽃들이 환하게 보이는
아름다운 밤이었다. 하지만 박과 김은, 둘다 거의 입질조차 받지 못하고 있었다. 원래 달이
밝으면 고기가 잘 잡히지 않은 상식을 주워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좀 심한 것 같았다.
"참 찌가 말뚝이네, 말뚝."
김감독이 발밑에 담배를 비벼끄며 말했다. 나는 담배를 하나 물고 수면위를 바라보았다.
달빛이 호수 위에서 잘게 부서지고 있었다. 사방이 환해서 나와 떨어져 앉은 박이 고개를 좀
치켜들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까지도 잘 보였다.
김감독은 부지런히 떡밥을 갈아끼우고 또 끼우고 있었다. 언젠가 우리를 처음 낚시를 데리
고 가서 그를 말했었다.
---- 말하자면 낚시는 기다림입니다. 기다리면 고기는 와요.
내가 보기에도 그는 기다림에 능숙한 사람이었다. 내가 각색을 해준 일이 있는 90분짜리
영화를 무려 2년 동안 찍어댔던 사람이었다. 크랭크 인만 해놓고 제작자가 갑자기 돈이 없다
고 해서 일년, 그 다음엔 주가가 오른 주연 여배우가 개런티가 적은데다가 대학을 못 다닌
자신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영화라고 연속 펑크를 내는 바람에 일년‥‥‥ 그래서 내가 써준
시나리오의 반도 못 찍은 그 영화를, 주가가 오른 주연 여배우의 명성만 믿고 제작자가 개봉
해버렸다. 그때 극장 앞에서 그는 몹시 충혈된 눈으로 사람들과 악수를 하고 있었다.
그 시간 이후로 삼년이 지났건만 그는 여전히 시나리오를 들고 고치고 또 영화사를 기웃거
리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관객 동원이 적었던 영화를 찍은 감독을 다시 채용해줄 제작자를
만나기는 어려웠다. 영화판에 잠시 머물러보았던 나는 그가 무슨 말을 들었을지 짐작이 갔
다.
---- 예술? 그거 좋지‥‥‥ 그렇다고 지금 이판에서 설마 예술하자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물론 그가 삼년 동안의 공백을 가지게 된 데에는 내 탓도 좀 있었다. 내 소설을 영화화해
보겠다고 그는 나를 어떤 영화사 사장 앞에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 사장이 말했다.
----- 물론, 저번에 우리가 영화화했던 그 유명 교수의 밤의 여관은 다르죠. 막말루다가,
문장도 안되는 소설이잖아요, 저도 대학물 먹은 놈인데 그거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그건 유
명해요‥‥‥ 간판 좌악 붙여놓으면 지나가던 리어카꾼도 알아본다 이겁니다. 물론 선생님
작품이 문학성, 뭐 그런거야 있겠지요. 하지만 작품료가 그 작품의 반밖에 안되는 건 이해하
셔야 돼요.
그가 문학성, 뭐 그런 거야 하고 말했을 때 나는 일어나서 그 자리를 뛰쳐나오고 싶었다.
당신 작품이 별로 훌륭한 것이 못 된다고 말했으면 뛰쳐나오고 싶다는 충동까지는 느끼지 않
았을 것이다. 김감독이 연신 담배만 피우면서 초조하게 나를 바라보다가 힘없이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나는 그냥 그 자리에 앉아서 사장의 말을 다 들었다.
---- 방송국에선 더해요. 이번에 선생님 또래 작가 것은 아마 한 권에 백오십 받았다죠?
그게 근수로 달아서 판 거지 뭡니까. 우린 적어도 그렇게는 안합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
운 채로 나는 생각했다. 뭐하러 쓰나, 뭐하
러 고치나, 경기라도 들린 것처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또 고치고, 또 지우고 다시 써보
고‥‥‥ 혼자 수유리까지 와서 이 짓을 하고 있나‥‥‥ 그렇게 쓴 걸 들고 가서 돈 몇푼
---- 물론 내게는 몇푼이 아니었지만---- 더 받아보자고, 그래서 잡지에 연속 펑크를 내는
바람에 밀린 적금도 붓고 빚도 갚아보자고, 정말 그러려고 문학성, 뭐 그런 거야‥‥‥ 그런
소리를 듣고 와야 하나? 그런 소리를 듣고도 내 또래의 작가는 자신의 책을 팔았나?
그도 나처럼 생각했겠지. 집으로 돌아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어쩌면 울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 문제는 리얼리즘이 아니라, 돈이 되었나, 그런가‥‥‥
물론 작품료가 결정되기도 전에 그 사장은 거대한 액수를 주고 들여온 외화의 흥행 실패로
부도를 내버렸으므로 일은 거기서 끝났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기다린다. 그는 쓰고 또 고친
다. 그리고 가끔 밤늦게 우리 집에 전화를 거는 것이다.
---- 여기가 어디냐구요? 글쎄 여기는 도대체 어딜까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는 것도
있습니다. 뭐냐구요?‥‥‥ 하하, 한마디로 쫓겨났다 이겁니다. 마누라가 애들 피아노 가르
쳐서 번 생활비만 축내는데 뭐 잘났다고 큰소리 치겠습니까. 보십시오 작가 양반, 저 그냥
벗기는 영화 할랍니다‥‥‥ 그도 아니면 유치한 사랑 이야기라도 찍을랍니다‥‥‥
아니죠, 요즘은 섹스 코미디가 유행이랍니다. 그거 할랍니다. 두고 보세요, 전 합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그런 작품을 찍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떡밥을 갈고 있는 것이다.
그는 너무 환해서 고기가 잡히지 않는 이 보름밤에 월척이라도 기다리는 것인지 모른다.
그때 갑자기 먼 산쪽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온 산이 찌렁찌렁 울렸다. 술에 적당히 취한 얼
굴로 노래를 흥얼거리던 박과 떡밥을 갈고 있던 김과 그리고 내가 일제히 시선을 하늘에 던
졌다.
조명탄이었다. 마치 축포라도 터뜨리는 것처럼 하늘이 환해졌고 불빛들이 부서져서 천천히
흩어져내리고 있었다. 우리가 지나쳐왔던 가까운 군부대에서 포격훈련을 하는 모양이었다.
다시 조명탄이 터졌다. 그리고 포성. 산은, 포성이 한번 울릴 때마다 포성보다 오래 울었고,
산의 울음소리는 절벽이 이어진 강 언저리를 따라 길게 흘러갔다. 김이 낚싯대를늘어뜨린채
허탈한 얼굴로 울고 있는 산과, 울음소리에 뒤척이는 긴 절벽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어 혹시 전쟁이 난 건 아닐까요?"
박이, 자신을 바보 취급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어투로 천천히, 그러나 상당히 실제적
인 두려움이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김이 피식하고 웃었다.
"보기보다 겁이 많으시군요. 훈련이에요. 군대 있을 때 가끔 밤에 포격훈련 해봐서 알지
요."
그래도 박은 안심이 되지 않는 눈치였다.
"그렇다면 혹시 잘못해서 이리로 포탄이 날아오는 건 아닐까요?‥‥‥ 재수가 없으면 ‥‥
‥ 혹시라도."
김이 하하, 웃다가 다시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죠. 재수가 없으면 무슨 일은 못 당하겠습니까. 그러니와서 소주나 한잔 합
시다."
우리들은 아예 낚시를 포기하고 둘러앉아 깡통째 데운 참치 안주에 소주를 마셨다. 말하자
면 그들 모두 나처럼 한켠으로 밀려난 것이었다. 지글거리며 끓는 참치 깡통을 우리 앞으로
밀어주며 김이 소주를 따랐다.
"그런데 김감독님, 영화 왜 안 들어가세요?"
박이 물었다. 김은 소주를 박에게 건네며 피식 웃었다.
"왜냐구요‥‥‥글쎄‥‥‥얼마 전에 어떤 영화학교에서 나보고 강연을 좀 해달라고 하더
군요. 가서 이야기를 하고 나오는데‥‥‥ 참 그랬어요. 난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영
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는 이야기를 해 주었거든요. 다들 참 열심히 들읍디다. 하지만
강의를 마치고 난 다음에 나는 내가 결정적으로 글러먹었다는 걸 알았어요. 막발로 요번에
깐느에서 그랑프리를 탄 작품을 그대로 베껴서 충무로에 나가보세요. 제작자들은 아마 말할
거예요. 어디서 이렇게 돈도 안되는 시나리오를 들고 왔다‥‥‥"
제 말이 우스웠는지 그는 혼자서 웃었다. 우리들은 웃지 않았다. 그는 담배를 물며 아직도
포성이 울리는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차라리 그림을 그렸더라면 좋았을 뻔했어요. 그러면 아무도 사주지 않아도 혹시 내게 재
능만 있다면 자식새끼들은 먹고 살 거 아닙니까. 제작자가 자금을 대주지 않는 한 내 머릿속
에 세계를 감동시킬 만한 영화가 한편 들어 있다해도 내가 죽으면 그걸로 끝입니다. 아니죠,
죽기 전에 이미 끝이죠. 그런데 박형은 왜 음반 안 내세요?"
화살이 제게로 돌아오자 박은 좀 당황하는 듯하더니 갑자기 큰 소리로 웃었다.
"할 거예요. 인기가수들 녹음 때문에 스케줄이 자꾸 뒤로 밀려요‥‥‥ 곧 하게 되겠죠‥
‥‥ 그런데 글쓰는 사람들은 좋겠어요, 종이하고 연필만 있으면 되니까 말이죠. 게다가 출
판사 사장들은 그래도 트였잖아요? 그런데 왜 요즘은 소설 발표 안하세요?"
마치 돌아가면서 소견 발표라도 하는 시간처럼 그들이 내게 물었다. 나는 포성보다 길게
우는 산을 바라보면서 잠시 머뭇거렸다. 왜냐하면요, 왜냐하면...... 나는 할말이 없었다.
출판사 사장이 장사 안되는 작품이라고 딴지를 거는 것도 아니고, 유명작가들 때문에 내
소설이 안 실리는 것도 아닌 데 왜‥‥‥ 나는 갑자기 그들에게 미안해졌다. 박의 말대로 자
본주의 사회에서 소설은 가장 원가가 싸게 먹히는 예술일 수도 있었다. 역으로 자본가들을
향해 마음놓고 비판을 해댈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문득 아까 우리가 차를 타고 오
던길에 본 그 무거운 트럭을 생각했다. 낑낑거리며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는 트럭‥‥‥ 우리
차가 가볍게 그 곁을 스치는 동안 트럭은 겨우겨우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무거워서 정말 미안하다는 듯 오른쪽으로 비켜서서 조심조심 앞으로, 아니 앞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뒤로 밀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던 그 트럭...... 짐을 너무 많이 실
은 탓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적재정량보다 너무 많이 욕심을 부렸는지도 모른다고, 아니
다.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농담으로 대처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우린 소쩍새들이거든요‥‥‥"
잘은 모르겠찌만 들은 일이 있다는 얼굴로 박이 하하, 웃었고 김이 어리둥절한 표정이 지
었다. 그런데 나로 말하면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돌연한 감정이었다. 웃던 박이 입술을
천천히 다물었다.
"죄송합니다."
나는 천천히 말하고 일어나 먼저 텐테로 들어왔다. 대체 왜 이러는 건지 나도 알수 없었
다. 침낭에 얼굴을 묻자 내 목구멍에서 자음과 모음으로 표현할 수 없는 꺼억꺽 소리가 밀려
나왔다. 일제의 감옥에서 죽었던 어떤 시인의 말대로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정말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그 시인은 말했다.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펄럭이며 텐트자락을 훤하게 밝히며 밖에서는
연신 조명탄이 터졌고 그리고 포성이 들렸다. 그리고 나면 포성소리보다 오래오래 산도 따라
울었다.
둘째날 새벽 5시 2분
우리들은 쫓기고 있었던 것 같다. 도서관 앞을 달려가는데 같이 도망치던 친구가 바람처럼
뒤로 끌려나갔다. 돌아보니 그는 검은 옷을 입은 다섯명에게 둘러싸여 입을 틀어막히고 있었
다. 모퉁이를 돌고 세워놓고 자동차가 보였다, 요란한 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자동차를 향해 뛰었다.
---- 어서 타!
시궁창에 빠져서 군화를 신은 사람들에게 등을 짓눌린 채로 시인이 외쳤다. 내가 올라타자
차는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전혀 운전을 할 줄 몰랐다. 그런데 차는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다시 모퉁이를 돌자 가파르고 높은 계단이 나왔다. 나는 사십오도나 되는 각도의
오르막 계단으로 차를 몰아붙였다. 차는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운전을 할 줄 모르는데, 아
아 어쩌자고 이 가파른 길을, 길도 아닌 계단을.‥‥‥ 어디로 가야 하죠? 어디로? 내가 묻
자 오년 동안 같은 글을 고치고 있는 소설가가 다시 대답했다.
---- 표지판을 좀 보렴‥‥‥
나는 표지판을 보고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핸들을 꺾었다. 나는 운전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차는 달리고 있었다. 이번엔 거의 구십도의 경사였다. 나는 죽을 힘을 다해 액
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차는 그저 떨어지지 않은 채 제자리 걸음이었다. 하지만 언제 떨어져
내릴지 모르는 일이었다. 떨어져서 시궁창에 처박히게 될지모른다. 나는 죽음보다 그 시궁창
이 더 무서웠다. 그 떨어지는 맹렬함, 이것이 추락이구나 생각하면서 떨어져내려야 하는 그
순간을 인정해야 하는 그것이 두려웠다. 기를 쓰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대면서 문득 여기가
어딜까 나는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맙소사, 나는 표지판 위로 차를 몰아왔던 것이다. 길이 아니라, 길을 표시해놓은 표지판
그 위로‥‥‥
깨어보니 텐트 밖이 푸르스름했다. 악몽을 꾼 모양이었다. 또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
었다. 가끔씩 연달아서 나는 이런 종류의 악몽을 꾸곤했다. 어떤 날은 악몽을 꿀까봐 무서워
서 잠자리에 들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꿈 자체가 무서운 게 아니라 그 반복이 두려웠다. 갑
자기 나는 낯선나라에 서 있고 사람들은 내가 알 수 없는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을 때, 여보
세요 여기가 어디죠, 전 어디로 가야 하나요, 난 여기로 오겠다고 한번도 생각해본 일도 없
어요‥‥‥ 전혀 통하지 않는 언어로 혼자 중얼거리는 꿈, 운전을 하지도 못하는 내가 가파
른 절벽길로 차를 몰고 가는 꿈‥‥‥길은 멀고 가파르고 험한 꿈, 그중에서도 특히 많이 반
복되는 것은 운전에 고나한 꿈이었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다만 떨어져 내리지 않으려고 죽
을 힘을 다해 올라가는 꿈‥‥‥ 하지만 오늘의 것은 그중 최악이었다. 표지판으로 차를 몰
고 가다니‥‥‥물론 현실의 나는 운전을 할 줄 알았다. 차를 몰고 고속도로로 나가본 경험
도 있다. 그런데 꿈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나는 전혀 운전을 할 줄 모른다‥‥‥.전혀‥‥
‥
옆자리에서 박이 코를 골고 있었다. 연 이틀째 술을 마신 탓이었는지 속이 몹시 쓰렸다.
위장이 수세미가 된 채로 푸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시계를 들여다보며 텐트 밖으로
나왔다.
사방에서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풍경은 하얀 안개의 망사 속에서 아주 포근해 보였
다. 강은 쉴새없이 안개를 피워올리고, 나는 나른한 그 안개에 싸여 있었다. 그렇다면 밤의
포성은, 주책처럼 울어버린 내 모습은 모두 꿈이었을까‥‥‥
안개가 덮인 새벽의 고요 속에서 작게 파문 이는 물결소리가 들렸다. 김은 낚싯대를 던지
고 나서 나를 보더니 손짓을 해댔다. 엔간한 사람이군, 생각하며 가까이 다가가자 그는 구수
한 냄새가 나는 커피잔을 내게 내밀었다.
"안 주무셨어요?"
내가 커피를 위장약과 함께 삼키고 나서 물었다. 그는 찌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씨익
웃었따.
"꿈을 꾸다가 금방 깼어요."
"꿈이요?"
내가 묻자 그는 낚싯대를 낚아챘다. 초릿대 끝이 휘이익 소리가 나도록 휘어지고 있었다.
큰놈인 것 같았다.
"거 보세요, 기다리면 고기는 온다고 했잖아요. 뜰채를!"
나는 엉거주춤 뜰채를 집어들었다. 그는 용을 쓰고 있었다. 힘을 쓰며 낚싯대를 세우고 수
면을 응시하는 그의 얼굴은 아주 비장해 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마치 물속에 숨어 있다가
튀어오르는 작은 새처럼 안개 어린수면에서 찌가 튕겨져나왔다. 뜰채를 들고 있던 나를 향해
김이 낭패한 얼굴을 지어 보였다.
"수초에 걸렸어요...... 큰놈이었는데......"
그는 낚싯대 끝에 달려나온 검푸른 수초더미를 떼어내며 허탈하게 말했다. 낚시바늘까지
부러뜨리고 고기는 도망을 간 모양이었다. 허탈한 표정이었지만 김은 찬찬히 부러진 바늘을
떼어내고 새로운 바늘로 채비를 바꾸며 말했다.
"꿈에 말예요, 갑자기 깡패들이 달려오더니 수배자를 내놓으라는 거예요. 무조건 도망쳤
죠. 가다보니까 또 깡패들‥‥‥ 밤새 도망치는 꿈이었죠. 원래 꿈을 잘 안 꾸는 편인데‥‥
‥ 난 수배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도 못한 사람인데‥‥‥참 이상도 하지."
이상한 일이라는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또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안개를 뒤흔
드는 것 같은 비명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처음엔 그것의 발신지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으
나 곧 그것이 우리의 텐트 안에서 박이 지르는 소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김이 갈아끼우고
있던 바늘을 팽개치고 텐트로 달려갔다. 나 역시 일어나 텐트로 갔다.
"무슨 꿈을 그리 요란하게 꿔요?"
가까이 다가가자 텐트 안으로 들어간 김의 소리가 들리고 중얼거리는 박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역시 그쪽도 그저 꿈이었는 모양이었다.
"이상한 일이네요‥‥‥귀국한 이래 처음이에요. 미국 간 초기에는 가끔 그러기도 했는데
‥‥‥"
"나와서 커피 한잔 해요. 이게 다 고기가 안 잡히는 탓이야‥‥‥"
김과 박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박의 얼굴은 몹시 해쓱해 보였다. 서둘러 내가 버너에 불
을 피우고 커피를 끓여 내밀자 박이 그것을 받아들고 이마의 땀을 닦았다.
"동갑인 고종사촌이 그때 죽었거든요. 난 그저 소식만 들었댔는데‥‥‥왜 그 장면이 마치
영화처럼‥‥‥"
박은 눈을 깜빡거리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꿈‥‥‥미국에 가서 그는 다른 꿈을 꾸었다고
했다. 지리상의 거리가 멀
어지면 꿈조차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그는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돌아왔다. 돌아와서 인기가수에게 녹음 순서를 자꾸 밀리면서 한달째 피아노엔 손도 못
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고작 따라온 낚시터에서 포탄소리 때문에 낚시를 망치고, 그리
고 십몇년 전에 잊었다고 생각한 일을 악몽 속에서 다시 만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정말
이상했다. 꿈을 잘 안 꾸는 김이 꾼 꿈과 십몇년 전의 일을 다시 만나는 박과 최악의 악몽을
꾼 나‥‥‥
"가만, 혹시‥‥‥ 포탄소리 때문은 아닐까요?"
김이 낚시바늘을 바꿔끼우는 것도 잊어버리고 말했다.
"포탄소리가 왜요? 두 분도 같은 꿈을 꾸셨나요?"
박의 질문을 들은 김이 정말?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을 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
덕였다. 갑자기 싸늘한 새벽 냉기가 내 옷속으로 파고드는 것만 같아서 나는 단추도 없는 앞
자락을 자꾸만 여몄다.
"정말 이상한 일이군요."
박이 다시 가벽게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
셋째날 새벽 3시 00분
자다가 나는 깨어났다. 악몽은 꾸지 않았다. 집앞 골목의 방법등 불빛때문에 방안의 윤곽
이 잘 드러나 보였다. 화장품이 어지러이 놓여 있는 화장대, 달력 그리고 벽에 걸린 일정표
‥‥‥ 마감일이라고 쓴 날짜에는 붉은 싸인펜으로 X표가 그러져 있었다. 나는 주섬주섬 일
어나 책상 앞으로 갔다. 아직도 위이이잉 소리를 내며 컴퓨터가 돌아가고 있었다. 어젯밤에
낚시터에서 돌아와 글을 쓰려고 낑낑대다가 그냥 잠들어버린 일이 떠올랐다. 그런데 왜 컴퓨
터를 꺼놓지 않았을까‥‥‥ 마감일은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쓰려고 한단 말일까? 무슨 글을
더 쥐어짤 거라고 생각했길래 나는 이것을 꺼놓지도 않았단 말인지, 그렇다면 컴퓨터는 내가
잠이 든 동안에도 계속 모터를 돌려가면서 커서를 깜박거리고 있었단 말일까?
책상 위에는 편지가 놓여 있었다. 이번에는 인천이 발신지로 되어 있는 편지‥‥‥
나는 그것을 집어들었다.
"저는 한 대학에서 총여학생회장직을 맡고 있는 여학생입니다. 선생님 글을 읽고 나서 다
시 한번 대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오래 생각했습니다. 가끔 선생님 또래의 선배님
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차라리 그때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학자의 말대로 그때는 그런 시절은 아니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밤 세시, 제 방 창밖으로 아
직도 별은 빛나지만‥‥‥ 별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멀고 희미하게 반짝이
고 있을 뿐. 이제 저는 제가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이 혼돈입니다.
추신. 지금 곰곰 생각해보니 저는 이제 겨우 스물두살입니다."
나는 편지를 책상서랍에 집어넣었다.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밤 세시‥‥‥ 무섯이 이 밤에
독자들로 하여금 소설이야말로 잡문이 아니라고 그토록 결연히 선언하게 하는 것인지, 대체
무슨 허깨비가 노동소설을 쓰던 그 소설가로 하여금 오년째 같은 소설을 고치고 또 고치게
하는지, 시궁창에서라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속삭이게 하는지 나느 알수 없었다. 더구나
잠에서 깨어난 나를, 마치 너무나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하고 깜빡 잠이 들었던 사람처럼 허둥
지둥 일어나게 해서 컴퓨터 앞으로 밀어붙이는 것일까‥‥‥ 이 밤, 이 캄캄한 밤 세시.
나는 다시 컴퓨터를 마주보았다. 길쭉하고 네모난 커서는 연신 깜박이면서 내게 말하는 듯
했다. 길을 찾아봐, 찾을 수 있다, 없다, 있다, 없다, 있다없다있다‥‥‥
나는 의자를 돌려 깜박이는 커서를 외면하고 읽다 만 책을 집어들었다. 때로 글쓰기가 힘
겨울 때 글읽기처럼 쉬운 도피는 없었다. 몇달 전에 사놓고 반쯤 읽은 책은 그런대로 편안했
다. 하지만 구호야말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세대들이 있다는 글귀가 불현듯 눈에 들어왔다.
"문학주의와 운동주의에서 갈등하느라고 그나마 여유가 있었던 유신세대도 아닌, 살육과 절
망의 광주세대"의 이야기를, 4.19세대인 평론가는 6.25세대이자 월남세대인 한 노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간결하게 적고 있었다.
---- 살육과 절망뿐인 세대거든요. ‥‥‥광주세대에겐 문학이란 무조건 타기해야 될 것이
지요.
나는 급하게 책을 덮었다. 정말 살육과 절망만이 가득찬 글을 읽고 난 뒤처럼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언젠가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말한 적이 있었다.
---- 예, 저는 81학번입니다. 우리가 입학했을 때 이미 광주는 끝나 있었지만 우리는 한번
도 광주를 끝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저희는 광주세대라고나 할까요. ‥‥
‥지난 십년, 우리에게는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더랬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그만 80년대
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나는 그때 아마 감히, 생글거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자 한 소녀가 울었다.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통일의 꽃이라 불리는 그녀는 내가, 그녀의 오빠이자 나의 동기여씁며 군대에
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한 청년의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울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를 우러러
보던 다른 후배들이 갑작스러운 그녀의 울음에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그녀는 말했다.
---- 감옥에서 나와보니 아무도 오빠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난 다들 오빠를‥‥‥ 이제는
고만 잊은 줄만 알았는데‥‥‥
나에게 있어서 그녀는 눈물을 떨구던 그 순간에 피어나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이제는 아
무도 기억해주지 않으려는 오빠를, 오빠의 죽음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더욱 꽃인지
도 몰랐다. 눈물을 떨구고 피어나는 꽃‥‥‥ 언젠가 그녀도 잊혀질지 모르지만, 잊혀져서
간결하게 정리될지도 모르지만, 잊혀졌다고 해서 꽃이, 꽃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꽃잎이 지
고 나서도 뿌리와 줄기와 싱싱한 이파리가 남아 있는 한, 아니, 그 이파리마저지고 흰눈에
덮여 줄기의 형체조차 희미한 겨울날에도 우리가 장미를 장미라고 부르듯이 말이다.
멀리서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다시 컴퓨터를 마주
보았다. 몰랐던 것이 아니었다. 일전에 내게 편지를 보내온 한 주부의 말처럼 가슴속에는 쓰
고 싶은 것들이 버둥버둥거리고 있었지만 그것을 꿰어나갈 삶을 나는 찾지 못하고 있었다.
글이 아니라 내 삶이 엉망진창인 것이다. 내가 정말 화를 내고 잇었던 것은 내 글에 대해서
가 아니라 내 삶에 대해서였다. 그러니 우리는 정말 살육과 절망에 가득 차있던 세대들이었
는지 모른다. 그래서 구호를 예술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고작 한줌의 멸치 때문에 레
스토랑의 보이와 결사적인 싸움이나 벌이려고 하고, 죄없는 시인에게 버럭 소리를 질러댔던
것 생각해보면 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나의 꿈이 경고했던 것처럼 나는 길을 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길을 표시해놓은 표지판 위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던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니
이제 나는 표지판에서 내려와 길을 가기 시작해야 하는것인지도 모른다. 제작자 때문에 영화
를 찍지 못하는 감독도 아니고, 인기 가수 때문에 녹음이 밀리는 작곡가도 아닌, 소설가인
내가 말이다. 표지판위에 그림으로 그려놓은 매끄러운 표지가 아니라 진짜 길, 울퉁불퉁하고
가파르고 힘겨운 진짜 길을, 내가 걷기 전에 이미 그 길이 살육과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해도,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길이라면 길 아닌 곳으로 도망치지 말고, 타박타박이라도 걸
어서 넘어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진짜 길을 가는 사람에게 표지판은 더이상 악몽이 아니라
밤하늘에서 빛나는 별의 지도가 될 테니까 말이다.
나는 마치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의 걸음걸이처럼 조심스럽게 천천히 두손을 자판 위에 놓
고 두드려보았다. 어쩌면 며칠 수 또다시 자다가 벌떡 일어나 Delete라는 단추를 누를지도
모르겠지만, 누르기만 하면 머리가 모자라는 충실한 하인처럼 컴퓨터는 일초도 안 되어서 이
모든 걸 지워버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시작해보는 것이다. 내가 꾸는 그 악몽 같은
꿈들, 꿈에서 깨어나도 괴로운 90년대의 사람들, 그리하여 이제 90년대라는 금 밖에 서서 나
는 다시 들여다보는 것이다. 우리의 꿈조차 지배하면서 아직도 건재한, 추억보다 선명하게
남은 배경들, 헤쎄를 읽고 김동리도 읽고 바르뜨와 바슐라르도 읽었지만 구호가 바로 작품이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살육과 절망만이 가득한 그때, 그 배경에 서 있던 그들, 젊었던
그들, 젊었던, 그들에 대하여
‥‥‥ 정녕 그것은 그저 꿈을 꾸던 사람들에 대한 꿈일 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