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6:1-11>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의의 무기,사역자의 자세, 고린도교회 문제점
1. 말씀배경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와 함께 일년 육개월을 머물면서 개척한 교회입니다 (행 18:1-11)
바울이 떠난지 약 4년, 이 교회에 이런 저런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바울은 이를 바로잡기 위하여 고린도교회에 보낸 서신이 바로 고린도전.후서입니다.
오늘 말씀은 5장 말씀과 함께 그 내용을 큰 틀로 정리해보면, 고린도교회에는 바울의 사도됨을 부정하는 일부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에 대하여 바울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가진 자로서 (5:18절), 그리스도를 대신한 하나님의 사신된 자로서 (5:20), 사역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로서 (6:1),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6:4) 어떤 환경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사역을 했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그의 사역 모습을 살펴봄으로 우리들도 바울을 본 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역 중 교만해서도 안되고 또 힘이들 때 못하겠다고 넘어지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2. 오늘날 우리들도 바울과 같은 직분을 가지고 사역을 해야 합니다.
바울이 했던 사역들을 이제는 우리들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①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도입니다. 오늘날은 개신교에서는 그가 사도됨에 대하여 부정하는 자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개척한 고린도교회에서도 그의 사도됨을 부정하는 인간들이 일부 있었다는 것입니다.
12사도에 들지 않지 않는다. 사도라면 최소한 열두 사도들의 추천서라도 있어야 하지 않는냐? 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이 부분에 대해서 바울은 여러 차례 그들에게 변증을 해야 했습니다. .
[고린도전서 9: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사역의 가장 큰 방해꾼은 주로 내부에서 일어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데 가장 방해꾼은 이방인들이 아니라 유대인들 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조금 특별나게 사용하시면 꼭 개신교 내에서 이단이니 삼단이니 하면서 방해를 놓는 것이죠
앞으로 대산교회에서 많은 역사가 일어나면 분명히 그런 것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사탄의 전략입니다. 이단의 테두리를 씌워놓으면 스스로 힘을 잃게 되고 다른 사람들이 다가오지 못하니까요.
▶ 참고로 오늘날도 사도에 대한 논란이 많습니다.
보수적인 학자들은 사도가 되려면 최소한 열두 사도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은 속사도나 그의 제자들인 교부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사도의 직분을 그 시대의 사람으로 한정하는 것은 사탄의 전략입니다. 오늘날도 사도와 선지자의 직분 등이 있다고 봅니다.
예수님께서 파송한 열두 사도가 있는 것처럼 주님의 부활 후에는 동일한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파송한 사도들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이 대가 끊어져 복음이 중단되어서는 안됩니다.
성령으로 사도의 기름부으심을 받은 자가 있습니다. 선지자의 기름 부으심 받은 자가 있습니다. 오늘날 목사라는 직분으로 다 하고자 하면 안됩니다.
저는 엡 4:11-12절 말씀이 당시에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말씀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으로 봅니다. 왜, 말씀이 제한되어야 하나요?
[엡 4: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지금도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야 하고 성도를 온전하게 해야 하는 직분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② 그는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가진 자입니다.
죄로 인하여 사람들은 하나님과 원수된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죄인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바울이 가졌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화목하게 합니까?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십자가 보혈로 죄 사함 받게 하여 구원을 받음으로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화목하게 하는 직분입니다. 결국 화목은 구원인 것입니다.
화목하게 된 자가 5:17절에 “새로운 피조물”인 것입니다.
바울은 이 직분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 걸고 여기 저기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6:1절에 화목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화목하게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6:19)
③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된 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사람들을 화목하게 한 것처럼 이제는 바울이 그리스도를 대신한 “사신”이 되어서 그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신”은 “메신저“입니다.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자인 것입니다.
④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이며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바울의 사역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역이었습니다. 독불장군으로 일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시기에 따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사역을 했다는 것입니다.
복음 전하여 구원을 받게 하는 영적인 일을 혼자 무슨 수로 하겠습니까? 그렇게 해도 자기 수준의 열매가 있을 것입니다. 영적인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사역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보다 앞서 가시면 안됩니다. 내 뜻대로 해서도 안됩니다.
이제는 바울의 사역 자세를 보고자 합니다.
3. 바울의 사역 자세를 보면 정말 우리들이 배울 것이 많습니다.
① 바울은 사역을 하면서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이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했다고 했습니다 (3절)
사역자가 비방을 받으면 안됩니다. 누구에든지 무슨 일이든지 말입니다.
”거리끼다“ (프로스콥토)는 ”부딪치다. 걸려 넘어지다. 비틀거리다“의 뜻입니다.
사역을 통해서 누구에게나 부딪치거나 비틀거리게 하거나 걸려 넘어지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주의 종의 부도덕함을 통해서 걸려 넘어지게 해서는 안됩니다. 저도 한때 따랐던 주의 종이 정직하지 못함을 보고 더 이상 내가 그를 따를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곳을 나온 적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믿음이 약한 자는 교회를 완전히 떠나고 마는 것입니다.
② 환란과 고난이 다가와도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4-6)
그는 많이 견디는 것과 환란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사역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성령의 감화와 거짓없는 사랑을 베풀었다고 했습니다.
깨끗함은 도덕적 순결입니다.
지식은 많이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역자는 공부도 좀 해야 합니다.
오래 참음은 사역자의 기본입니다. 순간을 참지 못하고 뒤집어 엎으면 안됩니다.
자비로운 마음도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친절함과 따뜻함입니다. 인간이 너무 매정하면 안됩니다.
특별히 성령의 감화가 있어야 합니다. 영의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뜻도 분별할 수 있습니다.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영적 소경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짓없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정말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역을 해야 합니다. 가식된 사랑은 안됩니다.
▶ 무엇보다도 바울은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의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사역을 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사역자의 두 날개로 봅니다.
한국교회에서 적용하고 있는 두 날개 사역은 대그룹 예배 공동체와 소그룹 예배 공동체를 통해서 사역하는 것을 말합니다 (풍성한 교회)
저는 교회가 그런 두 날개 사역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저는 사역자 개인적으로는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의 두 날개를 달아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두 날개가 사역자에게 달려 있지 않으면 건강한 모습의 교회를 이룰 수 없습니다.
날개가 하나 없으면 어떻게 날겠습니까?
말씀만 있어도 무미건조합니다. 능력만 있어도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습니다.
이단의 교주가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말씀과 능력 두 날개 모두를 가져야 합니다.
이 두 날개를 오늘 말씀에는 ”의의 무기“라고 했습니다.
불의와 싸우는 무기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의의 길로 인도하는 무기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무기라는 것입니다. 이 무기가 없으면 영적 싸움을 할 수 없어 구원의 열매를 맺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 두 의의 무기를 가져야 합니다.
선교지에서 사역자가 승리하려면 반드시 진리대결, 충성대결, 능력대결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진리대결, 능력대결이 바로 말씀과 능력입니다. 충성까지 합치면 세 날개가 됩니다. 좌우에 두 날개가 있고 꼬리 날개가 있으면 균형있게 더 잘 나를 수 있습니다. 충성의 날개는 진리의 날개와 능력의 날개를 균형 잡아주는 날개가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말씀뿐만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을 하고 가는 곳마다 충성스럽게 교회를 세우며 다녔습니다.
[고린도전서 2: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③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무명한 자와 같이 되었고 죽은 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8-10절)
▶ 8절,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의 구원을 위해서 사역하는 과정에서 영광도 있었고 욕됨도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칭찬을 받을 때도 있었고 욕 바가지 먹을 때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사역을 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좋은 평판을 들을 때도 있었고 나쁜 평판을 들을 때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사역을 하다가 보면 이런 저런 경험을 다 할 것입니다. 각오해야 합니다. 좋은 것만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
전염병 같은 자다, 소요를 일으키는 자다, 이단의 우두머리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다. 아마 율법 파괴자라는 말도 들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24: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그,럼에도 바울을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무명한 자가 되고 죽은 자와 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 속이는 자와 같으나 참 된 자였습니다. 사역하다가 보면 사기꾼 소리도 들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기를 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참된 사역자입니다.
▶ 무명한 자와 같으나 유명한 자였습니다. 실제로 그는 유명한 자이지만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복음을 위하여 자신을 높이지 않고 낮은 자리에 처한 것입니다.
마치 은둔의 고수와 같습니다. 그가 유명한 줄을 모를 정도로 겸손해야 합니다.
빈깡통이 요란한 법입니다.
▶ 죽은 자와 같으나 살아있는 자였습니다. 바울의 자아가 십자가에서 죽은 자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마치 자존심도 없는 사람 같았습니다. 죽어야 사는 것입니다. 길길이 날 뛰는 사람은 아직 자아가 산 자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를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저 억울하게 당하고 사는 수준입니다. 왜요,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져 주는 것과 같습니다.
▶ 징계를 받는 자와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수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징계를 받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살리셨습니다.
▶ 근심하는 자와 같으나 항상 기뻐합니다. 남들이 볼 때에 근심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 가난한 자와 같은 모습으로 있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합니다.
자신은 가난하게 되어도 다른 사람들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복을 받아 부요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을 가진 자는 다 가진 자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가난한 자를 부요하게 하기 위하여 자신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도 이랬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아무것도 없는 자와 같으나 다 가진자였습니다.
<맺는 말>
이것이 바울의 사역 모습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낮고 천한 모습으로 이 땅에 와 모든 저주를 지고 가신 것처럼, 바울도 고린도교회를 위하여 그들 대신에 낮아지고 가난해지고 징계와 핍박을 받고 산 것입니다.
진정한 사역자는 바울과 같은 사역자요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닮은 사역자인 것입니다.
한 영혼을 위하여 성령 안에서 그런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천성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성령으로 은혜를 받으니 그런 선택이 가능한 것입니다.
▶ 바울은 사 49:8절 말씀을 인용하면서 지금이 은혜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구원의 때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죽기 전에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죽을 때를 아무도 모르니 복음이 전해지는 지금이 구원의 기회이며 은혜의 때인 것입니다.
지금 바울 앞에 있는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그에게 다시는 기회가 없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바울은 그들에게 다가간 것입니다.
바울에게는 이런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 은혜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바울은 평생 복음을 위하여 살아간 것입니다.
[사도행전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가 가진 세상의 특권들, 좋은 것들도 다 배설물로 여기며 복음을 위하여 살아간 것입니다. 고난이 와도 핍박 와도 욕을 먹어도 평판이 좋지 않아도 무시를 당해도 복음을 전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바울과 같은 사역의 자세로 복음을 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