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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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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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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창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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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대홍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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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 ||
2091 |
아브라함 이주 | ||
2066 |
이삭의 출생 | ||
2006 |
야곱과 에서의 출생 | ||
1991 |
아브라함 죽음 | ||
1915 |
요셉의 출생 | ||
1898 |
요셉 애굽 팔림 | ||
1885 |
요셉 애굽 총리 | ||
1876 |
야곱 가족 이주 | ||
1805 |
요셉의 죽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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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이 책의 히브리어 명칭은 브레쉬트(bereshith, 태초에)인데 이것은 창 1:1에 나오는 첫 단어이다(고대에는 첫 번째 단어나 혹은 처음 두 단어를 따라 책의 이름을 정하는 관습이 있었다). 영어명 창세기(Genesis)는 헬라어에서 유래한 것인데 geneseos(게네세오스)란 말에서 나왔다.게네세오스는 헬라어 역본(70인경) 중 창 2:4과 5:1에 나온다. 문맥을 살펴 볼 때 그 단어는 출생, 족보, 혹은 기원사(history of origin)란 뜻이다. 창세기라는 명칭은, 히브리 원문과 헬라어 역본 모두에서, 그 내용을 적절히 묘사해 주고 있다. 창세기는 기본적으로 시작의 책이기 때문이다.
초기 그리스도교 신학자 오리겐(Origen, A.D. 185~251)이 요한 4장 25절 주석에서 처음으로 이 말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기원 1세기경에는 애굽의 알렉산드리아에 살았던 유대인들에게 ‘펜타튜크’란 말이 통용되었다고 한다. 한편 탈무드(Talmud, 유대인의 口傳 율법 주석서로서 정경과 같은 권위를 인정받은 것임) 학자들은 이 오경이 다섯 권으로 되었다고 해서 ‘율법의 5분의 5’라고 불렀다.
기 자 |
역사적으로,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은 모두 모세가 구약성경의 첫 다섯 권의 저자라고 주장해 오고 있다. 이 책들은 오경으로 알려져 있는데(그 뜻은 ‘오권의 책’), 유대인 전승에(모세의) 다섯 권의 율법으로 언급되어 있다. 성경 자체도 창세기의 모세 저작권을 주장한다. 행 15:1은 창 17장에 암시된 할례를 ‘모세가 가르친 율례’라고 언급한다.
‘모세의 율법’(대하 23:18 ; 30:16), ‘모세의 책’(대하 35:12)이라고 불리웠는데 후에는 유대인들이 이를 다만 율법(히브리어로 토라)이라고 불렀다. 구약 외경인 벤 시라의 지혜서(Ecclesiasticus of Ben 냑모, B.C. 180) 24장 23절에서도 오경을 모세가 명령한 율법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유대인 철학자 필로(Philo Tudaeus, B.C. 30~A.D. 50)와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 Flavius, A.D. 37~110)도 이 율법(토라)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기록연대 |
모세가 살았던 역사적 기간은 열왕기상에 의해서 어느 정도 정확하게 밝힐 수가 있다. 거기서 우리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4년”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480년”과 동일한 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왕상 6:1).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4년”은 주전 966년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480년”는 주전 1446이 된다(이것은 왕상 6:1을 문자적으로 취한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했던 40년이란 기간(주전 1446~1406년)은 모세가 오경을 기록했던 기간과 거의 일치된다고 볼 수 있다.
요절 및 주제 |
창세기의 요절은 1장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이다.
그러므로 본서의 주제는 인류의 시조와 언약자손의 열조에게 마지막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하실 실체에 대한 “예표적인 언약을 세우시는 하나님”이다. 즉 제사장 나라가 복으로 주셨음에 대한 신앙 여부를 '하나님의 의'로 삼으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와 그리고 자손, 땅, 통치로 구성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양대 언약을 통해 장차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로서의 언약을 세우시는 하나님이다.
기록배경 |
하나님은 애굽에 종노릇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열조와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출애굽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이심을 깨달아 알고 경외하게 하신다. 그러나 이러한 언약자손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는 이미 열조에게 언약하신 것이며 더 앞서 인류의 시조인 아담에게 실체적으로 하신 섭리임을 기록케 하셨다. 물론 인류의 시조에게 하신 언약 또한 천상세계를 통해 영원적으로 이루셨음을 계시적으로 기록하게 하셨다.
하나님께 지음을 받은 인생은 타락한 이후 하나님의 계시를 알 수 없는 저주 아래 살게 되었음으로 특별계시를 성경으로 기록케 하여 택한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깨달아 알고 경외하게 하시려고 모세를 불러 이를 기록하게 하셨다.
기록목적 |
본서의 기록목적은 하나님께서 언약자손에게 천지를 창조하시고 양대 언약을 세우시는 하나님을 계시해서 여호와이심을 깨달아 알고 경외케 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시조인 아담에게는 오실 메시야를 예표하기 위해 실체적인 것으로, 이스라엘의 열조에게는 실체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적인 것으로 양대 언약을 세우셨다. 그 언약의 내용은 복으로 주신 ‘하나님의 의’이며, 자손 번창과 땅 정복 그리고 통치할 것 등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양대 언약을 세우시고 부분적으로 이를 이루시기 위해 야곱의 가족을 애굽으로 보내어 번창하게 하신다. 이러한 역사섭리를 통하여 언약을 세우시는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언약자손에게 계시해서 깨달아 알고 경외하게 하신다.
내용분해 |
창세기는 하나님의 사역을 통한 언약의 내용(창세기~에스더) 가운데 시작 부분이다. 창세기는 천상계의 영원한 창조 사역(창1:1~13)과 천하계 창조 계시 사역(창1:14~1:26)이 소개된다. 그리고 아담과의 양대 언약인 언약성취 섭리 사역(창1:27~11:)에 대해 ‘兩大 언약’ 언약 섭리 사역(창1:27~2:17)과 ‘兩大 언약’ 성취 섭리 사역(창 2:18~11:)으로 나뉜다.
그리고 아담과의 예표적인 언약에 대한 모형적 계시 섭리로 하나님의 선민국가 섭리 사역(창12:∼에스더) 가운데 언약자손 ‘兩大 언약’ 섭리(창12:~신)를 시작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언약(창 12:~출 18:)의 대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신학적 의미 |
먼저 주경신학적 입장에서 살펴보면 창세기는 역사문학으로써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역이신 천상계와 계시로서의 천하계에 대한 현상세계가 시작된다. 따라서 해 아래의 우주의 시작과 인류의 시작 그리고 죄의 시작과 선민의 시작 등을 통한 언약성취 섭리인 창조와 섭리에 대한 의미가 있다.
다음 역사신학적 입장에서 살펴보면 기원전 역사와 기원 후 역사로 구분되기 때문에 혹자들에 의해 신화 운운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세대주의자들에 의해 기원전 역사를 억지로 풀다가 성경의 진리성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창세기의 내용이 우주나 인류의 기원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계시하시기 때문에 신학적 의의를 밝히는데 의미가 있다.
성경을 계시로 이해하는가 아니면 역사로 이해하는가의 차이는 신론과 세계관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 보통 유대주의나 사학파 신학자들은 구약성경의 내용을 역사로 이해함으로써 예수를 그리스도로 증거하는 성경을 온전히 해석하지 못한다. 그러나 성경은 역사적 사실로 하나님을 계시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균형있는 역사적 연구가 중요하다. 특히 창조에 대한 연대나 인류의 연대를 추정하는 일은 성경의 계시 목적에 맞지 않는다. 구약성경 가운데 창세기는 역사 사실을 통해 계시하신 하나님께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보내심으로 여호와이심을 증거하여 하나님 스스로의 영광을 계시하는데 목적이 있다.
다음 교의신학적 입장에서 보면 작정과 예정 그리고 창조와 섭리 등의 내용이 성경의 내적 증거로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다만 천상계에 대한 이해와 천하계와의 관계 등은 통섭적인 성경신학의 입장에서 볼 때라야 분명해 진다. 특별히 기독론과 교회론에 있어서 사역에 대한 모형적인 언약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커다란 신학적 이견에 대해서는 통섭 성경개론에서 밝힌 바로는 첫째, 후택설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전택설을 지지한다. 둘째, 교의신학적 주제인 인성의 번식은 선재설(先在設)이나 창조설(創造設) 또는 유전설(遺佺設)이 아니라 출생창조설(出生創造設)을 주장한다.
끝으로 앞의 이론적인 신학에서 설명된 대로 친히 이루시는 실천신학적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성도는 사역을 통한 영적 예배를 한다.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자로되 택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거룩함에 참예케 된 자이다. 그러므로 아담에게 복으로 주신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잇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복있는 성도가 되었음을 믿음의 행위로 고백하는 증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정립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하나님의 견인의 은혜를 따라 증인의 생활하게 된다.
메타-성경신학과 다른 분야의 신학과의 관계를 총정리 한다면, 주경신학은 문자적인 해석으로 메타-성경신학에 입문한다. 다음으로 역사신학은 성경의 역사를 고찰함으로써 2차적 해석을 통해 객관성을 확보한다. 이는 다시 교의신학을 통해 3차적 해석에 이른다. 성경의 3차적 해석은 신학적 해석으로써 각 주제에 대한 이해를 높여 세상의 철학적 이론을 극복하게 한다. 이러한 다층적이고 구조적인 성경 해석은 신학에 대한 배움공부를 통해 이론적 바탕을 이룬다. 그리고 실천신학의 사실적 확증은 신학의 익힘공부로 열매를 맺는다( 딤전 4:7~8). 이렇게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을 이루심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성도가 성숙되어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리며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되어진다. 이처럼 메타-성경신학은 4대 신학을 통섭하여 신행일치를 이루어간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인한 새로운 피조물로서 정체성을 정립토록 해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