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국립중앙도서관 소식지에 실린 글입니다.
어른들은 옛날 절이나 학교를 보고, “저거 우리가 지었다” 합니다.
“에이, 백년 넘은 집을 어떻게 지어요? 할머니 연세가 백오십 인가?”
할머니의 할아버지와 부모님께서 돌멩이를 지어 나르고, 쌀과 돈을 모았다는 말씀 들어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정말 할머니가 지으셨네요!”
철암어린이도서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고 백년, 이백년이 지나도 “도서관 우리가 지었다” 자랑하길 바랍니다.
다섯 살이 된 철암어린이도서관이 어떻게 태어났고, 건물이 사라질 위기에 아이들과 어른들이 어떻게 힘을 모았는지, 우리 손으로 어린이도서관 짓기 작전을 신나게 전합니다.
<사진1_(옛)철암어린이도서관>
◆ 수해 진탕 위에 핀 꽃, 철암어린이도서관
2002년 9월 추석 명절을 앞두고 태풍 루사가 몰아쳤어요. 철암천에 삼킬 듯 휘젓던 흙탕물이 끝내 둑을 넘었습니다. 집 수백 채가 잠기고 휩쓸렸습니다.
안방까지 들어찬 진흙탕을 씻어내며 새 봄을 맞을 때 철암도시건축작업팀과 광산지역사회연구소는 뜻있는 분들 후원으로 옛 철암역 앞 불탄 노래방을 고쳐 어린이도서관을 열었습니다.
철암어린이도서관은 아이들만 따로 모아 무얼 하는 곳이기 보다, 아이와 어른이 어울리는 동네 사랑방, 지역 교육문화 여건을 더 좋게 만드는 역할을 꿈꿨습니다.
책 5000권 모으기 운동, 문화공연 초청, 책 활동, 모둠여행, 마을탐방, 가족나들이, 광활팀(광산지역사회사업팀) 등 어린이활동을 구실로 온 마을을 누볐습니다.
◆ 어린이도서관이 사라질 위기
개관 3주년이 되는 2006년. 하천공사, 빈집철거, 도로확장, 임대만료로 옴짝달싹할 수 없이 어린이도서관을 비워야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방송에 출연하면 건물을 지어준다고도 하고, '폐광촌', '가난한 아이', '어려운 가정'을 드러내면 지원하는 재단도 있지만, 아이들과 이웃의 인격과 자존심 문제가 달렸습니다.
염치불구하고 “돈 좀 주세요.” 지원받아 뚝딱 지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지은 도서관이 복이 될지 화가 될지 모를 일입니다.
‘저기는 어느 방송국에서 지어준거래.’
‘저기 가면 무얼 공짜로 줄 거야.’
남의 돈, 남의 손 빌려서 지은 우리와 상관없는 남의 도서관이 된다면.
콘크리트 벽만 있고 인정과 관심이 없는 건물이라면.
집주인 따로 손님 따로 헛바퀴 돌고, 만날 달라고 조르기만 하는 시끄러운 곳이 될지 몰라요.
시골 어른들이 오래된 동네 절을 보고 '저기 절을 내 손으로 지었다' 말씀합니다.
때론 백년이 넘은 절도 있는데, 환갑이 지난 당신께서 지었다 하시니 무슨 말인가요?
사정을 들어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할머니의 부모님 또는 할아버지께서 그 절을 지을 때 손수 돌멩이를 지어 나르고, 동네 사람들이 쌀과 돈을 모아 보탰기 때문입니다.
누가 뚝딱 지어준 남의 절이 아니라 우리 가족과 이웃들 땀과 꿈이 녹아있기에 백년이 넘어도 우리가 지었다 합니다.
시골 작은 학교를 폐교한다고 하면 지역 주민들이 앞장서서 막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신입생 유치와 교육환경 개선에도 적극적입니다.
그 학교가 모교라서 그러기도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땅을 내놓고, 건축비를 모으고, 돌멩이를 날라서 지은 학교라서 더욱 그런 일이 많습니다.
철암어린이도서관이 아이들과 주민들에게 우리 건물이어야지요. 돈을 모으고, 설계하고, 짓는 과정에 함께 함은 물론 건축 이후 주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길 원합니다.
◆ 도서관 짓기, 아이들이 나서다.
2006년 4월 1일 아이들과 회의를 했습니다.
도서관 비워달라고 한지 네 달이 지났는데 별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도서관을 어디에 짓고, 언제 이사를 하는지 자주 묻는 아이들과 ‘우리 손으로 도서관을 짓자’며 작전을 짰습니다.
들고 다니며 알릴 수 있는 홍보포스터를 만들고, 창고에서 찾은 옛날 사랑의 빵 저금통에 그림을 그려 건축기금 모금저금통을 만들었습니다. 신흥동과 피내골 빈터를 돌아다니며 도서관 세울 땅을 찾았습니다. 물론 우리 땅은 아니지만 상상이야 누가 막겠습니까?
<사진2~4. 홍보피켓, 건축비 모금저금통>
<사진9_도서관 지을 땅 찾아다니기>
4월 2일 새로 짓고 싶은 도서관 설계도를 그렸습니다.
비밀의 방, 비밀창고, 다락방, 수영장, 목욕탕, 2층 옥상, 축구장, 지하 비밀통로, 열람실, 컴퓨터실... 그림만 봐도 신이 납니다.
<사진5~7. 아이들이 그린 도서관 설계도>
4월 5일부터 모금저금통을 마을 곳곳에 갖다 두었습니다.
저금통을 만들 때 바닥에 만든 사람 이름과 두고 싶은 위치를 적었습니다.
아이들과 농협에 둔다고 적은 저금통 두 개를 들고 찾아갔습니다. 여직원 두 분과 동건이 아버지, 경찰아저씨께 인사를 드리고 지점장님께 설명을 드린 후 손님들이 잘 보이는 곳에 저금통을 놓았습니다.
저금통 몇 개는 집에 가져가고, 부모님이 일하는 곳에도 두었습니다.
<사진8_철암농협에 저금통 갖다 두기>
4월 11일 태현이네 할머니, 노경욱선생님,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중학교 교무부장선생님, 동장님 등 부모님과 마을 어른을 찾아뵙고 도서관 건축 계획을 말씀드렸습니다.
노경욱선생님께서는 '아이들에게 더 좋은 도서관이 완공되기를' 적어주시고, “10만원씩 모금운동하면 어때요?” 하시더니 5만원을 입금하셨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특히 철암은 양지꽃, 음지꽃 구분되기도 하고 교육의 양극화가 여기서부터 시작되는가 싶은데 모쪼록 좋은 뜻으로 시작했으니 모두에게 빛이 되는 일들만 하시구려 미력이나마 보탬이 돼 드리오리다.’ 하시곤 강릉으로 발령 나시기 전까지 큰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4월 13일 철암초등학교 어머니회 회의에 갔습니다.
어머니들께 인사를 드리고 마을 아이들 아버지 대표라고 인사드렸습니다.
1학기에 어머니회에서 진행할 사업을 들었습니다. 도서관에서 4월 29일 학부모 알뜰시장을 돕기로 하고, 보름간 아이들과 함께 진행한 어린이도서관 건축 소식을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회에서 알뜰시장 수익금 일부를 어린이 대표에 전달하시길 부탁드렸는데 흔쾌히 수락하셨습니다.
4월 29일 철암초등학교 어머니회 알뜰시장 하는 날입니다.
시장 준비를 도와드리고, 점심에는 아이들과 알뜰시장에서 놀았습니다.
장을 마치고 학부모회장님과 총무님께서 알뜰시장 수익금 중 20만원을 건축비로 전달하셨습니다.
5월 8일 대한석탄공사에 공문을 보냈습니다.
도서관을 짓고 싶은 땅을 돌아다니며 찜하는 거야 우리 맘이지만, 땅을 줄 수 있는 곳은 석탄공사입니다. 홍보와 모금, 그동안 진행한 일지와 사진을 넣어 도서관 지을 땅과 건축비용 후원을 부탁하는 공문을 발송했습니다.
6월 16일 대한석탄공사에서 답이 왔습니다.
‘공부방건립을 위한 토지 무상임대 승인’ 공문입니다. 석탄공사에서 건립 부지 100평, 시설비 4000만원 지원을 결정했습니다. 전에 학원이 있던 땅입니다. 지민이네 집 바로 옆입니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잘 아는 위치입니다. 신바람이 났습니다. 여러 장 복사해서 도서관에 붙여놓고, 어른들께 드렸습니다.
<사진10_대한석탄공사에서 보내주신 대지사용승낙 공문>
8월 5일과 11일에는 단체홍보모금활동을 벌였습니다.
모금팀, 홍보팀, 조직팀, 총감독으로 모둠을 나눠 회의 하고 물품 만들었습니다.
모금팀에서는 모금저금통을 더 만들고, 홍보팀은 포스터를 그리고 부모님과 선생님께 드릴 편지를 썼습니다. 아무 팀도 하기 싫은 친구는 총감독을 맡았습니다.
총감독은 각 팀을 오가며 어떻게 진행되는지 살피고 팀별로 잘한 점을 발표합니다.
회의 후에 마을을 돌아다니며 우편취급소, 동사무소, 구판장, 농협, 식당, 피씨방에 모금저금통 비치했습니다.
먼저 갖다 둔 저금통이 꽉 찬 곳은 새 것으로 바꾸었고, 골뱅이피씨방 어머니는 집에서 모으던 돼지저금통을 깨서 모금저금통을 채워주셨습니다.
<사진11~13. 철암역 대합실에 둘러 앉아 회의하기, 마을홍보>
8월 말에 책읽는사회문화재단에 좋은 소식이 왔습니다.
원기준 소장님께서 책사회문화재단에서 아이들과 진행한 도서관 건축과정을 말씀드렸는데, 도서관 건축을 돕기로 하셨습니다.
9월 초에 도서관 설계를 부탁드렸습니다.
불탄 노래방을 고쳐 어린이도서관을 만들어주시고, 철암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건축교실을 진행하셨던 주대관 교수님께서 설계를 해주셨습니다.
우선 땅 모양에 맞게 설계하신 1차 설계도를 아이들과 살펴봤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는 동그란 계단이 맘에 들고, 비밀의 방을 넣어달라고 합니다.
목욕탕 대신 화장실에 샤워실을 놓기로 했습니다. 의논한 내용을 바탕으로 설계도를 다시 그렸습니다.
1차 설계도에 좋은 점과 바라는 점, 그동안 그려 둔 설계도를 가지고 주대관 교수님을 뵈었습니다. 얼마 후 교수님께서 비밀의 방, 샤워시설, 수다방, 모임방, 마당 등을 보완한 2차 설계도를 그려주셨습니다. 도서관 냉장고에 설계도를 붙여 놓고 몇 번 더 의논하고 부탁하고 고쳐서 드디어 도서관 설계가 나왔습니다.
<사진14_ 새 어린이도서관 모형>
9월 21일부터 23일까지 다른 도서관에 가서 좋은 공간을 보고 도서관 설계에 넣기로 했습니다. 마을문고와 서점, 기적의도서관을 탐방했습니다.
21일 태백인표도서관에는 어린이 5명이 함께 갔습니다.
인표도서관 사서께 도서관 설립과정과 활동 소개를 받고, 책과 가구를 살펴보았습니다. 종이에 인표어린이도서관의 좋은 점을 적었습니다.
22일에는 철암초등학교 교무부장님과 5학년 담임선생님을 뵈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독서여행'에 대해 여쭙고, 예시 자료와 기록 방법을 들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그냥 적어보라고 하면 쓰기가 어려우니 가는 길, 있었던 일, 이용법, 특징, 좋았던 점, 부모님과 나눈 대화, 부모님 글, 부대시설 이용 관람기, 다른 도서관과 비교하기 (규모, 소장권수, 분위기, 이용하는 사람수, 시설) 등 구체적으로 적어주거나 물어야 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도서관에서 함께 할 수 있어 좋다며 반기셨습니다.
어린이 6명과 동점마을도서관과 장성문고 탐방을 갔습니다. 동점마을도서관은 돌멩이로 쌓은 벽면이 참 예쁩니다.
장성문고는 1층과 2층에 방이 많습니다. 선생님이 내신 수수께끼가 재미있습니다. 탐방을 마치고 도서관 마다 좋은 점을 적고, 어제 갔던 인표어린이도서관과 비교해 보았습니다.
시내 서점에 나가서 8, 9월 신청도서 일부와 읽고 싶은 책 한권씩을 샀습니다.
<사진15_ 동점마을문고에서>
23일 가족들과 제천기적의도서관에 갔습니다.
기차여행으로 다녀오고 차비와 점심식사를 가정 별로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부모님이 함께 가지 못하는 집은 차비와 간식비를 보내셨습니다.
제천기적의 도서관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할아버지 모임 '호랑이담뱃대' 에서 지어주신 원두막에서 그동안 자료와 설계도를 보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도서관에 들어가서 책을 보고, 외국인선생님이 영어책 읽어주는 시간에 참여했습니다. 우리 도서관을 어떻게 지을지, 우리 도서관에서 어떤 활동을 함께 할 수 있을지
기적의 도서관 활동을 보며 찾고 제안했습니다.
이웃과 함께 하는 나들이 감동하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가 '엄마 사랑해요'하는 말에 감동했습니다. 가족 마다 싸온 김밥, 포도, 방울토마토를 나눠먹고, 떡볶이, 오뎅, 물, 순대, 과자, 음료수... 서로 경쟁하듯 먹을 것을 사 오셔서 아이들에게 나눠주셨습니다.
<사진16_ 제천기적의도서관 탐방>
10월 14일 마을 걸립을 했습니다.
걸립乞粒 들어보셨어요? 피내골 경로당에 갔다가 할머니들께 들었습니다. 십수 년 전에 경로당 할머니 서너 분이 경로당을 지을 생각으로, 바가지 들고 꽹과리 치며 마을을 돌았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직물공장 사장님께서 지금 피내골 건물을 내주셨고, 할머니들께서는 걸립해서 모은 돈으로 경로당을 마련하셨지요.
얼마나 신나는 이야기인지, 걸립패를 어떻게 꾸리는지 더 여쭈어보았습니다. 걸립패는 크게 세 무리가 있습니다. 바가지 들고 돈 받는 머리, 사물놀이하며 관심을 끄는 몸통, 따라다니며 소리치는 바람잡이 꼬리입니다.
아이들과 할머니께 들은 걸립패를 꾸려서 마을 모금을 하기로 했습니다.
한 모둠은 종이박스에 색도화지를 붙여서 모금함을 만들고, 한 모둠은 시끄럽게 굴 수 있는 물건들을 가져왔습니다. 리코더, 캐스터네츠, 돌멩이를 넣은 패트병, 자전거 딸랑이까지 가져왔습니다. 나머지는 꼬리입니다. 모금하러 돌아다니다 보면 친구들이 붙어서 더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아랫마을부터 윗마을까지 소리치고, 설명하고, 부탁하며 도서관 건축비를 모았습니다. 백원부터 만원까지 모은 돈을 세어보니 25만원 넘게 모였습니다. 바가지와 그릇에 종류별로 담아 농협에 저금 했습니다.
<사진17~22. 마을 걸립乞粒 하기>
10월 28일 드디어 기공식.
어머니들께서 부침개를 굽고, 아이들은 천막을 치고 사진 전시를 했습니다.
도서관 부지 위에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여 새 건물을 상상했습니다. 몇 달 동안 마을과 집에서 모은 저금통을 가져와서 깼습니다. 쏟아지는 동전을 세며 환호했습니다. 아이들은 “저도 도서관 짓는데 돈 냈어요.”하고 자랑합니다.
<사진23~26. 기공식>
12월 16일 중학교에서 어린이도서관 건축비 동전띠잇기를 했습니다.
철암중학교 교무부장이신 최명희선생님께서 제안을 하셨습니다. 중학생들이 탁자위에 동전띠를 잇고, 모금함에 돈을 넣었습니다. 국어선생님은 집에서 모은 저금통을 가져오시고, 다른 선생님들께서도 건축비를 내셨습니다. 한 친구는 미쳐 돈을 준비하지 못했다며 버스쿠폰을 넣었습니다. 정성이 귀합니다.
<사진27_철암중학교 동전띠 잇기>
2007년 2월 8일~10일, 정든 도서관을 비웠습니다. 철암장로교회에서 당분간 어린이집 건물을 쓰도록 허락해주셨습니다.
2월 9일 예찬어머니와 미성어머니께서 오셨습니다. 정든 도서관 모습도 보고 차도 마시고 짐정리도 돕겠다고 하셨습니다.
계미정어머니와 태백산맥 가족여행을 갔던 여자아이들이 오더니 '왕언니' 하며 환호성을 지릅니다. 여행 모둠에서 어머니 별칭이 왕언니였습니다.
어머니 두 분이 2층 다락에 남은 짐을 싸주셨습니다. 꼼꼼히 단단하게 묶어주셨습니다. 아이들은 온 동네 돌아다니며 박스를 구해오고 짐 정리를 했습니다. 더 정리하고 싶어서 “선생님 더하고 싶어요.” 외쳤습니다.
허민이와 태현이는 박스를 뜯어 카트차만들기, 변신놀이, 집짓기 놀이를 했습니다.
한 살 민아는 책 사이에 엎드려 웅얼거립니다. 아이들, 이웃어른들, 책 사이에서 자라는 민아는 복받았습니다.
계미정 어머니께서 철도아파트 관사 창고를 내주셨습니다. 마당 옆이라 짐을 내리고 싣기 좋습니다. 계미정어머니, 아이들 네 명과 관사에 갔습니다. 창고 문을 열고 살폈습니다. 어머니께서 이렇게 생긴 창고를 고쳐서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만들었다며 집수리하던 일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짐을 정리하고 바닥에 공간을 띄울 수 있는 박스나 나무를 깔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뚝딱 만들어 쓰시는 어머니는 뭐든 '해보자', '할 수 있다'. 그래서 신이 나고 힘이 납니다.
금요일에 성구 아버지가 비번입니다. 다른 분들도 몇 명 같이 오시라 했습니다.
성구네 아버지와 어머니, 철도역에 근무하는 아저씨들이 오시면 창고정리는 거뜬합니다. 도서관으로 내려가는 길에 철암동대에 들렀습니다. 동대장님께 인사드리고, 이사도움을 청했습니다. 흔쾌히 대장님께서 대원 둘을 태워서 오시겠다고 합니다.
도서관 이사, 책 5천 5백권과 가전제품, 가정용품, 문구, 책장, 가구... 이삿짐센터 인부를 써도 정리하고 보관을 고심해야 하는데 아이들과 이웃들이 있어 이사도 즐겁습니다.
<사진28~30. 도서관 임시 이사>
3월 27일 피내골에 망치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남쪽 지역에 벚꽃이 떨어지는 4월 초, 철암에는 눈이 내렸습니다. 봄눈 맞으며 드디어 공사를 시작합니다.
아이들은 도서관 공사장에 자주 가봅니다. 지은이는 현장소장님께 ‘도서관 예쁘게 지어주세요’ 편지를 써드리고 희민이는 오백원짜리 과자를 사서 봉지에 ‘고맙습니다.’고 써서 선물합니다. 공사장 아저씨들은 아이들이 오면 귀찮다고 소리치고 쫓아내지 않고 도리어 '우리 건축주 오셨네' 하며 반기셨습니다.
<사진31~33. 피내골에 어린이도서관 공사 시작>
5월 26일, 새도서관 대청소를 했습니다.
아이들과 엄마들이 도서관 안을 쓸고 닦고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렸습니다. 도서관 주변에 날린 쓰레기도 주었습니다. 해주네 어머니께서 아이스크림 한 봉지를 사와서 나눠먹고 엄마들이 준비한 점심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떡을 조금씩 담아 공사 중에 불편하셨던 이웃들께 드렸습니다. 차비와 용돈이 남을 때 마다 건축비 저금통에 넣고, 장부에 이름을 적은 아이들, 작은 정성이 도서관 곳곳에 녹아있습니다.
어린이 두 명이 쓰레기를 쓸어 담다가 한 아이가 집에 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쓰레기 너한테 기부할께.” 하니 “그래, 고마워” 합니다.
쓰레기도 ‘기부’한다 하니 아이들이 얼마나 기부에 익숙해졌는지 반갑습니다.
아이들이 작은 것도 감사하고, 이웃과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사진34_ 새 도서관 대청소>
6월 30일, 드디어 새 도서관으로 이사했습니다.
철도에 근무하시는 아빠들이 이른 아침부터 나오시고, 어머니들께서 활약하셨습니다. 거북식당 아저씨께서 2.5톤 트럭을 빌려주시고 이웃 아저씨가 운전을 해주셨습니다. 오후에는 학교 마친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와서 책정리를 했습니다.
온 마을 도움 받아 신나게 이사했습니다.
7월 14일 기적처럼 지은 철암어린이도서관 개관식을 했습니다.
'우리 손으로 도서관을 짓자', 건물 세울 땅도 돈도 없이 꾼 빈 꿈이었습니다.
이웃과 지역사회, 작은도서관을 사랑하는 분들과 기관에서 채워주셨습니다.
맨 앞에 아이들이 섰습니다. 아이들이 자라 각지로 모래처럼 흩어지더라도, 세상살이 사막에 선 듯 힘겨울 때, 우리 손으로 지은 도서관을 생각할겁니다.
“'저도 도서관 짓는데 돈 냈어요.”
“우리 도서관이에요.”
“도서관이 이웃 사이를 잇는 다리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아이들과 부모님 말이 가슴에 오래 남습니다.
우리 함께 해냈습니다. 자랑스럽고 고맙습니다.
<사진35~36. 새 도서관 모습>
<사진37~39. 도서관 건축기금 어린이와 청소년 장부>
<함께 하는 사람들>
어린이건축위원
김기남, 김도영, 김병훈, 김영건, 김지민, 김지수, 김태현
박솔, 박현혜, 송백연, 송승규, 안대균, 안형주, 유진석,
이소영, 이주은, 이지은, 이혜윤, 장진주, 한규빈, 허민 외
학부모 및 어른건축위원
강미영, 김동현, 김윤주, 김현애, 노경욱, 배복수, 손은경,
신수정, 심봉황, 최말임, 최명희, 최충희
<건축후원>
대한석탄공사
국립중앙도서관
국민은행
공동모금회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철암어린이도서관건축기금
(농협) 335035-51-041111 예금주 철암세상
첫댓글 함께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직접 몸으로 부딪쳐야 한다는 사실도 알려주네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어린이'가 소외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도서관 이전에도 '어린이'가 주체로 나설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