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기 오재성 선생께서 신라는 동신라와 서신라가 있었음을 주장하였고 근자에 열린
신라사 정역강연회에서 이중재 선생은 동신라의 연원은 고려를 개국한 太祖 王建이 신라국의
마지막 황제 敬順王에게 봉지를 내린것이 한반도 신라의 현 경주 지역임을 주장하였다.
한편으로 한반도 경주에서 발견된 무열왕석비에는 신라의 김알지가 무열왕의 직계조상이며
김알지는 신농의 사위인 黃帝 헌원의 아들인 소호금천씨의 후손인 김일제가 김알지의 6대조라 하는
명문을 남겼다.
신라의 연원은 금녕총과 부장품들에서 발굴된 기마인물상 및 마제도구를 근거로하여 기마민족인
흉노의 후예이며 그들은 대륙 甘肅,新疆 이 그 연원이라는 가설있었고 실제 그지역에서 출토된
여러 유물들과 기록이 그 가설을 뒷받침 하고 있다.
특히 김일제는 산동성 荷澤지역에 나라를 세웠던 사람으로 <투국>이라 칭했으며 사기 혹은 한서 흉노전과
달리 그지역에 자리잡고 있었던 제후국으로 한나라와는 실제 유방의 봉토와는 관계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실제 한나라의 한서 지리지를 보면 약 38개의 제후국이 나오는데 실제 한나라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의 지역왕과의 연대 관계를 위해 맺은 정치적 협정을 마치 漢나라가
정복하여 제후국으로 삼은것처럼 사가들이 曲筆을 했기 때문이다.
김일제는 전한이 망하고 新나라가 王莽에 의해서 세워졌을때 왕망의 외척으로 깊이 관여했었고
18년만에 왕조가 끝나자 정치적 회오리에 휩쓸려 종말을 맞으면서 후손인 김알지등이 산동반도에서
경주지역으로 망명을 한것으로도 추정하고 있으나 신빙성있는 학설중에 하나일 뿐이다.
이 가설은 이중재씨의 관점과는 또다른 다른 관점이다.
더중요한것은 淸國 을 새운 愛新覺羅씨가 자신의 연원이 신라의 왕족일파 김함보임을
金國과 연원을 같이한다 하여 後金이라한것은 잘아는 사실이다.
대륙왕조역사상 전무후무한 광활한 국토를 넓히는데 한족에게 기여하고 사라져간 민족이다.
그들이 제작한 지도에는 그들의 연원을 밝히는 신라국 수도 慶州의 위치를 밝힌 지도가 있다.
天下古今大摠便覽圖(1666년 김수홍작)이 그것이다.
이위치의 경주는 삼국사기에서 기술한 高句麗,新羅,百濟,倭 전쟁위치가 합리적으로 들어맞는다.
慶州는 사라지고 古巢伯國 이라 동일 위치에 기록되어있다.(18세기 대청광여도)
20세기초 민국군사지도에 巢가 신라지역임을 추정케하는 지역명이 수두룩하다.
우로는 含山,八公山 아래에는 金城市 및 서라벌을 뜻하는 舒城이 좌측에있고
서북방 멀리 백제영역으로 추정되는 項城과 신라의 舒城 남측 安慶의 북편에는
羅塘州라는 지명이 있다.
심제 씀.
첫댓글 검자님 기축년 원단 넘치는 복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항상 좋은 자료와 글에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