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에 캐나다로 출국하는 와이프와 애들을 공항으로 데려다 주고 병원에 들러 오전동안 진료를 마친 뒤 강릉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드디어 출발이다. 2개월 전 가끔 참여하는 수영모임 카페에서 경포대 15km바다 수영 대회 참가 신청을 받는다 라는 소식을 접했을때 묘한 흥분과 함께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앞뒤 재지 않고 참가 신청을 해버렸다. 원래 나의 목표는 내가 머물렀던 곳을 바다 수영으로 돌아보는 것인데 이번 대회는 아주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다.
강릉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여러가지 생각이 밀려왔다. 첫째는 두려움이었다. 그동안 팀원들과 단체로 수영 훈련을 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지만 실제 바다 수영은 한달 전 왕산해수욕장에서 2km를 한번 돌아 본게 전부라서 과연 반환점인 7.5km를 해낼 수 있을까, 예측할 수 없는 기상 조건에 직면했을 때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두번째는 좀 더 근본적인 것으로 왜 고행을 자초하면서 수영(그외 다른 운동도 포함해서)을 하는가 라는 점이었다.
내가 정말 수영 자체를 좋아하는 것인가? 아니면 2년전부터 시작된 기러기 생활로 인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내세울 것 없는 내가 이렇게 수영을 한다는 것을 남에게 자랑하기 위한 허세인가?
얼마 전에 은퇴한 프랑스의 모신문 기자 출신인 올리비에 베르나르가 쓴 '나는 걷는다' 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터키 이스탐블에서 중국 시안까지 옛 비단길 12000km를 4년에 걸쳐서 도보로 횡단한 뒤 길과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나는 이번 여정을 다녀오면서 무엇을 깨닫고 얻게 될것인지 궁금했다.
그외 여러 잡다한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강릉에 도착했다. 태풍 무이파가 우리나라 쪽으로 올라온다고 했지만 이곳 강릉은
비만 살짝 내릴 뿐 바람 한점 없었다. 내일도 지금만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먼저 도착한 일행들을 만나서 저녁을 먹으면서 내일의 대회를 위한 결의를 다졌다. 팀원들 모두 컨디션을 조절하기 위해 삼겹살을 먹으면서 소주는 아예 입에 대지도 않았다. 식사를 마친 뒤 내일의 일정을 점검하고 다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드디어 대회의 날이 밝았다. 5시에 기상해서 간단히 요기를 한 뒤 강릉항으로 출발했다. 대회는 강릉항에서 출발해서 경포 앞바다에 있는 오리바위까지 왕복하는 코스이다. 하늘이 도움인가.. 날씨는 최상이었다. 우리의 바램대로 흐린 날씨에 양탄자같이 잔잔한 동해 바다가 우리를 반겼다. 이번으로 세번째 참가하는 우리 일행중의 한사람은 이렇게 잔잔한 파도는 본적이 없다고 한다.
대회 참가 인원은 약 140명, 7개조로 나뉘었으며 각조당 보트 한개가 뒤따르게 된다. 우리 팀원들은 10명이고 다른 단체에서 4명, 6명이 합류해서 총 20명이 3조에 배치됐다. 나이는 62년생부터 86년생까지 다양했다. 내가 최연장자가 아니라서 부담이 덜했다.
간단한 식전행사가 끝나고 준비 운동을 마친 뒤 물에 들어갈 차례가 왔다. 이제 시작이군...
해안에서 약 100미터 떨어진 곳에 이미 부표가 설치되어 있었다. 부표 사이의 간격은 대략 1-1.5km정도 돼보였다. 먼저 7조가 시작을 했고 약 5분의 간격을 두고 다음조가 시작했다. 얼마간의 기다림 후 우리 3조가 드디어 출발했다. 첫번재 부표지점에서 모여 인원 확인을 한 뒤 힘차게 팔을 젓기 시작했다. 다들 몸놀림이 가벼워보였고 눈빛은 살아 있었다.스트로클 하면서 팔로 물을 가르는 소리는 사뭇 경쾌했다. 수온은 적당했고 너울은 거의 없어서 실내수영장과 별반 차이가 없는 듯 했다.
약 1km남짓 전진하고 나서 두번째 부표에 도착했는데 이들 부표는 지름이 약 1m정도 되는 것으로 휴식장소라기 보다는 방향을
표시해주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실내 수영과 달리 오픈 워터 수영은 목표 지점을 향해 일직선으로 수영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부표를 보면서 수영을 해야 최단 거리로 수영할 수 있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우리보다 앞서 출발한 4조는 전체적으로 수영 속도가 느린 편이었다. 세번째 부표 지점에서 양측의 합의 하에 우리 3조가 추월하기로 했다. 특히 숭인스포츠 소속 4명은 초반에 페이스를 주도하며 앞서 나갔다. 나 역시 첫 바다수영대회 참가라고 하지만 별로
힘들지 않게 꾸준하게 속도를 내며 우리 조의 중간 정도에서 헤엄쳐 나갔다. 이런 상태라면 보급없이 반환점까지 그냥 전진해도
될 것 같았다. 각 부표에 도착할 때 마다 뒤따르는 보트에서 물이며 바나나등 먹거리를 던져 줬다. 오리발을 신은 상태에서 바닷물에 떠 있는 것은 생각보다 무지 편했다. 우리는 바닷물에 동동 떠있는 상태에서 물을 마시고 간식을 먹고 심지어는 커피까지 마셨다. 수온으로 인해 약간 서늘해진 상태서 커피를 바다 한가운데 떠다니면서 마시는 모습은 내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는데 기억할 만한 멋진 일이었다.
4번째 부표를 지나면서부터 낙오자가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체력이 달리거나 다리에 쥐가 나서 포기하는 경우였다.
아직까지 나는 건재했다. 다행이군. 오히려 몸이 가벼워지고 속도가 더 나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1시간 30분정도 수영했다.
5번재 부표를 지날때 쯤해서 생리적 욕구가 슬슬 나타났다. 속에 수영복을 입고 슈트을 입었는데 그냥 해결할까 했지만 아직
참을만 했다. 그런데 소변을 참으니까 몸에 약간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조류는 오리바위에서 강릉항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조류를 맞으면서 수영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6번재 부표를 지나 오리 바위까지 가는 마지막 관문은 꽤 힘들었다. 분명히 바위가 저 앞에 보이는데 계속 전진하고 또 해도 바위는 그대로 멀찍이 서 있는 것 같았다. 목표를 향해 일관되게
꾸준히 몸을 움직이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두번 스트로크 하고 고개 들어 전방 주시하는 과정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다 보니
드디어 오리 바위에 도착했다. 우리 3조중 4번째.
이미 도착한 앞조들은 물과 수박을 먹고 기념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꽉 찬 방광을 비우기 위해 바위에 오르자마자 슈트를 벗어버리고 사람들이 별로 없는 구석으로 가서 일을 봤다. 그리고 나서 한가로이 수박을 먹으면서 내가 지나온 바다쪽을 쳐다 봤다. 멀리 부표만 몇개 보이고 출발한 강릉항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동해 바다는 여전히 조용했다. 이렇게 먼 거리를
헤엄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거렸다. 사람은 약하지만 인간은 위대하다 라는 말이 있다. 우리들 각자 개개인은
자연앞에 한없이 약한 존재이지만 여럿이 모이면 상상 이상의 커다란 힘이 생겨난다.
우리 조 20명이 다 도착해서 간단히 기념 촬영을 한 뒤 출발점을 향해 되돌아 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번에는 슈트는 벗어버리고
출발했다. 돌아 가는 길은 조류를 타고 가는 것이라 훨씬 수월했다. 전반에 레이스를 주도했던 숭인스포츠팀들은 힘을 너무 많이 써서 그런지 후반들어 많이 뒤쳐졌다. 계속 속도를 내며 전진하는 우리 팀원들을 부러워했다. 이제 나는 수영한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을 만큼 편했다. 물 사이를 미끄러져 나가는 느낌이 이거던가...체력은 분명히 고갈되어 가고 있었지만 내 몸은 솜털처럼 가벼워지며 반복적인 동작을 계속했다. 지금 이순간은 내가 바다이고 바다가 내 몸속에 있다. 시간도 정지해 있는 느낌이었다.
그냥 팔을 저을 뿐이었다. 바닷물은 더 이상 짠게 아니었다. 내 타액과 섞여서 닽콤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한참을 지났을까... 낯익은 건물이 보였다. 출발했던 장소에 드디어 도착한 것이었다. 오전내내 흐렸던 하늘은 우리의
완영을 축하라도 해주는 듯 강렬한 햇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해냈구나. 내가 해낸게 아니라 우리 팀이 해냈구나. 다들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같이 완영한 모든 팀원들에게 악수를 청했다.그동안 오늘의 대회를 위해서 열심히 훈련한 동료들이 너무 고마웠다. 어쩌면 오늘 대회보다 훈련 과정이 더 힘들었지만 다들 잘 견디고 이겨냈다.
마지막으로 나의 첫 바다 수영을 완영하게끔 허락해준 동해바다와 하늘에게 감사하고 싶다.
첫댓글 아.. 멋진 후기네요... 형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와우~감동적인 후기 잘 읽었습니다. 내년엔 나도 함 해볼까 ...? 하는 생각이드는군요. 싸이클 180키로 타고가서 수영 15키로...그리고 런 10키로..재밌겠는데요.ㅎ 완영 축하 합니다.
동해바다 한가운데서 커피를...멋지네요~^^
저도 함 도전하고 싶어지네요.
어제 이야기로 들은것 보다
훨씬더 감동적인 후기였습니다.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지금 이순간은 내가 바다이고 바다가 내 몸속에 있다''
감동 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