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향기.45]
창문
이미산
사내가 지나간다 안경이 빛난다 목구멍 너머로 반짝, 목젖이 보였다 풍경이 잠깐 입맛을 다셨다 사내의 걸음이 빨라지고 풍경은 휙휙, 목구멍이 넓어지고 공터의 바람소리 커진다
여자가 지나간다 발자국에 치마가 펄럭거린다 치마 속으로 낯선 바람이 들락날락, 여자는 끊임없이 바람을 일으켜 치마 속으로 끌어들인다 치마 속은 캄캄하고 갇힌 바람은 부풀어 저 혼자 뜨겁다
고양이 한 마리 문득, 멈춘다 탄력은 우연처럼 한곳으로 모아졌다 눈동자는 빛나고 허기는 탐스럽다 동그란 눈이 사내와 여자의 길을 들여다본다 길은 일정한 자세가 필요하다 집요하다 허기는 반질거릴수록 품위가 넘친다 허기와 품위는 의외의 장소에서 어울린다 미녀와 야수처럼 극적이다
허기진 식탁엔 촛불 대신 달이 뜰까 별이 뜰까 둘러앉은 서로의 눈동자 속으로 걸어가는 멀고 먼 길 위로 내려앉는 잎새, 안경 너머로 잠깐씩 앉았다가는 풍경, 목구멍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는 자의 영혼은 허기일까 고독일까 밤새 뒤척이는 숨소리 바람이라 우기며 깊이 더 깊이 파고드는 목구멍 속
나뭇잎은 다시 팔랑거린다 고양이는 동그란 눈을 또 닦는다 무심히 앞치마를 두르며 당신이 중얼거린다 좀 쓸쓸하네 계절 타나봐
게재지: 2009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1-2월호 수록
이름: 이 미 산
등단: 2006년 월간 <현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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