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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이 있는 사람들 3.
초대 동문회장 박종택 베드로 (교리 44)
감사하는 마음이 하느님을 생각하는 마음이죠
주교회의에서 주최하는 말씀콘서트가 있고 거기에 초대 동문회장님이 패널로 나온다는 소식을 동문 선배님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우연히 듣게 되었다. 사실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 나오게 될 ‘울림이 있는 사람들’에서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선교사를 뵙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고 그런 동문을 찾고 있는 즈음이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궁리하고 찾아나서지만 번번이 결론은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서 나온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런 괜찮은 정보를 흘려버릴 수야 없지 않은가!
정작 말씀콘서트 현장에는 가 볼 수 없었지만 전화를 드렸다. 뵙고 싶다고. 박종택 베드로 초대 동문회장님 본당인 잠원동 성당 근처의 널찍한 한 카페에서 만났다. 보통 때와는 다르게 모자를 쓰고 오셔서 처음엔 몰라 뵀다. 2008년에 신학원 창립 50주년 행사를 준비했던 기수여서, 얼굴을 뵀었다고 말씀 드리며 바로 질문에 들어갔다.
손수 커피를 주문해 주시는 베드로 회장님의 자상함.
2003년 서울교구 시노드 폐막후 교구장 교서 발표와 더불어 시작된...
-“주교회의에서 주최하는 말씀콘서트에 나오셨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우리 신학원 동문선배님이 출연한다는 소식이 반가우면서도 좀 낯설다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 거기에 내가 나오게 된 걸 얘기하자면 좀 긴데요, 서울대교구 ‘시노드’부터 말해야겠네요.”그야말로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설명을 시작하셨다. “2003년 서울대교구 시노드가 폐막되면서 최종적으로 교구장 교서가 발표됐었죠. 한데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해서 하나 하나 실천에 옮겨야 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교구의 기획조정실에서는 전체적인 방향과 계획을 수립하고, 신학적인 배경을 정립하기 위해서는‘통합사목연구소’가 그 몫을 담당하기로 했었는데 이 연구소에서 우리 신학원에 도움을 요청해왔고 그때 몇 분과 함께 제가 거기에 참여해서 일을 하게 됐습니다.거의 10년 가까이 지난 일이죠 벌써. 그때 기획조정실장은 나원균 몬시뇰님이었죠. 그곳에서 제가 3년 정도 활동을 하고 그 다음에 서울교구 선교전례사목부 일을 돕게 됐습니다. 일이 일에 꼬리를 물고 온다고 계속 그런 일들이 이어져 갔습니다. 그러면서 2006년도 교구청에 노인사목부 문화지원팀이 생기고 교리신학원 동문들이 10명 정도 거기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또 그 즈음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시간을 활용한 교리봉사팀(청소년국 중고등학교 사목부)가 새롭게 생기면서 그곳에서도 역시 신학원 동문들이 연결이 되어 서울교구와 관련된 교회 일들을 계속하게 됐습니다.” 아직 이야기가 한참 더 이어져야 할 것 같았다. 또 단지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신학원 동문들까지 아우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면서 아, 초대 동문회장님이 맞구나…. 새삼 다시 한 번 그 폭넓음에 존경의 시선을 보낸다.
*시노드(synod 교회회의):교회의 변화와 쇄신을 목표로 교구나 관구의 주교와 성직자들이 여는 교회회의로 주교가 관할하는 교리, 규율, 전례 등이 토론을 거쳐 결정되는, 천주교회 고유의 민주적인 성찰의 자리이다. 2003년 서울교구 시노드 폐막식에서 발표한 교구장 교서에서는 크게 ▲친교의 공동체로서의 교회 ▲함께하는 교회 ▲세상 속의 교회 ▲교육과 양성 ▲특별한 사목적 배려 등 다섯 부분으로 구성돼 있고, 특히 교회운영에서의 평신도의 역할과 위상을 강화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본당인 대문이 없는 잠원동 성당, 바로 길 건너편 아파트가 사시는 곳.
-아, 그런 일들이 있었군요. 말씀콘서트를 준비하게 된 배경까지는 아직 한참 세월을 더 거슬러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네 그런 인연으로 서울대교구의 여러 활동에 우리 신학원 동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는 것을 말씀 드렸고, 이제부터 제 얘기를 좀 이어가겠습니다.
저는 원래 은행에서 전산정보실을 맡고 있었습니다. 한데 서울교구에서 양업시스템이라는 통합전산망을 개발하게 되고 제가 일하는 은행이 이 사업을 맡게 됐는데 한 2년 간 작업을 해서 개통을 했었죠. 그때 사무처장으로 계신 분이 지금 서울대교구장이신 염수정 대주교님이었어요. 그런 인연이 있었는데 얼마 있다 그 당시 염 신부님께서 장위동 성당으로 인사발령이 나면서 주임신부님으로 오셨고 제 본당이 바로 그 장위동 성당이었답니다. 거기서 제가 사목회장을 했었네요. 그렇게 연결이 됐고 교구 쪽 일은 양업시템을 구축한 다음 서울교구 재경평의회 위원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여기서의 일은 교구의 전체 살림살이를 감독하는 것인데 실제로는 1년에 1회 정도 활동하면 됐었기 때문에 시간적인 부담은 많지 않았습니다. 재경평의회에 평신도로는 변호사 2명 회계사1명 이렇게 3명이 구성됐었죠. 한데 재경평의회 위원은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에 당연직으로 활동하게 돼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복음화위원회 위원도 겸하게 됐고 임기는 2-3년이었는데 저는 5년 간 하게 됐죠. 그 이유는 복음회위원회 위원장이신 주교님께 신학원 전 원장신부님이었던 이기락 신부님께서 사이버신학대학 설립을 제안하셨고 그 안을 주교님께서 적극 받아 들이셨어요. 그래서 현장 조사를 지시했고 결국엔 주교회의에 상정시키고 제안 발표회 행사까지 치러졌을 만큼 진행되다가 결국 안을 접게 됐던 일이 있었는데 그러면서 위원으로 5년 동안 일을 계속하게 된 거죠.”
- 말씀 중에 이기락 전 원장신부님이 등장하니까 반갑습니다. (웃음) 오랫동안 교회 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주욱 해오셨기 때문에 교회 역사를 듣는 듯한 기분이 드는데요.(웃음)
“신학원 동문들과 관련된 얘길 몇 가지 더 할까요? 조금 전에 말한 사이버신학대학을 제안하던 그 당시 서울교구 사목국장님이 민병덕 신부님이셨고 민 신부님과 함께 교리신학원 출신 동문들이 주축이 된 사목컨설팅 팀이 만들어졌습니다. 본당에서 효과적으로 사목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그 본당을 진단, 최적의 전략 수립, 실천 방안 등을 제안하는 그야말로 컨설팅 팀이었고 몇 개 본당을 실제로 컨설팅 했었습니다. 당시로서 획기적인 일이었지요. 평신도가 주축이 되어 본당을 컨설팅 한다는 것이 지금도 그렇지만 일반적인 일은 아니죠. 그 일을 우리 신학원 동문들이 함께했다는 사실이 참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우리 신학원 통신신학교육과정 담당 신부님이셨던 양해룡 신부님께서 교구 선교전례사목부로 가시면서 냉담 신자들에 대한 선교를 위해 도움을 요청하셨고 3년에 걸쳐 그것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만들고 책자를 발간하는 일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 다음 양신부님께서 복음화위원회 간사 신부로 오시게 됐고 연구발표회, 세미나 등을 몇 차례 치렀습니다. 가장 최근의 일이네요.”
복음을 살아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드디어 ‘말씀콘서트’ 얘기를 들을 수 있겠네요. (웃음) ‘말씀콘서트’,신선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돌아가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말씀하셨던 ‘새복음화’라는 과제를 우리가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까 하고 ‘복음화위원회’에서 줄곧 고민해 왔습니다. 우리 신자들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형식으로 딱딱하지 않게, 실생활에서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는 ‘나의 얘기’를 하자는 생각을 구체화한 것이‘말씀콘서트’입니다. 주제가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인데 사회자와 관객들 질문에 패널들이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고 질의∙응답 사이에 가톨릭 솔로이스츠 앙상블의 공연으로 채워졌구요. 복음화위원회 위원인 유혜숙 안나 자매가 사회를 봤고 패널로 강신모 신부님(의정부교구 사목국장), 민남현 수녀님(성바오로딸수도회), 제가 출연했습니다.
'2013 말씀콘서트' 현장. 단상의 맨 왼쪽이 회장님.(평화신문에서 발췌)
강 신부님이 ‘나중에 내가 죽으면 신자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능력있는 사제보다는 사랑의 신부로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신자들을 가르치려 하기보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줄 때 가능할 것 같다’ 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따뜻한 말씀이지요! 저는 고독사 하는 노인들의 문제 등 사람들의 눈길을 받지 못하는 이웃을 위해 내가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지금의 신자들이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기쁨을 가져다 주는 희생을 싫어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지적을 했고, 우리가 먼저 다른 사람이 예수님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말씀콘서트에 두는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질문을 드렸더니 이렇게 말씀하신다. “신자들을 복음적인 삶으로 이끄는 새로운 방법이고 지구나 본당 차원에서도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했으면 합니다. 신앙을 가르치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신자들이 체험해서 느끼고 결심하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어줘야겠죠.”
-말씀콘서트를 준비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기억에 남았는지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사회자와 패널들이 리허설 한 번 없이 당일 만나 콘서트를 진행해야 되는 상황이었는데, 미리 각본을 짜놓은 것처럼 물 흘러가듯 아주 순조롭게 진행이 잘 됐습니다. 신자들도 조는 사람 없이(웃음) 말씀과 음악에 푹 빠졌구요. 그런 분위기를 보면서 이건 정말 사람의 힘이 아니고 성령께서 하신 일이구나 하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정말 성령의 도움이었지요. ”
*‘2013 말씀콘서트’는 지난 11월 11일(월) 방배동성당에서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주관으로 개최되었다.
적극적이고 책임감 있는 선교사가 되어야
- 매 순간 바쁘게 달려 오신 것 같은데 신학원은 언제 오게 되셨는지요?
“초등학교 때 영세를 했고 가톨릭 분위기에서 성장했어요. 30대에 본당에서 사목회 총무를 했구요. 한데 어린 시절에 배운 교리로는 늘 부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죠. 신앙인으로서의 활동과 교리에 대한 기본 지식의 간극이 크다고 느꼈고 언젠가 은퇴를 하면 제일 먼저 이 차이를 극복해야겠다는 의지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퇴직하고 바로 신학원으로 달려왔죠.”
-신학원 생활은 어떠셨나요?
“재미있었죠. 다 경험하시지 않습니까? (웃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때의 생활을 반성하게 됩니다. 특히 졸업 후에 선교사로서 어떻게 자리매김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합니다. 졸업하고 나면 여러 분야에서 부름을 받게 되고 거기에 응답해서 우리들이 교회 일을 하게 됩니다. 한데 참 아쉬운 점은 우리가 좀 적극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짧게는 기껏 몇 달 일하다 책임감 없이 그만 두거나, 나는 이런 일만 하겠다고 미리 선을 그어 놓고 주인이 아닌 손님처럼 행동하는 태도, 그리고 자료를 분석해서 전략을 수립하고 그 전략을 수행할 수 있도록 뒷심을 발휘하는 선교사가 많지 않다는 것 그런 점이 못내 아쉽습니다.”
신학원 초대 동문회장님이자 선배님의 따끔한 충고를 듣고 나 자신은 어떤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순간 하게 됐다. “초대 동문회장은 2008년이 교리신학원 설립 50주년 되던 해였는데
당시 원장 신부님이셨던 이기락신부님의 부름을 받아 하게 된 겁니다. 50주년 기념 축하 미사
∙심포지엄∙ 책자 발간 등 여러 가지 행사들을 치렀습니다. 워크샵을 통해 우리 신학원 졸업생
들이 비젼을 성취하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토론도 했고, 세미나에서 신학
원이 나갈 길이 무엇인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다들 관심을 많
이 가졌던 문제였는데 반응이 대단했습니다. 그 많은 행사를 교리교육학과 44기와 종교교육학
과 34기 동문들이 주축이 돼서 준비했습니다.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분들의 헌신적인 노력 없
이는 그 큰 일들을 해낼 수 없었을 겁니다.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네요.” 우
리 신학원 동문들의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한다.
2008년 신학원 창립 50주년과 관련된 이모저모.
“신학원을 졸업하고도 본당에서 교리교사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요. 머리로 배운 신학이 생활에서의 체험과 잘 어우러져 사람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단계까지 가줘야 하는데 그러려면 신학원 과정을 마친 후에도 현실적인 어떤 수련과정을 더 거쳐야 하겠죠. 한데 그런 과정이 부족한 겁니다. 신학원 출신 선교사들이 특수 사목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것은 참 고무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선교사들이 대개의 경우는 본당에서 선교 사명을 꽃 피워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 동문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여러 안들을 생각하고 고민했었습니다. 예를 들면 지역별로 그룹화시켜서 동문회를 하자는 안이 있었죠. 북부 지역 동문회, 남부 지역 동문회 등으로 말이지요. 그렇게 해서 그 지역의 동문들이 머리를 맞대고 스터디도 하고 교안도 마련하고 현안 과제들에 대해 토론도 하고….
그간의 준비된 신학의 틀에 각자의 체험을 투사해서 자신의 신앙을 새롭게 해석하고 그것을 전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화를 좀 개인적인 차원으로 옮겨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 “질문을 드리면 대답하신 내용이 ‘편집할 필요도 없이 그대로 방송에 써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잘 정돈돼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요.”이 질문에도 바로 “다른 사람 앞에 서서 공식적인 말을 해야 하는 때가 많은데 그럴 때 사실 저도 긴장이 됩니다. 하지만 듣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주어진 시간 안에 나의 이야기를 잘 할 수 있게 정신을 집중해서 말합니다. 이렇게 하면 치매 방지에도 톡톡히 역할을 하겠죠. (웃음)”
-학교에서 전공도 전산 분야였었나요?
“아뇨, 저는 농학을 전공했습니다. 한데 몸이 아파서 하고자 했던 일을 접고 상경 계통의 공부를 더 하고 은행에 취직을 했죠. 한데 일이 좀 재미가 없고 저하고 안 맞았습니다. 그래서 은행에서 해외 연수도 다녀오고 분야를 바꿔 전산 쪽 일을 하게 됐죠. 저는 이쪽 일이 더 잘 맞고 좋습니다. 지점장도 10여 년 가까이 했지만 다시 전산본부장을 맡게 되면서 우리 교회의 전산구축망인 양업시스템을 개발하게 되고 이러면서 교회와 더욱 긴밀하게 인연을 맺게 된 거죠.”
마음의 어머님 같은 수녀님
-오랜 교회 활동 중에 기억에 남는 분은요?
“초등학교 때 교리를 가르쳐 주신 수녀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예요. 지금은 가끔 치매기를 보이기도 하는 (웃음) 90 세가 넘은 할머니 수녀님인데, 평생 마음의 어머님이세요. 신앙의 첫 씨를 뿌려 주시고 어린 시절 엄격하게 신앙의 가르침을 주신…. 또 한 분은 30 대에 아현동 본당에서 만난 조순창 신부님이예요. 존재감 없고 이 세상에 없는 분처럼 사시는, 40 년 동안 한결 같고 물과 같은 분, 화려한 반찬이 아니고 ‘밥’ 같은 분. 그런 신부님과 인간적으로 가장 가깝습니다.”
-마음에 두는 성경구절은요?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1테살 5,16-18 ) 이 구절이 가장 좋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하느님을 생각하는 마음인 것 같습니다. 모든 걸 공짜로 받은 것인데, 감사한 후에 찬미와 찬양, 기도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요즘 본당에서는 뭘 하시는지요.
“노인대학, 요즘은 실버 아카데미라고 하죠, 우리 본당은 ‘장수대학’이예요! 거기서 성가 지휘합니다. 제가 30대 아현동 본당에서도 성가대 지휘를 했었거든요.”방긋 웃으신다. 복음화위원회, 신학원 동문회 이야기를 하실 때와는 표정이 다르시다. 한결 편안해 보이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신다. 이 참에 개인적인 질문을 얼른 드렸다. 자제분은요? “아들만 둘입니다. 올 해 두 달 만에 둘을 모두 결혼시켰네요.(웃음)” 대문이 없는 본당 바로 길 건너편 아파트에 부부가 ‘신혼 모드’로 살고 계시다고.
잠원동 본당 성전 입구 모습과 장수대학 안내 푯말
울림이 있는 사람들을 뵙고 돌아서는 길은 늘 마음이 풍요롭다. 늦은 가을 은행잎이 뚝뚝 떨어져 흩어지는 쓸쓸함에도 불구하고 혼자 환한 얼굴로 그 길을 걸어왔다. 더군다나 오늘은 온화한 청년 한 분을 만난 거니까.
글·사진 김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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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박종택 선배님의 삶과 생각이 아름답고 또 그렇게 잘 전달해 주셨습니다.
[울림이 있는 사람들] 에서 수산나 자매님의 깨끗한 마음이 잘 들어나 더 감동적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