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 理想鄕 說話에 나타난 道敎思想 甘菊花베개에누워
2005.03.31.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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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 理想鄕 說話에 나타난 道敎思想
I. 序 論
어느 민족에 있어서나 그 민족 전래의 說話는 그들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무엇 보다 口傳說話이든 文獻說話이든 간에 그것은 그 민족 구성원들의 피를 타고 내려온 영혼의 결정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므로 어떤 민족의 說話를 살펴보면 그 민족의 정서, 상상력, 기질에 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說話 중에서도 神話는 그 민족의 내력에 대해 말해 주는 것이 많아 그 민족의 自尊心․矜持를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므로 神話는 특히 그 민족 구성원이 신성시하는 것이다. 또 民譚은 그 민족의 詩的 재능을 보여 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편 傳說은 그 민족의 삶의 역정과 관련된 것이 많다. 그래서 이 神話․民譚․傳說은 어떤 민족의 靈肉을 함께 알아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연구 가치가 있다 할 것이다.
이에 본고는 우선 우리 전래의 많은 說話 중에서 樂園․理想鄕․仙界 모티프의1) 것만을 대상으로 몇 측면에서 고찰해 보고자 한다. 지금까지 우리의 理想鄕 傳說이 우리의 民族性과 民族의 思想․感情의 一端을 표현하고 있다는 말은 있어 왔지만2) 이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는 아직 미흡한 것이 우리 학계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구의 대상은 바로 神仙의 세계를 다룬 ≪記聞叢話≫所載 <完平李文忠公元翼>으로 대표되는 仙界傳說과 이와 여러 점에서 유사성을 가진, ≪靑邱野談≫所載 <訪桃園權生尋眞>로 대표되는 이른바 桃園傳說들로 한정한다. 이 논문에서는 주로 文獻說話만 연구 대상으로 했지만 예외로 우리의 대표적인 桃源傳說의 하나라 할 <尙州 五福洞> 傳說만 口碑說話인데도 대상에 포함시켰다.3)
필자는 이들 傳說을 대상으로 그 깔려 있는 道敎思想은 구체적으로 어떤 성질의 것이며 그것은 道家思想과 어떤 관계, 어느 만큼의 거리에 있는가도 考究해 보고자 한다. 또 이들 傳說이 이웃 나라 中國의 傳說과 어떤 관계에 있으며 우리 傳說 특유의 성격은 어떤 것인가도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의 傳說은 우리 민족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살아오는 동안 우리의 祖先들이 대대로 전승해 온 祖孫의 공동작이므로 거기에서 우리 민족의 精神史의 香薰을 맡고 우리 민족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 傳說에 대한 연구는 뜻 있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들 傳說에 대한 연구는 주로 神話批評의 방법론에 의지했음을 밝혀둔다.
Ⅱ. ‘桃源圖’로 그려진 民衆의 꿈
앞서 脚註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우리 민족에게는 理想鄕 모티프의 傳說이 상당히 많다. 視角에 따라서 이들 傳說은 우리 先人들 고유의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中國 傳說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필자는 먼저 우리의 전형적인 理想鄕傳說의 하나인 <靑鶴洞記>을 대상으로 어떠한 논거로 그러한 상반된 주장이 나오게 되었는가를 알아보고자 한다. 그런 다음 이러한 傳說들에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성격을 찾아보고 거기에서 우리 先人들 특유의 정신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高麗의 문인 李仁老가 智異山에 있다고 들었다 하여 그의 ≪破閑集≫에 쓴 이 傳說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그는 서두에서 智異山의 위치, 산세 등을 간단히 서술한 다음 옛 노인들이 전하는 말이라고 전제하고 그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아래와 같이 明引하고 있다.
그 속에 청학동이 있는데 길이 매우 협착하여 겨우 사람이 다닐 수 있고, 몸을 구부리고 수십리를 가서야 허광한 경지가 전개된다. 거기엔 모두 양전(良田) 미토(美土)가 널려 있어 곡식을 심기에 알맞았으나, 거기엔 청학만이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고 대개 여기엔 옛날 세상을 피해 사는 사람들이 살았기에 무너진 담과 구덩이가 가시덤불에 싸여 남아 있다.
(其間有靑鶴洞 路甚狹纔 通人行俯伏經數里許 乃得虛曠之境 四偶皆良田 沃壞宜播植 唯靑鶴棲息其中 故以名焉 蓋古之遁世者所居 頹垣壞塹 猶在荊棘之墟))
일종의 紀行隨筆이라 해야 할 이 글에서 위와 같이 말한 李仁老는 이어 자신이 그의 堂兄과 함께 그곳을 찾아 나섰으나 찾는데 실패하고 말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글 중, 위에서 인용한 부분을 中國 傳說의 모방이라고 말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은 北京大學 敎授 韋旭昇이다. 그는 이 傳說이 晋代 末에서 宋代 初까지 살다 간 中國人 陶淵明이 쓴 <桃花源記>의 模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주장에 대한 타당성을 따지기 전에 우선 <桃花源記>란 어떤 글인가 부터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는 中國의 한 명승지 武陵桃源을 유토피아로 그린 글이다. 줄거리는 晋나라 太元 연간에 한 어부가 배를 저어 가다가 길을 잃고 우연히 복숭아꽃이 만발한 시내를 지나 한 마을에 닿았다. 그것에서는 노인과 아이들이 편안하고 즐겁게 살고 있었다. 이들은 그 조상이 秦나라 때 난을 피하여 이곳으로 들어 온 후 외부와 내왕을 끊고 이곳에서 살아왔다고 말한다. 어부는 그곳 사람들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고 집으로 돌아 왔는데 그 뒤 사람들이 그곳에 다시 가보려 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韋旭昇이 <靑鶴洞記>이 <桃花源記>의 模作이라고 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이 두 傳說의 내용이 같다는 것이다. 곧 그 마을에 이르게 되는 환경에 대해 <桃花源記>이 「방초 우굿하고 낙화 분분하다(芳草鮮美 落英繽粉)」고 하고 있는데 비해 <靑鶴洞記>도 「복숭아꽃 살구꽃이 만발하였다.(桃杏掩映)」고 하고 있고 그 밖에도 <桃花源記>와 <靑鶴洞記>은 다음과 같은 구절의 내용이 서로 닮아 있다는 것이다. 仙境의 입구에 있어서 前者가 「어귀로 들어가니 초입은 극히 좁아 겨우 사람이 다닐 수 있다. (初極狹 纔通人)」고 하고 있는데 後者도 「길이 심히 좁아 겨우 사람이 다닐 수 있다.(路甚狹 纔通人行)」고 하고 있고 그곳을 통과한 후의 광경에 대해서 前者가 「다시 수십보를 걸어가니 갑자기 탁 트인 곳에 땅이 넓고 평평한데 집들이 정연하였다.(後行數十步 豁然開朗 土地平曠 屋舍嚴然)」고 하고 있는데 後者도 「허리를 구부리고 몇 리쯤 가서야 넓고 빈 지경에 이르는데 사방이 다 양전옥토로서 곡식을 심기에 적합하다(俯伏經數里許乃得虛曠之境 四偶皆良田沃壞 宜播植)」고 하고 있다. 또 그곳 사람들에 대해서 前者가 「선조 때 秦나라의 난을 피하여 -中略- 세상과 등진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다시는 나가지 않았다. (先世避秦時亂 - 中略- 來此絶景 不復出焉)」고 하고 있는데 後者도 「대체로 옛날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살던 고장(蓋古之遁世者所居)」이라고 하고 있고 마지막으로 前者가 「태수가 그것에 사람을 보냈으나 -中略- 그 길을 다시 찾지 못하였다(太守卽遺人隨其往- 中略- 遂不復得路)」고 하고 있는데 後者도 필자가 「그곳을 찾기로 했으나 -中略- 끝내 찾지 못했다(乃相約尋此洞 - 中略- 卒不得尋焉)」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韋旭昇은 李仁老가 <靑鶴洞記>에서 그곳을 찾다 실패하고 돌아 온 후 우연히 <桃花源記>을 읽은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이는 시인들의 관용적인 수단에 불과하며 陶淵明이 그 보다 7백 여년이나 전의 사람인데 李仁老의 높은 학식과 陶淵明의 지명도로 보아 이미 읽어 알고 있었을 것은 필연적이라고 말하고 있다.4) 그의 주장은 결론적으로 <靑鶴洞記>은 <桃花源記>의 모방작이라는 것이다.
한편 孫晋泰는 李仁老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만일 桃源傳說이 당시 中國에서 高麗에 수입되어 민간에 성행되어 거기에서 靑鶴洞傳說이 생겼다면 박학한 그가 桃源傳說을 후일에 읽었을리 없으므로 靑鶴洞傳說은 朝鮮의 독특한 것인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5) 이 두 주장은 각각 어떤 면에서 타당성을 가지고 있으나 둘 다 논리에 닿지 않는 점도 없지 않다. 편의상 먼저 孫晋泰의 주장부터 살펴보기로 하겠다. 지난 날 우리 先人들, 특히 거짓을 말 할 줄 모른 선비들의 기질로 보아 그가 李仁老와 같은 명망 있는 선비의 체험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조금도 탓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그의 주장은 잘못 되었다고 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의 주장은 하나의 모순을 안고 있다. 李仁老는 자신이 靑鶴洞을 찾아 나섰다가 찾지 못하고 돌아 온 후 우연히 <桃花源記>을 읽었다고 하고 있는데 바로 이것이 孫晋泰의 주장이 억지스러운 것임을 말해 준다. <桃花源記>은 李仁老 당시 보다 7백여년 전의 글인데 孫晋泰의 주장대로라면 李仁老가 靑鶴洞을 찾아 나설 때까지 수 백년 동안 高麗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가 그것을 찾지 못하고 돌아 온 그 극히 짧은 시일 동안에 들어 왔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쉬 납득이 가지 않는 이야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韋旭昇의 경우로 두 글이 다섯 가지 점에서 유사함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靑鶴洞記>이 <桃花源記>의 영향하에 쓰여졌다고 하고 있는 그의 주장은 확실히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의 주장을 전적으로 옳다고 하기는 어렵다. 세인이 다 알다시피 지금도 智異山 깊숙이 靑鶴洞이란 마을이 실재해 있다. 그리고 최근까지만 해도 그 마을 사람들은 바깥 세상과의 내왕을 거의 끊다시피 하고 살아 왔다. 그러니까 李仁老가 찾지 못했을 뿐 반드시 지금의 그 靑鶴洞이 아니더라도 당시 그와 같은 마을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李仁老가 들은 이야기는 그러한 실재한 마을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 것이다. 또 韋旭昇의 말과 같이 두 이야기가 몇 가지 점에서 공통성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을 반드시 韓國의 것이 中國의 것을 淵源으로 한 것이라는 증거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세계의 說話들에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크게 격해 있고 인종과 언어가 다른데도 불구하고 기이하다 할만큼 같은 이야기들이 많다. 神話批評의 측면에서 이미 이에 대한 상당한 연구 축적이 쌓여 있고 그러한 話素들에 대한 圖式까지 나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점을 헤아린다면 어떤 說話가 인근 나라의 說話와 몇 가지 공통 話素를 가지고 있다 해서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淵源으로 한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더구나 韋旭昇의 <靑鶴洞記>을 <桃花源記>의 模作이라고 한 말은 극단론인 데가 있다 할 것이다. 李仁老의 글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한편의 紀行隨筆에 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글 속의 靑鶴洞에 관한 부분은 口碑說話의 採錄이다. 민간에 전해 내려오고 있는 傳說을 紀行文 속에 수용한 것을 「模倣作」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가장 기본적인 장르 개념에조차 무지한 사람의 말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만 가지고는 <靑鶴洞記>가 <桃花原記>를 淵源으로 그의 영향하에 만들어진 傳說인가, 韓民族의 독창적인 것인가를 단정적으로 말 할 수는 없다. 다만 둘 사이에 다소의 유사성이 있는 것만은 인정되고 그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靑鶴洞記>에서 우리는 우리 說話 특유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智異山의 산세를 그리고 있는 이 글의 전반부와 대울타리에 초가들이 복숭아꽃 살구꽃 핀 사이로 은은하게 비치고 있는 花開縣 山谷 마을을 그리고 있는 중반부가 특히 그렇다. 또 「무너진 담과 구덩이가 가시덤불에 싸여 남아 있다」고 한 靑鶴洞에 대한 傳說의 인용문에서도 우리는 韓國 특유의 이제는 없어진 옛 마을 터의 이미지를 대할 수 있다.
<靑鶴洞記>뿐 아니라 理想鄕 모티브의 우리 傳說들은 그 限定話素에 있어서 서로 상당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우리 說話 특유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는 특별히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거기에는 우리 민족의 혼과 꿈이 서려 있다고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靑鶴洞記>을 비롯한 理想鄕 傳說들이 공유하고 있는 話素들을 살펴보고 거기에서 우리는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가를 考究해 보고자 한다.
이들 說話에서 발견되는 가장 뚜렷한 공통점은 첫째 理想鄕이 있는 것이 산 속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점 中國의 경우와 다른 면모를 보여 주는 것이다. 小川環樹는 中國 仙境說話의 첫째 공통 요소를 그 소재가 名山이나 海島로 되어 있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6) 그런데 韓國의 경우 이 논문에서 텍스트로 취한 傳說 18편 중 仙境의 소재가 海島로 되어 있는 것은 <識丹邱劉郎漂海> 한 편뿐이고 그 외는 거의 모두 산 속으로 되어 있다.7)
인간은 본래 산을 天界와의 통로, 모든 영혼의 歸宿地요 神들의 居所이며 인간이 理想하는 樂園으로 보아왔다.8) 韓國人에 있어서도 산은 신성한 곳이다. 檀君神話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建國神話의 장소적 배경이 山上이 되어 있는 것만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中國의 초기 민간신앙은 주로 三神山을 찾아가 거기에 있는 僊人을 만나 그로부터 不死藥을 얻음으로써 長生不死를 기하고자 하는데 특징이 있다. 그런데 中國人들은 그 三神山이 渤海의 동쪽 에 있다고 믿어 왔다.9) 우리의 先人들은 그들이 말한 그 三神山이 渤海의 동쪽에 있는 땅, 곧 韓半島에 있다고 생각했다. 李晬光의 ≪之峰類設≫은 「세상에서 말하기를 三神山은 우리 나라에 있으니 金剛山은 蓬萊山, 智異山은 方丈山, 漢拏山은 공동山(世謂 三山及在我國 以金剛爲蓬萊 智異爲方丈 漢拏爲崆峒)」이라고 하고 있다.10)
韓國의 理想鄕傳說에는 그 중에서 金剛山과11) 智異山이 자주 등장하고 있는데 두 산 중에서도 智異山은 <毛仙接話渭城館> <餉山果渭城逢毛仙> <南西溪趁>등 세 편의 傳說에 仙界가 있는 곳으로 나와 있다. 智異山은 아득히 먼 옛날부터 우리의 先人들에게 神靈스런 산으로 여겨져 왔다. ≪新增東國與地勝覽≫이 「智異山은 太乙 -北極神- 이 그 위에 居하기 때문에 많은 神仙들이 모이는 곳이다.(諺傳 太乙居其上 群仙之所會)」라고 하고 있는데서도 이를 알 수 있다.12) 많은 傳說들이 仙界가 우리 나라의 名山에 있다고 하고 있는 데는 우리 先人들의, 아름다움을 「수놓은 비단 같은 땅(錦繡江山)」이라 한 우리 國土에 대한 자랑과 애정이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여기에 또 스스로 하늘이 점지해 준 복된 땅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 온 韓民族의 자긍심이 나타나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 우리 傳說 속의 理想鄕은 인간세상과 隔해 있다는 것이 공통적인 속성이다. 그 중에는 <百年光陰蟪蛄郡>에 등장하는 연꽃이 만발한 仙界와 같이 인간세상에서 1만 7천리나 떨어져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실제 거리를 말해 인간세상에서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더라도 傳說 속의 理想鄕은 거리 이전에 우리가 가려 해도 갈 수 없는 곳이라는 점에서 그 곳이 隔世의 世界라 함은 더욱 강조되어 있다. 우리 傳說에서 그곳은 인간이 가고 싶다 하여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고 누구로부터 초대를 받거나 우연히 가게 되는 그런 곳이다. 이 세상 사람을 그 곳으로 안내하는 주체는 다양하다. 그 중에서 안내의 주체가 相國 李元翼을 길에 寶玉이 깔려 있고 오색 구름과 仙鶴이 나는 神仙들의 世界로 데려다 주는 경우 (<李相國元翼> <完平李文忠公元翼>)와 같이 중(僧)으로 되어 있는 것이 가장 많다.13) 한 校生이 仙府에 가서 장가를 가는 이야기 <關東道遭雨登仙>의 주인공은 한 老人의 안내로 그곳에 가게 된다. 또 <識丹邱劉郎漂海>에서 세 사람의 어부를 神仙들의 섬 「丹邱」으로 데려다 주는 것은 한 바탕의 강풍이다. 口碑說話 <尙州五福洞>傳說은 좀 특이해서 한 나무꾼이 사슴을 쫓아가다 貧富가 없는 理想村 「五福洞」을 찾게 된다. 본래 인간의 삶은 고통스런 것이다. 거기다 지배층의 핍박, 수탈과 부림에 시달려야 하는 피지배층이었던 우리 先人들의 삶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짓밟히고 빼앗겨 온 민중은 그러한 세상에서 멀리 떠나버리고 싶은 충동을 수없이 받았을 것이다. 傳說 속의 理想鄕이 인간세상에서 저 멀리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 민중이 그러한 괴로운 세상에서 천리 만리 벗어나 버리고 싶은 꿈이 엉겨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셋째, 우리 傳說 속의 理想鄕은 <靑鶴洞記>에서 본 바와 같이 기름진 농토가 넉넉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그곳이 産物이 풍부한 곳이라 함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 전형적인 예로 <訪桃源權生尋眞>을 들 수 있다. 權生이 한 첨지의 초대로 방문하게 된 桃源마을의 앞에는 「良田美土」가 넓게 펼쳐져 있다. 이는 이 마을에 主穀의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마을에는 그 밖에도 여러 가지 産物이 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마을에는 닭, 개, 소 등 가축이 자라고 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이 傳說은 또 이 마을 가까이에 있는 산에는 노루, 사슴, 돼지, 양이 있고(至於山內則 有獐鹿猪羊之屬)산 아래에는 3백여개의 벌통을 늘어놓고 있다(蜜筒數三百列置于山底)고 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또 가까운 못에서 손쉽게 민물고기를 잡고 있다. 이는 이 마을이 온갖 먹을 것이 풍족한 곳이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지날 날 민중들에 있어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하나는 배고픔이었을 것이다. 흉년이 들면 굶어 죽는 사람이 헬 수 없이 많았다는 역사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다.14) 그러므로 우리의 先人들에 있어서 理想鄕은 우선 배고픔이 없는 곳이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조상들로 하여금 이 傳說 속의 桃源마을과 같은 먹을 것이 풍부한 樂園을 그리게 하지 않았나 한다.
넷째, 우리 傳說 속의 理想鄕은 사람들이 다투지 않고 和樂하게 사는 마을, 貧富가 없는 마을이다. 그곳은 또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고 鳥獸가 즐겁게 뛰노는 곳이다. 그것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說話는 <尙州五福洞>傳說이다. 이 傳說의 구술자는 그 마을이 「부자도 구차한 자도 없고 생존경쟁 없이 매우 安逸한 理想 村樂」이라고 하고 있다.15) 또 <訪挑源權生尋眞>의 樂園마을 사람들의 삶에서도 우리는 理想的인 共産社會의 면모를 볼 수 있다. 이 마을 산 아래에는 3백여개의 벌통이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특별한 주인이 없고 필요하면 서로 가져다 먹는다(一洞別無主者 互相推用矣)」라고 하고 있는 데에 그것이 잘 나타나 있다.
이들 마을은 아름다운 꽃이 만발해 있고 온갖 鳥獸가 노래하고 뛰노는 곳으로 그려져 있다. <百年光陰蟪蛄郡>의 仙界에는 亭子 앞 물에 많은 연꽃이 피어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 주고 있는 것으로(萬朶芙蕖嬌映水面)되어 있다. 또 <設白帳避兵獲安> <洪斯文東岳遊別界>에 나오는 理想鄕에는 배꽃이 만발해 있다. <訪挑源權生尋眞>의 桃源마을에는 가축의 울음소리가 동구 밖에까지 들리고 있고 <完平李文忠公元翼> <李相國元翼>傳說에는 鶴 또는 仙鶴이 날고 있다. 絶對王政 하에서 산 우리의 祖上 절대다수는 태어나면서 벌써 被支配, 하층민 신분이 낙인 찍히게 되어 있었다. 일단 신분이 그런 이상 그들은 아무리 애써도 부림당하고 빼앗기고 짓밟히는 신세를 면할 수 없었다. 그러한 삶에 한이 맺힌 우리의 先人들은 계급도 貧富도 없는 세상, 다 같이 和樂하게 사는 세상,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고 짐승들이 뛰노는 樂園을 동경했을 것이고 그것이 위와 같은 유의 理想鄕을 그리게 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話素들은 우리 민족의 이웃 사랑, 평화 사랑, 자연 사랑의 타고난 善性을 드러내 보여 주는 것이라 해도 될 것이다.
다섯째, 韓國의 傳說 속의 理想鄕은 전쟁 등 환난을 피해 들어 간 사람들이 건설한 마을이라 하고 있는 점에서 공통성을 보여 주고 있다. 孫晋泰가 韓國의 전형적인 理想鄕 傳說로 본 <尙州五福洞>傳說도 사람들이 옛날 「亂을 피하여」산중으로 들어가 그것에 그러한 마을을 건설했다고 하고 있다. 이 話素는 說話에 따라 세부적인 면에서 약간씩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어떤 說話는 仙界에 가서 살던 사람이 다시 집으로 돌아 왔다가 곧 난리가 날 것이니 돌아오라는 그것으로부터의 전갈을 받고 되돌아가 亂을 피하게 된다고 하고 있다. <曳杖翁引人成親> <關東道遭雨登仙>이 그 예가 된다.16) 避難話素의 또 다른 異形은 난리를 만난 사람을 仙界에서 사람이 와 구해 준다고 하는 것이다. <設白帳避兵獲安>傳說의 경우 江華人 洪雋이 오랑캐의 난으로 위기에 처하자 그전에 仙界에서 만났던 중이 찾아 와 구해 준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우리 민족만큼 자주 外侵에 의한 전쟁에 시달리면서 살아 온 예도 드물 것이다. 전쟁은 王相에 있어서 생사가 엇갈리고 체제의 존망이 결정나는 중대사이기도 하지만 백성들에 있어서도 더욱 무서운 환난이었다. 그들은 통치자에 등을 떼밀려 제일 먼저 가장 위험한 싸움터에 나서 목숨을 바쳐야 했다. 직접 싸움에 나서지 않는 사람들도 무사하기는 어려웠다. 그들은 밀고 밀리는 싸움 통에 집이 불타고 농토는 황폐화했으며 약탈당하고 살상 당하기 일쑤였다. 전쟁이 없을 때도 태평한 세월은 드물었다. 아무리 조용히 살고 싶어도 끊임없이 환난이 닥쳐오는 것이 인생살이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전쟁, 환난이 없는 세상에 대한 동경이 인간세상과 등져 내왕을 끊고 사는, 우리 先人들이 만든 理想鄕 傳說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여섯째, 이것은 세계적으로 공통성을 띤 것이기도 한데, 理想鄕. 仙界에서의 시간은 인간세상의 시간과 다른 것으로 되어 있다.17)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곳에서의 시간은 인간 세상의 시간과 「다르다」고 하기 보다 「훨씬 느리게 흐른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18) 그러한 이야기의 우리 說話는 상당히 많은 편인데 그 중에서도 그것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것은 <識丹邱劉郎漂海>다. 미역을 따려고 배로 바다에 나간 劉同知는 갑자기 불어닥친 서북풍을 만나 仙界 丹邱에 漂着한다. 劉同知는 그곳에서 5일을 머물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와보니 부모와 처자식은 이미 죽은지 오래고 손자가 집주인이 되어 있다. 仙界의 하루는 인간세상의 10년으로 그 동안 50년의 세월이 흘러갔다는 것이다.
<南西溪趁>의 경우도 시간 흐름에 관한 이야기는 비슷하다. 西溪 南趁은 종에게 편지를 주면서 智異山 靑鶴洞에 가 그곳에서 바둑을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주고 답을 받아 오라고 한다. 종은 南이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런데 종이 靑鶴洞에 들어 갈 때 2월이던 것이 나올 때는 9월로 추수가 한창이다. 편지를 전하고 답을 받아 온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인간 세상에서는 6개월 이상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여기에는 인간 생명의 한계성을 초월하고자 하는 우리 조상들의 꿈이 서려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生은 일회성이요 70세쯤이면 장수한 것으로 받아 들려질 만큼 有限性을 가진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에게 인간 세상에서의 세월의 덧없음에 대한 허망함을 심어 주었을 것이고 그래서 사람들은 꿈속에서나마 시계가 느리게 가는 세상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話素에는 우리 先人들의 不老長生에의 희원이 스며들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마지막 공통점은 仙界를 방문한 사람이 집으로 돌아 왔다가 그곳을 다시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19) 그러나 이야기는 그가 그곳에 다시 찾아가게 되는 경우와 그곳을 다시 찾지 못하는 경우로 나누어진다. 그곳을 찾으려하다 실패하고 마는 이야기는 陶淵明의 <桃花源記>이 그 淵源이 되고 있는 것 같다. <桃花源記>에서 桃花源을 방문해 환대를 받은 어부는 몇 일 후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이에 그 마을 사람들은 「바깥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不足爲外人道也)」고 당부한다. 그러나 그는 자기 배로 집으로 돌아오면서 곳곳에 표시를 해 두지만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 말을 들은 그곳 太守는 곧 사람을 시켜 그와 함께 가서 그곳을 찾아보도록 하지만 표시가 모두 보이지 않아 결국은 다시 찾을 수 없었다고 하고 있다. 우리 說話의 경우 우선 李仁老가 <靑鶴洞記>에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傳說의 마을 靑鶴洞을 찾으려 하지만 실패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이 글의 결말에서 「어떻게 유자기와 같은 선비를 만나서 나도 그것을 한번 찾아가 볼 것인가(安得有高尙之士劉子驥者20)一往尋焉)」하고 탄식하고 있는 것이다.
또 <尙州五福洞>傳說도 세상 사람들이 그곳을 찾아가려 했으나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고 있고 그밖에 <李相國元翼> <完平李文忠公元翼>說話에서의 李元翼, <有一公子王室之胃也>의 公子, <訪桃源權生尋眞>의 權進士도 한번 仙界에서 나온 후 다시 그곳을 찾으려 하나 모두 실패하고 만다. 이것은 그러한 樂園․理想鄕․仙界는 사람들의 꿈일 뿐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의 인식이 만들어낸 이야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先人들은 이 세상에서와 같은 배고픔과 전쟁과 병고와 노쇠, 죽음이 없는 理想의 땅에 대한 동경에서 그러한 「靑鶴洞」 「桃源」 「五福洞」과 같은 마을 이야기를 만들고 비록 白日夢이긴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거나 듣는 동안만이라도 인간 세상의 시름을 잊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눈앞의 현실은 여전히 꿈속에 끌려들기 전의 고통에 찬 風塵世上 그대로 일 뿐이다. 거기서 사람들은 안타깝고 아쉽기는 하지만 우리들 인간에게 그러한 樂園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것이 어쩌다 방문하게 되었지만 다시는 찾아갈 수 없는 理想의 마을 이야기를 만들게 한 것이라 할 것이다.
한편 그래도 아쉬움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만든 이야기가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니 그것이 거기서 돌아온 후 그 理想의 마을을 다시 찾아가는 것으로 되어 있는 說話라 할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曳杖翁引人成親>說話다. 이 說話의 주인공 咸永龜는 우연히 桃源에 이르게 되어 그 곳의 한 미인과 결혼해서 거기서 살게 된다. 그는 3년 후 집으로 돌아오게 되지만 곧 난리가 날 것이니 돌아오라는 그 아내로부터의 전갈을 받고 되돌아가 이듬해에 일어난 壬辰倭亂을 피할 수 있었다 한다.21)
<百年光陰螇蛄郡>傳說의 주인공 黃一悳도 仙界 螇蛄郡에 가서 그곳 郡君의 사위가 되어 살다가 집으로 돌아오나 3개월 후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있다.
理想鄕에 대한 미련을 끝내 버리지 못한 데서 나온 이야기로 보아야 할 이러한 說話는 숫적으로 그곳을 다시 찾지 못했다는 說話보다 적다. 그리고 이들은 대체로 이야기의 짜임새도 조잡하고 황당한 요소가 더 많아 說話文學으로서의 가치면에서 다시 찾지 못했다는 쪽보다 떨어진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理想鄕 說話는 그곳을 다시 찾을 수 없었다는 끝맺음을 하고 있음으로써 그 이야기를 하던 사람이나 듣던 사람이 다 같이 아쉬운 한숨을 내쉬고 고통스럽지만 어쩔 수 없는 눈앞의 현실로 되돌아오고 있는 경우가, 그러한 아쉬움 때문에 사람들을 더욱 강하게 끄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한 가지 주인공이 仙界나 理想鄕 또는 인간세상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說話에서 특이한 면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거기에 우리의 전통사회가 강하게 가지고 있던 가족에 대한 지극한 애정, 부모에 대한 강한 효성이 비치고 있다는 것이다. <曳杖翁引人成親>의 咸永龜가 아름다운 아내와 자식을 낳고 잘 살고 있던 桃源에서 기어이 되돌아가려 한 것은 그의 노모를 뵙고자 해서였다. <百年光陰螇蛄郡>의 黃一悳은 고향이 그리워 仙界를 떠나오지만 그곳에 두고 온 가족이 그리워 다시 돌아가고 있다. 理想鄕 說話에 이러한 이야기가 끼어 들어 있는 것은 우리 조상들이 가족에의 강한 애정, 부모에 대한 강한 孝誠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일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 같은 理想鄕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나라의 경우와 다른 韓國 說話 특유의 아름다운 면모라 해도 될 것이다.
Ⅲ. 理想鄕傳說과 道家․道敎思想
理想鄕傳說에서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내면 세계에 관한 많은 것을 읽을 수 있다. 그 중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가장 두드러진 정신적인 면은 거기에 道敎思想이 짙게 나타나 있다는 사실이다. 다 알다시피 道敎는 中國에서 일어나 우리 나라에 흘러들어 온 종교다. 이 종교의 원류는 中國의 太平道와 五斗米敎에서 찾을 수 있다. 太平道는 後漢 順帝때 五行思想, 巫術, 醫術 등에 밝은 于吉이 만든 종교집단이다. 그는 道書를 낭독하고 符籍을 담궜던 물로 병자를 고쳐 많은 신도를 모았다. 그 뒤 張角이 이를 이어 받아 敎主가 되어 그 조직을 굳게 하고 세력을 키웠다. 張角은 徒衆이 크게 늘어나자 武裝蜂起로 천하를 도모하려 했다. 이것이 바로 黃巾賊의 亂으로 張角은 이 난에서 관군에게 패해 죽고 말았다.
五斗米敎는 太平道보다 약간 늦은 後漢 桓帝, 靈帝 시대에 생겨났다. 당시 張陵이 修道에 전념하면서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어 수만의 신도를 모아 종교집단을 형성했다. 五斗米敎는 張陸의 손자 張魯에 와서 敎法이 확립되고 조직이 정비되었는데 뒤에 그 명칭이 天師道로 고쳐졌다. 天師道는 北魏의 寇謙之에 의해 개혁이 이루어져 新天師道가 되었는데 이것이 그 후의 道敎가 되었다.22)
이와 같이 하여 하나의 종교로 자리 잡은 道敎는 약간의 선후가 있으나 三國時代에 儒敎․佛敎와 함께 우리 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道敎의 韓國 전래에 관한 공식적인 기록은 ≪三國史記≫에 나타나 있는 것으로 高句麗 榮留王 7년(624)에 들어 왔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史家들은 실제는 그보다 상당히 빠른 4세기말에 들어 온 것으로 보고 있다.23) 우리 나라에 들어온 道敎는 中國에서의 그것과 상당히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韓國의 道敎는 무엇보다 中國에서와 같은 정통 종교집단의 모양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 첫째 다른 점이다. 어떤 신앙이 제대로의 면모를 갖추려면 몇 가지 요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道敎의 경우도 예외일 수는 없으니 道敎가 종교로 받아들여지려면 우선 道觀이라는 道場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주관하는 道士가 있어야 하며 거기에 모여 道를 講하고 기도하는 신도가 있어야 한다. 太平道만 보아도 江浙地方에 道場 「精舍」가 있었고 張角이란 道士가 있었으며 그에게 많은 신도가 몰려들었었다. 五斗米敎도 「義舍」란 일종의 무료숙박시설이 있어 그것이 道場의 역할을 했으며 張魯가 道士로 많은 신도를 거느리고 있었다.24)
그러나 韓國에 들어온 이후의 道敎는 그러한 정통 道敎가 아니고 이를 믿는 사람들이 名山大川 등을 찾아 가 사당을 지어 놓고 거기서 기원을 하는 체계가 잡혀 있지 않은 민간신앙에 불과했다.
道敎는 본래 古代의 민간신앙을 기반으로 하여 神仙說을 그 중심에 두고 거기에다 道家․易理․陰陽五行․讖緯․醫術․占卜 등의 論法 내지 理論과 巫俗的인 신앙을 보태고 佛敎의 체제와 조직을 흉내내어 뭉뚱그려진 것이다.25) 이 종교에는 또 그 위에 儒敎的인 요소까지 들어 있다. 道敎는 초기에 佛敎․儒敎와 상호 반발 또는 논쟁을 벌이는 일이 있었으나 결국은 깊숙이 융합되어 동아시아에 流行했다고 한 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26)
韓國에 들어 온 이후의 道敎에는 위의 여러 가지 요소들에 韓國 특유의 巫俗的인 요소까지 합쳐져 더욱 복잡한 宗敎混合現象(syncreticism)을 띠게 되었다.
이제 우리의 理想鄕傳說에서 그 중 몇 가지 사상들을 추출해 보기로 하겠다. 이들 傳說에서 佛敎 思想的인 면은 비교적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이들 傳說에 나타나 있는 仙界에는 연을 심은 못이 있거나 연꽃이 피어 있다고 하고 있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것은 佛敎思想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有一公子王室之胃也>에서 왕실의 후예인 한 公子는 꿈속에 본 仙界를 찾아가는데 거기에는 華亭과 함께 蓮沼가 있다. <百年光陰蟪蛄郡>에서 仙界에 초대되어 간 黃一悳도 그곳 「亭子 앞의 맑은 물에 많은 연꽃이 피어 있었다(亭前溪水澄碧 萬朶芙蕖嬌映水面)」고 하고 있다. 연꽃은 佛敎와 강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佛敎에서는 흔히 이 꽃이 빛과 생명, 때로는 佛陀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또 阿彌陀經에서는 연꽃이 極樂淨土의 상징으로 되어 있다.27) 또 이들 傳說에 중(僧)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는 것도 두드러진 佛敎的 성격을 보여 주는 면이다. <李相國元翼> <完平李文忠公元翼> <洪斯文東岳遊別界> <設白帳避兵獲安>에는 중이 등장하여 주인공을 仙界로 안내하고 있다. 이는 모두 이들 傳說에 佛敎思想的인 면이 깔려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佛敎思想的인 면을 보여주는 것이지 이를 정통 佛敎思想으로 볼 수는 없다.
우선 여기에 등장하는 중들부터 정통 佛敎에서 修行을 하는 중과는 상당히 먼 거리를 보여 부고 있다. <完平李文忠公元翼>과 <李相國元翼>에 등장하는 중은 종이에 글을 써 하늘에 던져 鶴을 불러오고 있고 <洪斯文東岳遊別界>에서의 중은 짚방석을 짜 그것으로 주인공이 간단히 仙界에서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게 하고 있다. 또 <設白帳避兵獲安>에 등장하는 중은 집 둘레에 白布를 쳐 주인공이 오랑캐로부터 화를 당하지 않게 구해 준다. 그들은 참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精進하고 있는 중이라기보다 잡다한 方術을 보여주는 道士에 가깝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면에서 이러한 전설은 佛敎思想과 거리가 있다. 원래 佛敎에서는 이들 傳說에 등장하고 있는 것과 같은 연꽃이 핀 理想鄕도 仙界도 없다. 정통 佛家에서는 그런 곳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흔히 일반 佛徒들이 그 존재에 조금도 의심을 가지지 않는 極樂도 없다. 성철 僧은 내 마음이 부처요 현실 이대로가 極樂世界이지 따로 極樂같은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極樂(=四方淨土)은 무지한 중생을 올바른 곳으로 인도하기 위한 수단 곧 方便說(=方便假說)로 엄격히 말하자면 그것은 거짓말이라고 한다.28) 그러니까 여기서 불교와 관련이 있는 요소들은 불교와 약간의 관련은 있으나 정통 佛敎와는 거리가 상당히 먼 道敎에 수용, 변질된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理想鄕傳說에서는 儒敎的 성격을 보여주는 요소도 자주 대하게 된다. 儒敎는 孝悌 곧 家族道德을 존중한다. 그 중에서도 孝야 말로 인간이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도리로 되어 있다. <論語>에서 孝를 「人의 本(人之本)」이라 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29) 그런데 理想鄕傳說에는 곳곳에서 등장인물들이 孝誠이 강한 사람으로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關東道遭雨登仙>의 주인공은 仙府에서 절세미인을 아내로 맞아 아들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행복한 세월을 보내고 있으면서도 老母를 그려 울면서 인간세상으로 돌아가기를 간청한다. 3년만에 다시 그 어머니를 만난 주인공은 어머니의 엄명에 어쩔 수 없이 마음에도 없는 村女와 결혼을 하고 있다.30)
또 이들 傳說에는 儒敎 書籍과 이를 익히고 있는 장면이 있어 눈길을 끈다. <關東道遭雨登仙>의 仙府는 장려한 궁궐과 신기한 꽃과 짐승이 있는 樂園인데 그중 한 누각에 향로와 함께 ≪周易≫이 놓여 있다. <訪挑源權生尋眞>의 桃源 사람들도 儒敎書籍을 소중히 간직하고 이를 연소자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이 마을을 처음 발견하여 가족 친척들을 이끌고 들어 온 사람은 다른 것은 다 두고 두 가지만을 가지고 온 것으로 되어 있다. 한 가지는 鹽醬으로 이것은 식생활에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따라서 그가 가지고 들어간 다른 한 가지도 이들에게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의미가 되는 셈인데 그것이 바로 經書다.(只持如干經書鹽醬而)31)이 마을 사람들은 연소자가 할 일 없이 놀아서는 안된다 하여 해마다 가을, 겨울이면 낮에는 일하게 하고 밤에는 모아 놓고 책읽기를 시키고 있다.(年少不可浪遊 每當秋冬書耕夜讀必會) 이들이 읽은 책이 앞서 말한 經書들이라 함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 儒敎와 관련이 있는 요소들도 孔孟의 仁義禮智信을 바탕으로 한 정통 사상에 맥을 닿고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道敎에 받아들여진 민간의 범박한 사상의 일단이라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이러한 儒敎的인 요소는 오랫동안 우리 先人들의 생활과 意識을 지배해 온 儒敎의 강한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뜻이 있다 할 것이다.
理想鄕傳說에서는 우리 나라 특유의 巫俗的인 면도 보인다. 앞날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아는 일종의 占卜的인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런 면이다. <曳杖翁引人成親>의 주인공 咸永龜가 老母를 그리워해 인간 세상으로 돌아와 살고 있을 때 桃源의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 다음 해에 난리가 일어날 것이나 돌아오라고 한다. 咸은 그의 어머니를 모시고 桃源으로 들어갔는데 그녀의 예언대로 이듬해에 壬辰倭亂이 일어나다.32) <有一公子王室之胃也>에 등장하는 仙界의 미인도 시인 尹潔이 죽게 될 것을 미리 알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특히 韓國의 說話들에 등장하는 우리 특유의 巫俗的인 냄새를 풍기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佛敎나 儒敎, 巫俗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들은 극히 단편적이요, 揷話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다. 理想鄕傳說에 가장 강하게 나타나 있는 가장 근간적인 것은 역시 道家와 관련이 있는 道敎思想이다. 道敎와 道家思想은 밀접한 관계가 있으나 둘은 엄밀히 구분되어야 한다. 道敎는 老子의 ≪道德經≫을 최상의 경전으로 하며 그것을 사상적 연원으로 삼고 老子를 敎祖로 섬기고 있다는 점에서 道家思想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道家思想이 실천적 明智의 획득을 추구하는 철학인데 반해 道家는 神仙思想을 중심으로 한 비현실적 종교라는 점에서 둘은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하면 道家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老莊思想은 현실적이고 개인적이며 流도 派도 없는 철학인데 道敎는 神仙思想을 이용하여 궁극적으로 神仙이 되기 위한 여러 방법을 닦는 체계화 된 종교다. 神仙思想은 道家思想과 관련을 갖고 생겨난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절대권력을 쥔 사람의 不老 長生不死의 욕망으로 인하여 더욱 큰 세력을 얻은 것 같다. 司馬遷의 ≪史記≫ <秦始皇本紀>에 의하면 燕人 廬生이 始皇에게 「眞人은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고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으며 구름을 타고 하늘과 더불어 장구히 산다.(眞人者 入水不濡 入火不熱 凌雲氣 與天長久)」고 했다 한다. 始皇은 이 말을 듣고 인간의 長生不死는 가능하다고 생각하여 徐市, 韓終, 廬生에게 仙人不死藥을 구해 오게 한 것으로 보인다. 皇帝에게 神仙이 되는 법을 말해 영달을 꾀하다 그것이 거짓임이 밝혀져 처형을 당하는 일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33) 專制君主에의 그러한 진언은 계속되었던 것 같다. 漢武帝는 李小君의 말을 듣고 方士를 바다로 보내 安期生 등의 神仙을 만나고자 했다. 또 吳의 孫權도 여러 方士들과 교분을 가지고 제갈직․위온 등을 夷淵과 亶淵으로 파견해 仙藥을 구해 오라고 명한 적이 있다 한다.
韓國의 理想鄕傳說에는 짙은 神仙思想이 나타나 있고 神仙과 仙界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34) 이제 이들 說話에 나타나 있는 道敎思想의 道家思想과의 상관성, 상이성을 비교와 대조의 방법으로 알아보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고찰해 보기로 하겠다.
가장 뚜렷한 모습의 神仙은 <識丹邱劉郎漂海>의 海中仙界 「丹邱」에 등장하고 있는 老翁이다. 그는 물만 마시고 살고 있는데 이것은 道敎에서의, 神仙이 오곡을 먹지 않고 바람을 흡수하고 이슬을 마시는(不食五穀吸風飮水) 辟穀과 같다. 또 그곳 사람들은 羽觴을 마셔 기력을 되살리고 瓊液을 마심으로써 無病長壽하고 있는데 이는 道敎에서 神仙이 되기 위해서 하는 服食의 하나인 服藥이라 할 수 있다.
그보다 한층 생생한 모습의 신선은 <餉山果渭城逢毛仙>에 나오는 온 몸에 털이 나있는 禹注書다. 그는 李朝 中宗때 己卯士禍가 일어나자 화를 피하기 위해 智異山으로 들어간 사람이다. 산 속에서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한 그는 하는 수 없이 새로 돋은 풀(嫩草)을 뜯어먹고 열매(山果)를 따먹고 살아간다. 이것은 神仙이 되기 위한 수련의 하나로 앞서 말한 辟穀과 다름없다. 그렇게 5-6개월을 사니까 그의 온 몸에 털이 나 몇 치나 되게 자란다(是經過殆近五六朔 伊後 渾身生毛 長數寸). 王充에 의하면 神仙이 되면 몸에 털이 나고 어깨가 날개로 변해 구름 속을 다닌다 한다(體毛生 臂變爲翼行於雲)35). 禹注書의 전신에 난 털은 바로 위와 같은 「羽化」를 의미한다. 그는 구름 속을 날아다니는 神仙의 「飛翔」을 보여 주지는 않지만 그와 유사한 행동을 한다. 곧 그는 「걸음이 가벼워져 나는 것 같이 되어 비록 천인절벽이라도 쉽게 뛰어 건넜다.(步捷如乘 雖絶壁千仞無難超越)」고 하고 있다. 神仙은 廷年不死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禹注書가 바로 그렇다. 中宗 때 사람인 그가 咸陽의 渭城館에 나타난 것은 正祖 때이니 그는 4백년을 산 것이 되기 때문이다.
神仙 이야기는 道家의 ≪莊子≫ <逍遙遊>에 나온다. 거기에 「肩吾가 말하기를 저 아득한 묘고야산에 神人이 있는데 피부는 氷雪처럼 희고 그 모습은 부드럽고 생기가 있어 處子처럼 많으며 그는 五穀을 먹지 않고 바람과 이슬을 마시며 구름을 타고 飛龍을 몰고 四海 밖에서 逍遙한다. 그들의 정신이 응집하면 生 있는 것으로 하여금 惡病을 없게 하며 해마다 곡물을 익게 한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36)
또 ≪莊子≫ <齊物論>에도 「至人은 神妙한 존재다. 大澤이 불타버려도 뜨겁게 하지 못하고 河漢이 얼어버려도 차갑게 하지 못하며 疾雷가 산을 파괴하고 돌풍이 바다를 요동해도 놀라게 하지 못한다. 이와 같은 자는 구름을 타고 日月에 올라가 四海의 밖에 逍遙하며 死生도 그를 변화시키지 못하니 하물며 利害得失에 마음을 두겠는가」라고 하고 있다.37) 이는 영락없는 神仙 그것으로 道敎에서 말하는 神仙은 바로 ≪莊子≫의 위의 글들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글은 쓰인 그대로를 遂語的으로 읽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 논문은 위 <齊物論>의 글을 정신의 응집으로 忘我하며 道와 일치하는 경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충분히 납득이 가는 讀法이라 할 것이다. 이 논문은 이어 ≪莊子≫의 그러한 구절들은 至人 혹은 眞人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일종의 암호로 절대자유의 세계를 상징화해서 설명한 것인데 후세의 道敎․神仙家들은 그것이 현실적으로 실존하는 神仙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하고 있다.38) 生死에 관한 생각만 해도 그렇다. 莊子는 延年不死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가 「사람의 上壽는 百歲이고 中壽는 八十이고 下壽는 六十」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 그런 대목이다.39) 또 莊子는 무조건 生을 기뻐하고 死를 싫어한 것도(悅生惡死) 아니다. 莊子는 「生은 死를 이은 것이요 死는 生의 시작이니 누가 그 規律을 알리요? 사람의 生은 氣가 모인 것이니 모이면 生하게 되고 흩어지면 死가 된다. 만약 死와 生이 서로 循環하는 것이라면 나는 또 무엇을 근심하리요?」라 하고 있다.40) 그래서 그는 오히려 죽음이야말로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이요 온갖 속박으로부터의 벗어남으로 보았다. 莊子가 그 처가 죽었을 때 동이를 두드리면서 노래를 한 것(鼓盆而歌)이라든가41) 子桑戶가 죽었을 때 그 친구들이 조문객 앞에서 시신을 앞에 두고 거문고를 뜯으며 노래를 부른 것(臨尸而歌)도42) 生死를 하나의 循環이요 해방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道敎에서는 앞서 말한 莊子의 神仙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 들여 인간은 그러한 神仙과 같이 不老長生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두 가지 방법에 의해 不老長生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육체적으로 그 유한성을 극복하는 길이다. 이것이 곧 養形(=保精)으로 여기에는 辟穀․食餌法․調息․道引․房中術 등의 구체적인 방법이 쓰였다. 다른 하나는 정신적인 수련 곧 養神(=內觀)으로 여기에는 善行, 懺悔, 守一, 坐忘, 道와의 일체감 등의 방법이 쓰였다.43) 이러한 방법들도 상당수 ≪莊子≫에 나오는 것을 활용한 것이다. 곧 道敎에서는 ≪莊子≫ <大宗師>에 나오는 深呼吸法을 行氣法으로, 坐忘을 忌我法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44) 그러니까 道敎에서의 神仙思想은 道家思想이 俗化하여 생겨난 것이고 우리의 理想鄕傳說에 등장하는 神仙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한낱 비현실적인 몽상의 소산일 뿐인 것이다. 이는 백일몽 속에서나마 고통에 찬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한 우리 조상들의 꿈이 만들어낸 이야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理想鄕傳說에 등장하고 있는 마을은 道敎에서 말하는 樂園 곧 「別有洞天」이다. 그곳에는 우선 배고픔이 없고 늙고 병듦이 없으며 다툼이 없다. 그것에는 <洪斯文東岳遊別界> <訪桃源權> <生尋眞> <曳杖翁引人成親>등에서 본 바와 같이 배꽃, 복숭아꽃, 연꽃 등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百年光陰蟪蛄郡>에 피어 있는 것과 같은 연꽃은 神仙世界의 꽃이다.45) 道敎에서는 이 꽃이 바로 神仙 중의 하나인 何仙姑의 문장인 것이다. 道敎의 樂園에는 神鳥가 살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山海經≫의 <大荒南經>에 등장하는 樂園 臷民國에는 노래하고 춤추는 새가 있어 난새가 저절로 노래하고 봉새가 저절로 춤춘다고 하고 있다.46)
그런데 <靑鶴洞記> <完平李文忠公元翼> <李相國元翼>등 우리 說話 속의 理想鄕에도 이 神鳥가 등장하고 있다. 韓國에서는 흔히 鶴은 神仙의 벗이자 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 傳說에 등장하는 鶴도 특별한 의미를 띤다. 칼텐마크는 우리 民族(東夷人)을 가리켜 神鳥토테미즘 民族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47) 그러니까 우리 傳說에 특히 鶴이 자주 등장하고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야기 속에 神獸가 등장하는 說話도 있으니 <尙州五福洞> 傳說이 그것이다. 이 說話에는 사슴이 등장하는데 이 동물은 神仙의 벗이자 侍從의 상징성을 띠고 있다.48) ≪山海經≫에 의하면 樂園 南類山에 甘華(=신령스런 배나무)가 자라고 있듯 仙界에는 神獸가 있다고 하고 있다.49) 우리 說話 <洪斯文東岳遊別界>에도 배나무가 등장하고 있다. 또 우리 說話에는 복숭아나무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訪桃源權生尋眞> <曳杖翁引人成親>등의 說話가 그런 경우로 이 역시 神獸라 해야 할 것이다. 복숭아는 오래 전부터 不死의 仙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이다.50)
우리 說話 속의 理想鄕에는 彩雲이 떠 있고(<李相國元翼>) 피리, 퉁소 소리가 들리거나(<李相國元翼>) 笙簧소리(<完平李文忠公元翼>) 등 아름다운 음악이 울리고 있다.
老子, 莊子에는 분명히 理想鄕 또는 仙界라 할만 한 곳이 나온다. ≪莊子≫ <逍遙遊>에 등장하는 神人이 산다는 「藐姑射山」이나 「無何有之鄕」 같은 곳을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든 상징성을 띤 寓話의 한 토막일 뿐이다. 道家에는 처음부터 우리가 위에서 살펴 본 彩雲과 꽃이 아름답고 아무런 고통도 근심도 없는 그런 樂園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道家思想은 인간을 비극적인 존재로 보는 데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51) 莊子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그는 「疾病, 굶주림, 死亡, 憂患을 제외하고 그 사이에 인간이 입 벌려서 웃을 수 있는 것은 한 달 사이에 너댓새 뿐이다」라고 하고 있다.52)
老莊思想에서는 세속적인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은 「樂」자체가 부정되고 있다. 朴異汶은 道家에 있어서는 樂이 없는 것으로써 樂으로 삼는 것이 至樂이며 世慾의 樂은 참된 즐거움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老莊은 억지를 부려 살아가지 않고 마치 逍遙하는 기분으로 삶으로써 거기서 비로소 참다운 삶을 살고 참다운 삶을 맛보며 至樂에 이르게 된다고 보았다는 것이다.53) 老子와 莊子를 亨樂의 哲學者, 幸福의 哲學者라 한 것은54) 바로 그 때문이라 해야 할 것이다. 老莊思想은 실천적인 입장에서 문제를 보고 실천적인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데 그 특징이 있다. 老莊은 두 개의 세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基督敎에서 말하는 「天堂」이나 佛敎에서 말하는 「涅槃」은 딴 곳에서 찾아 낼 수 있는 별개의 세상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우리들 자신의 마음 속에서 찾아낼 수 있을 뿐인 것이다.55)
그러므로 道家에는 俗世에서 말하는 仙界도 樂園도 없다. 道家에서 그들의 理想鄕을 찾는다면 그것은 ≪莊子≫에서 宜僚가 魯나라 왕에게 소개했다고 하고 있는 「建德」과 같은 세계라 할 것이다. 宜僚는 魯 왕에게 「南越 땅에 고을이 있는데 建德이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그 나라 백성은 어리석으면서도 소박하여 私心이 적고 욕심이 적습니다. 그들은 농사만 지을 줄 알지 저장할 줄을 모르며 주기는 해도 갚으라고 요구할 줄도 모르고 義가 어디에 맞는지도 모르며 禮가 어떤 경우에 행해지는지도 모르고 다만 생각대로 무심히 행동하면서도 자연의 大道를 밟아 나갑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살아서는 즐기고 죽으면 편안히 장사를 지냅니다.」56)라고 하고 있다.
한 논문이 ≪莊子≫ <逍遙遊>에 등장하는 「無何有之鄕」을 道家의 理想鄕이되 그것은 「인공을 가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樂土」라고 한 것도 그 때문이다.57)
그런데 道敎에서는 그들의 理想鄕, 至樂의 세계를 현실세계 아닌 별세계에서 찾으려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道家思想은 俗化되어 그 본래의 뜻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단적으로 음악 이야기만 해도 그렇다. ≪莊子≫는 「대저 지극한 음악은 먼저 사람의 일에 응하고 하늘의 이치를 좇으며 五德을 행하다가 자연에 응하는 것이다. 그런 뒤에 四時를 고르게 다스리고 만물을 크게 조화시킨다.」고 하고 있다.58)
그러니까 인위적인 음악이 부정적으로 초극된 전지 자연의 無聲의 음악이야말로 至樂이라는 논리가 ≪莊子≫ 음악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59)그런데 道敎에서는 道家의 위와 같은 사상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음악이라 하면 더 할 수 없이 듣기 좋은 아름다운 소리 이상일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理想鄕說話에 등장하는 피리, 퉁소, 笙簧소리가 바로 그런 것으로 그것은 道家에서와 같은 그런 高踏的인 것이 아니라 민중의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그런 소박한 의미에서의 樂音인 것이다.
道敎的 宇宙觀은 玉皇上帝가 거주하는 天上과 人間의 現世, 그리고 神仙들의 仙界와 수부로 구분된다.60) 道敎를 믿는 사람들은 이중 仙界를 동경하고 거기에서 살기를 希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몽상의 세계가 道敎의 理想世界요 그것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理想鄕說話인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 傳說 속의 理想鄕은 상당수 戰爭이나 환난을 피해 그곳을 찾아 들어온 사람들이 만든 마을로 되어 있다. 이러한 이야기도 道家思想에 淵源을 두고 있는 것이다. 道家에서는 戰爭을 부정한다. 老子가 「병기란 상서롭지 못한 것이니 군자의 기물이 아니다.(兵者不祥之器)」라고 한 말이나61) 「군대가 있는 곳에는 가시덤불이 자라고 큰 전쟁 다음에는 반드시 흉년이 따르게 마련이다.(師之所處 荊棘生焉 大軍之役 必有凶年)」라고 한 말에62) 그것이 잘 드러나 있다. 道敎에서는 이러한 언급들을 문면 그대로 받아들여 무조건 戰爭은 부정되어야 하며 戰爭은 도망쳐서라도 피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것이 우리의 理想鄕傳說 곳곳에 나타나 있다.63) 이러한 이야기도 道家思想이 道敎에 받아들여지면서 俗化한 것이다. 오오하마 아끼라의 말과 같이 老子는 戰爭을 부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는 군자가 용병할 때를 분명히 긍정하고 있는 것이다.64) 老子가 「군자가 부득이 하여 그것(武器)을 쓸 때는 담담한 것이 최상이다.(不得已而用之 恬淡爲上)」라 한 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65)
그러니까 傳說 속의, 사람들이 난을 피해 理想鄕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老莊의 道家思想과는 거리가 있는, 「전쟁에 대한 공포」 「전쟁 없는 세상의 바람」이란 민중의 간절한 願의 소박한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道敎에서의 時間, 空間 개념 중 일부도 道家의 그것이 세속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으로 볼 수 있다. 莊子가 「절대의 大道를 얻은 뒤 古今이 없을 수 있게 되었다.(見獨 面後无古今)」고 한 말은66) 道의 경지에 들어서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게 된다는 철학적인 의미인데 道敎에서는 이를 인간은 延年不死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곧 仙界에서는 인간세상에서 보다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하는 이야기로 나타나 있는 것이다.
또 莊子에서 「하물며 그는 바야흐로 黃泉을 밝고서 蒼天에 올라 南方․北方을 가리지 않고 拘碍없이 精神을 解脫시켜 헤아릴 수 없는 深淵에 들어가 東西를 가리지 않고…(且彼方此方 皇天而登大皇 无南无北 奭然四海 淪於不測 无東无西)」라 한 구절은67) 道는 어떤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존재가 아니므로 東西南北 등 방위 개념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인데68) 道敎에서는 이를 세속적으로 해석해 그것이 우리 傳說들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神仙이 자유자재로 날아다니고 인간세상과 仙界를 마음대로 내왕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마지막으로 理想鄕傳說에는 그곳 사람들이 인간세상과 내왕을 끊고 살고 있고 우연히 그곳을 찾은 사람이 돌아 갈 때는 바깥 세상에 그곳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는 것을 자주 대하게 된다. 이 또한 道家思想이 屈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莊子는 초나라 왕이 국정을 맡아 달라고 했을 때 그냥 자연 속에서 편안히 天壽를 누리겠다면서 이를 거절한 데에 잘 나타나 있듯69) 세속적 욕망을 떠나 살고자 했다. 이는 현실적 이해나 명예에 관심이 없이 越世的, 高踏的 삶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본 道家思想의 一端이다. 老莊은 자연의 일부, 物我一體의 삶을 사는 데서 樂을 찾으려한 것으로 이는 흔히 말하는 그들의 隱逸思想이다. 그런데 道敎에서는 그런 것보다는 고통스런 현실을 멀리하여 위난을 피하고 안락을 얻으려 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人世와 단절을 꾀하여 山林․江湖에 숨어살고자 했다. 이는 도가에서의 隱逸과는 다른 현실 도피적인 隱循이라 해야 할 것이다.
Ⅳ. 結 論
지금까지 살펴본 韓國의 樂園․理想鄕傳說에 대한 연구의 論旨를 말한다면 다음과 같은 것으로 요약 될 수 있다.
韓國의 대표적인 理想鄕傳說의 하나인 <靑鶴洞記>를 中國의 <桃花源記>를 淵源으로 한, 그 영향하에서 쓰여진 것이라는 학설이 있으나 세계의 傳說들간에는 類似 또는 동일한 話素들이 많은 만큼 반드시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 할 수는 없다. <靑鶴洞記>에서는 智異山의 山勢, 花開縣 및 옛 마을 터를 서술하고 있는데서 韓國 특유의 情趣를 맛볼 수 있다.
韓國에는 <靑鶴洞記>뿐 아니라 상당히 많은 수의 樂園․理想鄕傳說이 있는데 이들 간에는 여러 가지 共通의 限定話素가 발견된다.
이들 공통 限定話素에는 세계 여러 나라 傳說에서 다 같이 발견되는 것도 있지만 우리 傳說 특유의 것도 있다. 우리는 거기서 우리 민족 고유의 체취, 우리 민족 고유의 꿈을 대할 수 있고 다시 거기서 어떤 특별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限定話素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 傳說속의 理想鄕은 그 소재가 산 속이라는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中國의 경우 그 소재가 산 속으로 되어 있는 경우도 있지만 海島인 경우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韓國의 경우 이 논문이 텍스트로 삼은 18개 傳說 중 그곳이 海島인 것은 <識丹邱劉郎漂海>한 편 뿐이고 나머지는 거의 모두 산 속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특히 산이 많은 나라인 韓國에 살아온 우리 민족은 산을 신성한 곳으로 생각해 왔는데 우리 傳說들이 위와 같이 樂園, 理想鄕을 산 속에 있다고 하고 있는데는 그러한 사상이 녹아들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산중에서도 金剛山․智異山에 樂園이 있다고 하고 있는 傳說이 많은데 이에는 우리 민족의 우리의 아름다운 국토에 대한 애정과 自矜心이 배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우리 傳說속의 樂園․理想鄕은 인간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고 있는 것이 많은데 우리의 조상들이 고통에 찬 현실에서 멀리 벗어나고자 하나 그 꿈을 이룰 수 없다는 데서 온 恨이 그러한 이야기가 되게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셋째, 우리 傳說속의 理想鄕에는 기름진 땅이 있고 物産이 풍부한 것으로 그려져 있다. 우리의 先人들은 지배층의 수탈로 굶주림에 시달려 와 배고픔이 없는 세상에 대한 동경이 간절하여 그것이 그러한 이야기가 되게 한 것으로 보인다.
넷째, 韓國 傳說속의 樂園․理想鄕에는 상하의 계급과 貧富와 다툼이 없고 각 가지 꽃이 피어 있고 온갖 鳥獸가 뛰놀고 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이것은 우리 先人들의 선한 본성, 이웃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우리의 傳說속 樂園․理想鄕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戰爭 등 환난을 피해 그곳으로 간 사람들의 후손으로 그려져 있다. 우리 민족은 다른 어느 민족보다 자주 戰爭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그때마다 가장 큰 고통,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절대 다수 피지배 민중들이었다. 그러한 민중의 전쟁에 대한 공포와 혐오가 그와 같은 이야기를 만들지 않았나 한다.
여섯째, 이것은 세계 여러 민족의 傳說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기도 한데 理想鄕, 仙界에서는 인간 세상보다 시간이 훨씬 느리게 간다고 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生의 一回性, 生의 짧음과 有限性에 대한 허망감이 사람들로 하여금 不老長生의 꿈을 꾸게 했고 그것이 그러한 이야기를 만들게 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위와 같은 傳說에는 한번 仙界․樂園․理想鄕을 방문한 사람이 거기서 나왔다가 다시 찾아가려 하나 결국 찾지 못하고 만다는 이야기가 많다. 이 話素에는 우리의 조상들이 樂園․理想鄕을 그려 그러한 이야기를 만들기는 했지만 곧 그것이 한갖 꿈일 뿐 사실은 그러한 곳이 있지도 않으며 따라서 그곳에 갈 수도 없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 비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이 세상에 곤륜도․화산도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陶淵明이70) 그러면서도 동경의 理想鄕 「桃花源」이야기(= <桃花源記>)를 썼으나 그 이야기의 마무리를 그 어부가 그것에서 돌아온 후 다시는 아무도 그곳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하고 있는 것과 같다.
한편 樂園, 理想鄕, 仙界에가 그곳에서 살던 사람이 인간 세상으로 나왔다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있는 傳說도 간혹 보인다. 이와 같이 傳說에는 老母에 대한 孝誠, 가족에 대한 사랑이 강하게 나타나 있는데 이것은 우리 민족 특유의 孝悌의 美德이 내비치는 話素라 할 것이다.
韓國의 理想鄕 傳說에서는 짙은 道敎思想이 발견된다. 그런데 韓國의 道敎는 發源國 中國의 그것과는 약간 다른 성질의 것이다. 中國의 것은 道場과 道士와 信徒를 갖춘 체계가 잡힌 종교인데 반해 韓國의 것은 개개인이 名山大川을 찾아 기원을 하는 非體系的인 民間信仰이다. 中國의 道敎는 道家, 易理, 陰陽五行, 儒敎, 佛敎 기타의 사상이 뒤섞인 宗敎混合現狀을 보여 주는 것인데 韓國의 道敎도 그 점에서는 비슷하다. 단 韓國의 경우는 변질된 道家思想을 중심으로 斷片的인 儒敎, 佛敎思想에 巫俗的인 요소가 混合된 民間信仰이라는 점이 특성으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중 중과 연꽃이 등장하는 등에서 볼 수 있는 佛敎的인 요소는 정통 佛敎의 敎理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佛敎가 俗化된 성질의 것이다.
儒敎的인 요소로는 孝悌思想과 經書尊重思想을 들 수 있다. 이러한 思想은 孔, 孟의 儒家思想 바로 그것이라 하기는 어려우나 오래 동안 先人들의 생활과 意識을 지배해 온 儒敎의 강한 영향을 감지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할 것이다.
韓國의 理想鄕傳說에는 미래를 미리 내다보는 占卜的인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巫俗的인 요소로 우리 先人들 특유의 體臭라 할 것이다.
韓國의 理想鄕傳說에서 주축을 이루고 있는 思想은 道家思想에 淵源을 두고 있는 道敎思想이다. 그러나 그것은 道家에 發源을 두고 있는 것일 뿐 道家哲學의 本旨와는 큰 거리를 가진 것들이다. 이 점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韓國의 理想鄕傳說에는 道敎思想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神仙思想이 짙게 나타나 있다. 이것은 <莊子>에 나오는 神仙이나 仙界 이야기에 바탕을 둔 것이나 道家思想과는 異質的인 것이다. <莊子>에 神仙이나 仙界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道와 일치하는 경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정통 道家에는 道敎에서 말하는 神仙도 仙界도 樂園도 없다. 그러므로 傳說 속의 神仙․仙界 이야기는 道家思想이 道敎에 수용되어 屈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理想鄕傳說에 등장하고 있는 不老長生의 이야기도 이 변질된 道家思想 곧 神仙思想에서 나온 것이다. 또 우리의 理想鄕傳說에는 戰爭 부정의 사상이 짙게 나타나 있는데 이것도 道家思想에 發源을 두고 있는 것이기는 하나 道家思想과는 다른 것이다. 道家에서는 戰爭을 부정하고 있지만 진실로 가치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 하는 싸움까지를 부정하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 道敎에서는 戰厭思想이 강조되어 현실 도피적인 성격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傳說에는 理想鄕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인간세상의 것과는 다른 것으로 되어 있다. 곧 仙界에서의 시간은 인간세상보다 훨씬 느리게 흐르고 그곳의 仙人들은 공간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또한 老莊思想에서 道를 깨달은 사람은 무엇에도 얽매임 없이 살 수 있다는 뜻의 寓意的 표현을 道敎에서 遂語的으로 받아들인데서 온 思想의 굴절이다.
마지막으로 傳說 속의 理想鄕 사람들은 외부와의 관계, 내왕을 끊고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自然과 一體가 되어 살려 한 老莊의 隱逸思想이 道敎에서 현실도피의 隱遁思想으로 변질된 것이다.
한 마디로 韓國의 理想鄕傳說에는 韓民族 특유의 소박함과 평화와 이웃, 나라, 자연 사랑의 마음이 깃들어 있는 고운 꿈 이야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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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동의대학교문화콘텐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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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펌] 韓國 理想鄕 說話에 나타난 道敎思想|작성자 묵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