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S] 전홍진의 예민과 둔감
양극성 우울증과 히스테리성 성격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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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씨는 30대 초반의 여성으로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로펌에서 근무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해서 선생님과 친구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렵게 입사한 로펌을 그만두고 혼자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고 사람들도 만나지 않고 지낸 지 벌써 반년이 넘었습니다. 가족들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무엇이 문제인지 몰라 답답해하고 있습니다.강희씨가 로펌을 그만둔 이유는 자기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못나 보이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강희씨는 중·고등학교나 대학 때 항상 돋보이는 존재였습니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간암으로 사망하고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서 학교를 다녀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기죽지 않고 열심히 공부를 했고 항상 좋은 성적을 유지했습니다. 아르바이트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얻은 수입으로 남들 못지않게 좋은 옷도 입고 다닐 수 있었습니다. 항상 관심받는 것에 익숙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계속 주목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관심받아야 해, 잘해야 해’라는 강박
강희씨는 로펌에 들어가면서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경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로펌 동료들은 자기보다 더 머리도 좋고 외모도 뛰어나 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의에서 새로 들어온 동료들과 실적을 비교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강희씨가 새로 담당한 소송에서 강희씨의 실수로 결국 일이 잘못 진행되었다는 피드백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강희씨는 회사에만 가면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누가 자기를 비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타인과 눈을 맞추고 일하기 힘들어졌습니다. 큰 소리가 나면 쉽게 깜짝 놀라고 사람들이 수군거리면 자기를 욕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설 명절이 되어 가족, 친지가 함께 모이는 자리에서 가족들은 강희씨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건강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체중이 10㎏ 넘게 빠져서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었습니다. 얼굴에 성형도 여러번 해서 오랜만에 본 친척들은 강희씨를 잘 알아보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이전과 달라진 모습에 친척들이 걱정을 하자 강희씨는 버럭 소리를 지르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최근 강희씨는 감정기복이 심해져 쉽게 우는 일이 잦았습니다. 열흘간은 잠도 거의 이루지 못했다고 합니다.가족들은 이대로 강희씨를 두었다가는 큰일이 생길 것 같아 함께 인근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찾았습니다. 강희씨는 심한 다이어트로 체질량지수(BMI)가 17인 심각한 저체중 상태였습니다. 정신의학적 검사상 몇가지의 특징이 있었는데 ‘양극성 우울증’ ‘히스테리성 성격’과 ‘편집증적 성격’이 있는 것으로 진단되었습니다. 양극성 우울증은 감정의 기복과 우울한 기분을 보이는 특징이 있습니다. 일반 인구의 약 1~2% 정도가 양극성 우울증을 보입니다. 감정의 기복은 자기 의지와는 관계없이 기분이 쉽게 변하고 우울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각성 상태를 증가시켜 외부 자극에 예민해지거나 폭발하기 쉽습니다.히스테리성 성격은 감정 표현이 과장되고 주변의 관심을 받으려는 특징이 있습니다. 주변의 관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기를 과장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심받기 위해 노력하지만 관심을 주지 않게 되면 분노가 생기고 우울증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편집증적 성격은 타인이 자기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음에도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하는 성격을 말합니다. 항상 주위를 경계하게 되고 타인의 숨겨진 의도를 과도하게 생각하게 됩니다.히스테리성 성격과 편집증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생활을 잘하고 문제없이 지내는 분들도 많습니다. 전문 분야에서 성공한 분들 중에는 이러한 성향이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강희씨는 자기 자존심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주위의 관심을 받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좋은 성적을 받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로펌에 입사하게 되면서 그러한 성격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했습니다.하지만 강희씨는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모인 로펌이라는 큰 조직에 들어가며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혼자 공부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협력도 해야 하고 평가도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 때처럼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위한 방향으로 무한히 노력한다면 그 한계에 봉착할 수도 있습니다.강희씨는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와 상담을 진행하며 자신의 만족을 위해 살아온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살아오지 않았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와 동생들이 모두 울고 있는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그때 자기를 지켜주던 울타리가 사라지고 세상에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의식중에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버림을 받지 않기 위해 지나치게 노력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자기 능력의 한계에 도달한 것 같았습니다.
여유가 만든 회복
모든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강희씨는 이제 자신의 다양한 가치를 발견해야 합니다.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졌지만 책을 읽을 때의 즐거움, 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기쁨, 여행에서 느끼는 재미 등 다양한 부분에서 자기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를 다면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남의 평가에 의해서만 획일적으로 판단하지 않게 됩니다. 일을 하는 중에 나를 비판하거나 조언을 주는 사람에게도 ‘나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비판을 통해서 내가 더욱 발전할 수 있고 일을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강희씨는 우울증 치료와 자신의 가치를 다시 발견해 보는 상담을 받은 뒤에 다시 로펌에 복귀해서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이제 새로운 업무에 대한 자신감도 가지고 적응하는 중입니다. 가족도 다시 정신적, 신체적으로 건강해진 강희씨에게 안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강희씨는 자기에게 관심을 주고 있는 가족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었고, 힘든 일이 있으면 상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023.01.03.화.
6급이 되었다.
2022.12.07.수.
6급이 되었다.
2022.10.23.일.
교회에서 신입교인을 축하하면서
나도 손뼉을 쳤다. 소리가 났다. 별로 아프지 않았다.
참 기쁘다.
세게 쳐봐도 별로 아프지 않다.
2022.10.17.월.
소설
'하얼삔'을 모두 읽었다.
안중근의사의 이야기다.
황해도 서울 부산 블리디보스톡 하얼삔 대련
이렇게 장면이 움직였다.
2022.10.14.금.
5급이 되었다.
(10.14) (10.06) (09.17) (06.08)
..........8...........19.........101
2022.10.06.목.
5급이 되었다.
(10.06) (09.17) (06.08)
........19........101
2022.9.30.금.
배영을 하게 되었다. 501년만에 배영을 하게 되었다.
전주랜드에서 익혔다.
옆돌기가 되면서 물속숨쉬기를 하게 된 것이다.
점프 옆돌기 숨쉬기 배영으로 전진하기
순서대로 잘 하게 되었다.
기쁘다. 편안하다.
코를 막고 점프하였다.
엎어진 채로 잠깐 머물러있었다.
몸이 둥실 떠올랐다.
뒤집기를 했다.
뒤집어진 채로 잠깐 머물러있었다.
몸이 둥실 떠올랐다.
코와 고개가 밖으로 들려졌다.
코를 막은 손가락을 천천히 풀면서 가슴속공기를 밖으로 품어냈다. 주변의 물이 모두 털려나갔다.
자유로이 숨을 쉬었다.
팔을 저어 전진했다.
2022.09.23.금.
'연애' 한번 하였다.
2022.9.17.토.
5급이 되었다.
2022.8.20.토.
국민학교친구들 모임이 있었다.
짜장면 탕수육 귤 커피를 먹고 마셨다.
모정에서 담소가 오갔다.
팔복동에 갔다.
친구들과
저녁식사로 병치고사리 음식을 먹었다.
커피도 마셨다.
집에 오는 길에 사무실에 들렀다.
다시 사무실에 갔다왔다.
오가는 길에서
철물이 상당량 눈에 띄었다. 횡재였다.
아이스팩2개도 눈에 띄어서 가져왔다.
금붕어어항의 물을 냉각시키는 일에 사용해야겠다.
밤11시반경 집주변을 돌았다.
병10여개를 주웠다.
캔도 상당량을 주웠다.
2022.6.8.수.
5급이 되었다.
2022.5.18. 어항의 금붕어
어항의 물을 갈아주었다.
산소부족으로 뻐끔뻐끔 하였다.
밤이고 낮이고 그랬다.
물위에 언제나 떠있었다.
이제는 가라앉아서 논다.
뻐끔뻐끔도 하지 않았다.
산소공급기를 사려고 다이소에 갔다왔지만
부속2개만 사왔다.
다이소에 몇가지 부속이 없었다.
그래서
물을 갈아주기로 하였던 것이다.
어제
"연애 한번 하자"고 문자로 말하였다.
"이대로가 좋다"고 대답하였다.
2022.5.9. 깊스풀다
깊스를 풀었다.
대통령 취임했다.
2022.5.6....런닝머신/국내여행
전선을 연결하였다.
청소기에 붙어있는 코드를 연결하였더니 가능해졌다.
남원에 갔다왔다.
춘향제가 열렸다.
국내여행을 하고 싶다.
손자들에게 10만원씩 보냈다.
2022.5.5....어린이날
민주
캔줍기를 같이했다.
많이많이 주웠다.
순두부 먹었다.
경숙
전화왔다.
손자 만났냐고 물었다.
미란
전화 많이 왔다.
걱정을 많이많이 했다.
10시에 찻집에 가서 차를 마셨다.
사무실에 들러서
주워온것들을 분류작업했다.
"하미란 어린이"
라고 불렀다.
"어린이날 축하해요."
라고 말해주었다.
2022.4.19.화.... 절단연초
새벽4시 눈을 떴다.
옷을 주워입었다.
밖으로 나갔다.
차문을 열었다.
라이터 담배갑을 찾았다.
분리수거장으로 갔다.
플라스틱칸에 라이터를 버렸다.
종이칸에 절단한 담배권련들을 버렸다.
담배갑을 버렸다.
2022.4.12.화....세탁
이사와서 세탁기를 돌렸다.
도움을 받았다.
빨래를 널었다.
근심 하나가 해결되었다.
2022.04.10. 일.....횡재
오후
혁신으로 캔 주우러 가는데 길가 우측에서 철물이 보였다.
유턴하여
그곳으로 갔다.
철물을 상당히 주웠다.
횡재였다.
혁신에 가서 캔을 주워왔다.
저녁 먹고나서
사무실로 가지고 갔다.
주워온 것들에 대한
분리작업을 했다.
테이블 분해가 난해하였다.
스패너 2개를 사용하니
가능해졌다.
2022.04.02. 토. 미움 원망 억울 자기연민 마지막한....어떻게?
https://content.v.daum.net/v/EF4uuCMM03
2022.03.31.목......코로나 확진
확진
나왔다.
코로나선별진료소
어제 갔다.
목이 따가워서, 오한이 와서, 기침이 나와서, 가래가 있어서, 입맛이 떨어져서,
입원중에 내앞에 계시던 붙이 갑자기 강제퇴원
정읍 사시는 붙이었다.
외출 갔다오셨는데 문제가 터졌다.
나는
하루는 오한
하루는 기침
하루는 목이 많이 아팠다.
오늘은 오후되면서 목이 부드러워졌다.
따끈한 물을 마시고 또 마셨다.
사과 참외 귤 등 과일을 사가지고 ....내가 직접
육수를 택배로 ..........................................둘째딸이
목감기약, 소독약을 사가지고 ............민주가
.....이제 두루 두루 해결이 되었다. 두루 두루 감사하다.
2022.03.26.토.
오늘 여기에서 침대에 누웠다.
2022.03.26.23.58.
전주시 완산구 봉곡4길10번지 석영빌라203호
71세가 되었다.
2022. 02.01.화......설날
“ ‘씹을 팔든 뭣을 하든 네 어머니일은 네가 해결해’ 사위가 딸에게 그랬데요.” 한씨할머니가 말하였다.
“사위는 코로나19 때문에 하던 일에서 끊어졌어요. 딸은 자꾸 몸이 아프다고 해요.”
한씨할머니의 딸은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했다. 교회들은 어디를 막론하고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한씨할머니는 노인요양원에 다녔다. 77세로 뇌수술을 받은 1급장애자였다. 한씨할머니가 말하였다
“이번 달에는 노인요양원비를 낼 돈이 없어요. 노인요양원비 36만원만 좀 꾸어주세요.”
“딴딴딴딴 딴딴 따라단~” 핸드폰이 울렸다. 목사님이셨다. 그리고 잠시후 통화가 끝났다.
“돈 7만원만 도와주세요. 내일 병원에 가야해요.” 한씨할머니가 말하였다.
“한집사에게 70만원을 주었어요? 그 때, 전화했을 때, 통화가 덜 끊어져서 여기서 내가 다 들었어요.”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다.
“70만원이 아니고 7만원이었는데요?” 내가 대답했다.
나는 2020년 4월1일에 캔줍기-고철줍기를 시작했다. 그것을 팔아 모은 돈은 내가족이나 내가 쓰지 않기로 하였다. 2022년 2월1일 현재 그렇게 모은 돈이 500만7천원이 되었다.
약 6년전 둘째딸이 두바이로 이사하면서 나에게 2가지를 부탁했다. 그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엄마교회로 가서 함께 신앙생활 하세요.’
상당기간 따로따로 교회를 다녔는데 어느 날 아내가 목회하는 교회로 가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어느 날 목사님께서 예배 후에 한씨할머니, 한씨할머니의 손자가 되는 한 청년, 나에게 처조카가 되는 박집사 등 몇 사람을 집까지 모셔다 드리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매월 10만원씩 달라고 요청하였다. 매월 10만원씩 받으며 그분들을 집에까지 모셔다 드렸다.
효자동에서 혁신도시로 교회당이 이전할 당시에, 교회건물은 거의 빚으로 샀다. 교회빚이 2억2천만원이었다. 그중 2천만원은 특히 이자가 더 세다는 말을 목사님으로부터 들었다. 내 이름의 정기예금을 찾아 그중 2천만원을 갚았다. 그후로 교인수가 줄어들면서 교회형편이 나빠졌다. 내 이름의 정기예금 1억원을 찾아서 남은 빚을 줄였다.
교회예배가 끝나면 보통 12시반경이었다. 한 바퀴 돌고나면 오후1시반경이었다. 그 때마다 시장끼가 들었다. 나는 10년 이상 내손으로 내 식사를 해결해왔기 때문에 아침6시, 점심12시, 저녁6시가 거의 습관이 되어 있었다. 때를 놓치면 더 시장끼를 느꼈다. 차를 운행하는 1시간 동안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고갔다.
2020년초부터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 퍼져 특히 교회에 비상사태가 왔다. 교인수가 더 줄면서 교회형편이 더 어려워졌다. 1년동안 주셨던 매월10만원이 어느 달 이후 끊어졌다. 주실 수 없게 된 것 같았다.
“모처럼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네요. 한 시간이나 통화했어요.”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다. 목사님은 큰딸과 연락을 하지 않았다. 아들과도 연락을 거의 하지 않았다. 둘째딸하고만 통화를 하였다. 그리고는 종종 나하고 얘기를 나누었다. 아들이 전화한 내용은 거의 짐작이 갔다. 더 묻지 않았다. 다름아닌 이 말이었을 것이다.
‘교회사역 이제 그만 하세요.’
아내는 나와 나이가 같다. 설이 되었으니 우리나이로 71세다. 서너달 전부터 목사님께서는 설교 중에 한 번씩 힘들어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러고 나면 나에게 그 일에 대해서 한 번씩 말씀하셨다. 2013년 6월 4째주일에 교회목회가 시작되었으니 8년반이 되었다.
“목회방해한 것 내가 다 들어서 알고 있어. 내가 죽여버릴거야.”
2021년 12월19일 오전예배 전에 외삼촌이 아이들도 있는 공개장소에서 이렇게 나에게 말하였다. 교회회계 여자 박집사의 말에 이어서 나온 말이었다.
“교회문 닫게 해놓고 도대체 어떻게 그런 말씀을 다 저에게 하세요?” 여자 박집사가 큰 소리로 외쳤다.
“다음 주까지 여기에서 예배드린다고 하시더니 금방 ‘이번 주로 교회문을 닫겠다’고 목사님께서 다시 말씀하시네요. 그렇다면 형식으로나마 교회회계의 경과보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이렇게 건의했을 때 박집사의 대답이었다.
“나는 그런 서류에 싸인하지 않는다.” 내가 말했다.
“오빠는 이혼시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빠가 돈을 대줘서 변호사까지 샀지만 그것을 취소시키고 이렇게 별거서류를 밤새워 만들어왔는데 이 서류에 아빠가 싸인을 안한다면 내가 모두 독박쓰게 돼요.” 둘째딸이 한 말이었다.
교회당매매는 교회집사가, 살던 아파트매매는 둘째딸이 담당, 잠깐사이에 이루어졌다. 목사님거처 마련 내거처 마련 등 별거 / 이혼으로의 직행상황이 들이닥친 것은 금새였다. 팔린 아파트의 잔금기일이 한 달 남짓 남아 있어서 지금 내가 여기에서 숙식하며 지낸다.
설날이다. 2022년 임인년 내가 어느 새 71살이 되는 설날, 둘째딸과 사위 손자 둘이 왔다. 세배를 받지 않겠다고 말하였다. 들고 온 과일상자를 받아두고는 ‘엄마에게 어서 가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둘째딸에게 슬쩍 물었다.
“엄마 사는 곳이 어디인지 말해 줄래?”
“엄마에게 직접 물어보세요. 엄마의 뜻이라서 내가 말해 드릴 수 없어요.” 둘째딸의 대답이었다.
설날이 부끄럽다. 사위, 손자들에게 부끄럽다.
“그 여집사에게 돈을 주었다면서요? 그렇게 했다면 같이 못살죠.” 어느 날 전화 속에서 둘째딸이 한 말이 지금도 내 귓전을 울린다.
<추기>
교회의 나머지 빚 1억원이 있었는데 그중 4천만원은 교회재정에서 갚은 것으로, 6천만원은 내 이름의 정기예금과 목사님 이름의 정기예금을 헐어서 해결된 것으로 여겨진다.
약 1년전에 교회당 건물의 명의변경이 있었다. 의외로 비용이 많이 나왔다. 약 2천만원 정도 들었던 것 같다. 그중 ‘교회재정에서 1천만원이 모자란다.’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날이 어두워졌는데 농협에 나가 마이너스통장에서 1천만원을 빼어 박집사에게 계좌이채하였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였다.
“형편이 풀리는 대로 돌려주세요.”
교회당은 당초에 3억2천만원에 매입하고 내부시설에 3~4천만원이 들었다. 교회당매각은 4억원이었다.
약 6년전 당초 교회당 구입시에는 작고하신 임종숙님이 5천만원, 목사님이 3천만원, 교회재정에서 2천만원, 이렇게 모아진 1억원에, 신용금고에서 대여받은 2억2천만원이 마련되면서 3억2천만원에 교회당이 매입되었다.
2016년 혁신도시로 이사온 이후 두바이에 간 둘째딸 사위로부터 약 5년동안 100만원에서 50만원 사이의 돈이 거의 매월 송금이 있어서, 혁신에서의 교회운영에 큰 힘이 되었다. 교회재정으로 부채 4천만원을 갚는 일이 가능해진 것은 이 지원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