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가을 운동회
조영희
코로나로 몇 해 동안 운동회가 없더니 오랜만에 초등학교 운동장이 왁자지껄하다. 우리 아파트에 확성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요즘 운동회는 이벤트 업체에서 다양한 기구들을 가져와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전교생이 모두 모여 하는 게 아니라, 학년별로 날짜를 다르게 한다. 주로 색 판 뒤집기, 공 터트리기, 이어달리기 등의 프로그램을 하는데 평소 체육 시간보다 조금 더 활동적이다. 학부모 참여도 없고 학생들끼리 오전에 프로그램을 전부 끝내고 점심은 급식으로 해결한다.
초등학교 시절 가장 기다려지고 즐거웠던 때는 가을 운동회였다. 우린 수업을 마친 후 몇 달 동안 매스게임을 연습했다. 반복되는 연습으로 지루하기도 하고, 무덥기도 하여 짜증이 날 때도 많았다.
가을이면 곡식과 과일을 수확하고, 바쁜 일과를 거의 끝낸 뒤라서 운동회 날은 온종일 풍성한 마을 잔치였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서 즐겁게 응원하였다. 가을 운동회가 열리면, 커다란 나무 그늘에 부모님과 친지들이 모여 밤과 고구마, 떡과 찰밥을 서로 나눠 먹었다.
전교생이 모여 학년마다 여러 가지 묘기를 부려 볼거리도 풍성했다. 1학년 꼭두각시 춤은 너무 귀엽고 예뻤다. 고학년은 신나게 소고를 치며 농악놀이로 흥을 돋우었다. 6학년 남학생들의 기마전은 두 편으로 나누어서 했다. 네 명이 팔과 팔을 엮어서 한 명의 대장을 가운데 태우고, 청군과 백군이 상대방의 머리띠를 서로 빼앗는 모습에 모두 함성을 질렀다.
학교 운동장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랑 점심을 먹는 시간은 너무 행복했다. 오전에는 체조와 매스게임을 하고 점심시간에 맞추어 바구니 터트리기를 했다. 청색과 백색으로 만든 둥근 바구니 두 개를 장대에 높이 매달아 두었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콩 주머니를 던져 맞히면 바구니가 터졌다. 바구니 속에서 점심시간이라는 문구가 나오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오후에는 장애물 달리기와 학부모 달리기가 있었다. 장애물 달리기를 할 때면, 먼저 지정선으로 달려가 쪽지를 주워 거기에 적힌 인물을 찾아서 같이 뛰는 것이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적힌 쪽지를 주우면 실망하기도 하지만, 엄마가 없는 아이는 이웃집 아주머니가 엄마 역할을 대신해서 함께 뛰기도 하였다. 나는 다행히 삼촌하고 뛰게 되어 1등을 했을 때는 너무 기뻤다.
나는 달리기를 좋아한다. 운동장 반 바퀴를 돌고 오면 1등, 2등, 3등까지 손등에 도장을 받았다. 상품으로 받은 공책과 연필이 너무나 소중했다.
아이들 운동회 때도 학부모로서 참석했다. 학부모 달리기는 늘 참여했다. 등수에 들면 세탁비누, 칫솔, 치약 등 상품을 받는 게 기뻤다.
딸이 6학년이 되었을 때 운동회에 갔다. 학부모 달리기에 나가려고 하는데, 딸이 ‘엄마가 뛰는 게 창피하다’면서 나가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열심히 뛰어서 일등을 하고 상품도 받았다.
다시 가을 운동회가 열린다면 매스게임과 달리기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운동장에 가면 1등으로 달릴 것 같다. 그렇지만 세월의 늪에서 마음속으로만 달릴 수 있는 건 아닐까.
조영희: 경남 마산출생. <한국문인> 수필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사회복지학 과 외래교수. 저서 『치료레크리에이션 적용기법』